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이세간품 5 (離世間品) 3
㉲ 菩薩의 十種道 보살의 열가지 도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道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道가 是菩薩道니 不捨獨一菩提心故요 二道가 是菩薩道니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도 하등 위십 소위일도 시보살도 불사독일보리심고 이도 시보살도
出生智慧와 及方便故요 三道가 是菩薩道니 行空無相無願하야 不着三界故요 四行이 是菩薩道니 懺除罪障하며
출생지혜 급방편고 삼도 시보살도 행공무상무원 불착삼계고 사행 시보살도 참제죄장
隨喜福德하며 恭敬尊重하야 勸請如來하며 善巧廻向하야 無休息故요 五根이 是菩薩道니 安住淨信하야 堅固不動하며
수희복덕 공경존중 권청여래 성교회향 무유식고 오근 시보랏도 안주정신 견고부동
起大精進하야 所作究竟하며 一向正念하야 無異攀緣하며 巧知三昧入出方便하며 善能分別智慧境界故요 六通이
기대정진 소작구경 일향정념 무이반연 교지삼매입출방편 선능불별지혜경계고 육통
是菩薩道니 所謂天眼으로 悉見一切世界所有衆色하야 知諸衆生의 死此生彼故며 天耳로 悉聞諸佛說法하야
시보살도 소위천안 실견일체세계소유중색 지제중생 사차생피고 천이 실문제불설법
受持憶念하고 廣爲衆生하야 隨根演暢故며 他心智로 能知他心하야 自在無礙故며 宿命念으로 憶知過去一切劫數하야
수지억념 광위중생 수근연창 타심지 능지타심 자재무애고 숙명념 억지과거일체겁수
增長善根故며 神足通으로 隨所應化一切衆生하야 種種爲現하야 令樂法故며 漏盡智로 現證實際하고 起菩薩行하야
증장선근고 신족통 수소응화일체중생 종종위현 영락법고 누지지 현증실제 기보살행
不斷絶故요 七念이 是菩薩道니 所謂念佛이니 於一毛孔에 見無量佛하야 開悟一切衆生心故며 念法이니
부단절고 칠념 시보살도 소위염불 어일모공 견무량불 개오일체중생심고 염법
不離一如來衆會하고 於一切如來衆會中에 親承妙法하고 隨諸衆生의 根性欲樂하야 而爲演說하야 令悟入故며
불이일여래중회 어일체여래중회중 친승묘법 수제중생 근성욕락 이위연설 영오입고
念僧이니 恒相續見하야 無有休息하야 於一切世間에 見菩薩故며 念捨니 了知一切菩薩捨行하야 增長廣大布施心故며
염승 항상속견 무유휴식 어일체세간 견보살고 염사 요지일체보살사행 증장광대보시심고
念戒니 不捨菩提心하고 以一切善根으로 廻向衆生故며 念天이니 常憶念兜率陀天宮의 一生補處菩薩故며 念衆生이니
염계 불사보리심 이일체선근 회향중생고 염천 상억념도솔타천궁 일생보처보살고 염중생
智慧方便으로 敎化調伏호대 普及一切하야 無間斷故요 隨順菩提八聖道가 是菩薩道니 所謂行正見道니
지혜방편 교화조복 보급일체 무간단고 수순보리팔성도 시보살도 소위행정견도
遠離一切諸邪見故며 起正思惟니 捨妄分別하고 心常隨順一切智故며 常行正語니 離語四過하고 順聖言故며
원리일체제사견고 기정사유 사망분별 심상수순일체지고 상행정어 이어사과 순성언고
恒修正業이니 敎化衆生하야 令調伏故며 安住正命이니 頭陀知足하며 威儀審正하며 隨順菩提하며 行四聖種하야
항수정업 교화중생 영조복고 안주정명 두타지족 위의심정 수순보리 행사성종
一切過失을 皆永離故며 起正精進이니 勤修一切菩薩苦行하야 入佛十力하야 無罣礙故며 心常正念이니
일체과실 개영리고 지정정진 슨수일체보살고행 입불십력 무괘(가)애고 심상정념
悉能憶持一切言音하야 除滅世間散動心故며 心常正定이니 善入菩薩不思議解脫門하야 於一三昧中에
실능억지일체언음 제멸세간산동심고 심상정정 선입보살불사의해탈문 어일삼매중
出生一切諸三昧故요 入九次第定이 是菩薩道니 所謂離欲恚害호대 而以一切語業으로 說法無礙하며 滅除覺觀호대
출생일체제삼매고 입구차제정 시보살도 소위이욕에해 이이일체어업 설법무애 멸제각관
而以一切智覺觀으로 敎化衆生하며 捨離喜愛호대 而見一切佛에 心大歡喜하며 離世間樂호대 而隨順出世菩薩道樂하며
이이일체지각관 교화중생 사리희애 이견일체불 심대환희 이세간락 이수순출세보살도락
從此不動하야 入無色定호대 而亦不捨欲色受生하며 雖住滅一切想受定이니 而亦不息菩薩行故요 學佛十力이
종차부동 입무색정 이역불사욕색수생 수주멸일체상수정 이역불식보살행고 학불십력
