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이세간품 6 (離世間品) 4
⑰ 菩薩의 十種福德助道具 보살의 열가기 복덕조도구(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福德助道具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勸衆生起菩提心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복덕조도구 하등 위십 소위권중생기보리심 시보살복덕조도구
不斷三寶種故며 隨順十種廻向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斷一切不善法하고 集一切善法故며 智慧誘誨가
부단삼보종고 수순십종회향 시보살복덕조도구 단일체불선법 집일체선법고 지혜유회
是菩薩福德助道具니 超過三界福德故며 心無疲倦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究竟度脫一切衆生故며 悉捨內外一切所有가
시보살복덕조도구 초과삼계복덕고 심무피권 시보살복덕조도구 구경도탈일체중생고 실사내외일체소유
是菩薩福德助道具니 於一切物에 無所着故며 爲滿足相好하야 精進不退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開門大施하야
시보살복덕조도구 어일체물 무소착고 위만족상호 정진불퇴 시보살복덕조도구 개문대시
無所限故며 上中下三品善根으로 悉以廻向無上菩提하야 心無所輕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善巧方便相應故며
무소한고 상중하삼품선근 실이회향무상보리 심무소경 시보살복덕조도구 선교발편상응고
於邪定下劣不善衆生에 皆生大悲하야 不懷輕賤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常起大人弘誓心故며 恭敬供養一切如來하고
어사정하열불선중생 개생대비 불괴경천 시보살복덕조도구 상기대인홍서심고 공경공양일체여래
於一切菩薩에 起如來想하야 令一切衆生으로 皆生歡喜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守本志願하야 極堅窂故며
어일체보살 기여래상 영일체중생 개생환희 시보살복덕조도구 수본지원 극견로고
菩薩摩訶薩이 於阿僧祗劫에 積集善根으로 自欲取證無上菩提인댄 如在掌中이나 然悉捨與一切衆生하야 心無憂惱하며
보살마하살 어아승지겁 적집선근 자욕취증무상보리 여재장중 연실사여일체중생 심무우뇌
亦無悔恨하고 其心廣大하야 等虛空界가 此是菩薩福德助道具니 起大智慧하야 證大法故라 是爲十이니
역무회한 기심광대 등허공계 차시보살복덕조도구 기대지혜 증대법고 시위십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具足如來無上廣大福德聚니라
약제보살 안주기중 즉구족여래무상광대복덕취
질문 167 '何等이 爲福德助道具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福德助道具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의 복덕을 돕는 도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勸衆生起菩提心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이른바 중생들에게 보리심을 일으키도록 권하는 것이 보살이 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이니,
不斷 三寶種故며 삼보의 종성을 끊지 않으려는 연고며,
보리심은 곧 불심(佛心)이며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중생들이 일으키도록 한다면 얼마나 큰 복덕이 되겠는가. 이 보리심을 중생들이 일으킴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대중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심지어 축생들을 보고도 “보리심을 발하라.” “발보리심하라.”라고 권하는 것이다.
三寶(삼보)=佛 法 僧=불타는 불보(佛寶), 불타의 가르침은 법보(法寶), 불타의 교법에 따라 수행을 쌓은 이는 승보(僧寶)
隨順 十種廻向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열 가지 회향에 수순하는 것이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이니
斷一切不善法하고 集一切善法故며 일체의 불선법을 끊고 일체의 선법을 모으려는 연고며,
불교의 수많은 말씀 중에 회향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닦은 선행을 다른 사람에게 회향한다는 것은 진실로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이다. “일체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일체 착한 법을 모은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경계의 말씀이기도 하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여 자정기의(自淨其意)하라. 시제불교(是諸佛敎)니라.”라고 하였다.
회향이란 십주와 십행에서 득한 청정법신의 지혜와 공덕을 다시 세간으로 돌려[廻] 대지혜와 대자대비를 향하여 더욱 넓히고 펼쳐 나아가서 생사계를 더욱 밝혀 나아감[向]이다. 이것은 자신이 닦은 모든 공덕을 중생과 보리와 세간의 모든 곳으로 돌리어[廻] 더욱 넓혀 나아가, 세상을 밝혀 나아감[向]이다.
