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십지품(十地品) 법운지 (法雲地) 5
(4) 入微細智의 廣大 미세함에 들어가는 지혜의 광대
又如實知諸佛如來의 入微細智하나니
所謂修行微細智와 命終微細智와 受生微細智와 出家微細智와 現神通微細智와 成正覺微細智와
轉法輪微細智와 住壽命微細智와 般涅槃微細智와 敎法住微細智니 如是等을 皆如實知니라
又 如實知 諸佛如來의 入微細智하나니, 또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들어가신 미세한 지혜를 여실히 아는데,
所謂 修行微細智와 소위 수행의 미세한 지혜, 謂 이를 위, 微 작을 미, 細 가늘 세
命終 微細智와, 수명을 마치시는 미세한 지혜, 受生 微細智와, 태어나시는 미세한 지혜,
出家 微細智와 출가의 미세한 지혜, 現神通 微細智와, 신통을 나타내시는 미세한 지혜,
成正覺 微細智와, 정각을 이루시는 미세한 지혜, 轉法輪 微細智와, 법륜을 굴리시는 미세한 지혜,
住壽命 微細智와, 수명을 누리시는 미세한 지혜, 般涅槃 微細智와, 열반에 드시는 미세한 지혜,
敎法住 微細智니, 교법에 머무시는 미세한 지혜이니
如是等을, 이러한 것들을 皆 如實知니라. 여실히 아나니라.
[여래가 하나의 의지함이 없고 머묾도 없고 작위도 없는 지혜에서 運에 맡겨 두루 알아서 일체법을 다 앎을 밝힌 것이니, 수행과 命의 종결과 生을 받는 것과 출가와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과 정각을 성취하는 것과 법륜을 굴리는 것과 수명에 머무는 것과 열반에 드는 것과 교법에 머무는 것과 같은 열 가지 일의 念을 짓지 않고 늘 두루 아니, 때[時]를 옮기지 않고도 3세의 일을 極盡히 하기 때문이다.]
(5) 秘密智의 廣大
又入如來秘密處하나니 所謂身秘密과 語秘密과 心秘密과 時非時思量秘密과 授菩薩記秘密과
攝衆生秘密과 種種乘秘密과 一切衆生根行差別秘密과 業所作秘密과 得菩提行秘密이니
如是等을 皆如實知니라
又入 如來秘密處하나니 또 여래의 비밀한 곳에 들어가는데, 秘密處비밀처
[여래의 열 가지 다함 없는 비밀처에 들어가는 것.]
所謂 身 秘密과, 소위 몸의 비밀, 語 秘密과, 말씀의 비밀, 心 秘密과, 마음의 비밀,
時非時思量 秘密과, 때와 때 아님을 헤아리는 비밀,
授菩薩記 秘密과, 보살에게 수기하시는 비밀, 攝衆生 秘密과, 중생을 거두시는 비밀,
種種乘의 秘密과, 갖가지 승의 비밀, 一切衆生根行差別 秘密과, 일체중생의 근기와 행이 차별한 비밀,
業所作 秘密과, 업으로 짓는 비밀, 得菩提行 秘密이니, 보리를 얻는 행의 비밀이니,
如是等을, 이러한 것들을 皆如實知니라. 여실히 모두 아나니라.
[身秘蜜處란 몸의 티끌과 털구멍 속에 한량없는 국토와 한량없는 몸과 한량없이 나타내 보이는 성불과 한량없이 나타내 보이는 열반을 나타냄이니, 이 같은 열 가지 일이 일시에 同異가 자재로우면서도 시방이 다 마찬가지라서 모두가 바로 여래의 보광명지이니, 마치 둥근 거울이 허공계와 같아서 일시에 널리 응하자 사물의 하는 바에 맡겨서 모두가 능히 對現하면서도 조작하는 바가 없음과 같다.]
