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십인품(十忍品) 4
㉯ 譬喩 비유
譬如谷響이 從緣所起하야 而與法性으로 無有相違하고 令諸衆生으로 隨類各解하야 而得修學하며
如帝釋夫人인 阿修羅女를 名曰舍支라 於一音中에 出千種音호대 亦不心念하고 令如是出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入無分別界하야 成就善巧隨類之音하야 於無邊世界中에 恒轉法輪이니라
譬如 谷響이, 비유컨대 마치 골짜기의 메아리는 谷 골짜기, 계곡 곡 響 울릴 향
從緣所起하야, 인연따라 일어나 [골짜기라는 조건으로부터 일어난 바와 같아서,]
而與法性으로, 법의 성품에 無有相違하고, 어긋나는 일이 없이 相違상위= 서로 다르거나 어긋남
[법성(法性) dharmatā 법의 體性이란 뜻.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 또는 존재의 진실로서 불변하는 본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법성(法性)은 아비달마불교에서 불설(佛說)을 불설로서 인정하게 하는 기준의 하나였다.
우주의 모든 현상이 지니고 있는 진실 불변한 본성. 眞如法性 · 眞法性 · 眞性이라고도 하고 眞如의 다른 이름이다.
智度論 卷三十二에는 諸法에 대한 각각 相(현상의 차별적인 相)과 實相이 있다. 예컨대 相은, 초를 불에 닿게 하면 녹아버려 이전의 相을 잃어 버리듯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분별하여 찾아보려고 하면 끝내 찾아낼 수 없다(不可得). 찾아낼 수 없으므로 空이며, 곧 그 空인 것이 諸法의 眞相이라고 설명한다.
空인 것이 모든 差別相에 대해 전부 동일하므로 그런 의미에서 如라 하고, 모든 相이 똑같이 空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空을 法性이라고 하며, 또한 예컨대 黃石 속에 金의 성질이 있듯이 일체 世間法 속에 열반의 법성이 있어서 이 諸法 본연의 實性을 法性이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는 법성을 如來藏과 구별하여 광범위하게 일체법의 實性이란 뜻으로 사용하지만, 여래장과 같은 뜻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
令諸衆生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隨類各解하야, 품류에 따라 제각기 이해하여 而得修學하며, 배움을 얻게 하며,
[모든 중생들이 다 각자 나름대로 이해할 뿐입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이해하고 저 나름대로 설명 할 뿐이지,
정확하게 맞게 설명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제 깜냥대로 엉터리로 설명했을 뿐인 隨類各解입니다.]
如帝釋夫人이 阿修羅女를, 또 제석천왕의 부인 아수라녀는
名曰舍支라. 이름을 사지라 하는데, 名曰舍支명왈사지.
於一音 中에 出 千種音호대, 한 가지 음성에서 천 가지 소리를 내되
亦不 心念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令 如是出인달하야, 그렇게 나오게 하듯이
[아수라(阿修羅)= 阿 언덕 아, 修 닦을 수, 羅 그물 라, 선신에서 악신으로 다시 전신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인간도 원래는 선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수라(阿修羅)는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착한 선신(善神)인데 나중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으로 변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증오심으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전신(戰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아소라(阿素羅) 아소락(阿素洛) 아수륜(阿須倫) 수라(修羅)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의역으로는 비천(非天) 비류(非類) 부단정(不端正) 등으로 말하며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하나로서 귀신의 한 동아리로 본다.
윤회의 6취 즉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중에 싸움을 일삼는 귀신으로 삼면육부(三面六臂: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 개)인 귀신을 `아수라` 라고도 한다. 이를 비유하여 `阿修羅界` `阿修羅王` `阿修羅道` `阿修羅女` `阿修羅場` 등이 있으며, 수미산(須彌山) 아래 바다 밑에 살며 수억 만 리의 크기에 수백억 년 장수하는 귀신으로 모습도 흉측하기 그지없다. 아수라가 때때로 하늘(帝釋)과 싸우는데,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오고, 반대로 지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그 승패를 가르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들이 선행을 잘 하면 제석(하늘의 힘)이 강해져 풍요와 평화가 깃들고, 반대로 못된 짓이나 하고 불의가 만연되면 하늘이 지게 되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入 無分別界하야, 분별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
成就 善巧隨類之音하야, 선교=훌륭하게 품류를 따르는 음성을 성취하여 善巧隨類선교수류
於無邊世界 中에, 끝없는 세계에서 恒轉法輪이니라. 언제나 법륜을 굴립니다.
