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魔事品 第四十六 卷六十八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46. 마사품(魔事品) 풀이함 2

 

魔有四種:煩惱魔、五衆魔、死魔、天子魔。煩惱魔者,所謂百八煩惱等,分別八萬四千諸煩惱。

마(魔)에는  가지가 있나니, 번뇌의 번뇌마(煩惱魔),중(오온)의 오중마(五衆魔, 오온마), 죽음의 사마(死魔), 천자의 천자마(天子魔, 자재천자마)가 그것이라.

번뇌마(煩惱魔)라 함은 이른바 108번뇌 등이니, 8만 4천의 모든 번뇌로 분별된다.

 

오중마(五衆魔, 오온마)는 각 온(蘊)마다 10씩 있어 오십이 되고, 여기에 3종의 마(魔)를 더하여 53종의 마(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經)에서는 생략되었으니 오십(五十)종의 마(魔)에 대해서는 능엄경(楞嚴經)을 참조하시면 됩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五衆魔者,是煩惱業和合因緣,得是身:四大及四大造色,眼根等色是名色衆;百八煩惱等諸受和合,名爲受衆;小、大、無量、無所有 想分別和合,名爲想衆;因好醜心發,能起貪欲、瞋恚等心相應、不相應法,名爲行衆;六情、六塵和合,故生六識,是六識分別,和合無量無邊心,是名識衆。

오중마(五衆魔, 오온마)라고 함이란,  번뇌의 업(業)이 화합한 인연으로  몸을 얻었나니, 그것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물질(色)로서 눈의 감관인 안근(眼根)ㆍ 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등의 물질(色)이니, 이것을 바로 색중(色衆)이라 하며,

108번뇌 등의 모든 느낌이 화합한 것을 수중(受衆)이라 하며, 

‘작을 소(小), 클 대(大), 무량(無量), 아무것도 없다는 무소유(無所有)’는 생각(想)과 분별이 화합한 것을 바로 생각의 상중(想衆)이라 하며,

‘아름답다고 추한 호추(好醜)’의 마음을 일으키면서 탐욕과 성냄 등의 마음과 상응하는 심상응(心相應) 또는 상응하지 않는심불상응(心不相應)의 법을 내는 것을 지어감의 행중(行衆)이라 하고,

안이비설신의의 육정(六情)과 색성향미촉법의 육진(六塵)이 화합하기 때문에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의식(六識)을 내고, 육식(六識) 분별하고 화합하는 무량하 무변한 마음을 바로 분별의 식중(識衆)이라 한다.


死魔者,無常因緣故,破相續五衆壽命,盡離三法 識、斷、壽故,名爲死魔。天子魔者,欲界主,深著世閒樂,用有所得故生邪見,憎嫉一切賢聖涅槃道法,是名天子魔。

죽음의 사마(死魔) 함은, 덧없는 인연 때문에 상속(相續)하는 오중(五衆) 수명을 파괴하고 의식의 식(識), 체온의 열(熱), 목숨의 수(壽)   가지의 삼법(三法)이 모두 흩어지기 때문에 죽음의 사마(死魔) 하며, 

천자마(天子魔, 자재천자마)라 함이란, 욕계(欲界)의 주인이면서 세간의 쾌락에 깊이 집착하며, 얻을 것이 있는 유소득(有所得)을 쓰기 때문에 삿된견을 내고 일체의 성현과 열반의 도법(道法)을 미워하고 시샘하는이니, 이를 바로 천자마(天子魔, 자재천자마)라 하며, 


魔,秦言能奪命者。雖死魔實能奪命,餘者亦能作奪命因緣,亦奪智慧命,是故名殺者。

악마의 마(魔)는 진(秦, 중국)나라 말로 ‘목숨을 빼앗는 탈명자(奪命者)’라 하나니, 죽음의마가 실로 목숨을 빼앗는 것이기는 하나,  밖의 것도 역시 목숨을 빼앗는 인연이 되며, 또한 지혜의 목숨인 혜명(慧命)을 빼앗기도 하기 때문에 ‘죽이는 살자(殺者)’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一五衆魔攝三種魔。何以故別說四?

