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십정품(十定品) 30
(24) 修行勸誘 수행권유
㉯ 應常精進하야 無有休息하며 應觀自身의 善根鮮少하며 應勤增長他諸善根하며
應自修行一切智道하며 應勤增長菩薩境界하며 應樂親近諸善知識하며
應與同行으로 而共止住하며 應不分別佛하며 應不捨離念하며
應常安住平等法界하며 應知一切心識如幻하며 應知世間諸行如夢하며
應知諸佛의 願力出現이 猶如影像하며 應知一切諸廣大業이 猶如變化하며
應知言語가 悉皆如響하며 應觀諸法이 一切如幻하며
應知一切生滅之法이 皆如音聲하며 應知所往一切佛刹이 皆無體性하며
應爲請問如來佛法호대 不生疲倦하며 應爲開悟一切世間호대 勤加敎誨하야 而不捨離하며
應爲調伏一切衆生호대 知時說法하야 而不休息이니라
應常 精進하야, 응당 항상 정진하기를 無有 休息하며, 쉬지 말 것이며,
應觀 自身의 善根鮮少하며, 응당 자기 몸의 선근이 적음을 살피고, 鮮 적을 선, 鮮少선소= 적다, 드물다
應勤 增長 他諸善根하며, 응당히 남의 선근을 증장하기를 힘써 권하며, 應勤응권 增長증장
[선행을 많이 짓도록 권선하는 것, 옛 기록에 보면 화주ㆍ시주ㆍ도반ㆍ별좌로 권선하는 화주를 주지보다 앞에 씁니다.]
應自修行 一切智道하며, 응당히 스스로 일체지의 도를 수행하고,
應勤增長 菩薩境界하며, 응당히 보살의 경계를 힘써 증장시키며,
應樂親近 諸善知識하며, 응당히 모든 선지식 친근하기를 좋아하여
應與同行으로, 응당히 더불어 함께 행하면서 而共止住하며, 함께 머물며,
應不分別 佛하며, 응당 부처를 분별하지도 않고 應不捨離 念하며, 여의려는 마음도 갖지 않아서
應常安住 平等法界하며, 평등법계에 응당히 늘 안주하여
應知 一切心識如幻하며, 일체의 심식이 허깨비 같은 줄 알고,
[삼라만상은 '마음이 분별하고 인식하는=心識' 영역 바깥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음이 분별하고 인식한 心識' 일 뿐이다. 유식종(唯識宗 =法相宗)에서는 유심을 성립시킬 적에 만유의 현상에 속한 심식(心識)에 대하여 입론(立論)하였다.
심식(心識)= 小乘의 俱舍(구사)에서는 心과 識을 同體異名(동체이명)이라 보지만, 大乘의 唯識宗(유식종)에서는 그것을 別體(별체)로 보았다. 곧 唯識(유식)에서는 제8識을 心, 前5識과 제6意識은 識이라 한다.]
應知 世間諸行 如夢하며, 세간의 모든 행이 응당 꿈 같은 줄 알고,
應知 諸佛의 願力出現이 猶如影像하며, 부처님이 원력으로 출현하심이 그림자 같은 줄 알고, 猶如影像유여영상
應知 一切諸廣大業이, 광대한 모든 업들이 猶如變化하며, 변화와 같은 줄 응당히 알고,
應知 言語가 悉皆如響하며, 언어가 모두 메아리 같은 줄 당연히 알고, 響 울림 향, 울릴 향
應觀 諸法이 一切如幻하며, 법이란 모두가 허깨비 같음을 응당 관찰하고,
應知 一切生滅之法이 皆如音聲하며, 모든 생멸의 법이 모두 음성과 같은 줄을 당연히 알며,
[音聲(음성),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생야일편부운기사야일편부운멸)이지만, 구름이 흘러가고,사라지고ㆍ일어나고, 사라지고ㆍ일어나고, 사라지는 것과 같이 生滅之法이 다 그런 겁니다. 말 한번 나갔다하면 금방 없어지고 없어지는 겁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생사 대사도 음성과 같습니다.
