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正宗分(정종분)의 解釋分(해석분) 6

Skunky 2022. 11. 30. 10:01

(2)  각(覺)의 의미 -The Meaning of Infinite Enlightenment

• 本覺(본각)과 始覺(시각)

所言覺義者(소언각의자) 謂心體離念(위심체리념)

말하는 바 각의 뜻이라는 것은 마음의 본체=心體에서 망념=念이 떠난 것을 말하며,

The meaning of infinite enlightenment is the substance of mind itself which is free from the falsity of delusional concept.  

 

[謂心體離念 망념은 마음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망념에 초점을 맞추어 마음을 찾으려 하면 마음의 본체를 볼 수 없다.

元曉 : 마음의 본체가 망념을 여읜다는 것은 망념을 떠나면 각(覺) 아닌 것이 없음을 드러낸다.-물처럼바람처럼]

 

離念相者(이념상자) 等虛空界(등허공계) 無所不遍(무소불편)

法界一相(법계일상) 卽是如來平等法身(즉시여래평등법신),

망념을 떠난=離念 모습=相이란 허공계와 같은 것으로,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법계가 한 모습=一相이며, 즉 이것이 여래의 평등법신이다.  

The mind is free from the falsity of delusional concept and is ubiquitous and universal like air.

It is the one true configuration of the universe, which is, the impartial and pure body of Buddha(The wisdom of prajna).

 

[等(등) ; 같다는 뜻.

元曉 : 허공계와 같다는 것은 마음 바탕에 어두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혜광명이 두루 법계에 비치기 때문에 둘이 아닌 하나로써 다를 것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 무명에 의해 마음이 동요하여 대상을 헛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헛된 대상으로 인해 마음이 끌려 늘 고요하지 못하다. 그 대상이 헛된 것임을 깨달아 더 이상 끌리지 않으니, 망념이 사라진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있는 그대로 비추는 지(知)만 있을 뿐이다.]

 

依此法身(의차법신) 說名本覺(설명본각).

이 법신에 의하여 설하니, 본각이라 이름한다.  

By speaking from the prajna wisdom, we name this the original state of enlightenment (everyone has it by nature).

 

何以故(하이고) 本覺義者(본각의자) 對始覺義說(대시각의설)

以始覺者(이시각자) 卽同本覺(즉동본각)

무엇 때문인가, 본각의 뜻이란 시각의 뜻에 상대하여 설한 것이며,

시각이란 곧 본각과 같음이다.

The reason for being called the original state of enlightenment is that it can be contrasted with the step by step of discipline for the enlightenment (on the way of getting rid of the delusional mind), meanwhile when the one has just attained realization through discipline it can be as equal as the original state of enlightenment.

 

[本覺(본각)이란 진여 그 자체이다. 누구나 본래 갖추어 있는 것이다. 그 본각을 깨달아가는 것을 始覺(시각)이라고 한다. 진여가 미혹에 덮여 있는 것을 不覺(불각)이라고 한다. 시각을 본각에 대비하여 말하면 아직 본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불각이 있다고 한다.

* 元曉, 별기 : 각(覺)의 뜻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말한다. 본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심성(心性)이 불각의 모습을 여읜 것을 말하니, 이 각조(覺照)의 성질을 본각이라고 이름한다. 이는 아래 글(‘삼대’)에서 自體有大智慧光明義故고 한 것과 같다. 시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심체(心體)가 무명의 연을 따라 움직여 말념을 일으키지만, 본각의 훈습의 힘 때문에 차츰 각의 작용이 생겨, 궁극적으로 본각과 같아지니 이를 시각이라고 이름한다.]

 

[각(覺), 깨달음의 지혜인 각(覺)은, 그 마음의 체(體)에서 망념(妄念)이 떠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으로서 주객(主客)의 분열이 없는 전체적 직관(直觀)이고 반야(般若)이다.  이는 아리야식(阿梨耶識)에 속하면서도, 그 아리야식에서 망념이 떠난 성질의 것이다.  아리야식은 염정(染淨) 양쪽의 근원을 함장하고 있으므로, 정법(淨法)의 입장에서 마음의 생멸(生滅)을 관찰하면, 그것은 각(覺)의 활동이고 지혜광명으로서, 이 지혜는 마음의 체에서 망념이 떠나간 심체이념(心體離念)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으로 분열되면, 보는 부분을 볼 수가 없으므로 보는 부분은 암흑(暗黑)이 된다.  그러나 망념이 떠난 이념(離念)에서는, 마음의 분열이 없으므로, 마음 전체가 반야의 지혜로 빛나, 마음 전체에는 암흑의 장애가 없게된다.  따라서 깨달은 각(覺)의 마음은, 허공계(虛空界)와 같아지고, 깨달음의 지혜가 마음 전체에 퍼져, 미치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며, 따라서 마음의 세계 전체가 반야지혜의 일색(一色)이 되기 때문에, 법계일상(法界一相)이라 일컬어진다.  
이와 같이 각(覺)은 여래의 지혜이며, 진리(理)를 깨달은 지(智)는 이지불이(理智不二)이기 때문에, 이것을 여래의 법신(法身)이라 한다.  이 법신은 번뇌에 감추어진 여래장(如來藏)의 지위에서나 또는 번뇌를 이탈한 여래 법신의 지위에서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평등한 법신이라 말한다.  

