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입법계품 6 (入法界品) 3
十二, 善見比丘 선견비구
第一 歡喜行善知識 환희행 선지식
10주 법문은 부처가 머무는 바에 스스로 머묾을 밝힌 것이며, 이하 10행의 경문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밝힌 것이니, 이하는 덕을 추양해서 승진하여 10행위에 들게 한 것이다.
환희행으로써 단(檀)바라밀을 행함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아홉으로 반(伴)을 삼는다.
지혜문을 기준으로 하면 1행 중에서 온갖 행을 통틀어 닦지만, 지위문을 기준으로 하면 6바라밀의 출세간 행을 치우쳐 닦는 것이다. 이 10행의 초문(初門)은 10주 중의 지(智)바라밀문을 가지고 삼세의 일체 부처의 경계와 중생 경계를 널리 인(印)쳐서 다함없는 겁이 모두 일시이기 때문에 터럭 안에서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1) 依敎趣求 선견 비구를 뵙고 법을 묻다
① 善財童子의 思惟 선재 동자의 사유
爾時에 善財童子가 思惟菩薩所住行甚深하며 思惟菩薩所證法甚深하며 思惟菩薩所入處甚深하며
이시 선재동자 사유보살소주생심심 사유보살소증법심심 사유보살소입처심심
이 때 선재동자는 보살이 머무는 행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보살이 증득한 법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보살이 들어간 곳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思惟衆生微細智甚深하며 思惟世間依想住甚深하며 思惟衆生所作行甚深하며 思惟衆生心流注甚深하며
사유중생미세지심심 사유세간의상주심심 사유중생소작행심심 사유중생심유주심심
중생의 미세한 지혜가 심오함을 사유하고, 세간이 생각을 의하여 머문다는 사실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중생이 짓는 행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중생 마음의 흐름이 심오함을 사유하고,
思惟衆生如光影甚深하며 思惟衆生名號甚深하며 思惟衆生言說甚深하며 思惟莊嚴法界甚深하며
사유중생여광영심심 사유중생명호심심 사유중생언설심심 사유장엄법게심심
중생이 그림자 같음이 심오함을 사유하고, 중생 이름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중생 언어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장엄한 법계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思惟種植業行甚深하며 思惟業莊飾世間甚深하고 漸次遊行하니라
사유종식업행심심 사유업장식세간심심 점차유행
심은 업행의 심오함을 사유하고, 업으로 장식된 세간의 심오함을 사유하면서, 점차 유행하여,
선재동자가 앞에서 자행동녀의 가르침을 13구절로 정리하여 사유하였다. 어느 시대에서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다시 간추리고 정리하는데 뛰어난다.
② 善見比丘의 容貌와 德化 선견 비구의 용모와 덕화
至三眼國하야 於城邑娶落과 村隣市肆와 川原山谷의 一切諸處에 周徧求覓善見比丘라가 見在林中하야 經行往返하니
지삼안국 어성읍취락 촌린시사 천원산곡 일체제처 주변구벽 선견비구 견재림중 경행왕반
삼안국에 이르러 성읍과 부락, 골목과 저자, 하천과 평원, 산과 계곡 등의 모든 곳에서 두루 선견비구를 찾다가
숲 속에서 경행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나니, 娶 장가들 취, 村 마을 촌, 隣 이웃 린, 肆 방자할 사, 頸 목 경,
청량스님은 소에서, “제2 선지식을 친견하고 공경히 법을 묻는 내용[見敬咨問]가운데 처음은 친견이고, 다음은 공경이고, 뒤는 질문이다. 친견하는 가운데 셋이니 1은 몸의 수승한 모습을 친견하고 2는 지혜(智慧)이하는 그의 마음의 모습을 밝혔고, 3은 무량(無量)이하는 모든 시종들을 밝혔다. 공경하고 질문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국토의 명칭이 3眼인 것은 첫째 법안(法眼), 둘째 지안(智眼), 셋째 혜안(慧眼)이니, 가령 덕을 추양하는 가운데 지인에는 흐림이 없어서 널리 법계를 관하고 혜심(慧心)이 광대한 이것이 바로 3안(眼) 국토이다. 이는 세간을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지안으로 근기를 관하고 법안으로 법을 알고 혜안으로 정사(正邪)를 결택함을 밝힌 것이니, 이 셋이 하나이지만 용(用)을 따라 셋이라고 설한 것이다.