是菩薩道니 所謂善知是處非處智와 善知一切衆生의 去來現在業報因果智와 善知一切衆生의 上中下根不同하야
시보살도 소위선지시처비처지 선지일체중생 거래현재업보인과지 선지일체중생 상중하근부동
隨宜說法智와 善知一切衆生의 種種無量性智와 善知一切衆生의 軟中上解差別하야 令入法方便智와
수선설법지 선지일체중생 종종무량성지 선지일체중생 연중상해차별 영입법방편지
徧一切世間一切刹一切三世一切劫하야 普現如來形相威儀호대 而亦不捨菩薩所行智와 善知一切諸禪解脫과
편일체세간일체찰일체삼세일체겁 보현여래형상위의 이역불사보살소행지 선지일체제선해탈
及諸三昧의 若垢若淨과 時與非時하야 方便出生諸菩薩解脫門智와 知一切衆生의 於諸趣中死此生彼差別智와
급제삼매 약구약정 시여비시 방편출생제보살해탈문지 지일체중생 어제취중사차생피차별지
於一念中에 悉知三世一切劫數智와 善知一切衆生의 樂欲諸使惑習滅盡智로 而不捨離諸菩薩行이
어일념중 실지삼세일체겁수지 선지일체중생 낙욕제사혹습멸진지 이불사리제보살행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如來의 無上巧方便道니라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일체여래 무상교방편도
질문 126 '何等이 爲道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道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도가 있으니, 무엇이 그 열인가?
所謂 一道가 是菩薩道니 不捨獨一菩提心故요
이른바 한 길=一道가 보살의 도이니, 보리심 하나만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며,
二道가 是菩薩道니 出生智慧와 及方便故요
두 가지 도가 보살도이니, 지혜와 방편을 출생시키는 연고이며,
보살에게는 열 가지 도가 있다. 일도는 보살도며, 이도는 지혜와 방편이다. 기신론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을 빌려서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육지(六字) 등으로 법을 표현하였다. 먼저 보살은 보살도가 있어야하는데 그것은 보리심이다. 보리심은 곧 불심(佛心)이므로 부처님이 지닌 모든 마음이다. 보살도를 펼치는 데는 지혜와 방편을 활용하여 한다. 지혜와 방편이란 일체 보살도를 총체적으로 들어 보인 말이다.
기원 1세기를 전후해서 마명(Ashavaghosa, )보살이 썼다고 하는 ‘대승기신론’이 마음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분석을 하고 있어 그 내용을 보고 감탄한 서양 심리학자들도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여래장과 아뢰야식의 관계를 명료하게 밝혔으며, 수행의 요지를 논리적, 체계적으로 정리해 간명하게 설한 수행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신론’은 기본적으로 불성을 지닌 잠재적 부처가 마로 중생이며, 단지 중생의 마음에 번뇌가 쌓여 불성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불성을 드러내기 위한 실천적 수행을 강조하면서 대승의 믿음으로 향하는 이론체계를,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육자염불(六字念佛)회향’으로 요약했다
그리고 이 논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일심을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또한 일심이 가진 특성을 체, 상,용 삼대의 이론으로 전개해 궁극적으로 대승에의 믿음을 일으키게 하며, 나아가 실천적 행을 닦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davara, 門)은 학설, 분야, 가르침, 상태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법문’의 문도 가르침을 말한다.
