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3
② 十種 時不失 10종의 원이 때를 잃지 않음을 밝히다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不失時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 제불세존 유십종불실시 하등 위십
所謂一切諸佛이 成等正覺 不失時와 一切諸佛이 成熟有緣 不失時와
소위일체제불 성등정각 불실시 일체제불 성숙유연 불실시
一切諸佛이 授菩薩記 不失時와 一切諸佛이 隨衆生心하야 示現神力不失時와
일체제불 수보살기 불실시 일체제불 수중생심 시현신력불실시
一切諸佛이 隨衆生解하야 示現佛身不失時와 一切諸佛이 住於大捨不失時와
일체제불 수중생해 시현불신불실시 일체제불 주어대사불실시
一切諸佛이 入諸聚落不失時와 一切諸佛이 攝諸淨信不失時와
일체제불 입제취락불실시 일체제불 섭제정신불실시
一切諸佛이 調惡衆生不失時와 一切諸佛이 現不思議 諸佛神通不失時가 是爲十이니라
일체제불 조악중생불실시 일체제불 현부사의 제불신통불실시 시위십
佛子야 諸佛世尊이 불자여, 제불세존께는
有 十種 不失時하시니 열 가지 시기를 놓치지 않음이 있으신데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때를 맞춰 내리는 비”라는 급시우(給時雨)가 농경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하듯이 일체 모든 부처님이 중생교화라는 농사에 때를 잃지 않아야 수확이 많다. 정각을 이루고, 인연이 있는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보살에게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수기를 주는 일이 모두 때를 잘 맞춰서 이뤄져야 한다.]
所謂一切諸佛이 소위 모든 부처님들이 成 等正覺 不失時와 등정각 이루기는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成熟有緣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인연 있는 이를 성숙시키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熟 익을 숙
一切諸佛이 授菩薩記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보살에게 수기하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隨 衆生心하야 일체제불이 중생의 마음을 따라
示現神力不失時와 신통력을 시현하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隨 衆生解하야 일체제불이 중생의 이해를 따라
示現 佛身 不失時와 부처의 몸을 시현하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住 於大捨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대사= 크게 버림에 머물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入 諸聚落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여러 마을에 들어가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攝諸淨信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청정한 신심을 거두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調惡衆生 不失時와 일체제불이 악한 중생을 조복시키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으며,
一切諸佛이 現 不思議 諸佛神通 不失時가 일체제불이 부사의한 부처님 신통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때를 놓치지 않음이,
是爲十이니라 그 열 가지입니다.
3. 種性答 종성을 답하다
① 報身과 化身의 種性 보신과 화신의 종성
*十種 無比不思議境界 십종의 비교할 수 없는 불사의 경계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無比 不思議境界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불자 제불세존 유십종무비 부사의경계 하등 위십
所謂一切諸佛이 一跏趺坐하야 徧滿十方無量世界하며
소위일체제불 일가부좌 변만시방 무량세계
一切諸佛이 說一義句하야 悉能開示一切佛法하며
일체제불 설일의구 실능개시 일체불법
一切諸佛이 放一光明하야 悉能徧照一切世界하며
일체제불 방일광명 실능편조 일체세계
一切諸佛이 於一身中에 悉能示現一切諸身하며
일체제불 어일신중 실능시현 일체제신
一切諸佛이 於一處中에 悉能示現一切世界하며
일체제불 어일처중 실능시현 일체세계
一切諸佛이 於一智中에 悉能決了一切諸法호대 無所罣礙하며
일체제불 어일지중 실능결료 일체제법 무소괘애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悉能徧往十方世界하며
일체제불 어일념중 실능변왕 시방세계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悉現如來無量威德하며
일체제불 어일념중 실현여래 무량위덕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普緣三世佛과 及衆生호대 心無雜亂하며
일체제불 어일념중 보연삼세불 급중생 심무잡란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與去來今一切諸佛로 體同無二가 是爲十이니라
일체제불 어일념중 여거래금 일체제불 체동무이 시위십
