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解釋分(해석분) 24

Skunky 2022. 12. 18. 09:00

熏習(훈습)

復次有四種法(부차유사종법) 熏習義故(훈습의고)  

다시 다음에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染法淨法(염법정법) 起不斷絶(기부단절) 云何爲四(운하위사)

염법과 정법이 일어나 단절되지 않으니, 무엇이 그 넷인가?

一者淨法(일자정법) 名爲眞如(명위진여)

첫째 청정한 법=淨法이니, 진여(진여 훈습)라고 하며,

二者一切染因(이자일체염인) 名爲無明(명위무명)

둘째 모든 물듦=一切染의 원인이니, 무명(무명 훈습)이라고 하며,

三者妄心(삼자망심) 名爲業識(명위업식)

셋째 허망한 마음=妄心이니 업식(업식 훈습)이라고 하며,

四者妄境界(사자망경계) 所謂六塵(소위륙진)

넷째 허망한 경계=妄境界이니, 이른바 육진(육진 훈습)이라고 한다.

 

무명훈습(無明熏習)= 근본무명이 불생멸의 진심(眞心)에 활동하여 마음이 생멸을 일으키는 것, 일심(一心)에 무명의 작용이 가해지는 것

인(因)= 여기서의 인은 불각(不覺) 즉 무명을 말한다.

연(緣)= 여기성의 연은 경게상을 말한다. 무명(인因)에 의하여 생기한다.

 

['정법(淨法)은 깨끗한 법으로 진여훈습이 있다. 염법(染法)은 물든 법으로 무명훈습, 업식훈습, 육진훈습이 있다.' 제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깨우친 것은 연기이며, 연기를 이루고 있는 내용은 무상과 무아입니다. 부처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깨우치면 무상과 무아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누가 깨우쳐도 똑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진리를 불교라는 종교로 만들어냅니다. 불교의 첫 출발점은 연기, 바로 무상과 무아입니다.  무상은 불교가 되면서 제행무상이 됩니다. 이 세상에 형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일정한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모두 언젠가는 변하고 허물어지는, 생멸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苦)라고 하셨습니다. 깨달음의 목적은 고(苦)에서 벗어나서 락(樂)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무아는 불교가 되면 제법무아가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라고 하는 독립적인 성품은 없습니다. 전부 다 일심이라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진리를 깨치고 나니 모두 일심인 것입니다. 모를 때는 다 각자입니다. 깨우치고나니 모두의 본래 성품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정법이란 물들기 전의 청정한 본래 성품과 같은 깨끗한 법이며, 깨달음의 세계인 진여입니다. 깨우친 상태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진여를 따르기 때문에 진여가 훈습되지 무명은 훈습되지 않습니다. 염법은 물든 법입니다. 여기에는 근본 무지인 무명이 훈습되는 무명훈습과 제8식 아뢰야식에 물드는 업식 훈습과 안이비설신의 육근의 대상인 육진[색성향미촉법]이 훈습되는 육진훈습이 있습니다. 육진훈습은 대상에 의해 물드는 것입니다. 내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면 물들고, 귀를 통해 무언 가를 들으면 물듭니다. 제6식, 제7식 훈습이 육진훈습이 되고 제8식 훈습이 업식훈습이 되어 그 뿌리가 무명훈습입니다.-통섭불교]

 

[거칠고 미세한 두 가지 염심은 무명의 훈습을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 근본무명(根本無明)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심(眞心)에 훈습하여, 생멸의 파랑(波浪)이 생기는 것이다. 이 염심은 미세한 것(細)에서 거친 것(麤)로 전개 되므로 심생멸에는 인(因)과 연(緣)이 있다.

심생멸은 무명불각(無明不覺)에 의하여 전개되는 것이므로, 이를 ‘인(因)에 의한다’고 말하며, ‘연(緣)에 의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명(無明)의 활동에 의하여, 생멸심에 경계상(境界)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전종식]

 

[진여훈습 (眞如薰習)과 무명훈습(無明薰習)과 망심훈습(妄心薰習)과 망경계육진훈습(妄境界六塵薰習)의 네 가지 명칭을 나열하고, 다음에 훈습의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즉, 염법(染法)과 정법(淨法)에 훈습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염법(染法)과 정법(淨法)이 서로 의지하고 일어나서 단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는

