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십행품(十行品) 10 - 선법행(善法行)-력바라밀
11. 第九 善法行 力波羅密
[[善法行은 力바라밀을 體로 삼고, 이 단락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면,
첫째 “불자야” 이하 “旋陀羅尼의 변재가 다함이 없다”까지 12행의은 열 가지 다함 없는 변재[無盡辯]를 밝힌 分이다.
둘째 “이 보살” 이하 “모두 다 이와 같다”까지는 大千界에 몸을 나타내 성불함으로써 변재가 걸림 없음을 밝힌 분이다.
셋째 “다시 또” 이하 “佛事를 짓는다”까지 16행 반은 한 털구멍 끝에 도량이 다함이 없음으로써 일체의 털구멍과 불가설의 삼천계에 몸을 나타내 성불함을 밝힌 분이다.
넷째 “불자야, 이 보살” 이하 “법상을 능히 잘 관찰하기 때문에”까지 6행 반은 열 가지 自在身을 밝힌 분이다.
다섯째 “보살이 이같은 열 가지 몸을” 이하 “일체 불법의 원천”까지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의지처가 되는 바를 밝힌 분.]]
(1) 佛種性의 不斷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善法行고 此菩薩이 爲一切世間天人魔梵沙門婆羅門乾闥婆等하야
作淸凉法池하야 攝持正法하고 不斷佛種하니라
[화엄경에서는 十信ㆍ十住ㆍ十行ㆍ十回向의 한 지위가 열 단계로 되어 있는 그 수행은 바라밀이니까 10바라밀이 되어서 力波羅密= 힘 바라밀입니다.]
[佛種性의 不斷(불종성부단) 부처님의 種性= 종자를 이어간다. 이산혜연 선사 발원문에도 삼보를 잇사올제 '뵙사올제’가 아니라. 잇사올제 이어간다는 그 말입니다.]
佛子야 何等이 불자여, 어떤 것이 爲菩薩摩訶薩의 善法行고? 보살마하살의 선법행이겠는가.
此菩薩이, 이 보살은 爲一切世間 天 人 魔 梵 沙門 婆羅門 乾闥婆等(위일체세간천인마범사문바라문건달바등)하야,
일체 세간의 하늘, 사람, 마구니, 범천, 사문, 바라문, 건달바 등을 위해
[[인도의 세습적 계급 제도 카스트= 대체로 4개의 계급으로 분류된다. 인도에서는 카스트를 산스크리트어로 '색'을 뜻하는 바르나라고 부른다. 계급의 최상층은 브라만, 바라문(승려), 다음은 크샤트리아(귀족, 무사), 다음은 바이샤(농민, 상인, 연예인), 최하층은 수드라(수공업자, 하인, 청소부)이다. 계급에 따라 결혼, 직업, 식사 따위의 일상생활에 엄중한 규제가 있다. 가장 불결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수드라 밑에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현재 하리잔, 즉 '신의 아들'로 불리며 이 이름은 간디가 그들에게 붙여 주었다. 현재는 2,500종 이상의 카스트와 부카스트로 나뉜다. 많은 카스트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박해가 현재 법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카스트 동맹은 여전히 인도에서 강력한 정치적·사회적 세력으로 남아 있고 또한 새로운 카스트가 계속 형성되고 있다.]]
[부처님은 찰제리. 크샤트리아 출신으로 4성 계급에서 두 번째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출가신고 식에서 부처님한테서 절을 한 후, 출가 순서대로 절을 하다 보면 먼저 인도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출가한 자기 집 종, 수드라= 천민한테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4성 계급을 타파한 선언은 인도사회에서는 아주 청천벽력 같은 것이고 또, 인간의 본성을 높이 받드는 것이지만, 인도 관습에 의하면 그것이 불교가 오래 견딜 수 없는, 인도의 전통관습에서는 4성 계급을 타파해서 도대체 배겨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도사회에서 불교가 약해진 것입니다.
그때 새로 생긴 계급이 沙門입니다. 출가 수행자는 사문이라 해서 沙門은 4성 계급과 관계없는 특수 계층입니다.