佛子야 諸佛世尊이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는
有 十種 無比 不思議 境界하시니 열 가지 비할 데 없이 부사의한 경계가 있는데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 一切諸佛이 一 跏趺坐하야 소위 일체제불은 한 번 가부를 맺고 앉으시면
徧滿 十方無量 世界하며 시방의 무량세계를 가득 채우시며,
一切諸佛이 說一義句하야 일체제불은 한 구절을 설하심에
悉能開示 一切佛法하며 능히 일체의 불법을 열어보이시며,
一切諸佛이 放一光明하야 일체제불은 하나의 광명을 놓으심에
悉能徧照 一切世界하며 능히 일체세계를 두루 다 비추시며,
一切諸佛이 於一身中에 일체제불은 한 몸에서
悉能示現 一切諸身하며 능히 일체의 모든 몸을 시현하시며,
一切諸佛이 於一處中에 일체제불은 한 곳에서
悉能示現 一切世界하며 능히 일체세계를 시현하시며,
一切諸佛이 於一智中에 일체제불은 한 지혜 가운데서
悉能決了一切諸法호대 無所罣礙하며 모든 법을 거침없이 결정히 알음에 거리낌이나 장애가 없으시며,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일체제불은 한 순간에
悉能徧往 十方世界하며 능히 시방세계에 두루 나아가시며,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일체제불은 한 순간에
悉現如來 無量威德하며 여래의 한량없는 위덕을 다 나타내시며,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일체제불은 한 순간에
普緣 三世佛과 及衆生호대 삼세제불과 중생에 널리 반연해도
心無雜亂하며 마음에 어지럽고 혼란함이 없으시며,
一切諸佛이 於一念中에 일체제불은 한 순간에
與去來今 一切諸佛로 과거 미래 현재의 일체제불과 體同無二가 체성이 같아서 둘이 없으시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보신(報身)= 三身의 하나로 과보와 수행의 결과 주어진 佛身, 즉 오랜 수행의 과정을 겪어 무궁무진한 공덕이 갖추어진 몸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덕을 갖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불신의 특징인 32상 80종호로 나타난다.
32상 80종호는 인간이 갖출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진리의 구현체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가 오랜 수행의 결과로 얻을 수 있었던 몸이 바로 이러한 몸이고 이것은 이 세상에서 나타낼 수 있는 최종적인 진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보신은 부처의 속성과 양상이 되며 그 몸은 본체의 세속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가 지닌 진리의 몸인 법신은 보신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인간적 조건하에서 설명될 수 있는 최고의 완전성과 이상적 인간성으로 제시된 불신인 보신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32상 80종호를 갖춘 몸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난 몸은,
(1) 보살들이 통달함을 얻게 하고,
(2) 眞諦(진리의 입장)로 설하여 생사와 열반의 한 맛(一味)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시키며,
(3) 그 몸을 보고 중생이 두려워 함이 없이 기뻐할 수 있게 하며,
(4) 무한한 불법의 근본이 되며,
(5) 如實한 완전한 지혜에 일치하고자 한다.]
[화신(化身)= 應化身 또는 변화신, 부처님의 三身의 하나이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佛身을 말하며, 화신은 報身처럼 十方三世에 걸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완전 · 원만한 이상적인 佛身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지역과 상대에 따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특정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하는 부처님을 말한다.
2천 5백 3십여년 전에 인도에 출현한 석가모니불은 化身이며, 과거의 六佛을 비롯한 많은 부처님들과 미래의 미륵불도 모두 化身에 속한다. 구체적인 부처님은 모두 化身이다. 화신에는 크게 勝應身(승응신)과 劣應身(열응신)의 두 종류가 있다. 승응신이란 初地 이상의 보살을 위해 법을 설하는 부처님이고, 열응신이란 前地의 보살, 二乘의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하는 부처님이라 한다. 이 경우 勝應身은 실제로는 報身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化身으로서는 오히려 劣應身만을 뜻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應身을 응신과 화신의 두 종류로 구별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응신이란 상대방에 따라 그를 化導하는데 편리한 모습을 나타내어 설법하는 부처님이며, 三十二相과 八十種好 등의 상호를 구비한 佛身이다.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출현하는 부처님은 이에 해당한다.
