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0

세친(世親보살 지음현장(玄奘한역.

11. 피과지분(彼果智分) ② 4

 

▶釋曰:如『菩薩藏百千頌經』「序品」中說,

▷해석한다; 보살장의 백천 송경(頌經)의 서품에서 청정한 불국토를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ㅡ진제의 역본인 진본(陳本) '섭대승론석'에서는 보살장 가운데 '정토경'의  종류, 또는 '화엄경'에서 정토상을 광설하는 문장이라고 되어 있으나,  경문은 '불지경(佛地經)' 서품ㆍ'해심밀경' 서품 나온다.

 

淸淨佛土,此淨佛土,顯示何等殊勝功德? 謂初二句,顯淨佛土顯色圓滿.言七寶者,一金;二銀;三琉璃;四牟娑洛寶;五遏濕摩揭婆寶,擧此應知卽擧末囉羯多等寶;六赤眞珠寶,此赤眞珠赤虫中出,一切寶中,最爲殊勝;七羯鷄怛諾迦寶. 放大光明普照一切無邊世界者,謂次前說,七寶所放諸大光明.此上二句,皆同顯示顯色圓滿.

 청정한 불국토가 나타내는 것에 어떠한 수승공덕이 있는가? 

처음의  문구는 청정 불국토의 빛깔의 현색원만(顯色圓滿) 나타내었으니,

7보라 함이란, 첫째는 금이고, 둘째는 은이며, 셋째는 유리(琉璃)이고, 

넷째는 모파락보(牟波洛寶, 자거車渠, 唓磲, 그 색깔이 말의 뇌와 같아서 마뇌 馬腦라고도 함)이며, 

다섯째는 알습마게파보(遏濕摩揭波寶, 적색보 赤色寶)이니, 이것은 마땅히 알지니 말라갈다(末囉羯多, 녹색보 綠色寶) 등의 보배를 드는 것이며,

여섯째는 적진주보(赤眞珠寶)이니, 이 적진주는 적충(赤蟲)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든 보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며, 

일곱째는 갈계달락가보(羯雞怛諾迦寶, 매괴 玫瑰)이다. 

대광명을 내어 널리 무변한 세계를 모두 비춘다는 것이란, 바로 앞에서 말한 7보에서 나오는 모든 대광명을 말하는 것으로, 이상의  문구는  같이 빛깔의 현색원만(顯色圓滿)원만을 나타낸 것이다.

 

次有一句,顯形色圓滿.次有一句,顯分量圓滿.次有一句,顯方所圓滿.次有一句,顯因圓滿,此何所因?謂出世閒無分別智,及後得智,此後得智,說名爲勝,此後得故,從此二種善根所起,卽此善根,名因圓滿.次有一句,顯果圓滿,謂淨佛土,以極自在淨識爲相.

다음의 문구는 형체의 형색원만(形色圓滿) 나타낸 것이며, 다음의 문구는 분량원만(分量圓滿) 나타내며, 

다음의 문구는 방위ㆍ처소의 방소원만(方所圓滿) 나타내며,

다음의 문구는 원인의 인원만(因圓滿)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은 무슨 원인을 말하는 것인가? 

출세간의 무분별지와 후득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 후득지를 뛰어난 것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것은 후득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지의 선근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니, 곧  선근을 원인의 인원만(因圓滿)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다음의 문구는 결과의 과원만(果圓滿) 나타내는 것으로, 청정한 불국토는 지극히 자재한 청정식의 정식(淨識)으로써 상을 삼는 것이다.

 

次有一句,顯主圓滿.次有一句,顯輔翼圓滿.次有一句,顯眷屬圓滿,前已擧龍,今此復擧莫呼洛伽,爲攝大蟒.次有一句,顯任持圓滿,卽是飮食.次有一句,顯事業圓滿,謂食此食已辦諸衆生一切義利.次有一句,顯攝益圓滿,於淨土中,離諸煩惱,無諸苦故.

