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維摩經)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3 제자품(弟子品) 9

Skunky 2023. 3. 31. 07:00

◎羅睺羅(라후라)

밀행제일(密行第一) 나후라(羅喉羅 Rahula), 부처님께서 출가하시던 날 밤에 ​태어난 부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아수라의 일종으로 그 아수라의 무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화에 근거하여 ‘라훌라’라는 말은 월식으로 불리게 되고 결국에는 장애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하여 돌아오던 ​길에 아들이 태어나 “라훌라(장애)가 생겼구나”라고 통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라후라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카피라성에(고향) 갔을 때 사리불과 목건련을 스승으로 하여 15세에 출가, 최초의 사미승이 되어,​ 20세로 도구계를 접수하는 비구가 되었다. 그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불언 실행으로 선행 및 수행을 완수해, 밀행 제일로(密行第一) 칭해졌지만, 석가불보다, 많은 비구사람들이라도 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학습 제일이라고도 칭해졌다. 불화에는 부처님 좌측에 마하가섭, 우측에 아난존자가 배치됐는데, 라후라는 가섭이 ​위치한 자리에서 약간 위에 머리를 단아하게 깍은 젊은 비구의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佛告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
부처님께서는 라후라(Rhula)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The Buddha said to Rahula, Go to Vimalakirti and ask him about his illness. 

羅睺羅白佛言(라후라백불언) 世尊 我不堪任詣彼問疾(세존 아불감임에피문질)

라후라도 부처님께 말씀드렸으니,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Rahula said to the Buddha, World Honoured One! I cannot undertake the visit there to ask him about his illness. 

所以者何(소이자하) 憶念昔時(억념석시)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Why? I recalled that in the past 

毘耶離諸長者子來詣我所(비야리제장자자내예아소) 稽首作禮(계수작례)

問我言(문아언) 

비야리성의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를 찾아와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when the sons of the elders of Vaisali came to my abode, bowed to me, and said, 

唯 羅睺羅(유 라후라) 汝佛之子(여불지자) 捨轉輪王位(사전륜왕위)

出家爲道(출가위도) 其出家者(기출가자) 有何等利(유하등리)?

‘라후라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고 깨달음을 위하여 출가하셨으니, 그 출가에는 어떠한 이익이 있습니까?’

O Rahula, you are the son of the Buddha, yet you cast aside the position of a wheel-turning king and became a monk to seek the Way. What are the benefits of becoming a monk? 

我卽如法爲說(아즉여법위설) 出家功德之利(출가공덕지리)

그래서 저는 여법하게 (불법대로)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서 그들을 위해 말해주고 있었는데, 

I then spoke to them about the benefits of monastic merit, according to the Dharma. 

時維摩詰來謂我言(시유마힐내위아언) 唯 羅睺羅(유라후라)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라후라여, 

Then Vimalakirti came to me and said, O Rahula, 

不應說出家功德之利(불을설출가공덕지리) 所以者何(소이자하)

출가의 공덕이나 이익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you should not talk about the benefits and merits of being a monk. Why? 

無利無功德(무리무공덕) 是爲出家(시위출가)

아무런 이익도 공덕도 없는 것이 출가이기 때문이며,

Not seeking benefits and merits is the original meaning of monasticism. The one with no benefit and no merit is a monk.

[이익과 공덕을 먼저 계산해서 따져서 출가하는 것이 아니고, 출가는 이익도 없고 공덕도 없는 것이다]

 

有爲法者(유위법자) 可說有利有功德(가설유리유공덕)

유위법이라면 이익이나 공덕이 있다 할 수 있겠지만, 

It is only possible to state that conditioned Dharmas have benefits and merits. 

[함이 있는 법, 조작이 있는 법, 억지가 있는 법은 이익도 있고 공덕도 있다고 가히 말할 수 있거니와]      

[불교에는 일체법(一切法) 또는 제법(諸法)을 분류하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그 중에는 크게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의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이 있다. 이 분류 방식은 일체법을 크게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의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과 더불어 불교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분류법이다.
유위(有爲, 산: saṃskrta, 팔: savkhata, 영어: created, formed, conditioned)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유위법(有爲法, 산: sajskrta-dharma, 영어: Karmic existence, conditioned existence)은 유위(有爲)의 세계, 즉, 여러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성과 소멸의 현상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무위(無爲, 산: asaṃskrta, 팔: asavkhata, 영어: uncreated, unformed, unconditioned)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무위법(無爲法, 산: asaṃskrta-dharma, 영어: non-Karmic existence, unconditioned existence)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이었는데, 후대의 아비달마불교와 대승불교에 의해 3무위(三無爲), 6무위(六無爲), 9무위(九無爲) 등의 설이 생겼다.]