첫째로 정법을 일으켜 단절하지 않는 것으로, 이를 생멸문 가운데 진여훈습이라 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육염심과 삼세육추상의 근본종자인 원인인데 이를 무명훈습이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무명으로 일어나는 망심(妄心)인데 이를 업식과 분별사식의 훈습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분별사식이 반연하는 망경계(妄境界)가 있는데, 이른바 육진훈습에 해당하겠습니다.-수선]

 

 * 熏習(훈습)의 뜻

熏習義者(훈습의자) 如世間衣服(여세간의복) 實無於香(실무어향)

훈습의 뜻이란 마치 세간의 의복과 같이,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若人以香而熏習故(야인이향이훈습고) 則有香氣(즉유향기)

만약 사람이 향기를 쐬면(향기를 훈습하면) 향기가 있는 것과 같다.

此亦如是(차역여시) 眞如淨法(진여정법) 實無於染(실무어염)

이 또한 그와 같아서, 진여 정법에는 실로 물듦이 없지만, 

但以無明而熏習故(단이무명이훈습고) 則有染相(즉유염상)

다만 무명으로서 훈습한 까닭에 물든 현상=染相이 있게 된다.

 

훈습(熏習)= 자기의 힘을 다른 상대에게 옮겨 실어주는 것으로, 상대를 자기와 동화시키는 작용.

산스끄리뜨어의 ‘바사나(vāsanā)’를 한역한 것으로 티벳어로는 ‘박착(bag chags)’이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바사나’는 어떤 냄새가 배는 것을 뜻하며 불교에서 전후생을 오가는 업(業, karman)을 설명하면서 체계화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냄새가 옷에 밴다.’, ‘꽃을 만진 손에는 꽃향기가, 마늘을 만진 손에는 마늘 냄새가 밴다.’ 등의 비유를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훈습(熏習)= 지금까지 없었던 습성(習)이 계속 되풀이함에 따라 자기의 습성이 되는 것. 경험을 되풀이하면 습관성이 된다. 그 습관성을 외래적인 것으로 보고 훈습이라고 한다.
염상(染相)= 진여는 무상(一相)이지만 무명의 훈습을 받아 차별상(差別相) 즉 염상을 나타낸다. 여기서’상(相)’이라고 한 것은 무명은 체가 없어 진여를 빌어 모습을 나타낼 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훈습이란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본인이 인식하던 하지 않던 일어난다. 마치 향기로운 꽃 옆에 있으면 내가 인식하든지 인식하지 못하든지 그 향기가 내 옷이나 내 몸에 배는 것과 같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진여 정법이 갖추어져 있어서 물든 마음에 영향을 주며, 거꾸로 무명에 물들어 있는 한 무명이 진여에 영향을 주어 망심(妄心)이 일어난다.-물처럼바람처럼]

 

[네 가지의 훈습요건은 상호 작용하여, 염법과 정법을 생성시켜, 단절되지 않는다. 이 네가지 요건은 ① 정법인 진여의 작용 ② 염법의 원인인 무명 ③ 그래서 나타나는 망심(식작용) ④ 그로 인한 망경계(육진)을 말한다

정법(淨法), 정법의 근원은 미망에서 볼 때 각(覺)이지만, 그 근거는 생멸문 속에 있는 진여(眞如)이다. 진여는 세 가지 뜻을 담아 청정하다고 한다. 첫째 진여는 본성자체가 청정하다는 것 둘째 그 진여는 청정한 훈습력을 갖고 있다는 것 셋째 진여는 염(染)에 반하여 정(淨)을 향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진여가 미망의 세계에 나타나 각(覺)이 되는 것이므로, 정법의 훈습작용은 진여가 행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단절이 없는 것이다.]

 

[훈습(V sana, paribh vana, 어떤 기운이 다른 것에 영향을 남기는 것)의 의미는 비유하자면 의복의 향기가 훈습(薰習)되듯 염법과 정법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훈습하며 서로가 원인이 되고 조연이 되는 법에 논리를 합치시켰습니다. 즉, 염법과 정법이 서로 의지하여 훈습한다는 뜻은 마치 세간의 의복에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가령 사람이 향기로써 의복을 쬐면 그 때문에 곧 의복에 향기가 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가 생선시장에 가면 옷에 생선 냄새가 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염법과 정법이 서로 의지하여 훈습하는 의미도 그러하여 진여정법엔 실제로는 염법이 없지만 단지 무명으로 진여정법을 훈습하기 때문에 곧 염법의 모습이 있게 됩니다. 무명의 염법엔 실제로 진여의 정업(淨業)은 없지만 단지 진여의 정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진여정업의 작용이 있게 됩니다.]

