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이세간품 6 (離世間品) 6
㉒ 菩薩의 十種修行法 보살의 열가지 수행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修行法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恭敬尊重諸善知識修行法과 常爲諸天之所覺悟修行法과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수행법 하등 위십 소위공경존중제선지식수행법 상위제천지소각오수행법
於諸佛所에 常懷慚愧修行法과 哀愍衆生하야 不捨生死修行法과 事必究竟하야 心無變動修行法과
어제불소 상회참괴수행법 애민중생 불사생사수행법 사필구경 심무변동수행법
專念隨逐發大乘心諸菩薩衆하야 精勤修學修行法과 遠離邪見하고 勤求正道修行法과 摧破諸魔와 及煩惱業修行法과
전념수축발대승심 제보살중 정근수학수행법 원리사견 근구정도수행법 최파제마 급번뇌업수행법
知諸衆生의 根性勝劣하야 而爲說法하야 令住佛地修行法과 安住無邊廣大法界하야 除滅煩惱하야 令身淸淨修行法이
지제중생 근성승열 이위설법 영주불지수행법 안주무변광대법계 제멸번뇌 영신정정수행법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修行法이니라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기중 즉득여래무상수행법
질문172 '何等이 爲修行法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修行法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수행법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恭敬尊重 諸善知識 修行法과 이른바 모든 선지식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수행법과
常爲 諸天之所覺悟 修行法과 항상 모든 천신들의 깨달음=覺悟하는 바를 위하는 수행법과
於諸佛所에 常懷慚愧 修行法과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수행법과
懷 품을 회, 慚 부끄러울 참,愧 부끄러워할 괴,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정 보살의 수행이란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열거하는 열 가지 수행법을 면밀히 살피고 깊이 생각해서 따라야 할 것이다.
哀愍衆生하야 不捨生死 修行法과 중생을 애민하게 여기어 생사를 버리지 않는 수행법과 哀 슬플 애,愍 슬플 민,
事必究竟하야 心無變動 修行法과 일은 반드시 끝까지 이르고자 하는 마음에 변동이 없는 수행법과
專念隨逐 發大乘心 諸菩薩衆하야 精勤修學 修行法과 專 오로지 전, 逐 쫓을 축,
대승의 마음을 낸 모든 보살대중을 전념으로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배우는 수행법과
遠離邪見하고 勤求正道 修行法과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고 바른 도를 부지런히 구하는 수행법과
摧破諸魔와 及煩惱業 修行法과 모든 마군과 번뇌의 업을 꺾어버리는 수행법과 摧 꺾을 최,
知 諸衆生의 根性勝劣하야 모든 중생들의 근성이 수승하고 하열함을 알고서
而爲說法하야 令住佛地 修行法과 법을 설하여 부처님의 지위=佛地에 머물게 하는 수행법과
安住 無邊廣大法界하야 除滅煩惱하야 그지없이 광대한 법계에 안주하여 번뇌를 소멸하고
令身淸淨修行法이 是爲十이니 몸을 청정케 하는 수행법이라. 이것이 열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 如來無上 修行法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그 안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위없는 수행법을 얻느니라.
㉓ 菩薩의 十種魔 보살의 열가지 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蘊魔니 生諸取故며 煩惱魔니 恒雜染故며 業魔니 能障礙故며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마 하등 위십 소위온마 생제취고 번뇌마 항잡염고 업마 능장애고
心魔니 起高慢故며 死魔니 捨生處故며 天魔니 自憍縱故며 善根魔니 恒執取故며 三昧魔니 久耽味故며 善知識魔니
심마 기고만고 사마 사생처고 천마 자교종 선근마 항집취고 삼매마 구취미고 선지식마
起着心故며 菩提法智魔니 不願捨離故라 是爲十이니 菩薩摩訶薩이 應作方便하야 速求遠離니라
기착심고 보리법지마 불원사리고 시위십 보살마하살 응작방편 속구원리
질문 173 '何等이 爲魔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에게 열 가지 마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蘊魔니 生諸取故며 이른바 오온의 마이니, 여러 가지 집착=諸取를 이릉키는 연고며,
煩惱魔니 恒雜染故며 번뇌의 마이니, 항상 물들기 때문이며,
業魔니 能障礙故며 업의 마이니, 능히 장애하기 때문이며,
心魔니 起高慢故며 마음의 마이니, 교만=高慢을 일으키는 때문이며,
死魔니 捨生處故며 죽음의 마이니, 태어난 곳을 버리는 때문이라,
보살에게도 오온이 있으므로 집착이 있게 되고, 보살에게도 번뇌가 있으므로 항상 뒤섞이고 물이 들며, 또한 업이 있으므로 장애를 받으며, 마음이 때로는 교만을 일으키고, 죽음이 있으므로 살던 곳을 버리게 된다. 이런 것들이 보살의 마이다.
