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십인품(十忍品) 9
十二. 重頌 중송
1. 音聲忍 음성인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譬如世有人이 聞有寶藏處하고 以其可得故로 心生大歡喜하야
如是大智慧인 菩薩眞佛子가 聽聞諸佛法의 甚深寂滅相이로다
聞此深法時에 其心得安隱하야 不驚亦不怖하며 亦不生恐畏로다
大士求菩提에 聞斯廣大音하고 心淨能堪忍하야 於此無疑惑이로다
自念以聞此 甚深微妙法으로 當成一切智 天人大導師로다
菩薩聞此音하고 其心大歡喜하야 發生堅固意하야 願求諸佛法이로다
以樂菩提故로 其心漸調伏하야 令信益增長하야 於法無違謗이로다
是故聞此音에 其心得堪忍하야 安住而不動하야 修行菩薩行이로다
爲求菩提故로 專行向彼道하야 精進無退轉하야 不捨衆善軛이로다
以求菩提道로 其心無恐畏하야 聞法增勇猛하야 供佛令歡喜로다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宣其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이 때 보현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으로 말했다.
譬如世有人이 마치 세간의 어떤 사람이 聞 有寶藏處하고, 보물창고가 있다고 듣고 聞有寶藏處문유보장처
以其 可得故로,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心生 大歡喜ㄴ달하야, 마음에 큰 기쁨을 느끼네
如是大智慧인, 이렇게 큰 지혜를 지닌 菩薩眞佛子가 보살이 참된 부처님 아들이라
聽聞 諸佛法의 모든 부처님 법 심오하고 甚深 寂滅相이로다. 적멸한 모습 聽聞=청해 듣나니
[참으로 지혜있는 진정한 보살은 진정한 불자이고, 또 佛法의甚深寂滅相을 들으려고 한다.]
[적멸(寂滅)= 약하여 滅이라고도 한다. 迷의 세계를 영원히 解脫한 경계로서 涅槃(열반) 즉 nirvana라고도 하는데 특히 小乘의 涅槃을 가리키기도 한다. 열반의 경계가 無上의 즐거운 곳임을 뜻하여 寂滅爲樂(적멸위락)이라고 한다. 또 釋尊(석존)께서 깨달음을 여신 곳, 곧 화엄경을 說하신 장소를 寂滅道場(적멸도량)이라고 하는데, 道場은 '깨달음의 道(菩提)를 성취한(곧 成道의) 장소'란 뜻이다. 인도 마갈타국 가야성 남쪽 尼蓮禪河(니련선하) 근처의 菩提樹下를 석존의 寂滅道場이라 한다.
[제법적멸상(諸法寂滅相)= 모든 법의 實相은 言語道斷(언어도단)하여 마음의 行處(행처)가 없기 때문에 寂滅이라 한다]
聞此深法 時에, 이 깊은 법을 들었을 때 其心得 安隱하야, 그 마음이 안은함을 얻어
不驚 亦不怖하며,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고 驚 놀랄 경, 怖 두려워할 포
亦不生 恐畏로다. 두려움도 생기지 않네 恐 두려울 공, 畏 두려워할 외
大士求菩提에, 大士= 보살은 보리를 구하고자 聞斯 廣大音하고, 이 광대한 소리=진리의 소리를 듣고 斯 이 사,
心淨 能堪忍하야, 마음 청정히 능히 감당하고 견디어 堪忍감인=어려움 따위를 참고 견딤
於此無疑惑이라. 거기에 아무런 의혹이 없네 [견디는 마음ㆍ참는 마음이 못받아들인다ㆍ받아들일 수가 없다.]
