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3. 습상응품을 풀이함  3

 

▶論. 釋曰:五衆者,色、受、想、行、識。

논. 해석한다; '오(五)'이라 함은 색(色, 물질, 색온)수(受, 느낌, 수온)ㆍ상(想, 생각, 상온)ㆍ행(行, 지어감, 행온)ㆍ식(識, 분별, 식온)이다.

 

色衆者,是可見法;是色因緣故,亦有不可見有對;有對雖不可見,亦名爲色。如得道者名爲道人;餘出家未得道者,亦名爲道人。

'색중(色衆, 색)'이라 함이란   있는 가견법(可見法)으로,  색(色, 물질) 인연 때문에 역시   없는 불가견(不可見)이면서 마주 대할 수 있는 유대(有對)이니,

유대(有對)라는 것은 비록   없는 것이라 하여 역시 색(色, 물질)이라 하나니, 마치 도를 얻은 이를 도인(道人)이라 하고,  밖의 출가한 이로써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이라 할지라 역시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何等是可見?一處,是可見有對色 小分一入攝。餘九處及無作業,名不可見色。有對者十處,無對者唯無作色。有漏、無漏等分別亦如是。

어떠한 것이   있는 '가견(可見)'인가?(一處, 눈의 경계인 색色을 말한다)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는 색(色, 물질)이나, 그 일부분은 하나의 일입(一入) 속하며,

나머지 이식(耳識)과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과 색향미촉법(色香味觸法)의 구(九處, 오근ㆍ오경 가운데 앞의 색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조작이 없는 무작업(無作業)   없는 물질이라 하나니, 이를 불가견색(不可見色)이라 하며,

대할  있는 '유대(有對)'라는 것은 안의 안이설신의(眼鼻舌身意)와 밖의 색향미촉법(色香味觸法)의 십(十)이고 

대할  없는 '무대(無對)라는 것은 조작이 없는 무작(無作)의 색(色)으로, 유루(有漏) 무루(無漏) 등의 분별 또한 그와 같은 것다.

 

如經說:“色有三種:有色可見有對,有色不可見有對,有色不可見無對" 是故當知非但眼見故是色,內外十處能起五識者皆名色;因是色分故生無作色。

마치 경에서 “색(色, 물질)에는  가지가 있으니, 어떤 색(色)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는 가견유대(可見有對)이고, 

어떤 색(色)  수는 없으나 대할 수는 있는 불가견유대(不可見有對)이고, 

어떤 색(色)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불가견무대(不可見無對)이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단지 눈으로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色, 물질)이란 안과 밖의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과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십처(十處)에서 오식(五識) 일으킬  있는  모두를 색(色, 물질)이라 하며,  물질의 갈래 인하여 무작(無作)의 색(色, 물질) 생기게 되는 것.

 

復有四種色:內有受、不受、外有受、不受。復有五種色,所謂五塵。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 안에서 느끼는 내유수(內有受)와, 안에서 느끼지 않는 내불수(內不受)와 밖에서 느끼는 외유수(外有受)와 밖에서 느끼지 않는 외불수(外不受)이며,

다시 다섯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 이른바 이른바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진(五塵)이요.

 

復有一種色,如經說惱壞相。衆生身色名爲惱壞相;非衆生色亦名惱壞相,惱相因緣故亦名惱。譬如有身,則有飢、渴、寒、熱、老、病、刀、杖等苦。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 경에서의 설명한 바와 같이, 무너짐을 괴로워하는 '뇌괴상(惱壞相)'이라. 

중생의 몸을 이루고 있 색(色, 물질)이 무너짐을 괴로워하는 뇌괴상(惱壞相)이, 

비중생(非衆生) 색(色, 물질) 또한 무너짐을 괴로워하는 뇌괴상(惱壞相)이 하나니,  

뇌괴상(惱壞相) 인연 때문에 또한 ‘번뇌하는 뇌(惱)’라 것이니, 마치 몸이 있으면 배고프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춥고 덥고 늙고 병드는 칼과 몽둥이 등으로 인한 괴로움이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復有二種色,所謂四大、四大造色;內色、外色,受色、不受色,繫色、不繫色,有色能生罪、有色能生福,業色、非業色,業色、果色,業色、報色,果色、報色,隱沒無記色、不隱沒無記色,可見色、不可見色,有對色、無對色,有漏色、無漏色。如是等二種分別色。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으니, 

이른바(四)대로 만들어진 사대조색(四大造色), 안의 내색(內色) 바깥의 외색(外色), 

느끼는 수색(受色)과 느끼지 않는 불수색(不受色), 매인 계색(繫色)과 매이지 않은 불계색(不繫色),

능히 죄를 낳게 하 유색능생죄(有色能生罪)과 복을 낳게하는 유색능생복(有色能生福), 

업의 업색(業色)과 업이 아닌 비업색(非業色), 

업의 업색(業色) 결과의 과색(果色), 업색(業色) 보색(報色), 과색(果色)과 보색(報色), 

은몰무기색(隱沒無記色) 불은몰무기색(不隱沒無記色),   있는 가견색(可見色)   없는 불가견색(不可見色), 대할  있는 유대색(有對色)과 대할  없는 무대색(無對色), 유루색(有漏色) 무루색(無漏色) 등이니, 