世間ㆍ天ㆍ人ㆍ魔ㆍ梵는 일반적이고 그 다음에는 沙門이 婆羅門보다 앞에 오는 나열 방법입니다]
作淸凉法池(작청량법지)하야, 청량= 시원한 법의 연못을 지어 攝持正法(섭지정법)하고, 정법을 거두어 간직하고
不斷佛種하니라. 부처의 종성이 끊기지 않게 합니다.
[[사문沙門= 팔리어 'samaṇa'에서 유래하는 음사어로서 '노력하는 사람', '도인'을 의미한다. 비구(比丘)와 같은 뜻으로 쓴다. 그러나 원래 사문은 고대인도에서 반(反)베다적이고 반(反)브라만적인 출가 수행자를 가리켰다. 그들은 종래의 전통적인 정신원리인 베다 성전이나 사제인 바라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비전통적인 사상가였으며, 이런 의미에서 자유사상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불교가 흥기할 무렵인 BC 6~5세기의 인도 사회는 인도에 침입한 아리안족의 정착이 마무리되면서 농업 생산의 증대와 더불어 상공업이 발달하여 도시의 발전을 촉진하고,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이결과 브라만 계급을 대신하여 왕족 계급이 발흥하고, 상공업자의 경제적 실권이 증대하게 된다. 결국 기존의 계급제도와 종교의 권위가 실추된 시대적 상황에서 등장한 신흥종교가 또는 사상가가 사문이다. 사상적으로 보면 이들은 베다 종교의 제식(祭式) 만능주의에 반대하고, 극단적인 유물론자들도 있지만 대체로 업과 윤회의 사상에 입각하여 고의 세계인 윤회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불교 경전에서 전하는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당시의 대표적인 사문들이다. 불교에서 비구를 사문이라 칭하는 이유는 사문들의 특징이 출가주의를 지향한 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十種陀羅尼(십종다라니)
得淸淨光明陀羅尼故로 說法授記에 辯才가 無盡하며 得具足義陀羅尼故로 義辯이 無盡하며
得覺悟實法陀羅尼故로 法辯이 無盡하며 得訓釋言詞陀羅尼故로 詞辯이 無盡하며
得無邊文句無盡義無碍門陀羅尼故로 無碍辯이 無盡하며 得佛灌頂陀羅尼가 灌其頂故로 歡喜辯이 無盡하며
得不由他悟陀羅尼門故로 光明辯이 無盡하며 得同辯陀羅尼門故로 同辯이 無盡하며
得種種義身句身文身中訓釋陀羅尼門故로 訓釋辯이 無盡하며 得無邊旋陀羅尼故로 無邊辯이 無盡이니라
得 淸淨光明陀羅尼故(득청정광명다라니고)로, 청정광명의 다라니= 총지(기억하는 것)를 얻은 까닭에
說法授記(설법수기)에 辯才(변재)가 無盡(무진)하며, 설법과 수기의 변재가 무진하고
得 具足義(구족의) 陀羅尼故로, 義= 이치를 구족한 다라니를 얻었기에
義辯(의변)이, 이치에 대한 변재가 無盡(무진)하며, 무진하며,
得 覺悟實法(각오실법) 陀羅尼故로, 진실한 법을 깨닫는 다라니를 얻었기에[覺悟= 모든 존재의 실상, 이치를 깨닫는 것.]
法辯(법변)이 無盡(무진)하며, 법의 변재가 무진하며,
得 訓釋言詞(훈석언사) 陀羅尼故로, 훈석하는 언사의 다라니를 얻었기에 [訓釋= 한문의 뜻을 풀이하여 해석함]
詞辯(사변)이 無盡(무진)하며 언사의 변재가 무진하며,
得 無邊文句無盡義無碍門(무변문구무진의무애문)가이 없는 문구와 다함 없는 뜻과 걸림없는 문의 다라니를 얻은 까닭에
無碍辯(무애변)이, 걸림 없는 변재가 無盡(무진)하며, 무진하며,
得 佛灌頂(불관정) 陀羅尼가 灌其頂故(관기정고)로, 부처님의 관정 다라니로 관정하심을 입었기에 [관정= 인가]
[경을 읽다보면 이렇게 보는 것은 正見= 바른 소견이요. 이와 달리 보는 것은 삿된 견해니라. 중요할 때는 그 말이 경전에 꼭 나옵니다. 그것이 灌頂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처님과 똑 같은 정법의 견해를 주입시켜 주는 것이 관정이라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歡喜辯(환희변)이 無盡하며 환희의 변재가 무진하며,[신심에서 우러나는 환희]
得 不由他悟(불유타오) 陀羅尼門故(다라니문고)로, 남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다라니를 얻었기에
[어떤 내용도 자기 소신이 있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관세음보살에 대한 영험을 이야기하더라도 자기 소신이 꽉 차서 그 소신대로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감동하는 겁니다. 큰 깨달음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분야에 자기소신을 세워서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감동합니다.]