 

夫出家者(부출가자) 爲無爲法(위무위법)

출가는 爲無爲法=무위법을 구하는 것으로서 

When a monk pursues the Dharma of noncausality,

[출가라고 하는 것은 爲無爲法=무위법이다.

爲無爲法= 무위법, 함(환)이 없는 법, 조작이 없는 법, 진리에 입각한 법이다. 

우리는 전부 유위법의 상식 속에서 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함이 있습니다.]

 

無爲法中(무위법중) 無利無功德(무리무공덕)
무위법에는 이익이나 공덕이 없습니다.
he is within the realm without causation, and there is no benefit or merit. 

[이익이나 공덕을 따지면, 그것은 이미 유위법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출가와는 관계가 없게 되는 것이다.

출가는 불법을 위해서 한 것이고, 불법이 무위법이고 무위법이 불법이니까 거기에 이익이나 공득이 있음을 따지면 아직도 불법의 진정한 경지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다. 아직 불법이라는 것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羅睺羅 出家者(라후라 출가자) 無彼無此(무피무차) 亦無中閒(역무중간)

라후라여, 출가에는 彼= 너도 없고 此=나도 없고 또한 그 중간도 없으며, (출가에는 彼=깨달음도 없고 此=미혹도 없고 또한 그 중간도 없습니다.)

Rahula! When one is truly a monk, there is no other shore of nirvana, no birth and death, and no in-between. 

[피도 없고 차도 없다. 대게 출가라고 하는 것은 피차가 없는 것이고, 亦無中間= 또한 중간도 없는 것이니까 중도입니다.

피차(彼此)= 이쪽 저쪽, 나다 너다,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 깨달음과 미혹 등이 아닌 중간이다. 즉 피차와 중간을 다 초월해서 떠난 진정한 중도가 출가이다.

우리는 중간가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간도 사실 어렵고, 우리의 행위는 대게 피 아니면 차입니다. 이쪽에 치우지지 않으면 저쪽에 치우지고, 이 사람 편들지 않으면 저 사람 편들고, 저 사람 편들지 않으면 이 사람 편들고, 이쪽으로 기울이지 않으면 저쪽으로 기울고 소양의 흑백논리에 영향을 받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이 중도냐 하면 중간이라는 것도 중도가 아닙니다. 여기서 분명히 또한 중간도 없다고 했으니까 진정한 출가의 의미는 중도에 있고, 중도의 정신은 출가라는 의미입니다]

   

離六十二見(이육십이견) 處於涅槃(처어열반)

62종의 소견(견해)을 멀리 떠나 열반에 처하는 것이니 

They are free from the sixty-two viewpoints and are in the realm of nirvana. 

[육십이견= 잘못된 소견의 육십이를 말함이니 여러 경론의 해석이 제각기 다른 것입니다.

천태지자의 해석은 오온 가운데 색온(色蘊)이 곧 나이고, 우리 육신이 곧 나이다. 즉 육신을 떠나서 내가있다. 육신 가운데 내가 있다. 육신이 내 가운데 있다. 색온이 내 가운데 있다는 네 가지 견해에서 수, 상, 행, 식의 사온에도 역시 그와 같이 네 가지 소견을 적용하면 이십이 되고, 또 이것을 과거, 미래, 현재를 곱하면 육십이 되고, 근본의 단견(허무주의)과 상견(현실주의)의 두 가지 견해를 더하면 육십이견이 됩니다.

대품반야경의 한 예로, 이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소견 견해들이며, 그것은 편협한 견해고 중도적인 견해가 못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서 떠나야 된다

열반이란, 번뇌가 다 사라진 자리, 온갖 희로애락과 피차와 중간이 사라진 자리이고, 무위이고, 무위법이고, 무위법은 곧 출가이고, 출가는 곧 피차와 중간을 떠난 것이고, 육십이견을 떠나서 번뇌가 사라진 뒤, 열반에 머무르는 그것이 출가이다  ]

 

[62견(六十二見)은 초기불교 경전 등에서 외도(外道)의 모든 견해 또는 사상을 62종으로 분류한 것을 말한다. '62가지의 모든 (외도의) 견해'라는 뜻에서 62제견(六十二諸見) 또는 '62가지의 (외도의) 견해와 내용'이라는 뜻에서 62견취(六十二見趣)라고도 불리며, 간단히 줄여서 62(六十二)라고도 한다.

