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解釋分(해석분) 9
本覺의 意味 - Two meanings of the Ultimate enlightenment
[지금까지 불각(不覺)에서 시작되는 시각(始覺)이 본각(本覺)에 이르는 과정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아 왔듯이, 본각에 합일된 시점에서 본다면 시각은 본각과 별도의 것이 아니며, 사상(四相) 또한 개별적으로 인지될 수 없는 것으로서, 이 둘은 서로 도우면서 망념을 형성한다
기신론에서는 본각을 수염본각(隨染本覺)과 성정본각(性淨本覺)의 두 형태로 설명하고 있다
수염본각(隨染本覺)은 영구불멸의 본각이 오염된 세속에서 어떠한 상태로 존재하며, 어떤 활동을 하는가를 밝히며,- 지정상(智淨相)
성정본각(性淨本覺)은 본각자체의 체를 밝히는 것이다–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
수염본각은 성불을 실현시키는 본각으로서, 무명으로부터 어떻게 이탈하여 불타에 이르며, 무명에서 이탈된 본각이 다시 어떻게 무명에 작용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백련 전종식]
㉮ 隨染本覺(수염본각) - The ultimate enlightenment in the defiled world
復次本覺(부차본각) 隨染分別(수염분별) 生二種相(생이종상)
또 다음 본각은 물듦(세속)에 따라 분별하면, 두 가지 상을 내나니
The Ultimate enlightenment can have the two definitions by the worldly defiled judgement.
與彼本覺(여피본각) 不相捨離(불상사리) 云何爲二(운하위이)
그 둘은 본각과 더불어 서로 버리거나 떠나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Neither of them cannot be discarded nor stand alone along far from the Ultimate enlightenment. What are they?
一者智淨相(일자지정상) 二者不思議業相(이자불사의업상)
첫째는 지정상이며 둘째는 불사의업상이다.
One is the Absolutely pure wisdom itself, and the other is Incomprehensibly altruistic activity of saving sentient beings.
① 智淨相(지정상) - Absolute and pure wisdom
[지정상(智淨相)은 본각이 오염된 번뇌를 떠나 본래의 본각(本覺)에 귀환하는 것으로, 본각수염환정상(本覺隨染還淨相)이라 하며, 시각의 지혜가 불각(不覺) 속에 나타나 점점 지혜의 광명을 더해가다가, 마침내 본각(本覺)에 합일되는 것, 즉 지정상은 지혜가 청정해진 모습이다.]
智淨相者(지정상자) 謂依法力熏習(위의법력훈습) 如實修行(여실수행)
지정상이라는 것은 법력의 훈습에 의하여 참답게 수행하여
Absolute and pure wisdom is that one puts the Bodhisattva disciplines in practice by the influential power of the Suchness of mind.
[지정상은 진여(眞如)의 힘이 내부에 있어 그 본래의 힘(내훈력,內熏力)을 나타내고 또한 외부에서 불타의 힘이 교화작용(외훈력,外熏力)으로 가해지는 법력훈습(法力熏習)을 거쳐, 진여를 터득하는 초지(初地)이상의 수행을 진행해 가면, 마침내 제십지(第十地)의 만위(滿位)수행에서 나타나는 깨달음의 모습이다.
훈습(熏習)이란 강한 힘이 강하게 영향을 미쳐서 동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범부의 본성인 여래장은 자신이 갖고 있는 본래의 힘에 의하여 각(覺)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향상의 바램’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내부의 본각 작용인, 내훈(內熏)이다.
또한 외부에서 불보살 등, 선지식(善知識)이 중생을 가르쳐 인도하는 등 외부로부터 각(覺)의 작용을 유발시키는 것이, 진여의 외훈력(外熏力)이다
내훈력과 외훈력을 법력훈습(法力熏習)이라한다. 법력훈습은 본각의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한 초지 이전 단계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본각의 활동을 말하면, 법장은 간단히 지전(地轉)이라고만 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초지이상의 수행에서 나타나는 본각의 활동을 여실수행(如實修行)이라고 하며, 초지에서 십지까지의 수행을 말한다.]
滿足方便故(만족방편고) 破和合識相(파화합식상)
방편을 만족하였으므로, 화합식(아뢰야식)의 모습을 깨뜨리고,
Having accomplished the discipline, one can destroy the compounded the mind of the eighth consciousness that is constructed with no birth and no death and birth and death.
[이같이 십지의 수행에 이른 만위(滿位)에서는 온갖 방편이 모두 충만되므로 만족방편(滿足方便)이라 한다. 이 만위에서는 최후의 번뇌마저 차단하므로 망념의 근원을 볼 수 있게되어, 아리야식이라 일컫는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의 상(相)이 파(破)하게 된다. 그러면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생멸(生滅)이 화합된 상태는 사라지고, 진(眞)인 불생불멸의 본성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근본무명(根本無明)이 차단되고 근본무명으로부터 시작된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상속심(相續心)도 사라지며, 심성(心性)은 번뇌에서 벗어나 법신(法身)의 작용만 나타나 깨달음의 세계가 전개되는 본각(本覺) 지정상이다.
