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이세간품 4 (離世間品) 3
⑨ 無縛無着解脫廻向 무박무착해탈회향을 답하다
十廻向名稱(卷第二十三 中, 二十五, 十廻向品에서 '九者 無縛無着解脫廻向'
㉮ 菩薩의 十種遊戱 보살은 열 가지 유희가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遊戱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以衆生身으로 作刹身호대 而亦不壞衆生身이 是菩薩遊戱요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유희 하등 위십 소위이중생신 작찰신 이역불괴중생신 시보살유희
以刹身으로 作衆生身호대 而亦不壞於刹身이 是菩薩遊戱요 於佛身에 示現聲聞獨覺身호대 而不損減如來身이
이찰신 작중생신 이역불괴어찰신 시보살유희 어불신 시현성문독각신 이불손멸여래신
是菩薩遊戱요 於聲聞獨覺身에 示現如來身호대 而不增長聲聞獨覺身이 是菩薩遊戱요 於菩薩行身에 示現成正覺身호대
시보살유희 어성문독각신 시현여래신 이불증장성문독각신 시보살유희 어보살행신 시현성정각신
而亦不斷菩薩行身이 是菩薩遊戱요 於成正覺身에 示現修菩薩行身호대 而亦不減成菩提身이 是菩薩遊戱요 於涅槃界에
이역부단보살행신 시보살유희 어성정각신 시현수보살행신 이역불멸성보리신 시보살유희 어열반계
示現生死身호대 而不着生死가 是菩薩遊戱요 於生死界에 示現涅槃호대 亦不究竟入於涅槃이 是菩薩遊戱요
시현생사신 이불착생사 시보살유희 어생사계 시현열반 역부구경입어열반 시보살유희
入於三昧하야 而示現行住坐臥一切業호대 亦不捨三昧正受가 是菩薩遊戱요 在一佛所하야 聞法受持에 其身不動하고
입어삼매 이시현행주좌와일체업 역불사삼매정수 시보살유희 재일불소 문법수지 기신부동
而以三昧力으로 於不可說諸佛會中에 各各現身호대 亦不分身하며 亦不起定하고 而聞法受持하야 相續不斷하며
이이삼매력 어불가설제불회중 각각현신 역불분신 역불기정 이문법수지 상속부단
如是念念於一一三昧身에 各出生不可說不可說三昧身하야 如是次第한 一切諸劫은 猶可窮盡이어니와 而菩薩三昧身은
여시념념어일일삼매신 각출생불가설불가설삼매신 여시차제 일체제겁 유가궁진 이보살삼매신
不可窮盡이 是菩薩遊戱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遊戱니라
불가궁진 시보살유희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여래무상대지유희
질문 94 '何等이 爲遊戱'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遊戱하니 何等이 爲十고 遊 놀 유, 戲 놀 희, 놀이 희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유희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하면
所謂 以衆生身으로 作刹身호대 而亦不壞 衆生身이 是菩薩遊戱요 壞 무너질 괴,
소위 중생의 몸으로 세계의 몸을 만들되 중생의 몸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유희(遊戱)란 재미있게 노는 놀이이다. 즉 세속에서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에서 일정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하는 율동과 같은 것인데 보살에게도 이러한 유희가 있다. 먼저 중생의 몸으로 세계를 만들어도 그 중생의 몸은 파괴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다시 세계로써 중생의 몸을 만들어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이 보살들의 놀이이다.
以刹身으로 作衆生身호대 而亦不壞 於刹身이 是菩薩遊戱요
세계의 몸으로 중생의 몸을 만들되, 세계의 몸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佛身에 示現 聲聞獨覺身호대 而不損減 如來身이 是菩薩遊戱요 損減손감=덜어서 줄거나, 덜어서 줄임
부처님의 몸에 성문 독각의 몸을 나타내 보이되, 여래의 몸은 줄어들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聲聞獨覺身에 示現 如來身호대 而不增長 聲聞獨覺身이 是菩薩遊戱요
성문 독각의 몸에 여래의 몸을 나타내 보이되, 성문 독각의 몸은 증장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菩薩行身에 示現 成正覺身호대 而亦不斷 菩薩行身이 是菩薩遊戱요
보살행을 하는 몸에 성정각의 몸을 나타내되, 보살행을 하는 몸이 끊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成正覺身에 示現 修菩薩行身호대 而亦不減 成菩提身이 是菩薩遊戱요
성정각의 몸에 보살행을 닦는 몸을 나타내 보이되 보리를 이룬 몸은 줄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涅槃界에 示現 生死身호대 而不着生死가 是菩薩遊戱요
열반계에 생사의 몸을 나타내 보이되 생사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於生死界에 示現 涅槃호대 亦不究竟入於涅槃이 是菩薩遊戱요
생사의 세계에 열반을 나타내 보이되 구경에 열반에 들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열반과 생사와의 관계도 서로 자유자재해서 그야말로 생사와 열반이 서로 한 가지[生死涅槃相共和]이다. 그래서 생사를 떠나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그대로 생사에서 열반을 나타내기에 또한 끝까지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생사 하나하나가 모두 열반의 조각조각들이다. 보살은 본래 생사에서 중생과 함께하기를 좋아하지 열반에 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여열반과 자성열반과 참마음열반을 떠난 것도 아니다.
