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維摩經)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3 제자품(弟子品) 4

Skunky 2023. 3. 26. 09:00

須菩提(수보리) - 取食(취식)

[부처님의 십대제자-해공제일 수보리, Subhūti는 십대제자 중 유일하게 코살라국 출신이다. 코살라국 출신의 부호이자 바라문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해 급고독장자(아나타빈다타. 외롭고 홀로 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부자라는 뜻)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수보리의 큰아버지 수달다(수다타)는 사업차 마가다국에 왔다가 수보리의 부모인 동생 부부로부터 부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에 깊게 감화되어 죽림정사를 서성이다가 결국 석가모니를 만나 법문을 들었다. 법문을 듣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마가다국을 떠나면서 석가모니에게 코살라국을 방문하여 주십사 청하였다. 사정하고 부탁하여 사리풋다와 함께 코살라국으로 돌아온 그는 막대한 돈을 사용하여 기원정사를 세웠다. 기원정사는 기수급고독원으로도 부른다. 이때 수보리의 부모님도 불법에 귀의하고 수보리에게도 귀의하라고 열광적으로 권했으나 수보리는 반발심이 일어나 까칠하게 거절하였다. 옆에서 자꾸 억지로 권하면 하기 싫은 법이다. 결국은 산속으로 들어가 방황하다가 기원정사에서 처음 석가모니와 만났다.(처음에는 성품이 악하여 모든 것에 성을 잘 냈으나, 부모 친족이 거부하는 자신을 싫어하자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갔고 부처님에게 인도되어 불법에 귀의했다.) 법문을 멀리서 듣고 감화되어 직접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지혜가 총명하여 누구도 넘어설 자가 없었다고 하며, 상좌부 불교의 팔리어 경장에서는 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수보리를 소개하는 정도이고, 대승 불교 경전에 비해서 수보리의 비중이 작은 편이다.]


佛告須菩提(불고수보리) 汝行詣維摩詰問疾(여행예유마힐문질)
부처님께서는 수보리(Subhti)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The Buddha said to Subhuti, Go to Vimalakirti and ask him about his illness. 


須菩提白佛言(수보리백불언) 世尊(세존) 我不堪任詣彼問疾(아불감임예피문질)

수보리도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問疾=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Subhuti said to the Buddha, World Honoured One! I cannot go to Vimalakirti to ask him about his illess.  

 

所以者何(소이자하) 憶念我昔(억념아석) 入其舍從乞食(입기사종걸식)

왜냐 하면 憶念=생각해 보니, 저는 昔=옛날 入其舍=그의 집에 들어가 걸식하였는데, 

Why? In the past, I once went to his house to beg for food. 

[사람은 자기의 고정관념, 가치관, 선과 틀과 기준 등이 자꾸 깨어져야 합니다. 안 깨어지면 발전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깨뜨려질 때 거부감을 일으키고, 안 깨어지게 하려고 도사리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흔히 본능이라고 하는데, 자기의 의식, 자기의 틀은 자꾸 깨어져야 발전하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惡師)라, 도오선자(道吾善者)시오적(是惡賊)이요,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은 나의 적이다]

 

時維摩詰取我鉢(시유마힐취아발) 盛滿飯謂我言(성망반위아언)

그 때 유마힐은 저의 발우를 들고 밥을 가득 채워 주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鉢 바리때 발, 飯 밥 반

When Vimalakirti took my bowl and filled it with food, 

唯 須菩提(유 수보리) 若能於食等者(약능어식등자) 諸法亦等(제법역등)

‘수보리여, 만약 먹는 것(음식)에서 평등할 수가 있으면 모든 법에서도 평등할 수 있으며,  

he said, Well, I say, Subhuti, if one could have an equal mind toward food, then there will be no difference between all the Dharmas. 

[이것은 유명한 구절입니다.

약능어식(若能於食)에 등자(等者)는 제법(諸法)에도 역등(亦等)하고 제법(諸法)에 등자(等者)는 어식(於食)에 역등(亦等)하다. 일상생활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 음식인데, 누구에게나 똑같은 불성, 본래 평등한 법을 먹는 것에서 인정할 수 있으면, 불성의 평등을 진여의 평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에 평등한 실천적인 것이, 끝내는 부처와 중생이 본래로 평등하다 라고 하는 차원에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諸法等者(제법등자) 於食亦等(어식역등) 如是行乞(여시행걸) 乃可取食(내가취식)

모든 법에서 평등할 수가 있으면 먹는 것에도 평등합니다. 이와 같이 걸식하고 다닐 수 있으면 가히 주어진 것을 取食=먹을 수 있습니다.