여기에서 화합식(和合識)이나 상속심(相續心) 등의 일체 심식(心識)은 모두 무명의 활동이라고 한다. 그러한 심식의 활동상은 무명의 상에 의한 작용이며, 본각의 활동은 아니지만, 이 무명의 상이 각(覺)의 본성과 함께 의지하여 있는 것이므로 ‘무명의 상은 각성(覺性)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滅相續識相(멸상속식상) 顯現法身(현현법신) 智淳淨故(지순정고)
망념이 이어지는=상속심의 모습을 멸하여,
법신을 나타내는 것은 지혜가 맑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By exterminating the boundlessly interconnected delusional ignorance,
to expose Dharmakaya is because the wisdom is pure and tranquil
[元曉 : 지정상(智淨相)은 수염본각의 상을 바로 밝힌 것이다.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은 이 본각이 깨끗함에 돌아왔을 때의 업용(業用)을 밝힌 것이다. … 처음에
法力熏習은 진여법의 내훈(內熏)의 힘을 말하는 것으로 이 훈습의 힘에 의해 자량(資糧)을 수습하여 지상(地上)의 참다운 수행을 내게 되며, 무구지(無垢地)에 이르러 방편을 만족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화합식 안의 생멸의 상을 능히 깨뜨리며, 그것의 불생불멸의 성품을 드러내기 때문에 破和合識相 顯現法身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상속심 중의 업상(業相)과 전상(轉相)을 능히 깨뜨려 그 수염본각의 마음으로 하여금 마침내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여 맑고 깨끗한 지혜를 이루게 한다. 그래서 滅相續識相 智淳淨故라고 한 것이다. 이 중 상속식이라는 것은 오히려 화합식 안의 생멸하는 마음인데, 다만 법신을 드러내기 위해 破和合識이라고 하였고, 응신의 청정한 지혜를 이루기 때문에 滅相續識相이라고 하였다.
資糧(자량) : 은정희 - 자재와 식량. 보살 수행의 차례인 5위 가운데 10주, 10행, 10회향의 30위에서 초주로부터 제10회향의 주심까지를 자량위라 하며, 이에 대하여 제10회향의 만심(滿心)과 난위(煖位), 인위(忍位), 세제일위(世第一位)의 4가행을 수행함을 가행위라고 함. 이 자량위는 불과에 이르는 자량이 될 육바라밀 가운데 복행(福行)인 앞의 5바라밀과 지행(智行)인 제6바라밀을 닦아 모으는 위(位)
依法力熏習(의법력훈습) : 훈습이란 물이나 냄새가 베어드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작용하여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법력에 의지한다는 것은 내적으로 갖추고 있는 진여는 여실공으로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망념을 없애는 작용인 법력이 되니 이를 진여의 훈습(因)이라고 하며, 지정상이라고 한다. 외적으로 불보살의 가르침(緣)을 말한다.
和合識(화합식) : 원효대사는 생멸심과 불생멸심이 화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야식이다.
相續識(상속식) : 무명이 무시이래로 이어져 끊이지 않으므로 상속식이라고 한다.-물처럼바람처럼]
[여실수행(如實修行)- 초지이상의 보살 수행
방편만족(滿足方便)- 십지의 만신, 깨달음의 수행이 완성된 것
법력훈습(依法力熏習)- 법은 진여이고, 진여의 힘이 작용하는 것으로 내훈(內熏)과 외훈(外熏)으로 나뉘며, 내훈은 스스로의 힘이고, 외훈은 불보살의 교화하는 힘
화합식(和合識); 아뢰야식, 아뢰야식은 불생불멸과 생멸이 화합되어 있어서 화합식이라한다.
상속심(相續心); 망념이 이어지는 마음. 아뢰야식이 세(細)에서 추(麤 )로 변해가는 무명업상(無明業相)등 구상(九相) 모두를 말하며, 상속상을 말하는 것이 아닌, 최후까지 이어온 무명업상을 말함.
본각(本覺)을 오염된 세상에서 관찰하는 수염본각(隨染本覺)과 정화된 본체 자체를 관찰하는 성정본각(性淨本覺)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세속에 오염된 본각이 어떠한 모습으로 작용하는 가를 관찰하는 내용이 수염본각이며, 지정상(智淨相)과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으로 나뉜다.
지정상(智淨相)은 불타의 지혜가 순정으로 된 모습으로 무명을 떠나 청정하게 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불의 근본지를 의미하며,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은 범부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업상으로,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는 불가사의 활동을 말하며, 이는 후득지를 의미한다. 지정상과 부사의업상은 본각의 자리로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사의업상- 업은 활동작용이며, 불타의 중생구제활동이 불사의 하다는 뜻. 불타의 이타행으로서의 후득지를 말한다. 즉 응신과 보신을 가르킨다. 불타는 본래 업이 없으므로 업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번역자인 진제의 용어 선택의 결함이라고 본다. 신역의 실차난타는 부사의 용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없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 귀경게에서도 진제는 최승업편지에서 업의 용어를 쓰고 있으나, 신역은 역시 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此義云何(차의운하) 以一切心識之相(이일체심식지상) 皆是無明(개시무명)
無明之相(무명지상) 不離覺性(불리각성) 非可壞非不可壞(비가괴비불가괴)
이 뜻이 무엇인가? 일체의 심식의 모습은 모두 무명이며, 무명의 모습은 각성을 떠나지 않으니,
파괴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파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What does this mean? Every five aspects of delusional and falsity of mind are Ignorance itself,
and the aspect of Ignorance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Ultimate enlightenment, which
cannot be destroyed itself and it cannot be destroyed by others.