일심이문(一心二門)이란 한 마음에 두 개의 문(분야, 가르침)이 있다는 뜻이며, 중생의 마음이 바로 대승이라 천명한 것이며, 이 대승의 근원이 진여라는 것이다. 중생의 본래 마음이 진여이며, 또한 일체만법이 진여에 의해서 전개된다는 진여연기설(如來藏緣起說)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은 진리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다. 기신론은 그 마음의 문에는 모든 괴로움을 여읜 해탈로 가는 진여문(眞如門)과 중생세계로 가는 생멸문(生滅門)이 있다고 했다. 진여문은 심진여무(心生滅門), 생멸문은 심생멸문(心生滅門)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는 두 가지 사상계통이 있는데 하나는 중관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유식사상()이다. 중관과 유식의 두 철학체계는 그 본질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교리 상에 여러 가지 대립적 차별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신론’은 이 두 철학체계를 진여뭄(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 2문이 갖는 교리 상의 대립적 차별현상 속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원효 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잘 밝혀 놓았다.
우리 마음은 본래 하나의 마음, 일심이지만 ‘기신론’에서는 일심을 2 개의 문으로 구분해서, 대승이라는 것은 일심(一心)이고, 그 일심에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 있어서 두 문이 서로 여의지 않아 각각 일체법을 포함한다고 한 것이 유명한 ‘대승기신론’의 핵심 내용인 일심이문(一心二門)이다 - amisan511
불교는 모든 존재의 본질을 본성(本性)이라는 마음으로, 이 한마음을 일심(一心)이라 하며, 이 한마음(一心)에는 두 개의 문(二門)이 있어서 하나는 진여문(眞如門)이고 다른 하나는 생멸문(生滅門)이며, 진여문(眞如門)이란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창조된 것도 아니고, 파괴되지도 않은 마음을 말한다.
'기신론'의 주안점은 진여문이 아니라 생멸문의 설명에 주력해서, 왜 생멸문이 벌어지느냐는 것과 어떻게 생멸에서 진여로 되돌아가느냐를 설명한다. '기신론'의 주된 내용을 숫자로 표시하여 정리해서,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육자염불(六字念佛)회향이다.
진여(眞如)에서 ‘진(眞)’은 헛되지 않아 진실한 것이고, ‘여(如)’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여(眞如)란 진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삼대(三大)란 한마음(일심, 一心)에 있는 체(体)와 상(相)과 용(用), 세 가지를 말하며, 체(体)란 본체, 즉 근본을 말하고, 상(相)은 그 모양을 말하며, 용(用)은 쓰임새를 말하는 것이다.
사신(四信)= 네 가지 믿음이란, 자신에게 진여가 있음을 믿고, 깨달음이 있는 불(佛)을 믿고, 깨달음의 법(法)을 믿으며, 함께 배우고 실천하려는 사람들 승(僧)이 있음을 믿는 것이 사신(四信)으로 이 4가지 믿음에 의해서 우리가 수행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오행(五行)이란 육바라밀을 뜻하는, 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육바라밀 중에서 선정과 지혜를 지관(止觀)으로 묶어서 다섯 가지로 줄인 것이다. 이것이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선정과 지혜를 겸한 수행이어야만 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六字念佛(육자염불)회향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이며,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염불의 예를 든 것이면서 참선이나 다른 수행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염불은 믿음이 돈독하지 못한 수행자에게 믿음의 강화를 통해서 오행을 닦게 할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존하여 누구나 대승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공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은 자력과 타력을 결합한 믿음의 실천인 것이다. 그리하여 삼신(三身)의 가피력에 의해서 믿음이 확고해져서 자기의 본래심인 진여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불교는 마음에 바탕을 두고 가르치는 것이다. - 묘광월과 도봉별곡
三道가 是菩薩道니 行空無相無願하야 不着三界故요 세 가지 도가 보살도이니, 공하고, 모양이 없는=無相과 원이 없는=無願을 행하여 삼계에 집착하지 않는 연고이며,
보살도의 세 가지, 공과 무상과 무원이 있어야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약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세상에 집착하여 보살행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한다.
四行이 是菩薩道니 懺除罪障하며 隨喜福德하며 懺 뉘우칠 참, 懺除참제=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마음의 때를 없앰
네 가지 행이 보살의 도이니, 죄업장을 참회하여 없애고, 복덕을 따라 기뻐하며,
恭敬尊重하야 勸請如來하며 善巧廻向하야 無休息故요 여래를 공경 존중하여 권청하는 선교한 회향을 쉬지 않는 연고며,
勸請권청= 권하고 청함, 勸 권할 권, 請 청할 청,
보살도의 네 가지 행은 자신의 죄업과 다른 사람의 죄업까지 참회하여 없애고, 다른 사람의 복덕을 따라서 기뻐하고,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공경하며 존중하고, 일체 여래에게 법을 설하시기를 권청하여 그와 같은 모든 선근을 잘 회향하여 쉬지 않는 것이다.