If one considers all the Dharmas equal, one will not consider food as differentiated. Only when one can beg with such an attitude, then can one take the food.

[수보리는 부잣집만을 돌면서 걸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부자면 여유가 있겠지만 가난한 집은 자기들 먹을 것도 없을텐데, 수행자에게  밥을 줄 수 있겠는가 해서 수보리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 것이 좁은 소견이었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걸식하면서까지 평등한 불성을 볼 줄 아는 안목없이 차별된 것을 염두에 두면, 진리를 어떻게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若須菩提不斷婬怒癡(약수보리부단음노치) 亦不與俱(역불여구)

수보리여, 음행=淫과 분노=怒와 어리석음=癡를 끊지 않으나, 또한 그것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Shubhuti, do not deliberately cut off lust, anger and foolishness, but do not walk with them,

[부단음노치(不斷淫·怒·痴)하고 역불여구(亦不與俱)하며, 이도 유명한 문구입니다.

음욕치를 행사할 때는 하지만, 거기에 늘 젖어 있는 것도 아닌= 불여구(不與俱)입니다

음욕치를 끊으면 세상 생활이 안 되니까, 분노할 땐 분노하고 어리석을 때는 어리석어서 세상 삶을 부정하지 않고 또 거기에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그것이 중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음욕치를 항상 지니고 빠져서 사는 것은 범부이고, 음행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끊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승이고 이승이니까, 범부의 행도 아니고, 이승과 소승의 좁은 소견도  아닌, 대승의 생각이 곧 중도라는 것을 바로 이 구절이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도를 깨달은 사람들은 낙이불음(樂而不淫)이라. 즐거운 일에는 한껏 즐거워 하지만 그에 빠지지 않는다.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할 때 슬퍼하되 그로 인해 에 상하지 않는다.

중생들은 좋고 맘에 들면, 빠져 들어서 정신을 못차리게 되고, 그것을 아예 끊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소승이니까 끊을 것도 아니고, 빠질 것도 아니다.] 

[婬怒癡= 탐욕 이하의 성냄, 어리석음은 탐(貪)․진(瞋)․치(痴)의 3독(毒)이라 한다. 나집은 이 ‘탐’을 ‘음(淫)’으로 번역하고 있다.]

 

不壞於身(불괴어신) 而隨一相(이수일상)

내 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파괴하지) 않고서도 一相=진리의 한 모양을 따를 수가 있으며, 

 Not destroy the body to accord with the oneness of all things. 

[불괴어신(不壞於身)하고, 이 몸을 무너뜨리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이수일상(而隨一相)이다. 진리의 일상, 열반일상, 한 모양, 법을 따른다.

보통 몸은 진리와 상반되는 것이라서, 이 몸을 조복 받아야 되고, 몸을 부정해야 되고, 몸을 무시해야 되고, 몸은 형편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몸을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부처님도 처음 출가했을 때는 고행을 많이 하시다가 깨달은 후, 몸을 너무 편안하게 할 것도 아니고, 너무 혹독하게 고행할 것도 아니라고 녹야원에서 오비구에게 설법하신 것이 중도였습니다.  

또 부처님의 설법 중의 하나로, 거문고 타는 사람에게 묻기를 ‘줄을 느슨하게 하면 어떠냐?’ ‘소리가 제대로 안나지요.’ ‘그러면 바짝 당기면 어떠냐?’ 또한 소리가 제대로 안 납니다. 적당하게 당겨서 조절을 해야 정상적인 소리가 납니다.’는 대화가 나타내고 있듯이, 중도의 삶은 몸을 부정하지도 않고,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不滅癡愛(불멸치애) 起於明脫(기어명탈)

癡=어리석음과 愛=애착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도 明=밝음(지혜)와 脫=해탈을 일으키며, 

One does not have to extinguish foolish infatuation before the arising of liberation. 