(Figuratively, Ignorance can be compared with the waves in the sea, such waves cannot rise and topple without the sea.
Therefore, Ignorance itself abides in the Suchness of mind and it can always convert into Wisdom.)
[無明之相 不離覺性 : 무명의 현상은 바람 때문에 일어난 물결과 같다. 그러나 물결이 물을 떠난 것이 아니듯, 무명에 의해 일어난 모습이라고 하여도 지혜를 버린 것 아니다.
非可壞非不可壞 : 무명(無明)의 모습이란 진여를 떠나 있을 수 없으므로 파괴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진여 자체는 아니니 파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즉, 물결이 물을 떠난 것이 아니어서 물의 성질을 파괴할 수는 없지만, 물결을 잠재울 수는 있다.]
[일체심식(一切心識);아리야식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식(識), 즉 업식(業識),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 등.
각성(覺性)= 본각. 불각과 본각의 관계로 무명은 본각을 가체로 하여 의지해 있다.]
[의(意)에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業識)이라, 이른바 무명의 힘에 의해 불각(不覺)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전식(轉識)이라, 움직이는 마음에 의해 능동적으로 사물을 분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나타난 모습인 현식(現識)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일체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마치 밝은 거울에 사물의 상(像)이 나타나는 것같이 현식도 그러하여서 다섯 가지 티끌 경계가 마주해서 이르는 대로 즉시 나타나되 전후가 없으니 언제나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항상 눈앞에 존재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지식(智識)이라, 이른바 더럽거나 맑은 법을 분별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상속식(相續識)이라, 생각과 서로 응하여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량없는 세상의 선하거나 악한 업을 잘 유지하여 잃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현재와 미래의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를 성숙하게 하되 착오가 없기 때문이며, 현재에 이미 지난 일들을 갑자기 기억케하거나 미래의 일을 모르는 사이에 허망하게 공상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계가 헛되고 거짓되어서 오직 마음으로 지은 바라 하노니 마음을 여의면 육진(六塵)의 경계도 없다.-마하보디]
如大海水(여대해수) 因風波動(인풍파동) 水相風相(수상풍상)
不相捨離(불상사리) 而水非動性(이수비동성)
若風止滅(약풍지멸) 動相則滅(동상즉멸) 濕性不壞故(습성불괴고)
마치 큰 바닷물이 바람 때문에 파도가 움직이며,
물의 모습과 바람의 모습이 서로 버리거나 뗄 수 없는 것이나,
물은 움직이는 성질=動性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바람이 그치면 움직임도 사라지지만
축축한 성질=濕性은 파괴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It is as like rising and toppling waves by wind in the great ocean,
and those waves can never be separated from the seawater.
Since the wet nature of seawater does not have the moving nature of wind,
so the movement of waves will stop when the wind has stopped blowing,
even though the waves have calmed down, but the fluidity of the water's nature has never destroyed.
[무명의 상과 본각의 성(性)은 상호 하나도 아니며 또한 다르지도 않은 비일비이(非一非異)의 관계이다
물은 움직이는 성질이 아님을 설명하여, 무명과 본각이 하나가 아님(비일, 非一)을 말한다. 이와 같이 중생의 자성청정심은 무명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움직이어 아리야식이 된다. 따라서 아리야식에 있어서의 자성청정심과 무명은 완전히 융합되어 있어서 양자는 상호 구별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형상(形狀)이 없어 서로 떠나, 버리지 못한다’고 하며, ‘깨트릴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리야식에서 본각의 작용은 상실되지 않으므로 ‘마음(자성청정심 )은 움직이는 성품이 아니다’고 한다
무명이 사라지면 업식(業識)등의 상속(相續)은 사라져 지성(智性)만이 있게되며, 지성은 파괴될 수 없는 것이다.
상속심상(相續心相)의 용어는 기신론이 설하는 상속식의 상속상이 아닌, ‘계속 이어온 망심의 모습’ 즉 업상(業相) 등 모든 망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일체법 모두가 마음에서 일어나고 망념에서 생긴 것이므로 모든 분별은 곧 자기의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으로는 마음을 볼 수 없기에 어떤 형상도 가히 얻을 수 없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간의 모든 경계는 모두가 중생의 무명과 망심에 의하여 지탱된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마치 거울 속의 상(像)과 같아서 어떤 실체도 얻을 수 없다.
다만 마음이 허망할 따름이니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기 때문이다.- 마하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