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同學品 第六十二 卷七十五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삼장법사 구마라집 소역
62. 동학품(同學品)을 풀이함 4
問曰:心中懷恨,云何可滅?
묻나니, 마음속에 한을 품었다면 어떻게 없애야 하는 것입니까?
答曰:破瞋因緣,如經說。阿難知一切衆生屬業因緣,不得自在,無能救者,心懷怖畏,問佛:“菩薩共住云何?云何用心恭敬?”
佛答:“供養恭敬,當如視佛。”是未來佛故。
답하나니, 성냄의 진(瞋)을 파괴하는 인연은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며,
아난 존자는 모든 중생들이 업의 인연에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고 구제할 수 있는 이도 없음에 마음으로 두려움을 품고 있는 것을 알므로 부처님께 여쭈기를 “보살들이 함께 머물러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라고 하였으니, 곧 어떻게 마음으로 부처님을 공경해야 되는가를 여쭌 것이며,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공양하고 공경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을 보듯 해야 하나니, 그도 바로 미래의 부처님이기 때문이다”고 하셨으며,
此中佛自說因緣:“菩薩共住,應作是念:‘是我眞伴,俱到佛道,共乘一船。’”
'船'者,六波羅蜜;三界、三漏爲水;彼岸是佛道。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 직접 그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보살들과 같이 살면 마땅히 생각하기를 ‘그는 바로 나의 참된 도반(道伴)으로서 모두가 부처님의 불도에 이르기 위하여 같이 한 배를 탄 이다’고 해야 하느니라”고 하셨으니,
‘선(船, 배)’는 6바라밀이요, 삼계의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의 세 가지 번뇌인 삼루(三漏)를 물로 삼으며, 저 언덕의 피안(彼岸)은 바로 부처님 불도이며,
'彼所學者,我亦應學' 學者,所謂六波羅蜜等,同戒、同見、同道。如白衣兄弟,不應共鬪;我是同法兄弟,亦不應共諍。
若是菩薩雜行、離薩婆若心,我不應如是學。何以故?勝事應從他學,惡事應捨。菩薩若作是學,輕慢、瞋恨事皆滅,是則名菩薩同學。
‘그들이 배운 바를 나 또한 배워야 한다는 피소학자(彼所學者) 아역응학(我亦應學)’ 에서,
'배움의 학(學)'이란 이른바 육바라밀 등에서 계율을 같이하는 동계(同戒), 소견을 같이하는 동견(同見), 도를 같이하는 동도(同道)를 말하는 것이며, 마치 속인들이 형제끼리 서로 다투지 않아야 하듯, 우리도 법을 같이하는 형제이니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보살이 잡다한 잡행(雜行)으로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었을 때에는 그러함을 따라 배워서는 안되나니,
왜냐하면 훌륭한 일은 다른 이로부터 배워야 하지만, 나쁜 악사라면 마땅히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만약 이렇게 배운다면 업신여기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모두 소멸하리니,
이것을 바로 보살의 동학(同學)이라 하는 것이다.
▶經. 須菩提白佛言:“世尊!何等是菩薩摩訶薩等法,菩薩所應學?”
“須菩提!內空是菩薩等法,外空乃至自相空是菩薩等法。
須菩提!色、色相空、受想行識、識相空,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阿耨多羅三藐三菩提相空。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等法。住是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배워야 할 평등한 등법(等法)인지요?”
“수보리야, 육내입처(六內入處)가 공한 내공(內空)이 바로 보살의 평등한 등법이요
육외입처가 공한 외공(外空) 내지는 자상공(自相空)이 바로 보살의 평등한 등법이니라.
수보리야, 물질은 물질(色)의 색상(色相) 공하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상(相)이 공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상(相)이 공하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의 평등한 등법(等法)이라 하며
이 평등한 등법(等法)에 머무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若菩薩摩訶薩爲色盡故學,爲學薩婆若?爲色離故學、爲色滅故學,爲學薩婆若?爲色不生故學,爲學薩婆若?受、想、行、識亦如是。修行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盡、離、滅、不生故學,爲學薩婆若?”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마하살이 물질(色)이 다하는 진(盡)이기 때문에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요,
물질(色)이 여의는 이(離)이기 때문에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며,
물질(色)이 소멸하는 멸(滅)이기 때문에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요,
물질(色)이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니,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그와 같으며,
사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이 다하는 진(盡)이고, 여의는 이(離)이고, 소멸하는 멸(滅)이고,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수행하여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입니다.”