「제25 십회향품(十廻向品)」에서 ①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眾生離眾生相迴向)·②불괴회향(不壞迴向)·③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迴向)·④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迴向)·⑤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迴向)·⑥수순평등선근회향(隨順平等善根迴向)·⑦수순등관일체중생회향(第七隨順等觀一切衆生迴向)·⑧여상회향(如相迴向)·⑨무박무착해탈회향)無縛無著解脫迴向·⑩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迴向)- 순야 착지
智慧誘誨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超過 三界福德故며 誘 꾈 유,誨 가르칠 회,
지혜로 가르쳐서 회유하는 것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삼계의 복덕을 뛰어넘으려는 연고며,
가르치되 지혜로써 정법을 가르쳐야 복덕이 된다. 그렇지 못한 속된 가르침은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르침이다.
心無疲倦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究竟度脫 一切衆生故며
마음에 피로나 권태가 없으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구경에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연고며,
悉捨 內外一切所有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於一切物에 無所着故며
안팎으로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모든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연고며,
爲滿足 相好하야 精進不退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상호를 만족히 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정진하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開門大施하야 無所限故며 문을 열어 크게 보시함을 제한없이 하는 연고며,
정진(精進, 산 vīrya, diligence, energy, perseverance, enthusiasm, sustained effort) · 근(勤) 또는 노력(努力)은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선심소(善心所: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음역하여 비리야(毘梨耶)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정진(精進) 또는 근(勤)은 용한(勇悍: 날래고 사나움, 용맹스럽고 힘참,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용맹스럽고 힘차게 노력하게 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즉, 악을 끊고 선을 닦는 데 있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용맹하게 하여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노력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용한(勇悍)은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날래고[勇] 사나움[悍]'인데, 불교 용어로서는 이 일반 사전적인 의미를 포함하며 또한 '용감하고 모짐, 결단력[勇]이 있고 인내[悍]함, 모질게 노력함'의 뜻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용한(勇悍)은 결단과 인내(determination and perseverance)를 뜻한다.
설일체유부의 중현(衆賢)은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에서, 정진은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功德, 산스크리트어: guna)은 수호하고 과실(過失)은 내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功德)은 생겨나게 하고 과실(過失)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타락됨이 없는 것[無墮性]을 본질로 한다고 하였다. 즉 정진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참다운 이치에 따라 지어지는 일, 즉 선법(善法)의 공부(工夫)로 견고히 나아가 멈추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5정진(五精進)은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나오는, 정진(精進) 또는 근(勤)의 5단계의 차별인 피갑(被甲) · 가행(加行) · 무하(無下) · 무퇴(無退) · 무족(無足)을 말한다. 안혜의 《대승광오온론》에서는 피갑(被甲) · 가행(加行) · 무겁약(無怯弱) · 불퇴전(不退轉) · 무희족(無喜足)이라 명명하고 있다.
무착의 《현양성교론》에 따르면, 불교 경전에서는 유세(有勢) · 유근(有勤) · 유용(有勇) · 견맹(堅猛) · 불사선액(不捨善軛)이라 명명하고 있다
上中下 三品善根으로 悉以廻向無上菩提하야 心無所輕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輕 가벼울 경, 조급히 굴 경,
상, 중, 하 세 가지 품류의 선근을 무상보리에 다 회향하되 마음에 가벼이 하는 생각 없음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善巧方便 相應故며 선교한 방편과 서로 응하는 연고며, 相應상응=1. 서로 응하거나 어울림2. 서로 기맥이 통함선근을 심는 일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 사람의 의식주와 의료와 교육을 베푸는 것도 훌륭한 선근이다. 부처님과 같이 참다운 이치를 깨달아 그것을 가르치는 것도 또한 훌륭한 선근이다. 어떤 선근이든 그 모든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여 마음에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은 큰 복덕이 된다.