다음의 문구는 주원만(主圓滿) 나타내고, 다음의 문구는 보익원만(輔翼圓滿) 나타내며, 

다음의 문구는 권속원만(眷屬圓滿) 나타내는 것이니, 앞에서 용(龍)을 들었고 지금 여기서는 다시 모호락가(莫呼洛伽, mahoraga 마후라가, 큰 구렁이인 대사 大蛇 또는 대복행 大腹行)를  것은,  구렁이를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며,

다음의 문구는 맡아 지님의 임지원만(任持圓滿) 나타낸 것이니,  음식을 말하는 것이며,

다음의 문구는 사업원만(事業圓滿)을 나타낸 것으로,  음식을 먹고서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며,

다음의 문구는 섭익원만(攝益圓滿) 나타낸 것이니, 정토에는 모든 번뇌를 여의어서 일체의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次有一句,顯無畏圓滿,若處無怨,卽無怖畏.怨謂四魔,此淨土中,諸煩惱魔`薀魔`死魔及以天魔,悉皆無有,是故無畏.次有一句,顯住處圓滿.次有一句,顯路圓滿.此淨佛土,由何路入?謂大乘中,聞`思`修慧.如其次第,大念慧行,爲遊入路.

다음의 문구는 두려움이 없음의 무외원만(無畏圓滿) 나타내는 것이니, 처한 곳에서 원한이 없다면  두려움이 없으니, 원한이란 번뇌마ㆍ온마(蘊魔)ㆍ사마(死魔)ㆍ천마(天魔)의 네 가지 마군인 사마(四魔)를 말하는 것으로,  정토에는 모든 번뇌의 마군(번뇌마)ㆍ5온의 마군(온마)ㆍ죽음의 마군(사마)ㆍ하늘의 마군(천마), 모두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다음의 문구는 머무는 곳의 주처원만(住處圓滿) 나타내고, 

다음의 문구는 길의 노원만(路圓滿) 나타내는 것이니, 이 청정한 불국토는 어떠한 길에 의해서 들어가게 되는가? 

이른바 대승의 들어서 이루는혜(聞慧)ㆍ사유해서 이루는혜(思慧)ㆍ수행해서 이루는혜(修慧)를  순서대로 크게 기억하고 판별하여 수행함으로서 즐겁게 들어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次有一句,顯乘圓滿,乘奢摩他`毘鉢舍那,而遊趣故.次有一句,顯門圓滿,謂此淨土,由何門入?

謂大乘中,大空`無相`無願解脫,爲所入門.

다음의 문구는 교법의 승원만(乘圓滿) 나타내는 것이니, 사마타ㆍ비파사나에 의지해서 즐겁게 나아가기 때문이며,

다음의 문구는 문원만(門圓滿) 나타낸 것이니, 이 정토는 어떠한 문에 의해서 들어가는 것인가? 

이른바 대승의 대공(大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삼해탈문(三解脫門)을 들어가는 문(門)으로 삼는 것이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삼해탈문(三解脫門)의 해탈에 들어가는 문이 되는 세 가지 선정이다.

공해탈문은 보특가라(人)와 법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조하는 것이며,

무상해탈문은 차별상을 떠나는 것이고,

무원해탈문은 원하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次有一句,顯依持圓滿,如大地等,依風輪住.此淨佛土,何所依持?無量功德,衆所莊嚴,大紅蓮華之所建立.

다음의 문구는 의지원만(依持圓滿) 나타낸 것으로, 대지(大地) 등이 풍륜(風輪)에 의지해서 머무는 것과 같이, 

 청정한 불국토는 어떠한 곳 의지하는가? 

무량한 공덕으로 장엄한 곳, 뛰어난 보배 연꽃의 대홍련화(大紅蓮華)로 건립된 곳이다.

 

대(大)는 뛰어남의 승(勝)의 뜻이고, 보배꽃 중의 왕인 대보화왕(大寶華王)은 붉은 연꽃을 가리키며, 중(衆)은  연꽃잎이 많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첫째로 깨달음의 경지ㆍ원각(圓覺)ㆍ진여ㆍ원성실성의 뛰어나고 미묘한 공덕으로,

그러한 경지는 연꽃과 같은 보살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상징한다.