본겁본견(本劫本見) - 18견 = 1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전제분별견(前際分別見), 과거에 관한 18종의 사견.

말겁말견(末劫末見) - 44견 =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후제분별견(後際分別見), 미래에 관한 44종의 사견]

 

智者所受(지자소수) 聖所行處(성소행처) 降伏衆魔(항복중마)

지혜로운 이가 받아 들이는 바이며, 성인이 닦는 길인 것이며, 온갖 마군을 항복시켜 

It is the path of monasticism that all sages and wise people hold and practice. Subduing all demons, 

[출가란 것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바이고 성인들이 해야 할 곳이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성인이야말로 진정한 출가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면서 산다. 출가의 정신을 제대로 누리면서 산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출가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몸이 집을 떠나서 산중에 들어갔다고 해서 출가가 아닙니다. 글자대로는 집을 벗어났다라는 말인데 은 편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옳다 그러다, 좋다 나쁘다는 등의 편견은 진정한 출가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度五道(도오도) 淨五眼(정오안) 得五力(득오력) 立五根(입오근)

5도=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를 넘어서 5眼=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을 맑게 하고, 5력을 얻었고, 5근을 바르게 세워 

seeking to deliver all sentient beings in the five realms, purifying the five eyes, acquiring the five powers, and establishing the five capacities. 

[집을 떠났다 안 떠났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이러한 중도적인 정신, 무위의 정신에서 노니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출가라는 것입니다

降伏衆魔= 온갖 유혹과 집착과 끄달림을 전부 항복 받아서 극복하고, 거기서 다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五道=육도 가운데의 다섯 개,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를 전부 度=제도한다.

五力과 五根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오력을 얻고 오근을 세운다.
五根은= 三보, 三체를 믿는 信根, 꾸준히 착한 법을 닦는 淸進根, 옳은 법을 생각 하는 念根, 마음을 한 곳에 머물러 산란하지 않는 定根, 진리를 생각하는 慧根, 이러한 다섯 가지 온갖 착한 법을 내는 근본=根이 커져서, 
五力=다섯 가지 장애되는 것을 대치하는 힘을 말한다. 그래서 믿는 信力, 전진하는 淸進力, 생각하고 기억하는 念力,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 또는 선정행 定力, 판단할 수 있는 지혜의 慧力이 생기는 것으로, 오력을 얻고 오근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사물과 이치를 보는 부처님이 가지신 다섯 가지의 눈, 모든 법의 사리(事理)를 관조하는 부처님이 갖추신 다섯 가지 눈을 말한다. 
'금강경'에서 여래의 오안(五眼)을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이라 했으며, 중생도 수행 정진해서 여래와 같은 마음이 되면 오안을 구족하게 된다고 했다.

육조 혜능(慧能) 대사는 '금강경오가해'에서 오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오안(五眼)이 있지만 어리석음에 덮여 스스로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오안이 오롯이 밝아 생각 생각에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
①육안(肉眼) :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것.
②천안(天眼) :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보고 애틋한 마음(연민심)을 일으키는 것.
③혜안(慧眼) :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
④법안(法眼) :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⑤불안(佛眼) : 미세한 번뇌까지 영원히 없어져 오롯하게 밝아 모든 것을 빠짐없이 두루 비추는 것.-아미산]

不惱於彼(불뇌어피) 離衆雜惡(이중잡악)

그 어떤 것으로부터 不惱=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온갖 잡다한 악을 떠났으며, 

Free from all worldly discontent, free from all kinds of impure and evil thoughts, 

[惱는 괴롭힌다. 복잡하게 한다. 시끄럽게 한다. 귀찮게 한다는 등의 의미입니다. 옛날 말로' 뇌롭다'인데, 뇌롭게 하지말라는 말을 절에서는 아직 쓰느데,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안 끼치고, 여러 가지 잡학= 뒤섞이고 나쁜 것들을 전부 떠나는 것이 출가이지, 반드시 집을 떠나는 것이 출가라고 말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摧諸外道(최제외도) 超越假名(초월가명) 摧 꺾을 최, 越 넘을 월, 

모든 외도들을 꺾었으며, 가명에 집착하지 않으며, 

able to dispel the external paths, and transcend false names. 

[假名= 헛된 이름. 거짓이름 허상, 허상으로부터 초월한다.

