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26 십지품(十地品) 원행지 (遠行地) 4

Skunky 2022. 1. 10. 16:21

 11. 入定

解脫月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從何地來하야 能入滅定이니잇고

金剛藏菩薩이 言하사대 佛子야 菩薩이 從第六地來로 能入滅定이어니와

今住此地하야는 能念念入하며 亦念念起호대 而不作證일새

故此菩薩이 名爲成就不可思議身語意業하야 行於實際호대 而不作證이니

譬如有人이 乘船入海에 以善巧力으로 不遭水難인달하야

此地菩薩도 亦復如是하야 乘波羅蜜船하고 行實際海호대 以願力故로 而不證滅이니라

 

解脫月菩薩이 해탈월보살이 言하사대, 묻기를(말했다) 

佛子야 불자여, 菩薩이 보살은 從何地來부터어느 지위에서부터 

能入滅定이니잇고멸정(멸진정)에 들 수 있습니까?"

金剛藏菩薩이 금강장보살이 言하사대대답했다. 佛子야 불자여, 菩薩이 보살은 

從 第六地來로 6지에서부터 能入 滅定이어니와능히 멸정에 들어갈 수 있는데 

[멸진정 아라한들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서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상태입니다.]

[멸진정(滅盡定, nirodha-samāpatti);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2무심정(二無心定) 가운데 하나이다.

멸정(滅定) · 멸진등지(滅盡等至) · 멸진삼매(滅盡三昧) · 상수멸정(想受滅定) 또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한다. 

멸진정은 무상정(無想定) 마찬가지로 마음[] 마음작용[心所]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이다. 무상정은 이생범부(異生凡夫) 닦고 ()하는 선정임에 비해 멸진정은 성자가 모든 심상(心想) 없애고 적정(寂靜)하기를 바래서 닦는 선정으로, 특히 선정의 장애[定障] 멀리 떠난 부처와 구해탈(俱解脫) 아라한이 지닌 역량을 바탕으로 ()하는 선정이다. 멸진정은 무색계의 4 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 적정(寂靜) 비견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는 멸진정을 별도의 실체, 실법(實法)으로 보는 반면 부파불교의 경량부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는 멸진정을 실법(實法)으로 보지 않으며, 마음[] 마음작용[心所] 전전(轉轉)하지 않는 분위(分位: 국면, 양태, 단계, phase) 마치 실재인 것으로 가립한 가법(假法)으로 본다.

설일체유부에서는 멸진정이 모든 마음( 6) 소멸된 완전한 무심의 상태라고 보는데,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마음( 8) 중에서 7식인 말나식까지만 소멸되며 8식인 아뢰야식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본다.

분별론자(分別論者) 멸진정에 들면 () () 마음작용이 함께 소멸되지만 '미세한 마음[細心]'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다고 본다.]

 

今住 此地하야는지금의 이 제 7지에서는 能念念 入하며순간순간마다 능히 들어가고 

亦念念 起호대또 순간순간에 일으킬 수 있으나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순간순간 멸진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순간순간마다 일어나기도 하나]

而不作證일새증득한 것은 아니기에 

[증득을 짓지 아니할 새= 거기에 딱 멈춰 버린 상태, 소승들이성문ㆍ연각들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더 이상 꼼짝달싹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탐진치 삼독의 번뇌의 불을 일으키기도 하고 끄기도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위적으로, 우리가 마지못해서 업에 떠밀려서 탐진치 3독을 일으키느냐? 아니면 보살심의 원력이나 방편으로 탐진치 3독을 일으키느냐하는 그것의 차이입니다. 

여기 念念入ㆍ念念起라고 했는데, 승들은 念念入 뿐입니다. 멸진정에 들어가 버린 순간이 끝입니다. 

그런데 대승의 화엄경에서는 念念起입니다. 멸진정을 성취했지만 而不作證=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증을 짓지 않는다.”는 말은 ‘거기에 딱 웅크리고 앉아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필요에 따라 일어날 때 일어나고 들어갈 때 들어가기도 한다. 이것이 소승불교ㆍ근본불교와 다른 점입니다.]

[“비록 부처 지혜를 수순하더라도 성문이나 벽지불지에 들어감을 시현한다”고 것은 이승인이 果를 얻은 후에 부모에게서 받은 分段胎生의 몸을 싫어하여 스스로 불로 변화해 스스로 변역생사의 몸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故로 그러므로 此菩薩이 이 보살을

名爲 成就不可思議身語意業하야, 불가사의한 신,,의의 업을 성취하고 行於實際호대실제를 행하지만 

而不作證이니증득한 것은 아니다.'名爲= 하는 것이니

譬如有人이마치 어떤 사람이 乘船 入海에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감에 乘船승선