 

無明染法實無淨業(무명염법실무정업)

무명의 염법에는 실제로 정업이 없지만

但以眞如而熏習(단이진여이훈습) 故則有淨用(고즉유정용)

다만 진여로써 훈습한 까닭에 곧 청정한 작용=淨用(정업의 작용)이 있다.

 

정업(淨業)= 정화시키는 활동력
정용(淨用)= 생멸문에서의 진여의 작용. 진여문(眞如門)에서의 진여는 절대이기 때문에 작용을 말하지 않는다. 본각 안에서 불각을 훈습하여 생사(生死)의 고(苦)를 싫어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다. 이 작용을 정용(淨用)이라한다. 무명은 ‘염상(染相)’이라는 ‘상(相)’을 쓰는데 대하여 진여는 ‘정용(淨用)’이라는 ‘용(用)’을 쓰는 것은 진여는 실재(實在)이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명에 싸인 중생이 늘 어리석은 마음만 내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도 내는 것은, 무명의 작용이 아니라 진여의 영향을 받은 작용이다. 무명 자체에는 바른 작용이 없다.]

 

[염법과 정법이 서로가 훈습하는 것을 밝혀 일체의 정법이 일어나 단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앞에서 "아뢰야식이 일체법의 종자를 포섭할 수도 있고 일체법을 현행하여 상속으로 낼 수도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의 문장에선 염법과 정법이 생멸하는 모습만을 나타내어, 한결같이 생멸의 염법으로 현행하여 상속하는 의미인 능생일체법(能生一切法)하는 의미만 제시했지, 성인과 범부의 인과관계가 현행으로 상속하여 단절하지 않는 종자훈습의 의미인 능섭일체법(能攝一切法)하는 의미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특별히 진여정업과 망상의 염법이 서로 서로 종자를 훈습하여 정법으로서의 성인과 염법으로서의 범부들의 인과관계가 현행으로 상속하는 데에 이르게 하여 오랜 겁이 지나도록 단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이와 반대로 진여정업으로써 무명염법을 훈습하여 모든 염법의 종자인 근본무명을 소멸시킨다면 진여의 정법작용이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살의 52위(位)의 정진수행을 이루어 상주불변하는 보리열반의 불과를 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불가사의하게 습기가 종자를 훈습하고 아뢰야식에 훈습된 종자는 다시 전변하여 현행으로 상속하는 세력입니다. 이야말로 위대한 힘입니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 훈습하는 의미를 제시하고, 다음에서는 우선적으로 염법의 훈습을 밝힘으로써 진여를 생멸문 가운데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무명의 불각(不覺)이 진여의 본각(本覺)을 훈습하는 문제를 밝힙니다.-수선]

 

 * 染法熏習(염법훈습)

云何熏習(운하훈습) 起染法不斷(기염법부단)

어떻게 훈습하여 염법을 일으켜 단절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所謂以依眞如法故(소위이의진여법고) 有於無明(유어무명)

이른바 진여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以有無明染法因故(이유무명염법인고) 卽熏習眞如(즉훈습진여)

무명에 염법의 원인=染法因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 

以熏習故則有妄心(이훈습고즉유망심)

훈습하기 때문에 곧 허망한 마음=妄心이 있게 된다.

 

무명염법인(無明染法因)= 무명이라는 염법의 인(因)을 말한다. 무명이 다른 염법의 인(因)이 되는 것으로서, 이 활동이 무명훈습이다.

염인(染因)= 염법의 원인, 즉 미망의 원인이 되는 무명. 삼세 육추의 지말불각이나 육염의 지말무몀 모두가 염인이지만, 여기에서는 그 근본을 따져 무명(無明)을 세우고 있다.

망심(妄心)= 인식작용을 일컫는 말. 업식(業識),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의 오식(五識)이 이에 속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근본을 잡아 업식(業識)을 세우고 있다.]