숲 속에서 경행한 것은 행의 광대하고 많은 것이 숲이 그늘을 드리우는 것과 같아서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로 세속을 제도하는 행마다 이 같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숲 속의 경행을 나타낸 것이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생사에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난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하고, 또 열반에 머물지 않게 하고 대자비의 원(願)을 일으켜 생사에 들게 하고, 또 중생을 제도해서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왔다 갔다 하는 뜻임을 밝힌 것이다. 이같이 전전(轉轉)하면서 휴식이 없는 것이 마치 하나의 등(燈)이 백천(百千)의 등을 태우니 어둠이 다 밝아지면서 밝음이 마침내 다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수순등의 법문으로 선재동자에게 수여한 것이니, 이 때문에 숲 속에서 경행하여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써 나타낸 것이다.
[문] 어째서 10행의 처음에 먼저 비구를 보았습니까?
[답] 보살이 행한 행이 모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툼이 없고 오염을 여의어서 세간을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행이 되는 첫머리에 모두 오염이 없이 세간을 벗어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선현비구로써 마음이 세간을 여의어야 비로소 세속에 처해 광명을 같이하고 사물을 이롭게 함을 감당함을 밝히고 있으니, 그러므로 이하에서 바야흐로 속륜(俗輪)을 밝힌 것이다.
壯年美貌가 端正可喜며 其髮이 紺靑하야 右旋不亂하며 頂有肉髻하고 皮膚金色이며 頸文三道요 額廣平正하며
장년미모 단정가희 기발 감청 우선불란 정유육계 피부금색 경문삼도 액광평정
한창의 나이에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하여 보기가 즐거우며, 감청색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우로 빗겼으며,
정수리에는 육계가 있고 피부는 금빛이며, 세 갈래의 목주름에 이마는 넓고 반듯하며,
장년(壯年)의 미모가 단정해서 기뻐할 만하다는 것은 모든 행을 능히 행하는 것이 장년이 되고 미모의 단정함은 행의 보생(報生)인 것이며, 또 마음이 단아하고 행이 올바른 것을 이름하여 단정이 됨을 밝힌 것이다.
그 머리털이 감청(紺靑)으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맑고 행이 올바른 과보로 낳은 것이며, 또 오른쪽으로 돌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정법을 따르는 것이다.
정수리에 육계가 있다는 것은 지혜가 높고 덕이 원만한 과보로 생긴 것이다.
피부가 금색이란 지혜가 청정하고 마음이 안은하매 순수무구하여 자비로 사물을 이롭게 한 업보로 초래한 황색의 상(相)인 것이니, 이는 복덕의 색(色)이다. 경문(頸文)이 3도(道)라는 것은 망령되이 말을 내지 않는 과보로 생긴 것이다.
이마가 넓고 평평하고 바르다는 것은 지혜가 넉넉해서 널리 요달한 과보이다.
眼目修廣이 如靑蓮華하며 脣口丹潔이 如頻婆果하며 胸標卍字하고 七處平滿하며 其臂纖長하고 其指網縵하며
안목수광 여청연화 순구단결 여빈바과 흉표만자 칠처평만 기비섬장 기지망만
눈은 길고 넓어서 청련화 같고, 입술은 붉고 순결하여 빈파 나무 열매 같으며,
가슴에는 만자가 있고, 일곱 군데가 평탄 원만하며, 팔은 가늘고 길며, 손가락에는 그물 막이 있으며,
脣 입술 순, 頻 자주 빈, 臂 팔 비, 纖 가늘 섬, 縵 명주 만, 무늬 없을 만,
상학(相學)에 안장유학(眼長有學)이라 하여, 눈이 마치 푸른 연꽃처럼 길게 생긴 사람은 학문이 있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가슴에도 만자상이 있는데 선견비구도 그와 같다. 일곱 군데가 평평하다는 것은 두 손과 두 발과 두 어깨와 목이다.