[우리의 상식은 애착을 끊고,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지만,  어리석음과 애착을 소멸시키지 않고, 그 가운데서 명탈(明脫)=명(明)은 치(痴)와 상반되는 지혜이고, 탈(脫)은 애착에서 벗어나는 해탈, 밝음과 해탈을 일으키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 매여서 가정에 충실한 사람은 매였다고 생각 안하니까 편안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거기에 살되 거기에 매이지 않는 것, 가정에 충실하되 가정에 매이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매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선팔도를 다 다녀도 매여 있는 것이고, 매였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작은 방안에서 맴돌아도 행복한 것입니다.

불멸치애(不滅痴愛). 제한된 어떤 공간, 제한된 내 상황에서도, 거기서 행복과 자유와 보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자기 ‘우물이 제일 넓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以五逆相而得解脫(이오역상이득해탈) 亦不解不縛(역불해불박)

五逆相=5역죄를 범하는 모습으로도 해탈을 얻고, 또한 不解= 벗어나지도 말고, 不縛=속박되지도 않는 것이며,

Even if one commits the five rebellious acts, one can still become free from bondage. 

[불교에서 제일 무서운 죄가 오욕죄인데, 그런 일도 세상을 살면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로 부터 해탈을 얻어라. 아주 극한 법문입니다.]

[불교 용어로서의 죄(罪)는 도리(道理)에 반하는 행위, 계율을 어기는 행위, 또는 고의 과보를 불러올 악행을 말한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죄(罪)는 모든 선사(善士) 즉 모든 아라한 또는 성현(聖賢)이 꾸짖고 싫어하는 법 또는 꾸짖을 만한 것으로서 그 과보 즉 그것이 가져 올 애호할 만하지 않은 결과[非愛果]를 두려워 해야 할 것으로 정의되는데, 전통적인 용어로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가염법(訶厭法)이라 하고, 꾸짖을 만한 것을 가가(可訶)라고 하며, 두려워 해야 할 것을 포외(怖畏)라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죄 즉 가염법 · 가가 또는 포외는 시라(尸羅: 계율)와 궤칙(軌則), 그리고 온갖 청정한 명[淨命: 淨 · 청정 · 무루의 생활, 즉 8정도의 正命]을 훼범(毀犯: 허물고 범함)하는 것을 말한다.
5역죄=① 어머니를 죽임(殺母) ② 아버지를 죽임(殺父)  ③ 아라한을 죽임 (殺阿羅漢) ④ 부처님 몸에 피를 냄 (出佛身血)
⑤ 승가의 화합을 깸(破和合僧)]

 

不見四諦(불견사제) 非不見諦(비불견제)

4성제=四諦를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4성제(진리)를 보지 않는 것도 아니며, 

It is not absence for seeing the Four Noble Truths, nor not that one does not see the truth.

[사제(四諦)=사성제(四聖諦)는 소승들이 기본적으로 따르는 기본교리인데, 이에 너무 심취해 있지 말라. 즉 비불견제(非不見諦), 진리는 진리대로 깨닫되, 사제에 그렇게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非得果(비득과) 非不得果(비불득과)

得果=과를 얻음도 아니나, 不得果=과를 얻지 않음도 아니며,

Not that one has attained the fruit of enlightenment, nor is it that one c

[결과에 너무 매달릴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결과를 버릴 것도 아니고, 얻게 되면 얻는 것이지, 결과에 집착한다고 좋은 결과가 꼭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를 얻을 것도 아니나, 그러나 과를 얻지 아니할 것도 아니다.]

 

非凡夫(비범부) 非離凡夫法(비리범부법)

범부도 아니지만, 범부의 법을 떠난 것도 아니며,

Although not a common mortal, one still does what a mortal does. 

[불교에서 성인의 반대가 범부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성인과 부처님 경지이지만, 그러나 또한 범부의 법, 범부의 입장을 떠난 것도 아니다. 범부를 떠나서 성인이 없고, 범부 따로 있고, 성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어디에도 고집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불교에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편견이고 편협한 것이기 때문에 중도가 아니고, 바람직한 소견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非聖人(비성인) 非不聖人(비불성인)

성인도 아니나, 또한 성인이 아닌 것도 아니며, 

Even though one is not a sage, one cannot say that one is not a sage. 