光明辯(광명변)이 無盡하며, 광명의 변재가 무진하며,
[자기의 깨달음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광명의 변재가 더욱 무진하며],
得 同辯(동변) 陀羅尼門故로, 같은 변재의 다라니를 얻은 까닭에 [同辯= 같은 이야기.]
同辯이 無盡하며, 같은 변재가 무진하며,
得 種種義身 句身 文身 中 訓釋(종종의신구신문신중훈석) 陀羅尼門故로,
갖가지 義身=뜻과 句身=구절과 文身=문장을 훈석하는 다라니를 얻었기에
[身= 인체는 사지, 오장육부, 안ㆍ이ㆍ비ㆍ설ㆍ의가 구성이 돼서 하나의 완전한 신체를 구성하듯이, 우리의 경문의 글 속에도 뜻, 구절, 문자가 있어서 한 구절, 또는 한 문장, 한 게송, 한 단락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구문신” 이라고 그러한 인체의 완전한 인체를 구성하듯이 문장이 구성되는 것.]
得 無邊旋(무변선) 陀羅尼故로, 끝없이 돌아가는 다라니를 얻었기에
[旋 돌 선. 어느 한 곳에 막히지 않고, 원융하게 설명하는 것= 旋陀羅尼]
無邊辯(무변변)이, 끝없는 無盡이니라. 변재가 무진합니다.
(3) 饒益衆生(요익중생)
此菩薩이 大悲堅固하야 普攝衆生하야 於三千大千世界에 變身金色하야 施作佛事호대 隨諸衆生의 根性欲樂하야
以廣長舌로 於一音中에 現無量音하야 應時說法하야 皆令歡喜하며
此菩薩이, 이 보살은 大悲가 堅固(대비견고)하야 대비심이 견고하여
普攝衆生(보섭중생)하야, 중생들을 널리 거두고 於三千大千世界(어삼천대천세계)에, 삼천대천세계에서
變身金色(변신금색)하야 금빛으로 변신하여 施作佛事(시작불사)호대, 불사를 베풀어 지으며,
隨諸衆生(수제중생)의 중생들의 根性欲樂(근성욕락)하야, 근성과 욕락에 隨=따라
以廣長舌(이광장설)로, 광장설로 於一音中(어일음중)에 한 음성 안에 [廣長舌 말씀 說 대신 혀 舌자를 씁니다. 부처님의 혀가 삼천대천세계를 다 덮는다. → 진리의 가르침이 온 세계에 널리 퍼진다.]
現無量音(현무량음)하야, 한량없는 소리를 나타내
應時說法(응시설법)하야, 적절한 시기에 설법하여, 때에 맞추어서 설법해서,
皆令歡喜(개령환희)하며, 모두를 기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정각을, 존재의 실상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을 중생들에게 당신이 깨달은 만치 깨닫도록 나누고자하는 것이 부처님과 보살들이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십회향 품에는 손톱ㆍ발톱ㆍ살ㆍ머리카락 할 것 없이 낱낱이 다 보시하는 것 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당신이 깨달으신 법의 이치를 보시하는 것이라 하였고,보현행원품에도 법공양이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4) 知法殊勝(지법수승). 법의 수승함을 아는 것
假使有不可說種種業報의 無數衆生이 共會一處호대 其會廣大하야 充滿不可說世界어든
菩薩이 於彼衆會中坐에 是中衆生이 一一皆有不可說阿僧祗口하고
一一口에 能出百千億那由他音하야 同時發聲하야 各別言詞로 各別所問이라도
菩薩이 於一念中에 悉能領受하고 皆爲酬對하야 令除疑惑하나니
如一衆會中하야 於不可說衆會中에도 悉亦如是니라
假使有不可說種種業報(가사유불가설종종업보)의 가사 불가설의 갖가지 업보를 지닌
無數衆生(무수중생)이, 무수한 중생들이 [한사람도 不可說種種業報인데 無數衆生입니다.]
