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 5
6. 부처님께서 증명하시다
法主世尊(법주세존)!現爲我證(현위아증) 唯佛世尊現前證知(유불세존현전증지)
법의 주인,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증명해 주시옵소서.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여기에서 증명하여 아실 것이오나,
而諸衆生善根微薄或起疑網(이제중생선근미박혹기의망) 以十大受極難度故(이십대수극난도고)
여러 중생들은 선근이 微薄=얕은 탓으로, 혹 의심을 일으키기도 할 것입니다. 薄 엷을 박,
이 十大受=열 가지 큰 서원은 끝까지 도달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까닭에
彼或長夜非義饒益(피곡장야비의요익) 不得安樂(불득안락) 爲安彼故(위안피고)
저들이 혹 기나긴 밤에 義饒益=옳은 이익을 얻지 못하여, 안락을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나, 저들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今於佛前說誠實誓(금어불전설성실서) 我受此十大受(아수차십대수)
지금 부처님 앞에서 진실한 서원을 말씀 드리오니, 제가 이 열 가지 서원을 받아서
如說行者(여설행자) 以此誓故(이차서고) 於大衆中當雨天花(어대중중당우천화)
말씀 드린 대로 실천하면, 이 서원으로 말미암아 대중 가운데에 마땅히 천상의 꽃이 비처럼 내리며,
出天妙音(출천묘음) 천상의 미묘한 음성이 들려지게 하소서.
說是語時(설시어시) 於虛空中(어허공중) 雨衆天花出妙聲言(우중천화출묘성언)
(승만부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 공중(허공)에서 천상의 꽃이 비처럼 내리고, 미묘한 음성을 내어서,
如是如是(여시여시)!如汝所說(여여소설) 眞實無異(질실무이)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바는 진실과 같아서 다르지 않느니라.
彼見妙花及聞音聲(피견묘화급문음성) 一切衆會疑惑悉除(일체중회의혹실제)
저들이 천상의 아름다운 꽃을 보고 미묘한 음성을 들은 대중들은 온갖 의혹이 모두 없어지고
喜踊無量而發願言(희용무량이발원언) 한량없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발원하여 말하기를,
恒與勝鬘常共俱會(항여승만상공구회) 同其所行(동기소행)
언제나 승만 부인과 더불어 같이 하면서, 행하는 바(수행)도 또한 함께하리라 하였으며,
世尊悉記一切大衆如其所願(세존실기일체대중여기소원)
세존께서는 일체 대중 모두가 그 발원하는 바의 소원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수기하셨습니다.
[승만부인의 서원은 대승법에 의지해 성불하는 의지처이다. 그러므로 승만부인이 세운 열 가지 서원은 승만부인만의 서원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서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근기가 약하거나 의심이 많은 중생들은 과연 이 서원을 실천할 수 있겠나 하고 의심부터 한다. 성불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도 않고 의심만 한다. 이것을 승만부인은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승만부인은 열 가지 서원을 실천함이 진실이고 마땅히 그러하다고 하면 하늘의 천신들이 꽃비를 내리는 상서로운 길상을 보여 의심을 끊게 해달라고 하면서 부처님께 증명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의심은 어떤 일을 성취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무엇으로도 깰 수 없는 금강 같은 일심을 이루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하는데 믿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니 발걸음이 더딜 수가 없다. 설령 출발했어도 마음이 불안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게 된다. 기도를 통해 반드시 성불할 것이라고 하는 강한 확신이 있어야 물러나지 않고 진득하게 나아가 성취할 수 있다.
꼭 절에서 하는 기도 성취가 아니더라도 세속에서도 강력한 믿음의 의지가 있어야 무슨 일을 할 때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믿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큰 서원(목표)을 세우고 그 서원이 나를 성불(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성취할 것이다.
승만부인의 이 서원이 허망하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꽃이 비처럼 내리면서 신묘한 천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 그렇다. 네가 말한 바는 진실과 같아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이렇게 온갖 의혹이 사라지자 환희심이 일어난 사람들이 모두 승만부인과 한 곳에 태어나 수행하기를 부처님 전에 발원하자 부처님께서는 대중이 서원한 대로 모두 이루어지리라 수기하셨다. 보살행을 말하는 것은 쉽지만 직접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신행생활에 있어서 ‘나도 승만부인처럼 보살행을 실천하겠다’고 보리심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혜총스님]
[열 가지 서원을 발한 승만 부인을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시는 장면이다.
상서로운 길상이 나타나 대중의 의혹을 풀어주고 다 같이 십대수의 원을 실천하여 승만 부인과 같이 되기를 발원한다.
'승만경'은 여러 사람들이 발원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묘한 상징성이 있다.
인간의 염원이 진실하면 그 염원을 언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믿는 대로 보이게 되며 아는 것만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큰 서원을 발하는 진실한 생각이 가득하다면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이 세상은 긍정되어지고 조화되며, 통일되는 근본의 법칙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중생의 업이 충돌하여 온갖 부조리하고 이율배반적인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세상의 근본진리 자체가 잘못되는 수는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수기는 이 세상을 긍정해 주어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누리도록 하는 하나의 마침표이다.ㅡ지안스님]
三願章第三
7. 發三大願 - 세 가지 대 서원을 발하다.
爾時勝鬘復於佛前發三大願(이시승만복어불전발삼대원) 而作是言(이작시언)
이때 승만 부인은 다시 부처님 앞에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우고,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以此實願安隱無量無邊衆生(이차보원안은무량무변중생)
이 진실한 서원으로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편안하고 안온하게 하려 하오니,
以此善根於一切生得正法智(이차선근어일체생득정법지) 是名第一大願(시명제일대원)
이 선근으로써 일체 중생의 일체의 생에 태어 날 때마다 정법의 지혜가 얻어지게 하소서. 이것이 첫 번째 큰 서원입니다.