㉰ 隨機廣說 수기광설(근기를 따라서 널리 설하다.)
此菩薩이 善能觀察一切衆生하야 以廣長舌相으로 而爲演說호대
其聲이 無碍하야 遍十方土하야 令隨所宜하야 聞法各異라 雖知聲無起나 而普現音聲하며
雖知無所說이나 而廣說諸法하며 妙音平等이나 隨類各解하야 悉以智慧로
而能了達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七如響忍이니라
此菩薩이 이 보살은 善能觀察 一切衆生하야, 일체 중생을 능히 잘 관찰하여
以廣長舌相으로, 넓고 긴 혀로 而爲演說호대, 연설하는데
[廣長舌(광장설)= 부처님의 32상(相)의 하나이며, 넓고 길고 부드럽고 연하며 붉고 엷어서 진리를 설하기에 좋은 혀, 설법을 뛰어나게 잘하고 또한 모든 설법이 진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부처님의 32상(三十二相)
1・ 족하안평입상(足下安平立相) : 발바닥이 땅에 안주하여 편평하다
2・ 족하이륜상(足下二輪相) : 발바닥에 천폭윤보(天輻輪寶)의 육문(肉紋)이 있다
3・ 장지상(長指相) : 손가락이 길다
4・ 족근광평상(足跟廣平相) : 발뒤꿈치가 넓고 편평하다
5・ 수족지만망상(手足지縵網相) : 손가락․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다
6・ 수유연상(手柔軟相) : 손발이 부드럽다
7・ 족부고만상(足趺高滿相):발등이 높고 圓滿하다
8・ 이니연전상 : 넓적다리가 사슴과 같이 섬세하다
9・ 정립수마슬상 : 일어서면 양손이 무릎보다 길다
10・ 음장상(陰藏相) : 말의 성기처럼 성기가 감추어진 모습
11・ 신광장등상(身廣長等相) : 몸의 균형이 잡혀 있다
12・ 모상향상(毛上向相) : 몸의 털이 모두 위를 향해 나 있다
13・ 일일공일모생상(一一孔一毛生相) : 털이 한 구멍에서 한 개가 나고 오른쪽으로 돌고 있다
14・ 금색상(金色相) : 피부가 매끄러우면서 황금과 같다
15・ 장광상(丈光相) : 신광(身光)이 사면을 비춘다
16・ 세박피상(細薄皮相) : 피부가 얇고 곱다
17・ 칠처융만상(七處隆滿相) : 양손․양발․양어깨․목덜미 등 일곱 군데의 살이 높이 솟아 있다
18・ 양액하융만상(兩腋下隆滿相) : 양겨드랑이 밑의 살이 불룩하고 부드럽다
19・ 상신여사자상(上身如獅子相) : 상반신이 사자와 같이 위풍당당하다
20・ 대직신상(大直身相) : 몸이 단정하다
21・ 견원만상(肩圓滿相) : 어깨끝이 둥글고 풍만하다
22・ 사십치상(四十齒相) : 이가 40개 있다
23・ 치제상(齒齊相) : 이가 고르다
24・ 아백상(牙白相) : 치아가 희고 깨끗하다
25・ 사자협상(獅子頰相) : 두 볼이 두둑하다
26・ 미중득상미상(味中得上味相) : 최상의 미감(味感)을 지녔다
27・ 대설상(大舌相) : 혀가 넓고 길어 내밀면 이마부분까지 닿는다
28・ 범성상(梵聲相) : 음성이 낭랑하다
29・ 진청안상(眞靑眼相) : 눈동자가 감청색이다
30・ 우안첩상(牛眼睫相) : 눈썹이 소의 눈썹처럼 길게 정돈되어 있다
31・ 정계상(정계상) : 정수리의 살이 상투모양으로 불룩하다
32・ 백모상(白毛相) : 미간에 오른쪽으로 감긴 흰 털이 있고, 그곳에서 빛을 발한다.]
