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 12

 

▷심진(審眞)

阿難!當知汝今 欲令見聞覺知 遠契如來 常樂我淨,應當擇去 生死根本,依不生滅圓湛性成,

아난아, 네가 이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것으로 하여금 여래의 상락아정(常樂我淨)에 계합하기를 바란다, 먼저 생사의 근본부터 가려내고, 생멸하지 않는 원만하고 맑은 성품인 원담성(滅圓湛)에 의지해서 이루어야 하리니,

ㅡ'견문각지(見聞覺知)'란 육근(六根)의 식(識)작용이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은 부처님 열반의 사덕(四德)이며, 

'생사근본(生死根本)'이란, 오업장(五業障)으로 현혹된 모든 무명을 말하며, 

 

以湛旋其 虛妄生滅,伏還本覺 得元明覺,無生滅性 爲因地心,然後圓成果地修證。

맑으므로써 허망하게 생멸(滅生)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 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明覺)인 생멸이 없는 성품을 얻어서 수행자리의 마음인 인지심(因地心)으로 삼은 다음, 과지(果地)를 닦아서 수증(修證) 원만하게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如澄濁水 貯於淨器,靜深不動,沙土自沈 淸水現前,名爲初伏 客塵煩惱;

비유하자면, 마치 혼탁한 물을 맑힐 때에 흔들리지 않는 그릇에 담아 놓고, 오랫동안 가만히 두어 움직이지 않게 하면, 모래와 흙이 저절로 가라앉아 맑은 물만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는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去泥純水,名爲永斷 根本無明。明相精純,一切變現 不爲煩惱,皆合涅槃 淸淨妙德。

탁한 찌꺼기의 앙금마저 제거하여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 할 수 있으니, 

이렇게 밝은 모양(相)이 정밀하고 순수하여 정순(精純)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 모두 열반의 청정한 덕(妙德)에 부합하느니라.

'일체가 변하여 나타난다'란, 근기(根機)에 따라 시방 세계에 몸을나누어 형체를 화현하는 것이니, 이는 관음보살이 보문(普門)으로 나타내 보이시는 것과 같이, 용(用)이 곧 체(體)이므로 모두 열반에 부합하는 것이다. 

 

*근기(根機), 근(根)은 선근을 뜻하고, 기(機)는 근량을 뜻하는 것으로, 교법을 듣고서 닦아 증득하는 능력을 말한다.

 

*모든 것은 한 찰나도 쉬지 않고 변하지만, 변해가는 원리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규칙이 있음을 밝힙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둔근 범부들은 현상계의 변화상을 보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견문각지의 지식 무더기를 '나'라고 집착하는 전도된 인식을 통하여 재해석하며 새로운 변화상을 조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재하는 하나의 변화상, 즉 본래면목에서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전도된 변화상이 생기고, 만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 전도된 변화상이 생겨서 세상살이가 혼탁해집니다.
색성향미촉법 등 6진 경계가 조건이나 상황(인연의 연)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현상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현상계는 수연(隨緣)한다고 합니다. 그 수연하는 원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합니다.
이렇게 수연하는 원리는 불변(不變)이므로 진여법성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용어가 '수연불변(隨緣不變) 불변수연(不變隨緣)'이며 
이를 의상대사는 그의 법성게에서 '불수자성(不守自性) 수연성(隨緣成)'이라 했습니다.
우주법계의 생생멸멸하는 이러한 과정을 체득하면 이 세상에 참 아닌 것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선각자는 번뇌가 바로 보리라 천명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변해가는 과정만 있을 뿐, 태어남도 사라짐도 없음을 밝혀서 알면, 두두물물이 부처요, 시시처처가 극락입니다.
여기에 (常樂我淨)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즐겨보시지 않으시렵까?ㅡ 한울림  

 

復次阿難 汝今知否 阿彌陀佛 在彼不遠 汝起合掌 面西頂禮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는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合掌)하고서 서쪽을 향해 정례(頂禮)하여라. 

