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維摩經)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4

Skunky 2023. 4. 16. 07:00

彼有疾菩薩(피유질보살) 爲滅法想(위멸법상) 當作是念(당작시념)

이 병든 보살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생각=法想을 떠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니,

To extinguish the conception of the Dharma, the afflicted bodhisattva should think: 

此法想者(차법상자) 亦是顚倒(역시전도)

이 법(이치)에 대한 생각도 그릇된 집착=顚倒(viparysa)이며

The thought of the Dharma is also inversion,

[여러 가지 법으로 이 몸이 이루어졌으며, 거기에 따라서 병이 났으니, 법이라고 하는 생각도 없애야 된다. 그래서 마땅히 이런 생각을 하되, 此法想者=법이라고 하는 생각도 亦是顚倒=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지, 수, 화, 풍 네 가지 온갖 여러 가지 법으로써 존재가 이루어졌다라고 (일단은 맞는 이치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 역시도 잘못된 생각, 전도된 생각이다]

 

顚倒者是卽大患(전도자시즉대환) 我應離之(아응리지)

이 그릇된 집착=顚倒야말로 마음의 커다란 병(걱정거리)이니,

나는 반드시 이것(대환)으로부터 떠나야 할 것이니, 

and inversion is a great disaster, so I should leave it. 

云何爲離(운하위리)? 離我我所(이아아소)

어떻게 그것(근심거리)을 떠날 수 있는가?

그것은 我=나라고 하는 것과 我所=내 것이라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What is it to leave? It is to be free from subject and object.

云何離我我所(운하리아아소)? 謂離二法(위리이법)

어떻게 하면 나라는 것과 내 것이라는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두 개의 (상대적인) 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며,

What does it mean to separate from subject and object? It means to e free from dualism. 

云何離二法(운하리이법)? 謂不念內外諸法行於平等(위불념내외제법행어평등)

어떻게 하는 것이 二法=두가지의 법(내외법, 상대적인 법)으로부터 떠나는 것인가?

그것은 주관=內, 객관=外의 온갖 법을 (분별하여) 마음에 두지 않고 평등한 마음을 행하는 것입니다. 

What is to be free from dualism? It means not considering the various Dharmas as internal or external and treating everything equally. 

[謂不念內外諸法하고 行於平等이니, 두 가지 법은 내외, 안밖의 법을 생각하지 않고 평등을 행하는 것이다

내 외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我가 안(내)이면 我所는 바깥(외)이 되어서, 이 세상은 我所에 해당되고 바깥(외)에 해당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 그리고 다른 것, 내외, 안과 밖의 모든 법을 생각하지 않고 평등을 행하는 것, 안팎을 똑 같이 보는 것이다.]

 

云何平等(운하평등)? 謂我等涅槃等(위아등열반등)

어떤 것이 평등인가? 나=我와 열반이 함께 평등한 것이니, 

What is equality? It means the equality of self and nirvana.

所以者何(소이자하)? 我及涅槃此二皆空(아급열반차이개공)

왜냐 하면, 나라는 것과 열반의 둘은 모두가 자성(svabha)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What is the reason? Self and nirvana both of them are empty. 

[我及涅槃이, 내가 공부해서 열반을 증득한다고 하지만, 나와 내가 증득하고자 하는 열반이 모두 공한=此二皆空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열반은 소승열반을 말하는 것입니다.]

 

以何爲空(이하위공) 但以名字故空(단이명자고공)

무엇이 공하다는 것인가? 다만 이름과 문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인 것입니다. 

Why is it empty? It is all just names, so it is empty. 

[나와 내가 증득 할 목표의 열반이 어째서 공이냐 

나도 열반도 성불도 전부 이름 뿐이지 실제하는 것이 아닌, 이름 뿐이고 말일 뿐이니까 空이다.]

 

如此二法(여차이법) 無決定性(무결정성) 得是平等(득시평등)

이 같은 두 가지 것=法은 변함이 없는 실체성(決定性, 결정된 성품)이 없으니,

이러한 평등함을 얻으면 

Such is the duality, which is indefinite by nature. Establishing such equality, 

[결론입니다. 如此二法이 無決定性,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이 결정된 성품이 없다. 즉 이것 이라고 할 고정불변하다고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나 중생들은 망상, 전도, 잘못된 생각으로 자꾸 나를 내세우고, 내가 없음에도 자꾸 나를 주장합니다.

