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隨喜迴向品 第三十九 卷六十一 

聖者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9. 수희회향품(隨喜迴向品) 풀이함 4

 

▶論. 釋曰:彌勒意:‘以諸法甚深,隨喜心微妙,所謂不壞諸法相,而隨喜心迴向無上道,是事甚難!凡夫人心剛强,不能行是法。’

▷논. 해석한다; 미륵 보살은 생각하기를 ‘제법은 매우 깊어서 수희(隨喜)하는 마음도 미묘하나니, 이른바 제법의 상(相)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수희하는 마음으로 무상도(無上道)에 회향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어려우며, 범부인들은 마음이 거칠어서 이러한 법을 행할  없다.’고 하였다.


是故彌勒答言:若行者久修六波羅蜜,諸功德深厚故不動,所謂能信、能行,多供養諸佛、種善根故,集無量無邊阿僧祇功德,結使折損,其心柔軟,此是先世因緣。今世得好師、好同學,亦自學諸法實相空,巧方便故不著是空。

 때문에 미륵 보살이 말하기를 “만약 수행하는 이로서 오랫 동안바라밀을 닦은 이라면, 모든 공덕이 깊고 두껍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으니, 이른바 능히 믿고 능히 행하면서 모든 부처님을 많이 공양하고, 선근을 심어서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공덕을 쌓았으며, 번뇌의 결사(結使)가 꺾이고 줄어들어서  마음이 부드러우니, 이것이 바로 전생의 인연이며,

금생에서는 좋은 스승과 좋은 동학(同學)을 얻으며, 또한 스스로 제법의 실상공(實相空)을 배우는 교묘한 방편 때문에 이러한 공(空)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如是等種種無量因緣故,諸法雖無相,而能起隨喜心,迴向無上道。譬如鐵雖堅䩕,入鑪則柔軟,隨作何器;菩薩心亦如是,久行六波羅蜜、善知識所護故,其心調柔;過去諸佛、諸緣、諸事、諸善根中,不取相,能起隨喜心,用無相迴向無上道。

이와 같은 갖가지의 무량한 인연 때문에법은 비록 무상(無相)일지라도 수희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무상도(無上道)에 회향할  있으니, 

비유하자면 쇠가 비록 단단하기는 하나, 이글거리는 화로에 넣으면 부드러워져서 뜻대로 어떤 그릇도 만들  있는 것과 같이, 

보살심(菩薩心) 또한 그와 같아서 오랫동안바라밀을 행하고 선지식의 수호를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과거 모든 부처님의 여러 연(緣, 반연)과 모든 사(事)와 모든 선근(善根) 가운데에서 상(相) 취하지 않으면서도 능히 수희심(隨喜心)을 일으키고, 무상(無相)으로써 무상도(無上道)에 회향할  있는 것이며, 


無相者,能用不二非不二乃至不生不滅等。與上相違者,是名不能迴向。

‘모양이 없다는, 무상(無相)’이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둘이 아닌 것도 아닌 비불이(非不二)이며, 나아가 불생불멸(不生不滅) 등이니, 위와 어긋나는 것이라면, 이를 바로 회향할  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彌勒知須菩提樂說空故語言:“如是般若波羅蜜隨喜義,不應新學菩薩前說。”何以故?若有少福德善根者,聞是畢竟空法,卽著空,作是念:‘若一切法畢竟空無所有者,我何爲作福德?’則忘失前業。

미륵 보살은 수보리 존가가 공(空)에 대하여 즐겨 말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을 수희(隨喜)하는 이와 같은 이치는, 새로 배우는 신학(新學)의 보살에게는 설명하지 않아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복덕과 선근이 적은 이가  필경공의 법(法)을 듣는다면, 곧 그 공에 집착하면서 ‘만약 일체법이 필경공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無所有)라면, 나는 무엇 때문에 복덕을 짓는 것인가?’라고 하면서,  전업(前業)을 망실하게 되나니, 


以是故,新發意菩薩,先敎取相隨喜,漸得方便力,爾乃能行無相隨喜。譬如鳥子,羽翼未成,不可逼令高翔;六翮成就,則能遠飛。

이러한 때문에 새로 발심한 신발의(新發意) 보살에게는 먼저 상(相) 취하면서 수희하는 가르치고, 

점차 방편의 힘을 얻게 될 때에는 무상(無相)의 수희(隨喜)를 행하게 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린 새의 날개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였으면 억지로 높이 날게   없으며, 깃털이 온전히  자란 뒤에야 멀리 날게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한 것이다.

