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제3  6

 

[게송; 無始時來界 一切法等依, 由此有諸趣 及涅槃證得。

아득한 옛적부터 있어온 계(界, 인因)이니, 

제법에 대하여 평등하게 의지처인 의(依, 연緣)가 되며, 

이것(識)이 있음으로 해서 모든 윤회세계인 제취(諸趣)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或諸趣言通能所趣。諸趣資具,亦得趣名。諸惑、業、生,皆依此識。是與流轉,作依持用。

혹은 ‘모든 윤회세계인 제취(諸趣)’란, 윤회하게 만드는 것과 윤회하는 것에 공통되며,

모든 윤회세계인 제취(諸趣)의 필요한 자구(資具, 기세간ㆍ미혹ㆍ업)도 역시 제취(諸趣)라고 이름하며, 

모든 혹(惑, 미혹)ㆍ업(業)ㆍ생(生)은 모두 이 식(識)에 의지하며,

이것은 미혹ㆍ업(業)ㆍ괴로움의 과보인 고과(苦果)인 유전(流轉)의 의지처 작용을 하는 것이다.


及涅槃證得者,由有此識故,有涅槃證得。謂由有此第八識故,執持一切順還滅法,令修行者證得涅槃。

위 게송에서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은 이 식이 있음으로 인하여 열반을 증득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제8식이 있음으로 인하여 환멸(還滅)에 수순하는 제법을 지녀서 수행자로 하여금 열반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다.

 

환멸법(還滅法), 무루종자의 체(體)를 가리키며, 환멸은 무루(無漏)의 멸제ㆍ도제이며,

여기에서의 환(還)은 취향(趣向)의 뜻으로서, 도(道)로 인해서 열반에 나아가기 때문에, 또는 허망한 망(妄)을 버리고 진여에 돌아가기 때문에 환(還)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此中但說能證得道。涅槃不依此識有故。或此但說所證涅槃。是修行者正所求故。

여기에서는 다만 능히 증득하게 하는 도(道)만을 말한 것으로, 열반은 식(識)에 의지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혹은 다만 증득된 열반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 것으로, 이것은 바로 수행자가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或此雙說涅槃與道。俱是還滅品類攝故。謂涅槃言顯所證滅。後證得言,顯能得道。由能斷道,斷所斷惑,究竟盡位,證得涅槃。能所斷證皆依此識。是與還滅,作依持用。

혹은 열반과 도(道)를 함께 쌍(雙)으로 말하는 것이기도 한 것으로, 모두 환멸의 품류(品類)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열반이라는 것은 증득된 적멸을 나타내는 것으로, 위 게송의 뒷부분의 ‘증득’이라는 말은 증득의 주체인 도(道)를 가리키는 것이다. 

단(斷)의 주체인 도(道)에 의해 단(斷)의 대상인 미혹을 끊어서 궁극적으로 다해 마치는 지위에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니,

단(斷)의 주체와 단(斷)의 대상, 증득의 주체와 증득의 대상은 모두 이 식에 의지하는 것이니,  

이것은 환멸(還滅)의 의지처가 되는 작용인 것이다.


又此頌中初句,顯示此識自性無始恒有。後三顯與雜染、淸淨二法,摠、別爲所依止。雜染法者謂苦、集諦,卽所能趣生及業、惑。

또한 위 게송 중에서 첫 구절인 '무시시래계(無始時來界)'는 이 식의 자성이 아득한 무시(無始)로부터 항상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뒷부분의 세 구절인 '일체법등의 유차유제취 급열반증득(一切法等依, 由此有諸趣 及涅槃證得)'은 잡염법ㆍ청정법에 대해 총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의지처가 되는 것을 나타내며,

잡염법이라는 것은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를 말하는 것으로, 곧 윤회하는 것인 태어남의 생(生)과, 윤회하게 만드는 것인 혹(惑, 미혹)ㆍ업(業)이다.