天魔니 自憍縱故며 하늘의 마=天魔이니, 스스로 교만하고 방종(放縱)하는 연고며, 憍 교만할 교, 縱 늘어질 종,
善根魔니 恒執取故며 선근의 마이니, 항상 집착하여 취하는 연고며,
三昧魔니 久耽味故며 삼매의 마이니, 오래 맛을 탐닉하는 연고며,
善知識魔니 起着心故며 선지식의 마이니,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연고며,
菩提法智魔니 不願捨離故라 是爲十이니 보리법을 아는 지혜의 마이니, 버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 이것이 열이니, 보살도 선근을 심고 선근을 회향하므로 집착이 생기며, 삼매를 좋아하여 오래 머물고자하며, 또 선지식이 되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며, 보리의 법을 앎으로 그것을 버리려하지 않을 수 있다
菩薩摩訶薩이 應作方便하야 速求遠離니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방편을 세워 속히 여의기를 구해야 하느니라.
㉔ 菩薩의 十種魔業 보살의 열가지 마의 업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忘失菩提心하고 修諸善根이 是爲魔業이요 惡心布施하고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마업 하등 위십 소위망실보리심 수제선근 시위마업 악심보시
瞋心持戒하며 捨惡性人하고 遠懈怠者하며 輕慢亂意하고 譏嫌惡慧가 是爲魔業이요 於甚深法에 心生慳悋하야
진심지계 사악성인 원해태자 경만난의 의혐오혜 시위마업 어심심법 심생간린
有堪化者라도 而不爲說하고 若得財利恭敬供養하면 雖非法器나 而强爲說이 是爲魔業이요 不樂聽聞諸波羅蜜하고
유감화자 이불위설 약득재리공경공양 수비법기 이강위설 시위마업 불락청문제바라밀
假使聞說이라도 而不修行하며 雖亦修行이나 多生懈怠하며 以懈怠故로 志意狹劣하야 不求無上大菩提法이
가사문설 이불수행 수역수행 다생해태 이해태고 지의협열 불구무상대보리법
是爲魔業이요 遠善知識하고 近惡知識하며 樂求二乘하야 不樂受生하며 志尙涅槃하야 離欲寂靜이 是爲魔業이요
시위마업 원선지식 근악지식 악구이승 불락수생 지상열반 이욕적정 시위마업
於菩薩所에 起瞋恚心하야 惡眼視之하야 求其罪釁하며 說其過惡하야 斷彼所有財利供養이 是爲魔業이요 誹謗正法하야
어보살소 기진에심 악안시지 구기죄흔 설기과오 단피소유재리공양 시위마업 비방정법
不樂聽聞하고 假使得聞이라도 便生毁呰하며 見人說法에 不生尊重하야 言自說是하고 餘說悉非가 是爲魔業이요
불락청문 가사득문 편생훼자 견인설법 불생존중 언자설시 여설실비 시위마업
樂學世論하야 巧述文詞하며 開闡二乘하야 隱覆深法하며 或以妙義로 授非其人하며 遠離菩提하고 住於邪道가
악학세론 교술문사 개천이승 은부심법 혹이묘의 수비기인 원리보리 주어사도
是爲魔業이요 已得解脫하야 已安隱者는 常樂親近하야 而供養之하고 未得解脫하야 未安隱者는 不肯親近하며
시위마업 이득해탈 이안은자 상락친근 이공양지 미득해탈 미안은자 불긍친근
亦不敎化가 是爲魔業이요 增長我慢하야 無有恭敬하며 於諸衆生에 多行惱害하며 不求正法眞實智慧하고
역불교화 시위마업 증장아만 무유공경 어제중생 다행뇌해 불구정법진실지혜
