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5.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2
維摩詰言(유마힐언) 從癡有愛(종치유애) 則我病生(즉아병생)
유마힐이 말하되, 어리석음=痴으로부터 탐심=有愛하여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Vimalakiriti replied, From ignorance comes infatuation, and from which my illness arises.
[從痴有愛일새, 어리석음을 쫓아서 애착이 있다. 어리석음이란 無明입니다. 無明은 우리 본심의 어리석음이며 또 어리석기 때문에 캄캄하고 어둡습니다. 어리석으면 어두움 그 자체입니다. 지혜는 밝음이고 그 반대는 어리석음 어두움입니다]
以一切衆生病(이일체중생병) 是故我病(시고아병)
일체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Because all sentient beings are sick, I am sick.
[일체중생이 병이든 까닭에 내가 병들었다. 보살이 아픈 것은 중생이 아프기 때문이다.]
若一切衆生病滅(약일체중생병멸) 則我病滅(증아병멸)
만약 일체 중생의 병이 사라진다면, 그 때는 나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And if all sentient beings are not sick, then my illness extinguishes.
所以者何(소이자하) 菩薩爲衆生故入生死(보살위중생고입생사)
有生死則有病(유생사즉유병)
왜냐 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 생사에 들어섰으니, 생사가 있는 곳에는 병이 있기 때문이나,
Why? The bodhisattva enters life and death for the sake of sentient beings, and if there is life and death, there is the suffering of sickness;
若衆生得離病者(약중생득이병자) 則菩薩無復病(즉보살무부병) 愈 나을 유
만약 중생이 병에서 떠난다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중생에게 병이 없다면 곧 보살도 병이 없다)
if sentient beings are free from sickness, then there is no more sickness for the bodhisattva.
譬如長者(비여장자) 唯有一子(유유일자) 其子得病(기자득병) 父母亦病(부모역병)
若子病愈(약자병유)父母亦愈(부모역유)
비유하자면,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병에 걸리면 그 부모도 병을 앓고, 만약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낫는 것과 같으니,
For example, if an elder has only one son, and the son gets sick, the parents fall ill with him. When the son recovers, the parents will also recover.
菩薩如是(보살여시) 於諸衆生(어제중생) 愛之若子(애지약자)
보살도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사랑하기를 내 자식 대하듯 합니다.
The bodhisattva is also like this, loving sentient beings as if they were his own sons.
衆生病則菩薩病(중생병즉보살병) 衆生病愈(중생병유) 菩薩亦愈(보살역유)
중생이 병을 앓으면, 보살도 병을 앓으며,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의 병도 낫습니다.”
So when sentient beings are sick, the bodhisattva is also sick. When the sentient beings recover from their illness, the bodhisattva recovers from his illness.
又言是疾(우언시질) 何所因起(하소인기)? 菩薩病者(보살병자) 以大悲起(이대비기)
또 말하되, “이 병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겨났느냐면, 보살이 병든 것은 드넓은 자비=大悲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And what causes this illness? The bodhisattva’s illness arises out of great compassion.
[육신이 있는 한, 병이 드는 것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로써, 성인도 병들고 부처님도 병들고 어리석은 중생도 병들고 악한사람도 선한사람도 다 병들지만, 그 병의 의미가 다르고 해석이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병이 들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을 하느냐? 여기에 나타난 유마거사의 병에 대한 해석이 부처님의 마음과 불교의 대자대비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 居士此室(거사차실) 何以空無侍者(하이공무시자)?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거사님, 이 방은 어째서 텅 비어 있으며, 시자도 없습니까?”
Manjusri asked, Householder, why is this room empty and without attendants?
維摩詰言(유마힐언) 諸佛國土亦復皆空(제불국토역부개공)
유마힐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 또한 모두 공한 것입니다.”
Vimalakirti said, All the pure lands of the Buddha are empty.
[내방만 텅 빈 것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다 또한 공한 것이다.
모든 유, 있는 것은 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다 변멸, 변하고 소멸하는, 그 본질이 공하기 때문에 변하고 소멸하는 것입니다. 본질이 공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본래 공하기 때문에 변해가는 것으로 그 근본이 본래 없기 때문에 변해가는 것으로, 만약에 있다면 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제대로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확실하게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又問(우문) 以何爲空(이하위공)?
또 물었으니, “무엇을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Asking again, What makes them empty?
答曰(답왈) 以空空(이공공)
답하되, “공하기 때문에 공하다는 것입니다.”
Answering, Are empty because of emptiness.
[以空空(이공공), 이 부분의 티베트 역은 “공성(空性)이므로 공이다”라고 되어 있다.]
又問(우문) 空何用空(공하용공)?
“무엇을 가지고 공하다고 합니까?”
Also asking, How can this emptiness be empty?