五根이 是菩薩道니 安住淨信하야 堅固不動하며
다섯가지 근본=오근이 보살도이니, 청정한 믿음=淨信에 안주하여 견고하여 요동하지 않으며,
起大精進하야 所作究竟하며 큰 정진=大精進을 일으켜 짓는 일이 끝까지= 究竟에 이르며,
一向正念하야 無異攀緣하며 한결 같은 정념으로 다른 반연이 없으며, 攀 달라 붙을 반, 緣 연줄 연, 인연 연
攀緣반연= 1세력 있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거나 연줄로 삼음 2 어떤 사물이나 객관의 사물을 끌어 잡고 의지함
巧知三昧 入出方便하며 善能分別 智慧境界故요
삼매에 들고 나는 방편을 교묘하게 잘 알고, 지혜의 경계를 능히 잘 분별하는 연고이며,
보살도에는 다섯 가지 근본이 있다. 청정한 믿음에 안주하고, 큰 정진을 일으키고, 한결 같이 바르게 생각하고, 삼매에 들고 나는 방편을 잘 알며, 지혜의 경계를 능히 잘 분별하는 것이다.
六通이 是菩薩道니 所謂 天眼으로 悉見 一切世界 所有衆色하야
여섯 가지 신통=六通이 보살도라, 소위 천안통이니, 일체세계의 모든 사물=色을 다 보아서,
知諸衆生의 死此生彼故며 모든 중생들이 여기서 죽어 저기 태어남을 아는 연고이며,
天耳로 悉聞 諸佛說法하야 受持憶念하고 천이통이니, 부처님들의 설법을 다 듣고 수지하고 억념하여
廣爲衆生하야 隨根 演暢故며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널리 연설하는 연고이며, 演 흐를 연, 펼 연, 暢 펼 창, 화창할 창,
他心智로 能知他心하야 自在無礙故며
타인의 마음을 아는=他心통이니, 다른 이의 마음을 능히 알아 자재하고 걸림 없는 연고이며,
宿命念으로 憶知 過去一切劫數하야 增長善根故며
전생의 일을 아는= 宿命통이니, 과거의 모든 겁을 기억하고 알아서 선근을 증장시키는 연고이며,
神足通으로 隨所應化一切衆生하야 種種爲現하야 令樂法故며
뜻대로 가는= 神足通이니, 교화할만한 일체중생에게 갖가지로 나타나서 법을 좋아하게 하는 연고이며,
漏盡智로 現證實際하고 起菩薩行하야 不斷絶故요
번뇌가 다한 지혜= 漏盡智통이니, 실제를 증득하고 보살의 행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연고이며,
또한 육신통이 보살의 도이다. 보살이 보살도를 행함에 육신통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육신통(六神通, Pali:chalabhinna)은 불교에서 부처·보살 등이 가지고 있다는 6종의 초인적인 능력. 6종의 신통력(神通力). 6통라고도 불려 지관(명상) 수행에서 지행(사마타, 선나·젠죠우, 4선)에 의한 삼매의 다음에, 관행(위파사나)으로 이행했을 때에 얻을 수 있는 자재인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신족통(神足通, Pali:iddhi-vidha-nana) - 기에 따라 자재로 몸을 나타내, 생각하는 대로 산해를 비행할 수 있는 통력.
천이통(天耳通, Pali:dibba-sota-nana) - 보통 들리지 않는 먼 소리를 듣는 초인적인 귀.
타심통(他心通, Pali:ceto-pariya-nana) - 타인의 마음을 아는 힘.
숙명통(宿命通, Pali:pubbe-nivasanussati-nana) - 자신의 과거세(전생)를 아는 힘.
천안통(天眼通, Pali:dibba-cakkhu-nana) -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통력.
누진통(漏盡通, Pali: asavakkhaya-nana) - 자신의 번뇌가 다하고, 이승에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없어졌다고 아는 힘.