법신은, 본래 마음에 있는 고유한 것이므로, 이름하여 본각(本覺)이라 한다.  여래의 법신은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법신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이 저절로 만물을 비추어 아는 것과 같은 지혜이며, 그것은 걸림이 없는 무구무괘애(無垢無罣礙)의 지혜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법신을 본각(本覺)이라 이름하는가에 대하여, 거기에는 시각(始覺)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각은 번뇌의 망염(妄染)을 깨면서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는 단계이며, 범부가 불교 수행을 실천하여 후퇴없이 계속하면,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각(始覺)의 첫걸음으로서, 그로부터 수행(修行)이 진척되어, 각(覺)의 작용이 차차 전해져, 수행(修行)이 완성되면 시각(始覺)은 본각(本覺)과 합치된다.  이같은 시각(始覺)에 대비하여 법신을 본각이라 부르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각(覺)의 완성 단계를 초지(初地)부터 십지(十地)까지 열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시각은 이같이 초지부터 시작하여 십지에 이르러 충만되고 본각(本覺)과 합치되므로, 성자(聖者) 수행의, 처음에서 끝까지를 시각(始覺)이라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이 각(覺)은 범부(凡夫)에 있어서는 불각(不覺)이지만 성자(聖者)의 단계에 이르러 시각(始覺)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번뇌와 공존(共存)하는 단계이며, 이 번뇌가 차차 소멸하여 각(覺)만의 세계에 도달될 때 시각(始覺)은 본각(本覺)과 하나가 된다.  이같이 본각과 합일된 시각(始覺)을 수염본각(隨染本覺)이라 부르고, 본각(本覺) 자체를 성정본각(性淨本覺)이라 부른다.-백련, 전종식]

 

(3)  시각(始覺)의 의미 - The Meaning of Just Attained Realization.

시각(始覺) - Just Attained Realization.

始覺義者(시각의자) 依本覺故(의본각고) 而有不覺(이유불각)

시각의 뜻이란 본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으며,

Since the status of just having attained realization, it can be compared with the higher state of it, and there is un-enlightenment from the infinite enlightenment perspective.

 

依不覺故(의불각고) 說有始覺(설유시각)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설하며

And like wise one can explain that there is the infinite enlightenment owing to the un-enlightened. 

 

又以覺心源故(우이각심원고) 名究竟覺(명구경각)

不覺心源故(불각심원고) 非究竟覺(비구경각).

또 마음의 근원=心源을 깨달았으므로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며,

마음의 근원=心源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구경각이 아니라고 한다.

Furthermore, it can be denominated the perfect enlightenment when one has attained the very essence of mind.

 

[元曉 : 전체적으로 표시한 것 가운데 覺心源故 名究竟覺라고 한 것은 불지(佛地)에 있는 것이며, 不覺心源故 非究竟覺이라 한 것은 금강(金剛) 이전이다.
* 金剛喩定(금강유정) : 은정희 - 금강이 견고하여 다른 것을 깨뜨리는 것 같이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선정을 말함. 대승에서는 제 십지보살이 소지장과 번뇌장의 종자를 한꺼번에 끊고 불지에 들어가기 위해 드는 선정.]

 