우리는 헛된 이름 속에 많이 놀아나지만, 출가란 어디에 살든지 상관없는 것으로, 많은 식구들과 더불어 살고, 복잡한 세상사에 어울려 살더라도 超越假名이라=헛된 이름, 거짓이름, 거짓모습, 허상으로부터 초월, 떠나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假名=가설(假說)․가(假)․시설(施說)이라고도 한다. 사물을 승의제(勝義諦)의 입장에서 보면 공(空)이지만, 세속제(世俗諦)의 입장에서 보면 인연에 의해 존재하는 가유(假有)이다. 이처럼 방편으로 이름 붙여진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한다.]
              

出淤泥(출어니) 無繫著(무계착) 無我所(무아소) 無所受(무소수)

애욕의 淤泥=진흙탕을 벗어나 온갖 속박을 벗어났으며,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所受도 없고, 

淤 진흙 어, 泥 진흙 니, 繫 맬 계, 著 드러날 저, 저축할 저, 붙일 착,擾 어지러울 요, 

Out of the mud, no ties of attachment. Without the sense of subject and object, without being suject to things, 

[淤泥=진흙이라는 것은 여기저기 푹 푹 빠져 들게 하는 것으로, 온갖 인연의 수렁, 정의 수렁, 사랑의 수렁, 감정의 수렁 등에 연결되어서 줄줄이 다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出淤泥=수렁으로부터 벗어난다.

繫(계)는 죄수를 오라줄로 묶고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목에 칼 세우는 것을 繫(계)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옭고 묶는 것이 없어야 출가이지, 산속에 혼자 들어가서 풀 뜯어 먹고 솔잎 먹고 사는 것만이 출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온갖 현상들의 묶임으로부터 벗어나려면 我所= 내 것이 없어야 되고, 내 것이 없으려면 내 것을 만드는 과정이 없어야 되는데 내 것을 만드는 것은 所受=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고 좋아서 쓰윽 받아들일 때에는 힘 들지 않고, 별로 짐도 되지 않아서 그냥 막 받아들여놓고, 지나 보니까 그것이 내 것이고, 나의 소유라는 것으로써 오라줄이 되어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고, 또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연결이 되어서 繫着= 옭아 메여서 꼼짝달짝 못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한 사람이 매여 있으면, 그 한 사람이 빠지면 그 밧줄에 같이 매여 있는 다른 사람도 같이 빠지게 되니까 그것이 淤泥= 수렁이고, 수렁에 빠지는 줄 알고도 끊을 수 없어서 못 끊는 것이= 繫着이라. 그 관계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無擾亂(무요란) 內懷喜(내회희) 護彼意(호피의) 隨禪定(수선정) 懷 품을 회

마음의 혼란이 없고, 안으로 늘 기쁨을 간직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지켜 주며, 선정을 따르며 

without disturbance. Full of inner joy, and intending to protect others. Conforms with meditation,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마음에 요란=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것이 없어야 된다. 무요란까지는 부정적인 것들로써 이러한 것들이 없어야 좋다는 것이고, 內懷喜(내회희)부터는 출가의 긍정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內懷僖= 기쁨을 가득히 품고 있다. 항상 긍정적으로 보고 기쁘게 생각해야 됩니다.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세상을 대하는 생각, 견해, 안목이 달라져야 됩니다. 사람도 잘 안 바뀌니까 사람 바뀌리라는 기대도 하지 마시고 내가 그 사람을 좋게 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부처님도 세상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을 좋게 볼 수 있게 네 마음을 잘 다스려라.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극락으로 보는 것이며, 극락으로 보려면 지혜가 있어야 된다. 지혜가 있으면 극락으로 보이지만 지혜가 없으면 지옥으로 보인다. 그저 내가 보는 그 안목, 그 소견, 그 지혜가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자꾸 변하고 발전하고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서 바꾸는 것이 차라리 쉽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으로, 우리가 행복감을 느낄 때 그때 비로소 행복이 있는 것이고, 불행도 불행을 느낄 때 그때 비로소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우리가 마음으로 느낄 때에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행복과 불행의 주체가 마음이니까 마음이 자꾸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離衆過(이중과) 若能如是(약능여시) 是眞出家(시진출가)

온갖 잘못을 다 떠나 버립니다. 만약 능히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인 것입니다.

freedom from all faults. It one can do these things, one is a true monk. 

於是維摩詰語諸長者子(어시유마힐어장자자)

이 때 유마힐은 장자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Then Vimalakirti said to the sons of the elders, 

汝等於正法中(여등어정법중) 宜共出家(의공출가) 所以者何(소이자하)

佛世難値(불세난치)

그대들은 정법을 받아들여 함께 출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기회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You should become monks together during this period of the True Dharma. Why? It is rare to come across a time when the Buddha is living in the world. 