안목(眼目)이 길고 넓은 것이 청련화 같다는 것은 지혜와 자비의 과보 공덕이다.
입술과 입이 붉고 청결한 것이 빈바과(頻婆果)와 같다는 것은 붉은 색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남방의 색이니, 남은 이(離)가 되고 이(離)는 일(日)이 되고 허무가 되고 심(心)이 되고 법문이 된다. 그리하여 지혜가 일(日)이 되고 입이 법을 설하는 문이 되는 것이니, 지혜의 일구(日口)로 능히 정법을 언표함으로써 낳은 과보이다.
가슴의 만자(卍字)는 지혜업의 청량함으로 낳은 것이다.
7處가 평등하고 원만하다는 것은 양 손과 양 발과 양 어깨와 마왕(馬王)의 음장(陰藏)의 7처가 평등하고 원만한 것이다.
그 팔이 섬세하고 길다는 것은 인도해 제접하여 선(善)을 성취함으로써 낳은 보업(報業)이며,
그 손가락이 망만하다는 것은 가르침으로 중생을 제도함으로써 낳은 보업이며,
手足掌中에 有金剛輪하며 其身殊妙가 如淨居天하며 上下端直이 如尼拘陀樹하며
수족장중 유금망륜 기신수묘 여정거천 상하단직 여니구다수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금강륜이 있으며, 몸은 유난히 아름다워 정거천의 사람과 같으며,
위 아래가 곧고 단정하여 니구타 나무 같으며,
손발 안에 금강륜(金剛輪)이 있는 것은 법륜을 굴려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써 낳은 업과(業果)임을 밝힌 것이니, 이처럼 복을 널리 찬탄한 것은 모두 경문에서 갖추어 밝힌 것과 같다. 모두가 안으로는 이 지혜의 행을 닦고 밖으로는 온갖 복을 장엄함으로써 인(因)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 것이니, 인(因)을 알면 과(果)를 앎을 밝힌 것이다.
諸相隨好가 悉皆圓滿하야 如雪山王의 種種嚴飾하며 目視不瞬하고 圓光一尋이라
제상수호 실개원만 여설산왕 종종엄식 목시불순 원광일심
모든 상호와 수호가 모두 다 원만하여 마치 설산을 갖가지로꾸며놓은 것 같으며,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는 눈은 둥근 광명이 한 길이었느니라. 瞬 눈깜박일 순, 尋 찾을 심
智慧廣博이 猶如大海하며 於諸境界에 心無所動하며
지혜광박 유여대해 어제경계 심무소동
지혜는 광박(넓어)하기 큰 바다와 같아서 모든 경계에 흔들림이 없으며,
제2 지혜(智慧)이하는 선견비구의 마음의 모습을 밝힌 내용이다.
若沈若擧와 若智非智의 動轉戲論이 一切皆息하며 得佛所行平等境界하며
약침약거 약지비지 동전희론 일체개식 득불소행 평등경계
침묵하거나 거론되거나 지혜이거나 지혜 아니거나 간에 움직임과 부질없는 모든 희론들을 다 잠재워버렸으며,
부처님이 행하신 평등경계를 얻어서
大悲敎化一切衆生하야 心無暫捨하며 爲欲利樂一切衆生하며 爲欲開示如來法眼하며
대비교화 일체중생 심무잠사 위욕이락 일체중생 위욕개시 여래법안
대비로 일체중생을 교화하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고,
일체중생을 유익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며, 또 여래의 법안을 열어 보이고자 하며
爲踐如來所行之道하야 不遲不速으로 審諦經行할새
위천여래 소행지도 불지불속 심제경행
여래가 행하신 길을 밟기 위해서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사색 하며 경행하고 있었느니라.
