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29 십인품(十忍品) 10

Skunky 2022. 3. 26. 17:49

4. 如幻忍  여환인(환술과 같은 인)

世間種種法이 一切皆如幻하니 若能如是知하면 其心無所動이로다

諸業從心生일새 故說心如幻이니 若離此分別하면 普滅諸有趣로다

譬如工幻師가 普現諸色像하야 徒令衆貪樂이나 畢竟無所得인달하야

世間亦如是하야 一切皆如幻이라 無性亦無生이나 示現有種種이로다

度脫諸衆生하야 令知法如幻이나 衆生不異幻이니 了幻無衆生이로다

衆生及國土와 三世所有法이 如是悉無餘하야 一切皆如幻이로다

幻作男女形과 及象馬牛羊과 屋宅池泉類와 園林華果等이나

幻物無知覺이며 亦無有住處하야 畢竟寂滅相이라 但隨分別現이니

菩薩能如是하야 普見諸世間에 有無一切法하고 了達悉如幻이로다

衆生及國土가 種種業所造라 入於如幻際하야 於彼無所着이로다

 

世間種種 法이 세간의 갖가지 법은 一切 皆如幻하니, 모두가 허깨비와 같나니 幻 변할 환, 헛보일 환

若能 如是知하면, 만일 능히 이렇게 안다면 其心 無所動이로다. 그 마음 흔들림이 없으리라

 

諸業從心 生일새. 모든 업이 마음에서 생기기에 故說 心如幻이니, 그러므로 마음이 허깨비와 같다 하거니와 

若離 此分別하면, 만일 이런 분별을 여읜다면 普滅 諸有趣로다 모든 갈래가 다 소멸하리라 

[心(심)=중국의 철학 용어 '심'은 원래 사유기관을 가리킨다. 맹자의 고자 편에서 "심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한 후, 심은 보통 인간의 의지·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객체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순자 荀子의 해폐 편에서는 "심이란 형의 통솔자요, 천지신명의 주인이다"라고 했다. 주자어류 朱子語類, 권5에서는 "심에는 체와 용이 있는데 아직 발현하기 전의 것이 체이며, 이미 발현한 후의 것은 용이다"라고 했다.
또 주문공문집 朱文公文集 권32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지각으로 운용되는데 모든 곳에 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왕수인은 답고동교서 答顧東橋書에서 "심은 형체가 없고 영묘하나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이른바 본연의 양지(타고난 지능)이다"라고 했다.

심(心)은 *마음은 우주의 존재 일반에 대한 인간의 정신으로 심왕(心王)이라고도 함. *사고(思考)의 기관으로 의(意)라 한역되며, 6근(六根)의 하나이다. manas ④ 오온(五蘊)의 하나인 식(識), 식별작용. vinnana. 즉 마음은 의(意) 및 식(識)과 동일하다고 여겨짐. citta *유식설(唯識說)에서는 순수하게 대상 그 자체를 보는 것. vijnana *우리들의 존재의 근저에 있는 원리로서의 마음 또는 심성(心性).「世界唯一心, 心外無別法」「一心一切法, 一切法一心」등이라 함. →유심.

*유식설(唯識說)에서는 (1) 사량심(思量心). 사려를 본질로 하는 제7식(第七識). (2) 제8아뢰야식(識). 여러 가지 종자를 모아 모든 법을 현출(現出)시키는 원리. 집기심(集起心). 편상(遍常)의 인식기능의 근저에 있는 잠재의식. →아뢰야식.

*우리들의 심장으로, 밀교(密敎)에서는 팔엽(八葉)의 심연화(心蓮華)로 해석함. *또한, 초목에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함.