淸淨法者,謂滅、道諦卽所能證涅槃及道。彼二皆依此識而有。依轉識等,理不成故。

청정법(淸淨法)이라는 것은 도성제와 멸성제를 말하는 것으로, 곧 증득되는 열반과 능히 증득하게 하는 도(道)이며, 그 두 가지는 모두 이 식에 의지해서 있는 것으로,

그 둘이 전식 등에 의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或復初句,顯此識體無始相續,後三顯與三種自性爲所依止。謂依他起、遍計所執、圓成實性。如次應知。今此頌中諸所說義,離第八識皆不得有。卽彼經中復作是說:

혹은 다시 위 게송의 첫 구절인 '무시시래계(無始時來界)'는 이 식 자체가 아득한 옛부터 상속함을 나타내며,

다음의 세 구절인 '일체법등의 유차유제취 급열반증득(一切法等依, 由此有諸趣 及涅槃證得)'은 세 가지 자성의 의지처가 됨을 나타내는 것으로,  

제2구인 '일체법등의(一切法等依)'는 의타기성이고,

제3구인 '유차유제취(由此有諸趣)'는 변계소집성이며,

제4구인 '급열반증득(及涅槃證得)'는 원성실성이니, 마땅히 순서대로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위의 게송에서 말한 모든 뜻은 제8식을 떠나서는 모두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그 경전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3성(三性)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 일체 존재, 즉 우주 전체 및 우주의 모든 개별 존재의 세 가지 상태 또는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의타기성(依他起性) · 원성실성(圓成實性)을 말하며, 

①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āva)는 "두루 계탁(計度)하여 집착하는 성질"이며, 영어로는 "fully conceptualized (완전히 개념화되다)" 또는 "imaginary nature (상상성 · 가상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허망한 상태를 말하며, 
②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āva)는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성질"이며, 영어로는 "other dependent (다른 것에 의존하는)" 또는 "dependent nature (의존성)"라고 번역되며, 연기(緣起)의 성질을 말한다.
③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ṣpanna-svabhāva)는 "원만히 성취한 실재하는 성질"이며, 영어로는 "fully accomplished (완전히 성취하다)" 또는 "absolute nature (절대성)"라고 번역되며, 존재의 진실한 상태를 말한다.ㅡ 위키


由攝藏諸法 一切種子識, 故名阿賴耶 勝者我開示。

제법을 거두어 저장함은 일체종자식에 의한 것이니, 그러므로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라.

나는 승리자에게만 열어 보인다. ㅡ 번째 교증(敎證)으로서 다시 '대승아비달마경'을 인용한 것이다.

 

由此本識具諸種子故,能攝藏諸雜染法。依斯建立阿賴耶名。非如勝性轉爲大等。

이 근본식이 모든 종자를 갖추기 때문에 능히 ‘모든 잡염법을 거두어 저장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에 의거해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하는 것이다.

수론파(數論派)에서 주장하는 뛰어난 자성(自性) 즉, 쁘라끄리띠(prakṛti, 근본자성)이 전변하여 지성(知性, 大) 등이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 


種子與果體非一故,能依、所依俱生滅故。與雜染法互相攝藏,亦爲有情執藏爲我故,說此識名阿賴耶。

아뢰야식의 종자와 제법의 결과라는 자체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며,

의지하는 것의 능의(能依, 제법)과 의지처인 소의(所依, 제 8식)가 함께 생멸하기 때문이며,

잡염법을 서로 거두어 저장하고, 역시 유정(제 7식)이 집착하여서 자아로 삼기 때문에 이 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已入見道諸菩薩衆,得眞現觀名爲勝者。彼能證解阿賴耶識故,我世尊正爲開示。

이미 견도(見道)에 들어간 모든 보살은 참다운 현관인 진리관(眞理觀)을 얻었으므로 ‘승자(勝者)’라 이름하며, 그는 능히 아뢰야식을 뛰어나게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 세존께서 바로 열어 보이시는 것이다.

 

참다운 현관인 진리관(眞理觀)은 일심진견도(一心眞見道)에서 진여 도리의 일부분을 현현하여 관찰할 수 있다.