佛告須菩提:“如須菩提所說,爲色盡、離、滅、不生故學,爲學薩婆若;受、想、行、識乃至十八不共法盡、離、滅、不生故學,爲學薩婆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가 말한 바와 같이 물질(色)이 다하는 진(盡)이고, 여의는 이(離)이고, 소멸하는 멸(滅)이고,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며, 수상행식(受想行識) 내지는 18불공법이 다하는 진(盡)이고, 여의는 이(離)이고, 소멸하는 멸(滅)이고, 나지 않는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니라.”
佛告須菩提:“於汝意云何?色如,受、想、行、識如,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佛如,是諸如盡、滅、斷不?”
須菩提言:“不也!世尊!”
이어서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色)의 여(如)와 수상행식(受想行識) 의 여(如),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여(如)와 부처님의 여(如)와 이 모든 여(如)는 다하는 진(盡)이고, 소멸하는 멸(滅)이고, 끊어지는 단(斷)이던가?”
수보리가 답하여,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如,爲學薩婆若。是如,不作證、不滅、不斷。
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如,爲學薩婆若。須菩提!菩薩摩訶薩如是學,爲學六波羅蜜,爲學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若學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爲學薩婆若。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여(如)를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니, 이 여(如)는 증득하지 않는 불작증(不作證)이고, 소멸하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며 끊어지지도 않는 불단(不斷)이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여(如)를 배우면 살바야를 배우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6바라밀을 배우는 것이요, 사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을 배우는 것이니,
만약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를 배우면 살바야(薩婆若)를 배우는 것이니라.
須菩提!如是學,爲盡諸學邊。如是學,魔、若魔天所不能壞;如是學,直到阿鞞跋致地;如是學,爲學佛所行道;如是學,爲得擁護,爲學大慈大悲,爲學淨佛世界、成就衆生。
須菩提!如是學,爲學三轉十二行法輪轉故;如是學,爲學度衆生;如是學,爲學不斷佛種;如是學,爲學開甘露門;如是學,爲學欲示無爲性。
수보리야, 이와 같이 배우면 모든 배움의 제학(諸學)의 끝을 다하는 것이요
이와 같이 배우면 악마나 악마의 하늘이 파괴할 수 없는 바이며,
이와 같이 배우면 곧장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요,
이와 같이 배우면 부처님이 행할 바의 도(道)를 배우는 것이며,
이와 같이 배우면 지켜주는 옹호(擁護)를 얻을 것이요,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배우는 것이며, 부처님의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와 같이 배우면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의 삼전(三轉)과 12행(十二行)을 배우는 것이니, 법륜(法輪)을 굴리게 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배우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요, 이와 같이 배우면 부처님의 불종(佛種)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이와 같이 배우면 감로문(甘露門)을 여는 것을 배우는 것이요, 이와 같이 배우면 무위성(無爲性)을 보이고자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니라.
●삼전(三轉), 삼전법륜(三轉法輪),석존께서 3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에 의해 4제(諦)의 가르침을 설하신 것으로, 시전(示轉)·권전(勸轉)·증전(證轉)이며, 석존께서 세 번 4제(諦)의 교(敎)를 말씀한 것.
(1) 시전(示轉, 시상전示相轉). 이것은 고(苦), 이것은 집(集), 이것은 멸(滅), 이것은 도(道)라고 그 상을 보인 것.
(2) 권전(勸轉, 권수전勸修轉). 고(苦)를 알라, 집(集)을 끊어라, 멸(滅)을 증득하라, 도(道)를 닦으라고 권하신 것.
(3) 증전(證轉, ․ 인증전引證轉). 석존께서 스스로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증득하려고, 도를 닦은 것을 보여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증득케 하신 것.
●십이행(十二行) 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으로 세 번 설하여 12 번이 된 것.