묻나니, 오중마(五衆魔) 하나에  가지의 마(魔)가  포함되거늘, 무엇 때문에  가지를 따로따로 말하는 것입니까?


答曰:實是一魔,分別其義,故有四。煩惱魔者,人因貪欲、瞋恚故死,亦能作奪命因緣,是近奪命因緣故別說。天子魔,雜福德業因緣故,力勢大,邪見力故,能奪慧命,亦能作死因緣,是故別說。無常死力大,一切無能免者,甚可畏厭故別說。

답하나니, 실로 이것은 하나의 악마인 일마(一魔)이지만,  이치를 분별하여서 네 가지가 되는 것이다. 

번뇌마(煩惱魔)는 사람들이 탐욕과 성냄 때문에 죽거나, 목숨을 빼앗는 인연이   있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목숨을 빼앗는 인연과 가깝기 때문에 따로따로 설명한 것이며, 

천자마(天子魔, 자재천자마)는 여러 가지 복덕과 업의 인연 때문에 세력이 크고 삿된견의  때문에 지혜의 목숨인 혜명(慧命)을 빼앗으며 또한 죽음의 인연도   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한 것이며, 덧없음는 무상의 죽음의 힘인, 무상사력(無常死力) 또한 크며, 어느 누구도 면할  없고, 매우 두려우면서 싫어하는 것이므로 따로 설명하는 것이다.


問曰:是魔何以惱亂行道者?

묻나니, 이 악마는 무엇 때문에 도를 수행하는 이를 괴롭히고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까?


答曰:先已廣說。是品中皆有四種魔義,但隨處說。復次,三魔不相遠離:若有五衆,則有煩惱;有煩惱,則天魔得其便;五衆、煩惱和合故有天魔。

답하나니, 앞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하였으니, 이 품(品)에서는 모두  가지 사마(四魔) 관한 이치가 있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설명할 뿐이다.

  가지의 삼마(三魔)는 서로를 멀리 여의지 않나니, 만약 오중이 있으면 번뇌가 있고, 번뇌가 있으면 천자마가  편(便, 기회)을 얻으며, 오중과 번뇌가 화합하기 때문에 천자마가 있는 것이다.


是故須菩提問佛:“上已讚歎說菩薩功德,今云何是菩薩魔事起?”

佛答:“樂說辯不卽生,是爲魔事”者,若菩薩摩訶薩憐愍衆生故,高座說法,而樂說辯不生。聽者憂愁:“我等故來,而法師不說。”

그러므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서는에서 이미 보살의 공덕을 찬탄하셨거늘, 지금은 어찌하여  보살에게 있어서 악마의 마사(魔事)가 일어난다고 하시는지요”라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요설변(樂說辯)이 즉시 생겨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악마의 마사(魔事)이다”고 하셨으니, 어떤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높은 자리에서 법을 설할 요설변(樂說辯)이 생기지 않으면 듣는 이들이 불안해하면서 “우리들이 일부러 왔는데 법사(法師)가 설법을 하지 않는구나”라고 하나니, 


或作是念:“法師怖畏故不能說。”或言:“不知故不說。”或自惟過咎深重故不說,或謂不得供養故不肯說,或謂輕賤我等故不說,或串樂故不說。如是等種種因緣,聽者心壞,故以不樂說名爲魔事。

혹 어떤 이는 “법사가 두려워하는 까닭에 설법하지 못하는구나”라 생각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몰라서 설법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자신의 허물이 깊고 중하기 때문에 설법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공양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설법하려 하지 않는구나”라고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우리들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설법하지 않는구나”라고 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쾌락에 빠졌기 때문에 설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기도 하나니, 

자유자재로 설하지 못하므로,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듣는 이들의 마음이 파괴되기 때문에 악마의 마사(魔事) 하며, 

 

復次,是菩薩憐愍衆生故來欲說法,聽者欲聞,而法師心生欲說,而口不能言。現見是魔事,如魔入阿難心,佛三問而三不答,久乃說者。

또한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와서 법을 설하고자 하는 것이며, 듣는 이도 와서 듣고자 하는 것이나, 법사가 마음을 내어서 설하려고 하여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이러한 악마의 마사(魔事)를 실로 보기도 하나니,

마치 악마가 아난(阿難)의 마음에 들어갔으므로 부처님께서  번이나 물으셨는데도  번 모두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말을  것과 같은 것이다.

