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三三昧義 第三十二卷 第二十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33. 초품 중 사무량(四無量)의 뜻을 풀이함 7

 

非有想非無想處 或見諦斷 或思惟斷。見諦斷者 信行 法行人 用見諦忍斷。

何者是, 二十八使 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 及此起心不相應諸行。

思惟斷者 學見道用思惟斷。何者是, 思惟所斷三使 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

及此起心不相應諸行 及無垢非有想非無想處。

비유상비무상처는 혹은 견제(見諦, 견제도)에서 끊어 낼 수 있기도 하고 혹은 사유(思惟)만으로 끊어 내기도 하니, 

견제(見諦, 견제도)에서 끊는다 함은 믿음으로 행하고 법답게 행하는 사람이 견제의 지혜= 見諦忍(견제인, 무생법인)을 써서 끊어 내는 것이며, 

무엇을 끊게 되는 것인가 하면, 곧 28사(二十八使, 근본번뇌) 및 이에 상응하는 유루의 비유상비무상처와 이러함에서 일으난 마음에 서로 상응하지 않는 제행으로써 끊으며, 

사유(思惟)에서 끊는다 함은 견도를 배운 이가 사유를 써서 끊는 것이니,

무엇을 끊는가 하면, 곧 3사(三使, 탐진치) 및 이에 상응하는 비유상비무상처와 여기에서 일어나는 끊고자하는 마음이 앞의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제행과 때가 없는 무구(無垢)의 비유상비무상처이라.

二十八使(28사)= 10근본번뇌를 3계 각각으로 세분하여, 욕계에 10가지, 색계에 9가지, 무색계에 9가지의 총 28가지가 성립된다.

10근본번뇌를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에 따라 나누면 단순계산상으로는 30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3계 전체에 걸쳐 그 수가 총 28가지인데, 그 이유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 따르면 진(瞋)은 오직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
즉, 욕계에는 탐 · 진 · 만 · 무명 ·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 · 의(疑)의 10가지 근본번뇌가 모두 존재하지만,

색계에는 진(瞋)을 제외한 9가지 근본번뇌만이 존재하며, 무색계도 색계와 마찬가지로 진(瞋)을 제외한 9가지 근본번뇌만이 존재한다.

사(使)는 결사(結使)라고도 하는데, 결사(結使)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묶어서 부린다'로, 속박[結]과 부림[使]의 뜻이 합쳐진 낱말이다. 불교 용어로서의 결사(結使)는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로, 번뇌가 유정의 몸과 마음을 미혹의 세계에 속박하고 유정을 따라다니며 몰아대어 악업을 짓게 부리고 그 결과 유정이 3계6도의 생사윤회를 반복하는 것을 부각시켜 말하는 명칭이다.

 

四無色中攝心不相應諸行 是非心, 非心數法 非心相應。

受衆 想衆及此相應行衆 是心數法 亦心相應。心意識 獨心。

4무색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음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 심불상응(心不相應)의 제행(諸行)은 마음도 아니요,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心數法)도 아니요, 마음과 서로 상응하는 심상응(心相應)도 아니요, 

느낌의 受衆(수중, 수온)과 생각의 想衆(상중, 상온) 및 이와 상응하여 지어가는 行衆(행중, 행온)은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心數法)이니, 역시 마음과 서로 상응하는 것이요,

심(心) 의(意) 식(識) 가운데에서 심불상응(心不相應)의 제행(諸行)은 독심(獨心)이다.

 

심소心所·심상응행心相應行 = 5위五位의 하나. 심소유법心所有法의 준말. 심상응행이란 말은 심소가 반드시 심왕(心王)과 함께 일어나므로 이와 같이 말함.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심왕心王에 부수적으로 일어나, 대상의 부분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 감각되지도 않고 마음과 함께 일어나지도 않는 것. 이를테면, 현상들 사이의 관계, 작용, 성질, 세력, 명칭 등.

 

四無色 或有隨心行非受相應 

4무색은 혹은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 느낌=수온(受蘊)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 것도 있고,

或受相應非隨心行 

혹은 느낌=수온(受蘊)과 서로 상응하면서도 마음을 따라 행하지 않기도 하고,

或隨心行亦受相應 

혹은 마음을 따라 행하기도 하면서 한편 느낌=수온(受蘊)과 서로 상응하기도 하고,

或非隨心行非受相應。

혹은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면서 느낌=수온(受蘊)에도 서로 상응하지 않기도 하니, 

隨心行非受相應者 隨心行心不相應諸行及受。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도 느낌=수온(受蘊)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다고 함은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제행(諸行) 및 느낌=수온(受蘊)이요,

受相應不隨心行者 心是。

느낌과 서로 상응하면서도 마음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함은 (청정한) 마음 그 자체요.