천하의 허망한 것이 음성이요. 천하의 허망한 것이 인생사요. 천하의 허망한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해서 그 한 순간의 어떤 문제를 물고 늘어져서, 옳다ㆍ그르다, 좋다ㆍ나쁘다고 하는 겁니다.]
應知 所往一切佛刹이, 응당히 찾아가는 모든 부처님 세계가 皆無體性하며, 다 체성이 없는 줄 알고,
應爲 請問如來 佛法호대, 여래께 불법 여쭙기를 不生疲倦하며, 당연히 주저하지 말며,
應爲 開悟一切世間호대, 일체 세간을 깨우치기 위해 勤加敎誨하야, 응당 더욱 힘써 가르치고 勤加敎誨근가교회,
而不捨離하며, 버리지 말 것이며,
應爲 調伏一切衆生호대, 응당히 일체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해
知時 說法하야, 때를 알고(때에 맞추어) 법을 설하기를
而不休息이니라.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때에 맞춰서 적절하게 알맞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 지혜입니다.]
(25) 結 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修行普賢之行하며 如是圓滿菩薩境界하며 如是通達出離之道하며
如是受持三世佛法하며 如是觀察一切智門하며 如是思惟不變異法하며 如是明潔增上志樂하며
如是信解一切如來하며 如是了知佛廣大力하며 如是決定無所碍心하며 如是攝受一切衆生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如是修行 普賢之行하며, 이렇게 보현행을 수행하고
如是圓滿 菩薩境界하며,이렇게 보살 경계를 원만히 하고 [원만(圓滿)= 모자람이 없이 周遍充足(주변충족)하다는 뜻]
如是通達 出離之道하며, 이렇게 출리의 도에 통달하고
如是受持 三世佛法하며, 이렇게 삼세의 부처님 법을 받아 지니고
如是觀察 一切智門하며, 이렇게 일체지의 문을 관찰하고
如是思惟 不變異法하며, 이렇게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법을 생각하고 思惟不變異法사유불변이법
[不變異法= 세상이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생ㆍ멸, 생ㆍ멸하는 가운데 또 변이하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도리를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일러준 것이 정암 부처님의 큰 공덕 중의 하나입니다.]
如是明潔 增上志樂하며, 이렇게 더욱 높은 뜻의 즐거움을 맑게 하고 潔 깨끗할 결, 맑을 결, 增 불어날 증, 志 뜻 지,
如是信解 一切如來하며, 이렇게 모든 여래를 믿고 이해하며
如是了知 佛廣大力하며, 이렇게 부처님의 광대한 힘을 요지하고
如是決定 無所碍心하며, 이렇게 걸림없는 마음을 확실하게 하며 [장애없이 신심이 견고한 것]
如是攝受 一切衆生이니라. 이렇게 일체중생을 섭수합니다.
[봉은사에는 화엄경 80권 소초 목각판이 있는데, '추사 선생의 經板(경판)'이라는 편액도 붙어있습니다.]
[대보적경-1111-223
사리자야, 어떤 것이 성스러운 출리도인가?
사리자야, 이른바 하나의 바로 나가는 도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마침내 청정하게 하느니라.
다시 두 가지 법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마침내 벗어나게 하나니,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니라.
다시 세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하나니,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해탈문이니라.
다시 네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몸[身]을 인연하여 생각하는 것·느낌[受]을 인연하여 생각하는 것·마음[心]을 인연하여 생각하는 것·법(法)을 인연하여 생각하는 것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신근(信根)·정진근[勤根]·염근(念根)·삼마지근(三摩地根)·혜근(慧根)이니라. 다시 여섯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부처를 생각하는 것[念佛)·법을 생각하는 것[念法]·승가를 생각하는 것[念僧]·계법을 생각하는 것[念戒]·보시를 생각하는 것[念捨]·하늘을 생각하는 것[念天]이니라.