[성인을 꼭 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또 성인을 배재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고집할 것이 아닙니다.]

 

雖成就一切法(수성취일체법) 而離諸法相(이이제법상) 乃可取食(내가취식)

비록 일체법을 성취하나, 모든 법의 상에서 떠났다면 可取食=먹어도 될 것입니다.

If one can accomplish all the Dharmas and are far from the characteristics of all the Dharmas, then one can take the food.

若須菩提不見佛(약수보리불견불) 不聞法(불문법) 彼外道六師(피외도육사)

수보리여, 만약 부처를 만나지도 못하고 가르침도 못 듣지 못하고, 또한 저 육사외도인 

Subhuti, if you do not see the Buddha, do not hear the Dharma, and the six teachers of the heterodox paths, 

[외도육사,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②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賖梨子) ③ 산자야비라지자(刪闍夜毘羅胝子) ④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 ⑤ 가라국타가전련(迦羅鳩駄迦旃延) ⑥ 니건타야제자(尼犍陀若提子)  

그 당시 인도에 많은 외도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 여섯 사람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그 당시 인도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외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富蘭那迦葉(부란나가섭) 末伽梨拘賖梨子(말가리구사리자)

부란나가섭(Praa kyapa), 말가리구사리자(Maskarin Golīputra), 

Purana Kassapa, Makkhali Gosala, 

刪闍夜毘羅胝子(산자야비라지자) 阿耆多翅舍欽婆羅(아기다시사흠바라)

산자야비라지자(Sajayin Vairaiputra), 아기다시사흠바라(Ajita Keakambala), 

Sanjaya Belatthiputra, Ajita Kesakambali, 

迦羅鳩馱迦旃延(가라구태가전연) 尼犍陁若提子等(니건타야제자등)

是汝之師(시여지사)

가라구태가전연(Kakuda Kty- yana), 니건타야제자(Nirgrantha Jtiputra) 등을 그대의 스승으로 삼아 

Pakudha Kaccayana, Nirgrantha Jnatiputra are your teachers. 

因其出家(인기출가) 彼師所墮(피사소타) 汝亦隨墮(여역수타) 乃可取食(내가취식)

그들을 따라서 출가하고, 그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역시 그대가 따라서 떨어질 수 있다면 이 밥을 먹어도 될 것입니다.

墮 떨어질 타, 무너뜨릴 휴
If you follow them to become a renunciate and if they fall into hell, you follow them into hell, then you may receive your food.

[피사소타(彼師所墮) 여역수타(汝亦隨墮). 이 또한 유명한 문구입니다.

저 사람들의 뒤 떨어진 곳에 너도 따라서 떨어질 수 있어야 진정 불자로서 밥을 빌어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외도들과 같이 더불어서 그런 소견에 같이 어울려 준다는 것으로, 사섭법 중에서 동사섭(同事攝)입니다.

불교인은 어떤 종교인과도 같이 더불어 함께하면서 좋은 것은 인정 해주는 포용력을 가져야 진정한 불자입니다. 그릇이 크고 명백하고 소견이 바르면 주변의 어떤 사람의 말도 들어주는 반면에 자기의 주관은 그대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若須菩提入諸邪見(약수보리입제사견) 不到彼岸(불도피안)

수보리여, 그대가 만일 온갖 사견=삿된 견해를 받아들여서 피안에 이르지 못하고, 

Subhuti, if you immerse yourself in various evil views, you will not reach the other shore. 

[삿된 견해에 들어가면 피안에 못 이른다는 뜻입니다.]

 

住於八難(주어팔난) 不得無難(부득무난) 同於煩惱(동어번뇌) 離淸淨法(이청정법)

8난에 머물되 장애(어려움)가 없음을 얻으려 하지 않으며, 번뇌와 함께 하면서 청정한 법을 떠나고,  

When you dwell in the eight adversities, you shall not be free from hardship. The same in affliction and away from the pure Dharma. 

[삼도팔난( 三途八難)= 지옥·축생·아귀의 삼악도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의 큰 재난(災難)을 말하는데 풀이하자면, ⓵재지옥난(在地獄難) ⓶재축생난(在畜生難), ⓷재아귀난(在餓鬼難), ⓸재장수천난(在長壽天難), ⓹재북울단월주난(在北鬱單越洲難), ⓺농맹음아(壟盲瘖瘂), ⓻세지변총(世智辯聰), ⓼불전불후(佛前佛後)의 여덟 가지 재난을 말한다.]

