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사법계관(四法界觀)
사법계란 우리가 살고 있는 법계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연기의 이치를 보다 선명한 비유로써 묘사한 것.
① 사법계(四法界); 중생이 살아가는 현상의 세계로써 만물이 저마다의 모양과 그 생성 변화의 과정이 제각각인 이
세계는 생멸이 있고 정·부정이 있으며 증감이 있는 세계이다.
② 이법계(理法界); 사법계의 근본을 파고들면 제각각인 만물도 그 뿌리는 하나로 통일된, 즉 본질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법계는 생멸도, 정·부정도, 증감도 없다.
사실 사람의 가치도 때와 상황에 따라 극심하게 달라지는 이치도 이법계의 관점에선 당연한 일이다. 전쟁터에선 힘있고 용감한 사람이 영웅이지만 경제성장이 최우선되는 사회에선 기업가나 과학기술자가 우대받는다.
예전에 천시했던 영화배우, 운동선수들도 요즘엔 스타로서 각광받고 있지 않는가? 과거엔 상상조차 할수 없었을 것이다.
③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본질의 외화가 현상이고 그 현상의 뿌리가 본질이기에 현상과 본질이 둘이 아닌 세계, 즉 이법계와 사법계가 통일된 세계이다. 색불이공 공불이색의 이치가 바로 이(理)에도 사(事)에도 걸림이 없는 이사무애법계와 상통한다. 중국의 고전 『채근담』에도 이사무애법계가 잘 묘사되고 있다.
"도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지나가면 나뭇잎도 멈춘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고 잠시 뒤에는 물결이 사라진다."
중생계에선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바람이 그쳐도 계속 흔들린다. 흔히들 도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목석같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 이사무애법계란 바람이 불 때는 흔들리고 바람이 그치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본래 둘이 아님을 깨닫는 단계, 보살의 지혜와도 같다.
뿌리없이 흔들리는 것이 사법계, 바람이 불어도 암석마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법계라면 이사무애법계는 뿌리는
움직이지 않되 나뭇잎만 흔들리는 단계를 가리킨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옛날 6년간 한 스님의 공부를 지성으로 뒷바라지해온 노보살이 한 분 있었다. 어느 날 이 보살이
스님의 공부정도를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큰 딸에게 공양을 올리도록 하면서 스님을 유혹해보라고 일렀다.
이 딸이 스님 방에 들자마자 스님을 껴안고 "기분이 어떠신지요?"라고 묻자 이 스님 왈 "고목나무를 껴안은 것 같다."고 해서, 이 말을 전해들은 노보살이 "내가 헛수고를 했구나" 탄식하며 절간을 태우고 그 스님을 내쫓아버렸다.
이 일화는 선방의 화두이기도 하다. 그 보살이 왜 그랬을까? 이것이 도의 본질에 관한 의심인 것이다. 유혹되는 것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그렇다고 고목나무와 같이 느끼는 무감정 또한 아직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④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보살의 실천을 의미하는 이 단계는 조건과 처지에 따라 어떤 걸림도 없이 자유자재로
모양을 나투는 수준, 곧 화작이 가능한 경지다. 푸줏간에선 푸줏간 주인이 되고 농촌에선 농사꾼이 되고, 가정에선
살림하는 주부로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이 있다고 느끼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처럼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일체의 욕망을
절제하고 다스리기 때문에 먹고 자는 것, 그 어떤 일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 자재할 수 있는 것이다.
도안과 범부의 차이는 배가 몹시 고플 때, 앞 뒤 안 가리고 먹을 것에 손이 먼저 가는 사람과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일 뿐이다. 백지 한 장의 차이 같기도 하지만 그 경계를 뛰어넘으려면 꾸준한 수행이 필요하다.
무상과 무아의 이치가 완전히 체득되어야 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네가지 법계는 십우도(十牛圖)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진리를 소에 비유해서 구도의 과정을 묘사한 이 작품은
마지막에 가면 처음과 같이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술에 취한 듯한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겉모습은 처음의 사법계와 동일하지만 사실은 이미 자유를 얻은 사사무애의 경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진흙속에서 진흙을 탓하는 것이 중생의 사법계라면 사사무애법계, 보살의 단계는 진흙속에서 그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는 것이다
[http://blog.jinbo.net/ 정토회]
무비스님 해설
역사적으로 화엄경을 많이 공부하신 대개의 화엄학자들이, 화엄경의 깊은 이치를 세 가지 법수로 정리해서 화엄경의 높고 깊은 이치를 표현했습니다.
四法界(四種法界)ㆍ六相圓融ㆍ十玄緣起(十玄門).
화엄사상에서는 이 세상을 그대로 진리의 세계= 法界, 불교용어로 “시방법계” 라고 합니다
法 界. 진리의 세계. (法= 진리) 불교적 안목으로 “시방세계”= 이 지구에서부터 저 무한히 넓은 광대한 우주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대로 진리의 세계라고 봅니다. 그것을 좀 더 세분화하면 법=진리에는 사물, 현상이 있고 그 현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理法=진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四種法界; ①事法界인데 일 事, 事=사상, 현상,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등의 現相을 그대로 진리로 보는 것.
②理法界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진리의 세계, 空ㆍ佛性ㆍ法性 = 理 그것은 그대로 진리의 세계다
③理事無碍法界 理와 事= 진리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걸림 없이, 理는 理대로. 事는 事대로. 理判ㆍ事判.
이판은 이판대로, 사판은 사판대로 서로 좋아하고 미워 함으로 해서 어떤 한 사찰이, 어떤 한 단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뜻으로 사실 모든 존재가 돌아가고 있는 그대로 원만한 상태인 것을 理事無碍法界라 이해합니다.
이치의 면과 사상의 면이 서로 동시에 갖춰져 있지만, 전혀 서로 장애하지 않고 구애됨이 없이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④事事無碍法界의 이치를 화엄경에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으로 事事無碍法界는 사물과 사물. 현상과 현상이 걸리지 않는다는 뜻인데, 산하 석벽의 장애 없이 그냥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는데, 절대 그런 것이 아니고, 현재의 모든 사물과 사물은 그대로 서로가 장애 없이 존재하는, 圓融無碍(원융무애)하게, 또 조화롭게, 전부 남의 것에 의해서 내가 살아가고, 그 또한 나를 포함한 모든 것에 의해서 살아가는 세상이다. [華嚴法界玄鏡(화엄법계현경). 또는 八宗綱要(팔종강요) 규봉종밀 스님의 注華嚴法界觀門(주화엄법계관문)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