다시 일곱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바른 생각으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念等覺支]이며, 법을 잘 선택하므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擇法等覺支]이며, 끊임없이 정진하므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勤等覺支]이며, 법에 기쁨을 얻으므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喜等覺支]이며, 편안한 쉼을 얻으므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安息等覺支]이며, 삼마지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三摩地等覺支]이며, 모든 집착을 놓아 버림으로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捨等覺支]이니라
다시 여덟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聖八支道]를 말함이니 바른 소견[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정진[正勤]·바른 기억[正念]·바른 삼마지[正三摩地]가 그것이니라.
다시 아홉 가지의 기쁨의 근본 되는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이른바 기쁨[悅]·환희[喜]·조용히 쉼[安息]·즐거움[樂]·삼마지(三摩地)·여실지견(如實智見)·세속을 싫증냄[厭]·욕심을 여읨[離欲]·해탈(解脫)이니라.
다시 열 가지 법으로 능히 벗어나게 되나니 열 가지의 착한 업의 길[十善業道]이니라.
이와 같이 여래가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여실히 성스러운 출리행(出離行)을 열어 보이느니라. 사리자야, 나아가 이러한 일체의 바르고 착한 보리분법(菩提分法)이 있나니, 혹은 온갖 계법[戒聚]과 서로 응하거나 혹은 삼마지[三摩地聚]·지혜[慧聚]·해탈[解脫聚]·해탈지견[解脫智見聚]과 서로 응하는 것이니라. 혹은 4성제(聖諦)와 서로 응하는 것, 이런 것을 능히 출리행(出離行)이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능히 벗어난다는 것은 바른 행[正行]을 말하는 것이며, 바른 행이란 것은 이 가운데 한 가지의 법이라도 늘거나 줄거나 오거나 가거나 취하거나 버림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른 행위나 바른 행위가 한 가지의 깨달음을 행하게 되나니 만일 능히 여실히 모든 법이 다 둘이 아닌 성질을 보고 알면 이것이 곧 거룩한 출리행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여래의 두려움 없음은 불가사의하니, 대비로 방편을 삼되 진여처럼 평등하여 진(眞)의 자성과 여(如)의 자성이 같지 아니한 성질이 아니며, 변하여 달라짐이 없는 성질이며, 덮어 감춤이 없는 성질이며, 떨거나 두려움이 없는 성질이며, 물러가 굽힘이 없는 성질이며, 거스르거나 다툼이 없는 성질이니라. 그러므로 대중 가운데 빛나게 드러나서 능히 기쁘고 즐겁게 하여 온 몸이 화평하고 윤택하며 마음으로 깨끗한 믿음을 내어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느니라.
사리자야, 세간 중생은 감히 여래의 두려움 없음에 어긋나거나 다투는 자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두려움 없음은 가히 다툴 수 없기 때문이니라. 진여의 성질이 평등한 곳에 법계의 성질이 널리 퍼져 두루 모든 세계에 변만하지만 능히 거스르거나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성스러운 출리행은 한량없고 수가 없으며 불가사의하고 더불어 비교할 데 없으며 선설할 수 없는 묘한 법을 성취하였느니라.]