또한 化身이란 상호를 구비하지 않고,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佛身이다. 범부의 모습을 취하는 일도 있고, 범천 · 제석 · 마왕 · 축생 등의 모습을 나타내는 일도 있다.]
① 法身의 種性 법신의 종성
*能出生 十種智 능출생 십종지
佛子야 諸佛世尊이 能出生十種智하시니 何者가 爲十고
불자 제불세존 능출생십종지 하자 위십
所謂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所趣向이나 而能出生廻向願智하며
소위일체제불 지일체법무소취향 이능출생회향원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皆無有身이나 而能出生淸淨身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개무유신 이능출생 청정신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本來無二나 而能出生能覺悟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본래무이 이능출생 능각오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我無衆生이나 而能出生調衆生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무아무중생 이능출생 조중생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本來無相이나 而能出生了諸相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본래무상 이능출생 요제상지
一切諸佛이 知一切世界無有成壞나 而能出生了成壞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세계 무유성괴 이능출생 요성괴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有造作이나 而能出生知業果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무유조작 이능출생 지업과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有言說이나 而能出生了言說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무유언설 이능출생 요언설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有染淨이나 而能出生知染淨智하며
일체제불 지일체법 무유염정 이능출생 지염정지
一切諸佛이 知一切法無有生滅이나 而能出生了生滅智가 是爲十이니라
일체제불 지일체법 무유생멸 이능출생 요생멸지 시위십
佛子야 諸佛世尊이 불자여, 부처님 세존께서는 能出生十種智하시니 능히 열 가지 지혜를 내시는데,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그 열 가지인가 하면 所謂 一切諸佛이 소위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 모두가 다 불법이다. 그래서 “이것이 불법이다.”라고 하여 달리 나아갈 데가 없다. 부처님은 이러한 이치를 잘 알지만 불법을 널리 회향하려고 난행고행을 하면서 불법을 수행하고 불법을 널리 펼치는 일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것이다.]
知 一切法 無所趣向이나 일체법이 취향=나아갈 바가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廻向 願智하며 회향하는 서원의 지혜를 내시며,
[몸이란 모여서 어떤 실체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일체 법은 그와 같은 실체를 이루는 몸은 없다. 부처님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 청정한 몸의 지혜를 능히 낸다.]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 皆無有身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몸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淸淨 身智하며 청정한 몸의 지혜를 내시며,
[일체법이 본래 둘이 없다는 것은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없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은 미혹과 깨달음이 없음을 잘 알지만 능히 깨달음의 낸다.]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 本來無二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본래 둘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能覺悟智하며 깨닫는 능력의 지혜를 내시며,
一切諸佛이 知 一切法 無我 無衆生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나'도 없고 중생도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調衆生智하며 중생을 조복시키는 지혜를 내시며,
一切諸佛이 知一切法 本來無相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본래 모양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了諸相智하며 모든 모양을 아는 지혜를 내시며,
一切諸佛이 知一切世界 無有成壞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了成壞智하며 이루어지고 무너짐을 아는 지혜를 내시며,
一切諸佛이 知一切法 無有造作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조작=지음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知業果智하며 업의 과보를 아는 지혜를 내시며,
[업과 과보는 모두 조작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 일체법은 본래로 조작이 없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지만 업과 과보를 아는 지혜를 능히 낸다.]
一切諸佛이 知一切法 無有言說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에 말할 것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了言說智하며 말을 아는 지혜를 내시며,
[일체 법에 무슨 언설이 있겠는가.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언설이 가장 많다. 언설이 없는 가운데 한량없는 언설을 잘 아는 지혜를 능히 낸다.]
一切諸佛이 知一切法 無有染淨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물들거나 깨끗함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知染淨智하며 물들고 깨끗함을 아는 지혜를 내시며,
一切諸佛이 知一切法 無有生滅이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생멸이 없음을 아시지만
而能出生 了生滅智가 그 생멸을 아는 지혜를 내시나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그 열 가지입니다.
