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佛法中(시불법중) 亦有犢子比丘說(역유독자비구설)
이 불법 안에서도 독자부의 비구들이 말하기를
독자비구(犢子比丘)=Vātsīputra. 독자부(Vajiputtiyā)는 20부파 가운데 하나로 상좌부에서 분파되었다고 한다. 용수에 의하면 '사리불아비담론(舍利弗阿毘曇論)'은 독자부의 소의논서라 한다.
如四大和合有眼法(여사대화합유안법) 如是五衆和合有人法(여시오중화합유인법)
지수화풍의 4대가 화합해서 眼法=안식을 이루듯이, 5衆=오온이 화합해서 사람=人法이 있다고 하였다.
4대(大)=caturmahābhūta.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 견고함을 본질로 하는 지대(地大, pṛthivi-dhātu), 습기를 모으는 수대(水大, ab- dhātu), 열을 본질로 하며 성숙작용을 지니는 화대(火大, tejo-dhātu), 생장작용을 하는 풍대(風大, vāyu-dhātu)를 말한다.
'犢子阿毘曇'中說(독자아비담중설) 五衆不離人(오중불리인) 人不離五衆(인불리오중)
독자부의 논장 '아비담'에서는 “5중=오온이 사람을 여의지 않고, 사람 또한 5중=오온을 여의지 않으니,
아비담(阿毘曇)= Abhidharma. 그 어의는 ‘법(dharma)에 관하여(abhi)’라는 의미로 아비달마(阿毘達磨)․비담(毘曇)이라 음역하거나 대법(對法)․무비법(無比法)․승법(勝法) 등으로 의역한다. 이 중 무비법․승법은 dharma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불제자들의 해석을 아비담이라고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 말은 불제자들의 아비담에 대한 이해를 묶은 책인 논서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기원전 2세기 부파불교시대부터 만들어진 논서들을 모아 논장(abhidharma- pitaka)이라 부른다. 여기에 원시불교시대에 성립된 경장과 율장을 더해 3장(tri-pitaka)이 된다. 스리랑카 상좌부와 북쪽의 설일체유부에서는 6족론에 『발지론』을 더해 7론을 논장으로 삼았는데, 뒤에 이 7논을 주석한 아비담이 다수 만들어진다. 이렇듯 본래 아비담의 취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해명하려던 것이었는데, 시대가 지남에 새로운 교리체계로 발전되는 등 그 분석방식이 지나치게 세밀해지면서 오히려 번쇄함을 더하게 된다.
이는 결국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진의를 일탈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不可說五衆是人(불가설오중시인) 離五衆是人(이오중시인)
5중=오온이 곧 사람이라거나 5중=오온을 여읜 것을 사람이라 말할 수 없으니,
人是第五不可說 法藏中所攝(인시제오불가설 법장중소섭)
사람이란 다섯 번째의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장(부처님의 모든 가르침) 안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독자부(犢子部)의 논장(論藏)에 “오온(五蘊)이 사람을 여의지 않고 사람도 오온(五蘊)을 여의지 않는다고 하여
오온(五蘊)에 무언가 정(定)해진 사람이라는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오온(五蘊)을 여의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를 지나 제 오대(第五大)가 되는 것이므로, 일체법의 그 어딘가에 무언가 정(定)해진 사람이라는 실상(實相)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不可說 )을 법장(法藏)으로 삼아 삿된 생각을 감싸고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說一切有道人輩言(설일체유도인배언) 神人(신인) 一切種一切時(일체종일체시)
설일체유부의 도인들은 '신과 사람=神人은 온갖 종자와 온갖 때와
*일체종(一切種)= 일체법과 일체중생에 반야바라밀이라는 지혜가 씨앗으로 심어져 있다는 뜻.
一切法門中 求不可得(일체법문중 구불가득) 譬如兔角龜毛常無(비여토각구모상무)
온갖 법문 안에서 구해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과 같이 없는 것이다'고 하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라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말하기를, “신(神)과 사람 일체법과 일체중생에 반야바라밀이라는 씨앗이 심어져 있어 무시이래로 끊어지지 아니하여 일체의 때에 일체법을 통해 열반문에 이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으므로 구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비유하자면 실상(實相)을 구하여 하는 것이 토끼의 뿔 거북이의 털과 같아서 항상 함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Sarvāstivādin. 유부(有部) 또는 설인부(說因部, Hetuvādin), 음역하여 살바다부(薩婆多部)라고도 한다. 기원전 1세기 경 상좌부에서 분파되었는데, 부파불교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다. 바수미뜨라[世友]의 설을 이 부파의 정통설로 간주하는데, "설일체유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든 법(一切法)이 존재하다(有)고 설명하는 부파(部)로,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걸쳐 법의 실체가 존재한다. 즉, 법의 실체는 항상 존재한다"라는 뜻의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는 2세기 중엽 인도에서 카니슈카(재위 127~151)의 보호 아래 500인의 아라한이 편찬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과 4세기에 세친(316?~396?)이 설일체유부의 설을 근간으로 하면서 필요시 경량부(經量部)의 설로 설일체유부의 설을 비판한 '구사론(俱舍論)'으로, '구사론'에서는 일체법을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3세(三世)란 과거 · 현재 · 미래의 3세를 말하는 것이며 일체의 법이 이 3세에 걸쳐서 실재한다는 것이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라는 주장의 근저이다.