其心弊惡하야 難可開悟가 是爲魔業이라 是爲十이니 菩薩摩訶薩이 應速遠離하고 勤求佛業이니라
기심폐악 난가개오 시위마업 시위십 보살마하살 은속원리 근구불업
질문 174 '何等이 爲魔業이며' 弊 해어질 폐, 폐단 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업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忘失菩提心하고 修諸善根이 是爲魔業이요 이른바 보리심을 망실하고 모든 선근을 닦음이 마의 업이요,
보리심을 알고 있다면 굳이 여러 가지 선근을 닦을 필요가 없으나 보살은 보리심을 잊었는가. 여러 가지 선근을 쉬지 않고 닦는다. 그래서 그것이 보살의 마의 업이 된다. 실은 보리심이 있으므로 온갖 선근을 닦는 것이다. 보리심이 없는 사람이 어찌 선근을 닦겠는가.
惡心布施하고 瞋心持戒하며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내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捨惡性人하고 遠懈怠者하며 성품이 악한 사람을 버리고, 게으른 이를 멀리 하며,
懈怠해태= 행동이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성미와 버릇
輕慢亂意하고 譏嫌惡慧가 是爲魔業이요 譏 나무랄 기, 비웃을 기, 嫌 싫어할 혐
산란한 뜻을 업신여기고, 나쁜 지혜 있는 이를 미워하니, 이것이 마업이며,
청량스님의 소에 육바라밀 수행에 대하여 “참다운 도를 행하는 사람은 보시하지 아니하되 아끼지 아니하며, 계를 지키지 아니하되 범하지도 아니하며, 참지 아니하되 성을 내지도 아니하며, 정진하지 아니하되 게으르지도 아니하며, 선정에 들지도 아니하되 어지럽지도 아니하며, 지혜롭지 아니하되 어리석지도 아니하다. 다른 사람을 싫어하여 참지 못한다면 인욕바라밀을 어찌 이루겠는가. 다른 수행들은 모두 이것을 의지하면 된다.”라고 하였다.
於甚深法에 心生慳悋하야 有堪化者라도 而不爲說하고 慳 아낄 간, 悋 아낄 린,
심오한 법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내어, 교화를 받을 만한 이에게 법을 설하지 않으면서
若得財利 恭敬供養하면 雖非法器나 而强爲說이 是爲魔業이요
만일 재물의 이익이나 공경 공양을 얻으면, 비록 법그릇이 아니라도 굳이 법을 설하니 이것이 마업이며,
법에 대하여 인색한 것은 재물에 대하여 인색한 것보다 훨씬 큰 죄가 된다. 그것을 간탐죄(慳貪罪)라 한다.
不樂聽聞 諸波羅蜜하고 假使聞說이라도 而不修行하며
모든 바라밀을 즐겨 들으려 하지 않고, 설사 듣더라도 수행하지 않으며,
雖亦修行이나 多生懈怠하며 비록 수행하더라도 게으름을 많이 내며,
以懈怠故로 志意狹劣하야 게으르기 때문에 의지가 좁고 용렬하여 狹 좁을 협, 劣 못할 렬
不求 無上大菩提法이 是爲魔業이요 위없는 대보리법을 구하지 않으니,이것이 마업이며,
불교에 귀의는 하였으나 육바라밀이나 사무량심에 대하여 즐겨 듣고 행하려하지 않는다. 그 훌륭한 불법을 두고도 게으름을 내고 뜻이 용렬하여 무상 대보리를 구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마의 업이라 할 것이다.