 

受用如是淸淨佛土,一向淨妙者,謂淨土中,無有不淨糞穢等事.一向安樂者,謂淨土中,唯有樂受,無有苦受`無無記受.一向無罪者,謂淨土中,無有不善,亦無無記.一向自在者,謂淨土中,不待外緣,一切所欲,隨自心故.

‘이와 같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함에는 한결같이 청정하고 미묘한 일향정묘(一向淨妙)’란, 정토 중에는 부정하고 더러움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한결같이 안락한 일향안락(一向安樂)’이란, 정토에는 오직 즐거운 감수작용의 낙수(樂受)만이 있을 뿐, 괴로운 감수작용의 고수(苦受)가 없으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작용의 무기수(無記受)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한결같이 죄가 없다는 일향무죄(一向無罪)’란, 정토에는 불선(不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기(無記) 역시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한결같이 자재한 일향자재(一向自在)’란, 정토에는 외부 조건의 외연(外緣)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바의 모두가 자기 마음에 따르기 때문이다.


▶論曰:復次應知,如是諸佛法界,於一切時,能作五業:一者救濟一切有情災撗爲業,於暫見時,便能救濟盲聾狂等,諸災橫故;二者救濟惡趣爲業,拔諸有情,出不善處,置善處故;三者救濟非方便爲業,令諸外道,捨非方便,求解脫行,置於如來聖教中故;四者救濟薩迦耶爲業,授與能超三界道故;五者救濟乘爲業,拯拔欲趣餘乘菩薩,及不定種性諸聲聞等,安處令修大乘行故.於此五業,應知諸佛業用平等.此中有頌:

▷논문;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법계는 일체시에 다섯 가지의 오업(五業)을 지으니,

첫째는 모든 유정의 재난을 구제함을 업으로 삼는 것이니, 잠깐만 볼지라도 능히 장님ㆍ귀먹은 이ㆍ미친  등의 모든 재난을 구제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살기 괴로운 세계의 악취(惡趣)를 구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니, 모든 유정을 빼내어 불선의 장소에서 나오게 하여서 선한 선처(善處) 두기 때문이며,

셋째는 방편이 아닌 비방편(非方便) 구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모든 외도로 하여금 방편이 아닌 것을 버리고 해탈의 행을 구하도록 하여서,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인 여래성교(如來聖教) 안에 두기 때문이며,

넷째는 살가야(薩迦耶, 유신견)을 구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능히 삼계를 벗어나는 도(道)를 주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교법을 구제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다른 교법에 나아가려는 보살과 부정종성(不定種性)의 성문들을 빼내어서 안전하게 대승의 행을 닦는 곳에 두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의 오업(五業)에 있어서 모든 부처님의 작용인 불업용(佛業用)은 평등한 것이라고 알아야 하나니, 이러함에 게송이 있다.


“因依事性行, 別故許業異, 世閒此力別, 無故非導師.”

원인(因)ㆍ의지신(依止身)ㆍ사업(事)ㆍ품성(性)ㆍ행(行)이 다르기 때문에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를 인정한다네.

세간에는 이러한 힘의 차이가 있으나, 스승(부처님)에게는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이라네.

ㅡ이해하지 어려운 문장으로써, 급다(笈多)ㆍ행구(行矩) 역본인 수본(隋本)에는세간에는 이런 차이가 있지만 스승에게는 그런 차이가 없네’로 되어 있다. 스승, 도사(導師), 부처님에게는 업의 차이가 없이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釋曰:應知如是諸佛法界,於一切時,能作五業者,謂佛法身,恒作五業.救濟一切有情災橫,爲業等者,謂盲聾等暫見佛時,便得眼等.救濟惡趣.爲業等者,謂拔惡處,置於善處,名救惡趣.救濟薩迦耶,爲業等者,謂爲世閒,說能超出三界聖道,卽說三界,爲薩迦耶.所餘二句,其義可知.於此五業,應知諸佛諸業平等,

▷해석한다; 마땅히 알지니,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의법계(佛法界)는 어느 때나 항상 다섯 가지의 오업(五業)을 짓는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신은 항상 다섯 가지의 오업(五業)을 짓는 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유정의 재난을 구제함을 업으로 삼는다’이란, 장님이나 귀먹은  등이 잠깐이라도 부처님을 친견한다면, 장님은 눈을 뜨게 되고, 귀먹은 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며, 