共會一處(공회일처)호대, 한 곳에 모두 모이니 其會廣大(기회광대)하야, 그 모임이 광대하여
充滿不可說世界(충만불가설세계)어든, 불가설의 세계를 가득 채웠고 菩薩이 보살이
於彼衆會中坐(어피중회중좌)에, 그 대중모임 가운데 앉았는데 是中衆生이, 그 가운데 중생들
一一皆有不可說阿僧祗口(일일개유불가설아승지구)하고, 낱낱이 모두 불가설 아승지의 입을 지녔고
一一口에, 그 개개의 입들 마다
能出百千億那由他音(능출백천억나유타음)하야, 백천 억 나유타의 음성을 낼 수 있어서
同時에 發聲(발성)하야, 동시에 소리를 내 各別言詞(각별언사)로, 각각 다른 말로
各別所問(각별소문)이라도, 각각 다른 질문을 하더라도 菩薩이 於一念中(어일념중)에, 보살은 한 순간에
悉能領受(실능영수)하고, 능히 다 알아 듣고 皆爲酬對(개위수대)하야, 모두에게 대답하여
令除疑惑(영제의혹)하나니, 의혹을 없애 주나니 如一衆會中(여일중회중)하야, 한 대중모임에서와 같이
於不可說衆會中에도 悉亦如是(실역여시)니라. 불가설의 대중모임에서도 다 그와 같이 합니다.
(5) 知法微細(지법미세)
復次假使一毛端處에 念念出不可說不可說道場衆會하고 一切毛端處에도 皆亦如是하야
盡未來劫토록 彼劫은 可盡이어니와 衆會는 無盡이어든 是諸衆會가 於念念中에 以各別言詞로 各別所問이라도
菩薩이 於一念中에 悉能領受하야 無怖無怯하며 無疑無謬하야 而作是念하니라
復次假使一毛端處(부차가사일모단처)에, 또 가사=가령 한 털 끝에
念念出不可說不可說 道場衆會(도장중회)하고, 매 순간순간 마다 불가설 불가설의 도량의 대중모임을 열고
一切毛端處(일체모단처)에도, 모든 털 끝에서도
皆亦如是(개역여시)하야 盡未來劫(진미래겁)토록, 미래 겁이 다하도록 그렇게 하면
彼劫(피겁)은, 그 겁은 可盡(가진)이어니와, 다하더라도
衆會는 無盡이어든, 모인 대중들은 다함이 없을 터인데 是諸衆會(시제중회)가, 그 모든 대중들이
於念念中에, 순간순간 마다, 생각ㆍ생각가운데 以各別言詞(이각별언사)로, 각각 다른 언사로
各別所問(각별소문)이라도, 각각 다른 질문을 하더라도 菩薩이 於一念中에 보살은 한 순간에
悉能領受(실능영수)하야, 다 능히 받아 들여서, 능히 다 알아 듣고
無怖無怯(무포무겁)하며, 무서워하지도 겁내지도 않으며
無疑無謬(무의무류)하야, 의혹도 없고 어긋남도 없어서, 의심도 없고 착오= 그르침이 없어서,
而作是念하니라.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6) 知法遍周(지법변주).법이 변주함을 알다.