其聲이 無碍하야, 그 음성이 걸림없이 遍十方土하야, 시방에 두루하여
令隨所宜하야, 마땅한 대로 聞法各異니라. 각각 다르게 법을 듣게 합니다.
雖知 聲無起나, 비록 소리는 일어남이 없는 줄 알지만 而普現 音聲하며, 음성을 널리 나타내고,
雖知 無所說이나, 비록 말할 것이 없는 줄 알지만 而廣說 諸法하며, 모든 법을 폭넓게 설하니
妙音 平等이나, 묘음이 평등하여 隨類 各解하야, 품류에 따라 각각 이해하되
悉以智慧로, 모두가 지혜로 而能 了達하나니, 능히 요달하나니,
是名 菩薩摩訶薩의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第七如響忍이니라. 일곱번째 메아리와 같은 인=如響忍이라 합니다.
九. 如影忍 여영인
㉮ 雙遮와 雙照 쌍차와 쌍조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如影忍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非於世間生이며 非於世間沒이며 非在世間內며 非在世間外며
非行於世間이며 非不行世間이며 非同於世間이며 非異於世間이며 非往於世間이며
非不往世間이며 非住於世間이며 非不住於世間이며 非是世間이며 非出世間이며
非修菩薩行이며 非捨於大願이며 非實非不實이라
雖常行一切佛法이나 而能辦一切世間事하며 不隨世間流하고 亦不住法流하나니
[흔히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불교나 유교나 도교나 예수교나 혹은 헤겔철학이나 칸트철학과 같지 않느냐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예수교나 유교나 도교나 회교나 또는 어떤 철학이든지 간에 각기 자기의 독특한 입장이 있으면 그 입장을 고집하여 타협할 줄 모릅니다. 그것은 변견에 집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중도사상을 모를 때는 유교는 유교, 불교는 불교, 무슨 철학은 무슨 철학, 유신론이든지 유물론이든지 각각 다 다르지만 중도사상을 바로 알게 되면「금강경」에서 '一切皆是佛法'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중도란 일체만법, 일체 모든 진리를 융합한 우주의 근본원리임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알고 보면 예수교도 우리 불교요, 유교 ․ 도교도 우리 불교입니다. 결국 불교를 바로 알려면 부처나 마구니를 함께 다 버려야 합니다. 부처와 마구니가 서로 옳다고 싸우면 양변에 집착했기 때문에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참으로 우리 불교를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부처와 마구니를 다 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중도사상은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나 모순 상극된 상대적인 차별을 다 버리고 모든 것이 융합된 절대 원융자재한 대원리입니다. 이 사바세계의 현실은 모순 상극이어서 곳곳에 언제나 싸움이 그칠 사이 없습니다. 그 싸움 때문에 苦가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순 상극인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 걸림없는 자유의 세계, 해탈,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원통자재한 중도에 입각하여야 합니다. 양변을 떠나 가운데(中)도 머물지 아니하는 중도사상만이 오직 참다운 극락세계를 이 현실에 실현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수(賢首)대사가 화엄종을 크게 일으켜 오교장(五敎章)을 지었는데 그것은 화엄종의 개종선언서(開宗宣言書)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시길,
'정념(情念)을 버리니 정리(正理)가 스스로 나타나고 정리(正理)를 따르니 정념(情念)이 스스로 없어진다.
反情(반정)에 理自顯(이자현)이요 據顯理(거현리)에 情自亡(정자망)이니라.'
일체 차별 망견(妄見)을 버리니 중도의 근본원리인 바른 이치(正理)가 스스로 나타나고, 중도의 근본원리인 바른 이치(正理)를 따르니 일체 차별 망견이 스스로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일체 차별 망견을 버린다 함은 모든 일체 양면을 다 버리는 쌍차(雙遮)를 말하며, 정리(正理)가 나타난다 함은 모든 양변을 버려서 모든 양변이 융합하여 중도원리가 드러난다는 쌍조(雙照)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리(正理)를 따르니 일체 차별 망견이 스스로 없어진다 함은 모든 것을 융합하는 쌍조(雙照)의 중도원리에서 보니 일체 차별 망견이 스스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쌍차(雙遮), 즉 양변을 버리고나니 쌍조(雙照), 즉 양변을 서로 융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으며, 쌍조(雙照), 즉 양변을 완전히 융합하니 쌍차(雙遮), 즉 양변을 버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묘한 표현입니다.