或諸菩薩皆名勝者。雖見道前未能證解阿賴耶識,而能信解求彼轉依故,亦爲說。非諸轉識有如是義。解深密經亦作是說:

혹은 지전(地前)과 지상(地上)의 모든 보살을 한결같이 승자(勝者)라고 이름하나니, 견도 이전에는 아직 아뢰야식을 잘 알 수 없지만, 능히 믿고 이해해서 그것(제 8식)이 열반과 보리의 두 가지 승묘한 과(果)로 전의(轉依)하는 것을 구하기 때문에 역시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모든 전식(轉識)에 이와 같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해심밀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 등 대승불교에서는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 · 말나식의 7식(七識)은 모두 제8식인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긴 것 또는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하여, 이들을 통칭하여 7전식(七轉識) 또는 전식(轉識)이라 부른다. 또한 이들 7가지 식들을 전7식(前七識)이라고도 한다.
한편, 미륵 → 무착 → 세친 → 덕혜(德慧, Gunamati: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 안혜(安慧, Sthiramati: 475~555 또는 510~570) → 진제(眞諦: 499~569)의 섭론종으로 이어진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의 논서들에서 전식(轉識)은 제7 말나식을 제외한 전6식(前六識)만을 의미한다. ㅡ 위키


阿陁那識甚深細 一切種子如瀑流, 我於凡愚不開演 恐彼分別執爲我。

아타나식(阿陁那識)은 매우 심오하고 미세하며, 

일체종자식은 폭류(暴流)와 같으니,

나는 범부와 소승에게는 열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분별하고 집착해서 자아로 삼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ㅡ 번째의 교증(敎證)으로서 '해심밀경'을 인용한다.

 

以能執持諸法種子,及能執受色根、依處,亦能執取結生、相續故,說此識名阿陁那。無性有情不能窮底,故說甚深。趣寂種性不能通達,故名甚細。是一切法眞實種子。緣擊便生轉識波浪,恒無閒斷猶如瀑流。

능히 제법의 종자를 집지(執持)하고, 색근(色根, 승의근)과 의처(依處, 부진근)을 집수(執受)하며,

또한 능히 결생(結生)과 상속을 집취(執取)하기 때문에 ‘아타나식(阿陀那識, ādāna-vijńāna), 즉 집지식(執持識)’이라고 이름하나, 무성유정(無姓有情)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심오하다’고 말하며,

결정성(決定性)의 2승(乘)인 취적종성(趣寂種姓)은 통달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미세하다’고 말하나니, 이것은 제법의 참다운 종자이며, 연(緣)에 격발되어 전식(轉識)의 물결을 일으키며, 항상하여서 중단됨이 없는 것이 폭류와 같은 것이다

 

아타나식(阿陀那識, ādāna-vijñāna)은 아다나식(阿陀那識)이라고 발음하기도 하고 타나식(陀那識)이라고도 하며, 집지식(執持識)이라고 한다.
집지(執持)는 산스크리트어 아다나(ādāna)의 번역어이며, 집지(執持)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붙잡아 유지한다'이며, 아타나식 또는 집지식은 제8식 즉 아뢰야식의 다른 이름으로, 유루 · 무루의 모든 종자와 신체인 색근(色根)을 유지해서 무너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아타나식이라는 명칭은 뢰야3위 가운데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에 관련하여 사용되며, 이 때의 아타나(阿陀那) 즉 집지(執持)는 오로지 순(純)무루의 종자만을 상속 · 유지한다는 뜻이며, 오직 불과(佛果) 즉 여래지(如來地)인 부처의 경지에서만 존재하며, 이러한 무루 · 청정의 뜻에서는 아타나식은 제8식의 다른 명칭인 무구식(無垢識)과 동의어이다.
한편, 구역가(舊譯家)의 입장은 위와 같은 법상종 등의 신역가(新譯家)와 달리, 아타나를 집아(執我: '나'라고 집착한다)의 뜻으로 해석해서 아타나식을 제7말나식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다.- 위키