 

汝得無諍三昧(여득무쟁삼매) 一切衆生亦得是定(일체중생역득시정)

그대가 다툼 없는 삼매=無諍三昧를 얻거든, 모든 중생 역시 또한 그러한 삼매를 얻으며,

Having attained the concentration of non-conflict (Aranasamadhi), all sentient beings will also attain this meditation. 

[수행을 잘한 수보리가 무쟁삼매를 얻었는데, 중생들 또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무쟁삼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其施汝者(기시여자) 不名福田(불명복전) 供飬汝者(공양여자) 墮三惡道(타삼악도)

그대에게 보시하는 자에게 그대가 복전이 되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공양을 올리는 자는 3악도에 떨어져 

If you are not a field of blessing for those who give alms to you; the people who give you alms fall into the three evil paths; 

爲與衆魔共一手作諸勞侶(위여중마공일수작제노여) 侶 짝 려

여러 악마와 더불어 손을 잡고, 온갖 번뇌=勞의 벗(짝)이 되고, 

you’re in alliance with the demons and are their companion and helper, 

汝與衆魔(여여중마) 及諸塵勞(급제진노) 等無有異(등무유이)

그대는 온갖 마구니와 모든 번뇌=塵勞와 더불어 같아 다름이 없으며,

and do not differ from the demons and the various kinds of defilements; 

[불교에서 보통 이야기 하고 있는 수행과 이상 또는 생활 태도 등을 완전히 깨뜨리고, 무너뜨려 버리는 설법입니다.]

 

於一切衆生而有怨心(어일체중생이유원심) 謗諸佛(방제불) 毀於法(훼어법)

모든 중생에게 원한을 품고, 모든 부처를 비방하며 정법=法을 훼손하고, 

have grudges against all sentient beings, slander the Buddhas, ruin the Dharma, 

[일체중생에게 이유원심(而有怨心)하며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도저히 수행자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보통 우리 범부들은 다 그런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는 보통사람으로서, 지극히 잘못된 소견만을 제외하면, 다 제대로 도통 해서 도의 삶, 진리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불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이건 전부 잘 못 되었으니까 지금까지 생활을 전부 다 청산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만약 불교가 처음부터 그렇게 했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남아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남아 있을 가치도 없는 것이되었을 것입니다.]

 

不入衆數(불입중수) 終不得滅度(종부득멸도) 汝若如是(여약여시) 乃可取食(내가취식)
승가=衆數에 동참하지 않고 마침내 깨달음=滅度를 얻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밥을 먹어도 좋습니다.

does not enter the multitude, and as a result, never able to attain nirvana; if you are like this, then you may take the food.  

[불입중수(不入衆數)= 부처님의 제자, 불교 공부하는 대중의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마침내 부득멸도(不得滅度)= 마침내 멸도=제도를 얻지 못할지니. 그대가 만약 이와 같이 하면, 내가취식(乃可取食)= 밥 먹을 자격이 있다,  

우리의 어떤 이상, 배재해야 할 어떤 번뇌, 수행을 통해서 이뤄야 할 경지, 그리고 이러 이러한 삶은 옳지 못하다는 등으로 갈등하면서, 그러한 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것들이 따지고 보면 전부 환상과 같은 허망된 상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라고 하는 것도 허망한 상이고, 내가 못난 중생이라는 것도 허망한 상이고, 번뇌라는 것도 허망한 것이고,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 역시도 허망한 상입니다. 탐진치 삼독 번뇌라고 하는 것도 떠나야 하는 것이라 하지만, 그 또한 다 허망한 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속아서 캄캄한 길을 가고  있는데, 여기서 유마거사는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모든 것이 전부 허망한 것이라는 겁니다.