[종성(種性) 범어 gotra. *사람이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 *원래 가계(家系) ‧집안‧혈통의 뜻 *법상교학(法相教学)에서는 인간의 상태를 성문종성(声聞種姓) ‧독각종성(独覚種姓) ‧보살종성(菩薩種姓) ‧부정종성(不定種姓) ‧무성(無姓)의 오종성(五種姓)으로 분류하고, 깨달음의 가능성이 없는 자(무성(無姓))를 인정한다 聲聞·緣覺·菩薩 등의 三乘이 각각의 깨달음을 開得하는 種이 되는 본래적 素性(소성)·素質(소질)을 말한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경우와 후천적인 修行에 의해서 얻는 2종의 種性이 있다. 전자를 本性住種性(性種性)이라 하고 후자를 習所性種性(習種性)이라 한다.]
[업(業) 범어 karman. 羯磨(갈마)라 音譯한다. 造作의 뜻으로 行爲 ․ 所作 ․ 意志에 의한 身心의 활동, 생활을 의미한다.
➀ 일반으로 業을 身 ․ 語 ․ 意의 三業으로 나눈다. 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言語的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身業과 語業(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業을 意志의 활동인 思業과 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思已業의 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思業은 意業이고, 思已業은 身 ․ 語 二業이다. 三業으로서의 작용의 本體(業體 ․ 業性)에 대해서, 有部등에서는 意業은 思(意志), 身 ․ 語業은 色法(物質的인 것)이라고 하고, 經量部나 大乘에서는 모두 思(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➁ 有部등에서는 物質的인 것을 本體로 하는 業(色業) 곧 身業과 語業으로, 表(作 ․ 敎)와 無表(無作 ․ 無敎)가 있다고 한다. 表業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 無表業은 無表色이라 이름 지어지는 일종의 色法(보통의 물질과 같이 粗雜하지 않다)을 本體로 하고, 강한 善惡의 業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그 業은 身表業과 語表業과 및 定등이다.
이 無表業에 3종이 있다. 受戒와 定(어느 것이나 다 善)에 의해서 일어난 律儀와, 습관적이고 특히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한 惡業에 의해서 일어난 바의 不律儀와, 그 이외의, 때에 따라 선악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 非律儀非不律儀(處中의 無表)의 3종이 그것이다. 律儀無表는 戒를 버리고 定에서 나오기까지 계속되고, 그 밖에 無表는 특별한 障害가 없는 한 일생동안 계속된다. 이들 無表 중에서 善한 無表에는 惡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고, 惡한 無表에는 善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각기 그 사람의 後天的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또 身 ․ 語의 각기 無表 및 無表業에 意業을 더하여 五業이라 한다.
➂ 선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서 그에 상응한 고락의 갚음(果報 ․ 異熟)이 생긴다. 이것을 業因에 의해서 業果가 생긴다고 한다. 非善非惡의 無記業은 果를 끄는 힘이 없다. 이 業因과 業果의 관계를, 有部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業 그것은 三世에 實在하는 것으로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因이 되어서 어떠한 未來의 果를 끌것인가가 결정되고(이것을 取果라고 한다), 업이 지나가 버림으로부터 果에 힘을 주어서 果를 현재에 이끌어 낸다(이것을 與果라고 함). 또한 經量部에서는, 業은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데, 그 業은 果를 생하는 종자를 識위에 심어 주어, 그 종자가 果를 끌어 일으킨다고 한다. 이 종자의 思想은 有部의 無表業說과 같은 것이다.
④ 業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總體로서의 일생의 果報(갚음)를 이끄는 業. 곧 人間界라든가 畜生界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業을 引業(牽引業 ․ 總報業 ․ 引因)이라 하고, 人間界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서 개체를 완성시키는 業을 滿業(圓滿業 ․ 別報業)이라고 한다. 引業의 갚음을 總報, 滿業의 갚음을 別報라고 하여, 이 二業을 總別二業이라고 한다. 더욱 有部에서는 하나의 引業에 의해서 一回의 生을 받아 다시 그 위에 많은 滿業에 의해서 이 生이 완성된다고 說하고, 多業이 일생을 이끌거나, 一業이 多生을 끌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또 業에는, 山河大地(器世間)와 같은, 많은 生物에 공통하는 果報를 끌어 일으키는 共業과, 개개의 生物의 신체와 같은, 개개의 생물에 固有한 果報를 引起하는 不共業이 있다.