須菩提!下劣之人不能作是學;如是學者,爲欲拔出沈沒生死衆生。
菩薩摩訶薩如是學,終不墮地獄、餓鬼、畜生中,終不生邊地,終不生栴陁羅家;終不聾盲、瘖瘂、拘癖,諸根不缺;眷屬成就,終不孤窮。
菩薩如是學,終不殺生乃至終不邪見;
如是學,不作邪命活,不攝惡人及破戒者。如是學,以方便力故,不生長壽天。
수보리야, 하열(下劣)한 사람은 이러함을 배울 수도 없으니, 이러함을 배우는 것은 생사(生死)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끝내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끝내 변두리의 땅에 태어나지 않으며, 끝내 전다라(旃陀羅, 천민, 백정)의 집에 태어나지 않고, 끝내 귀머거리ㆍ소경ㆍ벙어리나 팔이 굽거나 앉은뱅이가 되지 않으며, 모든 감관에 결함이 있지 않으며, 권속이 성취되어서 끝내 외롭거나 빈궁하게 되지 않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끝내 살생(殺生)하지 않으며, 나아가 끝내 사견(邪見)을 지니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배우면 삿된 생활방법(직업)으로 살아가지 않고, 나쁜 악인이나, 계를 깨뜨린 파계자(破戒者)에게 포섭되지 않으며, 이와 같이 배우면 방편력(方便力)으로 장수천(長壽天)에 나지 않느니라.
장수천(長壽天, 무념천)=불법(佛法)을 듣지 못하는 8난처(難處)의 하나로써, 오래 살고 안온하기 때문에 구도심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비불자, 외도들로써 명상을 수행한 다수가 죽어서 사선천(四禪天)에 왕생하여서 500대 겁(지구에서 6조 4천억 년) 동안 살아야 하며, 거기서 생이 끝나면 일단 지옥으로 곧장 떨어진다고 함.
何等是方便力?如「般若波羅蜜品」中所說。菩薩摩訶薩以方便力故,入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不隨禪、無量、無色定生。須菩提!菩薩如是學,一切法中得淸淨,所謂淨聲聞、辟支佛心。”
어떠한 것이 방편의 힘인가?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蜜品)'에서 설한 바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방편력으로써 사선과 사무량심과 사무색정에 드나,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에 따라 나지 않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일체법 가운데에서 청정함을 얻나니, 이른바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니라.”
須菩提白佛言:“世尊!一切法本性淸淨,云何言菩薩一切法中得淸淨?”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법의 본 성품인 본성(本性)이 청정하거늘 어떻게 보살이 일체법 가운데에서 청정함을 얻는지요?”
佛告須菩提:“如是!如是!一切諸法本性淸淨,若菩薩摩訶薩於是法中心通達、不沒,卽是般若波羅蜜。如是諸法,一切凡夫不知不見。菩薩摩訶薩爲是衆生故,行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行四念處乃至一切種智。
須菩提!菩薩如是學,於一切法中得智力、無所畏;如是學,爲了知一切衆生心所趣向。譬如大地,少所處出金銀珍寶;須菩提!衆生亦如是,少所人能學般若波羅蜜,多墮聲聞、辟支佛地。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제법의 본성(本性)은 청정한 것이니라.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법 가운데에서 마음이 통달하여 침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니라.
이와 같은 제법을 범부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므로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여 단바라밀 내지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사념처 내지는 일체종지를 행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이와 같이 배우면 일체법 가운데에서 지혜의 힘을 얻어 두려움이 없으며, 이와 같이 배우면 일체 중생들의 마음이 향해 나아가는 취향(趣向)하는 바를 분명히 아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넓은 대지(大地)의 약간의 곳에서만 금은의 값진 보물이 나오는 것과 같이, 수보리야, 중생들 또한 그와 같아서 소수의 사람만이 반야바라밀을 배울 수 있을 뿐, 대부분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느니라.
須菩提!譬如少所人受行轉輪聖王業,多受行小王業;如是,
須菩提!少所衆生行般若波羅蜜、求一切智,多行聲聞、辟支佛道。
須菩提!諸菩薩摩訶薩發心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中,少有如說行,多住聲聞、辟支佛地;多有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無方便力故,少所人住阿鞞跋致地。
須菩提!以是故,菩薩摩訶薩欲住阿鞞跋致地、欲在阿鞞跋致數中,應當學是深般若波羅蜜。
수보리야, 비유하자면, 마치 소수의 사람만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업을 받아 행하나, 대부분은 소왕(小王)의 업을 받아 행하는 것과 같이,
수보리야, 약간의 중생만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일체지(一切智)를 구할 뿐, 대부분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느니라.
수보리야, 발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보살마하살 가운데에서 소수의 보살만이 설한 바 그대로를 행할 뿐, 대부분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머무르며,
많은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방편력이 없기 때문에 소수만이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르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르고자 하고 아비발치의 대중에 속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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