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第十二

四聖諦品(사성제품) 第八

 

[[이전의 [명호품] 여래의 身業으로서 방편에 따른 명호가 같지 않음 설한 것이며, 품은 여래의 방편에 따른 語業으로서 방편에 따른 설법이 4성제를 여의지 않음을 설한다.

諦란 실다운 뜻이니, 여래가 네 가지 실다운 뜻을 설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믿음과 이해를 일으키게 함을 밝힌 것이다.

[문] 무슨 이유로 많은 것을 설하지 않고 다만 네 가지만 설했습니까?

[답] 이 네 가지 의 뜻이 많은 것을 다 포함하기 대문이니, 일체 세간이 苦諦와 集諦를 여의지 않고 일체의 출세간이 滅諦와 道諦를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모든 고(苦)를 멸진하는 것을 멸제라 하고, 열반을 멸진하는 것을 도제라 하는데, 3승의 열반은 얻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을 도제라 칭한다. 그리하여 2승은 공적에 나아가고, 보살은 정토에 많이 나며, 또 정토가 나머지 타방에 있다고 미루며, 또 보살이 미혹을 남겨 중생을 윤택케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약 일부러 번뇌를 남기지 않으면 반드시 증득할 열반이 있고 혹은 타방의 정토에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4승의 열반은 다 얻을 게 있는 것이다.

또 염부제에서 정각을 성취한 보리수[佛木樹]와 草座는 化佛이며, 위쪽 마혜수라천의  紅蓮華上佛은 실다운 과보이니, 그 지혜에 모두 좋고 싫어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승의 4제는 苦集을 싫어하고 滅과 道를 기뻐하는 것을 4제 법륜이라 칭하지만, 이 1승의 경전에서 4성제를 말한 것은 실다운 뜻이니, 그 이유는 苦의 성품이 眞임을 요달해서 좋고 싫어함이 없기 대문이며, 타방에 별개의 불찰과 별개의 정토가 없기 때문이며, 오염과 청정, 열반과 생사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기 때문에 도를 닦는 자가 법대로[如法] 머물러 법대로 닦음으로써 싫어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법계에는 去來의 성품이 없으며 住處의 성품이 없어서 몸의 티끌과 모공과 마음과 경계가 다 법성에 부합하는 것이니, 이같이 信解하고 이같이 수도하기 때문에 1승의 4성제와 3승의 4제가 각각 차별이 있어서 각각 신해함이 있는 것이다. 이는 여래께서 근기에 의거한 방편의 가르침이지 범부가 세운 것은 아니니, 지금 수도하는 자는 다만 자기의 信解力을 따라서 편리한 곳에 지을지언정 가히 일례로 그렇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가령 {법화경}에서 성문인을 위해 4제법을 설하고, 연각인을 위해 12인연을 설하고, 모든 보살을 위해 6바라밀을 설한 것도 또한 여래의 경우[] 따른 설이며, 이 경전 [십지품]에서 5지 보살이 열 가지 諦觀을 지어서 4성제로 體를 삼고 6지 보살이 열 가지 12연생관을 짓는 것은 여래의 지위에 따라 닦아 나가는 법이다.

총체적 요점을 말한다면, 이 4성제와 12연생 법문은 단지 일체 성인과 범부가 불법을 믿고 즐기는 마음을 일으킨 것인데, 道가 원만하지 않은 자는 모두 초심에서부터 자타의 苦를 관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해 道法을 즐겨 구하면서도 대승과 소승의 우열이 같지 않은 데 의거하기에 4제와 12緣이 각기 다른 것이다. 다만 일체의 세간법을 4제의 뜻으로 회통하지 못함이 없으니, 이는 여래의 語業으로 설법이 두루하기 때문이다.

{영락경}에서 9乘의 법문을 세운 뜻은 3승이 4제와 12緣을 번갈아 씀으로써 제각기 스스로 도를 얻는 것이 차별됨을 밝힌 것이다. 9승이란 ① 성문의 성문승이며, ② 성문의 보살승이며, ③ 성문의 연각승이다. 이 같은 3승이 똑같이 사제와 12연생법을 관해서 각각 스스로 도를 얻는 것이 같지 않으니, 이처럼 3승 중에 각각 3통(通)(성문도 3승법에 통하고, 연각과 보살도 3승법에 통하기 때문에 3통)이 있어서 9통이 되지만, 법계 부사의승(乘)은 해탈의 길에 모두 10승이 있어서 모두가 구경(究竟:궁극)을 얻어 삼계의 고(苦)가 없다. 나머지 모든 도문(道門)은 다 인천(人天) 세간의 생멸법이라서 설령 조그만 즐거움을 얻는다 하더라도 끝내 고(苦)의 뿌리를 여의지 못하고, 2승은 비록 삼계를 벗어나더라도 그 도가 참되지 못하니 이는 불과승(佛果乘)이 아니기 때문이다.]]