*불교에서는 심(心)은 색(色, rupa 물질), 또는 신(身, kaya 육체)의 반대. 심(心)은 상세히는 심(心, citta)·의(意, manas)·식(識, vijnana)의 3가지로 나누어 설명됨. 소승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이 3가지는 같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승(大乘)의 유식설(唯識說)에서는 심(心)은 모든 현상의 발생원인의 집합으로서, 여기서부터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근본원리(제8아뢰야식)를 가리키고, 의(意)는 사량(思量)의 의미로, 사유작용(思惟作用 제7마나식)을 가리키고, 식(識)은 요별(了別)의 의미로, 인식작용(前 6識)을 가리킴. 또한 마음을 그 주체와 종속작용으로 나눌 때는, 전자를 심왕(心王)이라 말하고, 후자를 심소(心所)로 칭함. 위의 6식(六識) 내지 8식(八識)은 심왕(心王)에 해당함. 심소(心所)는 그에 부수하여 일어나는 세밀한 각종 정신작용임. 또한, 심장(心藏)은 흐뤼드(산, hrd)흐뤼다야(산, hrdaya)라 칭하고, 육단심(肉團心)이라 한역하며, 이것은 인간의 내부에 본래 부처가 되어야 할 성질(如來藏心)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한 것임. 마음을 가치의 근원으로 보고, 진심(眞心 자성청정심, 본래의 깨끗한 마음)과 망심(妄心 번뇌로 상처입은 마음), 상응심(相應心 번뇌로 묶인 마음)과 불상응심(不相應心), 정심(定心 통일된 마음)과 산심(散心 산란심) 등의 이심(二心)으로 분류하고, 혹은 번뇌의 얽힘인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癡心)의 삼심(三心) 등으로 분류됨. 또한, 심(心)과 물(物)이 상의상관(相依相關)으로서 존재하고, 어느 쪽인가가 일방을 실재(實在)로 하여 다른 쪽을 그 나타남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는 점으로부터 색심불이(色心不二)가 설명됨. 그러나, 실천의 면에서는 심(心)의 주체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강함.]

 

譬如 工幻師가, 비유컨대 마술사가 普現 諸色像하야, 온갖 형상을 두루 나타내 像 형상 상, 모양 상, 諸 모든 제, 

徒令衆 貪樂이나,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지만 徒 무리 도, 令 하여금 령, 貪 탐할 탐, 樂 풍류 악, 즐거울 락, 

畢竟에 無所得인달하야, 필경에 얻을 것이 없듯이

 

世間 亦如是하야, 이 세간도 역시 그와 같이 一切 皆如幻이라. 모든 것이 허깨비와 같아서 

無性 亦無生이나, 성품도 없고 생김도 없지만 示現 有種種이로다. 갖가지를 있음을 시현하네 

[불변하는 성품도 없고 또한 생하는 것도 없으나 가지가지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도다.] 

度脫 諸衆生하야, 모든 중생 도탈시켜서 令知 法如幻이나, 법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게 하되  

衆生 不異幻이니, 중생이 허깨비와 다르지 않아서  了幻이면 無衆生이로다. 허깨비인 것을 알면 중생이 없음을 아네

[환인 줄 알면 無衆生= 중생이 없음이로다.]

衆生及國土와 三世所有法이 중생이나 국토나 삼세에 있는 모든 법이

如是 悉無餘하야, 이와 같이 다 남김 없이, 一切 皆如幻이로다. 모두가 허깨비와 같네 

   

幻作 男女形과, 환술로 남녀의 형상과 及 象 馬 牛 羊과, 그리고 코끼리, , , 양과

屋宅 池 泉 類, , , 샘들과 屋 집 옥, 宅 집 택, 池 못 지, 泉 샘 천, 類 무리 류,   

園林 華 果 等이나, 정원, , , 열매를 만들지만 園林원림= 자연에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생활 공간으로 삼은 것

幻物 無知覺이며, 환으로 만든 사물은 지각이 없고 亦 無有住處라. 머무는 곳도 없어서

[또한 주처도 없다.→우리의 착각으로 있는 것같이 보일 뿐이지요.

畢竟에 寂滅相이라. 필경에 적멸한 모양이라 但隨 分別現이니, 다만 분별을 따라 나타날 뿐이듯이 

 

菩薩 能如是하야, 보살도 그와 같아서  普見 諸世間의, 모든 세간을 두루 보지만

有無一切法하고, 있고 없는 모든 법이 了達 悉如幻이로다. 허깨비와 같음에 요달하네  

[모든 세간의 있는 것ㆍ없는 . 유형ㆍ무형 등 일체 법을 전부 普見= 널리 보고서  환과 같은 줄을 요달하도다.] 