設一切衆生이 以如是語業으로 俱來問我라도 我爲說法을 無斷無盡하야 皆令歡喜하야 住於善道하고
復令善解一切言詞하야 能爲衆生하야 說種種法호대 而於言語에 無所分別하며
假使不可說不可說種種言詞로 而來問難이라도 一念悉領하고 一音咸答하야 普使開悟하야 無有遺餘라하나니
以得一切智灌頂故며 以得無碍藏故며 以得一切法圓滿光明故며 具足一切智智故니라
[앞에서는 법이 미세한 것을 아는 것이고, 법이 수승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設一切衆生(설일체중생)이, 설사 일체중생이 以如是語業(이여시어업)으로, 이러한 말로
俱來問我(구래문아)라도, 俱來=함께 와서 내게 묻더라도 我爲說法(아위설법)을, 나는 그들을 위한 설법을
無斷無盡(무단무진)하야, 끊임 없고 끝없이 하여 皆令歡喜(개령환희)하야, 모두 환희하며
住於善道(주어선도)하고, 선한 길에 머물게 하고,
復 令善解一切言詞(부령선해일체언사)하야, 또 모든 언사를 잘 이해하여 能爲衆生(능위중생)하야, 중생을 위해
說種種法(설종종법)호대, 갖가지 법을 설하되 而於言語(이어언어)에, 말= 언어를
無所分別(무소분별)하며, 가리지 않고 [가지가지 법을 설하되 분별하는 바가 없으며,]
假使(가사)不可說不可說種種言詞로 가사 불가설 불가설의 갖가지 언사로
而來問難(이래문난)이라도, 어려운 질문을 해 와도, 질문하고 따진다 하더라도,
一念悉領(일념실영)하고, 한 순간에 다 알아내고 [領= 이해한다. 안다]
一音咸答(일음함답)하야, 한 음성으로 모두 답하여
普使開悟(보사개오)하야 無有遺餘(무유유여)라하나니, 남김없이 다 깨닫게 하리라.' 하나니
[但知不會면 是卽見性(단지불회시즉견성)이라. 달마스님이 한 마디로 답한 不識(불식)= 모른다. 그 한마디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의 ‘안다.ㆍ모른다.’하는 “모른다.”가 아닌, 제대로 이해하고 보면 그 속에 해결이 있습니다.
양무제가 답답하니까 “그럼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不識. 모른다. 그랬습니다. 그 말이 담고 있는 맛은 선불교에서나 찾을 수 있지요. 선불교가 위대한 점이 그런 겁니다. 온 우주의 무게를 不識이라는 한마디 속에 다 집어넣거든요.
不會를 알 것 같으면 그것이 곧 견성이다. 그런 말 한마디. 이 선불교는 크게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는 보살 정신은 없지만, 그런 한마디 속에 전 우주의 무게를 다 담고 있는 그런 점이 훌륭한 점이기도 합니다.]
以得一切智灌頂故(이득일체지관정고)며, 일체지혜를 관정 받은 연고요
以得無碍藏故(이득무애장고)며, 무애장= 걸림이 없는 장을 얻은 때문이며,
以得一切法圓滿光明故(이득일체법원만광명고)며, 일체법에 원만한 광명을 얻고
具足(구족)一切智智故니라. 일체지지가 구족하기 때문입니다.
(7) 一切世界의 佛事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安住善法行已에 能自淸淨하고 亦能以無所着方便으로 而普饒益一切衆生호대
不見有衆生이 得出離者니 如於此三千大千世界하야 如是乃至於不可說三千大千世界에 變身金色하고
妙音具足하야 於一切法에 無所障碍하야 而作佛事하나니라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은 安住善法行已(안주선법행이)에, 선법행에 안주하고서
能自淸淨(능자청정)하고, 스스로를 청정히 하고 [淸淨= 空의 의미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亦能以無所着方便(역능이무소착방편)으로, 또 집착 없는 방편으로
而普饒益一切衆生(이보요익일체중생)호대, 널리 일체중생을 유익하게 하되
不見有衆生이 得出離者(득출리자)니, 어떤 중생이 출리를 얻었는지는 보지 않나니
[‘제도함을 보지 않는다.’ 어떤 중생도 제도 했으되 제도함이 없다.
금강경 제 3분, 정종분에 9류 중생을 다 제도 했으되 제도함이 없다. 그 정신은 해석하기 따라서 ‘모든 존재가 空이다.’ 하는 空性으로 보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중생의 본 모습은 본래부처다. 그래서 본래 부처인 이상, 어떻게 누가 누구를 제도한다, 제도되었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고 봅니다. 과거 조사스님들도 금강경 정종분을 설명할 때 그런 식으로 많이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본래 空性이기 때문에 제도함이 없다.’ 그것은 假觀ㆍ中觀ㆍ空觀ㆍ中道觀, 이렇게 볼 때는 중도관의 입장으로 봐야,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바로 부처라고 보는 것이지요. 공관으로는 중생도 부처도 공한 것이고 공한 것이라고 보지만,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로 보는 중도관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아직 10행품이기 때문에, 空觀으로 본다는 의미가 淸淨이라는 말속에 많이 있습니다.]