於邪定 下劣 不善衆生에 皆生大悲하야 劣 못할 렬,
잘못 결정된 용렬(열등)하고 선하지 뭇한 중생들(사정취, 邪定聚)에게 모두 큰 자비(대비)를 일으켜,
不懷輕賤이 是菩薩福德助道具니 懷 품을 회, 賤 천할 천
업신여기고 비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요,
常起 大人弘誓心故며 弘誓홍서= 중생을 제도하여 불과를 얻게 하려는 부처와 보살의 큰 바람
늘 대인의 큰 서원을 항상 일으키는 연고며,
선량한 사람, 정직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고 좋아하기는 쉽지만 잘못 결정된 용렬하고 선하지 못한 중생에게 큰 자비를 내고, 비천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어려운 일이므로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큰 복덕이 된다.
恭敬供養 一切如來하고 於一切菩薩에 起如來想하야 일체여래를 공경히 공양하고, 모든 보살을 여래라 여기며,
令一切衆生으로 皆生歡喜가 是菩薩福德助道具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다 기쁘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의 도를 돕는 도구이니,
守本志願하야 極堅窂故며 본래 뜻한 바 원을 지극히 견고하게 지키려는 연고며, 窂 우리 로(노),
本願(본원)=本志願(본지원), 대승의 보살들은 자신의 오도(悟道)는 뒤로 돌리고 우선 남을 구제한다는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의 사상과 실천을 이상으로 하였고, 이러한 중생구제의 염원과 깨달음을 찾아 불도에 들어올(발심 · 發心) 때부터 그 맹세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소원을 마음으로 맹세하는 것, 즉 서원을 일반적으로 본원(本願)이라고 하였다.예를 들어 아미타불의 사십팔원(四十八願)이나 약사불의 십이원(十二願) 등이 본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토교에서는, 아미타불이 법장보살이었을 때 중생제도를 기원하여 세운 사십팔원 중 특히 제18원을 본원 중의 본원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왕본원(王本願) 혹은 단순히 본원이라 하여 존중하였다.
제18원이란 아미타불이 "생명을 받은 일체의 것이 지심(至心)으로 신락(信樂: 信心歡喜)하고 나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겨우 십성(十聲)의 염불만을 외었다 할지라도 이를 구제하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한 서원(誓願)이다. 이 서원은 아미타불 편에서 보면 염불하는 자를 구하기를 맹세한 것이고, 중생편에서 보면 염불을 하면 정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신앙이다.
菩薩摩訶薩이 於阿僧祗劫에 積集善根으로 보살마하살은 아승지 겁 동안 선근을 모았으므로
自欲取證無上菩提인댄 如在掌中이나 스스로 증득하고자하는 위없는 보리가 수중에 있는 듯하지만 掌 손바닥 장,
然悉捨與 一切衆生하야 心無憂惱하며 亦無悔恨하고 其心廣大하야 等虛空界가
그러나 일체중생에게 모두 다 주되 마음에 걱정 근심이나 회한도 없어서 그 마음이 광대하기 허공계와 같으니
此是菩薩福德助道具니 이것이 보살의 복덕을 돕는 도구요,
起大智慧하야 證大法故라 큰 지혜를 일으켜 대법을 증득하려는 연고 라,
보살은 오랜 세월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으로 무상보리를 스스로 증득하였으나 그 모든 것을 중생들에게 다 나눠주어도 걱정도 없고 후회함도 없으며, 마음이 광대하기가 허공계와 같다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具足 如來無上廣大福德聚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약 모든 보살이 그 안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더없이 광대한 복덕 덩어리를 구족하느니라.