(6) 入劫智의 廣大
又知諸佛所有入劫智하나니 所謂一劫이 入阿僧祇劫하고
阿僧祇劫이 入一劫과 有數劫이 入無數劫하고 無數劫이 入有數劫과 一念入劫하고
劫入一念과 劫入非劫하고 非劫入劫과 有佛劫이 入無佛劫하고
無佛劫이 入有佛劫과 過去未來劫이 入現在劫하고
現在劫이 入過去未來劫과 過去劫이 入未來劫하고
未來劫이 入過去劫과 長劫이 入短劫하고 短劫이 入長劫이니 如是等을 皆如實知니라
又知 諸佛所有入劫 智하나니, 또 부처님들이 지니신 겁에 들어가는 지혜를 아는데,
[부처님은 겁에 들어가는 지혜를 다 가지고 있다는 뜻]
所謂 一劫이 入阿僧祇劫하고, 소위 한 겁이 아승지 겁에 들어가고
阿僧祇劫이 入一劫과, 아승지 겁이 한 겁에 들어가며,
有數 劫이, 어떤 수의 겁이(한정된 겁) 入 無數劫하고, 무수한 겁에 들어가고(한정되지 않은 겁에 들어가며)
無數 劫이 入 有數劫과, 무수한 겁이 어떤 수의 겁에 들어가며,
一念 入劫하고, 한 순간이 겁에 들어가고 劫 入一念과, 겁이 한 순간에 들어가며,
劫 入非劫하고,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고 非劫 入劫과, 겁 아닌 것이 겁에 들어가며,
有佛 劫이 부처님 계신 겁이 入 無佛劫하고, 부처님 안계신 겁에 들어가고
無佛 劫이 부처님 안계신 겁이 入 有佛劫과, 부처님 계신 겁에 들어가며,
過去 未來劫이 과거 겁과 미래 겁이 入 現在劫하고, 현재 겁에 들어가고
現在劫이 현재 겁이 入 過去 未來劫과, 과거 겁과 미래 겁에 들어가며,
過去劫이 入 未來劫하고, 과거 겁이 미래 겁에 들어가고
未來劫이 入 過去劫과, 미래 겁이 과거 겁에 들어가며,
長劫이 入 短劫하고, 오랜 겁이 짧은 겁에 들어가고
短劫이 入 長劫이니, 짧은 겁이 오랜 겁에 들어가는 것들이니
如是等을, 이러한 것들을 皆 如實知니라. 다 여실히 압니다.
[劫= 劫 으를 겁, 위협할 겁, 겁(劫)[kalpa(산스크리트어), kappa(팔리어)]은 겁파(劫波)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 및 불교에서 우주의 시간을 재는 단위로서 일정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세계·우주가 개벽한 때부터 다음에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북전 불교(北傳佛敎)의 우주론에 따르면, 세계·우주는 성장[成]·지속[住]·무너짐[壞]·사라짐[空]의 네 단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데, 이러한 각각의 단계에 해당하는 시간을 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네 개의 겁들이 모이면 대겁(大劫)이 된다.
북전 불교의 『잡아함경(雜阿含經)』과 남전 불교(南傳佛敎)의 『상윳타 니카야』는 두 가지 비유를 들어 겁의 길이를 설명한다. 첫 번째 비유에 따르면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의 큰 바위를 1백년마다 한번 씩 비단 옷자락으로 닦아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비유는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이 되는 철로 된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백년마다 한 알씩 꺼내어 겨자씨를 모두 다 꺼냈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7) 入道智의 廣大 도에 들어가는 지혜의 광대
又知如來諸所入智하나니 所謂入毛道智와 入微塵智와 入國土身正覺智와
入衆生身正覺智와 入衆生心正覺智와 入衆生行正覺智와 入隨順一切處正覺智와
入示現遍行智와 入示現順行智와 入示現逆行智와 入示現思議不思議世間了知不了知行智와
入示現聲聞智와 辟支佛智와 菩薩行과 如來行智니라
佛子야 一切諸佛의 所有智慧가 廣大無量이어늘 此地菩薩이 皆能得入이니라
又知 如來諸所入 智하나니, 또 여래가 들어가신 여러 지혜를 아는데,
[이 지위의 보살이 여래의 열세 가지 入智를 앎을 밝힌 것이다.]
所謂 入毛道 智와,소위 털끝의 도에 들어가는 지혜,
[毛道= “모도중생”이라고 해서 중생의 숫자와 같이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있습니다.]
[毛道= (기본의미)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범부(凡夫) 이생(異生),모두(毛頭)
*불교에서 털끝이라는 뜻으로, 지극히 작은 장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지극히 좁은 장소에서 큰 시방 세계를 함용한다는 것으로, 작은 것과 큰 것이 서로 장애가 없이 상통함을 나타낼 때 쓴다.
*절에서 삭발을 담당하는 직무.]