⑤ 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善業(安穩法)과, 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不善業(惡業 ․ 不安穩法)과, 善惡 어떤 것도 아닌 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無記業의 셋을 三性業이라고 한다. 惡業은 罰하지 않으면 안되는 業이기 때문에 罰業 ․ 罰이라 하고, 身 ․ 口 ․ 意의 三罰業 또는 三罰이 있다. 中阿含經 권三十二에는 身 ․ 口 ․ 意의 三業중에서 意業이 가장 重하다고 說하여, 불교가 動機論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자이나敎에서는 身 ․ 口 ․ 意의 三罰중 身罰을 가장 重하다고 하여, 結果論에 빠져 있다. 또 熟慮한 뒤에 決斷하여 일부러 한 故思業(故作業)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無意識的) 잘못한 不故思業은 그것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故思業중에 적극적으로 한 강하고 중대한 業을 增長業이라고 하고, 소극적으로 한 약하고 가벼운 故思業은 不增長業이라고 한다. 점점 강하게 되는 業은 增上業 혹은 增長業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造作業이라고 한다. 欲界의 惡業과 같이, 眼 ․ 耳 ․ 鼻 ․ 舌 ․ 身의 五識으로 받는 苦만을 受의 果報로 가져오는 業을 身受業, 色界 ․ 無色界(初禪天을 除함)의 善業과 같이 제六意識으로 받는 樂만을 受果報로 가져오는 業을 心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二受業이라 한다. 또 苦受와 樂受와 捨受(不苦不樂受)의 果報는 각기 欲界의 惡業과 欲界에서 色界 第三禪까지의 善業과, 色界 第四禪 이상의 善業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이 세 業을 각기 順苦受業 ․ 順樂受業 ․ 順不苦不樂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三受業이라고 한다. 또 欲界의 善業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福樂, 欲界의 惡業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非福業, 色界 ․ 無色界의 善業은 그 禪定의 힘에 의해서 갚음(報)이 정해져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不動業이라 하고, 합하여 福등의 三業(또는 三行)이라고 한다. 또 惡業은 黑業, 善業은 白業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異熟의 좋아하는(白)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黑)에 배당하면, 欲界의 不善業은 성질이 不善하여 異熟도 좋아하지 않는 黑黑異熟業, 色界 ․ 無色界의 善業은 성질은 善하고 異熟도 좋아하기 때문에 白白異熟業, 欲界의 善業은 성질도 異熟도 黑白相雜하여 있기 때문에 黑白黑白異熟業, 번뇌와의 관계가 斷切된 無漏業은 상대적인 黑白을 초월하여 異熟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非黑非白無異熟業이라 하고, 이것 둘을 합하여 四業이라 한다. 四業중에 앞의 3은 有漏業으로, 이것들은 최후의 無漏業에서 斷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內心을 남 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業을 曲業이라고 하고, 또한 성냄에 의해서 일어나는 業을 穢業이라 한다. 탐냄으로 의해서 일어나는 業을 濁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曲穢濁의 三業이라고 한다. 八聖道의 第四支는 正業으로, 그 반대는 邪業이다.
⑥ 業에 의해서 그 갚음을 받는 시기에 다름(異)이 있기 때문에, 順現業(順現法受業) ․ 順生業(順次生受業) ․ 順後業(順後次受業)의 三時業을 나누어, 각각 이 세상에서 지은 業에 응해서, 그 갚음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받는 것, 제3生 이후에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不定業(順不定受業)이라 하고, 거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四業이라고 한다. 또 不定業을 갚음의 내용(異熟)의 定 ․ 不定에 의해서 時不定異熟定業과 時不定異熟不定業의 둘로 나누고, 여기에 三時業을 더하여 五業으로 하며 또 三時業을 각기 時定異熟定과 時定異熟不定으로 나누어 6으로 하고 둘의 不定業을 더하여 八業이라고도 한다.
⑦ 業이 작용할 또는 의지할 곳이 되는, 혹은 有情을 苦樂의 果報(갚음)에 인도하는 通路가 되는 것을, 業道(根本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十善業道와 十惡業道가 있다. 有部에서는, 十善 ․ 十惡에는 業인 것과 業이 아닌 것(無貪 ․ 無瞋 ․ 正見, 貪 ․ 瞋 ․ 邪見)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意志(思)가 거기에 작용하는 바의 의지할 곳이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한다고 했다.