入於三昧하야 而示現 行住坐臥 一切業호대 亦不捨三昧正受가 是菩薩遊戱요 삼매에 들어서 행주좌와의 모든 업을 나타내 보이되 삼매의 바르게 받아들임=正受를 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며,
四威儀(사위의)=수행자의 행실이나 몸가짐을 보기 위하여 구분한 걷고 정지(머물고)하고 앉고 눕는 4가지 동작(行·住·坐·臥), [īryāpatha(산스크리트어), iriyāpatha(팔리어)]란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바른 행실이나 몸가짐을 네 가지 동작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을 행(行)·주(住)·좌(坐)·와(臥)라고 한다. 이 네 동작은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기거동작이다. 몸은 항상 이러한 네 동작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사념처(四念處) 수행의 하나인 신념처(身念處)의 직접적 대상이 된다.
在一佛所하야 聞法受持에 其身不動하고 而以三昧力으로 於不可說 諸佛會中에
한 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수지하며,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삼매의 힘으로 불가설한 모든 부처님 회중에
各各現身호대 亦不分身하며 亦不起定하고 而聞法受持하야 相續不斷하며
각각 몸을 나타내되, 몸을 나누지도 않고, 선정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법을 듣고 받아 지니기를 끊임없이 계속하여,
如是念念 於一一三昧身에 各出生 不可說不可說 三昧身하야
이와 같이 순간순간마다 낱낱 삼매의 몸으로 각각 불가설 불가설한 삼매의 몸을 출생시키며
如是次第한 一切諸劫은 猶可窮盡이어니와 而菩薩三昧身은 不可窮盡이 是菩薩遊戱라
이렇게 차례차례로 모든 겁이 다할지언정 보살의 삼매의 몸은 다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유희이니라.
보살은 한 부처님의 처소에서 법문을 듣고 가만히 있는 한편, 무수한 모든 부처님 회상에서 몸을 다 나타낸다. 그렇다고 해서 몸을 나누거나 삼매에서 일어나거나 하지 않고 법문을 듣는 일은 연속부절이다. 그야말로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비친다=天江有水 千江月이 보살의 유희다.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 如來無上 大智遊戱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위없는 대지혜의 유희를 얻을 것이니라.
三昧(삼매)=힌두교와 불교의 종교 및 철학에서, 인간이 육체에 얽매어 있는 동안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집중 상태.
이렇게 정신을 완전히 집중하면 최고의 실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삼매는 절대자에 완전히 몰두하여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로서, 욕망과 분노를 비롯하여 자아가 낳는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도 마음의 평온을 깨뜨리지 않는 상태이다. 삼매는 정신적 기민함과 날카로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느끼는, 기쁨으로 가득 찬 평온한 상태, 더 나아가 환희와 아름다움의 상태이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삼매를 모든 정신활동과 지적 활동의 절정으로 간주한다. 삼매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죽음은 역시 삼매로 간주된다. 삼매의 의미는 더욱 확대되어, 오늘날에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죽어서 화장된 장소도 삼매라고 불린다. 그래서 모한다스 간디가 화장된 델리의 화장터는 '간디의 삼매'라는 공식 명칭을 갖고 있다.
사종삼매(四種三昧)= 상좌삼매(常坐三昧)·상행삼매(常行三昧)·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
(1) 상좌삼매=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도 함. 90일간을 1기로 하고, 몸은 오로지 一佛을 향하여 결가정좌(結跏正坐)하고, 입은 항상 침묵하며, 뜻(意)은 한결같이 一念으로 법계에 둔다. 우주실상을 향하여 정신을 통일하여 전념하는 것임. 피로나 질병, 수마(睡魔) 등의 장해에 빠져, 묵념을 할 수 없을 때에는, 一佛의 이름을 외우고 자기의 지주가 되도록 하는 것이 허용된다.