 

[‘依眞如法故 有於無明 진여의 법에 의지함으로, 그 때문에 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밝힌 것은, 훈습을 가하는 무명이 훈습을 받는 진여가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을 말한다. 무명은 능훈(能熏)의 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홀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며, 반드시 진여에 의존해서만이 존재할 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즉 무명은 훈습을 가하는 능훈(能熏)이고, 진여는 훈습을 받는 소훈(所熏)이며, 결과는 망심(妄心)이다.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일어나는 것이 망심이다. 그러나 그 망심이 오히려 다시 무명에 훈습하여 무명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우는 망심이 훈습을 가하는 능훈((能熏))이고, 무명이 훈습을 받는 소훈(所熏)이 되고, 그 결과로 불각의 염(染)이 일어나 전식(轉識)의 주관과, 현식(現識)의 객관이 성립되어 망경계(妄境界)가 나타나는 것을 망심훈습(妄心熏習)이라 한다.-전종식]

 

[依眞如法故 有於無明 : 근본무명이 진여에 의지해서 일어남을 말한다.

以有無明染法因故 卽熏習眞如 : 무명염법의 인(因)인 무명이 진여를 훈습함을 말한다.

卽熏習眞如 以熏習故則有妄心 :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망심이 있게 됨. 여기서 망심이란 업식을 말하니 아리야식이 일어남을 말한다.

* 元曉 : 以有無明 熏習眞如란 근본무명이 훈습하는 뜻이다.

以熏習故有妄心이란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업식심이 있는 것이며, 이 망심으로 도리어 무명을 훈습하여 그 요달하지 못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식과 현식 등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별기)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남은 이것이 전상(轉相)이고 망경계를 나타냄은 이것이 현상(現相)이다.

* 진여는 본래 망심이 없지만,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망심이 일어난다. 진여법에 의지하여 무명이 있다는 것은 무명이 진여를 떠나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을 떠나면 무명도 없기 때문이다.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업식이 일어나니, 업식이란 진여의 작용이므로 진여가 없다면 업식도 없다. 그러므로 진여에 의지한다고 하였다.

업식(망심:불각)이 다시 진여를 훈습한다고 하는 것은 아리야식 속에 화합되어 있는 진여를 말한다. 업식이 진여를 훈습하여 전식과 현식을 내니, 현식이 바로 망경계이다.]

 

[무명의 실재가 실체(實體)로서 진여와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명은 체(體)가 없는 것이므로 상항불변(常恒不變)의 진여를 의지처로 하여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 이원적논리(二元的論理)이다. 우리가 마시는 식수(食水) 속에는 순수 H2O를 의지처로 하여 다른 불순물이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진여는 아리야식의 각(覺)의 작용이며, 무명은 불각(不覺)의 작용이다. 각과 불각은 상호 구별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불각 속에 각(覺)이 있으며, 시각(始覺) 속에도 불각이 있다. 진여의 각(覺)은 향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를 반류(反流)의 힘이라 하며, 또한 오계(悟界)에 환원하는 의미로 환멸문(還滅門)이라고도 하나, 이에 반하여 우리 마음 속에서의 악(惡)의 힘은 불각(不覺)이며, 미계를 나타내는 유전문(流轉門)이다. 불각은 각의 염상(染相)이며, 각은 불각 속에 살아있는 정화의 힘이다.]

 

