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38 이세간품 4 (離世間品) 4

Skunky 2022. 6. 1. 10:28

 等法界無量廻向 등법계무량회향을 답하다 

稱卷第二十三 中, 二十五, 十廻向品의 十廻向名에서 '十者 入法界無量廻向'

菩薩의 十種無畏  보살의 열가지 무외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畏하니 何等이 爲十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悉能聞持一切言說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무외        하등   위십    불자    보살마하살    실능문지일체언설       작여시념 

設有衆生이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百千大法으로 而問於我라도 我於彼問에 不見微少難可答相이니 

설유중생    무량무변       종시방래      이백천대법      이문어아        아어피문   불견미소난가답상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隨其所問하야 悉能酬對호대 斷其疑惑하야 無有怯弱이 

이불견고    십득무외       구경도피대무외안      수기소문       실능주대       단기의혹      무유겁약

是爲菩薩第一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得如來灌頂無礙辯才하야 到於一切文字言音으로 開示秘密究竟彼岸하야 

시위보살제일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득여래관정무애변재      도어일체문자언음       개시비밀구경피안

作如是念호대 設有衆生이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無量法으로 而問於我라도 我於彼問에 

작여시념      설유중생    무량무변       종시방래       이무량법       이문어아      아어피문

不見微少難可答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야 隨其所問하야 悉能酬對호대 斷其疑惑하야 

불견미소난가답상       이불견고    심득무외      구경도피대무외안       수기소문       실능주대      단기의혹

無有恐懼가 是爲菩薩第二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知一切法空하야 離我離我所하며 無作無作者하며 無知者하며 

무유공구    시위보살제이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지일체법공       이아이아소       무작무작자      무지자

無命者하며 無養育者하며 無補伽羅하며 離蘊界處하야 永出諸見하야 心如虛空하야 作如是念호대 不見衆生이 

무명자      무양육자        무보가라      이온계처       영출제견      심여허공       작여시념       불견중생

有微少相도 能損惱我身語意業이니 何以故오 菩薩이 遠離我我所故로 不見諸法에 有少性相이니 以不見故로 

유미소상    능손뇌아신어의업      하이고    보살    원리아아소고     불견제법   유소성상       이불견고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堅固勇猛하야 不可沮壞가 是爲菩薩第三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심득무외       구경도피대무외안      견고용맹        불가저괴   시위보살제삼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佛力所護와 佛力所持로 住佛威儀하야 所行眞實하야 無有變易하야 作如是念호대 我不見有少分威儀도 令諸衆生으로 

불력소호    불력소지    주불위의      소행진실       무유변이       작여시념       아불견유소분위의   영제중생

生訶責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於大衆中에 安隱說法이 是爲菩薩第四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생가책상       이불견고    심득무외      어대중중    안은설법    시위보살제사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身語意業이 皆悉淸淨하야 鮮白柔和하야 遠離衆惡하고 作如是念호대 我不自見身語意業이 而有少分도 可訶責相이니 

신어의업    개실청정       선백유화      원리중악       작여시념       아불자견신어의업    이유소분    가가책상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能令衆生으로 住於佛法이 是爲菩薩第五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金剛力士와 

이불견고    심득무외       능령중생      주어불법    시위보살제오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금강역사

天龍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帝釋梵王과 四天王等이 常隨侍衛하며 一切如來가 護念不捨라 菩薩摩訶薩이 

천용야차    건달바   아수라     제석범왕   사천왕등     상수시위     일체여래     호념불사    보살마하살

作如是念호대 我不見有衆魔外道와 有見衆生이 能來障我行菩薩道를 少分之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작여시념       아불견유중마외도    유견중생   능래장아행보살도    소분지상       이불견고    심득무외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發歡喜心하야 行菩薩行이 是爲菩薩第六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已得成就第一念根하야 

구경도피대무외안       발환희심      행보살행    시위보살제육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이득성취제일념근