七念이 是菩薩道니 일곱 가지 생각함=칠념이 보살도이니,
所謂念佛이니 於一毛孔에 見無量佛하야 開悟一切衆生心故며
이른바 부처님을 생각함=염불이니, 한 모공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일체중생의 마음을 깨우치는 연고이며,
念法이니 不離一如來衆會하고 於一切如來衆會中에 親承妙法하고
법을 생각함=念法이니, 한 여래의 회중을 떠나지 않고서 모든 여래의 회중에서 미묘한 법을 친히 받들고
隨諸衆生의 根性欲樂하야 而爲演說하야 令悟入故며
모든 중생들의 근성과 욕락에 따라 연설하여 깨달음에 들게 하는 연고이며,
念僧이니 恒相續見하야 無有休息하야 於一切世間에 見菩薩故며 續 이을 속
스님들을 생각함=念僧이니, 항상 계속하여 만나기를 쉬지 않아서 일체세간에서 보살을 보는 연고이며,
念捨니 了知一切菩薩捨行하야 增長廣大 布施心故며
버림을 생각함=念捨이니, 모든 보살의 버리는 행을 알고 광대하게 보시하는 마음을 증장시키는 연고이며,
念戒니 不捨菩提心하고 以一切善根으로 廻向衆生故며
계율을 생각함=念戒이니,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모든 선근으로 중생들에게 회향하는 연고이며,
念天이니 常憶念 兜率陀天宮의 一生補處 菩薩故며
하늘을 생각함=念天이니, 항상 도솔타천궁의 일생보처 보살을 기억하는 연고이며,
一生補處 菩薩(일생보처 보살)=이번 일생만 마치면 부처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보살의 가장 높은 지위로 범부가 되지 않는다. 한 번만 태어나면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라는 뜻으로 현재는 도솔천에 머물며 미래세에는 사바세계에 내려와 성불한 후 많은 중생을 제도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다. 아직 사바세계에 내려오지 않았기에 미륵보살이라 하고 또한 장차 성불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미륵불(彌勒佛)이라고 한다.
念衆生이니 智慧方便으로 敎化調伏호대 普及一切하야 無間斷故요
중생을 생각함=念衆生이니, 지혜와 방편으로 교화 조복시킴이 모든 이에게 널리 미치어 끊어지지 않는 연고이며,
일곱 가지 생각하는 보살의 도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문을 생각하고, 승가(僧伽)를 생각하고, 버리듯이 하는 보시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중생을 생각하는, 일곱 가지를 잊어버린다면 보살의 길이 아니다.
七念(칠념)=① 念佛, ② 念法, ③ 念僧, ④ 念捨, ⑤ 念戒, ⑥ 念天, ⑦ 念衆生
隨順 菩提八聖道가 是菩薩道니 보리의 여덟 가지 성인의 길=八聖道에 따르는 것이 보살도이라
팔정도(八正道)가 보살의 길이다. 정견이 아닌 삿된 소견이란 일체 존재의 연기성(緣起性)과 중도성(中道性)의 이치를 등진 치우치고 고집부리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所謂 行 正見道니 遠離 一切諸邪見故며
소위 바른 소견=正見의 도를 행하는 것이니, 모든 잘못된 소견=邪見을 멀리하는 때문이며,
마음이 항상 지혜로써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집착과 고집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면 바른 사유가 아니다.
起正思惟니 捨 妄分別하고 心常隨順 一切智故며
바른 생각= 正思惟를 일으키는 것이니, 망령된 분별을 버리고 마음이 항상 일체지에 수순하는 때문이며,
마음이 항상 지혜로써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집착과 고집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면 바른 사유가 아니다.
常行正語니 離語四過하고 順聖言故며
항상 바른 말=正語를 행하는 것이니, 말의 네 가지 허물을 여의고 성인의 말을 따르는 것이며,
말의 네 가지 허물이란 망어(妄語)와 기어(綺語)와 양설(兩舌)과 악구(惡口)다. 이와 같은 네 가지 허물을 여의고 바른 말과 정직한 말과 똑 같은 말과 부드러운 말만 해야 한다.
恒修正業이니 敎化衆生하야 令調伏故며
항상 바른 업=正業을 닦는 것이니,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케 하는 것이며,
바르지 못한 업을 닦으면 중생들에게 떳떳하지 못하여 중생들이 따르지 아니함으로 교화할 수 없으며 조복할 수 없다.
安住正命이니 頭陀知足하며 威儀審正하며
바른 생활에 머묾=正命에 안주하는 것이니, 두타행으로 만족함을 알고 위의를 바르게 살펴
隨順菩提하며 行四聖種하야 一切過失을 皆永離故며
보리에 따라 네가지 성인이 되는 일=四聖諦를 행하여 일체의 허물을 영원히 여의는 것이며,
두타행(頭陀行)이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진정한 무소유의 행으로 살면서 깨달음의 길만을 따르는 모습이다. 또 네 가지 성인 되는 씨앗[四聖種]이란 부처님은 여러 성자들을 태어나게 하는 네 가지 씨앗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 가지 씨앗이란 자신이 얻은 옷과 음식과 방석이나 이부자리에 만족하여 더 욕심내지 않고, 어리석음을 끊어버리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씨앗을 행하여 생활에 있어서 일체 과실을 모두 영원히 끊어버리고 생명을 유지해 가는 생활을 말한다.