 

是中云何學人(시중운하학인)? 云何數法人(운하수법인)? 爾時 舍利弗默然(이시 사리불묵연)

부처님께서 사리불 존자에 '무엇이 학인이고 무엇이 수법인인가?'라고 세 번을 물으셨지만, 사리불은 침묵하고 있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제3권 17


此中須菩提問世尊:“何因緣故辯不卽生?”佛答:“菩薩行六波羅蜜時,難具足六波羅蜜。”所以者何?是人先世因緣故,鈍根、懈怠,魔得其便;不一心行六波羅蜜故,樂說辯不卽生。

여기에 수보리 존자가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변재(辯才)가 즉시 생기지 않는지요”라고 여쭈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 6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니라. 왜냐하면  사람은 전생에 행한 인연 때문에 근기가 둔하고 게을렀으므로 악마가  편(便, 기회)을 얻었으며, 일심으로 6바라밀을 행하지 않은 까닭에 요설변이 즉시 생기지 않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問曰:如樂說辯不卽生,可是魔事;今樂說辯卒起,何以復是魔事?

묻나니, 요설변이 즉시 생지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마사(魔事)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설변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 역시도 무엇 때문에 마사(魔事)가 되는 것입니까?


答曰:是法師愛法、著法,求名聲故,自恣樂說,無有義理,如逸馬難制;又如大水暴漲,衆穢渾雜。是故此中佛自說:“菩薩行六波羅蜜,著樂說法,是爲魔事。”

답하나니,이 법사는 법을 사랑하고, 법에 집착하여 명성(名聲)을 구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말하기는 하나 이치가 없으니, 이는 마치 달아나는 말은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같으며,  큰물이 세차게 흐를에는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뒤섞여서 내려오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때문에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면서 설법하는 데에 집착하여 좋아하는 설법하는 것도 마사(魔事)이다”고 하셨으며, 


復次,是般若波羅蜜爲破憍慢故出;而書是經者生我心、憍慢心;憍慢故身亦高,所謂偃𠐻傲慢。書是般若波羅蜜時,用輕心、瞋心,戲笑、不敬。

또한  반야바라밀은 교만을 파괴하기 위한 것인데  경을 서사하는 이가 '나'라는 아심(我心) 교만한 마음을 내나니,  교만 때문에  또한 높은 체하게 되어서, 이른바 젠체하고 오만한 언건오만(偃𠐻傲慢)한 태도로  반야바라밀을 서사하며, 또한 가벼이 여기는 마음의 경심(輕心)과 성내는 마음의 진심(瞋心)으로 실없이 웃는 희소(戲笑)하면서 공경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復次,是般若波羅蜜,若一心、攝心,猶尚難得,何況散亂心書!書時從人口受、或寫經卷,若一心和合則得;若授者不與,如是等種種因緣,是不和合。

또한  반야바라밀은 일심으로 마음을 다잡아도 오히려 얻기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산란한 마음으로 서사하 것이겠는가? 서사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부터 받아쓰거나 경전을 베껴 쓰기도 하는 것으로,  마음의 일심으로 화합한다면  되기도 하지만, 혹은 주는 이가 주지 않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의 인연을 화합하지 않는 불화합(不和合)이라 하며, 


復次,觀看是般若波羅蜜經時,品品皆空,無可樂處,作是念:“我於是經不得滋味!”便棄捨去。般若波羅蜜是一切諸樂根本,此人不得其味,是爲魔事。

  반야바라밀을 자세히 살펴보면, 품(品)마다 모두가 공(空)이라 즐겨할 만한 곳이 없으므로 생각하기를 ‘나는  경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겠다’ 하고는 버리고 떠나는 것이라.