ㅡ'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신다'란 곧 나를 객채(客體)로 삼고 상대를 주체(主體)로 삼아서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아(阿)는 무(無)이고, 미(彌)는 양(量)이고, 타(陀)는 지혜(智慧)이고, 용력(用力)이며, 수명이며, 복록이며, 광명이며, 공덕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곧 법계장의 주인이므로 시방 삼세의 일체 제불이 그 성품을 돈오해서 부처를 수증하고, 일체 벽지불도 그 성품을 깨달아서 벽지불을 수증하였으며, 일체 보살도 그 성품을 깨달아 보살을 수증하고, 성문도 그 성품을 깨달아 성문을 수증하였다. 

 

阿難恭敬 頂禮之間 阿彌陀佛 放大光明 普照十方 諸佛世界 億億天地 億億日月

아난 존자가 공경히 정례하는 사이에 아미타불이 대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불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억억(億億)의 천지와 억억의 일월(日月)이 모두 다 가리워지고, 오직 하나의 불광만이 환하게 빛나니, 

 

皆悉隱蔽 唯一佛光 熾盛顯赫 此會四衆 諸過量人 洞見彼佛
依正莊嚴 恭敬頂禮 卽發無等等 阿耨陀羅三藐三菩提心

이 법회의 사중(四衆)들 중에서 모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그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보고, 공경히 정례하고서 곧 무등등(無等等)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발하였다.

ㅡ이는 곧 현묘한 삼마지가 드러남에 본각(本覺)이 나타난 것이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의 아(阿)는 무(無)이고, 뇩다라(耨陀羅)는 상(上)이고, 삼(三)은 정(正)이고,

막(藐)은 등(等)이고, 삼보리(三菩提)는 정각(正覺)이며,

'무등등(無等等)'은 불성(佛性)은 어떠한 것과도 같을 수 없는 것이나 사성(四聖)과 육범(六凡)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모두 같이 지니고 있는 것이 같으므로 무등등이라 한 것이니, 이는 상근대인(上根大人)의 발심이다.

 

*사성(四聖), 불(佛) 보살(菩薩) 벽지불(僻支佛) 아라한(阿羅漢)

*육범(六凡),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人)·천(天)

 

'열반경(涅槃經)'에서 '일체 중생이 불신(佛身)이 아니므로 실은 불성이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다만 부처를 이루는 종자를 가리킨 것이므로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질그릇을 만드는 집에 가서 병이 있느냐고 물으면 병이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사실은 병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진흙이 있으므로 병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불성을 보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형상(時節形相)을 관찰해야 한다. 불성과 보리도 진흙과 병 같아서 인연에 속한다. 

'시절형상(時節形相)'이란, 진흙일 때에는 병의 형체는 없지만, 병이 되었을 때에는 진흙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진흙이 만약 실상이라면 어찌 병이 될 수 있으며, 병이 만약 실상이라면 어떻게 진흙으로 만들겠는가?

진흙과 병은 모두 자체(自體)가 없는 것과 같이, 미혹할 때에는 깨달음의 각상(覺相)이 없고, 깨달았을 때에는 미혹한 상이 없으니, 미혹함이 만약 실재라면 어떻게 깨달음을 이루며, 깨달음이 만약 실상이라면 어떻게 미혹한 형상이 생기겠는가?

미혹하고 깨달음은 자체가 없는 것으로, 오지 하나의 진성(眞性)만이 적연하게 나타나서 미혹함과 깨달음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물은 고요한 것이나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고, 하늘은 밝은 것이나 구름이 흔적을 만든다'고 한 것은 색음(色陰)을 비유한 것이고, 

'얼음을 타니 추워서 소름이 돋고, 불을 쪼이니 따뜻하여 졸음이 온다'는 것은 수음(受陰)을 비유한 것이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맺히고, 음식을 말하면 입에 침이 생긴다'는 것은 상음(想陰)에 비유한 것이고,

흘러가는 구름은 쉬지 않고 달리고,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바삐 가는가?'는 행음(行陰)을 비유한 것이고,

'바다를 끌어다가 네모난 못을 만들고, 허공을 나누어 작은 병에 넣는다'고 한 것은 식음(識陰)을 비유한 것이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四 終 수능엄경 제 4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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