두타행(頭陀行)=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 범어(산스크리스트어)로 ‘dhūta(두따)’를 음역한 것으로 ‘버리다, 떨어버리다, 씻다, 닦다’ 등의 뜻.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12두타행·13두타행·16두타행·25두타행 등이 있으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12두타행으로서 다음과 같다.
① 속세와 떨어진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것(在阿蘭若處), ② 왕이나 신도들의 공양을 따로 받지 않고서 항상 걸식만 하는 것(常行乞食), ③ 하루에 일곱 집만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찾아가 걸식을 하며, 만일 음식을 얻지 못했을 경우에는 굶는 것(次第乞食), ④ 하루에 한자리에서 한번만 식사하는 것(受一食法), ⑤ 바루에 담긴 음식만으로 배고픔을 면할 정도만 먹는 것(節量食), ⑥ 정오가 지나면 음료 등도 마시지 않는 것(中後不得飮漿), ⑦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분소의(糞掃衣)만 걸치는 것(着弊衲衣), ⑧ 삼의(三衣)만 입는 것(但三衣), ⑨ 무덤에서 머무는 것(塚間住), ⑩ 나무 밑에서만 쉬는 것(樹下止), ⑪ 노천에서만 앉는 것(露地座), ⑫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但座不臥)이다.
이러한 수행은 그 목적이 세속의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지, 억지로 육신을 괴롭혀서 천상에 태어나거나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도의 전통적인 고행과는 다른 것이다.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두타행을 가장 잘 닦았기 때문에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고 한다.
起正精進이니 勤修一切 菩薩苦行하야 入佛十力하야 無罣礙故며 바른 노력=正精進을 일으키는 것이니, 모든 보살의 고행을 힘써 닦아 부처님의 십력에 거침없이 들어감에 장애가 없는는 것이며, 罣 걸 괘, 礙 거리낄 애,
心常正念이니 悉能憶持 一切言音하야 除滅世間 散動心故며
마음이 항상 바르게 기억함=正念이니, 온갖 말과 음성을 기억하여, 세간의 산란한 마음을 없애는 연고며,
세간의 산란한 마음을 없애고 항상 올바른 기억과 올바른 생각만 하려면 부처님의 바르고 높은 가르침을 늘 기억해서 반복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마음에 틈이 생겨서 오온의 욕심이 침범하게 된다.
心常正定이니 善入菩薩 不思議解脫門하야 마음이 항상 바르게 안정함=正定이니, 보살의 부사의한 해탈문에 잘 들어가
於一三昧中에 出生 一切諸三昧故요 한 삼매 가운데 모든 삼매를 출생하는 연고며,
八正道(팔정도)= Atthangika-magga, Eightfold Path, 八支聖道(팔지성도), 인도 베나레스(또는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에서 석가모니가 최초의 설법에서 가르친 교리. 사성제의 4번째 진리에 해당하며, 사성제와 함께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총괄한다. 유물론자들의 감각적 쾌락과 고행주의자들의 고행이라는 양 극단을 떠난 길을 제시하므로 중도라고도 한다. 이 팔정도의 고귀한 길을 따르는 사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분인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궁극적으로는 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불교의 몇몇 교설에서는 팔정도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열반의 체험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① 正道(정견), 正見道(정도견) ② 正思惟(정사유) ③ 正語(정어) ④ 正業(정업) ⑤ 正命(정명) ⑥ 正精進(정정진)
⑦ 正念(정념) ⑧ 正定(정정)
入九次第定이 是菩薩道니 아홉 단계의 차례로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보살도이라
구차제정은 초기불교의 수행점차다. 보살이 보살도를 완성하려면 초기불교 수행을 완벽하게 끝내어야 초기불교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승보살불교에서의 구차제정에 대한 설명은 초기불교에서의 설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욕심과 성내어 헤치는 일을 여의는 것은 색계 제1선정에 해당한다.
九次第定(구차제정)=각 수행 단계에 따른 아홉 가지 선정의 종류. 사선정(四禪定)과 사무색정(四無色定), 멸진정(滅盡定)을 합한 아홉 단계의 선정을 말하며 진리를 인식하는 단계적 성찰을 의미한다.