이 주장이 근본불교의 무상설(無常說)이나 무아설(無我說)과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유부(有部)에서는 현재세(現在世)를 일찰나(一刹那)로 보고 법체(法體)는 항유(恒有)이지만 찰나멸(刹那滅)로서 미래에서 현재를 통과하여 과거에 낙사(落謝)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유부(有部)의 설이 단순한 실재론(實在論)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즉 심리현상이 찰나멸인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으나 상주불변(常住不變)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변화는 결국 찰나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부(有部)에서는 인간이나 집 · 산 등 찰나찰나의 연속 위에 성립하는 것은 실유(實有)의 법(法)으로는 되지 못하고 색(色)이나 형(形) · 향(香) · 맛 등 찰나에 존재하는 실유의 법에 결합하여서 성립하는 것도 가법(假法)이라고 말한다.
오위칠십오법, 유부(有部)에서는 실유의 법이란 이와 같이 가법으로서의 현상을 성립시키는 기체(基體: 要素)라고 하였으며, 그 기체들의 개수를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헤아려 다음과 같이 총 72법이 있다고 하였다.
물질계의 실유의 법(色法): 11종,
정신계의 법: 마음의 주체(心王) 1종,
감각 · 의지 · 욕망 등의 마음의 작용의 법(心所法): 46종,
물질에도 정신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법(心不相應行): 14종.
유부(有部)에서는 이들 72법은 연기(緣起)되는 존재라고 해서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밖에 허공(虛空)과 택멸(열반), 비택멸의 연기(緣起)한 존재가 아닌 것 3종을 통틀어 무위법(無爲法)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유부(有部)에서는 일체법("모든 법 · 법 전체")을 유위법 4위와 무위법 1위의 5위로 조직하였고, 다시 그 5위는 75종의 법으로 분류된다고 하여 일체법("모든 법 · 법 전체")을 5위 75법으로 조직하였다.
이러한 체계는 객관적 세계의 구성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고 주체적 현실에서의 일상생활의 성립, 선악의 행위와 결과의 관계, 마음의 자세, 번뇌와 그 단멸(斷滅)에 관한 이론체계를 의도한 것이다.
復次十八界(부차십팔계) 十二入(십이입) 五衆實有(오중실유) 而此中無人(이차중무인)
또한 “18계와 12입과 5중=오온이 실제로 있는 것이나, 이 가운데 사람의 법이라고 할 것은 없다”고 한다.
十八界(십팔계, dhātu)=여섯 가지 내적 감각 기관인 육근=안계(眼界), 이계(耳界), 비계(鼻界), 설계(舌界), 신계(身界), 의계(意界),
여섯 가지 외부 대상의 육경=색계(色界), 성계(聲界), 향계(香界), 미계(味界), 촉계(觸界), 법계(法界).
외부 대상에 내부 대상이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의식인 육식=안식계(眼識界), 이식계(耳識界), 비식계(鼻識界), 설식계(舌識界), 신식계(身識界), 의식계(意識界).
dhātu란 계(界), 요소, 원소, 원리, 성질, 어근, 종류란 뜻이 있다. '청정도론(淸淨道論)'이나 '분별론(分別論)' 주석에서는 윤회의 고통을 일으키고 중생에게 괴로움을 부여하기 때문에 ‘계’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구사론'에서는 종(gotra)의 의미로, 산에 있는 철이나 구리 등 많은 종류를 광물(dhātu)이라고 하는 것처럼 18종을 십팔계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분류한다는 의미에서 종류[요소]라고도 한다. 금은의 요소가 금은으로 분류되듯 세속적인 것들은 행위와 상태로 분류되어 윤회의 여러 괴로움을 나누기 때문에 종류라고도 부른다.