心無忘失하야 佛所悅可라 作如是念호대 如來所說成菩提道文字句法을 我不於中에 見有少分忘失之相이니 以不見故로 

심무망실       불소열가   작여시념       여래소설성보리도문자구법    아불어중    견유소분망실지상      이불견고

心得無畏하야 受持一切如來正法하야 行菩薩行이 是爲菩薩第七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智慧方便을 

심득무외      수지일체여래정법       행보살행    시위보살제칠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지혜방편

悉已通達하며 菩薩諸力이 皆得究竟하야 常勤敎化一切衆生하야 恒以願心으로 繫佛菩提하야 而爲悲愍衆生故며 

실이통달       보살제력    개득구경      상근교화일체중생       항이원심       결불보리      이위비민중생고

成就衆生故로 於煩惱濁世에 示現受生호대 種族尊貴하며 眷屬圓滿하며 所欲從心하며 歡娛快樂하야 而作是念호대 

성취중생고    어번뇌탁세    시현수생      종족존귀       권속원만       소욕종심       환오쾌락      이작시념

我雖與此眷屬聚會나 不見少相도 而可貪着하야 廢我修行禪定解脫과 及諸三昧와 總持辯才의 菩薩道法이니 何以故오 

아수여차권속취회    불견소상    이가탐착       폐아수행선정해탈   급제삼매    총지변재    보살도법       하이고

菩薩摩訶薩이 於一切法에 已得自在하야 到於彼岸하고 修菩薩行호대 誓不斷絶하야 不見世間에 有一境界도 

보살마하살    어일체법    이득자재      도어피안       수보살행       서부단절       불견세간    유일경계

而能惑亂菩薩道者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以大願力으로 於一切世界에 示現受生이 

이능혹란보살도자    이불견고    심득무외      구경도피대무외안       이대원력      어일체세계    시현수생

是爲菩薩第八無畏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恒不忘失薩婆若心하고 乘於大乘하야 行菩薩行하야 以一切智大心勢力으로 

시위보살제팔무외    불자    보살마하살    항불망실살바야심      승어대승       행보살행      이일체지대심세력

示現一切聲聞獨覺의 寂靜威儀하고 作如是念호대 我不自見當於二乘하고 而取出離少分之相이니 以不見故로 

시현일체성문독각    적정위의       작여시념      아불자견당어이승       이취출리소분지상      이불견고

心得無畏하야 到彼無上大無畏岸하며 普能示現一切乘道하야 究竟滿足平等大乘이 是爲菩薩第九無畏요 

심득무외       도피무상대무외안      보능시현일체승도       구경만족평등대승    시위보살제구무외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成就一切諸白淨法하야 具足善根하며 圓滿神通하야 究竟住於諸佛菩提하며 

불자    보살마하살    성취일체제백정법      구족선근       원만신통       구경주어제불보리

滿足一切諸菩薩行하야 於諸佛所에 受一切智灌頂之記하고 而常化衆生하야 行菩薩道하야 作如是念호대 

만족일체제보살행       어제불소    수일체지관정지기      이상화중생      행보살도        작여시념

我不自見有一衆生도 應可成熟에 而不能現諸佛自在하야 而成熟相이니 以不見故로 心得無畏하야 

아불자견유일중생    응가성숙    이불능현제불자재      이성숙상       이불견고    심득무외

究竟到彼大無畏岸하며 不斷菩薩行하고 不捨菩薩願하야 隨所應化一切衆生하야 現佛境界하야 而化度之가 

구경도피대무외안       부단보살행       불사보살원      수소응화일체중생       현불경계      이화도지

是爲菩薩第十無畏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無畏니 

시위보살제십무외       불자    시위보살마하살   십종무외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大無畏하며 而亦不捨菩薩無畏니라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제불무상대무외      이역불사보살무외

질문 97 '何等이爲無畏며'  

佛子 菩薩摩訶薩 有十種無畏하니 何等 爲十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無畏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하면

佛子 菩薩摩訶薩 悉能聞持 一切言說하야 作如是念호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말을 능히 다 듣고 지니어, 생각하기를, 