所謂 離欲恚害호대 而以一切語業으로 說法無礙하며
이른바 욕심과 성냄과 해침을 여의고, 모든 말로써 걸림 없이 법을 설하며,
滅除覺觀호대 而以一切智覺觀으로 敎化衆生하며
대충 생각함과 세밀하게 생각함=覺觀을 없애고 일체 지혜의 각관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색계 지2선정에 해당하며, 각관(覺觀)이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추사(麤思)를 각(覺)이라 하고, 분석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는 세사(細思)를 관(觀)이라 한다. 그래서 대충 생각하고 세밀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번역하였다. 일체 지혜의 각관이라 하면 모든 존재의 차별성과 무차별성을 다 아는 지혜이다.
覺觀(각관)= 覺은 사물을 추리하는 마음의 작용이고, 觀은 미세한 작용이란 뜻이다. 이 두 가지가 다 禪定에 방해가 된다.
각(覺)= 범어 buddha의 번역으로 佛陀(불타)라 음역.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일을 훤히 알게 됐다는 의미로부터 涅槃(열반)을 깨달음의 뜻으로 사용하며, 菩提(涅槃을 깨달은 지혜), 혹은 佛(覺者, 깨달은 이)의 譯語다. 단, 舊譯에서는 菩提를 道, 佛을 覺이라고 하고, 新譯에서는 菩提를 覺, 佛을 覺者라고 하여 法과 人을 구별한다. 또 일체의 사물을 感知한다는 뜻으로부터 널리 대강 관찰하고 추측하는(推度) 정신작용을 舊譯에서는 覺이라 하며, 新譯에서는 尋(범어 vitarka)이라고 한다.
관(觀)=범어 vipasyana의 번역. 毘鉢舍那, 毘婆舍那, 毘波奢那로 음역하며, 觀察이라고도 한다. 또, 智慧로 객관의 對境을 照見한다는 뜻인데, 觀念과 同義로 쓰일 때도 있다.
① 九想觀이나 日想觀처럼 종종의 想을 마음에 떠올려서 觀하는 初步的인 觀을 觀想이라 한다. 天台宗에서 말하는 觀은 一念三千 一心三觀처럼 자기의 心의 本性을 觀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觀心이라고 한다. 觀은 悟境에 통하는 道이므로 法相宗 · 華嚴宗에서는 이것을 觀道라고 한다. 觀의 對境을 觀境, 觀하는 智慧를 觀智, 觀하는 방법을 觀門 · 觀法이라 한다. 또 觀은 止(범어 samatha. 奢摩他 心을 하나의 對境에 집중시켜 생각을 쉬게 하는 것)에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中道觀 등의 觀은 止와 觀이 잘 조화된 상태(止觀均行)를 나타내는 捨(범어 upeksa)의 의미와 附合한다. 또 觀에는 禪定(범어 dhyana)의 의미도 있으므로 禪定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出觀 · 出定이라고 한다.
捨離喜愛호대 而見一切佛에 心大歡喜하며 기쁨과 사랑을 떠났으나, 모든 부처님을 뵙고 크게 기뻐하며,
색계 지3선정에 해당한다. 기쁨과 사랑을 버렸다면 어떤 기쁨도 없어야 하는 것이 초기불교에서의 선정이다. 그러나 보살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큰 기쁨을 내어야 하는 것이 보살의 선정이다.
離世間樂호대 而隨順 出世菩薩道樂하며 세간의 낙을 떠났으나, 출세간의 보살도의 낙을 따르며,
색계 제4선정에 해당한다. 초기불교수행에서는 어떤 즐거움도 다 떠나야 한다. 그러나 보살의 선정에서는 출세간 보살도의 즐거움을 수순하여 마음껏 누린다.
從此不動하야 入無色定호대 而亦不捨 欲色受生하며 이로부터 흔들리지 않고 무형세계의 선정= 無色界定에 들었으나 또한 욕계와 새계(형상세계)에 태어남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니,
무색정(無色定)과 같은 뜻이다. 보살은 물질을 초월한 선정에 들었으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욕심세계와 형상세계에 태어남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선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무색계(無色界) : 無色天 · 無色行天이라고도 한다. 欲界 · 色界와 합하여 三界의 하나. 곧 물질을 초월한 세계로 물질적 비중이 큰 것(色想)을 厭離하여 四無色定을 닦은 이가 死後에 태어나는 天界. 또 그와 같은 有情의 생존을 말한다. 물질이 없으므로 場處(空間)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간적인 高下의 차별은 없지만 果報의 勝劣에 따라 4계급으로 나눈다. 곧 닦은 四無色定에 따라 이것을 空無邊處 · 識無邊處 · 無所有處 · 非想非非想處의 四無色界로 나누고 三界를 九地로 나눌 때는 후반의 넷을 四地라 한다. 그러므로「空無邊處地」라 하여「地」자를 덧붙여서 부르기도 하고, 또 天界에 속하므로「空無邊處天」이라 하여「天」자를 첨가하여 부르기도 하며, 그 가운데 非想非非想處天은 世界(有情의 生存)의 最高位라 하여 有頂 · 有頂天이라고도 한다. 無色界의 有情들은 男根은 없으나 모두 남자이며 그 壽命은 차례로 2 · 4 · 6 · 8萬 劫을 산다고 한다. 또 分別論者는 無色界에도 細色이 있다고 주장한다.