遠善知識하고 近惡知識하며 선지식은 멀리 하고 악지식을 가까이 하며,
樂求二乘하야 不樂受生하며 이승을 즐겨 구하여 태어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志尙涅槃하야 離欲寂靜이 是爲魔業이요 열반의 고상한 뜻을 세워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하니, 이것이 마의 업이며,
참으로 특별히 기억하여 새겨두어야 할 것이 있다. “태어나기를 즐기지 않고, 열반을 숭상하여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함이 마의 업이다.”라는 사실이다. 누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가. 흔히들 불교를 이야기하면서 생사를 떠나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목적이라 한다. 또 욕심을 버리고 목석처럼 조용히 사는 것이 불교적 삶이라고 한다. 생사를 떠나서 자기혼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오늘도 고통 받고 있는 저 많은 중생들을 외면하고 혼자 조용히 살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중생들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 하면서 왕성한 의욕과 열정으로 저자거리에 들어가서 정법의 바퀴를 굴리면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於菩薩所에 起瞋恚心하야 보살들이 사는 곳에 와서 성내는 마음을 내어
惡眼視之하야 求其罪釁하며 說其過惡하야 나쁜 눈으로 흘겨보고, 허물을 찾아내어 잘못을 말하며, 釁 틈 흔, 피 칠할 흔,
斷彼所有 財利供養이 是爲魔業이요 그들에게 재물로 공양함을 못하게 함이 마의 업이며,
대승불교운동을 외치던 보살들의 피나는 노력과 그 설움이 눈에 선하다. 경문에서 밝힌 내용과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경문에다 명시하였겠는가. “그들은 마군의 업을 행하는 일이다. 그들은 마군의 업을 행하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誹謗正法하야 不樂聽聞하고 정법을 비방하며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假使得聞이라도 便生毁呰하며 설사 듣더라도 문득 훼방하여 헐뜯으며, 毁 헐 훼, 呰 꾸짖을 자, 흠 자
見人說法에 不生尊重하야 言自說是하고 餘說悉非가 是爲魔業이요
설법하는 사람을 존중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자기 말이 옳고 다른 말은 그르다 하니, 이것이 마업이며,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파다하거늘 대승불교운동이 처음 일어날 무렵에야 오죽했겠는가. 진리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따른다. 그것은 열반경에서도 유언하셨다. “법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라고.
그래서 탄허(呑虛, 1913-1983)스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이라도 만약 불법보다 우수한 법이 있다면 당장에 머리를 기르고 나가서 그것을 따르리라.”라고. 이 얼마나 불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넘치는 말씀인가.
樂學世論하야 巧述文詞하며 세간의 논리를 배우고 글짓기를 좋아하며,
巧 공교할 교, 아름다울 교, 述 지을 술, 펼 술, 詞 말 사, 글 사
開闡二乘하야 隱覆深法하며 이승을 펼쳐 천명(선전)하고 심오한 법은 덮어버리고 覆 뒤집힐 복, 덮을 부,
或以妙義로 授非其人하며 遠離菩提하고 住於邪道가 是爲魔業이요
혹은 미묘한 이치를 자격이 없는 이=非其人에게 일러 주며, 보리를 멀리 떠나고 삿된 길에 머무름이 마의 업이며,
출가수행자로서 문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서예나 다도나 운동 등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마의 업을 하는 것이다. 보살대승의 법을 버리고 성문법이나 독각법을 선전한다면 그 또한 마의 업이다. 진정한 깨달음을 멀리 떠나고 삿된 도에 머문다면 그도 역시 마의 업이다.
이미 해탈을 얻어 안은한 이는 늘 친근하여 공양하기를 좋아하나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하여 안은하지 못한 이는 친근하려 하지도 않고 교화하려 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마업이며,
已得解脫하야 已安隱者는 常樂親近하야 而供養之하고
해탈을 얻어 이미 편안하게 된 이를 항상 가까이하여 공양하나,
未得解脫하야 未安隱者는 不肯親近하며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하여 편안하지 못한 이는 가까이하지도 않고 肯 즐길 긍,
亦不敎化가 是爲魔業이요 또한 교화하려 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마의 업이며,
실은 큰스님이나 훌륭한 스님이나 도인이나 선지식이나 높은 벼슬을 사는 스님에게는 공양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교화하고 공양하여야 되고, 그것이 더욱 큰 복이 된다.