대체로 기분이 나쁠 때 자기를 내세우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막연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꺽을 수 없었던 나라고 하는 것이 한 생각 돌이켜 버리면 없어지는 것은, 본래 없었기 때문에 환상에서 나를 인정하고 환상에서 나를 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다 이름 뿐이고 실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적인 바탕= 無決定性이 있는 것이 아니다]

 

無有餘病(무유여병) 唯有空病(유유공병) 空病亦空(공병역공)

다른 병은 있을 수 없으며, 다만 공한 병=空病만이 남지만, 이 공과 병도 또한 공인 것입니다.

you will not have other illnesses. The only thing that remains is the illness of emptiness, but the illness of emptiness itself is also empty. 

[得是平等하여는 無有餘病하고, 이와 같은 평등함을 얻었으면, 다른 병은 없더라.

내가 없으니까 나에게 얹혀 있었던 병이 없이지는 것이다. 나를 따지고 보니 없더라, 그리고 다른 병 또한 없지만 오직 한 가지 병, 공병만 있다

唯有空病이니 空病도 亦空일새, 오직 공병이 있을 뿐이나, 그 공병도 따지고 보면 또한 공이다.

나도 열반도 공하다고 하는 그 병만 남아있다. 공이 병이라고 하는, 공병이라는 낱말은 찾기 어렵습니다. 공에 집착하는 그것도 병이라고 하는 말은 흔히 있어도, 바로 병중에 공병이라는 병명은 아마 여기서 처음 보실 것입니다. ]


是有疾菩薩(시유질보살) 以無所受而受諸受(이무소수이수제수)

이 앓고 있는 보살은 (이미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아 들이는=感受하는 일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수하며, 

In this way, the ailing bodhisattva experiences various sensations with the attitude of non-experiencing any sensation. 

[以無所受로 而受諸受하며,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것으로써 모든 받아들이는 것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알고, 지각하는 것으로, 춥다 덥다는 것을 아는 受는 본래 감수하고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수, 병 있는 보살이 본래 받아들일 것이 없는= 無所受로써 받아들인다. 받아들일 것이 없는데서 받아들이다]

 

未具佛法(미구불법) 亦不滅受而取證也(역불멸수이취증야)

또 부처님의 모든 공덕=佛法(pariprabuddha dharma)을 아직 다 갖추지 못하였으나,

또 모든 감수작용=受(vedana)를 없애 버리지 않고서 取證=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Although still not possessing the Buddha’s Dharma, he does not extinguish the experience of sensations to take the proof [of nirvana]. 

[未具佛法이라도 亦不滅受而取證也니다. 아직 불법을 갖추지는 못했다. 즉 공을 안다고 해서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갖추지 못했을 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소멸하고 證= 열반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불법의 단계는 아직 멀었지만, 여기에서 이야기 해온 이 사람은 아프다, 즐겁다 등의 것을 받아 들이지 않지만, 그러나 열반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상당한 지혜에 이르기는 했으나 불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불법의 단계와 병의 문제를 불교적으로 잘 수용하는 것과는 아직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設身有苦(설신유고) 念惡趣衆生(염악취중생) 起大悲心(기대비심)

설령 자기의 몸이 괴로움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죄의 과보로) 나쁜 삶의 길에 떨어져 있는 중생=惡趣衆生들을 생각하고 무한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하며,
Supposing that one’s own body is suffering, think of all sentient beings suffering even more in the path of evil, and thus arises great compassion for them.

[設身有苦라도 念惡趣衆生하야, 설사 몸에 고통이 있더라도 악취중생을 생각하라

몸에 고통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사 이런 저런 괴로움이 많다 하여도 그 보다 더 어려운 곳에 사는 중생들을 생각하여

起大悲心하며, 큰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라. 내가 비록 이렇게 병을 앓고 있지만,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을 하는 대비심을 일으키며]

 

我旣調伏(아개조복) 亦當調伏(역당조복) 一切衆生(일체중생)

나는 이미 (괴로움을) 조복하였으므로, 일체 중생들의 고통도 조복해야만 하나니,
As I have subdued, I should also subdue all sentient beings. 

[나를 이미 조복했을진댄, 亦當調伏一切衆生이니, 또한 마땅히 일체중생을 조복할지니.

내 자신을 조복하면 다른 사람들도 조복하도록 할 수가 있다는 뜻]

 

但除其病(단제기병) 而不除法(이불제법) 爲斷病本而敎導之(위단병본이교도지)

다만 그 병은 제거하지만 법(이치)을 제거하지 않으니,

병의 근원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이를 敎導=가르쳐 이끌어야 하며,

But remove the illnesses rather than removing the Dharma and teach them to break the root of the illness. 