雖住 滅一切想受定이니 而亦不息 菩薩行故요
비록 모든 생각과 느낌을 멸한 선정에 머물고도 보살행을 쉬지 않는 것이며
멸진정(滅盡定)과 같은 뜻이다. 물질을 초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체 생각과 느낌마저 사라져 소멸하여 버린 선정이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구차제정(九次第定)이란 또는 무간선(無間禪) 연선(鍊禪)이라 하는데 차례로 이어서 닦는 9종의 선정이라는 뜻이다. 초선차제정(初禪次第定)ㆍ2선차제정ㆍ3선차제정ㆍ4선차제정ㆍ공처차제정(空處次第定)ㆍ식처차제정(識處次第定)ㆍ무소유처차제정(無所有處次第定)ㆍ비상비비상처차제정(非想非非想處次第定)ㆍ멸수상차제정(滅受想次第定)이다. 이는 초선(初禪)에서 일어나 차례로 제2선(禪)에 들어가고하여 차례차례로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수행방법이다.
차제정(次第定)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순차적인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수행의 단계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건너뛸 수도 있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구차제정의 경우는 그러한 언급은 없다. 이 점이 단번에 여래의 지위에 뛰어 오름[一超直入如來地]을 강조하는 후기 선불교와는 많이 다른 점이다.
學佛十力이 是菩薩道니 부처의 십력을 배우는 것이 보살의 도이니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지혜의 힘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이 열 가지 힘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을 십력존(十力尊)이라고 하였다.
所謂 善知 是處非處智와 소위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잘 아는 지혜와
善知一切衆生의 去來現在 業報因果智와
일체중생의 과거, 미래, 현재 업과 과보의 원인과 결과를 잘 아는 지혜와
善知一切衆生의 上中下根 不同하야 隨宜說 法智와
일체중생의 근기가 상, 중, 하로 같지 않음을 잘 알고 마땅하게 법을 설하는 지혜와
善知一切衆生의 種種無量性智와 일체중생의 갖가지로 한량없는 성품을 잘 아는 지혜와
善知一切衆生의 軟中上解差別하야 令入法方便智와
일체중생의 이해가 상, 중, 하로 차별함을 잘 알아서 법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의 지혜와
徧一切世間 一切刹 一切三世 一切劫하야 일체 세간과 일체세계와 일체삼세와 일체 겁에 두루하여
普現 如來形相 威儀호대 而亦不捨 菩薩所行智와
여래의 형상과 위의를 널리 나타내되, 보살의 행할 바를 버리지 않는 지혜와
善知 一切諸禪解脫과 及諸三昧의 若垢若淨과 時與非時하야
일체의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의 더럽고 깨끗하고, 때와 때 아님을 잘 알아서
方便出生 諸菩薩解脫門智와 방편으로 보살의 해탈문을 출생시키는 지혜와
知一切衆生의 於諸趣中死此生彼差別智와
일체중생이 모든 갈래 중에서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나는 차별을 아는 지혜와
於一念中에 悉知 三世一切劫數智와 한 순간에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 겁의 수를 다 아는 지혜와
善知一切衆生의 樂欲 諸使惑習 滅盡智로
일체중생의 좋아하는 욕망과 모든 번뇌=使와 의혹과 습기의 소멸을 잘 아는 지혜로
而不捨離 諸菩薩行이 是爲十이니 모든 보살의 행을 버리지 않음이라. 이것이 열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如來의 無上巧方便道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여래의 위없는 선교한 방편의 도를 얻느니라.
여래의 열 가지 힘, 즉 십력(十力)을 배우는 것이 보살의 도임을 밝혔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로 도대체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라고 할 때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설명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열 가지 지혜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