設有衆生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百千大法으로 而問於我라도 

'설사 무량무변한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백천 가지의 큰 법을 내게 묻더라도 

我於彼問 不見微少 難可答相이니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究竟到 彼大無畏岸하며隨其所問하야悉能酬對호대 酬 갚을 수, 보답할 주, 갚을 주,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는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답하여 

斷其疑惑하야 無有怯弱 是爲菩薩 第一無畏 

그들의 의혹을 끊어서 겁약함이 없게 하리라.' 하는 것이 보살의 첫 번째 무외이며, 

두려움 없음=無畏란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불ㆍ보살이 대중을 향하여 법을 설할 때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이 지구상에 있는 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듣고 다 안다면 설사 한량없는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백 천 가지 큰 법으로 묻더라도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질문도 모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전혀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佛子 菩薩摩訶薩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得如來灌頂 無礙辯才하야 到於一切文字言音으로 開示秘密 究竟彼岸하야 作如是念호대 

여래가 관정하신 걸림없는 변재를 얻고 일체의 문자와 말로 비밀을 열어보이는 구경의 피안에 이르러 생각하기를, 

設有衆生 無量無邊하야 從十方來하야 以無量法으로 而問於我라도 

'설사 무량무변한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한량없는 법을 내게 묻더라도 

我於彼問 不見微少 難可答相이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답함에 조금도 어려움을 보지 않나니,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究竟到 彼大無畏岸하야 隨其所問하야 悉能酬對호대 斷其疑惑하야 

구경에는 저 큰 무외의 언덕에 이르며,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하여 그들의 의심을 끊고

無有恐懼 是爲菩薩 第二無畏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하는것이 보살의 두 번째 무외이며, 懼 두려워할 구, 

보살은 여래가 인가하는 걸림 없는 변재를 얻고 온갖 글과 말로 비밀을 열어 보이는 구경의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설사 무량무변 중생들이 시방으로부터 와서 한량없는 법으로 묻더라도, 물음에 대하여 조금도 답하기 어려워하지 않는다. 

佛子 菩薩摩訶薩 知一切法空하야 離我離我所하며 無作無作者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이 공함을 알아 '나'를 여의고 '내 것'을 여의며, 지음도 없고 짓는 이도 없으며, 

無知者하며 無命者하며 無養育者하며 無補伽羅하며 

아는 이도 없고, 생명이란 것도 없으며, 양육하는 자도 없고 ,보가라(보특가라)도 없으며,

보살이 대승보살의 행을 당당하게 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모든 법이 공한 줄을 알고 나를 떠나고 나의 것에서 떠나야 한다. 설사 원력이 있더라도 아직 내가 있고 나의 것이 있는 상태라면 법을 설함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보가라(補伽羅)는 보특가라(補特伽羅)ㆍ부특가라(富特伽羅)ㆍ복가라(福伽羅)ㆍ보가라(補伽羅)ㆍ불가라(弗伽羅)ㆍ부특가야(富特伽耶)라고도 쓰며, 삭취취(數取趣)라고 번역한다. 유정(有情) 또는 중생의 아(我)와 오온의 아를 말한다. 중생은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자주 6취에 왕래하므로 자주 자주 6취에 나아간다는 삭취취라고 한다. 오온이 자신이라는 것도 떠나고 십팔계와 십이처도 떠나고, 모든 소견을 아주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야 비로소 당당하게 법을 설할 수 있을 것이다.

