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佛

若佛이 是梵行者인댄 爲色是佛耶아 受是佛耶아 想是佛耶아 行是佛耶아 識是佛耶아

爲相是佛耶아 好是佛耶아 神通이 是佛耶아 業行이 是佛耶아 果報가 是佛耶아

 

若佛만약 부처[]是梵行者인댄, 범행이라면 

爲色是佛耶(위색시불야)색=형색이 부처인가,          → 색

()是佛耶수(감정등을 받아들이는 것)가 부처인가,→ 수

想是佛耶상(생각하는 것)이 부처인가,                    → 상

行是佛耶생각이 계속 지어가는 것이 부처인가,   → 행

()是佛耶이 부처인가,                                → 식

爲相(위상)是佛耶상(32 상)이 부처인가, 

()是佛耶호(80 종호)가 부처인가,

神通(신통) 是佛耶신통이 부처인가,

業行 是佛耶업행이 부처인가,

果報(과보) 是佛耶? 과보가 부처인가 살피고 

[무엇을 부처라고 하느냐? 그 무엇도 청정범행이라고 할 부처는 실체가 없다. 청정범행이라고 할 실체는 아무 것도 없다.]

 

(9) 敎法

若法이 是梵行者인댄 爲寂滅이 是法耶아 涅槃이 是法耶아 不生이 是法耶아

不起가 是法耶아 不可說이 是法耶아 無分別이 是法耶아 無所行이 是法耶아

不合集이 是法耶아 不隨順이 是法耶아 無所得이 是法耶아

 

若法 是梵行者인댄만약 법이 범행이라면 

爲寂滅(위적멸) 是法耶?  적멸이 법인가,

[諸行無常 是生滅法(제행무상시생멸법)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멸이적멸위락)  

현상은 이렇게 드러나 있는, 움직이는 것이고, 동요하는 것이지만, 그 움직이고 동요하는 내면에 寂滅= 空性이 있다.

열반경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신이 설산동자로 구법행각을 할 때, 

諸行無常 是生滅法이라고 하는 구절을 듣고는 

아~ 제행은 무상해서 모든 것이 적멸한 도리이고, 적멸이 근본이다.

제행은 무상하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하고 인생이 복잡하더라도 끝내는 적멸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다음구절을 듣기 위해서 설산동자가 낭떠러지에 올라가서, 사람의 뜨거운 피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내가 먼저 먹히고 나면 당신이 법문을 설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당신이 수고스럽더라도 먼저 법문을 설해주시오. 해서 마지막에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라는 구절을 듣고는 잡아먹히기 전에, 이 몸을 바쳐서 얻은 법문인데 나 혼자 듣기는 아까우니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자기 피를 내어서 암벽에다 써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해놓은 후, 절벽에서 떨어지니까 나찰이 천신으로 변해서, 당신의 수행을 시험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지요. 

그야말로 爲法忘軀(위법망구) 법을 위해서 몸을 잊은 이야기입니다.]

涅槃(열반) 是法耶열반이 법인가, 

不生 是法耶불생이 법인가,

不起(불기) 是法耶? 불기가 법인가,[不起=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不可說(불가설) 是法耶? 불가설(설할 수 없음)이 법인가,

無分別 是法耶? 무분별이 법인가, [현상으로는 분별로 꽉 차있지만, 그 본질은 無分別이다.] 

無所行 是法耶무소행(행할 바가 없음)이 법인가,

不合集(불합집) 是法耶합쳐 모으지 않음[不合集]이 법인가 하고

[우리 몸도 합성 되어있고일체 그 어느 것 하나도 독립된 실체가 없다고 보니까, 집합하지 않는 것이 법이냐?]

不隨順(불수순) 是法耶수순 않는 것이 법이냐?

無所得 是法耶무소득이 법이냐? 

[이러한 것들이 교법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이론들입니다. 책을 펼쳤다하면 으레 여기에 소개된 이런 교법이 나옵니다. 

법이 만약에 청정범행이라면 이러한 교법들 중 무엇을 꼬집어서 청정범행이라고 할 것인가?]