⑱ 菩薩의 十種智慧助道具 보살의 열가지 지혜를 돕는 도구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慧助道具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親近多聞眞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고 尊重禮拜하며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지혜조도구 하등 위십 소위친근다문 진선지식 공경공양 존중예배
種種隨順하야 不違其敎가 是爲一이니 一切正直하야 無虛矯故며 永離憍慢하고 常行謙敬하야 身語意業이
종종수순 불위기교 시위일 일체정직 무허교고 영리교만 상행겸경 신어의업
無有麤獷하며 柔和善順하야 不僞不曲이 是爲二니 其身이 堪作佛法器故며 念慧隨覺하야 未曾散亂하며 慚愧柔和하고
무유추광 유화선순 불위불곡 시위이 기신 감작불법기고 염헤수각 미증산란 참괴유화
心安不動하야 常憶六念하며 常行六敬하며 常隨順住六堅固法이 是爲三이니 與十種智로 爲方便故며 樂法樂義하야
심안부동 상억육념 상행유경 상수순주 육견고법 시위삼 여십종지 위방편고 락법락의
以法爲樂하며 常樂聽聞하야 無有厭足하며 捨離世論과 及世言說하고 專心聽受出世間語하며 遠離小乘하고
이법위락 상락청문 무유염족 사리세론 급세언설 전심청수 출세간어 원리소승
入大乘慧가 是爲四니 一心憶念하야 無散動故며 六波羅蜜을 心專荷負하며 四種梵住에 行已成熟하며 隨順明法하야
입대승혜 시위사 일심억념 무산동고 육바라밀 심전하부 사종범주 행이성숙 수순명법
悉善修行하며 聰敏智人에 皆勤請問하며 遠離惡趣하고 歸向善道하며 心常愛樂하야 正念觀察하며 調伏已情하고
실선수행 총민지인 개근청문 원리악취 귀향선법 심상애락 정념관찰 조복이정
守護他意가 是爲五니 堅固修行眞實行故며 常樂出離하야 不着三有하며 恒覺自心하야 曾無惡念하며 三覺已絶하고
수호타의 시위오 견고수행 진실행고 상락출리 불착삼유 항각자심 증무악념 삼각이절
三業皆善하야 決定了知心之自性이 是爲六이니 能令自他로 心淸淨故며 觀察五蘊이 皆如幻事하며 界如毒蛇하며
삼업개선 결정요지 심지자성 시위육 능력자타 심청정고 관찰오온 개여환사 계여독사
處如空聚하며 一切諸法이 如幻如焰하며 如水中月하며 如夢如影하며 如響如像하며 如空中畵하며 如旋火輪하며
처여공취 일체제법 여환여염 여수중월 여몽여영 여향여상 여공중화 여선화륜
如虹蜺色하며 如日月光하야 無相無形하며 非常非斷이며 不來不去며 亦無所住하야 如是觀察하야
여홍예색 여일월광 무상무형 비상비단 불래불거 역무소주 여시관찰
知一切法無生無滅이 是爲七이니 知一切法이 性空寂故며 菩薩摩訶薩이 聞一切法이 無我며 無衆生이며 無壽者며
지일체법무생무멸 시위칠 지일체법 성공적고 보살마하살 문일체법 무아 무중생 무수자
無補伽羅며 無心無境이며 無貪瞋癡며 無身無物이며 無主無待며 無着無行이라 如是一切가 皆無所有하야
무보가라 무심무경 무탐진치 무신무물 무주무대 무착무행 여시일체 개무소유
悉歸寂滅하고 聞已深信하야 不疑不謗이 是爲八이니 以能成就圓滿解故며 菩薩摩訶薩이 善調諸根하야 如理修行하야
실귀적멸 문이심신 불의불방 시위팔 이능성취 원만해고 보살마하살 선조제근 여리수행
恒住止觀하며 心意寂靜하야 一切動念이 皆悉不生하야 無我無人하며 無作無行하며 無計我想하며 無計我業하며
항주지관 심의적정 일체동념 개실불생 무아무인 무작무행 무계아상 무계아업
無有瘡疣하며 無有瘢痕하며 亦無於此所得之忍과 身語意業하야 無來無去하며 無有精進하며 亦無勇猛하며
무유창우 무유반흔 역무어차 소득지인 신어의업 무래무거 무유정진 역무용맹
觀一切衆生과 一切諸法에 心皆平等하야 而無所住하며 非此岸非彼岸이라 此彼性離하야 無所從來며 無所至去하야
관일체중생 일체제법 심개평등 이무소주 비차안비피안 차피성리 무소종애 무소지거
常以智慧로 如是思惟가 是爲九니 到分別相彼岸處故며 菩薩摩訶薩이 見緣起法故로 見法淸淨하며 見法淸淨故로