수보리는 공의 도리를 제일 깊이 깨달은 사람이니까, 보통의 보통 법문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불법과 부처님을 믿지 말라, 법을 비난하라, 부처님도 비방하고 법을 헐어 뜨리라고 해서, 수보리의 마음에 있는 상들을 완전히 두드려 부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이 상인 반면, 좋다고 하는 관념도 상인데, 이 차원에서는 좋다 나쁘다는 모든 상을 다 두드려 부수고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으로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라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고 법을 비방하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고 또한 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칭찬하는 것도 상이니까,  칭찬과 비방을 초월한 경지이고, 수보리의 깨달음의 경지를 완전히 넘어선 차원의 법문입니다. 유마경외에는 세상에 이런 법문이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의 상에 대한 관념으로는 공(空)의 이치,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전에 내가 존경하는 스님이 관악산 주지를 하셨는데, 그 주변의 군인들이랑 거의 매일 대판 욕을 하고 싸우면서도, 군인들이 항상 절에서 물을 가져가니까 아주 신경써서 우물에 물을 항상 넉넉하게 준비해 놓아서 얼마든지 가져 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싸움하면 물을 못가져가게 할 것이라서, 대중들이 왜 물을 주느냐고 하니까, 싸우는 건 싸우는 것이고, 물 주는 건 물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스님을 존경하게 되었는데, 군인들은 그것을 이해를 못하다가, 나중에 이해하게 되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時我世尊(시아세존) 聞此語茫然(문차어망연) 不識是何言(불식시하언)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At that point, World Honoured One, I was so confused by these words that I did not know what he was talking about 

茫 아득할 망,

不知以何答(불지이하답) 便置鉢欲出其舍(편치발욕출기사) 維摩詰言(유마힐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라서 곧 발우를 내려놓고 그 집을 나오려 하였더니,
그러자 유마힐이 또 말을 하였습니다.
and did not know how to answer. So then I put down the bowl and tried to leave his house. Vimalakirti called for me and said, 

唯須菩提(유수보리) 取鉢勿懼(취발물구) 於意云何(어의운하)

‘수보리여, 두려워하지 말고 발우(바루)를 받으십시요.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O subhuti, don’t be afraid. Take your bowl. Why do you suppose? 

勿 말 물,懼 두려워할 구, 詰 물을 힐, 꾸짖을 힐

如來所作化人(여래소작화인) 若以是事詰(약이시사힐) 寧有懼不(여유구불)?

我言(아언) 不也(불야)
여래께서 만드신 꼭두각시=化人이 만약 이러한 일로 나무랐다면(힐난한다면) 그래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여서
저는 ‘아닙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If the Buddha manifests a conjured person and questions that conjured person with these things, would he have fear? I answered Vimalakirti, No.

[부처님이 소작화인(所作化人), 부처님이 만든 가짜 사람이 힐(詰)= 힐난, 따진다고 해서, 당신이 두려워서 발우대를 놓고 도망가려는 생각을 하느냐? 그러니까 너의 너 자신에 대한 이해나, 또 유마힐 나에 대한 이해나, 또 세상에 대한 이해를 그동안 어떻게 하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은 다 가짜인데, 네가 속아서 전부 진실로 여기고 살아왔으며,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상(相)이고, 상과 상의 대결, 허망과 허망의 대결이라는 것입니다.]


維摩詰言(유마힐언) 一切諸法(일체제법) 如幻化相(여환화상)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은 꼭두각시의 모습=幻化相과 같으니, 

Vimalakirti said, All the Dharmas are like illusory manifestations, 

[결론으로, 일체제법(一切諸法)이, 여환화상(如幻化相)하니 여금(汝今)에 불응유소구야(不應有所懼也)니라

일체제법= 부처, 중생, 선악, 탐진치(貪瞋痴) 삼독, 열반 해탈 등의 모든 것들이 여환화상(如幻化相)=가짜 모양이다. 환술로 만든 눈속임수로 나타난 가짜 상이다.

그러니 그 일체제불 속에 너와 나 유마힐과 네가 생각하고 있는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한 설법이 다 들어 있으니 그것을 비난하나, 칭찬하나 아무 영험이나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짜 상을 보고 가짜라고 비난해본들 아무런 영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마경에서 특히 이 수보리와의 대화는 아주 상당한 차원입니다.]

 

汝今不應有所懼也(여금불응유소구야) 所以者何(소이자하)

一切言說不離是相(일체언설불리시상)

그대는 지금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모든 말=言說도 이 꼭두각시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니, 

and you need not be fearful right now. What is the reason for this? All words are not separate from this illusory form 

[여금(汝今)= 그대는 불응유소구야(不應有所懼也)=그것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있지 않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일체언설(一切言說)=내가 말한 그 모든 것이 불리시상(不離是相)=이 모양=상(相)=환화상(幻化相)을 떠나있지 않다.