自念 以聞此 甚深 微妙法으로, 스스로 생각하되 이렇듯 심오하고 미묘한 법을 듣고
當成 一切智 天人 大導師로다. 일체지를 마땅히 이루어 인천의 대도사가 되리라 하네
[이 경지의 내용을 깨닫지 못하고ㆍ느끼지 못하고ㆍ알지 못한다면, 인천의 대도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菩薩이 聞此音하고, 보살은 이 음성(진리의 말씀)을 듣고 其心 大歡喜하야, 그 마음 크게 기뻐하며
發生 堅固意하야, 견고한 뜻을 일으켜 願求 諸佛法이로다. 모든 불법 구하기 서원하네
以樂 菩提故로, 보리=깨달음을 좋아하는 까닭에 其心 漸調伏하야, 그 마음 점차 조복시켜 漸 점점 점, 적실 점
令 信益增長하야, 믿음이 더욱 늘게 하여 信益增長신익증장 [모르니까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於法에 無違謗이라. 법을 거스르거나 비방치 않네 違 어길 위, 어긋날 위, 謗 헐뜯을 방
[調伏(조복)= 내면적으로는 자기의 심신을 제어(制御)하여 악덕을 떨쳐 버리는 것을 말하고, 외면적으로는 적의(敵意)를 가진 자를 교화하여 나쁜 마음을 버리게 하는 것.]
是故 聞此音에, 그렇기에 이 음성(진리의 말씀)을 듣고 其心得堪忍하야, 그 마음이 감당하고 견딜 수 있어서
安住而不動하야, 안주하여 흔들리지 않고 修行 菩薩行이로다. 보살행을 닦아 행하네
爲求菩提故로, 보리를 구하기 위해 專行 向彼道하야, 오롯이 행하며 그 도(보리, 깨달음)를 향하고
精進 無退轉하야, 물러서는 일 없이 정진하며
不捨衆善軛이로다. 온갖 선한 멍에 버리지 않네 軛 멍에 액
[善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멍에 없이 소를 마음대로 놔두면, 남의 집이나 논 밭에 들어가서 곡식을 막 뜯어먹고 그럽니다.
선 멍에= 善軛(선액), 선에 멍에 액을 넣은 것이 너무너무 절묘합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선의 멍에가 필요합니다.]
以求 菩提道로, 보리를 구하는 까닭에 其心 無恐畏하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恐 두려울 공, 畏 두려워할 외
聞法 增勇猛하야, 법을 들으면 더욱 용맹히 增勇猛증용맹, 增 불어날 증, 더할 증,
供佛令歡喜로다. 부처님 공양하여 기쁘게 하네
2. 順忍 순인
如有大福人이 獲得眞金藏에 隨身所應服하야 造作莊嚴具ㄴ달하야
菩薩亦如是하야 聞此甚深義에 思惟增智海하야 以修隨順法이로다
法有亦順知하며 法無亦順知하야 隨彼法如是하야 如是知諸法이로다
成就淸淨心하야 明徹大歡喜하며 知法從緣起하야 勇猛勤修習이로다
平等觀諸法하야 了知其自性하고 不違佛法藏하야 普覺一切法이로다
志樂常堅固하야 嚴淨佛菩提하며 不動如須彌하야 一心求正覺이로다
以發精進意하고 復修三昧道호대 無量劫勤行하야 未曾有退失이로다
菩薩所入法이 是佛所行處라 於此能了知하야 其心無厭怠로다
如無等所說하야 平等觀諸法하야 非不平等忍으로 能成平等智로다
隨順佛所說하야 成就此忍門에 如法而了知호대 亦不分別法이로다
如有大福人이, 마치 어떤 큰 복있는 사람이 獲得 眞金藏에, 진금 창고를 획득하여 獲得획득 眞金藏진금장,
隨身 所應服하야, 몸에 입기에 마땅하게 造作 莊嚴具ㄴ달하야, 장신구를 만들듯이
[몸을 꾸미는데 필요한 대로, 所應服 금으로 장신구를 맞추어 입는 것]
菩薩도 亦如是하야 보살도 그와 같아서 聞 此甚深義에, 이 심오한 이치를 듣고
[此甚深義= 無上 甚深微妙法의 도리를 들음에]
思惟增智海하야, 사유하고 지혜바다를 키워서 思惟增智海사유증지해,
以修隨順法이로다. 수순하는 법을 닦음이로다.
法有 亦順知하며, 법이 있음에 또한 따라서 알고 法無 亦順知하야, 법이 없음에도 또한 따라서 알며
隨 彼法如是하야, 저 법이 이와 같음을 따라 如是知 諸法이로다. 그와 같이 모든 법을 앎이로다.