凡卽無性愚卽趣寂。恐彼於此起分別執,墮諸惡趣,障生聖道故,我世尊不爲開演。唯第八識,有如是相。󰡔入楞伽經󰡕亦作是說:

게송에서 ‘범부의 범(凡)’이라는 것은 무성종성(無性種姓)을 말하며, 

‘어리석은 우(愚)’라고 한 것은 결정성(決定性)의 2승(乘)의 취적종성(趣寂種姓)을 말하는 것이니,

그들은 제 8식에 대하여 분별하고 집착하여서 아집과 법집을 일으켜서, 범부는 여러 악취에 떨어지고, 소승은 생겨나야 할 성도를 장애할것을 염려하셔서, 우리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열어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오직 제 8식에만 이러한 양상이 있는 것이다.

또한 '입능가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 


如海遇風緣 起種種波浪, 現前作用轉 無有閒斷時。

바다가 바람의 연(緣)을 만나 갖가지 파도를 일으키고

현전에서 작용이 전전하여 중단될 때가 없는 것과 같구나.


藏識海亦然 境等風所擊, 恒起諸識浪 現前作用轉。

장식(藏識)의 바다 역시도 그러하나니, 대상 등의 바람에 격발(擊發)되어서

항상 여러 식의 물결을 일으키고 현전에서 작용이 전전하네. 번째 교증으로서 '입능가경(入楞伽經)' 2 

 

제 8식은 그만큼 본질적 성질(自相, 體性)에는 여러 분위(分位) 즉 여러 성격 또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며, 제8식을 칭하는 명칭으로는;
1. 아뢰야식(阿賴耶識) 2. 무몰식(無沒識) 3. 장식(藏識) 또는 택식(宅識) 4. 이숙식(異熟識) 또는 비파가식(毘播迦識)

5. 아타나식(阿陀那識) 또는 집지식(執持識) 6. 심(心) 7. 소지의(所知依)

8. 종자식(種子識) · 일체종식(一切種識) 또는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9. 무구식(無垢識) 또는 아마라식(阿摩羅識) 10. 본식(本識) 11. 초식(初識) 또는 초찰나식(初剎那識)
12. 초능변식(初能變識) 13. 제1식(第一識) 14.식주(識主) ㅡ위키


眼等諸識,無如大海,恒相續轉,起諸識浪。故知別有第八識性。此等無量大乘經中,皆別說有此第八識。

안식 등 여러 전식(轉識)은 제 8식의 큰 바다와 같이 항상 상속해서 전전하면서 여러 식의 물결을 일으키는 일이 없으므로 별도로 제8식의 성(性)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니!  

이들 여러 대승경전에서 모두 별도로 제8식의 성(性)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諸大乘經皆順無我,違數取趣。棄背流轉,趣向還滅。讚佛法僧,毀諸外道。表薀等法,遮勝性等。樂大乘者,許能顯示無顚倒理,契經攝故。如增壹等至教量攝。

대승경전은 모두 무아의 도리에 수순하고, 삭취취(數取趣, 보특가라)에 거스르며, 유전(流轉)을 등지고 환멸(還滅)로 나아가며, 불ㆍ법ㆍ승을 찬양하고, 여러 외도를 비판하며,

5온 등의 법을 말하고, 수론(數論)의 전변설에서의 뛰어난 자성 등을 부정하며,

대승을 좋아하는 자는 대승경전이 능히 전도(顚倒)됨이 없는 진리를 나타내 보이는 경전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대승경전, '증일아함경' 등과 같이 지극한 가르침에 의하는 인식방법의 지교량(至敎量)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보특가라(補特加羅, pudgala)는 구역에서는 인(人) 또는 중생으로, 신역에서는 삭취취(數取趣)로 번역된다. 유정이 거듭거듭 5취(趣)에 취착(取着)해서 윤회하기 때문에 유정 또는 유정의 자아를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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