入 微塵智와, 티끌에 들어가는 지혜,
入 國土身 正覺智와, 국토의 몸에 들어가 정각을 이루는 지혜,
[入毛道智는 성품이 정해지지 않은 중생에 들어가 방편의 지혜를 일으켜 올바른 믿음을 얻게 하는 지혜이며,
入微塵智는 미세한 중생의 길 속에 들어가 더불어 생을 같이함으로써 지혜를 引生하여 人天을 얻도록 하여 부처의 선근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入 衆生身 正覺智와, 중생의 몸에 들어가 정각을 이루는 지혜,
[入國正身正覺智는 부처의 몸과 털구멍 안에 부처를 이루는 것과 반열반에 들어감을 나타내보이는 지혜이며,]
入 衆生心 正覺智와, 중생의 마음에 들어가 정각을 이루는 지혜,
[入衆生心正覺智는 중생의 마음이 여래의 마음과 동일한 체성이기 때문에 여래가 일체 중생을 알아서 업에 따라 접하는 것이며,]
入 衆生行 正覺智와, 중생의 행에 들어가 정각을 이루는 지혜,
[入衆生行正覺智는 방편의 행과 4설법의 행으로 중생을 깨닫게 하는 것에 해당되며,]
入 隨順一切處 正覺智와, 일체처에 수순하여 정각을 이루는 지혜,
[入隨順一切處正覺智는 일체의 6도 가운데 두루 태어나 근기에 따라 깨닫게 하는 것이며,]
入 示現 遍行智와, 두루하는 행=遍行을 시현하는 데에 들어가는 지혜,
[入示現遍行智는 일체 중생의 행과 아흔다섯 가지 외도에 다 同事하는 지혜이며,]
入 示現 順行智와, 수순하는 행=順行을 시현하는 데에 들어가는 지혜,
入 示現 逆行智와, 거스른 행=逆行을 시현하는 데에 들어가는 지혜,
[入示現逆行智는 것은 악마를 지어 보여서 行者를 괴롭히고 미혹하며, 또는 非道를 행하여서 중생을 이롭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마치 아사세왕이 부모를 살해한 등의 일을 지어 보여서 業道가 제거됨을 믿게 하는 것이며,]
入 示現 思議 헤아리고 不思議, 헤아릴 수 없거나
世間 了知 세간을 알고 不了知行 智와, 알지 못하는 행을 시현하는 데에 들어가는 지혜,
入示現思議不思議世間 了知不了知行智는 어떤 경우엔 세간으로 하여금 이 부사의한 聖行을 요달해 알게 하고, 어떤 경우엔 세간으로 하여금 능히 凡과 聖을 요달해 알게 하는 것이다.]
入 示現 聲聞智와, 성문의 지혜 辟支佛智와, 벽지불의 지혜 菩薩行과, 보살의 행,
如來行智니라. 여래의 행을 시현하는 데에 들어가는 지혜이니
佛子야 불자여, 一切諸佛의 所有智慧가 모든 부처님이 지니신 지혜는
廣大 無量하거늘 광대하고 한량이 없건만
此地菩薩이 皆能 得入이니라. 이 지위의 보살은 능히 다 들어갑니다.
13. 解脫의 廣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地에 卽得菩薩不思議解脫과 無障碍解脫과 淨觀察解脫과
普照明解脫과 如來藏解脫과 隨順無碍輪解脫과 通達三世解脫과 法界藏解脫과
解脫光明輪解脫과 無餘境界解脫하나니 此十爲首하야
有無量百千阿僧祇解脫門을 皆於此第十地中得하며 如是乃至無量百千阿僧祇三昧門과
無量百千阿僧祇陀羅尼門과 無量百千阿僧祇神通門을 皆悉成就니라
佛子야 불자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住此地에, 이 지위에 머물러
[이 단락 속에 네 가지 법을 드니, 첫째 열 가지의 부사의 해탈을 먼저 드는 것이며, 둘째 百千 아승기 해탈을 모두 든 것이며, 셋째 얻은 바 삼매의 수를 아울러 든 것이며, 넷째 한량없는 백천의 신통을 아울러 든 것이다.]