[훈습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습훈(習熏)이고, 두 번째는 자훈(資熏)입니다. 습훈(習熏)이란 근본무명이 일심진여를 염법과 정법의 종자로 훈습하여 염법과 정법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무명의 습기가 진여를 물들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훈(資熏)은 근본무명으로 이루어진 무명의 생멸하는 업식이 반대로 근본무명을 다시 훈습하여 일심진여의 이치를 더욱 밝게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는 생멸업식의 허망한 마음과 허망한 경계로 현행하는 것과 현행하는 허망한 경계에서 허망한 마음의 분별을 일으키는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훈습한다는 의미에서 자훈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진여의 일심법을 의지하기 때문에 근본무명이 있는, 즉 근본무명이 진여를 의지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무명염법의 종자인 원인이 바로 근본무명이 있기 때문에 진여를 훈습합니다. 그러므로 진여가 원인이 되고 무명이 반연이 되기 때문에 무명의 습기가 도리어 진여를 훈습하게 됩니다. 그래서 근본무명이 진여를 훈습하기 때문에 곧 허망한 업식심(業識心)이 있게 되고, 허망한 업식심이 있으면 곧 근본무명을 훈습합니다. 그리하여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진여를 생멸하는 아뢰야식으로 변하게 합니다. 근본무명이 있기 때문에 무명에 있는 습기의 세력이 진여를 훈습하여 생멸하는 업식심을 이루기 때문에 이 근본무명이 곧 업식의 허망한 마음을 의지합니다. 그러기에 이 업식이 곧 근본무명을 훈습하여 일심의 진여법을 더욱 밝게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로 인해서 일심의 진여법을 밝게 알지 못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인 불각이 허망한 생각을 일으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근본무명이 바로 진여인 인(因)의 연(緣)이 되어 진여를 훈습하여 삼세(三細)와 육추(六麤)의 양상으로 나고 소멸하면서 상속하는 염법이 단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무명(無明)으로 말해 본다면 진여법과 하나인 일심을 밝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홀연히 무명불각의 망념을 일으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진여(眞如)의 원명(圓明)함의 반대 의미인 무명(無明)이라고 하였습니다. '능가경'에서, "이 무명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를 의지하여 일어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무명인 불각에서 일으킨 하나의 망념훈습의 세력이 본래 밝은 본각진여의 지혜를 장애하고 가려 버립니다. 그 때문에 진여의 밝음을 잃고 그로 인해 진여가 변하여 생멸하는 업식이 되며, 따라서 이것을 허망한 업식심인 망심(妄心)이 되어버립니다. 이 업식심이 일어난 곳은 알기 어려워, 그 망심의 진행이 가장 극도로 미세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다시 구상(九相)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대체로 일념무명이 삼세육추를 내는 종자가 됩니다. 진여는 그 망념의 훈습을 당하여 이미 무명업식심으로 변하였다면 이 무명일념이 업식의 의지처가 되어 업식이 반대로 무명일념을 훈습함으로써 진여일심법을 더욱 알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상(轉相)과 현상(現相)이 이루어져 삼세상(三細相)으로 환하게 나타나 망심의 분별과 망경계가 이로 인해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무명불각이 망념을 일으켜 허망한 경계상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허망한 경계상이 나타나면 곧 그 경계를 연으로 의지하고 일심진여의 바다를 훈습하여 전칠식(前七識)인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의 무명이란 파랑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입니다. 그리하여 육추상을 이루며, 나아가서는 기업상(起業相)인 삼업을 짓고 삼계에 나고 죽는 윤회의 괴로움을 받는 업계고상(業繫苦相)이 됩니다. 실로 이 때문에 삼계에 생사하는 원인인 혹(惑)과 업(業)과 결과인 고(苦) 즉 혹·업·고가 단절하지 않고 상속하게 됩니다. 이러한 육추 가운데서 처음 두 가지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이 염(念)이고, 다음의 두 가지 집취상((執取相)과 계명자상(計名字相)이 집착입니다. 그리하여 미혹을 일으키어 갖가지 업을 짓는 기업상(起業相)으로 업을 지어 일체 몸과 마음 등의 괴로움을 받는 업계고상(業繫苦相)의 과보를 받습니다.]

 

以有妄心(이유망심) 卽熏習無明(즉훈습무명)

망심이 있음으로 해서 곧 무명을 훈습하며, 

不了眞如法故(불료진여법고) 不覺念起(불각념기) 現妄境界(현망경계)

진여법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不了 때문에 불각의 망념(轉識)을 일으켜 허망한 경계=妄境界를 나타낸다.

 

훈습무명(熏習無明)= 망심은 무명훈습에서 일어나지만, 도리어 그 망심이 무명에 훈습하여 그 힘을 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망경계(妄境界)= 삼세(三細)의 하나인 경계상을 말하며, 지식(智識) 등이 이것을 외계(外界)의 실재(實在)라고 망상하여, 자기의 경계를 만든다. 이것이 훈습의 ‘연(緣)’이 된다. 그러나 망경계가 있기 때문에 망심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어서, 이를 망경계 훈습이라고 한다.

 

[망경계(妄境界)= 경계라 함은 인식의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현식, 지식 상속식, 의식(분별사식) 등에 각각의 망경계가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 근본을 잡에 경계상(境界相)을 취하는 것이다. 이 경계상은 색성향미촉법 등, 육진(六塵)의 외계가 마음에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 밖의 육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以有妄心 卽熏習無明 : 위에서는 무명이 염법의 인이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다시 망심이 무명을 훈습한다고 하였다. 이는 망심이 무명을 훈습하여 미혹됨을 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식과 현식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以有妄境界染法緣故(이유망경계염법연고) 卽熏習妄心(즉훈습망심)

허망한 경계의 염법의 반연이 있기 때문에 곧 허망한 마음을 훈습하여, 

令其念著造種種業(령기념착조종종업) 受於一切身心等苦(수어일체신심등고)

그것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집착하게 하여, 갖가지 업을 지으며, 일체 몸과 마음=身心의 괴로움을 받게 된다.