[첫째 서원은 지혜증득(上求菩提) - 自利]
我得正法智已(아득정법지이) 以無厭心爲衆生說(이무염심위중생설)
제가 정법의 지혜를 얻은 후에는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정법을 설하겠습니다.
是名第二大願(시명제이대원) 이것이 두 번째 큰 서원입니다.
[둘째 서원은 중생제도(下化衆生) - 利他]
我於攝受正法(아어섭수정법) 捨身(사신)、命(명)、財(재), 護持正法(호지정법)
제가 정법을 거두어 가지고는, 몸과 목숨과 재산 등을 버려서라도 정법을 보호하여 유지하겠습니다.
是名第三大願(시명제삼대원) 이것이 세 번째 큰 서원입니다.
[셋째 서원은 불법호지(不自惜身命)의 삼대원]
爾時(이시) 世尊卽記勝鬘三大誓願(세존즉기승만삼대서원)
그때 세존께서 곧 승만의 세 가지 큰 서원을 증명(수기)하셨으며,
如一切色悉入空界(여일체색실입공계) 如是菩薩恒沙諸願(여시보살항사제원)
(세 가지 큰 서원은) 모든 색(色)이 허공에 들어 있는 것처럼, 마치 온갖 빛깔이 허공 속에 들어 있는 것같이 항하의 모래 수같이 많은 보살의 헤아릴 수 없는 서원이
皆悉入此三大願中(개실입차삼대원중) 此三願者眞實廣大(차삼원자진실광대)
모두 이 세 가지 큰 서원 속에 들어 있으니, 이 세 가지 서원은 진실로 넓고 큰것이니라.
[바른 법의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고 중생제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본인만 정법의 지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널리 지혜를 펼치는 대승적 입장에 서야 한다. 보살은 정법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재산도 다 바치겠다는 서원이 가능하다. 부처님 법은 세속의 정의나 도덕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善)과 악(惡)을 초월하고 자타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무차별한 법이다. 그러므로 정법의 길을 걷는 불자(보살)의 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승한 불사이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승만경>은 승만부인의 대서원을 바탕으로 대승의 정법에 대해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중생들이 대승의 정법에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면 보살의 공덕은 무량하다. 보살은 자신이 먼저 정법의 지혜를 증득하고 정법의 지혜를 중생들에게 두루 펼쳐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몸과 목숨과 재산을 버려서라도 정법을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승만부인의 세 번째 대원은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 자기 스스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는다”와 <법화경> ‘권지품’의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 나는 신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목과 상통한다.
승만부인이 제일 먼저 정법의 지혜를 얻으려는 것도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의 실천이 성불의 길이기 때문이다. 승만부인은 이미 오랜 세월 이전부터 정법의 섭수가 성불의 길임을 체득했기에 다시 이 생에서 부처님을 만나 이런 서원을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보살행이 실천으로 발현할 때 부처님의 정법이 세계 곳곳에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도 승만부인처럼 보살행을 실천해서 부처님의 정법이 바람에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뜨려야 하겠다.-혜총스님]
[열 가지 서원을 발한 십대수(十大受章)에 이어 다시 세 가지 큰 서원을 발하는 삼대원(三大願)장이다.
'승만경'은 승만 부인의 서원을 중심으로 대승의 정법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 키워주는 법문이라 할 수 있다.
지혜가 없는 믿음은 맹신이 되고 말기 때문에 중생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정법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원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원은 이타를 말하는 것으로, 결국 불교의 목적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원력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승의 정신인 이타가 없이는 자리가 없다는 숨은 뜻이 들어 있다.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앞서는 현대사회는 남을 위한 진정한 이타심이 부족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할 것이다.
세 번째 원에서 승만 부인은 몸과 목숨과 재산을 버려서라도 정법을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다. 바른 법에 의해
중생의 삶이 더욱 성숙되고 가치가 더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정법의 지혜에 의해 무명의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다.ㅡ지안스님]
[승만부인은 신명, 재산을 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정법을 지키며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법을 넓히고자하여 정법이 영원히 머물도록 하는데 서원을 세웠다. 우리들은 부인의 이 서원 가운데 부인의 보살행 실천 모습을 볼 수 있다.
법이라고 하는 불교의 진리는 오직 그 절대성의 영역에 정체하고 있는 한 법은 진리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반드시 인간의 세계, 즉 우리들의 세계에 나타나서 사람에 의해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받들어진다고 하는 영역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그 의의가 없다.
초기 불교 성전(聖典)은 그 동안의 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존자(尊者)시여, 어떠한 인(因), 어떠한 연(緣)에 의해서 이전에는 학칙이 적었는데도 많은 비구는 지(智)에 안립(安立)해 있었습니다. 존자시여, 어떠한 인, 어떠한 연에 의해서 지금은 학칙이 많은데도 많은 비구는 지(智)에 안립하지 못합니까.」
「카샤파여, 그것은 이러한 까닭이 있다. 사람들이 서두르게 되고 정법이 멸해 가기 때문이다. 정법이 멸하지 않은 한, 상법(像法)이 세상에 생기는 일은 없다. 상법이 세상에 생길 때에는 정법은 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금(金)이 멸하지 않는 한 가짜 금이 생기는 일은 없다. 그러나 가짜 금이 세상에 생겨날 때에는 금의 멸이 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상응부』제2권)-혜경스님(제주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