卽得, ① 菩薩不思議한 解脫과, 보살의 부사의한 해탈,
② 無障碍 解脫과, 걸림없는 해탈, ③ 淨觀察 解脫과, 청정히 관찰하는 해탈,
④ 普照明 解脫과, 두루 밝게 비추는 해탈, ⑤ 如來藏 解脫과, 여래장의 해탈,
⑥ 隨順無碍輪 解脫과, 걸림없는 수레바퀴에 수순하는 해탈,
⑦ 通達三世 解脫과, 삼세를 통달하는 해탈, ⑧ 法界藏 解脫과, 법계장의 해탈,
⑨ 解脫光明輪 解脫과, 해탈광명의 수레바퀴의 해탈,
⑩ 無餘境界 解脫을 얻나니, 남김없는 경계의 해탈을 卽得= 즉시 얻나니,
此十 爲首하야, 이 열 가지를 필두로 하여
有無量 百千阿僧祇 解脫門을, 한량없는 백천 아승지의 해탈문
皆 於此第十地中 得하며, 그 모두를 이 제 10지에서 얻고,
如是乃至, 이와 같이 無量 百千阿僧祇 三昧門과, 한량없는 백천 아승지의 삼매문과
無量 百千阿僧祇 陀羅尼門과, 한량없는 백천 아승지의 다라니문과
無量 百千阿僧祇 神通門을 한량없는 백천 아승지의 신통문에 이르기가지를
皆悉 成就니라. 모두 성취합니다. [모두를 완벽하게 갖추게 됩니다]
14. 釋法雲地名 법운지 명을 해석하다 釋 풀 석,
(1) 如來의 大法雲雨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通達如是智慧에 隨順無量菩提하며 成就善巧念力하야
十方無量諸佛의 所有無量大法明과 大法照와 大法雨를 於一念頃에 皆能安能受하며 能攝能持하나니
譬如娑伽羅龍王의 所霔大雨를 唯除大海하고 餘一切處는 皆不能安不能受하며
不能攝不能持인달하야 如來秘密藏의 大法明大法照大法雨도 亦復如是하야 唯除第十地菩薩하고
餘一切衆生과 聲聞獨覺과 乃至第九地菩薩은 皆不能安不能受하며 不能攝不能持니라
佛子야 譬如大海가 能安能受能攝能持一大龍王의 所霔大雨하며 若二若三과 乃至無量諸龍王雨가
於一念間에 一時霔下라도 皆能安能受하며 能攝能持하나니
何以故오 以是無量廣大器故인달하야 住法雲地菩薩도 亦復如是하야
能安能受能攝能持 一佛의 法明法照法雨하며 若二若三으로 乃至無量히 於一念頃에 一時演說이라도
悉亦如是일새 是故此地가 名爲法雲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此 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은
通達 如是智慧에, 이러한 지혜에 통달하고서 隨順 無量菩提하며, 한량없는 보리에 수순해
成就 善巧念力하야, 선교한 염력을 성취하여
十方 無量諸佛의,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所有 無量大法의 明과, 지니신 한량없는 큰 법의 밝음=法明과
[大法明은 시방 세계의 세간을 벗어난 법을 모두 알고 모두 이해하지 않음이 없는 것,]
大法의 照와, 큰 법의 비춤=法照와 大法의 雨를 큰 법의 비=法雨를
[大法照는 지혜로 능히 비추는 바라서 시방 일체 중생과 업이 늘 눈앞에 있는 것 같아서 일체 중생의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을 보지 않음이 없음을 밝힌 것.]
[大法雨는 능히 시방 일체 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일시에 평등하게 법을 내림을 밝힌 것이니, 일체 모든 有의 이 같은 광대한 佛事를 이 지위의 보살이 능히 안립하고 능히 받아드리는 것이다]
於 一念頃에 皆能安 能受하며, 한순간에 모두 能安= 능히 안전히 두며 能受= 능히 받아들이고,
能攝 能持하나니, 能攝= 능히 거두어 能持= 지닐 수 있으니,
譬如 비유컨대, 娑伽羅龍王의, 사가라용왕이 娑伽羅 龍王사가라 용왕
[〈법화경〉에 난타(難陀)·발난타(鉢難陀)·사가라(沙伽羅)·화수길(和修吉)·덕차가(德叉迦)·아나사달다(阿那娑達多)·마나사(摩那斯)·우발라(優鉢羅) 등 8대 용왕들 불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용(龍)= 기린(麒麟)·봉황(鳳凰)·거북[龜]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불려온 상상의 동물.
특히 팔대 용왕 중의 사가라용왕은 바다의 용왕으로 기우의 본존(本尊)으로 신앙되어왔다.
용은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중국 등 이른바 문명의 발상지 어디에서나 이미 오래 전부터 상상되어온 동물로서 신화나 전설의 중요한 제재로 등장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도 큰 몫을 차지해왔다.