淨心 成就淸하야, 청정한 마음을 성취하고
明徹 大歡喜하며 명철하니 크게 기뻐하며 明徹명철= 사리가 분명하고 투철함
知 法從緣起하야, 법이 인연에서 생기는 줄 알아서
勇猛勤修習이로다. 용맹히 힘써 닦아 부지런히 익힘이로다 勇猛勤修習용맹근수습.
[거듭해서 공부하고 읽다 보면, 이해가 자꾸 깊어지는 그것이 從緣起입니다.]
平等觀 諸法하야, 모든 법을 평등히 살피고 了知 其自性하고, 그 자성을 분명히 알며
不違 佛法藏하야, 부처님의 법장 거스르지 않고 普覺 一切法이로다. 일체법을 두루 깨닫네
志樂이 常堅固하야, 세운 뜻의 즐거움이 항상 견고하고 志 뜻 지,
嚴淨 佛菩提하며, 불보리를 엄정히 하여 不動 如須彌하야, 흔들리지 않음이 수미산 같아
一心 求正覺이로다. 일심으로 정각을 구하네
以發 精進意하고, 정진의 뜻을 세우고 復修 三昧道호대, 또 삼매의 도 닦으며
無量劫 勤行하야, 무량 겁을 힘써 부지런히 행하기에 未曾有退失이로다. 일찍이 물러선 적이 없네
菩薩의 所入法이, 보살이 들어간 바 법은 是佛所行處라. 부처님 행하신 곳이라
於此能了知하야, 이것을 분명히 알기에
其心無厭怠로다. 그 마음에 게으름이 없네 厭 싫어할 염, 怠 게으를 태,
[菩薩의 所入法이 是佛所行處= 성불이 목적지가 아니라, 보살행을 하려고 성불하는 것이다.]
如無等所說하야, 무등한= 견줄 데 없는 이가 말씀하신 대로
平等觀 諸法하야, 평등하게 모든 법을 非 不平等忍으로, 평등치 못한 인이 아님을 관찰하여
能成 平等智로다. 능히 평등한 지혜를 이루네 [능히 평등지를 이루지 아니함이 없더라.]
[平等忍으로서 平等智를 이룬다.]
隨順 佛所說하야, 부처님 말씀하신 대로 수순해서, 成就 此忍門에, 이 인(順忍)의 문을 성취하고
如法而了知호대, 여법하게 요지하며 亦不分別法이로다.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로다
3. 無生忍 무생인
三十三天中에 所有諸天子가 共同一器食호대 所食各不同하니
所食種種食이 不從十方來라 如是所修業으로 自然咸在器니
菩薩亦如是하야 觀察一切法이 悉從因緣起하야 無生故無滅이로다
無滅故無盡이요 無盡故無染이니 於世變異法에 了知無變異하며
無異則無處요 無處則寂滅이니 其心無染着하야 願度諸群生이로다
專念於佛法하야 未嘗有散動하고 而以悲願心으로 方便行於世로다
勤求於十方하야 處世而不住하며 無去亦無來하야 方便善說法이로다
此忍最爲上이라 了法無有盡하야 入於眞法界호대 實亦無所入이로다
菩薩住此忍에 普見諸如來가 同時與授記니 斯名受佛職이로다
了達三世法의 寂滅淸淨相이나 而能化衆生하야 置於善道中이로다
三十三天 中에, 삼십삼천 가운데 所有 諸天子가 있는 바 모든 천자들이
共同 一器食호대, 다같이 한 그릇으로 음식을 먹되 所食 各不同이라. 먹는 음식은 제각기 다르며,
[같은 그릇에 똑같은 밥을 먹지만, 그 사람의 수행이 어떠냐에 따라서 “各不同이다.”]
所食 種種食이, 먹는 갖가지 음식이 不從 十方來라. 시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如是所修業으로, 그들이 닦은 업이 自然 咸在器니라. 그릇에 자연히 담기는 것이듯이 咸在器함재기
[이와 같은 닦은바 업으로서, 자연히 다 각자의 그릇에 있다.]