 

阿鞞跋致菩薩,入法位,得法忍,能信、能行,故可爲說。若有久行六波羅蜜、與善知識相隨,內福德、外因緣力助,雖非阿鞞跋致,能信、能行。

아비발치 보살은 법위(法位)에 들어가서 법인(法忍)을 얻어서, 능히 믿고 능히 행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는 설명할  있으며, 또한 오래도록바라밀을 행하고 선지식을 따랐으며, 안의복덕(內福德)과 바깥 인연의 힘이 서로 돕는 이라면 아비발치가 아닐지라도 능히 믿고 능히 행할 수 있으며, 


是二種人聞是,心淸淨,歡喜信受。如久飢渴者,得好飮食;如大熱得涼、大寒得溫,其心愛樂歡喜。

아비발치지와 육바라밀을 오랫동안 행한, 이  종류의 사람은 이을 들으면 마음이 청정하여지고, 기뻐져서 믿고 받아들이나니,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이가 좋은 음식을 얻은 것과 같으며, 몹시 더울 시원함을 만난 것과 같으며, 아주 추울 때에 따뜻함을 얻는 것과 같아서 그의 마음이 좋아지고 기뻐지는 애락환희(愛樂歡喜)하게 되는 것이다.

 

是二菩薩亦如是,得是無相智慧,作是念:‘我因是智慧,能度無量衆生,何況有驚懼、恐怖!恐怖從我心中出,是法中諸法相尚空,何況有我而決定取諸法相,聞一切法無相,則生驚懼!’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무상지혜(無相智慧)를 얻게 되면 ‘나는  지혜로 인하여 무량한 중생을 제도할  있거늘, 하물며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있겠는가! 

두려움은 바로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이러한 법에서는법의 상(相)조차도 오히려 공(空)한 것이거늘, 하물며 '나'가 있는 유아(有我)로서 결정코법의 상(相) 취하겠으며, 

일체법이 무상(無相)임 듣고서 놀라거나 두려워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是說隨喜義體竟,後當更以種種異門釋上事。

여기까지 수희(隨喜)의 뜻(義) 가운데에서 체성에 관한 설명을 마치고,

뒤에서는 다시 갖가지 다양한 문(門)으로 수희의 양상(事)을 해석하겠다.


復次,“須菩提!菩薩應如是思惟:‘用是心迴向無上道,是心念念盡、滅、變、離,無有住時。’”是諸緣、事,所謂過去諸佛及諸善根。諸佛等諸緣事久已滅,隨喜心今滅;旣滅無異,是故經中說:“
用是心迴向,是心卽盡滅。”如是等入過去世故,入諸法實相故,無有分別是心、是緣、是事、是善根等。若能如是迴向,是爲正迴向。

또한 미륵 보살이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기를 “이 마음으로 무상도(無上道) 회향하되,  마음은 생각생각마다 다하여, 사라지고 변하여 없어지는 것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이 모든 연(緣, 반연)과 모든 사(事),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선근과 모든 부처님의 모든 연(緣, 반연)과 모든 사(事)는 오래전에 이미 사라진 이멸(已滅)하였으며, 수희심(隨喜心)도 지금 멸하는 금멸(今滅)이니, 이미 사라진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기를 “이 마음으로 회향하되,  마음은  다하여 없어지는 진멸(盡滅)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며,

이렇게 과거세에 들어가고,법의 실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과  연(緣, 반연)과 이 사(事)와  선근(善根) 등에 분별함이 없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이 회향한다면 이러함을 바른 회향의 정회향(正迴向)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一時二心不和合,隨喜心時無菩提心;一切心相畢竟空,不可以取相迴向。何以故?菩薩知般若波羅蜜空,無有定法。如般若波羅蜜,一切法乃至無上道亦如是。是時斷法愛、捨著心,於空無諍,是名菩薩正迴向。

또한 일시에  마음은 화합하지 않으므로, 수희심(隨喜心)이 있을 때에는 보리심(菩提心)이 없으며,

일체 마음의 심상(心相) 필경공이므로 상(相) 취하여 회향할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은 반야바라밀이 공(空)하여 일정하게 정해진 정법(定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마치 반야바라밀이 그러한 것과 같이 일체법 내지는 무상도(無上道)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때에 법애(法愛)를 끊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서 공에 대하여 다툼이 없는 공무쟁(空無諍)이나니, 

이러함을 보살의회향(正迴向)이라 하는 것이다.