增長我慢하야 無有恭敬하며 교만(아만)이 늘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於諸衆生에 多行惱害하며 모든 중생들에게 흔히 괴롭히는 일을 행하며,
不求正法 眞實智慧하고 바른 법과 진실한 지혜를 구하지 않고,
其心弊惡하야 難可開悟가 是爲魔業이라 그 마음이 폐악하여 깨우치기 어려우니, 이것이 마의 업이라.
是爲十이니 菩薩摩訶薩이 應速遠離하고 勤求佛業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은 응당 속히 여의어서 부처님의 업을 힘써 구해야 하느니라.
㉕ 菩薩의 十種捨離魔業 보살의 열가지 마의 없을 버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捨離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야 捨離魔業하며 不自尊擧하고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사리마업 하등 위십 소위근선지식 공경공양 사리마업 불자존거
不自讚歎하야 捨離魔業하며 於佛深法에 信解不謗하야 捨離魔業하며 未曾忘失一切智心하야 捨離魔業하며
불자찬탄 사리마업 어불심법 신해불방 사리마업 미증망실일체지심 사리마업
勤修妙行하야 恒不放逸하야 捨離魔業하며 常求一切菩薩藏法하야 捨離魔業하며 恒演說法호대 心無疲倦하야
근수묘행 항불방일 사리마업 상구일체보살장법 사리마업 항연설법 심무피권
捨離魔業하며 歸依十方一切諸佛하야 起救護想하야 捨離魔業하며 信受憶念一切諸佛의 神力加持하야 捨離魔業하며
사리마업 귀의시방일체제불 기구호상 사리마업 신수억념일체제불 신력가지 사리마업
與一切菩薩로 同種善根하야 平等無二하야 捨離魔業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出離一切魔道니라
여일체보살 동종선근 평등무이 사리마업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능출리일체마도
질문 175 '何等이 爲捨離魔業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捨離魔業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로 마업을 버림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近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야 捨離魔業하며 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경하고 공양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不自尊擧하고 不自讚歎하야 捨離魔業하며 스스로를 높다 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않아서 마의 업을 버림이며,擧 들 거
於佛深法에 信解不謗하야 捨離魔業하며 부처님의 심오한 법을 신해하고 비방하지 않아서 마의 업을 버림이며,
未曾忘失 一切智心하야 捨離魔業하며 일체지혜의 마음을 잠깐도 잊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勤修 妙行하야 恒不放逸하야 捨離魔業하며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항상 방일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常求 一切菩薩藏法하야 捨離魔業하며 항상 모든 보살장법을 구하여 마의 업을 버림이며,
恒演說法호대 心無疲倦하야 捨離魔業하며 항상 법을 연설하여도 마음에 고달파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歸依十方一切諸佛하야 起救護想하야 捨離魔業하며
시방 일체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호하려는 생각을 일으켜서 마의 업을 버리며,
信受憶念 一切諸佛의 神力加持하야 捨離魔業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가지하심을 믿고 기억(생각)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與一切菩薩로 同種善根하야 平等無二하야 捨離魔業이
모든 보살들과 더불어 선근을 함께 심어서 평등하고 둘이 없게 하여 마의 업을 버림이니라.
보살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아야할 일을 하는 것은 모두가 마의 업이다.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마의 업을 버리는 것이다.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出離 一切魔道니라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곧 모든 마도에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㉖ 菩薩의 十種見佛 보살의 열가지 부처님 친견(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見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安住世間成正覺佛에 無着見과 願佛에 出生見과 業報佛에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견불 하등 위십 소위어안주세간 성정각불 부착견 원불 출생견 업보불
深信見과 住持佛에 隨順見과 涅槃佛에 深入見과 法界佛에 普至見과 心佛에 安住見과 三昧佛에 無量無依見과 本性佛에
심신견 주지불 수순견 열반불 심입견 법계불 보지견 심불 안주견 삼매불 무량무의견 본성불
明了見과 隨樂佛에 普受見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常得見無上如來니라
명료견 수락불 보수견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상득견무상여래
질문 176 '何等이 爲見佛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見佛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로 부처님을 보나니=見佛, 무엇이 열인가?
