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3
40.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3
(2)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다(禮敬諸佛, Venerating the Buddhas)
Always accommodating and adapting to all beings.
항상 모든 존재에 맞추어 적응한다.
普賢菩薩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言禮敬諸佛者는
보현보살 고선재언 선남자 언예경제불자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으니, 선남자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佛刹極微塵數諸佛世尊을 我以普賢行願力故로
소유진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일체불찰 극미진수 제불세존 아이보현 행원력고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들께
나의 이러한 보현의 수행과 서원의 힘의 연고로
深心信解하야 如對目前하야 悉以淸淨身語意業으로 常修禮敬호대
심심신해 여대목전 실이청정 신어의업 상수예경
깊은 마음으로 믿고 이해하여 마치 눈앞에서 뵙듯이 받들고,
청정한 몸과 말과 뜻=身口意로 항상닦아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一一佛所에 皆現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身하야 一一身으로
일일불소 개현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신 일일신
낱낱의 부처님 처소에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의 몸을 나타내어, 그 한 몸 한 몸이
徧禮不可說不可說佛刹極微塵數佛이니 虛空界盡하면 我禮乃盡이어니와
변례불가설불가설 불찰극미진수불 허공계진 아례내진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의 부처님께 두루두루 다 예를 올리는 것이니,
허공계가 다하면, 나의 이러한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以虛空界가 不可盡故로 我此禮敬도 無有窮盡이며
이허공계 불가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러하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음이요.
如是乃至衆生界盡하고 衆生業盡하고 衆生煩惱盡하면 我禮乃盡이어니와
여시내지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아례내진
이와 같이 내지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而衆生界와 乃至煩惱가 無有盡故로 我此禮敬도 無有窮盡이니
이중생계 내지번뇌 무유진고 아차예경 무유궁진
중생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러한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으며,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되는 끊임없는 신구의 업은 피곤하거나 싫어함이 없도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보살의 열 가지 인생지침의
첫째는 사람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예배하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우선 경문에는 분명히 부처님이라고 하였는데 왜 자꾸 사람들이라고 하는가! 화엄경의 근본종지 중에 반드시 생각하고 기본으로 삼아야 하는 구절은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른 호칭이 부처님이다. 그리고 경문에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모든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만치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들”이라고 하였다. 그 말은 역사상에 기록된 석가모니불이나 경전상의 아미타불이나 연등불과 같은 부처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저 많은 부처님이란 곧 모든 사람을 뜻하며, 나아가서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삼라만상과 우주만유를 가리킨다. 그러나 어떤 문제든지 지금 우리에게 문제되는 사항만 문제시해야 하므로 경전의 뜻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이 넓다하더라도 잠시 제쳐두고 사람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한다.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우주만유와 삼라만상에 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자연과 삼라만상들을 모두 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예경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 사람들을 모두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수행이며 보살행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받들어 섬기며 예경하는 일이 사람과 사람관계에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일이며 행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면 그도 행복하고 나 또한 행복하다. 만약 사람이 부처님이 아니라면 법화경의 상불경(常不輕)보살은 참선도 하지 않고, 경전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염불도 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예경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지 않을 것이며,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경전 중에 왕이라는 법화경의 가르침이 어찌 허망한 말이겠는가.
사찰의 법당에 와서 불상에게 예경하는 것은 훈련이며 연습이다. 법당에서 훈련한 것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익숙하게, 그리고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기고 자연스럽게 실천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운동선수가 연습장에서는 실수 없이 잘하면서 실전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실수를 연발한다면 그 경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처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면 한두 번은 부처님으로 예경할 수는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나에게 잘 보일 때는 조금은 부처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고 부처님을 대하면서 아귀처럼 아수라처럼 혹은 동물을 대하 듯이 분노하여 화를 내며 욕심을 부리고 피해도 입히고, 욕도 하고 악담도 하고 음해도 서슴지 않는다. 무엇이나 초심(初心)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끊임없이 예경하는 일을 “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야 나의 예경함도 다하려니와, 중생계와 내지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 나의 이 예배하고 공경함도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예경하는 일을 일상사처럼 하고 숨을 쉬는 일처럼 해야 한다. 경문의 내용은 참으로 눈물겨운 보살의 아름다운 비원이다.