經量部나 大乘에서는, 十善 ․ 十惡은 모두 業이어서 意志(思)를 體로 하는데, 처음의 七業道에 있어서는 身 ․ 口를 發動하는 意志(思)가, 思惟하여 결정하는 意志(思)의 작용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 하고, 또 그 發動의 생각에 의해서 생긴 생각의 종자도 業道라 한다. 뒤의 셋 곧 貪 ․ 瞋 ․ 癡 등은 順次로, 또 交互로 생기기 때문에, 앞의 것은 뒤의 것 때문에 業의 道가 되고, 또 有情을 지옥등의 惡趣등에 인도되는 道가 되기 때문에 業道라고 說함. 또 業에는 준비적 행위(加行)와 목적을 수행하는 그 순간의 행위(根本)와 完遂한 뒤의 종속적인 행위(後起)가 있는데, 이 가운데 근본만을 業道라고 한다.
⑧ 煩惱道 ․ 業道 ․ 苦道(→三道).
⑨ 業은 갚음(果報, 異熟)을 내는 因이 되기 때문에 業因 ․ 因業이라 하고, 業에 의한 갚음을 業果, 業報라 한다. 또 業因에는 業을 일으키는 원인(번뇌등)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因業에는 因과 業(主因과 助緣)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業果를 끌어 당기는 힘을 業力, 業에 의한 괴로운 갚음, 또는 業과 그 苦인 갚음을 業苦라고 한다. 惡業과 번뇌를 아울러서 業結 ․ 業惱라고 한다. 惡業 때문에 생긴 가리움, 障害를 業障 ․ 業累라고 한다. 業에 의해서 갚음을 받는 것은 業感, 過去世(前生 ․ 前世)에 지은 業은 宿業 또는 前業, 宿業에 의해서 받은 壽命은 業壽 ․ 業受. 宿業에 의한 벗을 수 없는 중한 病은 業病, 宿業에 의해 재앙은 業厄이라고 한다. 業이 갚음을 生하는 도리는 天道와 같이 必然이기 때문에 業天, 業은 그림자와 같이 몸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業影, 업은 중생을 迷界에 묶어 놓기 때문에 業繫(繫業이라고 하여도 거의 같다) ․ 業羂 ․ 業縛 ․ 業繩이라 한다. 業은 그물과 같이 사람을 붙잡아서 迷界에 머물게 하므로 業網, 惡業은 때나 먼지와 같이 몸을 더럽히기 때문에 業垢 ․ 業塵이라고 한다. 또 惡業의 작용을 火 ․ 魔 ․ 賊에 비유해서 業火 ․ 業魔(十魔의 1) ․ 業賊등이라 하고, 지옥에는 중생의 선악의 業을 비추어 내고 재고 기록하는 業鏡 ․ 業秤 ․ 業簿 등이 있다고 한다. 惡業의 힘을 바람에 비유해서 業風이라고 하는데, 또 惡業에 의해서 招來된 猛風(지옥등의)도 業風이라고 한다. 宿業에 의한 神通力으로서 業通(報通)이 있다.
⑩ 無間地獄의 갚음을 부르는 것을 無間業, 有情을 欲界등의 三界에 매어두는 業을 三界繫業이라고 한다. 번뇌는 業을 일으켜서 有情을 가지가지의 세계에 태어나게 한다. 곧 生을 윤택하게 하고, 이 미래의 生을 부르는 業을 潤業 ․ 潤生業이라고 한다. 또 자기의 지은 業의 갚음을 자기가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自業自得이라고 한다.
⑪ 十二緣起의 第十支인 有를 해석하는데, 후대에(阿毘達磨에서) 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것을 業有라고 한다.
觀無量壽經에는 施 ․ 戒 ․ 行의 三福은 淨土에 往生하기 위한 正因으로, 淨業(淸淨業)이라고 說해져 있다. 일반으로 염불해서 彌陀의 淨土에 往生하고자 원하는 것을 淨業이라 한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불교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