[여기에서 시각(始覺)의 정의(定義)를 본각(本覺)과 불각(不覺)의 삼자(三者) 관계에서 찾고 있다.  처음 깨달아 간다는 시각(始覺)은 불타의 깨달음인 본각(本覺)을 향하여 가기 때문에「본각(本覺)에 의지하여 시각(始覺)이 있다」고 설하고, 그러나 그것은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아직 불각(不覺)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설하여「또한 불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시각(始覺)이 발생하는 것이므로「불각(不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은 명확한 구별이 없다.  시각(始覺)의 지(智)도 그보다 상위의 시각(始覺)에서 보면 불각(不覺)이라 불려지고, 불각(不覺) 또한 그보다 하위(下位)의 불각(不覺)에서 보면 시각(始覺)이라 불려진다.  
시각(始覺)은 초발(初發)부터 시작하여 전각(全覺)까지 무수한 단계가 있다.
이와 같이 시각(始覺)이 완전한 각(覺)에 이르러 전각(全覺)이 되면, 그것은 불타의 지혜가 되어, 그 이상의 시각(始覺)은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궁극적 깨달음인 구경각(究竟覺)이라 말하고, 구경각은 심원(心源)을 깨달음으로서 성립된다.  여래장심(如來藏心)에 무명이 작용하여 일심(一心)이 망념(妄念)으로 전환되는 그 마음의 시원(始源)을 심원(心源)이라 한다.  
이 같은 심원을 깨달은 것이 구경각(究竟覺)이며 구경각 이전의 시각(始覺) 단계는 비구경각(非究竟覺)이다. 

비구경각으로부터 구경각까지의 시각의 단계를 4단계로 나누어 불각(不覺),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구경각(究竟覺)이라 하고 제1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  불각(不覺) - Finite Enlightenment

此義云何(차의운하) 如凡夫人(여범부인) 覺知前念起惡故(각지전념기악고)

能止後念(능지후념) 令其不起(영기불기)

이 뜻은 무엇인가? 범부같은 사람은 먼저 생각=前念이 악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나중 생각=後念을 멈추어 악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으며,

What does this mean?  Since an ordinary lay people do not realise that an out broken thought spurred up evil thoughts,
accordingly, the one is able to stop arising evil thoughts by stopping following the previous thought.

 

[범부는 생각이 악을 일으킴을 보고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생멸 현상에 집중하여 다음에는 그러한 것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할 뿐이다.]

 

㉰  상사각(相似覺) - Realization Similar to Enlightenment

雖復名覺(수부명각) 卽是不覺故(즉시불각고)

비록 다시 각이라고 이름할지라도 바로 이것은 불각이기 때문이다.

Again, despite one (sāvaka, the one enlightened by himself etc) who do call it enlightenment, it is actually no more than the very finite enlightenment.

(Those who seek only their own perfection and have some trained wisdom such as two lower schools(Hinayana), or Bodhisattvas, they have only just begun the study of the Mahāyāna doctrines and are enlightened that there is another aspect of false conception (such as greed, anger and foolishness), but they are free from them.  Since they have forsaken such rough afflictions of attachment from their mind, we call it similar enlightenment.)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이승(二乘)의 경지 즉, 이승의 수행의 지혜[觀智]와 처음 보리심을 낸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의 단계를 각(覺)에 유사한 단계라 하여 상사각(相似覺)이라 이름한다.  이들은 망념(妄念)의 이상(異相)인 탐(貪), 진(瞋), 치(癡)등의 번뇌를 차단하고 있다.  이들은 탐욕과 노여움 등 거칠은 번뇌[麤分別]나 어리석은 자아의 집착을 떠나 있어 각(覺)이라 일컬을 수 있으나, 보살의 십지(十地)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반야공(般若空)의 지혜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각(覺)은 각이지만 참된 각이 아니기 때문에 상사각(相似覺)이라 말하는 것이다.
원효는 이상(異相)에 대하여 탐(貪), 진(瞋), 치(癡), 만(慢), 의(疑), 견(見)의 여섯가지를 들고 상사각(相似覺)에서는 이 망념을 깨달아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화엄경의 분류방식을 따라 십주(十住)(十解로 표현), 십행(十行) 및 십회향(十廻向)을 닦은 삼현보살(三賢菩薩)의 경지로 설명하고 있다.]

 

[오형근의 해설 : 우리 마음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생멸심(生滅心)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에서 악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악의 싹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마음에 생겨난 악의 싹을 잘라낸다고 해도 악의 근원인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악의 싹을 인식한다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 元曉 : … 저 심성이 본래 생멸상을 여의었으나, 무명이 있어서 자신의 심성을 모르는 것이며, 심성을 어김에 의해 적정을 여의기 때문에 동념(動念)의 사상(四相)을 내는 것이니, 사상은 무명과 화합하는 힘에 의해 심체로 하여금 생주이멸(生住異滅)하게 하는 것이다. 소승의 논의 중에 ‘마음이 미래 중에 있을 때는 아직 생멸하지 않다가 업력에 의해 사상을 끌어 심법으로 하여금 생주이멸하게 한다.’고 한 것과 같다. 대승의 사상(四相)도 그와 같다. 경의 말에 ‘이 법신이 모든 번뇌에 의해 동요하는 바가 되어, 생사를 왕래하니 중생이라고 한다.’는 것과 같다. 이 론의 아래 글(‘본각’)에서 自性淸淨心 因無明風動이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