 

[元曉 : 이 경계로 도리어 현식을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을 훈습한다고 하는 것이다.

令其念著란 제칠식을 일으키는 것이고, 造種種業은 의식을 일으키는 것이고, 受於一切身心等苦란 과보를 받는 것이다.

* 憨山 : 일념무명이 삼세육추를 내는 종자가 된다. 진여는 망념의 훈습을 당하여 이미 무명업식성으로 변하였다. 이 무명일념이 업식에 의지[因]가 되어 업식이 반대로 무명일념을 훈습함으로써 진여일심법을 더욱 알지 못하게 한다. 그 때문에 轉相과 現相이 이루어져 삼세상(三細相)으로 환하게 나타나 망심의 분별과 망경계가 이로 인해 성립된다. 그러므로 ‘무명불각이 망념을 일으켜 허망한 경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허망한 경계상이 나타나면 즉시 그 경계를 연으로 의지하고 일심진여의 바다를 훈습하여[資熏] 전칠식의 무명파랑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육추상을 이루며, 내지는 삼업을 짓고 삼계생사의 괴로움을 받는다. 실로 이 때문에 삼계생사의 원인과 결과인 혹,업,고가 단절되지 않고 상속하는 것이다.

육추 가운데 처음 둘(智相, 相續相)이 염(念)이고 다음의 둘(執取相, 計名字相)이 착(着)이다.

* 망경계가 다시 망심(業識)을 훈습하여 지식(智識)과 의식(意識)을 내며 이로 인해 육추(六麤)의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 괴로움을 겪게 된다.

영기념착(令其念著)은 지식(智識)에 의하여 자아에 집착하고 이것이 상속하는 것, 대상에 집착하는 것과 의미와 개념에 집착하는 것[執取相, 計名字相]을 말하며,

조종종업(造種種業)은 갖가지 업을 짓는 것[起業相]을 말하며,

受於一切身心等苦는 갖가지 괴로움을 겪는 것[業繫苦相]을 말한다]

 

[훈습과 연관된 부처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길에 떨어진 종이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주워 보라고 했습니다. 주워보니 비린내가 나는 고기를 쌌던 종이였습 니다. 좀 더 걸어가다 보니 다른 종이가 떨어져 있어 그것도 주워 보라고 합니다. 주워보니 향기가 나는 향을 싼 종이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훈습되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고 수행하면 그것이 훈습되어 맑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악한 행동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이 훈습되어 탁하고 비린내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대로 향기가 날 뿐입니다. 원래 우리는 청정법신인 데 무명에 의해 훈습되기 때문에 오염된 모양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여로 훈습하기도 하고 무명으로 훈습하기도 합니다.

훈습은 크게 오염된 염훈습과 깨끗한 정훈습이 있습니다. 염훈습에는 망경계훈습, 망심훈습, 무명훈습이 있습니다.

망경계훈습에는 증장념훈습, 증장취훈습이 있습니다. 증장념훈습은 생각을 자꾸 증장시키는 훈습이고 증장취훈습은 집착을 자꾸 증장시키는 훈습입니다.

망심훈습에는 업식근본훈습, 증장분별사식훈습이 있습니다. 업식근본훈습은 제8식 아뢰야식에 훈습하는 것이고, 증장분별사식훈습은 제7식 말라식을 증장시키는 훈습입니다.

무명훈습에는 근본훈습, 소기견애훈습이 있습니다. 근본훈습은 뿌리가 되는 훈습이고, 소기견애훈습은 생각, 애욕을 증장시키는 훈습입니다.

정훈습은 망심훈습과 진여훈습이 있습니다. 망심훈습에는 분별사식훈습과 의훈습이 있습니다.

진여훈습은 자체상훈습과 용훈습이 있습니다. 여기도 체상용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체상용의 구조입니다. 뿌리(본체), 모양, 작용이 있습니다. 본체, 본질(체)과 모양(상), 살아가는 방법, 생각(용)입니다. 여기에 망심훈습이 두 개가 나옵니다. 오염된 망심 훈습은 점점 더 우리를 집착하게 하고 아집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깨끗한 망심훈습은 오염된 것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