 

[四聖諦는 불교의 기본교리고 기초라고도 할 수가 있고, 또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의 설법이 苦集滅道(고집멸도)로, 세상을 굽어보니 인생이라는 것은 참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고통의 문제를 처음에 설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현실은 苦인데 이것을 소멸해야 되지 않겠는가? 苦를 떠난 경지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苦와 苦가 다 소멸한ㆍ苦를 떠난 자리ㆍ모든 문제가 다 사라진 열반자리 두 가지, 苦集滅, 苦와 滅입니다. 苦를 소멸하려면 苦의 원인을 추적해 내려가는 그것을 集이라 하지 않습니까?

열반ㆍ소멸, 소멸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과 원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道ㆍ歸依의 방법으로 흔히 8정도를 이야기를 하고, 苦는 우리 현실이면서 또 어떤 원인의 결과다. 그럼 원인은 뭔가? 集이다. 모든 것이 쌓이고 축적돼서, 내가 있고 네가 있는, 나와 너의 관계가 축적= 쌓임, 곧 集입니다.  苦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인을 밝혀내는데, 集에 해당되지 아니한 苦의 원인은 없습니다.  

 苦가 사라진 열반의 경지는 수행의 결과로, 그 경지에 이르는 도를 닦는 방법으로 쉽게 8정도를 이야길 합니다. 그 외에 뒤에 발달된 교리로서 37조 도품이 있지만, 이는 부처님 최초의 설법으로 설득력이 있고, 또 아주 간단한,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佛ㆍ法ㆍ僧 三寶가 비로소 등장하게 되어, 가르치는 부처님이 계시고ㆍ듣는 제자 즉 승이 있고, 그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르침이라고 하는 그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본 교리의 佛ㆍ法ㆍ僧 三寶가 세상에는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장소는 녹야원으로, 그 녹야원에 머무실 때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설법 하셨습니다.  

네 가지 聖스럽고 참다운 진리가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 째 모든 것은 괴롭다는 苦諦(고제)는 진리이다. 苦聖諦(고성제) 그냥 진리가 아니라 성스러운 진리다.  

 둘째는 괴로움의 원인은 쌓임에 있다는 진리. 축적된 인연관계 속에서 원인을 제공한다. 

 세 째는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 진리다.

 네 째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의 진리. 

  만약 수행자로서 모든 것이 괴롭다는 진리를 알고 이해하며,

  괴로움은 원인이 쌓임에 있음을 알고 끊으며,

  괴로움이 소멸된 진리를 알고 증득하며,

  괴로움이 사라지는 방법의 진리를 알고 닦았으며,

  그런 사람은 빗장과 자물통이 없고, 구름 위를 평평하게 고루고,

  모든 험하고 어렵고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리라.

  그를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이라 부를 것이며,

  거룩한 깃발을 세웠다고 하리라. → 아함경에 苦集滅道를 처음 말씀하신 경문입니다.  

四聖諦品은 앞에서 불명호품에서 40종류의 질문에서 무엇이 부처님의 설법입니까? 또는 불 연설해에 대한 답이기도 하고, 설법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한 것이 四聖諦品, 괴로움도 正法이고 문제도 正法이라는 것입니다. 

  苦= 4고 8고, 4고= 생 노 병 사. 8고=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원증회고(怨憎懷古), 오음성고(五陰盛苦)의 여덟 가지 고통이 기본적인 고통입니다]

 

八, 四聖諦品

一, 娑婆世界의 四聖諦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은 거의 90%) → 초기불교,근본불교, 상좌부불교, 소승불교.  

티벳, 중국, 한국, 일본→ 대승불교 권.

四聖諦 성스러운 진리, 고통도 성스러운 진리다. 聖諦=성스러운 진리.

원인. 뭐든지 모인 것이 일차적인 고통의 원인이다 →苦集.