중생衆生 sentient being , 유정(有情), 살타(薩埵), 살다바(薩多婆), 복호선나(僕呼善那), 보특가라(補特伽羅)

‘윤회하는 존재’를 뜻하는 중생은 인간을 비롯한 삼계육도(三界六道), 즉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오가는 지옥 중생·아귀·인간·아수라·천신 등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생류(生類)’라고 옮기기도 했으나 이것은 오늘날 인도의 대표적인 소수교파로 초목도 윤회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자이나교의 이론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식물의 경우 꺾꽂이나 접목 등을 통해서도 번식할 수 있다는 예를 들어, 식물을 중생에 포함하는 자이나교의 주장을 논파한다.
초기 경전인 잡아함경(雜阿含經)을 비롯해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論) 등의 논서뿐만 아니라 대승경인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과 대표적인 대승 논서인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에도 중생이라는 표현은 두루 등장하며 그 의미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받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을 갖춘 존재를 뜻한다. 즉,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얻지 못한 지옥 중생부터 천신까지 모든 윤회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스끄리뜨어 경론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름을 뜻하는 ‘윤회하는 존재’가 ‘중생’으로 한역되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윤회하든 하지 않든’ 사람[人]과 동일하게 취급됨으로 인해 정교한 교학상의 논의를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뜻하는 ‘‘뿌드가라’로, 역경사들에 따라 ‘부특가라(富特伽羅)·복가라(福伽羅)·보가라(補伽羅)·부가라(富伽羅)·불가라(弗伽羅)·부특가야(富特伽耶)·인(人)·중생(衆生)·삭취취(數取趣)’ 등 음차, 의역 등을 통해 다양한 한자로 옮겨졌다.
이 ‘뿌드가라’와 ‘윤회하는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서 현장은 중생을 ‘유정(有情)’으로 엄격하게 구분하며 옮겼으며 그 반대되는 ‘정을 가지지 않는 존재’을 ‘무정(無情)’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四大)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정과 같이 무상(無常)하지만 윤회하지 않는 존재인 초목과 바위 등의 사물과 구분하였다. 현장의 이와 같은 새로운 역경 언어에 대한 집착은 유식사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팔식(第八識)인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을 뜻하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전변을 통한 윤회를 설명할 때 情, 마음[心], 또는 識에 관련된 것을 명확하게 표현해야 되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가 인도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났던 7세기 중엽의 중인도는 소승 정량부(定量部, Sāṁmitīya)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들은 ‘윤회하는 인간’인 뿌드가라를 ‘오온의 집합체이기도 하며 아니기도 하다’며 이 주제를 피해갔었다. 이 때문에 한역 경전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북인도 유부(有部)의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던 현장은 중생과 뿌드가라 등을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중생을 유정으로 굳이 바꾸고자 한 현장의 이와 같은 문제는 최소한 한역이 시작된 지 5세기 이후에나 자신들의 언어로 경론을 옮기기 시작한 티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화적 층이 얕아 기존에 없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야 했던 티벳의 역경사들은 일반적인 ‘사람’을 ‘미(mi)’로, 중생 또는 유정을 ‘마음을 가진 것’이라는 뜻의 ‘쎔쩐(sems can)’으로, 뿌드가라는 ‘강삭(gang zag)’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썼다.

離蘊界處하야 永出諸見하야 心如虛空하야 作如是念호대 

오온과 십팔계와 십이처도 떠났으며, 모든 소견을 영원히 벗어나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이와 같은 생각하기를 

不見衆生 有微少相 能損惱我 身語意業이니 

중생의 조그만 상도 나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함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何以故 菩薩 遠離我我所故 不見諸法 有少性相이니 

왜냐하면 보살은 나와 나의 것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서 조그만 성품이나 모양이 있음을 보지 않나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究竟到 彼大無畏岸하며 

보지 않으므로 두려운 마음이 없고 구경에 저 큰 무외의 언덕에 이르며,

堅固勇猛하야 不可沮壞 是爲菩薩 第三無畏 沮 막을 저,

견고하고 용맹하여 깨뜨릴 수 없느니라.’ 하는 것이 보살의 보살의 세 번째 무외이며,

보살이 나를 떠나고, 나의 것을 떠나고, 오온도 떠나고, 십팔계와 십이처도 다 떠났으므로 조그만 성품과 상도 자신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손상할 것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손상을 입겠는가. 이와 같아야 법을 설함에 있어 언제나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佛子 菩薩摩訶薩 佛力所護 佛力所持 住佛威儀하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힘으로 보호되고,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되며, 부처님의 위의에 머물러 