[공이라면 왜 공을 씁니까? 공하기 때문에 공이라고 하니, 공이라면 공으로써 공이라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答曰(답왈) 以無分別空故空(이무분별공고공)
“공을 분별할 수 없는=無分別이기 때문에 공한 것입니다.”
Answering, Empty because there is no distinction in emptiness.
[무분별 공으로써 공인까닭에 공입니다. 우리가 공공하지만 사실은 무분별 공, 분별이 없는 공입니다. 본래 공한 것, 근본이 없이 공한 것은 분별= 생각으로 이치를 따져서 이러이러해서 공하다고 할 수있는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 본래 그냥 그대로 공하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又問(우문) 空可分別耶(공가문별야)?
“그렇다면 공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Asking another question, Can one distinguish between the emptiness?
答曰(답왈) 分別亦空(분별역공)
“분별하는 것도 공한 것입니다.”
Answeres, Distinction is also empty.
[분별해보았자 그것도 역시 공이다. 전부 공뿐이다. 내방을 텅 비게 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그런 이치를 들어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이치가 세속적인 보통의 이치와 다른 점은 있는 것을 공한 것으로 보는 안목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보는 것이 이루어지고 또 계산이 되지만, 불교의 깨달음의 이치는 없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없다고 일단 간주하고 거기서부터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의 이해를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 않습니까?
우리의 보통 상식적인 것은 전부 있는 것에서 출발해서, 일단은 있으니까 있는 것부터 따지고 보는 것이지만, 거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있는것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없는 것을 근거로 해서 계산하고 따져보니까 너무 쉽고, 그 나머지는 전부 소득이 되는 것입니다. 없다 생각하고 주머니를 보니까 아직도 만원이 남아 있으니까 그 만원은 공짜이고 덤이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좋습니까?
내 삶이라는 것이 본래 없는데 지금 사는 것은 전부 공짜니까 내일 죽어도 괜찮은 것이고 더 사는 것은 덤이 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플러스발상법입니다. 전부 一切唯心造의 도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상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 안 바뀌는 현상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져보았자, 그렇게 애쓰는 나만 손해입니다.]
又問(우문) 空當於何求(공당어하구)?
“그렇다면 공은 어디서 구해야만 합니까?”
He asked another question, How should one seek emptiness?
答曰(답왈) 當於六十二見中求(당어육십이견중구)
“그릇된 62종의 소견에서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In reply, One should seek it with the sixty-two views.
[62견(六十二見)은 초기불교 경전 등에서 외도(外道)의 모든 견해 또는 사상을 62종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62가지의 모든 (외도의) 견해'라는 뜻에서 62제견(六十二諸見) 또는 '62가지의 (외도의) 견해와 내용'이라는 뜻에서 62견취(六十二見趣)라고도 불리며, 간단히 줄여서 62(六十二)라고도 한다.
본겁본견(本劫本見) - 18견 = 1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전제분별견(前際分別見), 과거에 관한 18종의 사견.
말겁말견(末劫末見) - 44견 =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후제분별견(後際分別見), 미래에 관한 44종의 사견]
又問(우문) 六十二見當於何求(육십이견당어하구)?
“62견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He also asked, Where should I seek the sixty-two views?
答曰(답왈) 當於諸佛解脫中求(당어제불해탈중구)
“모든 부처님들께서 해탈하신 곳에서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Answered, One should seek in the liberation of the Buddhas.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해탈가운데서 구한다.
육십이견이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소견, 편협한 소견, 편법 되고, 비중도적인 소견인데, 그런 소견을 부처님의 해탈 가운데서 구한다.]
又問(우문) 諸佛解脫當於何求(제불해탈당어하구)?
“부처님들의 해탈은어디서 구해야만 합니까?”
Asking again, Where does one seek the liberation of the Buddha?
答曰(답왈) 當於一切衆生心行中求(당어일체중생심행중구)
“일체 중생의 마음가짐=心行 (cittaprva-carita)에서 구해야 합니다.
Answered, One should seek it in the mental activities of all sentient beings.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에서 구한다. 중생들의 마음 속에 해탈이 있고, 또 거기에서 육십이견이 벌어지고, 공도 그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체중생에게로 돌아와서, 일체중생의 마음이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일체중생의 마음 가운데 분별도 있고 육십이견도 있고 해탈도 있지만 결국은 공이고, 공은 일체중생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又仁所問(우인소문) 何無侍者(하무시자)?
또 그대는 왜 시자가 없느냐고 물었지만,
Also, Benevolent One, you ask why there are no attendants.
一切衆魔及諸外道(일체중마급제외도) 皆吾侍也(개오시야)
모든 마군과 온갖 외도들이 모두가 나의 시자입니다.
All the many demons and heretics are all my attendants.