沈 잠길 침, 遲 늦을 지,
無量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와 釋梵護世와 人與非人이 前後圍遶하며 主方之神이 隨方廻轉하야
무량 천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석법호세 인여비인 전후위요 주방지신 수방회전
한량없는 천신,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재석, 범천왕, 호세(사천왕)와 인간, 비인간들이 앞뒤로 에워싸고 호위하며, 주방신은 방위를 따라 돌아가며
제3 무량(無量)이하는 모든 시종들을 밝힌 내용이다.
한량없는 천(天)·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제석〔釋〕·범천〔梵〕·호세(護世)·인비인(人非人)이 앞뒤로 둘러쌌다는 것은 비구가 중생을 다스리는 것이 근기에 의거해 두루 하기 때문에 그 대중이 시종과 같이 따름을 밝힌 것이니, 이 또한 법을 나타내는 대중이다.
주방신(主方神)이 방향을 따라 회전하면서 그 앞에 인도한다는 것은 방(方)은 법이니 법이 중생의 근기를 따라 회전하면서 중생을 인접(引接)하는데 방향이 정해진 상(相)이 없기 때문에 곧 법도 정해진 상이 없는 것이다.
족행신(足行神)이 연꽃을 가지고 그 발을 받는다는 것은 행의 오염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다함없는 광명(光明)의 신이 빛을 펼쳐 어둠을 깨뜨린다는 것은 가르침의 광명으로 미혹을 타파하는 것이다.
引導其前하며 足行諸神이 持寶蓮華하야 以承其足하며 無盡光神이 舒光破暗하며 閻浮幢林神이 雨衆雜華하며
인도기전 족행제신 지보연화 이승기족 무진광신 서광파음 염부당림신 우중잡화
그 앞을 인도하고, 족행신들은 보련화를 가지고 그의 발을 받치고 있었으며,
무진광신은 광명을 펼쳐 어둠을 깨뜨리고, 염부당 숲신=林神은 여러가지 꽃들을 비처럼 내리고,
염부당림신(閻浮幢林神)이 온갖 꽃을 비내린다는 것은 광대하고 많은 좋은 말씀과 온갖 행으로 중생을 이끌어서 계(戒)·정(定)·혜(慧)의 향기로운 꽃에 머물게 함을 밝힌 것이다.
부동장지신(不動藏地神)이 모든 보장(寶藏)을 나타낸다는 것은 선정의 행이 능히 지혜의 보장을 나타내는 것이다.
不動藏地神이 現諸寶藏하며 普光明虛空神이 莊嚴虛空하며 成就德海神이 雨摩尼寶하며
부동장지신 현제보장 보광명허공신 장엄허공 서위덕해신 우마니보
부동장 지신은 온갖 보배창고를 나타내며, 보광명 허공신은 허공을 장엄하고,
덕을 성취한 바다 신=成就德海神은 마니 보배를 비처럼 내리고,
보광명허공신(普光明虛空神)이 허공을 장엄한다는 것은 올바른 지혜로 모든 법을 관조하여 법공(法空)을 장엄하고 차별지를 일으켜 차별행을 행하는 것이 법공을 여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성취덕해신(成就德海神)이 마니 보배를 비내린다는 것은 보현의 대원으로 대자비의 덕을 성취해서 널리 법우(法雨)를 비내려서 중생을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다.
수미산신(須彌山神)이 머리를 숙여 공손히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하고 몸을 굽혀 합장한다는 것은 겸손으로 만(慢)을 여의는 공경의 행을 밝힌 것이다.