(3)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다(稱讚如來, Praising the Tathagatas)
復次善男子야 言稱讚如來者는
부차 선남자 언칭찬여래자
다시 또 선남자여, 부처님을 찬탄한다는 것은
所有盡法界虛空界十方三世一切刹土所有極微一一塵中에
소유진법계허공계 시방삼세 일체찰토 소유극미 일일진중
온 법계와 허공계, 시방 삼세의 모든 국토에 있는 바
극히 미세한 하나 하나의 티끌(먼지) 가운데
皆有一切世界極微塵數佛하며 一一佛所에 皆有菩薩海會圍遶어든
개유일체세계 극미진수불 일일불소 개유보살 해회위요
모두 모든 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같은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하나 하나의 부처님 처소마다 모두 보살 대중들이 모여 둘러싸고 모시는 것이나니,
我當悉以甚深勝解現前知見으로 各以出過辯才天女微妙舌根하야 一一舌根에
아당실이 심심승해 현전지견 각이출과 변재천녀 미묘설근 일일설근
내가 마땅히 이러한 매우 수승한 이해의 지견이 앞에 나타나나니,
깊고 깊은 각각의 변재가 천녀의 미묘한 혀=舌根보다 훌륭하며, 그 낱낱의 혀로
出無盡音聲海하며 一一音聲에 出一切言詞海하야 稱揚讚歎一切如來諸功德海호대
출무진음성해 일일음성 출일체언사해 칭양찬탄 일체여래 제공덕해
다함없는 음성의 바다를 내고, 낱낱의 음성마다 모든 언사의 바다를 내어,
모든 여래의 일체 공덕 바다를 칭찬하고 찬양하고 찬탄하나니,
窮未來際토록 相續不斷하야 盡於法界하야 無不周徧이니라
궁미래제 상속부단 진어법계 무불주변
(그 찬탄이) 미래가 다하도록 서로 계속하여 끊이지 않으며,
온 법계가 다하도록 두루하지 않음이 없도다.
如是虛空界盡하며 衆生界盡하며 衆生業盡하며 衆生煩惱盡이면
여시허공계진 중생계진 중생업진 중생번뇌진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들의 업이 다하고,
중생들의 모든 번뇌가 다한다면,
我讚乃盡이어니와 而虛空界와 乃至煩惱가 無有盡故로 我此讚歎도 無有窮盡이니
아찬 내진 이허공계 내지번뇌 무유진고 아차찬탄 무유궁진
나의 찬탄이 다할지라도, 이러한 허공계 내지 번뇌가 끝날 수 없는 까닭으로
나의 이러한 찬탄도 다함이 없으니,
念念相續하야 無有間斷하야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니라
염염상속 무유간단 신어의업 무유피염
생각 생각마다 서로 계속하여 끊임이 없나니,
신구의 업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사람을 만나면 제일먼저 진심으로 마음이 가득담긴 말씀으로 찬탄을 하고 무엇이든 건네주어야 한다. 또 헤어질 때는 반드시 격려해주고 빌어줘야 한다. 이쯤만 되어도 참 좋은, 인품이 된 사람이다. 아름다운 보살이라 할만하다. 찬탄이란 칭찬이며 건네주는 것은 공양이며 격려와 빌어줌이란 축원이다.
이 글에서는 찬탄을 이야기할 체례다. 이 경전의 서두에도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 여러 보살과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라고 시작하였다. 어느 특정한 한 사람 한 부처님만을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부처님들께 나도 또한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몸을 나타내어 찬탄한다.
살펴보면 모든 존재는 중중(重重) 중중 중중하고 무진(無盡) 무진 무진하여 중중무진과 무진중중으로 서로 서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사람과 자연들은 모두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일체 존재들을 내 자신을 위하듯이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살아가야 인류가 바라는 평화와 행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찬탄할만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찬탄한단 말인가?”라고 하는 것은 안목이 부족해서다. 열린 안목으로 잘 살펴보면 아무리 악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쓸모없는 물건들도 모두가 좋은 점이 있고 쓸모가 있다. 그것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과 장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매력과 장점이 있어서 찬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장엄하였기에 충분히 찬탄할 일이다.
설사 그와 같은 차원이 아니고, 백보 양보하여 우리들의 일상에서 가족과 이웃과 친지들을 칭찬하는 일도 마음만 먹으면 찬탄할 점은 많다. 문제는 자신이 남들을 찬탄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가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을 살려는 보살은 남을 찬탄할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사람이다.
불자들은 보살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누구에게나 찬탄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다. 한두 번에 지치거나 싫증내지 말라. “이제 더 이상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음해하는 일은 어제까지로서 끝이다. 나의 삶에 그와 같은 일은 아예 없다. 앞으로는 영원히 영원히 누구를 막론하고 찬탄하며 살리라.”라고 강인한 서원을 세워서 자신의 일상이 되게 하자. 그래서 허공계가 끝나고 중생계가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고 중생의 번뇌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찬탄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