이와 같은 등의  가지로 색(色, 물질) 분별하는 것이며, 

 

復有三種色,如上可見有對中說。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에서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는 가견유대(可見有對)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復有三種色:善色、不善色、無記色,學色、無學色、非學非無學色,從見諦所斷生色、從思惟所斷生色、從無斷生色。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 선의 선색(善色) 불선의 불선색(不善色) 선하지도 선하지 않은 무기의 무기색(無記色)이고,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학색(學色) 배움이 끝난 무학색(無學色) 학도 무학도 아닌 비학비무학색(非學非無學色)이며, 

견제(見諦)에서 끊는 바로부터 생기는 색(色) 사유(思惟)에서 끊는 바로부터 생기는 색(色) 끊을 바가 없음에 생기는 색(色)이요.

 

復有三種色:欲界繫色、色界繫色、不繫色,有色能生貪欲,有色能生瞋恚、有色能生愚癡,三結、三漏等亦如是。有色能生不貪善根、不瞋善根、不愚癡善根;如是等諸三善根應廣說。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나니, 욕계에 매인 욕계계색(欲界繫色) 색계에 매인 색계계색(色界繫色) 매이지 않은 불계색(不繫色)이고, 

탐욕을 내게 하는 색(色, 물질) 화를 일으키게 하 색(色, 물질) 어리석음을 일으키 하는 색(色, 물질)이요,

유신견(有身見)과 제법에 대한 의심과 계금취견(戒禁取見)의 삼결(三結) 세 가지의 (漏, 유루) 등도 역시 그와 같으니,

색(色, 물질) 탐내지 않는 선근(善根) 성을 내지 않는 선근(善根)과 어리석지 않은 선근(善根)을 능히 생기게 하나니,

이와 같은  가지의 모든 선근이 자세히 설명되어야 하리라.

 

有色能生隱沒無記法、能生不隱沒無記法——不隱沒無記有二種:有報生、有非報生者,如是等二種無記。

어떤 색(色, 물질) 선악의 분별없이 숨어있는 은몰무기(隱沒無記) 법을 내고 불은몰무기(不隱沒無記) 법을 내나니,  불은몰무기에는  가지가 있으니, 보생(報生) 있고 보생이 아닌 비보생(非報生) 있나니, 이와 같은  가지의 무기가 있으며,

 

復有四種色,如上 受不受中說;四大及造色三種 善、不善、無記;身業作無作色、口業作無作色;受色受戒時得律儀色、止色惡不善禁止也、用色如衆僧受用檀越所施之物、不用色餘無用之色。如是等四種色。

다시  가지의 색(色, 물질) 있으니, 앞에서 느끼고 느끼지 않는 수불수(受不受)에서의 설명과 같이, 사(四)와 만들어진 색(色, 물질)에  가지의 () 불선(不善) 무기(無記)이며, 

으로 조작하거나 조작함이 없는 신업작무작색(身業作無作色) 

으로 조작하거나 조작함이 없는 구업작무작색(口業作無作色)이며, 

받는 수색(受色)= 수계(受戒) 때에 율의(律儀) 얻는 것과 

금지하는 지색(止色)= 나쁘고 착하지 않은 일을 금지하는 것과 

수용하는 용색(用色)= 대중 스님들이 단월(檀越, 시주) 보시한 물건을 받아쓰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불용색(不用色)=  밖의 받아쓰지 않아야 할 색(色, 물질) 등이니, 

이와 같은 등의  가지의 색(色, 물질)이 있으며,

 

復有五種色:身作、無作色,口作、無作色,及非業色;五情、五塵;麤色、動色、影色、像色、誑色。

다시 다섯 가지의 색(色, 물질) 있으니, 몸으로 짓거나 몸으로 지음이 없 색(色, 물질) 

입으로 짓거나 입으로 지음이 없는 색(色, 물질)과 () 아닌 색(色, 물질)과, (五)(五)이며, 

거친 추색(麤色) 움직이는 동색(動色) 그림자의 영색(影色) 형상의 상색(像色) 속이는 광색(誑色)이요.

 

“麤色”者,可見、可聞、可嗅、可味、可觸,如土石等。

거친 '추색(麤色)'이라 함이란,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맛볼 수도 있고 접촉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마치 흙이나 돌 따위와 같은 것이요.