(26) 三昧의 利益
가. 諸佛의 加被 제불의 가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入普賢菩薩所住如是大智慧三昧時에 十方各有不可說不可說國土어든
一一國土에 各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如來名號하며
一一名號에 各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이 而現其前하사 與如來念力하사 令不忘失如來境界하며
與一切法究竟慧하사 令入一切智하며 與知一切法種種義決定慧하사 令受持一切佛法하야 趣入無碍하며
與無上佛菩提하사 令入一切智하야 開悟法界하며 與菩薩究竟慧하사 令得一切法光明하야 無諸黑闇하며
與菩薩不退智하사 令知時非時善巧方便하야 調伏衆生하며
與無障碍菩薩辯才하사 令悟解無邊法하야 演說無盡하며
與神通變化力하사 令現不可說不可說差別身의 無邊色相이 種種不同하야 開悟衆生하며
與圓滿言音하사 令現不可說不可說差別音聲의 種種言辭하야 開悟衆生하며
與不唐捐力하사 令一切衆生으로 若得見形이어나 若得聞法에 皆悉成就하야 無空過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滿足普賢行故로 得如來力하고 淨出離道하고 滿一切智하야
以無碍辯才와 神通變化로 究竟調伏一切衆生하며 具佛威德하고 淨普賢行하고 住普賢道하야
盡未來際토록 爲欲調伏一切衆生하야 轉一切佛微妙法輪하나니 何以故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成就如是殊勝大願諸菩薩行하면 則爲一切世間法師하며
則爲一切世間法日하며 則爲一切世間智月하며
則爲一切世間須彌山王하야 嶷然高出하야 堅固不動하며 則爲一切世間無涯智海하며
則爲一切世間王法明燈하야 普照無邊하야 相續不斷하며
爲一切衆生하야 開示無邊淸淨功德하야 皆令安住功德善根하며
順一切智大願平等하야 修習普賢廣大之行하며 常能勸發無量衆生하야
住不可說不可說廣大行三昧하야 現大自在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이 보살마하살은 入 普賢菩薩所住 보현보살이 머문 바
如是 大智慧三昧 時에, 이와 같은 큰 지혜 삼매에 들어갈 때
十方各有 不可說不可說 國土어든, 시방에 각각 있는 불가설 불가설의 국토에
一一國土에, 낱낱의 국토마다
各有 不可說不可說 佛刹微塵數 如來名號하며, 불가설 불가설한 불찰미진수 여래의 명호가 각각 있고,
[왜 각 명호가 없겠습니까? 心佛及衆生是三無이고, 천지만물이 다 그대로 화장장엄 세계이니까요.]
一一名號에, 그 낱낱의 명호마다
各有 不可說不可說 佛刹微塵數 諸佛이, 불가설 불가설한 불찰미진수의 부처님들이 있어서,
而現其前하사, 그 앞에 나타나시사
① 與 如來念力하사, 여래의 염력을 주시어 令 不忘失 如來境界하며, 여래의 경계를 잊지 않게 하시며,
[與= 정신적인 가피를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응원한다고 떠드는 것이 念力을 주는 것입니다.
중생은 억만이 아니라 억만에 억만을 더 한다 하더라도, 그저 중생일 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100만 명을 모아놔도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일 뿐, 2학년 한 사람의 실력이 안 됩니다.
그렇게 차원이 다른 것과 같이 중생과 부처님의 차이는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요]
② 與 一切法 究竟慧하사, 일체법에 궁극의 지혜=구경혜를 주시어
令入 一切智하며, 일체지에 들어가게 하시며,
③ 與 知一切法 種種義 決定慧하사, 일체법의 갖가지 이치를 아는 결정한 지혜를 주시어
令受持 一切佛法하야, 모든 불법을 받아 간직하고 趣入 無碍하며, 걸림없이 나아가게 하시며,
④ 與 無上 佛菩提하사, 위없는 불보리를 주시어 令入 一切智하야, 일체지에 들어가
開悟 法界하며, 법계를 깨닫게 하시며,
⑤ 與 菩薩 究竟慧하사, 보살의 구경한 지혜를 주시어 令得 一切法 光明하야, 일체법의 광명을 얻어
無 諸黑闇하며, 모든 캄캄한 어둠이 없게 하시며, 黑闇흑암= 어두움ㆍ어리석음
⑥ 與 菩薩 不退智하사, 보살의 퇴보하지 않는 지혜를 주시어
令知 時非時 善巧方便하야, 때와 때 아님을 아는 선교한 방편으로 調伏衆生하며, 중생을 조복케 하시며,
[時非時= 處非處 같은 뜻입니다.]