所以者何(소이자하)? 衆魔者樂生死(중마자락생사) 菩薩於生死而不捨(보살어생사이불사
왜냐 하면, 온갖 마군들은 생사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고,
Why is that? The demons rejoice in life and death, while a bodhisattva is in life and death without reluctance to part with them.
[온갖 마구니들은 생사를 즐기는데, 菩薩은 於生死에 而不捨하며, 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는다.
중생들을 제도 하려면 중생들과 같이 생사, 생하고 사함을 더불어 같이 해야 되니까 보살들은 생사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생사를 버리지 않으니까 생사를 즐기는 衆魔= 모든 마구니와 내가 생사를 버리지 않고 생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사에 딸려있는 저 마구니들이 전부 내시자다. 다른 의미로 생각하면 생사 그 자체보다 더 훌륭한 시자는 없고 훌륭한 스승은 없고, 훌륭한 선지식은 없다는 뜻이 될수도 있습니다.]
外道者樂諸見(외도자락제견) 菩薩於諸見而不動(보살어제견이부동)
외도는 여러 가지 그릇된 견해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이 그릇된 견해에 동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Heretics take delight in various views, but a bodhisattva is unmoved by the various views.
[온갖 소견에 보살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외도들은 여러 가지 소견들을 즐기고 있는 반면에 보살들은 그 모든 소견에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여기가 좋다고 하면 여기 쭉~ 따라가고, 저기가 좋다고 하면 또 쭉~ 따라 가는 그것이 樂諸見입니다. 외도만 여러 가지소견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중생들이 자기 주관이나 소신이 없어서, 불교 공부를 했어도 뚜렷한 견해가 없어서 쉽게 동요하는 것이 樂諸見입니다.]
文殊師利言(문수사리언) 居士所疾(거사소질) 爲何等相(위하등상)?
문수사리가 말했다. “거사님의 병세는 어떤 상이 있습니까?”
Manjusri asked, House holder, what form is the illness which you are suffering?
維摩詰言(유마힐언) 我病無形不可見(아병무형불가견)
유마힐이 말했다. “나의 병은 병상이 없으므로[無形] 볼 수가 없습니다.”
Vimalakirti said, The illness I suffer has no form and is unseen.
[내 병은 형상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즉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又問(우문) 此病身合耶(차병신합야)? 心合耶(심합야)?
“이 병은 몸과 관계된 병입니까, 아니면 마음과 관계된 병입니까?”
He also asked, Is this illness of the body or the mind?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는데 無形不可見이라고 대답을 하니까, 대답하기 쉽도록 몸이 아픈것이냐? 마음이 아픈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答曰(답왈) 非身合(비신합) 身相離故(신상이고) 亦非心合(역비심합) 心如幻故(심여환고)
“몸과는 관계된 병이 아니니, 몸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과 관계된 병도 아니니, 마음은 허깨비=幻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The answer was Not with the body because the body is apart from form. Nor is it with the mind because the mind is illusionary.
[마음은 환과 같은 것이다.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의 종적이 있어서 마음과 합친 것이 아니다]
又問(우문) 地大水大火大風大(지대수대화대풍대) 於此四大(어차사대) 何大之病(하대지병)?
지, 수, 화, 풍 4대에서 어느 것이 병든 것입니까?
Asking again, Of the four elements of earth, water, fire and air, to which does the illness belong?
[몸뚱이는 네 가지 요소뿐이데, 地大= 몸이 무거우냐, 水大= 습으로 물기가 많아서 아프냐, 火大= 열이 나느냐, 風大= 풍이 들었느냐?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 가운데서 어느 쪽이 탈이 났느냐?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4대 중 어느 하나도 부족하거나 과하면 병이 나는 것입니다.]
答曰(답왈) 是病非地大(시병비지대) 亦不離地大(역불리지대)
水火風大亦復如是(수화풍대역부여시)
“이 병은 지대의 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대를 떠나서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수대, 화대, 풍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He answers, The illness is not of the earth element, nor is it separate from the earth element; the same is true of the elements of water, fire and wind.
[내 병은 온 세상만유와 함께하고 있다,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而衆生病(이중생병) 從四大起(종사대기) 以其有病(이기유병) 是故我病(시고아병)
그러나 중생의 병은 4대로부터 생기며, 중생에게 이러한 병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도 병든 것입니다.”
The illness of all sentient beings arise from the four elements. Because all sentient beings are ill, that is why I am also ill.
[따지면 중생들이 사대 때문에 병을 앓으니까 나 역시 사대로써 병이 있음이다. 꼬집어서 화기가 성하다 풍이 성하다 수가 성하다 아니면 지가 성하거나, 부족하거나, 그것들의 흐름이 잘못되었다고 꼬집어서 표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병의 형상이 들어나지 않고 병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 결국은 여기서 말하는 공의 이치와 똑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