衆生及國土가 중생과 국토가  種種 業所造라. 모두 가지 가지 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入 於如幻際하야, 허깨비와 같은 경계에 들어가되 於彼無所着이로다. 거기에 집착하는 일이 없네 

 

         5. 如焰忍 여염인(아지랑이 같은 인)

如是得善巧하야 寂滅無戲論이라 住於無碍地하야 普現大威力이로다

勇猛諸佛子가 隨順入妙法하야 善觀一切想이 纏網於世間이로다

衆想如陽焰하야 令衆生倒解어든 菩薩善知想하야 捨離一切倒로다

衆生各別異하야 形類非一種이나 了達皆是想이라 一切無眞實이로다

十方諸衆生이 皆爲想所覆니 若捨顚倒見이면 則滅世間想이로다

世間如陽焰하야 以想有差別이니 知世住於想이면 遠離三顚倒로다

譬如熱時焰을 世見謂爲水나 水實無所有라 智者不應求ㄴ달하야

衆生亦復然하야 世趣皆無有니 如焰住於想하면 無碍心境界로다

若離於諸想하고 亦離諸戲論하면 愚癡着想者로 悉令得解脫이로다

遠離憍慢心하며 除滅世間想하고 住盡無盡處가 是菩薩方便이로다

 

如是得善巧하야이와 같은 선교를 얻어  寂滅無戲論이라적멸하고 희론이 없어져서 寂滅적멸 戲論희론. 

住 於無碍地하야, 걸림없는 자리에 머물러 普現大威力이로다. 큰 위력을 두루 나타냄이로다

 

勇猛 諸佛子가 용맹한 불자들은 勇猛용맹 隨順 入妙法하야, 묘법에 수순해 들어가 

善觀 一切想이, 모든 생각이 纏網於世間이로다. 세간에 얽힌 그물임을 관찰하네 纏網於世間전망어세간 

 

衆想 如陽焰하야, 온갖 생각은 아지랑이 같아서 陽焰양염

令衆生 倒解어든,  중생을 거꾸로 알게 하는지라 倒解도해, 倒 넘어질 도, 거꾸로 도

菩薩善知 想하야, 보살은 그런 망상을 잘 알아서  捨離 一切倒로다. 모든 전도된 생각을 버리게 하도다. 

[전도(顚倒) viparyasa의 번역으로 라고도 한다. 道理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1. 위치나 차례가 거꾸로 뒤바뀜  2. 엎어져서 넘어짐  3. 번뇌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현실을 잘못 파악함] 

 

衆生이 各別異하야, 중생은 저마다 달라서 形類 非一種이나, 形類= 형상과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건만   

了達皆是想이라. 모두가 다 망상임을 요달해서  一切 無眞實이로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는 줄 아네  

 

十方諸衆生이 시방의 모든 중생들은  皆爲想所覆, 다 망상에 덮여 있거늘 皆爲想所覆개위상소부, 

[사실은 전부 생각 놀음입니다.]

若捨 顚倒見이면, 전도된 소견만 버린다면  若捨顚倒見약사전도견

則滅 世間想이로다. 곧 세간의 망상이 소멸하리라

 

世間 如陽焰하야, 세간은 아지랑이 같아서 以想 有差別이니. 以想=생각으로 차별함이 있을 뿐이라 

知 世住 於想이면, 세상이 망상에 머문 줄을 알면 遠離 三顚倒로다. 세 가지 전도를 멀리 여의리라

[三顚倒(삼전도)= 三倒(삼도) 1. 대상에 대해 그대로가 아닌 誤認(오인)을 하여 집착하는 想顚倒(상전도). 2. 그릇된 見解를 집착하는 見顚倒(견전도), 3. 그러한 心自體가 心顚倒(심전도). 想ㆍ見ㆍ心  가지 전도]

 

譬如 熱時焰에, 마치 더운 날의 아지랑이를 熱時焰열시염 世見 謂爲水나, 세상이 물이라고 보지만 

水 實無所有라. 물은 실로 있지 않다는 것을

智者 不應求ㄴ달하야, 지혜 있는 이는 응당히 그것을 구하려 하지 않지만

 

衆生 亦復然하야, 중생도 그와 같아서 世趣 皆無有니, 세상의 갈래가 다 있지 않고  

[世趣=세상 갈래,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가 각 취를 따라 온갖 차별하지만, 전부 있는 것이 아니다.] 