 

諸長者子言(장자자언) 居士 我聞佛言(거사 아문불언) 父母不聽(부모불청)

不得出家(부득출가)

장자의 아들들은 말하였습니다.
‘거사님, 저희들이 듣기에는 부모님의 허락이 없으면출가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만…….’
The sons of the elders said, Householder, we have heard the Buddha say one cannot become a monk without the parents’ permission. 

[父母不聽 허락할 聽으로,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다고 부처님이 말씀 합니다. 그런데 거사님이 출가하라고 해서 어떻게 우리가 출가 할 수 있겠습니까? 즉 유마거사가 설명한 출가의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居士(거사)=세간에 머물며 가족을 거느리고 사생활을 하면서도 남다른 수행과 정진으로 출가자들 못지않게 탁월한 지혜를 득한 이들이 많은 분들을 일러 거사(居士) 칭한다.
산스크리트어는 그라파티(grhapati)이며, 가라월(迦羅越, 伽羅越)로 음역하기도 했으며, 중국에서는 거사 외에 장자(長者), 또는 가주(家主), 가장(家長)으로도 한역했다. 
우리나라에선 처사(處士)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용어이다. ‘처사(處士)’란 원칙적으로 조선시대 유학자로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해 생활하는 선비를 칭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불교의 거사에도 혼용해서 쓴 것인데, 합당하지 많은 말이다. 
거사(居士)란 말은 부처님 당시 재가 남자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유마힐(維摩詰) 거사 이름에서 유래한다.즉, 거사란 출가하지 않는 재가 남자신도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귀(三歸)⋅오계(五戒)를 지키며 불교 신행(信行)을 하는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용어들이 평가절하 되어서, 신앙심이야 어떻든 여자신도를 보통 ‘보살’이라 칭하고, 남자신도를 ‘거사’라 부른다. 
초기불교에서 승가(僧伽)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 사부대중으로 구성했으며, 우바새와 우바이는 비구, 비구니를 믿고 그들을 외호(外護)하는 사람들로서 우바새가 거사에 해당한다. 또 다른 말로는 청신사(淸信士)라고도 했다. 
그 뒤 대승불교가 발전하면서 출가하지 않고 속가에 있으면서 불도에 정진하는 수행자, 즉, 세속 생활에 종사하면서도 수행에 힘쓰는 재가 남자불자를 일컫는 말이 됐다.
이들은 승단의 외호와 함께, 비록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정진하는 남자 신도들로서 이들은 나름으로 불교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중국 수(隋)나라시대의 정영사(浄影寺) 혜원(慧遠, 523~592)의 <유마의기(維摩義記)>에 ‘거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재산을 많이 쌓은 거재지사(居財之士)로 승가를 외호하는 자들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재가생활을 하면서 불도에 전념하는 재가수행자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전통적인 인도의 4성 계급에 따르면, 평민계층에 해당하는 "바이샤"에 속하면서 재력이 있는 자산가들로 상공업이나 무역에 종사하는 부호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장자 또는 거사라고 했다.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지어 바친 수달타(sudatta, 須達陀) 같은 사람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초기 교단 형성하던 시기인 BC 5~6세기에는 이들 바이샤의 사회진출이 두드러졌는데, 이들이 불교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이들의 지원으로 불교가 초창기에 크게 신장될 수 있었다. 
역사상 유명한 거사로 세계 3대 거사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인도 유마힐(維摩詰) 거사, 중국의 방(龐) 거사, 신라의 부설(浮雪) 거사 등이 있다.- 아미산]

 

維摩詰言(유마힐언) 然 汝等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연여등편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是卽出家(시즉출가) 是卽具足(시즉구족)

그러자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대들이 지금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곧 출가이며, 구족입니다.
Vimalakirti replied, That is so. But once you have developed the intention to seek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it is the same as if you have become a monk and taken the full monastic vow. 

[유마거사의 법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보리심입니다.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보리심을 내는 것이 출가이다= 是卽具足= 곧 이것이 구족계를 받는 것이다. 출가를 하면 바로 구족계를 받는데 보리심을 발하면 그것이 출가이고 보리심 발하면 그것이 바로 구족계를 받는 것이다]

 [구족(具足)= 교단이 정하는 완전한 계율을 받은 것.]

 

爾時三十二長者子(이시삼십이장자자)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개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그 때 서른두 명의 장자의 아들들은 한결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Then all the thirty-two sons of the elders set their minds to attain supreme perfect enlightenment.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For this reason, I cannot undertake the visit to ask him about his il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