반야바라밀은 바로 모든 즐거움의 근본인 일체제낙근본(一切諸樂根本)이니,  사람이  맛을 얻지 못하였다면 이 또한 바로 마사(魔事)인 것이며, 


復次,受持、讀、誦、說、正憶念時,偃𠐻、形笑、散亂心、不和合,如上說。“共相輕蔑”者,從人受持、讀、誦、正憶念時,師徒互相輕賤。書寫經時,但有捨去,無相輕賤。

또한 받아 지니는 수지(受持)하여 읽고 외우는 독송(誦讀)하고 해설하며 바르게 정억념(正憶念) 때에 젠체하고 뽐내는 언건(偃𠐻)하고 실없이 웃거나 산란한 산란심으로 불화합(不和合)하기도 하나니, 위에서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함께 서로를 경멸한다는 공상경멸(共相輕蔑)’이라 함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 지니어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할 때에 스승이나 제자들이 서로가 경멸하면서 천하게 여기는 것이니, 경을 서사하다가 버리고 가는 것은 서로를 경멸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 무상경천(無相輕賤)이다.


問曰:上諸事中,何以但問“不得經中滋味”,不問餘者?

묻나니, 앞의 여러 가지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가운데서 재미를 얻지 못한다는 것만을 묻고  밖의 것은 묻지 않은 것입니까?

 

答曰:般若波羅蜜,聖人所說與凡人說異,是故凡夫人不得滋味。

답하나니, 반야바라밀은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이라 범부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므로 범부들은 재미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須菩提意謂:“般若波羅蜜是淸淨珍寶聚,能利益衆生,無有過惡,是人云何不得滋味?”

佛答:“是人先世不久行六波羅蜜故,菩薩信等五根薄;薄故,不能信空、無相、無作、無依止法,嬈亂心起,作是言:‘佛一切智,何以不與我受記?’便捨去。”餘者易解,故不問。

수보리 존자가 생각하기를 “반야바라밀은 청정하고 값진 보배의 모음인 진보취(珍寶聚)이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으로 허물이 없거늘, 이 사람은 어찌하여 재미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은 전생에 6바라밀을 오래도록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보살의 신근(信根) 진근(進根), 념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등의 오근(五根, 오무루근)이 희박하기 때문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을 믿을  없으며, 의지하는 법도 없으며, 요란한 마음이 생기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를 지니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실까’라고 하면서 버리고 떠나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그 나머지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묻지 않은 것이다.


須菩提問:“若爾者,何以故不與授記?”佛是大悲,應當愍念,防護其心,不令墮惡!

수보리 존자가 묻기를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수기를 주시지 않으시는 것일까? 부처님께서는 바로 대비(大悲)하신 분이시라 마땅히 가엾이 여기어 그의 마음을 보호해 주시면서 악(惡)에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거늘?”라고 하자,


佛言:“未入法位人,諸佛不與授記。”所以者何?諸佛雖悉知衆生久遠事,爲五通仙人及諸天見是人未有善行業因緣可授記者,若爲授記,輕佛不信:“無有因緣,云何與授記?”是故入法位者,與授記。是人名字及聚落處,亦如是。是人從坐起去,隨其起念多少,念念卻一劫;償罪畢,還得人身,甫當復爾所劫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직 법위(法位)에 들지 못한 사람은 모든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지 않으시나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록 중생이 겪어 지나온, 오래된 일들을 모두 아시고 5통(通, 오신통)의 신선이 되었던 것과 모든 천상에난 일 모두를 아실지라도, 이 사람이 아직 착한 행과 업의 인연의 선행업인연(善行業因緣)이 없는 것을 보시고, 수기하시지 않은 것이다.

만약 수기를 하게 되면 부처님을 가벼이 여기고 믿지 않을 것이니, 인연이 없거늘 어떻게 수기를 주겠는가! 

이 때문에 법위에 들어간 이에게 수기를 주시나니, 이 사람의 이름과 마을 등의 처소도 역시 그와 같나니, 이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간다면 그 일어날 때 생각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한 생각마다 1겁(劫)씩 물러나게 되며, 그리하여 그 죄를 다 갚고 마친 뒤에야 다시 사람의 몸을 얻게 되지만, 처음부터 다시 그 만큼의 겁 동안을 행하여야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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