所行眞實하야 無有變易하야 作如是念호대 행하는 바가 진실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이와 같이 생각하기를,

我不見 有少分威儀 令諸衆生으로 生訶責相이니 訶 꾸짖을 가, 꾸짖을 하, 責 꾸짖을 책, 빚 채, 

'나는 어떤 조그만 위의도 중생들이 꾸짖어 책망하게 할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하나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於大衆中 安隱說法 是爲菩薩 第四無畏 隱 숨을 은, 기댈 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대중 가운데서 편안하게 법을 설하니, 이것이 보살의 네 번째 무외이며,

佛子 菩薩摩訶薩 身語意業 皆悉淸淨하야 鮮白柔和하야 遠離衆惡하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신,어,의 업이 모두 청정하여, 명백하고 부드러운=柔和하며, 온갖 악을 멀리 여의었으니,

作如是念호대 我不自見 身語意業 而有少分 可訶責相이니 

이렇게 생각하기를 '나는 스스로 신,어,의 업에 꾸짖어 책망을 받을 어떠한 조그만 것도 보이지 않으리라.' 하나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能令衆生으로 住於佛法 是爲菩薩第五無畏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중생들을 불법에 머물 수 있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다섯 번째 무외이며,

보살이 신구의 삼업으로 중생들로부터 책망을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는 당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佛子 菩薩摩訶薩 金剛力士 天龍夜叉 乾闥婆 阿修羅帝釋 梵王四天王等常隨侍衛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금강역사와 천신,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제석천, 범왕, 사천왕 등이 항상 시위하고, 

侍 모실 시, 衛 지킬 위, 

一切如來 護念不捨 菩薩摩訶薩 作如是念호대 

모든 여래가 호념하시어 버리지 않으시니,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하기를,

我不見 有衆魔 外道 有見衆生 能來障我行菩薩道 少分之相이니  障 막을 장, 

'나는 모든 마구, 외도나 다른 견해의 중생이 내가 행하는 보살도를 장애할 수 있는 어떠한 모습도 보지 않으리라.' 하니

불교에서는 어떤 작은 불사를 짓더라도 그것은 모든 불보살님들과 천룡팔부의 가호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일체 불보살들과 천룡팔부가 가호해 주시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究竟到 彼大無畏岸하며 

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러 

發歡喜心하야 行菩薩行 是爲菩薩 第六無畏 

기쁜 마음으로 보살행을 행하니, 이것이 보살의 여섯 번째 무외이며,

佛子 菩薩摩訶薩 已得成就 第一念根하야 心無忘失하야 佛所悅可  悅 기쁠 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이미 제일가는 염근을 성취하여 마음에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에 부처님께서 기뻐하시나니,

생각하는 근본, 즉 염근(念根)이란 5근(根)의 하나로서 근은 작용이 있는 것이고 염은 대상의 경계를 마음에 머물러 두고 잊지 않는 작용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힘을 성취하여 법을 들음에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 

증일아함경 32. 선취품(善聚品)[1]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善聚(선취)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니, 너희들은 잘 사유하고 기억하라.”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선한 무더기=선취라고 하는가? 이른바 5근(根)이 그것이다.
어떤 것을 그 5근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5근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이 5근을 닦아 행하면, 곧 수다원(須陀洹)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轉法]을 얻어 반드시 지극한 도(道)를 성취할 것이다. 그 행(行)을 더욱 정진하여 사다함(斯陀含)을 이룩하여,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까지 다 없앨 것이요, 그 도를 더욱 정진하여 아나함(阿那含)을 이룩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고 곧 반열반(般涅槃)을 취할 것이요, 그 행을 더욱 정진하여 번뇌[有漏]가 다하여 번뇌 없음[無漏]을 이룩하여, 마음이 해탈(解脫)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몸으로 증득(證得)하고는 스스로 유희(遊戱)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는다’라고 사실 그대로 다 알 것이다.
선한 무더기란 곧 5근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장 큰 무더기요, 온갖 무더기들 중에서 妙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법을 행하지 않으면, 곧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 및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 5근을 얻은 사람은, 곧 4과(果)와 삼승(三乘)의 도(道)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선한 무더기란 이 5근이 최상(最上)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방편(方便)을 구해 이 5근을 행하여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불경 듣기와 읽기, 그리고 생각하기