(2) 상행삼매=「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의한 것으로, 불립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함. 삼매중에 부처님이 눈앞에 나타나므로 이렇게 말함. 아미타불을 본존으로서 90일간 그 주위를 돌고, 입으로는 한결같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면서, 부처님을 생각함. 뜻은 아미타불의 정토나, 부처님의 32상을 떠올리거나 함.
(3) 반행반좌삼매=대방등다라니경에 의한 방등삼매(方等三昧)와 법화경에 의한 법화삼매(法華三昧)로 나뉜다. 방등삼매는 7일을 1기로 하여, 불상 주위를 다라니를 외우면서 돌고, 그것이 끝나면 좌선하고, 실상을 관하며, 이것을 반복한다. 법화삼매는 21일(3ⅹ7일)을 1기로 하고, 역시 불상의 주위를 행도하는 것과 좌선하는 것이 교대로 이루어진다. 그 사이에 예불·참회·송경 등이 행해짐.
(4) 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 위의 삼종의 삼매이외의 모든 삼매를 이름한 것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어느것을 불문하고 수의(隨意)인 까닭에 이렇게 이름하고 또 그런 의미에서 수자의삼매(隨自意三昧)라든가 각의삼매(覺意三昧)라고도 함. 약제경관(約諸經觀)과 약삼성관(約三性觀)으로 나뉘어짐. [오늘날 일본의 천태종에서는 법화삼매(法華三昧)와 상행삼매(常行三昧)만이 행해지고 있음.]
염불삼매(念佛三昧)= 입으로 항상 佛名을 칭송하고,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을 깊히 생각하는 염불삼매불립삼매(念佛三昧佛立三昧).
㉯ 菩薩의 十種境界 보살은 열 가지 경계가 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境界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示現無邊法界門하야 令衆生得入이 是菩薩境界요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경계 아등 위십 소위시현무변법계문 영중생득입 시보살경계
示現一切世界無量妙莊嚴하야 令衆生得入이 是菩薩境界요 化往一切衆生界하야 悉方便開悟가 是菩薩境界요
시현일체세계무량묘장업 영중생득입 시보살경계 화왕일체중생계 실방편개오 시보살경계
於如來身에 出菩薩身하고 於菩薩身에 出如來身이 是菩薩境界요 於虛空界에 現世界하고 於世界에 現虛空界가
어여래신 출보살신 어보살신 출여래신 시볼살경계 어허공계 현세계 어세계 현허공계
是菩薩境界요 於生死界에 現涅槃界하고 於涅槃界에 現生死界가 是菩薩境界요 於一衆生語言中에
시보살경계 어생사계 현열반계 어열반계 현생사계 시보살경계 어일중생어언중
出生一切佛法語言이 是菩薩境界요 以無邊身으로 現作一身하고 一身으로 作一切差別身이 是菩薩境界요
출생일체불법어언 시보살경계 이무변신 현작일신 일신 작일체차별신 시보살경계
以一身으로 充滿一切法界가 是菩薩境界요 於一念中에 令一切衆生으로 發菩提心하야 各現無量身하야 成等正覺이
이일신 충만일체법계 시보살경계 어일념중 영일체중생 발보리심 각현무량신 성등정각
是菩薩境界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境界니라
시보살경계 시위십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여래무상대지혜경계
질문 95 '何等이 爲境界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境界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의 경계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 示現無邊法界門하야 令衆生得入이 是菩薩境界요
소위 가이없는 법계의 문을 나타내 보이어 중생으로 하여금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보살의 유희도 곧 보살의 경계이고, 보살의 경계도 곧 보살의 유희이다. 보살은 그지없이 많고 많은 법계의 문을 나타내어 일체중생들이 다 들어가게 한다. 실은 일체중생과 일체존재는 어느 한 순간도 법의 세계를 떠난 적이 없이, 법의 세계 안에서 생사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법계인가? 생사윤회인가? 보살의 경계가 보살의 경계가 아니라 일체중생, 일체생명, 일체존재의 경계다.
境界(경계)= 자기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인식하거나 가치 판단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
경계(境界)= 境이라고도 한다.
