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涅槃如化品 第八十七卷 第九十六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87. 열반여화품(涅槃如化品)을 풀이함 3
須菩提復問:“世尊!是諸聖人煩惱斷,所謂須陁洹果乃至阿羅漢果、辟支佛道、斷一切煩惱習 是諸斷皆如化不?”
須菩提意:有爲法虛誑故如變化,無爲法眞實無作故不應是化,是故問。
수보리 존자가 또 여쭈었으니, “세존이시여, 이 모든 성인으로서 번뇌가 끊어진, 이른바 수다원의 과 내지는 아라한의 과와 벽지불의 도로써 일체의 번뇌와 습기가 끊어진 분들의 이 모든 끊어진 단(斷) 역시도 모두 변화와 같은 여화(如化)입니까?”라고 하였으니,
곧, 수보리 존자는 ‘유위법은 거짓이기 때문에 변화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위법은 진실이요 조작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변화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에 여쭌 것이다.
佛答:“一切法若生若滅皆如化。”何以故?本無今有、今有後無,誑惑人心故。
佛意:一切從因緣生法皆無自性,無自性故畢竟空,畢竟空故皆如化。
須菩提求諸法實相,意猶未息,故問佛:“何等法不如化?”
須菩提意謂:有一決定實法不如化,可依是法而精進求。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일체법은 나는 생(生)이나 없어지는 멸(滅), 모두가 변화와 같으니라”고 하셨다.
왜냐 하면, 본래는 없었다가 지금은 있게 된 것이고, 지금은 있는 것이나 나중에는 없어지기도 하여서 사람들이 정신 차리지 못하게 광혹(誑惑)시키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 뜻하신 바는, ‘일체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법이라서, 모두가 무자성(無自性)이고,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에 필경공(畢竟空)이며,
필경공이기 때문에 모두가 변화한 것과 같은 여화(如化)이다’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제법의 실상을 구하려는 뜻을 오히려 쉬지 않은 까닭에 부처님께 여쭈기를 “어떠한 법이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입니까?”라고 하였으니,
수보리 존자의 뜻은 ‘어떤 하나의 결정된 진실의 일경정실법(一決定實法)으로서 변화와 같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 법에 의지하여 정진하면서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이었다.
佛答:“有。若法無生無滅,卽是非化。”
何者是?所謂無誑相涅槃。是法無生故無滅,無滅故不能令人生憂。
佛分別一切有爲法畢竟空皆如化,唯有涅槃一法非如化。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만약 어떤 법으로서 나는것도 없는 무생(無生)이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무멸(無滅)이라면, 그것은 곧 변화가 아닌 불여화(不如化)이니라”고 하셨으니,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거짓으로 속이는 상이 없는 무광상(無誑相)의 열반이니, 이 법은 생함이 없는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무멸(無滅)이며, 무멸(無滅)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근심하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유위법은 필경공이라서 모두가 변화와 같은 여화(如化)이지만,
오직 열반이라는 이 하나의 법만이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이다’라고 분별하여 주신 것이다.
爾時,須菩提白佛:“如佛說:‘平等法,非佛所作,非聲聞、辟支佛所作,有佛、無佛諸法常住性空相。’性空相卽是涅槃。”
須菩提意謂:深入般若波羅蜜中,涅槃亦空,上品中處處說;今佛何以說:“唯一涅槃不如化?”
是故引佛語爲難:“諸法實相,性空法常住,諸佛但爲人演說。性空者,卽是涅槃。
今何以於生滅法中別說無誑相涅槃不如化?”
그 때에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등법(平等法)은 부처님께서 만든 것도 아니고 성문이나 벽지불이 만든 것이 아닌 것으로,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제법은 항상 머물러 있어서 성품이 공한 상주성공(常住性空)의 상(相)이며, 그 성품이 공한 성공상(性空相)이 곧 열반(涅槃)입니다”고 하였으니,
수보리 존자의 뜻은, ‘반야바라밀에 깊이 들어가면 열반 또한 공하다는 것을 앞품의 곳곳에서 말씀하셨거늘,
지금은 부처님께서 무엇 때문에 오직 이 하나의 열반(涅槃)만이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라고 하시는 것일까?’라고 생각한 것이었으니,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따진 것이니, 곧 “제법의 실상은 성품이 공한 성공법(性空法)이고, 그 법은 항상 머물러 상주(常住)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연설하신 것일 뿐입니다.
성품이 공하다는 성공(性空)이 곧 열반(涅槃)이거늘, 나고 없어지는 생멸법(生滅法)에서 따로 ‘거짓으로 속이는 상이 없는 무광상(無誑相)의 열반이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이다’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한 것이다.
佛答:“諸法平等常住,非賢聖所作。若新學菩薩聞則恐怖,是故分別說:生滅者如化,不生滅者不如化。”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제법은 평등하여 항상 머물러 있는 평등상주(平等常住)이니, 성현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새로 배우는 신학 보살들이 이러한 말을 들으면 곧 두려움을 낼 것이기 때문에 분별하여서 ‘나고 없어지는 생멸(生滅)은 변화와 같은 여화(如化)이지만, 나고 없어지지 않는 불생멸(不生滅)은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이다'라고 하느니라”고 하셨다.
問曰:唯佛一人是無誑人,一切人皆於佛所欲求實事,今佛何以說一切法都空、或說不都空?