유마거사가 그동안 정말 다른 경전에서는 꿈도 못꾸던 그런 설법을 펼쳐놓고는 그 모든 언설이 전부 환화상이니, 그 상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至於智者(지어지자) 不著文字(불착문자) 故無所懼(고무소구)

지혜로운 사람에 이르러서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but the wise person, because he is unattached to words, and therefore does not fear 

[지어지자(至於智者)=지혜로운 사람에게 이르러서는 불착문자(不着文字)=문자에 집착하지 않으니, 고(故)로, 무소구(無所懼)하나니= 두려워 하는 바가 없나니.

수보리 당신 정도 수준이니까 내 말을 듣고 두려워서 발우대를 놓고 도망가려는 입장이지만, 당신보다 차원이 높은 지혜로운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고, 아마 실컷 지껄여라 하고 있을 것이다. ]

 

何以故(하이고) 文字性離(문자성이) 無有文字(무유문자) 是則解脫(시즉해탈)

왜냐 하면 문자는 자성(svabhva)을 여의었기 때문(에 실상이 空한 것)이니, 문자(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 곧 해탈입니다. 

Why? Words are by nature a departure from the true reality, and discarding them is liberation. 

[문자성리(文字性離)=문자는 자성(性)을 떠나서 무유문자(無有文字)=문자가 없는 것이, 시즉해탈(是則解脫)=이것이 곧 해탈이다. 문자(文字), 이런 훌륭한 설법이라고 하는 것도 상이고 문자(文字)이니까. 그것까지도 떠나야 해탈이다.]

 

解脫相者(해탈상자) 則諸法也(시제법야)

해탈의 모습이란 것은 곧 제법인 것입니다.
The essence of liberation is also the reality of all the Dharmas. 

[해탈상자(解脫相者)=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즉제법야(卽諸法也)= 결국은 본래 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체제법이 환화상이라 했는데, 일체제법이 해탈상이고, 해탈상이 일체제법이라 했습니다.

이 모습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이 모습 그대로 환화상(幻化相)=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현상이 그대로 해탈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말이예요.

해탈상자(解脫相者)는 즉제법야(卽諸法也)라. 그러면 제법이 곧 해탈상이라, 눈 앞에 벌어지는 일체제법이 그대로 해탈상입니다. 즉 환화상으로 볼 줄 알면 그대로 해탈입니다.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대중의 숫자에도 들지 못하는 그것이 다 허망한 줄 알면 그대로 해탈이다. 그쯤 되면 해탈의 경지입니다. 그러니까 제법, 일상사에서 해탈을 따로 찾을 수가 없는 것이고, 따로 찾아지지도 않습니다.

해탈은 곧 제법이요, 제법이 곧 해탈이다. 어두운 자리가 밝은 자리요, 밝은 자리가 어둠이다. 번뇌가 곧 보리요, 보리가 곧 번뇌이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오는 소리이지만, 우리는 해탈이 따로 있고, 지혜 또한 따로 있는 줄 알고, 번뇌 또한 따로 있고, 보리 또한 따로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열반(生死涅槃)이 상공화(常共和)=한 덩어리라 했는데, 그것이 한덩어리일 수 없다고 우리는 자꾸 고집하니까 쉽게 깨닫지 못하는가 봐요.]

 

維摩詰說是法時(유마힐설시법시) 二百天子得法眼淨(이백천자득법안정)

故我不任詣彼問疾(고아불임예피문질)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하였을 때, 2백의 천자들은 진리를 바르게 보는 눈=法眼이 맑아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을 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When Vimalakirti spoke this Dharma, two hundred celestial beings attained the pure Dharma eye. So I am not qualified to go ask him about his illness.

[구름이 아무리 많이 끼어도 태양 전체를 가릴 수 없듯이, 선이니 악이니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관념들은 마치 구름과 같은 것이고, 우리의 본성, 심지, 불성은 태양과 같아서, 구름이 다 가릴래야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과 구름의 관계같이 우리들 마음속에 떠 있는 관념의 상 구름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