① 感覺器官(감각기과, 根) 및 認識(인식)을 주관하는 마음(識)의 대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눈과 眼識(안식,視覺)에 의해서 보게 되는 色(빛 · 모양)이 그것이니, 여기에 五境(오경), 六境(육경)의 구별이 있다. 唯識宗에서는 三類境(삼류경)의 說이 있으며, 또 內境(내경) · 外境(외경), 眞境(진경) · 妄境(망경), 順經(순경) · 逆經(역경) 등으로 나눈다.
② 자기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分限. 無量壽經 卷下에는「이 뜻이 弘深하여 나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示現一切世界 無量妙莊嚴하야 令衆生得入이 是菩薩境界요
일체세계의 한량없이 미묘한 장엄을 시현하여 중생들이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일체중생들은 항상 아름다운 장엄 속에서 살고 있다. 중생들은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이것은 보살의 경계이다.
化往一切衆生界하야 悉方便開悟가 是菩薩境界요
모든 중생계에 변화하여 나아가서 방편으로 깨우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於如來身에 出菩薩身하고 於菩薩身에 出如來身이 是菩薩境界요
여래의 몸에서 보살의 몸을 내고, 보살의 몸에서 여래의 몸을 내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진정한 보살의 경계는 여래의 몸과 보살의 몸이 자유자재하여서 서로 번갈아 가며 출생한다
如來(여래)= 부처의 십호 가운데 하나이자 역사상 석가모니가 자신을 가리킬 때 가장 자주 사용한 칭호.
如來 따타가따, tathāgata, 다아갈 多阿竭, 다타아가도 多陀阿伽度, 多他阿伽度, 다타아가타 多陀阿伽陀, 다타아가태 多陀阿伽馱, 달살아갈 怛薩阿竭, 달타알다 怛他蘗多
그 원어의 정확한 의미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불교 주석서에는 대략 8가지의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가장 널리 채택되는 해석은 '그렇게(tathā 如) 간(gata 去) 이'라는 해석과 '그렇게(tathā 如) 도달한(āgata 來) 이'라는 해석이며, 양쪽 모두 역사상 석가모니가 과거 또는 미래에 깨달음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거'라는 번역어가 쓰이는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후기 대승불교에서 여래는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모든 중생은 그러한 여래를 자신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여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된 상태로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궁극적 실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於虛空界에 現世界하고 於世界에 現虛空界가 是菩薩境界요
허공계에서 세계를 나타내고, 세계에서 허공계를 나타내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보살의 경계에는 허공계와 세계가 둘이 아니다. 허공계가 세계고 세계가 허공계라서 서로 서로 자유자재하게 나타낸다
於生死界에 現涅槃界하고 於涅槃界에 現生死界가 是菩薩境界요
생사계에 열반계를 나타내고 열반계에 생사계를 나타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생사를 떠나서 열반을 찾아서는 안 되고 열반을 떠나서 생사를 찾아서도 안 된다. 생사와 열반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하나인데 이름을 만들어 붙였을 뿐이다.
於一衆生語言中에 出生一切佛法語言이 是菩薩境界요
한 중생의 말 가운데 모든 불법의 말을 출생시키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일체법이 모두가 불법이며 일체중생의 말이 그대로 불법의 말이다.
以無邊身으로 現作一身하고 一身으로 作一切差別身이 是菩薩境界요
가이없는 몸으로 한 몸을 만들고 한 몸으로 모든 차별한 몸을 만들어 나타내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以一身으로 充滿一切法界가 是菩薩境界요
한 몸으로 모든 법계를 가득 채우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며,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하다고 하였으므로 보살은 그와 같은 이치대로 한 몸으로서 일체법계에 충만하게 한다. 실로 보살의 경계는 본래로 존재하는 이치와 같다.
於一念中에 令一切衆生으로 發菩提心하야 한 순간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고,
各現無量身하야 成等正覺이 是菩薩境界라 각각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 정등각을 이루게 하니, 이것이 보살의 경계이니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慧境界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위없는 대지혜의 경계를 얻을 것이니라.
보살은 아주 짧은 한 순간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고, 또 그 중생들이 각각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정등각을 이루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생은 이미 보리심을 내었으며 등정각을 이루었다. 즉 중생들의 경계에서는 불보살이 모두 중생이고, 불보살의 경계에서는 일체중생들이 모두 불보살이다. 예컨대 꿈속에서는 일체존재와 일체 사건들은 모두가 꿈속경계의 일이고, 깨어있을 때의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은 모두 깨어있는 경계의 존재며 사건들인 것과 같다.