如焰 住於想이면,  아지랑이 같다는 생각에 머물면  無碍心 境界로다. 걸림없는 마음의 경계이리라

 

若離 於諸想하고, 만일 모든 생각을 떠나고 亦離 諸戲論하면, 온갖 희론 또한 여의어버리면 戲論희론, 戲 놀 희,

愚癡 着想者로, 어리석어 생각에 집착하는 이도 愚癡着想者우치착상자, 

悉令得 解脫이로다. 모두 해탈을 얻게 되리라  

遠離 憍慢心하며, 교만한 마음 멀리 여의고  憍慢心교만심

除滅 世間想하고, 세간의 망상도 제멸하여 住盡 無盡處가, 다함이 없는 곳과 다함이 있는 곳에 머묾이

是菩薩 方便이로다. 이것이 보살의 방편이리라 

[盡處ㆍ無盡處. 진에도 머물고 무진에도 머무는 그것이 보살의 방편이로다.]

6. 如夢忍  여몽인(꿈과 같은 진리) 

菩薩了世法의 一切皆如夢하야 非處非無處라 體性恒寂滅이로다

諸法無分別이라 如夢不異心하니 三世諸世間이 一切悉如是로다

夢體無生滅이며 亦無有方所라 三界悉如是니 見者心解脫이로다

夢不在世間이며 不在非世間이니 此二不分別하면 得入於忍地로다

譬如夢中見 種種諸異相인달하야 世間亦如是하야 與夢無差別이로다

住於夢定者는 了世皆如夢하야 非同非是異며 非一非種種이로다

衆生諸刹業과 雜染及淸淨을 如是悉了知 與夢皆平等이로다

菩薩所行行과 及以諸大願이 明了皆如夢하야 與世亦無別이로다

了世皆空寂이나 不壞於世法이 譬如夢所見 長短等諸色이니

是名如夢忍이라 因此了世法하면 疾成無碍智하야 廣度諸群生이로다

 

菩薩이 了世法의 一切 皆如夢하야, 보살은 세상의 법이 모두 꿈과 같음을 알아서  

非處 非無處라.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體性 恒寂滅이로다. 체성이 항상 적멸한 줄을 아네

[體性(체성)= 物心의 본질을 體性이라 하고 그 본체의 성품이 고쳐지거나 변하지 않는 것을 性이라 한다. 體 즉 性이다.]

 

諸法 無分別이라. 모든 법은 분별이 없어서 如夢 不異心이니, 꿈이 마음과 다르지 않은 듯하니 

三世諸世間이 一切 悉如是로다. 삼세의 모든 세간도모두 다 이와 같네

 

夢體가 無生滅이며, 꿈의 체성은 생멸이 없고 亦無有方所라. 방향도 처소도 역시 없듯이  

三界 悉如是니 見者 心解脫이로다. 삼계도 다 이와 같음을 보는 이는 마음이 해탈하리라

[三界(삼계)=삼유(三有) 중생이 윤회하는 욕계·색계·무색계의 세계. 1. 욕계는 탐욕이 많아 정신이 흐리고 거칠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어리석게 살아가는 중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욕계에 속하는 세계로는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 인간의 세계와, 천(天)의 세계로 나뉘는 6도(六道)가 있다.

2. 色界(색계)= 色天 · 色行天이라고도 한다. 淨妙(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로 四禪(사선, 四靜慮사정려)을 닦은 사람이 死後에 태어나는 天界, 또 이와 같은 有情의 생존을 말한다. 欲界 위에 있으며 果報(과보)의 優劣(우열) 즉 선정(禪定)이 깊은 정도, 수행의 경지에 따라 초선천(初禪天)·이선천(二禪天)·삼선천(三禪天)·사선천(四禪天)·정범천(淨梵天)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3. 무색계(無色界)=無色天 · 無色行天이라고도 한다. 물질을 초월한 세계로 물질적 비중이 큰 것(色想)을 厭離(염리)하여 四無色定을 닦은 이가 死後에 태어나는 天界. 또 그와 같은 有情의 생존을 말한다. 물질이 없으므로 場處(空間)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간적인 高下의 차별은 없지만 果報의 勝劣에 따라 4계급으로 나눈다. 곧 닦은 四無色定에 따라 이것을 空無邊處 · 識無邊處 · 無所有處 · 非想非非想處의 四無色界로 나누고 三界를 九地로 나눌 때는 후반의 넷을 四地라 한다.
그러므로' 空無邊處地'라 하여'地'자를 덧붙여서 부르기도 하고, 또 天界에 속하므로 '空無邊處天'이라 하여 '天'자를 첨가하여 부르기도 하며, 그 가운데 非想非非想處天은 世界(有情의 生存)의 最高位라 하여 有頂 · 有頂天이라고도 한다. 無色界의 有情들은 男根은 없으나 모두 남자이며 그 壽命은 차례로 2 · 4 · 6 · 8萬 劫을 산다고 한다. 또 分別論者는 無色界에도 細色이 있다고 주장한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삼계가 오직 일심(一心)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밝혔고, 일심이 미혹될 때 지옥·아귀·축생 등의 좋지 않은 세계를 윤회하게 됨을 밝혀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 삼계는 일심에서 비롯됨.)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갖기에 달렸음.)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시켰다.]