‘살기 괴로운 세계의 악취(惡趣)를 구제함을 업으로 삼는다’ 는 것은, 이른바 살기 괴로운 악취에서 구해내어 살기 좋은 곳에 두는 것을 ‘살기 괴로운 세계를 구제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살가야(薩迦耶, 유신견)를 구제함을 업으로 삼는다’ 는 것은, 세간을 위해서 능히 삼계를 벗어나는 성스러운 성도(聖道) 설하는 것이니, 곧 삼계를 유신견이라 말하는 것으로, 즉 유신견에 의지해서 삼계에 계박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문구는  의미를   있을 것이니, 이 다섯 가지의 오업에 있어서 모든 부처님의 업은 평등하다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於此義中,復說一頌.謂因依等,由是因緣,一切如來,諸業平等,一切世閒,業不平等,以一伽他,摠略顯示世閒因別.故許業異者,謂諸世閒,由別因故,生那落迦,別因生天,別因生人,乃至餓鬼,由因別故,許業有異.

이러한 의미 가운데에서 다시  게송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원인(因)ㆍ의지신(依止身)’ 등이니, 이러한 인연에 의거해서 모든 여래의 업은 평등하고, 일체 세간의 업은 불평등한 것이다. 

하나의 게송으로써 총체적으로 간략히 세간의 원인을 나타내었으니,

‘다르기 때문에 업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란, 

모든 세간은 원인의 차별인 인별(因別)에 의해서 지옥에 태어나고, 

원인의 차별인 인별(因別)에 의해서 하늘에 태어나며, 

원인의 차별인 인별(因別)에 의해서 인간이나 아귀에 태어나나니,

원인의 차별인 인별(因別)에 의거함으로써 업에 차이인 업이(業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世閒依別故,許業異者,依謂身體,由依別故,許業有異. 世閒事別故,許業異者,謂諸世閒,商賈事別`營農事別,此等事務,有差別故,許業有異.世閒性別故,許業異者,性謂意趣,意趣別故,許業有異.世閒行別故,許業異者,由作行業,有差別故,許業有異.諸佛作業,皆無功用,一切因等,差別力無,是故導師,非有業異.

‘세간에 의지신(依止身)이 다르기 때문에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를 인정한다’는 것에서,

의(依)는 신체를 말하는 것으로, 의지신이 다르기 때문에 업에 차이인 업이(業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세간의 사업이 다른 세간사별(世閒事別)이기 때문에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세간에는 상업의 상고(商賈)의 차이, 농업을 경영하는 일의 차이 등, 이러한 사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업에 차이인 업이(業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세간의 품성인 세간성(世間性)이 다르기 때문에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를 인정한다’는 것에서,

여기서 품성(性)은 취향의 의취(意趣)를 말하며, 취향의 의취(意趣)가 다르기 때문에 업에 차이인 업이(業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세간의 행이 다르기 때문에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른바 행동하는 업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업에 차이인 업이(業異)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작업은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무공용(無功用)이고, 모든 원인 등의 차별력(差別力)이 없으므로, 따라서 스승(부처님)에게는 업의 차이인 업이(業異)가 없는 것이다.


▶論曰:若此功德,圓滿相應,諸佛法身,不與聲聞`獨覺乘共,以何意趣,佛說一乘?此中有二頌:

▷논문; 만약 이러한 공덕의 원만과 상응한다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성문승ㆍ독각승과 공통되지 않으니, 어떤 취지에 의해서 부처님께서 일승(一乘)을 말씀하신 것인가? 여기에  게송이 있으니, 


“爲引攝一類, 及任持所餘, 由不定種性, 諸佛說一乘.

 부류를 이끌어 내어 섭수하고, 나머지를 맡아 지니기 위함이니

부정종성(不定種性)으로 인하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승을 말씀하셨네.


法無我解脫, 等故性不同, 得二意樂化, 究竟說一乘.”

법ㆍ무아ㆍ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이고, 종성이 같지 않으며, 두 가지 의욕을 얻음과 화현과

구경(究竟)인 까닭에 일승을 말씀하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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