 

(10) 僧

若僧이 是梵行者인댄 爲預流向이 是僧耶아 預流果가 是僧耶아

一來向이 是僧耶아 一來果가 是僧耶아 不還向이 是僧耶아 不還果가 是僧耶아

阿羅漢向이 是僧耶아 阿羅漢果가 是僧耶아 三明이 是僧耶아 六通이 是僧耶아

 

若僧 是梵行잔댄만약 스님[]이 범행이라면

[四果(사과) 초기불교에서의 수행자는 四果중 그 어디에든 해당 돼야 된다.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預流果(예류과)= 성인의 무리에 참여하는 것. 예를 들어 이 화엄법회에 동참하면 預流向

預流向(예류향) = 그 다음에 참여한 결과. 동참해서 공부한 결과를 預流果.  

금강경의 바라문 四期(사기)= 바라문들은 처음 한 7ㆍ8세 때 출가를 해서 공부를 충분히 하고,

20세 전후되면 다시 환속을 하면, 두 번째, 한번 갔다 온다. 그것이 이냐?

그 다음에 한번 갔다 오는 결과를 一來果(일래과)가 是僧耶?

속가에 갔다 오면 不還(불환) 이제 더 이상 세속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가정을 다 꾸려놓고, 집안도 충분히 살 수 있도록 해놓고, 한 40전후가 되면 다시 재 출가해서 이상 속가로 안돌아 오는 것이 不還입니다. 

속가로 돌아오지 않는다.= 不還向

不還果 =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입장에서 가 있는 것이지요.

바라문들이나 힌두교의 성직자들은 힌두교의 성직자들은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다시 재 출가해서 제자들 가르치고는 遊行(유행) 다니면서 전법활동을 하는 것이지, 죽어서 갔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에서 간혹 보면 죽어서  "천상과 인간을 갔다 온다.”고 하는 것은 상징적인 겁니다. 인간세상은 세속이고 천상은 출가한 세상입니다. 그것을 천상과 세속으로  나누었을 뿐 죽어서 천상에 가고, 천상에서 죽어서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걸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아라한은 말하자면 遊行期라합니다. 돌아다니면서 전도활동을 하는 것이 阿羅漢果(아라한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출가한 사람은 이 네 가지 과에 다 해당되는데, 그 무엇이 이냐?]

預流向(위예류향)이 是僧耶아 예류향 스님인가,

預流果(예류과)가 是僧耶아 예류과 스님인가,

一來向(일래향) 是僧耶일래향 스님인가, 

一來果가 是僧耶아 일래과(一來果)가 스님인가,

不還向이 是僧耶아 불환향(不還向)이 스님인가, 

不還果가 是僧耶아 불환과(不還果)가 스님인가,

阿羅漢果 是僧耶아라한향이 스님인가,

阿羅漢向 是僧耶아라한과가 스님인가,

三明 是僧耶? 삼명이 스님인가,

六通 是僧耶? 육통이 스님인가 하고 살피며

[그 무엇도 이라고 할 것이 없다. 청정범행이라고 하는 것은 말 뿐인 본질이 空性이라는 의미가 깔려있습니다.]

[[四果(사과); 초기불교 이래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의 4가지 수행 단계[向] 및 도달 경지[果]를  말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 사도사과(四道四果), 사향사득(四向四得), 사쌍팔배(四雙八輩), 사과향(四果向), 팔보특가라(八補特迦羅), 팔현성(八賢聖), 팔성(八聖), 팔배(八輩)

예류(預流)= 수다원(須陀洹) → 예류향: 예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예류과; 예류에 도달한 상태

예류과의 증득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제자는 예류에 들도록 이끄는 “네 가지 요소”를 닦아야 한다. ①지혜롭고 덕 있는 참된 사람[스승]을 섬길 것, ②정법[참된 법]을 배울 것, ③지혜롭게 주의를 기울임[如理作意], ④윤리[戒]·집중[定]·지혜[慧]의 세 가지 실천[三學]을 닦음으로써 성자의 법에 이르게 하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예류가 된 성자는 네 가지 덕목을 갖춘다. ①붓다, ②담마, ③상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의 확립, ④성인에게 친숙하고 집중에 도움이 되는 도덕적 덕목인 다섯 가지 윤리[五戒]를 굳게 지키는 것이다. 법의 진리를 보고 나서, 예류는 남아있는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 더욱 통찰을 길러 다음의 이정표인 일래를 깨닫는 것이다.