존재의 요소는 아비달마에서는 분석적이고 법의 요소로 이해했지만 대승에 와서는 점차 바르게 알아야 할 인식의 대상, 식[18계 중 6식과 색경(色境), 성경(聲境), 향경(香境), 미경(味境), 촉경(觸境)의 11식]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번뇌의 방해 요소, 집착하지 말아야 할 대상, 제거하고 벗어나야 할 것으로 의미가 변천되었다.
十二入(십이입)=십이처, 十二處. dvādaśāyatana. '구사론'에 따르면 '처(處, āyatana)'는 마음[心]과 심리현상[心所]이 생겨나는 문 또는 마음과 심리현상을 발생·성장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십이처는 고정불변의 인식 주체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인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12 영역을 의미한다.
'구사론'에서는 십이처의 가르침이란 붓다가 물질 현상[色]을 불변의 자아[我]로 착각하는 부류의 중생을 위해 설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즉 십이처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오근(五根: 눈·귀· 코·혀·몸 등의 5가지 인식능력)과 오경(五境: 오근 각각에 대응하는 색깔[형태],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의 5가지 인식대상)의 10종류의 물질현상으로 해체하는데 초점이 있다.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는 영역은 우선 인식능력인 근(根, indriya)과 그것의 작용대상인 경(境, viṣaya)으로 대별된다. 근에는 시각능력인 눈[眼], 청각능력인 귀[耳], 후각능력인 코[鼻], 미각능력인 혀[舌], 촉각능력인 몸[身] 등의 오근에 사유능력[意, manas]을 더한 6종류, 즉 육근(六根)이 있다. 경 역시 육근 각각에 대응하여 눈의 작용대상인 색깔·형태[色], 귀의 작용대상인 소리[聲], 코의 작용대상인 냄새[香], 혀의 작용대상인 맛[味], 몸의 작용대상인 감촉[觸]의 오경에 사유대상[法, dharma]을 더한 6종류, 즉 육경(六境)이 있다.
『구사론』은 이상의 6가지 인식능력과 그 각각에 대응하는 6가지 인식대상 각각의 결합[觸]을 통해 시각[眼識], 청각[耳識], 후각[鼻識], 미각[舌識], 촉각[身識], 사유[意識] 등 6종류의 인식, 즉 육식(六識)이 매 찰나(刹那) 생겨날 뿐임을 지적하였다. 이리하여 십이처의 설법이 불변의 인식주체를 부정하는 무아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更有佛法中 方廣道人言(갱유불법중 방광도인언) 一切法不生不滅(일체법불생불멸)
空無所有(공무소유) 譬如兔角龜毛常無(비여토각구모상무)
또한 불법의 방광도인이 말하기를 '온갖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이 마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과 같아서 항상하지 않다' 하나니,
(또, 불법(佛法)의 방광[方廣 Vaipulya 비불략(毘佛略) 대승(大乘)의 총칭(總稱)]을 닦는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일체법은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어서, 생겨남과 사라져 없어짐의 그 어딘가에 정해진 실상(實相)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되는 것으로, ‘공(空)’하여 정(定)해진 자성(自性)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인 것이, 비유하자면 마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이의 털과 같아서 항상 함의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란 없는 것이다.”)
방광도인(方廣道人)=대승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공(空)을 무(無)로 오해하는 사람들, 대승방광의 공한 이치를 잘못 집착하여 공견(空見)에 떨어진 이 또는 소승 중 부불법(附佛法)의 독자도인(獨子道人), 대승 중 부불법의 외도를 방광도인.
如是等一切論議師輩(여시등일체론의사배) 自守其法(자수기법) 不受餘法(불수여법)
此是實餘者妄語(차시실여자망어)
이와 같은 일체의 논사=論議師들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법만을 고수하고 남의 법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말이다'고 하니,
若自受其法(약자수기법) 自法供養(자법공양) 自法修行(자법수행)
만일 스스로가 그 법을 받아들여 자기의 법에만 공양하고 자기의 법만 수행하면서
他法不受不供養(타법불수불공양) 爲作過失(위작과실)
남의 법을 받아들이거나 공양하지 않는다면 허물이 된다.
若以是爲淸淨(약이시위청정) 得第一義利者(득제일의리자)
則一切無非淸淨(즉일체무비청정)
만일 이로써 청정을 삼아 제일가는 이익을 얻는다고 한다면 온갖 것이 청정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만약 이렇게 제일의(第一義)를 통해 마음과 지혜의 청정(淸淨)함을 터득할 수 있게 되면 날카로운 지혜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즉 일체법의 그 어디에도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어서 청정(淸淨)함을 통해 그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고 하는 그 어떠한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彼一切皆自愛法故(피일체개자애법고)
왜냐하면 저 일체란 모두 스스로 애착하는 특성인 까닭이니라.