隨心行亦受相應者 想衆及此相應行衆。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도 한편 느낌과 서로 상응한다 함은 생각= 想衆(상중) 및 여기에 서로 상응하여 지어가는= 行衆(행중)이요,

非隨心行非受相應者 除隨心行心不相應諸行 餘殘心不相應諸行。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면서도 느낌=수온(受蘊)과 서로 상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이 서로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의 마음도 서로 상응하지 않는 모든 제행(諸行)이니,

 

想相應 行相應 亦應如是說。

생각= 상온(想蘊)에 상응하고, 행위= 행온(行蘊)에 상응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설명하는 바이니라.

 

虛空處 或從身見因 不還與身見作因,

허공처(虛空處, 공무변처)는 혹은  5취온을 실재하는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라고 집착하는 신견(身見, 유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는 신견(身見, 유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지 않기도 하고,

或從身見因 亦還與身見作因,

혹은 신견(身見, 유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或不從身見因 亦不還與身見作因。

혹은 신견(身見, 유신견)을 원인으로 하지 않은 채 다시 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지 않기도 하나니, 

 

從身見因 不還與身見作因者 除過去現在 見苦斷諸使 及此相應虛空處,

신견(身見, 유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지 않는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괴로움을 보고 그러한 근본번뇌= 使(사, 수면번뇌)와 그러함으로 상응하는 허공처(공무변처)를 없애는 것이며,

 

사(使)는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가 유정을 따라다니면서 유정의 마음을 진리에 어긋나게 부려서 악업을 짓게 하고 그 결과 유정이 미계(迷界) 즉 미혹의 세계인 3계6도(三界六道)에서 계속 유전(流轉)하는 것, 즉 생사윤회를 반복하는 것을 부각시켜 말하는 명칭이다. 또한, 사(使)의 이러한 따라다니면서 부림의 의미는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수면(隨眠)과 그 뜻이 같다.

결사(結使)에서, 속박의 의미인 결(結)도 번뇌의 다른 이름이고 부림의 의미인 사(使)도 번뇌의 다른 이름인데, 불교 일반의 번뇌론에서 결(結)은 흔히 9결(九結)을 뜻하고 사(使)는 흔히 10사(十使)를 뜻한다. 이러한 이유로 결사에 대해 말할 때 종종 9결10사(九結十使)라고 표현한다.

 

亦除過去現在 見集斷諸邊結 及此相應虛空處, 亦除未來世中身見 及相應虛空處 亦除身見生老住滅 餘殘有垢虛空處。

또한 과거와 현재의 10근본번뇌=견(見, 번뇌)이 모여진 집(集)과 모든 치우친 번뇌= 邊結(변결)과 상응하는 허공처(虛空處, 공무변처)를 없애는 것이며,

미래 세상에서의 신견(身見, 유신견)과 상응하는 허공처(虛空處, 공무변처)를 제외하며,

더불어 신견(身見, 유신견)과 생ㆍ노ㆍ주ㆍ멸(生老住滅) 및 때가 있는 유구(有垢)의 허공처를 없애는 것이다.

 

견(見)은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로 세분되는데, 이렇게 세분하면 탐 · 진 · 만 · 무명 ·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 · 의(疑)의 10가지 근본번뇌가 있게 되며, 이들을 통칭하여 10근본번뇌(十根本煩惱)라 하며, 10수면(十隨眠) · 10사(十使) · 10견(十見) 또는 10대혹(十大惑)이라고도 한다.

 

從身見因 亦還與身見作因者 上所除者是。

혹은 신견(身見, 유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란, 위에서 제거한 112개의 견혹(見惑)과 16개의 수혹(修惑)이 이에 해당하며, 

 

亦不從身見因 亦不還與身見作因者 無垢虛空處。

혹은 신견(身見, 유신견)을 원인으로 하지 않은 채 다시 신견을 가지는 원인이 되지 않기도 하는 것이란, 때가 없는 무구(無垢)의 허공처(虛空處)이며, 

 

識處 無所有處 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

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四無色定 一切有因緣 亦與因緣。

4무색정은 모두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며,

또한 인연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라.

 

虛空處, 或次第不與次第緣, 或次第亦與次第緣, 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

허공처에서, 혹은 앞의 찰라심이 뒤의 찰라심의 원인이 되는 차제연(次第緣, samantara-pratyaya, 등무간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이 아니면서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으니, 

 

次第 不與次第緣者, 未來世中欲生心 心數法虛空處 及阿羅漢 過去現在最後滅時 心心數虛空處。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란, 미래 세상에 생기고자 하는 마음과 그 생기려는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 및 아라한이 과거ㆍ현재에서 최후로 멸도에 들고자 할 때의 그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이며, 

 

次第 亦與次第緣者 除過去 現在阿羅漢最後滅時 心心數虛空處 餘殘過去 現在心心數法虛空處。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함은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마지막에 멸도에 들고자 할 때의 그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를 제외한 나머지의 과거ㆍ현재의 마음과 그러한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이며, 

 

非次第 亦不與次第緣者 除未來世中 欲生心心數虛空處 餘殘未來世中 心心數虛空處 及心不相應諸行。

차제연이 아니면서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란, 미래 세상에 생기려는 마음과 그 생기려는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를 제외한 나머지의 미래 세상의 마음과 그러한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 및 그러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제행이니, 

 

識處 無所有處 亦如是。

식처와 무소유처 역시 이와 같으니라.