 

“動色”者有二種:一者、衆生動作,二者、非衆生動作 如水、火、風動作,地依他故動;下有大風動水,水動地。風之動樹,如酒自沸動,如磁石吸鐵,如眞珠、玉、車璖、馬瑙夜能自行,皆是衆生先世福德業因緣,不可思議。

움직이는 동색(動色)에는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의 동작(動作)이고, 둘째는 중생이 아닌 것의 동작이니, 마치 물과 불과 바람의 동작과 같은 것으로, 땅을 의지하고 있으나 다른 것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고, 아래로 강한 바람이 불어서 물이 움직이고, 물이 땅을 움직이며 바람은 나무를 움직이나니,

마치 술이 저절로 발효되면서 끓어 움직이는 것과 같으며, 또한 자석(磁石) 쇠를 빨아들이는 것과 같고, 진주(眞珠) () 자거(車渠) 마노(馬碯) 밤에 스스 빛을 발하는 것과 같나니,  모두는 중생들이 전생에 지은 복덕의 인연이요, 불가사의한 것이다.

 

問曰:影色、像色不應別說!何以故?眼、光明對淸淨鏡故,反自照見;影亦如是,遮光故影現,無更有法。

묻나니, 그림자의 영색(影色) 형상의 상색(像色) 따로 설명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 왜냐하면 눈의 광명이 청정한 거울을 대하기 때문에 자신을비추어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림자도 그와 같아서 광명을 차단하기 때문에 그림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그에 다시 다른 법이 없을 것입니.

 

答曰:是事不然!如油中見像黑,則非本色。如五尺刀中,橫觀則面像廣,縱觀則面像長,則非本面。如大秦水精中玷,玷中皆有面像,則非一面像。以是因緣故,非還見本像。玷 이지러질 점

답하나니, 그것은 그렇지 않은것이 다. 마치 기름에 형상을 비추어 본다면 검게 보이는 것이 그 본래의 빛깔이 아닌 것과 같으며, 다섯 자의 긴 칼을 옆으로 하여 얼굴을 비추어 보면 얼굴의 형상이 넓적하게 보이고, 세로로 세워 놓고 보면 얼굴 형상이 길쭉하게 보이지만, 그것이 본래의 얼굴이 아닌 것과 같은 것으로,

마치 대진(大秦) 수정(水精)의 이지러진 점(玷)과도 같으니, 이지러진 에서는 얼굴의 형상이 여럿으로 보이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본래의 형상을 비추어 주 것이 아닌 것이요.

 

復次,有鏡、有人、有持者、有光明,衆緣和合故有像生;若衆緣不具則像不生。是像亦非無因緣,亦不在因緣中;如是別自有法,非是面也。此微色,生法如是,不同麤色;如因火有煙,火滅煙在。

또한 거울이 있고, 사람이 있고, 그 거울을 가진 이가 있고, 광명이 있는 등의  () 화합한 까닭에 비추어진 형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만약 이러한 여러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형상이 비추어져 생기지 않을 것이니,  비추어진 형상 또한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역시 인연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 

이와 같이 달리 스스로의 법으로 있게된 것이지만 그것이 얼굴은 아니며,

이것은 미세한 색(色)으로 생기는 법이며, 이는 거친 추색(麤色)과는 같지 않나니, 마치 불로 인하여 연기가 있게 되고 불이 꺼져도 아직 연기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曰:若爾者,不應別說影!同是細色故。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이는 똑같이 미세한 색(色, 물질)이기 때문에 따로 그림자를 말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答曰:鏡中像有種種色,影則一色,是故不同。是二雖待形俱動,形質各異:影從遮明而現,像則從種種因緣生。雖同細色,各各差別。

답하나니, 거울 속의 형상에는 갖가지의 색(色, 물질)이 있지만 그림자는  하나의 물질이니,  때문에 같지 않은 것다.   가지는 비록 형상을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이는 것일지라도 형질(形質) 서로 다른 것으로, 그림자는 광명을 차단함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형상은 갖가지의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비록 똑같이 미세한이라 할지라도 서로 차별이 있는 것이다.

 

“誑色”者,如炎、如幻、如化、如乾闥婆城等,遠誑人眼,近無所有。如是等種種無量色摠名色衆。

속이는 '광색(誑色)'이라 함이란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요술과 허깨비와 같고 건달바성(乾達婆城)과 같은 것으로, 멀리서는 사람의 눈을 속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것도 없는것이라.

이와 같은 갖가지의 한량없는 색(色, 물질)을 통틀어서 색중(色衆, rūpa-skandha, 색온)이라 하는 것이다.

 

受衆者,如經說:“因眼緣色生眼識,三事和合故生觸,是觸卽時三衆共生,所謂受、想、行。”

느낌의 '수중(受衆, 수온)'이라 함이란, 마치 경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눈으로 인하여 색(色, 물질)을 반연하여서 안식(眼識)이 생기는 것이며, 이러한 세 가지가 화합한 때문에 접촉의 촉(觸)이 생기나니, 이 촉(觸)은 즉시 세 가지가 함께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느낌의 수(受)와 생각의 상(想)과 지어감의 행(行)이 그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