▶經. 爾時,釋提桓因語須菩提:“新發意菩薩聞是事,將無驚懼、怖畏?須菩提!云何新發意菩薩作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復云何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경. 그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수보리 존자에게 말하였다.

“새로 발심한 신발의(新發意) 보살이 이러한 것을 들으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수보리여, 어떻게 새로 뜻을  신발의(新發意) 보살이 모든 선근을 지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게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수희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까?”


須菩提語釋提桓因:“若新發意菩薩行般若波羅蜜,不受是般若波羅蜜,以無所得故、無相故,乃至檀波羅蜜亦如是。

수보리 존자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만약 새로 발심한 신발의(新發意) 보살이라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반야바라밀을 받아들이지 않나니, 얻을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기 때문이요,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단바라밀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한 것입니다.


多信解內空乃至多信解無法有法空,多信解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常與善知識相隨,是善知識爲說六波羅蜜義,開示、分別,如是敎授,令常不離般若波羅蜜。

내공(內空)을 많이 믿고 이해하며, 나아가 무법유법공까지도 많이 믿고 이해하며, 사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을 많이 믿고 이해하면서, 항상 선지식을 따르니,

 선지식은 그에게바라밀의 뜻을 해설하여 열어 보이고 분별하여서 이와 같이 가르치기에 항상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게  것입니다.


乃至得入菩薩法位,終不離般若波羅蜜乃至不離檀波羅蜜,不離四念處乃至十八不共法。亦敎語魔事,聞種種魔事已,不增不減。何以故?是菩薩摩訶薩不受一切法故。是菩薩亦常不離諸佛,乃至得菩薩位,於中種善根;以是善根故,生菩薩家,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是善根。

이리하여 보살의 법위(法位)를 얻기에 이르기까지 끝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나아가 단바라밀을 여의지 않고념처 내지는 18불공법을 여의지 않도록 하며, 또한 악마의 일인 마사(魔事)도 가르쳐 주어서, 갖가지의 마사(魔事)를 듣고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수일체법(不受一切法)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또한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보살의 법위를 얻기까지의  사이에 선근을 심었으며,  선근으로서 보살 집안에 태어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선근을 여의지 않는 것입니다.


復次,新發意菩薩摩訶薩於過去十方無量無邊阿僧祇世界中 諸佛斷生死道、斷諸戲論道盡、棄重擔、滅聚落刺、斷諸有結、正智、得解脫,及弟子所作功德,於中若剎利大姓、婆羅門大姓、居士大家、四天王天乃至淨居天所種善根 是一切和合稱量,以隨喜心,最上、第一、最妙、無上、無與等者,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새로 뜻을 낸 신발의(新發意) 보살마하살은 과거 시방의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 세계 가운데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이 생사의 길을 끊고, 모든 쓸모없는 희론의 길을 끊어 내어서 무거운 짐을 모두 버리고, 취락(聚落, 속세)에서 일으키는 오욕락의 가시나무를 없애 버렸으며, 

모든 유결(有結, bhavasaṃyojana)을 끊고 바른 지혜로 해탈하였으며,

그리고 제자들이 지은 공덕으로서, 큰 성바지인 찰리(刹利)ㆍ바라문(婆羅門)과 거사(居士)의 대가와 그리고 사천왕천 내지는 정거천(淨居天)이 심은 선근 모두를 한데 합쳐서 헤아린다면, 그 가운데에서 가장 으뜸가는 최상(最上)이며, 첫째가는 제일(第一)이며, 가장 묘한 최묘(最妙)이며, 보다 더할 것이 없는 무상(無上)이며, 견줄 것이 없는 무여등(無與等)의 수희심(隨喜心)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유결(有結, bhavasaṃyojana)의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이고, 결(結)은 그 과보를 초래하는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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