일래(一來)= 사다함(斯陀含) → 일래향; 일래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일래과: 일래에 도달한 상태

일래의 단계는 탐욕·분노·무지. 세 가지 번뇌의 뿌리를 뽑을 정도로 약화시켜 도솔천 등 욕계에 한 번만 윤회하여 괴로움의 종식을 이룬다. 예류 혹은 일래를 얻은 제자는 다음의 두 단계인 불환과 아라한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환(不還)= 아나함(阿那含) → 불환향: 불환을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불환과: 불환에 도달한 상태

불환의 단계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의 소멸을 통해 도달하고, 다섯 가지 높은 족쇄만을 남겨 놓는다.

응공(應供)= 아라한(阿羅漢) → 아라한향: 아라한을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아라한과: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

아라한이 되면 무지를 뿌리로 하는 모든 번뇌가 소멸된다.     

*향은 도(道, magga)라고도 한다.

초기경전에서 붓다의 제자[聲聞]들 가운데 성자가 된 제자들을 네 쌍의 여덟 무리[四雙八輩]로 불리운 이들이 사향사과이다.

 부파불교에서는 붓다의 제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성자의 최고 경지가 아라한이었고 아라한이 되는 길에 대해서 세밀한 설명을 제시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독특한 수행론과 번뇌론에 근거해서 사향사과를 점진적인 깨달음으로 설명하고 있고, 테라와다에서는 지혜의 성숙단계에 따른 사향사과를 설명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사향사과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제자를 성문승(聲聞乘) 또는 소승(小乘)이라고 하여, 붓다가 되는 보살승(菩薩乘)과 대비시킨다. 그리고 아라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보살승(菩薩乘)이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사향은 사과라는 깨달음의 결과에 도달하는 원인이 되는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예류향은 성자가 되는 최초의 깨달음의 순간으로 견도(見道)라고 하며,

예류과에서 아라한향까지는 남은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을 하는 단계인 수도(修道)라고 한다.

마지막 아라한과는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무학도(無學道)라고 한다. 사향사과의 체험에서 생겨나는 지혜와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각 성자의 새롭게 제거된 족쇄[번뇌]와 남아 있는 윤회의 종류는 아래와 같다.

  제거된 번뇌 남아있는 윤회
예류(預流 )=수타원, 소따빤나 변치 않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의심,
계율이나 의식에 대한 집착
인간과 욕계 천상에 최대 7 번 윤회
일래 (一來 )
사다함, 사까다가미
새로운 근절 없음.
탐욕, 분노, 무지의 엷어짐
욕계(도솔천 등 )에 한 번 윤회
사악도(지옥, 아귀, 아수라, 축생)에 떨어지지 않음
불환 (不還 )
아나함, 아나가미
감각적 욕망과 악의(惡意) 색계 (정거천)에 즉시 태어남 (化生)
응공 (應供 )
아라한, 아라하따
색계(色界)에 대한 갈망,
무색계(無色界)에 대한 갈망,
아만, 들뜸, 무지
없음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남

(참고: 한국민족 대백과)

 

사과(四果)

수행하는 사람이 얻게 되는 종교적 체험을 크게 단계로 구분하여 행자의 수행을 돕는 것으로,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의 사과설(四果說)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의 예류는 세가지 결박의 번뇌를 끊고 범속한 생활에서 성스런 흐름에 들어간 사람을 가르킨다

둘째의 일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 가지 결박의 번뇌뿐만 아니라 탐. 진. 치의 셋도 약화시켜 이 세상에 한 번 돌아와 괴로움을 다하는 단계이다.

셋째의 불환은 다섯가지 결박의 번뇌를 끊고 이 세상에 옴이 없이 천상에서 열반에 드는 것을 뜻한다.

끝으로 아라한은 일체의 번뇌를 끊고 현재의 법에서 그대로 해탈의 경계를 체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문사과(聲聞四果)의 설명

  1. 수다원(須陀洹, Sotapanna) :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에 참여한 것, 즉 불도 수행에 대한 확신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의 3가지 족쇄를 끊은 성자로서 성문사과의 첫 번째 지위다.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성스러운 흐름(八正道)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입류(入流) 또는 예류(預流)라고 하며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역류(逆流)라고도 한다.