상이지혜 여시사유 시위구 도분별상 피안처고 보살마하살 견연기법고 견법청정 견법청정고
見國土淸淨하며 見國土淸淨故로 見虛空淸淨하며 見虛空淸淨故로 見法界淸淨하며 見法界淸淨故로 見智慧淸淨이
견국토청정 견국토청정고 견허공청정 견허공청정고 견법계청정 견법계청정고 견지혜청정
是爲十이니 修行積集一切智故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智慧助道具니
시위십 수행적집 일체지고 불자 시위보살마하살 십종지혜조도구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一切法無障礙淸淨微妙智慧聚니라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여래 일체법 무장애청정 미묘지혜취
질문 168 '何等이 爲智慧助道具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慧助道具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를 돕는 도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親近多聞 眞善知識하야 恭敬供養하고 尊重禮拜하며
이른바 많이들은 진정한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히 공양하고 존중하여 예배하며,
種種隨順하야 不違其敎가 是爲一이니 갖가지로 수순하여 그의 가르침을 거스르지 않으니, 이것이 하나요,
一切正直하야 無虛矯故며 일체가 정직하여 거짓이 없는 때문이며,矯 바로잡을 교,
지혜의 도를 돕는 도구란 지혜가 더욱 증장하게 돕는 것이다. 지혜를 증장시키려면 많이 들어 많이 아는 진정한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여 예배하며, 갖가지로 수순하여 그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무비 스님은 팔만대장경중에서 왜 화엄경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성인으로 원효(元曉)스님과 의상(義湘)스님이 평생 화엄경을 공부하셨고, 평생 화엄경을 가르치는데 마음을 기우렸기 때문에 그분들의 뒤를 무조건 따른다.”고 한다. 일체가 정직하고 거짓이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혜의 도를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永離憍慢하고 常行謙敬하야 교만을 영원히 여의고 늘 겸손히 공경하며 謙 겸손할 겸,
身語意業이 無有麤獷하며 몸과 말과 뜻의 업에 거칠거나 추악함이 없고 麤 거칠 추, 獷 사나울 광,
柔和善順하야 不僞不曲이 是爲二니 부드럽고 유순하며 거짓되거나 왜곡되지 않으니, 이것이 둘이요,僞 거짓 위,
其身이 堪作佛法器故며 그의 몸이 능히 불법의 그릇이 될 만한 연고이며, 堪 견딜 감,
念慧隨覺하야 未曾散亂하며 깨달음을 쫓은 생각하는 지혜=念慧는 일찍이 산란한 적이 없으며,
慚愧柔和하고 心安不動하야 常憶六念하며 常行六敬하며 慚 부끄러울 참, 부끄러워할 참, 愧 부끄러워할 괴,
부끄러움을 알고 온화하며 마음은 부동하고 안락하여항 상 육념을 기억하고 항상 육경을 행하며,
常隨順住 六堅固法이 是爲三이니 항상 여섯 견고한 법에 수순하여 머무니, 이것이 셋으로,
與十種智로 爲方便故며 열 가지 지혜로 방편을 삼는 때문이며,
여섯 가지 생각, 육념(六念)은 염불(念佛)과 염법(念法)과 염승(念僧)과 염계(念戒)와 염시(念施)와 염천(念天)이다.
여섯 가지 공경함, 六敬(육경)은 육화경(六和敬)으로서 계화동수(戒和同修), 견화동해(見和同解), 신화동주(身和同住), 이화동균(利和同均), 구화무쟁(口和無諍), 의화동열(意和同悅)’이다.