(저들 일체는 모두 스스로 애착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問曰(문왈) 若諸見皆有過失(약제견개유과실) 第一義悉檀何者是(제일의실단하자시)?
묻나니, 모든 견해가 모두 (제 각각의) 허물이 있다면, 이 제일의실단은 어떻게 해서 옳다고 하는가?
答曰(답왈) 過一切語言道(과일체어언도) 心行處滅(심행처멸) 遍無所依(편무소의)
不示諸法(불행제법)
답하나니, 온갖 언어의 길을 초월하였으며, 마음으로 닿을 곳이 없으며,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무런 법도 보이지 않는다.
諸法實相(제법실상) 無初無中無後(무초무중무후) 不盡不壞(불진불괴)
是名第一義悉檀(시명제일의실단)
제법의 실상은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나중도 없으며 다함도 없고, 무너짐도 없나니, 이것을 제일의실단이라 하느니라.
(생사고해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뿐인 참된 길(道)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모든 말들을 끊어내고, 마음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번뇌의 불길이 꺼져 일체법의 그 어디에도 아무런 기댐이 없으면, 오온(五蘊)을 비롯한 12입(入) 18계(界)라는 제법(諸法)의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 지녀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고 일러줄 수 있게 되나니, 제법(諸法)의 처음과 중간 맨 끝의 그 어디에도 무언가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없는 것이어서, 다하지 않게 되고 무너지지 않게 되는 이러함을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如摩訶衍義偈中說(여마하연의게중설)
마치 마하연의의 게송=偈 가운데 설하는 바와 같으니,
*摩訶衍=대승, 大乘 마하연(摩訶衍),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야나(摩訶夜那), 상연(上衍), 상승(上乘)
‘대승(大乘)’이라고 한역한 산스끄리뜨어 ‘마하야나(mahayāna)’는 ‘큰 탈 것’을 뜻한다. 최초로 ‘마하야나’라는 단어를 쓴 경(經)은 한역 경전권에서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으로 알려진 『팔천반야경(八千般若經, Aṣṭāsa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임으로 미루어볼 때, 대승은 반야부의 공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승은 부파 시대 이후에 발생한 신불교 운동 세력이 기존의 교단들을 비판하며 ‘소승(小乘)’, 즉 ‘히나야나(hīnayāna)’라 하고, 자신들을 ‘더 높은’ 불교로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대승은 공사상과 보살사상 그리고 육바라밀 또는 십바라밀의 체계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지역적으로 중국, 한국, 일본, 북 베트남 등 한역 경전권의 불교와 티벳불교를 통칭한다.
語言盡竟(어언진경) 心行亦訖(심행역흘)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으며,
不生不滅(불생불멸) 法如涅槃(법여열반)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일체법이 인연화합이 없이는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법의 한결같음(如)이 열반인 것이라.)
說諸行處(설제행처) 名世界法(명세계법)
모든 지어감=行함을 말한 곳을 세간의 법이라 하고
說不行處(설불행처) 名第一義(명제일의)
지어감이 없음을 말한 곳을 ()제일의제라 한다.
(“세계 속에 펼쳐지는 인연화합의 현상과 작용(法)”이라고 부르거니와
모든 곳에 대해 자세히 살펴서 그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지녀서는 안된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을 “제일의(第一義)”라고 부릅니다.)
一切實一切非實(일체실일체비실) 及一切實亦非實(급일체실역비실)
온갖 진실함과 진실 하지 않음과 온갖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함과
一切非實非不實(일체비실비불실) 是名諸法之實相(시명제법지실상)
온갖 진실 아니기도 하고 진실 아닌 것도 아닌 것, 이들 모두를 법의 실상(實相)이라 하니라.
(일체법의 실상(實相)에 대해 일체법의 그 어딘가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는 삿된 견해도 지니지 않게 하여
일체법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다거나 있지 않다거나 하지 않고
일체법에 정(定)해진 실상(實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하는
이러함을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如是等處處 經中說(여시등처처경중설) 第一義悉檀(제일의실단)
이와 같이 경전의 곳곳에서 제일의실단을 말씀하셨지만,
是義甚深(시의심심) 難見難解(난견난해) 佛欲說是義故(불욕설시의고)
說'摩訶般若波羅蜜經'(설마하반야바라밀경)
그 이치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니,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말씀하시기 위해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설하신 것이니라.
(이와 같이 곳곳에서 경(經)을 통해 제일의실단(第一義悉壇)을 말씀하셨거니와, 이러한 정의(定義)를 통해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불도(佛道)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므로, 바른 견해 지니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나니,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정의(定義)를 말씀해주시고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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