[같은 밥을 먹어도, 각자 닦은 업대로 먹는 것이고, 한 그릇에 같은 밥으로 담겨 있는 것 같지만 각각 다르다는 뜻,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 그릇 따라서 이익을 얻는 것이지요.]
菩薩도 亦如是하야 보살도 그와 같아서 觀察一切法이 일체법을 관찰하되
悉從因緣 起하야, '모두가 인연에서 일어나서 無生故 無滅이로다. 생함이 없는 까닭에 멸함도 없더라.
無滅故 無盡이요. 멸이 없으니 다함도 없음이요. 無盡故 無染이니, 다함이 없으니 물들지 않고
於世 變異法에, 세간의 변하는 법에서
了知 無變異하며, 변함이 없음을 요지하며 [변하지 아니하는 도리가 있음을 요지한다.]
無異則 無處요, 변함이 없으니 처소가 없고 無處則 寂滅이니, 처소가 없으니 적멸하다' 하여
['변이함이 없는 법에 무변이의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요지하며,
변이가 없는 것은 처소가 없음이요. 처소가 없는 것은 적멸함이다'
선 문에 只看棚頭(지간붕두)弄傀儡(농괴뢰)抽牽全籍裏頭人(추견전차리두인) 다만 只, 사다리 棚,
무대에서 춤추는 인형만 보이지만, 움직임은 안에 있는 사람의 조작이다.
그 바탕=본질 → 무대에서 인형이 춤추는 것은 인형 부리고 조작하는 본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이치,]
其心無染着하야, 그 마음 물드는 일 없이 願 度諸群生이로다. 중생을 제도하기 서원하네
專念 於佛法하야, 불법에 전념하여 專 오로지 전,
未嘗有散動하고, 산란히 흔들린 적 없이 未 아닐 미, 嘗 맛볼 상, 散 흩을 산, 비틀거릴 산, 動 움직일 동
[일찍이 散動= 부산하게 이 생각 저 생각,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而以悲願心으로, 대비의 서원하는 마음으로 [자비와 원의 마음으로]
方便行於世로다. 세간에서 방편을 행하며, 勤求 於十方하야, 십력(부처님)을 힘써 구하여
處世 而不住하며, 세간에 있으되 머물지 않고 [中道]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한은 세상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處世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住해서 눌러붙어 앉아 있으면 공부는 언제합니까? 여러분이 전부 당면한 일들입니다.
無去 亦無來하야,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이 方便 善說法이로다. 방편으로 법을 잘 설하네
此忍 最爲上이라. 이 인(無生忍)이 가장 높아서 了法 無有盡하야, 법이 다함 없이 잘 환히 알아서
[어느 忍이 높고 어는 忍이 낮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실상을 이런 시각에서 보고 저런 각도에서 보고,
또 이렇게도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고 또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우리를 깨우쳐 주려는 노력이 이 十忍品입니다.
화엄경을 잘 연구해 보면 한 품ㆍ한 품이 하나의 경전으로써 충분한 것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入 於眞法界호대, 진실한 법계에 들어가되 實亦無所入이로다. 실로 또한 들어간 바도 없네
[들어가되 들어가는 바 없고, 들어가는 바 없이 들어간다.]
菩薩 住此忍에, 보살은 이 무생인에 머물러 普見 諸如來가, 모든 여래를 두루 만나면
同時 與授記니, 동시에 수기를 주시나니 與授記여수기,
斯名 受佛職이로다. 이를 부처님에게서 직책 받는다 하네 斯 이 사, [부처의 소임을 받게 된다는 뜻]
[同時與授記니, 동시에 수기 줌을 普見= 널리 보나니, 이것의 이름이 受佛職= 부처의 직책을 받는 것이다.]
了達 三世法의 寂滅 淸淨相이나, 삼세법의 적멸하고 청정한 모양에 요달하여
而能化衆生하야, 능히 중생들을 교화하고
置 於善道中이로다. 선한 길로 인도하네 [善道中에 데려다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