묻나니,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은 거짓으로 속임이 없는 무광인(無誑人)이시므로, 일체의 모든 사람들 모두는 부처님에게서 진실한 실사(實事)를 구하고자 하거늘,
지금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일체법은 모두가 공한 도공(都空)이다”고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모두 공하지 않은 불도공(不都空)이다”고 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佛此中自說因緣:“爲新發意菩薩故,說涅槃不如化。”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이 가운데에서 친히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새로이 뜻을 낸 신발의(新發意) 보살들을 위하는 까닭에 ‘열반은 변화와 같지 않은 불여화(不如化)이다’고 말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問曰:可爲人故轉諸法相耶?
묻나니, 사람들을 위해서는 제법의 법상(法相)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此中佛說“諸法相者性空”,性空云何可轉?
佛初得是諸法實相時,心但趣向涅槃寂滅。是時,十方諸佛、諸天請佛莫入涅槃:“一切衆生苦惱,當度脫之!”
佛卽受請,佛但爲度衆生故住。以是故,知有可利益衆生,隨事爲說。
답하나니,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법의 법상(法相)이란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다.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거늘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 처음에 이 제법의 실상을 얻었을 때, 그 마음은 다만 열반의 고요히 사라진 적멸(寂滅)한 곳으로만 향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하늘들이 부처님께 청하기를, “열반에 들지 마시고 이 일체 중생들을 고뇌에서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셔야만 합니다”고 한 것이며,
부처님께서도 곧 그러한 청을 받아들이셨으니, 부처님께서는 다만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머물렀을 뿐이시니,
그러므로 이롭게 할 중생이 있기만 하면 그에 따라서 그를 위한 법을 설한 것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觀諸有爲法虛誑故,涅槃爲實、不變不異。有新發意菩薩著是涅槃,因是著起諸煩惱;
爲斷是著故,說涅槃如化。若無著心,是時則說涅槃非如化。
復次,有二道:小乘道、大乘道。小乘論議,以涅槃爲實;大乘論議,以利智慧深入故,觀色等諸法皆如涅槃。
是故二說無咎。
모든 유위법은 허망하고 거짓된 허광(虛誑)이라고 관찰한 까닭에, 이 열반은 진실한 것으로써 변하지도 않고 달라지지도 않지만,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이 이 열반에 집착한다면 이 집착으로 인하여 모든 번뇌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집착을 끊게 하기 위하여 “열반은 변화와 같은 여화(如化)이다”고 말씀하신 것이요,
만약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곧 “열반은 변화와 같은 것이 아닌 불여화(不如化)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다시 두 가지의 도가 있으니, 소승의 소승도(小乘道)와 대승도(大乘道)가 그것이다.
소승의 논의(論議)에서는 열반으로 진실로 삼지만, 대승의 논의에서는 예리한 지혜로써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물질(色) 등의 제법은 모두가 열반과 같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두 가지의 설명에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須菩提復問:“云何教化新發意菩薩,令知平等性空?”
須菩提意謂:性空是凡夫人大怖畏處,聞性空無所有,如臨深坑。
何以故?一切未得道者,我心深著故,怖畏空法,作是念:“佛教人勤修善行,終歸入無所有中!”
수보리 존자가 또 여쭈기를 “어떻게 새로 뜻을 낸 신발의 보살을 교화하여서 그로 하여금 평등하고 성품이 공한 평등성공(平等性空)을 알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수보리 존자의 생각으로는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은 범부들이 크게 두려워할 만한 곳이며,
성품이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성공무소유(性空無所有)라는 말을 듣게 되면 마치 깊은 구덩이에 목전하여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니, 왜냐 하면, 아직 도를 얻지 못한 모든 이들은 '나'라는 아심(我心)에 깊이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공하다는 공법(空法)을 두려워하면서 생각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착한 선행을 부지런히 닦도록 가르치면서도, 끝내는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로 돌아가게 하는 구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다.
以是故,須菩提問:“以何方便教誨是新發意者?”
佛答:“諸法先有今無耶?”佛意:以新發意者怖畏後當無故,說:“諸法先有今無耶?”
이러한 때문에 수보리 존자가 여쭈기를 “어떠한 방편으로써 새로 발심한 신발의자(新發意者)들을 가르야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답하시기를 “제법이 앞에서는 있다가 지금은 없는 것이던가?”고 하셨으니,
부처님의 뜻은, 새로 뜻을 낸 이들은 나중에는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제법이 앞에서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인가?”라고 하신 것이다.
須菩提自了了知諸法先自無、今亦無,但以新發意者我見心覆故生驚怖;爲除顚倒,令得實見,竟無所失;
知諸煩惱顚倒實相,所謂性空,是時則無恐怖。如是等法,應教新發意者:若諸法先有,以行道故無,應當恐怖;
初自無故,不應恐怖,但爲除顚倒耳。
수보리 존자가 스스로 ‘제법은 앞에서도 스스로 없는 선자무(先自無)이었고, 지금도 없는 금역무(今亦無)이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다만 새로이 뜻을 낸 이들이 나라는 소견의 아견(我見)으로 마음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뒤바뀜을 없애 주면서 진실한 소견을 얻게 하는 것이니,
필경에 잃는 것도 없으면서 모든 번뇌와 뒤바뀜의 실상, 즉 성품이 공한 성공(性空)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곧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므로 이와 같은 등의 법으로써 새로이 발심한 이들에게 가르치기를
“만약 제법이 앞에서는 있었다가 도를 행한 까닭에 없어지는 것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겠지만,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나니, 다만 뒤바뀜을 제거하면 될 뿐이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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