無垢藏須彌山神이 頭頂禮敬하야 曲躬合掌하며 無礙力風神이 雨妙香華하며 春和主夜神이 莊嚴其身하야 擧體投地하며
무구장 수미산신 두정예경 곡궁합장 무애력풍신 우묘향화 춘화주야신 장엄기신 거체투지
무구장 수미산신은 머리숙여 절하고 허리굽혀 합장하였으며,
무애력 풍신은 묘향의 꽃을 비처럼 내리고, 춘화 주야신은 몸을 단장하고 온몸을 땅에 엎드리며,
무애력풍신이 묘향화(妙香華)를 비내리다는 것은 부드러운 말과 겸손하고 공경하는 언어와 무아(無我)의 언어와 온화하고 기뻐하는 언어와 거칠거나 악함이 없는 언어와 때를 아는 언어와 망령되지 않은 언어와 이익이 되는 언어의 법다운 언어와 찬탄하는 언어와 일체의 온갖 선한 언어가 모두 무애력풍신이 묘향화를 비내리는 것이니, 이를 듣는 자는 계·정·혜의 향기로운 꽃이 다 구족함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역(易)에서 “손(巽)은 언설이 되니, 바람이 땅 위에 행하면 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군자의 전례(典禮)와 아언(雅言)을 밝힌 것이다. 본받아 배움이 있는 것으로 인덕(仁德)을 성취하기 때문에 바람이 땅에서 행한다고 말한 것이니, 땅은 곤(坤)이고 곤은 온갖 사람이 되는데 군자의 언교(言敎)를 본받기 때문에 관할 바가 있는 것이다.
常覺主晝神이 執普照諸方摩尼幢하고 住在虛空하야 放大光明하니라
상각주주신 집보조제방 마니당 주제허공 방대광명
상각 주주신은 모든 방위을 두루 비추는 마니 당기을 잡고 허공에 머물러서 대광명을 놓고 있었느니라.
이 경문은 정지혜풍신(正智慧風神)으로 입에서 바른 가르침의 말과 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이 되고 전례(典禮)에 합한 말을 내는 것이 향기로운 꽃이 된다
춘화주야신(春和主夜神)이 그 몸을 장엄하여 온몸을 땅에 던진다는 것은 자비의 온화함과 기쁨으로 늘 생사의 밤에 처해서 중생의 보는 자로 하여금 다 환희하여 선근을 발생케 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춘화주야신이 됨을 밝힌 것이며, 장엄하여 그 몸을 땅에 던진다는 것은 대자대비의 원행(願行)으로 장엄하여 생사의 땅에 던짐으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해 안락케 함을 밝힌 것이다.
상각주주신(常覺主晝神)이 모든 방향을 널리 비추는 마니당(摩尼幢)을 잡고 허공에 주재하면서 대광명을 놓는 것은 법공의 근본지로 모든 중생을 비추고 차별지로 제도하여 해탈케 함을 밝힌 것이다.
③ 善財童子의 問法 선재 동자가 법을 묻다
時에 善財童子가 詣比丘所하야 頂禮其足하며 曲躬合掌하고
시 선재동자 예비구고 정예기족 곡궁합장
그때 선재동자가 그 비구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 절한 다음 허리 굽혀 합장하고 말했느니라.
白言호대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야 求菩薩行하노니
백언 성자 아니선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구보살행
성자시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보살행을 구하나이다.
我聞聖者는 善能開示諸菩薩道라하니 願爲我說하소서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아문성자 선능개시 제보살도 원위아설 보살 운하학 보살행 운하수 보살도
제가 들으니 성자께서 보살도를 잘 열어보이신다 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를 말쓰하여 주소서.
"선재동자가 비구의 처소에 이르러서” 이하는 구할 바를 펴서 청하는 것이며,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다”고 말한 것은 최초에 문수사리의 처소에서 이미 보리심을 발한 것이 곧 보리의 체(體)가 행함도 없고 닦음도 없고 구함도 없고 얻음도 없고 증명함도 없음을 요달하기 때문에 이로써 보살도를 구함이 곧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것이라서 다만 보살도를 구하여 보리심을 이루는 것이니, 보리는 본래 스스로 성괴(成壞)가 없기 때문에 이미 구하고 앞으로 구하고 현재에 구하거나 이미 발하고 앞으로 발하고 현재에 발할 수가 없는 것이며, 이같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미 무상정각(無上正覺)의 마음을 먼저 발함”이 되는 것이며, 이 삼세의 마음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이미 무상정각의 마음을 발함”이 됨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