所謂 於安住世間 成正覺佛에 無着見과
이른바 세간에 머물러서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에게서는 집착이 없음을 보며,
願佛에 出生見과 서원의 부처님에게서는 태어나심을 보며=出生見,
業報佛에 深信見과 업보의 부처님에게서는 깊이 믿음을 보며,
住持佛에 隨順見과 머물러 유지하는=住持 부처님에게서는 수순함을 보며,
涅槃佛에 深入見과 열반하는 부처님에게서는 깊이 들어감을 보며,
십불(十佛)을 열거하였다. 정각불(正覺佛)과 원불(願佛)과 업보불(業報佛)과 주지불(住持佛)과 열반불(涅槃佛)이다. 봄이 있다는 것은 한분의 부처님에게서 그 관점이 다름을 따라 열 가지로 나누어진다는 뜻이다.
法界佛에 普至見과 법계의 부처님에게서는 두루 이르심을 보며,
心佛에 安住見과 마음의 부처님에게서는 편히 머무심을 보며,
三昧佛에 無量無依見과 삼매의 부처님에게서는 한량없고 의지함이 없음을 보며,
本性佛에 明了見과 본 성품의 부처님에게서는 분명히 아심을 보며,
隨樂佛에 普受見이 是爲十이니 즐김을 따르는 부처님에게서는 널리 받으심을 보느니, 이것이 열이니,
이어서 법계불(法界佛)과 심불(心佛)과 삼매불(三昧佛)과 본성불(本性佛)과 수락불(隨樂佛)이다. 부처님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이와 같이 나누어짐으로 이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부처님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常得見 無上如來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곧 무상여래를 항상 보게 되느니라.
십불(十佛)이란 부처님의 경계를 10가지로 나눈 뒤 이를 의인화(擬人化)시켜 말하는 것으로 해경십불(解境十佛)과 행경십불(行境十佛)로 나눠집니다. 화엄 2조 지엄(智儼:600~668) 스님이 쓴 『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에 의하면,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지리를 지혜로써 관조할 때 온 법계가 모두 부처님으로 보이는 것을 해경십불이라 하는데 이에는 중생신, 국토신, 업보신, 성문신, 벽지불신, 보살신, 여래신, 지신(智身), 법신, 허공신의 열 가지가 나열됩니다.
이 가운데 화엄경에서 말하는 삼종세간(三種世間)이 있는데 국토신은 기세간(器世間), 중생신을 비롯하여 업보신, 성문신, 벽지불신, 보살신은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리고 여래신, 지신, 법신, 허공신은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에 해당됩니다. 이 십신(十身)으로 삼세간의 모든 법을 융합하여 거두고 다시 십신과 자기 몸을 걸림없이 자유자재하게 융통하므로 융삼세간 십신(融三世間十身)이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국 이 세상 전체를 부처화(佛化)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행경십불은 수행이 완성된 후에 얻어지는 부처님의 경계를 10가지로 분류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는 정각불, 원불, 업보불, 주지불, 화불, 법계불, 심불, 삼매불, 성불(性佛), 여의불이 있습니다.
십불설은 모두 부처님의 깨달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와 경계의 면으로 나누어 말한 것인데 이를 이(理)에 해당합니다. 반면 보현의 행원으로 중생제도를 위한 이타행으로 실천화 될 때 사(事)가 되어 자비의 덕용(德用)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와 사가 상통되어 둘이 아닌 것이 됩니다. 곧 자리의 지혜와 이타의 자비가 서로 떨어지지 않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와 자비가 곧 부처의 체성(體性)에 갖추어진 공덕으로 법계에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통도사 반야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