 

夢 不在世間이며, 꿈은 세간에 있지도 않고 不在 非世間이니, 세간 아닌 데도 있지 않거늘 

此二가 不分別이면, 이 두 가지를 분별치 않으면 得入 於忍地로다. 여몽인을 얻음에 들어가리라. 

 

譬如夢中에 , 種種諸異相인달하야 마치 꿈 속에서 갖가지 다른 여러 모양을 보듯이

世間亦如是하야 與夢 無差別이로다. 세간도 그와 같아서꿈과 더불어 다름이 없네  

 

住 於夢定者는, 꿈의 정(선정)에 머문 이는 世皆如夢하야, 세상이 다 꿈과 같아서 

非同 非是異며,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고 非一 非種種이로다하나도 여럿도 아닌 줄 了=알리라

 

衆生 諸刹業과, 중생과 모든 세계와 업이 雜染 及淸淨을, 물들었는지 청정한지 

如是悉了知 與夢 皆平等이로다. 이런 것들이 다 알고보면 꿈과 더불어 평등하네  [중생의 모든 세상과 업이 뒤섞이고 물들고 청정한 것을 꿈으로 더불어 다 평등함을 알도다. 꿈에서 횡재를 했지만, 꿈을 깨면 횡재했던 것도 사라지고, 또 안 좋은 것만 사라지고 없으면 좋겠는데, 좋은 것 안 좋은 것도 똑 같이 평등하게 그만 사라지고 없더라.]

 

菩薩所行 行과, 보살이 행할 바 행이나 及以諸大願이, 그리고 모든 큰 서원이 

明了皆如夢하야, 다 꿈과 같아서 분명히 與世亦無別이로다. 세상과 더불어 다름이 없더라.

 

了世 皆空寂이나, 세간이 다 공적한 줄 알지만 不壞 於世法이, 세간법을 무너뜨리지 않으니 

譬如 夢所見 長短等 諸色이니, 마치 꿈에서 길기도 짧기도 한 여러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세상 법= 세법은 不壞(불괴)입니다.] 

是名 如夢忍이라. 이것을 여몽인이라 하나니 因此 了世法하면, 이로 인해 세간법을 안다면 

疾成 無碍智하야걸림없는 지혜 속히 이루어  疾成無碍智질성무애지, 

廣度 諸群生이로다. 중생을 널리 제도하리라

['술몽쇄언'은 조선후기 불교학자 김대현, 월창거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구제하려는 뜻으로 저술한 종교서인데, 거기에는 불교라는 말 한마디도 없는데, 전부 불교의 이치로 여기의 十忍品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술몽쇄언'에 따르면, 인생은 시비선악(是非善惡)을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 따지려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인생 밖의 높은 위치에서 굽어보면서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말하고 '삼세육도(三世六道)'를 말하는 불가(佛家)의 눈에 비친 인생이란, 정말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무상하고 환상(幻像)에 불과한 인생에서, 부귀와 영화를 얻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과 악덕을 감행하는 일부 세상 사람들의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며, 
사랑과 미움과 분노와 기쁨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태도는 우스꽝스러운 노릇이라는 것을 크게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즉 어디까지나 권선징악의 설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분수를 편안하게 여기고 천명에 순종하면서, 착한 일을 닦고 맡은 직무(職務)를 부지런히 하라(安分順命 修善勤職)."고 말하였고, 사후(死後)에 죄업(罪業)이 산처럼 쌓이는 일이 없게 하라고도 하였다.
또 "복덕을 쌓아 자손에게 남겨 주라(積福德遺子孫).",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의(儀)로써 하고 남을 응대하는 것은 자비심으로 하라(處事以義應物以慈)."고도 하였다.

우리는 아직 來世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現世의 罪業이 과연 應報를 받아 삼세육도를 輪廻하게 된다는 것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한낱 꿈같고 허무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짧은 인생 일대를 선량하고 착실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올바른 견해일 것이다.-장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