如於此(여어차)三千大千世界하야, 이 삼천대천세계에서와 같이
如是乃至(여시내지)於不可說三千大千世界에, 불가설의 삼천대천세계에서도
變身金色(변신금색)하고, 금빛으로 변신하고 妙音具足(묘음구족)하야, 묘음을 구족하여
於一切法에 無所障碍(무소장애)하야, 일체법에 아무런 장애 없이 而作佛事하나니라. 불사를 짓습니다.
[불사를 짓는 것이 饒益一切衆生, 일체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을 불사로 봅니다.]
(8) 十種身成就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成就十種身하나니 所謂入無邊法界이니 滅一切世間故며
入無邊法界非趣身諸趣身이니 生一切世間故며 不生身이니 住無生平等法故며
不滅身이니 一切滅하야 言說不可得故며 不實身이니 得如實故며 不妄身이니 隨應現故며
不遷身이니 離死此生彼故며 不壞身이니 法界性無壞故며 一相身이니 三世語言道斷故며
無相身이니 善能觀察法相故니라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이 成就十種身(성취십종신)하나니, 열 가지 몸을 성취하는데
所謂入無邊法界非趣身(소위입무변법계비취신)이니, 소위 가이없는 법계에 들어가는 갈래의 몸이[非趣身] 아니니
[非趣身= 趣身이 아니며→ 非趣의 身이며, 趣=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6취 어디에도 우리는 해당 안 될 수가 없는, 해당 됐으되 해당되는 것으로 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滅一切世間故(멸일체세간고)며, 모든 세간이 멸했기 때문이요, 일체세간을 소멸하는 연고며,
入無邊法界諸趣身(입무변법계제취신)이니, 무변 법계에 들어가는 여러 갈래 몸[諸趣身]이니
[무변법계에 들어가면 6취중 어떤 취에라도 해당 안 될 수가 없지만, 諸趣身이라고 하는 것을 수용한다.]
生一切世間故(생일체세간고)며, 일체세간이 생겨나기 때문이며,
不生身이니, 나지 않는 몸[不生身]이니 住無生平等法故(주무생평등법고)며, 남이 없는 평등한 법에 머물기 때문이요
不滅身(불멸신)이니 멸하지 않는 몸[不滅身]이니 一切滅(일체멸)하야, 일체가 멸하여
言說(언설)로써 不可得故(불가득고)며, 언설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며,
不實身(불실신)이니, 실답지 못한 몸[不實身]이니 得如實故(득여실고)며, 여실함을 얻었기 때문이요
[10행품의 차원에서는 거의 空性으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不妄身(불망신)이니, 허망하지 않은 몸[不妄身]이니 [불망신=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도 볼 수가 있음]
隨應現故(수응현고)며, 마땅한 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며,
不遷身(불천신)이니, 변천하지 않는 몸[不遷身]이니 [不遷= 옮기지 않는]
離死此生彼故(이사차생피고)며, 여기서 죽고 저기에 태어남에서 벗어난 때문이요
不壞身(불괴신)이니, 무너지지 않는 몸[不壞身]이니
法界性(법계성)이 無壞故(무괴고)며, 법계의 성품이 무너짐이 없기 때문이며,
一相身이니, 한 모양의 몸[一相身]이니
三世語言道斷故(삼세언어도단고)며, 삼세= 과거 미래 현재의 언어의 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요
[언어로써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몸이다.]