[다만 그 병만 제거하고 법은 제하지 말지니, 爲斷病本而敎導之라, 왜냐 하면 병의 근본을 끊어서 사람들을 敎導=가르치기 위한 까닭이니라. 병은 제하더라도 법, 이치는 놔두어야 된다.]

 

何謂病本(하위병본)? 謂有攀緣(위유반연) 從有攀緣(종유반연) 則爲病本(증귀병본)

무엇을 병의 근원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상을 따라 마음이 일어나는=攀緣(adhylambana)하는 것이니,

마음이 대상을 따라 일어나면, 곧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What is the root of the illness? It means when there is a dependence on something. The root of the illness begins when there is a dependence on something. 

[어떤 것을 일러 병의 근본이라고 하느냐, 이를테면 반연이 있음으로부터 병의 근본이 된다.

병이 어디 얹혀질 곳이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피부병도 몸이 있고 피부가 있으므로 해서 피부병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러한 것들이 조건이 되어서 반연한다는 것입니다.]


何所攀緣(하소반연)? 謂之三界(위지삼계)

무엇을 마음이 일어나는 대상으로 삼는가? (무엇이 반연하는 바 인가?)

삼계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What is is to have dependence? It is the [dependence on the] three realms.

[謂之三界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우리가 얽히고 섥혀서 살기 때문에 그것이 반연이 되고 병의 근본이 된다.]

 

云何斷攀緣(운하단반연)? 以無所得(이무소득)

어떻게 이 마음이 일어나는 대상을 끊습니까? (어떻게 반연을 끊습니까?)

그것은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無所有(anupalabdhi)이어야 합니다. 

How do you cut off the dependence on something? 

[어떻게 하면 반연은 끊느냐? 以無所得이라, 얻을 바 없는 것으로써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삼계에 살더라도 아무런 얻을 것이 없다. 얻을 바가 없는 것으로 살면 반연이 끊어진다. 사실 얻을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 반연이 끊어지죠.]

 

若無所得(약무소득) 則無攀緣(즉무반연)

만약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만약 소득이 없으면)

그 때 마음은 대상을 따라서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곧 반연이 없어진다)

Through non-grasping. If there is nothing one has grasped onto, there is no hanging to anything.

[만약에 소득이 없으면 곧 반연이 없다.

이 이치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삼계 욕계 색계 무색계에 와서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강의가 없다면 아무도 공부하러 올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무소득이면 斷攀緣이 됩니다.

若無所得이면 則無攀緣이니, 만약에 소득이 없으면 곧 반연이 없다

그 이치로 미루어서 생각하면, 우리가 삼계에 와서 이렇게 반연을 맺고 사는 것, 즉 삼계에 반연이 있는 것은 뭔가 소득이 있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 태어날 수도 있는데 한국에 태어난 것은 내가 한국에 인연이 깊고 한국에 가면 더 소득이 많으니까, 또는 전생에 한국에 살았으니까 훨씬 편안하니까 한국에 태어난 것 그것이 소득이라는 말입니다.

소득이 없으면 반연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무서운 소리 같기도 하지만, 또 알고 보면 사실입니다. 관계 속에서 소득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조건 없이 키운다고 하지만 키우는 보람이 있고, 키우는 재미가 있는 그것도 부모로써 소득이 됩니다. 소득이 없으면 반연이 없다 참 묘한 말이고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사는 것이 그러한 조건으로 얽혀있다는 말이겠죠.]

 

何謂無所得(하위무소득)? 謂離二見(위리이견)

무엇을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가요?(무엇을 소득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상대적인 소견=二見(ddvaya)을 떠나는 것입니다. 

What is the meaning of non-grasping? It means to be free from dualistic views.

何謂二見(하위이견) 謂內見外見(위내견외견) 是無所得(시무소득)
무엇을 상대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인가요? 주관을 보는 견해=內見(adhytmadi)과 ,

객관을 보는 견해=外見( bahirdhdi]이니,

(이들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無所得입니다.

What are dualistic views? It means there is nothing to attain upon the internal and external views.

[內見外見이니,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 나는 나의 견이 되고 나아닌 모든 다른 대상은 외견이 됩니다.

是無所得이라, 나라고 하는 것과 나 아닌 바깥세계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말뿐인 것으로, 아무것도 실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소득이라는 것이죠. 반야심경의 핵심도 무소득(無所得)이라는 낱말입니다.

보통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이 의미심장한 말 같지만, 그런 의미들을 전부 함축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소득, 얻을 바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