 

非有想非無想處, 或次第不與次第緣, 或次第亦與次第緣, 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

비유상비무상처는 혹은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차체연이면서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도 아니며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으니, 

 

次第不與次第緣者 未來世中 欲生心心數法 非有想非無想處 及阿羅漢過去 現在最後滅時 心心數法 非有想非無想處 及滅受想若生若欲生。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란,

미래 세상에 생겨나고자 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 및 아라한이 과거ㆍ현재에 있어서 최후에 멸도에 들고자 할 때의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 및 수온(受蘊)과 상온(想蘊)을 멸(滅)하는 멸수상(滅受想)이 생기거나 생기고자 하는 것이며, 

 

次第亦與次第緣者 除過去 現在阿羅漢最後滅時 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 餘殘過去 現在心心數 非有想非無想處。

차제연이면서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이란,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최후에 멸도에 들고자 할 때의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을 제외한 나머지의 과거ㆍ현재의 마음과 그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이며, 

 

非次第亦非與次第緣者 除未來世中欲生 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 餘殘未來世中 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 除心次第心不相應諸行 餘殘心不相應諸行。

차제연이 아니면서도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이란, 미래 세상에 생기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를 제외한 나머지 미래 세상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와 마음의 차제연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이다.

 

四無色中攝 諸心心數法 有緣 亦與緣緣, 四無色攝心不相應諸行 非緣 與緣緣。

그리고 4무색은 모든 마음과 그러한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과 연(緣)이 있거나 또는 가깝거나 먼 대상이 연이 되는=緣緣(연연, ālambana-pratyaya)을 포함 하며,

4무색은 마음과 그 마음과 서로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과 연(緣)이 아니거나 가깝거나 먼 대상이 연이 되는=緣緣(연연) 연연을 포함하며,

 

연연(緣緣)에서 심식(心識)은 능연(能緣)이고 육경(六境)은 소연(所緣)입니다. 풀이하면 마음속의 현상과 작용인 생각이 육경(六境)을 갈무리하고 육경은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

 

四無色皆是增上 亦與增上緣。

如是等種種分別四無色 如『阿毘曇』分中說 此中應廣說。

4무색은 모두가 일체의 간접적인 연= 增上緣(증상연, adhipati-pratyaya)이면서 또한 증상연이 되어 주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4무색을 분별함은 아비담분(阿毘曇分) 가운데에서 설하는 바와 같으나 여기에서 다시 자세히 말한 것이니라.

 

問曰, 摩訶衍中四無色云何?

묻나니, 마하연(대승)에서의 4무색은 어떠한 것입니까?

 

答曰, 與諸法實相共智慧行 是摩訶衍中四無色。

답하나니, 제법의 실상(實相)에 맞추어 지혜를 행하는 것이 마하연의 4무색이다.

 

問曰, 何等是諸法實相?

묻나니, 어떠한 것이 제법의 실상입니까?

 

答曰, 諸法諸法自性空。

답하나니, 제법과 제법의 자성이 공한 것이다.

 

問曰, 色法和合分別因緣故空 此無色中云何空?

묻나니, 물질의 색법(色法, 색온)은 화합ㆍ분별ㆍ인연으로 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무색(無色)에서는 무엇을 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色是眼見 耳聞麤事能令空 何況不可見 無有對 不覺苦樂而不空?

답하나니, 물질적 존재로써 변화하고 소멸되는 것이나,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인 색(色)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친 것이니 능히 공하다고 하거늘, 하물며 볼 수 없고 대할 수 없고 고락을 느낄 수 없는 무색(無色)이 어찌 공하지 않을 수 있으리.

 

復次 色法分別 乃至微塵皆散滅歸空,

是心心數法 在日月 時節 須臾頃 乃至一念中不可得。

또한 물질의 색법(色法, 색온)을 분별하여 미진(微塵)에까지 이르게 되면 모두가 흩어져 빈 공(空)으로 돌아가나,

이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심수법은 해와 달과 시절과 나아가서는 잠깐의 수유(須臾)에 이르기까지 한 생각(실상)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


是名四無色定義。如是等種種 略說四無色。

이러한 것이 4무색정의 정의(定義)이니, 이와 같이 갖가지로 4무색정을 간략히 설명하였느니라.

 

大智度論卷第二十 終  대지도론 제 20 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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