여섯 가지 견고한 법, 六堅固法은 청량(淸凉)스님의 소(疏)에서 “육견순위(六堅順位)는 본업경(本業經) 상권에서 십주, 십행, 십회향의 삼현(三賢)과 십성(十聖)과 등각과 묘각으로 여섯을 삼나니 이를테면 신견(信堅)과 법견(法堅)과 수견(修堅)과 덕견(德堅)과 항견(項堅)과 각견(覺堅)이다. 또한 이름이 육인(六忍)이니, 신(信)과 법(法)과 수(修)와 정(正)과 무구(無垢)와 일체지(一切智)이다. 다시 이름이 육혜(六慧)니 문(聞)과 사(思)와 수(修)와 무상(無相)과 조적(照寂)과 적조(寂照)이다. 또 이름이 육관(六觀)이니 주(住)와 행(行)과 향(向)과 지(地)와 무상(無相)과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다.”라고 하였다.
열 가지 지혜란 십종지(十種智)로서 부처님의 열 가지 지혜를 뜻한다. 삼세지(三世智)ㆍ불법지(佛法智)ㆍ법계무애지(法界無碍智)ㆍ법계무변지(法界無邊智)ㆍ충만일체무변지(充滿一切無邊智)ㆍ지일체중생지(知一切衆生智)ㆍ지일체법지(知一切法智)ㆍ지무변제불지(知無邊諸佛智)이다.
樂法樂義하야 以法爲樂하며 常樂聽聞하야 無有厭足하며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고, 법으로 낙(즐거움)을 삼으며, 항상 즐겨 듣기를 싫어함이 없으며,
捨離世論과 及世言說하고 專心聽受 出世間語하며 세간의 희론과 세간의 말들을 떠나 오로지 출세간의 말을 듣고
遠離小乘하고 入大乘慧가 是爲四니 소승을 멀리 떠나 대승의 지혜에 들어가니, 이것이 넷이요,
一心憶念하야 無散動故며 일심으로 생각하고 산란하지 않는 때문이며,
六波羅蜜을 心專荷負하며 육바라밀을 마음에 오롯이 짊어지고 專 오로지 전, 荷 멜 하, 負 질 부
四種梵住에 行已成熟하며 네 가지 범천에 머무는 행=凡住行이 이미 성숙하였으며,
隨順明法하야 悉善修行하며 밝은 법을 수순하여 잘 수행하고
聰敏智人에 皆勤請問하며 총명하고 지혜 있는 이에게 부지런히 물으며, 聰 귀밝을 총, 敏 재빠를 민, 민첩할 민,
遠離惡趣하고 歸向善道하며 악도를 멀리하고 선한 길을 향하며,
心常愛樂하야 正念觀察하며 마음은 항상 정념으로 관찰하기를 즐겨하며,
調伏已情하고 守護他意가 是爲五니 자기의 감정을 조복시켜 다른 이의 뜻을 수호하니,이것이 다섯이요,
堅固修行 眞實行故며 진실한 행을 견고히 수행하는 때문이며,
보살의 지혜를 돕는 도구로서는 지혜의 실천이기도 한 바라밀을 항상 마음에 지니는 것이다.
常樂出離하야 不着三有하며 항상 즐겨 출리하여 삼유(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三有=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서 제각기 생존하는 것, 欲有よ·色有·無色有의 총칭. 本有·当有·死有의 총칭. 生有 ·死有·中有의 총칭.
恒覺自心하야 曾無惡念하며 항상 자기 마음을 깨달아 일찍이 나쁜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며,
三覺已絶하고 三業皆善하야 세 가지 감각=三覺이 이미 끊어져 삼업이 모두 선하며,
三覺(삼각)= 세 가지 감각. 청량스님은 욕(欲)과 에(恚)와 해(害)라고 하였다. 三業이 모두 착하다는 것은 몸과 입과 뜻의 삼업이 모두 선량하다는 것을 말한다.