5근(五根): 5근은 5 신근(五身根)이라고 합니다. 근은 능력을 뜻하며, 이것은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으로 이끌어가는 다섯 가지의 근본으로 신근, 정진근, 정근, 혜근, 을 말합니다. 제일 먼저 주어진 것은 불교의 실천 수행 덕목으로써 출발점을 삼기 때문입니다.
① 신근(信根)은 바른 목적에 대한 심념과 성취의 확신을 말한다.
② 정진근(精進根)은 권선징악(勸善懲惡: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한다)의 노력을 말한다.
③ 염근(念根)은 탐욕과 근심 걱정을 항복받는 것을 말한다.
④ 정근(定根)은 욕심과 악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⑤ 혜근(慧根)은 거짓을 거짓으로 선을 선으로 진리를 진리로 보는 것과 같이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청암스님.

作如是念호대 如來所說 成菩提道 文字句法 생각하기를 '여래가 말씀하신 바 보리도를 이루는 문구의 법을

我不於中 見有少分 忘失之相이니 나는 그 가운데 조그만 어떠한 것도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하나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受持一切 如來正法하야 行菩薩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모든 여래의 정법을 수지하여 보살행을 행하니,

是爲菩薩 第七無畏 이것이 보살의 일곱 번째 무외이며,

여래의 정법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면 보고 듣고 알고 있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다 잊어버리고 백에 하나 정도 밖에 기억하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깝고 불편한가. 그러므로 당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없지 않다.

佛子 菩薩摩訶薩 智慧方便 悉已通達하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지혜와 방편을 이미 통달하였으며, 

菩薩諸力 皆得究竟하야 보살의 모든 능력을 성취하였으며,

常勤敎化 一切衆生하야 恒以願心으로 繫佛菩提하야 而爲悲愍衆生故 繫 맬 계

항상 일체중생을 힘써 교화하고, 항상 서원하는 마음을 불보리에 메어두었지만,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成就衆生故 於煩惱濁世 示現受生호대 중생을 성취시키고자 하여, 번뇌로 혼탁한 세상에 태어나보이되

種族尊貴하며 眷屬圓滿하며 所欲從心하며 歡娛快樂하야 娛 즐길 오, 歡娛환오=기뻐하고 즐거워함

혈통이 존귀하고, 권속이 원만하며,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어 기뻐하고 유쾌하게 즐기며

而作是念호대 我雖與此 眷屬聚會 不見少相 而可貪着하야 

생각하기를, '나는 비록 이 권속들과 함께 어울려 있으되 탐착하거나  

廢我修行 禪定 解脫 及諸三昧 總持 辯才 菩薩道法이니  

내가 수행하는 선정, 해탈과 삼매, 총지, 변재, 보살도법을 그만두는 것을 보이지 않으리라.' 하나니,

何以故 菩薩摩訶薩 於一切法 已得自在하야 到於彼岸하고 修菩薩行호대 誓不斷絶하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에 이미 자재하여 피안에 이르렀으며, 보살행을 닦고자 하는 서원을 끊지 않아서 

不見 世間 有一境界 而能惑亂 菩薩道者 

세간의 어떠한 경계도 보살도를 혹란시킬 수 있는 것을 보지 않으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究竟到 彼大無畏岸하며 

보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구경에 저 두려움이 없는 큰 언덕에 이르러

以大願力으로 於一切世界 示現受生 是爲菩薩第八無畏 

대원의 힘으로 일체세계에 태어나 보이기 때문이니, 이것이 보살의 여덟 번째 무외이며,

佛子 菩薩摩訶薩 恒不忘失薩婆若心하고 乘於大乘하야 行菩薩行하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항상 살바야(일체지)의 마음을 잃지 않고 대승에 올라 보살행을 행하며, 