無相身이니, 모양이 없는 몸[無相身]이니
善能觀察法相故(선능관찰법상고)니라. 법의 모양을 잘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非趣身 ≠ 諸趣身, 不生身 ≠ 不滅身, 不實身 ≠ 不妄身, 不遷身 ≠ 不壞身, 一相身 ≠ 無相身]
(9) 十種身成就의 目的
菩薩이 成就如是十種身하야 爲一切衆生舍니 長養一切善根故며 爲一切衆生救니 令其得大安隱故며
爲一切衆生歸니 與其作大依處故며 爲一切衆生導니 令得無上出離故며 爲一切衆生師니 令入眞實法中故며
爲一切衆生燈이니 令其明見業報故며 爲一切衆生光이니 令照甚深妙法故며 爲一切三世炬니 令其曉悟實法故며
爲一切世間照니 令入光明地中故며 爲一切諸趣明이니 示現如來自在故니라
菩薩이 보살은 成就如是十種身(성취여시십종신)하야, 이와 같은 열 가지 몸을 성취하여
爲一切衆生舍(위일체중생사)니, 일체중생의 舍= 집이 되니
長養一切善根故(장양일체선근고)며, 모든 선근을 길러내기 때문이요
爲一切衆生救(위일체중생구)니, 일체중생의 구원이 되니
令其得大安隱故(영기득대안은고)며, 그들에게 큰 안은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爲一切衆生歸(위일체중생귀)니, 일체중생의 귀의처가 되니
與其作大依處故(여기작대의처고)며, 그들에게 큰 의지처를 지어주기 때문이요
爲一切衆生導(위일체중생도)니, 일체중생의 인도자가 되니
令得無上出離故며, 위 없는 출리를 얻게 하기 때문이며, [생사로부터 벗어남에 있어서 無上出離를 얻게 하는 연고다.]
爲一切衆生師(위일체중생사)니, 일체중생의 스승이 되니
令入眞實法中故(영입진실법중고)며, 진실한 법 안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요
[근래에 불교계 현상을 볼 때, 불교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재가인들이 바른 불교 세우기 운동으로 승가를 바로 잡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것 참... ‘옳은 일인가? 틀린 일인가?’
대만에서는 한국스님들이 여행하다가 뭣도 모르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면 “우리 식당에는 스님들이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저 식당에 가서 공양하셔야 합니다.”하고 다른 식당을 안내해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님들을 보호해주고ㆍ위해주는 차원의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스님들의 행동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소견이 제대로 됐느냐? 안 됐느냐?를 문제 삼아야 됩니다. 저는 이것이 제일 큰 염려라고 봅니다.]
爲一切衆生燈(위일체주생등)이니, 일체중생의 등불이 되니
令其明見業報故(영기명견업보고)며, 그들이 업보를 환히 보게 하는 때문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업보를 明見= 밝게 보게 하는 연고다. 業力難思義라는 말도 있듯이, 무수한 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업이 많이 있습니다. 언제 무슨 업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짐작 못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것도 그러려니와, 다른 사람에 대한 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우리가 늘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爲一切衆生光(위일체중생광)이니, 일체중생의 빛이 되니
[등불 燈등은 업보를 밝게 본다는 의미가 있고, 빛 光광은 불법에 대한 깊은 이치를 비추는 의미입니다]
令照甚深妙法故(영조심심묘법고)며, 심오한 묘법을 비추게 하기 때문이요
爲一切三世炬(위일체삼세거)니, 모든 삼세의 횃불이 되니
令其曉悟實法故(영기효오실법고)며, 그들이 진실한 법을 환히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爲一切世間照(위일체세간조)니, 일체 세간의 비침= 조명이 됨이니,
令入光明地中故(영입광명지중고)며, 광명한 땅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요
爲一切諸趣明(위일체제취명)이니, 제취= 모든 갈래의 밝음이 되니
示現如來自在故(시현여래자재고)니라. 여래의 자재하심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0) 一切衆生을 爲한 淸凉池(청량지)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九善法行이니
菩薩이 安住此行하야 爲一切衆生作淸凉法池하야 能盡一切佛法源故니라
佛子야 불자여, 是名,이것의 이름을 菩薩摩訶薩의 보살마하살의
第九 善法行(선법행)이니, 제 9 선법행= 훌륭한 법의 행이라 하나니
菩薩이 보살은 安住此行(안주차행)하야, 이 행에 안주하여
爲一切衆生 作淸凉法池(작청량법지)하야, 일체중생을 위해 청량한 법의 연못이 되어
能盡一切佛法源故(능진일체불법원고)니라. 모든 불법의 근원에 진력하는= 근원을 다하는 연고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