삼보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으며 계를 잘 갖추고 산다면 수다원의 자질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늦어도 여덟 번째 생을 받지 않고, 일곱 생만에 아라한이 된다. 그래서 수다원은 파멸되지 않는 이, 결정된 이, 깨달음에 이르는 이라고도 불린다.

파멸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악도(惡道,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2. 사다함(斯陀含, Sakadagami) : 일래는 사다함(斯陀含)이라고 음역되는데 수행의 도상에 있어서 한 번 더 윤회의 세계(욕계)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의 족쇄는 이미 소멸되었고, 감각적 욕망 진에는 많이 약화되었지만 미세한 감각적 쾌락의 욕망, 진에는 남아 있는 성자(거친 형태의 탐욕과 성냄을 극복한 성자)이다.

  인간과 천상에 각각 한 번씩 생을 받은 뒤에야 열반을 증득한다. 즉, 인간 세계에서 사다함과를 얻으면 반드시 하늘 세계에 갔다가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와 열반을 깨닫고, 하늘 세계에서 사다함과를 얻으면 먼저 인간세계에 갔다가 다시 하늘 세계로 돌아와 열반의 증과를 얻게 된다. 이렇게 천상과 인간 세계를 한 번 왕래하므로 일래과(一來果)라고 한다. 지혜를 얻어 번뇌와 미혹을 벗어나 진리를 보는 단계인 견도(見道)를 이룬 뒤 수도(修道)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3. 아나함(阿那含, Anagami) : 불환은 아나함(阿那含)이라고 음역되는데 더 이상 윤회의 세계(욕계)로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불환이라고 한다.

  오하분결은 모두 사라지고, 오상분결 중 만, 도거, 무명이 약화된 성자이다. 이번 생에만 욕계에 머무르고 나면 다시는 윤회의 세계로 오지 않는다. 불환(不還) 또는 불래(不來)라고 하며 다시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 번뇌의 윤회에 휩쓸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나함은 욕망에 꺼들리지는 않지만, 물질과 순수한 정신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색계와 무색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며 아직까지 무명(無明)의 뿌리가 남아 있어서 존재의 참된 이치를 완전히 꿰뚫은 수준은 안 되어 사성제(四聖諦)를 완전히 증득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4. 아라한(阿羅漢, Arahat) :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煩惱)는 다하였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다고 생각되었다. 무학위를 간단히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 이전의 단계를 통칭하여 유학위(有學位, 배울 것이 있는 계위) 또는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열 가지 족쇄가 모두 다 소멸되어 더 이상 태어남이 없어 윤회하지 않는 성자다.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면 어떤 것을 공양 받아도 업의 흔적으로 남지 않아 마땅히 공양 받을 자격이 있다 해서 응공(應供), 또는 응당히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므로 응진(應眞)이라고 한다. 아만심이 없기 때문에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번거로워할 일도 없고 들뜨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마음은 늘 고요하고 평온하다.

*  중생들은 다음과 같은 족쇄에 묶여 있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족쇄는 오상분결 5가지와 오하분결 5가지로 모두 10가지이다.

 

. 오하분결(五下分結) : 유정(有情)을 욕계(欲界)에 결박(結縛)시키는 5가지 근본 번뇌

  1. 유신견(有身見) : 자아가 있다는 견해. 오온이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집착하는 삿된 견해

  2. 계금취견(戒禁取見) :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3. 의심(疑) : 불·법·승 삼보나 계율, 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

  4. 감각적 욕망(欲貪) : 욕계의 탐

  5. 진에(瞋恚) : 반감, 증오, 분개, 적대감 등의 성내는 마음

 

나. 오상분결(五上分結) : 유정을 색계·무색계에 결박(結縛)시키는 5가지 번뇌

  6. 만(慢) : 내가 남보다 낫다, 못하다, 동등하다 하는 마음(我慢)