決定了知 心之自性이 是爲六이니 마음의 자성을 결정히(분명히) 아는 것이니, 이것이 여섯이요,
能令自他로 心淸淨故며 자타의 마음을 능히 청정히 하는 때문이며,
觀察 五蘊이 皆如幻事하며 오온(색 수 상 행 식)은 환술과 같고 界如毒蛇하며 십팔계는 독사과 같고
18계(十八界)= 6근→6경→6식. 안계(眼界) · 이계(耳界) · 비계(鼻界) · 설계(舌界) · 신계(身界) · 의계(意界)의 6근(六根) 또는 6소의(六所依)와 색계(色界) · 성계(聲界) · 향계(香界) · 미계(味界) · 촉계(觸界) · 법계(法界)의 6경(六境) 또는 6경계(六境界)와 안식계(眼識界) · 이식계(耳識界) · 비식계(鼻識界) · 설식계(舌識界) · 신식계(身識界) · 의식계(意識界)의 6식(六識) 또는 6능의(六能依)의 총 18가지 계(界)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
處如空聚하며 십이처는 텅빈 마을 같음을 관찰하며,
12처는 12입(十二入) 또는 12입처(十二入處)= 안처(眼處) · 이처(耳處) · 비처(鼻處) · 설처(舌處) · 신처(身處) · 의처(意處)의 6근(六根) · 6내처(六內處) 또는 6내입처(六內入處)와 색처(色處) · 성처(聲處) · 향처(香處) · 미처(味處) · 촉처(觸處) · 법처(法處)의 6경(六境) · 6외처(六外處) 또는 6외입처(六外入處)의 총 12가지 처(處)로 분류 또는 분석하는 법체계
一切諸法이 如幻如焰하며 모든 법이 허깨비 같고, 아지랑이 같고,焰 불꽃 염, 불 당길 염
如水中月하며 如夢 如影하며 물 속의 달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如響如像하며 如空中畵하며 메아리 같고, 영상 같으며, 허공의 그림 같고,
如旋火輪하며 돌아가는 불꽃 같고, 旋 돌 선, 輪 바퀴 륜, 如虹蜺色하며 무지개 빛 같고, 虹 무지개 홍, 蜺 무지개 예,
如日月光하야 無相無形하며 해와 달의 광명 같아서, 모양도 없고 형체도 없으며,
非常非斷이며 不來不去며 항상한 것도 끊어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며,
亦無所住하야 如是觀察하야 또한 머무름도 없는 것이라, 이와 같음을 관찰하고
知 一切法無生無滅이 是爲七이니 일체법이 생도 멸도 없음을 아나니,이것이 일곱이요,
知一切法이 性空寂故며 일체법의 성품이 공적함을 아는 때문이며,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와 십이처(十二處)가 일체 모든 법이며, 일체 모든 법은 또 오온, 십팔계, 십이처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의 삶의 영역 전부다. 이것을 떠나서는 일체생명의 삶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요술과 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속의 달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영상과 같고, 공중의 그림등과 같아서 고정불변하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菩薩摩訶薩이 聞一切法이 無我며 無衆生이며 無壽者며 無補伽羅며 壽 목숨 수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이 나=我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삶=壽者도 없고, 보특가라=윤회의 주체도 없으며,
보특가라(補特伽羅)는 부특가라(富特伽羅)ㆍ복가라(福伽羅)ㆍ보가라(補伽羅)ㆍ불가라(弗伽羅)ㆍ부특가야(富特伽耶)라고도 쓰며, 삭취취(數取趣)라 번역한다. 유정(有情) 또는 중생의 아(我)를 말한다. 중생은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자주 6취에 왕래하므로 삭취취라고 한다.
보특가라(補特伽羅)는 실체로서의 아(我) 또는 인(人)을 뜻하는 푸드갈라(산 pudgala, 팔 puggala, 영어 ego, soul, individual)의 다른 말. 다시 태어나 죽어가는 윤회의 주체 곧 外道의 十六知見 가운데 하나로 我의 별명이라 한다. 또 단순히 사람이란 뜻으로 쓰일 때도 있고, 불교에서는 無我를 말함으로 일반적으로 태어남과 죽음의 주체로서의 補特伽羅(勝義의 補特伽羅)가 實在하는 것을 인정치 않고 오직 편의상 사람을 거짓 補特伽羅(世俗의 補特伽羅)라고 부르는데 불과하다고 한다. 단 部派佛敎에서는 犢子部 · 正量部 · 經量部에서는 이것을 인정한다. *무아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보특가라무아(인무아)이고 다른 하나는 법무아이다.