⑦ 與 無障碍 菩薩 辯才하사, 걸림없는 보살의 변재를 주시어 辯才변재= 말을 잘하는 재주
令悟解 無邊法하야, 가이없는 법을 깨달아 알아서 演說 無盡하며, 끝없이 연설하게 하시며,
⑧ 與 神通變化力하사, 신통 변화의 능력을 주시어
令現 不可說不可說 差別身의, 불가설 불가설의 차별한 몸의 無邊色相이 가이없는 색상을
種種不同하야, 여러가지로 다르게 나타내 開悟 衆生하며, 중생을 깨우치게 하시며,
⑨ 與 圓滿言音하사, 원만한 음성을 주시어
令現 不可說不可說 差別音聲의, 불가설 불가설의 차별한 음성으로
種種言辭하야, 여러가지 언사를 표현하여 開悟衆生하며 중생을 깨우치게 하시며,
⑩ 與 不唐捐力하사, 빨리 잊지 않는 능력을 주시어 唐 당나라 당, 捐 버릴 연, 不唐捐力= 헛되지 않는 힘
令 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若得 見形이어나, 만약 형상을 보거나
若得 聞法에, 법을 듣거나 간에 皆悉成就하야, 다 성취해서 無空過者니라.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십니다.
[이것이 열 가지 가피입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如是 滿足 普賢行 故로, 이와 같이 보현행을 만족히 한 까닭에
得 如來力하고, 여래의 힘을 얻고 淨 出離道하고, 출리의 도를 청정히 하며
滿 一切智하야, 일체지를 원만히 하여 以無碍辯才와 神通變化로, 걸림없는 변재와 신통변화로 無碍무애
究竟 調伏一切衆生하며, 일체중생을 구경히 조복시키며,
具 佛威德하고, 부처님의 위엄과 덕망을 갖추고 威德위덕= 위엄과 덕망
淨 普賢行하고, 보현행을 청정히 하고 住 普賢道하야, 보현의 도에 머물러서
盡 未來際토록, 미래의 세상이 다하도록 爲欲 調伏一切衆生하야, 일체중생을 조복시키고자
轉 一切佛 微妙法輪하나니, 부처님의 미묘한 법륜을 굴리는데, 法輪법륜= 부처님의 가르침
何以故오? 그것은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成就 如是殊勝 大願 諸菩薩行하면, 이러한 여래의 수승한 대원과 보살행을 성취하면
則爲一切世間 法師하며, 곧 일체 세간의 법사가 되고,
[法師법사= 불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이끌어가는 이를 말한다. 法華經 法師品의 說에 따라 受持法師(가르침을 수지 기억하는 사람) · 讀經法師(經卷을 읽는 사람) · 誦經法師(경전을 보지 않고 암송하는 사람) · 解說法師(經의 문귀를 해석하는 사람) · 書寫法師(경전을 서사하는 사람)의 다섯 법사를 들고 있다.]
則爲一切世間 法日하며, 곧 일체 세간에 법의 해=法日가 되고,
則爲一切世間 智月하며, 곧 일체 세간에 지혜의 달이 되고,
則爲一切世間 須彌山王하야, 곧 일체 세간의 수미산왕이 되어 嶷然高出하야, 곧 우뚝 높이 솟아서
堅固 不動하며, 견고하게 흔들림 없으며, 須彌山수미산, 嶷 높을 억, 然 그러할 연, 堅固견고
則爲一切世間 無涯智海하며, 일체 세간에 끝없는 지혜바다가 되고, 涯 물가 애, 끝 한계 애,
則爲一切世間王 法明燈하야, 곧 일체 세간에 정법의 밝은 등불이 되어
普照 無邊하야, 곧 끝없이 두루 비추기를 相續 不斷하며, 끊임없이 계속하며, 相續不斷상속부단
爲一切衆生하야, 일체중생을 위해 開示 無邊淸淨 功德하야, 끝없이 청정한 공덕을 열어보여서
皆令 安住 功德善根하며, 모두를 공덕의 선근에 안주하게 하며,
順 一切智 大願平等하야, 일체지에 수순하여 대원을 평등히 하고
修習 普賢 廣大之行하며, 보현의 광대한 행을 닦아 익혀서
常能 勸發 無量衆生하야, 한량없는 중생들을 항상 널리 권하여 발심하게 해서 勸 권할 권
住 不可說不可說 廣大行三昧하야, 불가설 불가설히 광대한 행의 삼매에 머물러
現 大自在니라. 크게 자재함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