以一切智 大心勢力으로 示現 一切聲聞獨覺 寂靜威儀하고 作如是念호대 

일체지와 큰 마음의 세력으로 모든 성문 독각의 적정한 위의를 나타내 보이고서 생각하기를,

我不自見 當於二乘하고 而取出離 少分之相이니 

'나는 스스로 마땅히 이승에서는 출리를 얻을 어떠한 모양도 보지 않으리라.' 하고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到 彼無上大無畏 岸하며 

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서 저 더없이 크게 두려움 없는 언덕에 이르러 

普能示現 一切乘道하야 究竟滿足 平等大乘 

모든 승의 도(길)를 두루 나타내 보이되 구경에는 평등한 대승을 만족히 하나니 

是爲菩薩 第九無畏 이것이 보살의 아홉 번째 무외이며,

보살은 큰 서원으로 보살행을 행하지만 한편으로는 성문이나 독각과 같은 고요한 위의를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보살이 스스로 하는 방편이기에 마음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일이 없다. 당당하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이나 불승(佛乘)까지도 두루 다 나타내는 그것이 또한 구경에 평등한 대승을 만족한 모습이다. 

佛子 菩薩摩訶薩 成就一切 諸白淨法하야 具足善根하며 圓滿神通하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백정법(청정한 법)을 성취하여 선근을 구족하고 신통을 원만히 하여, 

究竟住 於諸佛菩提하며 滿足 一切諸菩薩行하야 於諸佛所 受一切智 灌頂之記하고 

구경에 불보리에 머물러 일체의 모든 보살행을 만족히 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일체지에 관정의 수기를 받고,  

而常化衆生하야 行菩薩道하야 作如是念호대 항상 중생을 교화하고 보살도를 행하면서 생각하기를, 

대승보살들은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일체 모든 법들을 이미 끝내고 항상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다시 보살의 자리에서 보살도를 행한다. 이와 같이 대승보살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수업을 벌써 끝낸 이들이라야 보살이 되는 것이다. 마치 선종(禪宗)에서 여래선(如來禪)을 넘어야 조사선(祖師禪)에 나아간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문에서 흔히 “그대가 여래선은 알았으나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보살행을 잘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我不自見 有一衆生 應可成熟 而不能現 諸佛自在하야  

‘나는 스스로 한 중생이라도 마땅히 성숙시켜야하나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심을 나타내지 아니함으로 해서 

而成熟相이니 以不見故 心得無畏하야 

성숙시키지는 것을 스스로 보지 않으며,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究竟到 彼大無畏岸하며 不斷菩薩行하고 不捨菩薩願하야 

구경에 저 크게 두려움이 없는 언덕에 이르러서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보살의 서원을 버리지 않으며,

隨所應化 一切衆生하야 現佛境界하야 而化度之 

교화할 만한 모든 중생을 따라서 부처님의 경계를 나타내어 교화하여 제도하리라.’하나니

是爲菩薩 第十無畏니라 이것이 보살의 열째 두려움 없음이니라.

보살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부처님의 자재하신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성숙시키지 못하는 일은 없다. 보살은 벌써 부처님의 경지에 대한 수행을 끝 낸지 오래이기 때문에 다시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데는 자유자재다. 그래서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데는 언제나 당당하여 두려움이 없다. 대승보살불교에서 보살이 부처님의 경지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밝히려고 이와 같이 설한 것이다. 비록 부처님이 되었더라도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으면 불법수행은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佛子 是爲菩薩摩訶薩 十種無畏 若諸菩薩 安住此法하면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무외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則得 諸佛無上 大無畏하며 而亦不捨 菩薩無畏니라

곧 부처님의 더없이 큰 무외를 얻고 또한 보살의 무외도 버리지 않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