  7. 도거(掉擧) : 들뜨고 불안한 마음

  8. 무명(無明) : 모든 해로움과 괴로움의 근본 뿌리로 사성제를 모르는 것

  9. 색탐(色貪) : 감각적 욕망을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물질의 세계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色界欲)

  10. 무색탐(無色貪) : 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나타나는, 순수 정신세계나 그런 인식에 대한 집착(無色界欲)

(참고 kyoungahn 블로그)

성문(聲聞):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가르침을 듣는 수행승. 원래는 원시 불교 성전으로, 팔, savaka라는 것은 출가(出家)에서나 재가에서나 가르침을 듣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불제자(佛弟子)를 의미했다. (재속신자(在俗信者)도 포함되고 있음.) 후대에 이르러, 불교에서는 교단(敎團)을 구성하고 있는 출가 수행승만을 말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소리를 듣고 수행하는 사람. 자신의 깨달음 밖에 생각하지 않는 성자. 자기의 완성만을 구하여 힘쓰는 출가(出家). 자기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것에 전념하는 성자. 자기의 완성에만 힘쓰는 출가승. 가르침의 소리를 듣고서 비로소 수행할 수 있는 제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무한히 오랜시간에 걸쳐 수행한 결과, 아라한(阿羅漢)의 위(位)에 도달함.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자. 수행에 있어서, 사제(四諦)를 관(觀)하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 대승불교에서는 성문(聲聞)을 독각(獨覺)과 견주어, 이것을 이승(二乘)·소승(小乘)으로서 낮추고 있다.

성인(聖人): ① 부처님. 깨달음을 얻은 사람. 또는 제자까지도 합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음. <俱舍論 12권 9>

② 견도(見道)이상의 위(位)에 있는 사람.

 ③ 상인(上人)에 반대하여 더욱 존중하여 말함. (해석 예) 외전(外典 : 불교이외의 성전)에서 이르되, 미맹(味萌)을 아는 것을 성인이라고 한다. 내전(內典 : 불교의 성전)에서 이르되, 삼세(三世)를 아는 것을 성인이라고 한다. <撰時鈔 1053>]]

              

[[三明= 붓다나 아라한이 가지는 宿命智明·天眼智明·漏盡智明. 천안지·숙명지·누진지라고 부르며, 宿命通·天眼通·漏盡通이라고도 한다. 智明= ‘꿰뚫어 앎’이라는 의미로 전생을 보고, 내생을 보고, 현생에서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는 지혜.

① 천안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미래 세상에 대한 일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를 말한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본다.

② 숙명지명: 자기나 다른 사람의 지난 생의 일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모두 다 아는 지혜를 말한다.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다.

③ 누진지명: 번뇌를 끊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열반의 이치를 깨달아 얻는[證得] 지혜를 말한다. 번뇌가 멸진하여 번뇌가 없는 心解脫과 慧解脫을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불교에서는 세 번째 누진지가 가장 중요시 된다. 불교는 괴로움의 소멸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신통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능력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에 이르게 하는 누진지이다.

초기 불교 경전에 의하면 三明으로 붓다는 정각을 성취하였다. 순차적으로 세 가지 지명을 증득하고 정각을 이루는데,

초야에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인 숙명지를, 중야에 중생의 생사를 볼 수 있는 천안지를, 후야에 번뇌의 소멸을 이룰 수 있는 누진지를 성취하여 성불하였다.

삼명은 四禪에 의하여 발생한다. 사선을 순차적으로 증득한 뒤, 마지막 제4선에서 삼명을 성취하게 된다. 사선은 禪定·三昧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선에 의해 맑아진 마음 상태에서 세 가지 지혜를 얻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三明六通 부처님과 아라한이 가진 6가지 지혜광명의 신통이며, 이로서 어둠과 어리석음을 깨트린다.

①宿命通: 자신과 중생의 과거 생을 아는 지혜. ②天眼通: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중생들을 살펴보는 지혜

③漏盡通: 번뇌를 제거하는 능력으로 부처님만이 갖추셨다. 이를 3명 또는 3달이라 하고,

여기에 ④神足通: 멀고 가까움에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 찰나간에 나타나는 능력 ⑤天耳通: 거리나 소리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소리를 듣는 능력. ⑥他心通: 남의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아는 능력을 합쳐서 6신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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