無心無境이며 無貪瞋癡며 無身無物이며 無主無待며 無着無行이라
마음도 없고, 대상도 없고, 탐진치도 없고, 몸도 없고 물건도 없고, 주인도 없고 상대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며,
如是一切가 皆無所有하야 이러한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이 아니라
悉歸寂滅하고 聞已深信하야 不疑不謗이 是爲八이니
다 적멸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음에, 깊이 믿고 의심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니, 이것이 여덟이요,
以能成就 圓滿解故며 능히 원만한 이해를 성취하려는 때문이며,
菩薩摩訶薩이 善調諸根하야 如理修行하야 恒住止觀하며
보살마하살은 여러 감관=根을 잘 조복하여 이치대로 수행하고, 항상 그치고=止 살핌=觀에 머물러
보살이 항상 그치고[止] 살핌[觀]에 머문다는 것은 지관(止觀)수행법이다. 지관이란 지(止)는 범어로 śamatha, 관(觀)은 vipaśyanā이다. 정(定)과 혜(慧)를 닦는 두 가지 법이 불교의 중요한 수행방법으로서 지는 정지(停止)인데 마음을 고요히 거두어 망념을 쉬고,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며, 관은 관달(觀達)로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여 진여에 계합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일대(一對)의 법이어서, 두 법이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해탈의 중요한 길을 이루므로 지관이라 한다.
心意寂靜하야 一切動念이 皆悉不生하야 無我無人하며
마음과 뜻이 고요하여 일체의 흔들리는 마음이 다 생기지 아니하며, 나도 없고 남도 없고
無作無行하며 無計我想하며 無計我業하며 지을 것도 행할 것도 없으며, '나'라는 생각도 없고 '나'라는 업도 없으며,
無有瘡疣하며 無有瘢痕하며 상처도 없고, 상처의 흔적도 없으며,
瘡 부스럼 창, 疣 사마귀 우, 혹 우, 瘢 흉터 반, 痕 흉터 흔, 흔적 흔,
亦無於此 所得之忍과 그것을 알기 위해 참아야 할 것도 없으며 (또한 이것을 인식하는 알음알이도 없으며)
身語意業하야 無來無去하며 無有精進하며 亦無勇猛하며
몸과 말과 뜻의 업이 오거나 감도 없고, 정진도 없고, 용맹도 없으며,
觀 一切衆生과 一切諸法에 心皆平等하야 而無所住하며
일체중생과 일체법을 관찰함에 마음이 평등하여 머무는 데가 없으며,
非此岸 非彼岸이라 此彼性離하야 無所從來며 無所至去하야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어서 이것과 저것의 성품을 떠났으며, 좇아 온 곳도 없고 이르러 갈 곳도 없으며,
常以智慧로 如是思惟가 是爲九니 항상 지혜로 이와 같이 사유하니, 이것이 아홉이요,
到分別相 彼岸處故며 분별하는 모양=相의 피안의 언덕에 도달하는 때문이며,
지관수행을 통해서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다 사라져서 고요해진 것을 밝혔다. 지관수행법이 곧 보살행은 아니지만 보살의 지혜를 돕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菩薩摩訶薩이 見緣起法故로 見法淸淨하며 보살마하살은 연기하는 법을 보았으므로 법의 청정=텅빔을 보고,
見法淸淨故로 見國土淸淨하며 법의 청정함을 보았기에 국토의 청정=텅빔을 보며,
見國土淸淨故로 見虛空淸淨하며 국토의 청정함을 보기에 허공의 청정=텅빔을 보며,
見虛空淸淨故로 見法界淸淨하며 허공의 청정함을 보기에 법계의 청정=텅빔을 보며,
見法界淸淨故로 見智慧淸淨이 是爲十이니 법계의 청정함을 보기에 지혜의 청정=텅빔을 보니, 이것이 열이요,
修行積集一切智故라 행을 닦아 일체지를 수행하여 적집하는 연고이라.
여기서 청정이란 텅 비었음을 뜻한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智慧 助道具니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를 돕는 도구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一切法 無障礙 淸淨微妙 智慧聚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여래의 일체법에서 장애 없고 청정미묘한 지혜 덩어리를 얻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