앞에서 말한 '정념을 버린다'함을 차(遮), 즉 막는다 버린다이며 '정리를 따른다'함을 표(表), 즉 드러난다 융합한다고 하여 화엄종에서는 차(遮)와 표(表)를 가지고 중도를 많이 표현합니다. 차(遮)란 쌍차(雙遮)를, 표(表)란 쌍조(雙照)를 말합니다. 이것을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드러난다는 말이며 해가 드러나면 구름이 흩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망견을 다 버리고 나면 자연히 쌍조(雙照)의 바른 이치가 드러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바른 이치가 드러나면 양변의 일체 망견을 버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쌍차쌍조(雙遮雙照)란 말이 본래 영락경(瓔珞經)에 나오며 부처님께서 자세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천태종의 지자(智者)대사가 중도를 표현하는 용어로서 그대로 인용해 썼습니다. 그 뒤 화엄종의 현수(賢首)대사가 같은 중도원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쌍차쌍조를 그대로 쓰려고 하니 지자대사를 추종하는 것 같아서 쌍차쌍조란 말 대신에 쌍민쌍존(雙泯雙存)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것은 또 어디서 연유되느냐 하면 쌍비쌍역(雙非雙亦)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열반경」에서 불성을 얘기하시면서 중도를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佛子야 불자여,
云何 爲菩薩摩訶薩의 如影忍고?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그림자 같은 인=如影忍이라 하겠는가?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非於世間 生이며, 세간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非於世間 沒이며, 세간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非在世間 內며, 세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非在世間 外며, 세간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非行 於世間이며, 세간에 행하는 것도 아니고 非不行 世間이며, 세간에 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非同 於世間이며, 세간과 같지도 않고 非異 於世間이며, 세간과 다르지도 않으며,
非往 於世間이며, 세간에 가는 것도 아니고 非不往 世間이며, 세간에 가지 않는 것도 아니며,
非住 於世間이며, 세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非不住 於世間이며, 세간에 머물지 않는 것도 아니며,
非是世間이며 세간도 아니고 非出世間이며, 출세간도 아니며,
非修 菩薩行이며 보살행을 닦는 것도 아니고 非捨 於大願이며, 대원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非實非不實이라. 진실한 것도 진실하지 못한 것도 아닌지라
雖常行 一切佛法이, 비록 항상 일체의 불법을 행한다지만
[비록 수 雖가 나오면 항상 中道이론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하면 됩니다.]
而能辦 一切世間事하며, 일체의 세간사를 분별하여 辦 힘쓸 판, 힘쓸 변= 마련한다. 갖춘다. 구족한다는 뜻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일체 불법을 행하면, 세상과 반대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출세간사, 일체 불법”을 연꽃이라고 본다면, 그 연꽃은 “일체 세간사”라고 하는 진흙탕에서 피는 것입니다.
즉 '일체 세간사'라고 하는 진흙탕이 없으면, '일체 불법' 이라고 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다 부정되고,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다 긍정이 되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치우치면 잘 못 되는 것입니다.]
不隨 世間流하고, 세간의 흐름을 따르지도 않고 亦不住 法流하나니, 법의 흐름에 머물지도 않나니,
[법은 “출세간사ㆍ일체 불법” 또 “세간류”는 것은, “일체 세간사” 세간을 따라 흐르지도 않는다= 그 세간을 따라 흐른다면, 연꽃이 진흙탕에서 피지만, 여기저기 그냥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고, 연꽃의 고결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피지만, 그 고결함은 진흙을 벗어나서는 도대체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항상 일체 불법을 행하지만, 일체 세간 사를 능히 구족하고 갖추고 살며,”
“세간을 따라서 흐르지도 않고, 법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