용은 어디까지나 상상적 동물이기 때문에 민족에 따라 또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기능이 조금씩 달리 파악되어왔고, 따라서 그 조각이나 묘사의 표현 역시 차이를 보여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생각해온 용은 대개 일찍이 중국인들이 상상하였던 용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문헌인 『광아(廣雅)』익조(翼條)에 용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놓았다. “용은 인충(鱗蟲) 중의 우두머리[長]로서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이처럼 각 동물이 가지는 최고의 무기를 모두 갖춘 것으로 상상된 용은 그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믿어져왔으며, 특히 물과 깊은 관계를 지닌 수신(水神)으로 신앙되어왔다.
그래서 “용은 물에서 낳으며, 그 색깔은 오색(五色)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이 있는 신이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아질 수도 있고, 커지고자 하면 천하를 덮을 만큼 커질 수도 있다. 용은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로 치솟을 수 있고, 아래로 들어가고자 하면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도 있는 변화무일(變化無日)하고 상하무시(上下無時)한 신이다.”(管子 水地篇)라 설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용은 춘분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추분에는 연못에 잠긴다고도 하며, 용신이 사는 곳은 용궁이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所霔大雨를, 내리는 큰 비는 所霔大雨소주대우 唯除 大海하고, 오로지 큰 바다를 제외하고는
餘 一切處는 皆 不能安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安= 편안하지 못하고
不能受 받아들일 수 없고 不能攝 거두어 지닐 섭할 수 없고 不能持ㄴ달하야, 가지지도 못하듯이,
[이 지위의 보살이 일체 모든 부처의 大法明·大法照를 감당해 지니고 나머지 2승과 9지 보살은 감당해 지니지 못하는 것과 아울러 娑伽羅龍의 비를 내리는 비유를 듦을 밝힌 분이다.]
如來의 秘密藏의 여래의 비밀장인 大法의 明과 큰 법의 광명과
大法의 照와 큰 법의 비춤과 大法의 雨도, 큰 법의 비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唯除 第十地菩薩하고, 오직 제 10지 보살을 제외하고는
餘一切 衆生과 聲聞 獨覺과 다른 모든 중생이나 성문 독각이나
乃至 第九地菩薩은, 나아가 제 9지 보살들까지도 皆 不能安 모두 안수할 수 없고
不能受 받아들일 수 없고 不能攝 거두어 지닐 섭할 수 없고
不能持하나니라. 거두어 지닐 수도 없습니다.
佛子야 불자여 譬如 비유컨대 大海가 큰 바다는 能安 能受 能攝 能持
一大龍王의, 한 큰 용왕이 所霔大雨하며, 내리는 큰 비를 霔 비내릴 주
能安= 능히 편안히 能受= 받아 能攝= 섭하여 能持=지닐 수 있으며
若二若三과, 둘이나 셋에서 乃至 無量諸龍王雨가, 나아가 한량없는 모든 용왕들의 비가
於一念間에 한순간에 一時霔下라도, 한꺼번에 내리더라도 霔 비내릴 주
皆 能安 能受 能攝 能持하나니, 모두 能安= 능히 편안히 能受= 받아 能攝= 섭하여 能持=지닐 수 있거니와
何以故오? 어떠한 이유인가? 以是 그것은 無量 廣大 한량없이 광대한
器故인달하야, 그릇이기 때문인 것이라 器 그릇 기
住 法雲地 菩薩도, 법운지에 머문 보살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能安 能受 能攝 能持 一佛의 한 부처님의 法明 법의 밝과 法照 법의 비침과 法雨하며, 법의 비를
能安= 능히 편안히 能受= 받아 能攝= 섭하여 能持=지닐 수 있으며
若二若三으로 둘이나 셋에서, 乃至 無量히 나아가 한량없는 부처님들에 이르기까지
於 一念頃에 한순간에 一時演說이라도, 한꺼번에 연설하시더라도
悉亦如是하야, 역시 그와 같으니, 是故로 그러므로 此地가, 이 지위를
名爲法雲이니라. 법의 구름= 법운지라 하는 것입니다."
[큰 바다가 모든 대용왕이 비를 내리는 것을 능히 받아들이는 비유를 든 것과 아울러 이 지위의 보살이 일체 모든 法明을 받아서 일념 사이에 모든 것을 일시에 능히 연설함을 들음을 밝힌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