고통은 정말 싫지만, 진리임에는 틀림없음에 겪을 것은 겪어야 된다고 보지만, 소승불교는 고통은 어떻게든 소멸해야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닫고 나신 후 제일 중점적으로 설법하셨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소멸하는데는 필요한 방법이 道, 기본적인 도는 八正道]]

[[우리의 고통도 사실은 진여자성의 진여불성의 참마음의 한 작용이고 표현들로 즉 그것도 나, 진여불성의 한 顯現이다]]

 

(1) 苦聖諦의 十種名

爾時에 文殊師利菩薩摩訶薩이 告諸菩薩言하사대 諸佛子야 苦聖諦는 此娑婆世界中에 或名罪며 或名逼迫이며

或名變異며 或名攀緣이며 或名聚며 或名刺며 或名依根이며 或名虛誑이며 或名癰凔處며 或名愚夫行이니라

爾時 文殊師利菩薩摩訶薩(문수사리보살마하살)

 

爾時  告諸菩薩言(고제보살언)하사대 그때에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모든 보살들에게 말했다.

諸佛子야 苦聖諦는 此娑婆世界中에 或名罪(혹명죄)며,

불자들이여, 고성제(苦聖諦)는 이 사바세계에서 이름을 죄라 하기도 하고 

或名 逼迫(핍박)이며或名 變異(변이)며 혹은 핍박, 변이, 或名 攀緣(반연)이며 반연(攀緣),

[핍박= 몸으로부터 쫓기고ㆍ마음으로부터 쫓기고ㆍ인간관계로부터 쫓기고ㆍ환경으로부터 쫓기고ㆍ정치 상황으로부터 쫓기고, 곳곳에서 나를 핍박해오는 겁니다. 苦의 안목으로 보면, 빚쟁이만 나를 쫓아와서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두는  전부 나를 핍박하고 있는 그것이 苦입니다.]

[변이= 상황이 달라지고나도 달라지고상대도 달라지고세상도 달라지는 그것도 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반연(攀緣)=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인연 또는 인연에 얽매인 것.= 번뇌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 아니나 불경에 많이 나오는 말. 반(攀)= 의지함, 연(緣)= 조건, 마음의 대상에 의지해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곧 얽힌 인연이며, 번뇌 망상의 근본이다. 따라서 사물을 아는 것, 즉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며, 반연된 인식대상을 소연(所緣)이라 하며, 반연하는 인식작용을 능연(能緣)이라 한다. 옛 성인도 말씀하시길, “비유하자면 불꽃 파리가 어느 곳이나 다 앉을 수는 있지만 불꽃 위에는 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중생도 마찬가지이니 온갖 곳에 반연(攀緣)할 수 있지만 오직 반야 위에서만 반연할 수 없다.”고 하셨다.]]

或名 聚(취)며 或名 刺(자)며 或名 依根(의근)이며 취, 자, 의근,

[聚= 五陰盛苦 = 오음의 무더기 즉 이 육신 덩어리가 그대로 고통입니다.]

[찌를 刺자, 가시 자]

[苦를 말미암아서 능히  “일체 악을 만들어 낸다.” 苦 때문에 또 다른 악을 발생시키는, 苦 때문에 또 새로운 苦를 낳는 겁니다. 그래서 의지하는 根이라고 표현 합니다.] [[依根 서로가 변하니까]]

或名 虛誑(허광)이며 或名 癰凔處(옹창처)며 허광, 옹창처, [[虛誑 거짓된 것 / 癰凔處(옹창처)= 종기]]

或名 愚夫行(우부행)이니라 우부행 이라고도 하느니라.

[예를 들어 눈썹이 눈에 들어가면 아주 불편해요. 어리석은 중생은 자질구레한 문제꺼리, 또 고통스러울 꺼리를 밀어내서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가 나중에 확대 돼서 고통스럽게 커지는 것. 愚夫行=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 민감하게 못 받아들이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2) 集聖諦의 十種名

諸佛子야 苦集聖諦는 此娑婆世界中에 或名繫縛이며 或名滅壞며 或名愛著義며 或名妄覺念이며

或名趣入이며 或名決定이며 或名網이며 或名戲論이며 或名隨行이며 或名顚倒根이니라

 

불자들이여, 고집성제(苦集聖諦)는  이 사바세계에서는 이름을 계박(繫縛)이라고도 하고 

혹은 멸괴(滅壞), 애착의(愛著義), 망각념(妄覺念), 취입(趣入), 결정(決定), 망(網), 희론(戲論), 

수행(隨行), 전도근(顚倒根)이라고도 하느니라.