㉰ 菩薩의 十種力 보살의 열 가지 힘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深心力이니 不雜一切世情故며 增上深心力이니
불자 보살마하살 유십종력 하등 위십 소위심심력 불잡일체세정고 증상심심력
不捨一切佛法故며 方便力이니 諸有所作究竟故며 智力이니 了知一切心行故며 願力이니 一切所求令滿故며 行力이니
불사일체불법고 방편력 제유소작구경고 지력 요지일체심행고 원력 일체소구영만고 행력
盡未來際不斷故며 乘力이니 能出生一切乘호대 而不捨大乘故며 神變力이니 於一一毛孔中에
진미래제부단고 승력 능출생일체승 이불사대승고 신변력 어일일모공중
各各示現一切淸淨世界하야 一切如來가 出興世故며 菩提力이니 令一切衆生으로 發心成佛하야 無斷絶故며
각각시현일체청정세계 일체여래 출흥세고 보리력 영일체중생 발심성불 부다절고
轉法輪力이니 說一句法하야 悉稱一切衆生諸根性欲故라 是爲十이니
전법륜력 설일구법 실칭일체중생제근성욕고 시위십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一切智十力이니라
약제보살 안주차법 즉득제불무상일체지십력
질문 96 '何等이 爲力이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所謂深心力이니 不雜一切世情故며 소위 깊은 마음의 힘=深心力이니, 모든 세간의 정에 섞이지 않는 연고이며,
增上深心力이니 不捨一切佛法故며 보다 높고 깊은 마음의 힘이니, 일체 불법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며,
方便力이니 諸有所作究竟故며 방편의 힘이니, 짓는 모든 일을 성취(구경)하는 연고이며,
세상의 이치를 알고 일체 존재의 원리를 아는 수행자는 모든 세상의 정에 섞이지 않는다. 만약 세상의 정에 섞이면 힘이 없고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보살은 깊은 마음의 힘이 있다. 또 그것에 머물지 않고 더욱 올라가는 깊은 마음의 힘으로 일체 불법을 굳게 지니며, 또 방편의 힘으로 모든 하는 일들을 성취한다.
智力이니 了知一切心行故며 지혜의 힘이니, 모든 마음의 행=心行을 아는 때문이며,
願力이니 一切所求令滿故며 서원의 힘이니, 구하는 모든 것을 만족히 하는 때문이며,
行力이니 盡未來際不斷故며 실천하는 힘이니, 미래세가 다하도록 끊임없이 하는 때문이며,
乘力이니 能出生一切乘호대 而不捨大乘故며 승력이니, 능히 모든 승을 출생시키지만 대승을 버리지 않는 때문이며,
神變力이니 於一一毛孔中에 各各示現一切淸淨世界하야 一切如來가 出興世故며
신통변화의 힘이니, 낱낱의 모공마다 각각 일체의 청정세계와 일체여래의 출세하심을 나타내 보이는 때문이며,
菩提力이니 令一切衆生으로 發心成佛하야 無斷絶故며
보리의 힘(깨달음의 힘)이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발심하고 성불하게 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때문이며,
轉法輪力이니 說一句法하야 悉稱一切衆生 諸根性欲故라
법륜 굴리는 힘이니, 한 구절의 법을 말하더라도 일체중생의 근성과 욕구에 맞게 하는 때문이니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諸佛無上一切智十力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곧 여래의 위없는 일체지의 십력을 얻느니라.
轉法輪(전법륜)=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법륜(法輪)이라 하고, 敎法(교법)을 說하는 것을 轉法輪이라 한다. 輪(륜)은 전륜성왕의 輪寶(윤보)가 四天下를 廻轉(회전)하여 모든 怨敵(원적)을 굴복시키는 것처럼 부처님의 敎法도 또한 일체 衆生界를 廻轉(회전)하며 모든 煩惱(번뇌)를 굴복하므로 輪寶에 비유하여 法輪이라 했다. 轉(전)이란 敎法을 說함에 비유한 말이며, 自心의 法을 굴려 他人의 마음에 옮기는 것이 흡사 轉車輪(전차륜)과 같음을 뜻한 것. 止觀輪行一에서는 轉義(전의)와 摧破(최파)를 들었다. 嘉祥法華義疏(가상법화의소)에는「圓을 굴리고 通을 演하여 一人도 얽매이지 않게 하기 때문에 輪이라 하며 累를 破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또한 輪의 義다」하였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후 최초로 교진여(倧蓮如) 등의 5비구에게 중도(中道)와 사성제를 설한 것을 가리켜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고, 대승경전의 가르침을 제2전법륜(第二轉法輪) 또는 제3전법륜(第三轉法輪)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