 

[苦 集 滅 道(고집멸도)를 苦聖諦=고통은 쌓임이 원인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해야 되고, 

集은 苦集聖諦=모인 것이 원인이 된다고 하는 성스러운 진리=고의 결과입니다.]

[[繫縛(계박)= 사전적으로 몸이나 손 따위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음.

얽어 매고 묶음으로 마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즉 오온에 묶어 매듭을 지우는 것. 여기저기 서로 얽혀있고 속박돼는

4가지 매듭=①간탐의 매듭 ②악의의 매듭 ③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의 매듭 ④이것만이 진리라는 맹신적 독단적 신조의 매듭]]

[[滅壞(멸괴)=變異에서   발전한 것= 소멸하고 파괴 되는 것. 어느 정도 성취된 일이 소멸되거나 파괴되면서 따르는 고통]]

[妄覺念(망각념)= 망념된 느낌과 생각. 망념된 지식= 거짓되고 잘못 된 지식.=잘못 아는, 망령되게 하는  

불교를 잘못이해해서 오히려 불교를 믿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경우. 특히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망념 되게 알고 있는 것도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趣入(취입)= 취향하다ㆍ향하다. 자꾸 어딘가를 가려고 하는 그것도 하나의 고통의 원인이다.

決定(결정)= 말이나 행동. 어떤 의사 등을 확실하게 정한 것 때문에 따르는 고통, 융통성 없는 똥고집이 고통의 원인이다. 

網(망)= 그물=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것

戲論(희론)= 진리나 사실이 아닌, 진실치 못한 가정으로 꾸인 이론들. 거짓말, 농담, 장난삼하 하는 소리

顚倒根(전도근)= 뒤바뀐 顚倒된ㆍ바르지 못한 근본.

전도(顚倒)는 일이 거꾸로 되거나 거꾸로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의 근본을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히는 것을 뜻하는, 즉 사물의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뒤바뀜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중요한 것보다 부수적인 것에 더 비중을 두는것을 말한다.

 

(3) 滅聖諦의 十種名

諸佛子야 苦滅聖諦는 此娑婆世界中에 或名無諍이며 或名離塵이며 或名寂靜이며 或名無相이며

或名無沒이며 或名無自性이며 或名無障礙며 或名滅이며 或名體眞實이며 或名住自性이니라

 

불자들이여, 고멸성제(苦滅聖諦)는 이 사바세계에서 이름을 혹은 무쟁(無諍)이라고도 하고 

혹은 이진(離塵), 적정(寂靜), 무상(無相), 무몰(無沒), 무자성(無自性), 무장애(無障礙), 멸(滅), 

체진실(體眞實), 주자성(住自性)이라고도 하느니라.

 

苦滅聖諦= 고통이 사라진 성스러운 진리. 도를 수행한데 대한 결과. 우리가 이 경전을 공부해서 부처님으로부터 이치를 하나하나 깨우쳐감으로 해서 우리가 갖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문제해결이 滅입니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참선ㆍ기도ㆍ염불ㆍ경 등의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無諍(무쟁)= 다툼이 없음.= 옳고 그른 것 아무 의미 없다

離塵(이진)= 번뇌 망상을 다 떠난 자리, 塵= 번뇌 망상.

寂靜(적정)= 고요한 자리

無相= 형상=차별 없음(相= 차별) = 공한 자리 = 평등한 자리 = 부처니ㆍ중생이니, 범부니ㆍ성인이니 하는 것이 성립될 수가 없는 자리. 생색내는  相이 없는 것

無沒(무몰)= 빠짐이 없다= 몰락함이 없다.= 없음마저도 없는 無沒 

無自性= 열반의 경지= 無相.

근본불교 같은 경우는 모든 존재가 무아인데 무아라고 이해하지 않고, 어떤 고정불변 하는 自性이 있다고 보는 것으로, 그러면 거기에 고통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분석해 들어가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는데까지 이르면은 無自性이다. 고통이 있을 수가 없고 있던 고통도 소멸한 곳이다

無障碍(무장애)= 열반은 당연히 장애가 없다.

滅= 寂靜과 같은 경우= 모든 것이 소멸한= 열반의 다른 표현.

體眞實(체진실)= 체가 진실한 자리다. = 형상을 보지 않고 진실한 면만 보는 

住自性= 자성에 머문다.= 참마음 자리에 머무는, 어떤 상황도  참마음의  작용이다

體眞實, 住自性= 法身常住= 常住하는 法身을 터득하면 곧 열반이다.  

體眞實과  無自性 두 가지는 참마음의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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