以善巧力으로능숙한 수단으로 不遭水難인달하야물의 재난을 피해가듯이 遭 만날 조, 水難수난

此地菩薩도이 지위의 보살도 亦復如是하야그러하여 

乘 波羅蜜船하고, 바라밀의 배를 타고 行 實際海호대실제라는 바다에 다니되, 

以願力 故로서원의 힘 때문에 而不證滅이니라열반을 실증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진리의 바다에 노닐되, 원력이 있는 고로그 멸을 증득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實際는 열반이라는 뜻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實際는 소승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진리, 즉 열반이고, 그 실제 속에 멈춰 있기를 좋아하지만 여기 대승 보살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2. 七地菩薩의 方便示現

佛子야 此菩薩이 得如是三昧智力하야 以大方便으로 雖示現生死나 而恒住涅槃하며

雖眷屬圍遶나 而常樂遠離하며 雖以願力으로 三界受生이나 而不爲世法所染하며

雖常寂滅이나 以方便力으로 而還熾然하고 雖然不燒하며 雖隨順佛智나 而示入聲聞辟支佛地하며

雖得佛境界藏이나 而示住魔境界하며 雖超魔道나 而現行魔法하며

雖示同外道行이나 而不捨佛法하며 雖示隨順一切世間이나 而常行一切出世間法하며

所有一切莊嚴之事가 出過一切天龍 夜叉 乾闥婆 阿修羅 迦樓 羅緊那

羅摩羅伽人及非人帝釋梵王四天王等之所有者나 而不捨離樂法之心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此菩薩이, 이 보살은 得 如是三昧智力하야, 이러한 삼매 지혜력을 얻어 

以大方便으로큰 방편으로 雖 示現生死나비록 생사를 나타내지만 

[生死생사라고 하는 두 글자 속에 삶의 모든 상황들을 다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옛날에 일본에서 “아 훔”이라고 하는 영화를 봤는데, “아 훔”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마지막 글자로 사천왕문에 한 사천왕은 입을 딱벌리고, 우리가 태어날 때 “아~”하는 첫소리를 生을 뜻하고, 다른 한 사천왕은 입을 다물고 있는 “훔”으로, 죽으면 입 다무는 입니다. “아 훔”이 生과 死 즉 우리 인생의 처음과 끝이라는 뜻입니다.]

而恒住 涅槃하며항상 열반에 머물고, [열반은 생사, 분별심ㆍ망상심일체 고난이 다 떠난 자리에 항상 머물며]

 

雖 眷屬圍遶, 비록 권속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雖수 眷屬권속 圍 둘레 위, 遶 두를 요

而常樂 遠離하며항상 멀리 여의기를 즐기며,

[항상 더불어 즐겁게 울고 웃으며 살지만또 한편으로는 늘 권속을 다 떠나있습니다.]

 

雖 以願力으로 비록 원력으로  三界受生이나, 삼계에 태어나지만

而不爲 世法所染이라. 세상법에 물들지 않고, 

[이 지위에 오르면 업수생이 아니라원력수생이 됩니다] 

 

雖 常寂滅이나비록 항상 적멸하지만 以方便力으로 방편의 힘으로  

而還熾然하고치연한 곳으로 돌아가며, 還 돌아올 환, 熾 성할 치, 然 그러할 연, 그럴 연, 불탈 연

 

[비록 항상 적멸하지만, 도리어 치연=원력을 가지고 아주 열정적으로, 불이 활활 타듯이 사는 모습입니다.

 

雖然이나 비록 불사르지만 不燒하며, 타지 않고, 燒 사를 소,

雖 隨順佛智나, 비록 부처님 지혜를 따르지만

而示入 聲聞 辟支佛地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들어가보이며, 

 

雖得 佛境界藏이나, 비록 부처님 경계의 보고를 얻었지만 

而示 住魔境界하며마군의 경계에 머물러 보이고,

[마 경계에 있음을 보이지만, 그 속은 또 부처님의 경계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마군이 노릇을 하면서도 “內備(내비)보살이라.” 안에는 보살의 정신,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있으며]

 

雖超 魔道나, 비록 마군의 경계를 초월했지만 而現 行魔法이라마군의 법을 행하며, 

雖示 同外道行이나, 비록 외도의 행과 같게 해보이지만 而不捨 佛法하며불법을 버리지 않고, 

[전부 중도 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雖示 隨順一切世間이나비록 일체 세간을 따르지만 

而常行 一切出世間法하며, 항상 일체의 출세간법을 행하며, 

所有一切에 있는 바 일체의  莊嚴之事가장엄하는 일이 

出過 一切 天龍 천용, 夜叉 야차, 乾闥婆건달바, 阿修羅 아수라, 迦樓 긴나라, 羅伽 마후라가,

인간, 及非人 비인간, 帝釋 제석梵王 범천왕, 四天王等 사천왕들이 

[天 이상의 욕계·색계·무색계천, 세간의 모든 , 夜叉은 고활(苦活) 혹은 사찰(祠察) 혹은 첩질(捷疾)이라고도 하며, 건달바 食香 또는 심향(尋香)인데 神이 음악을 시설해 음식을 구하기 때문이다. 阿修羅 天趣에 속하는 것이니, “하늘의 묘한 즐거움이 없음”이며, 迦樓羅 悲苦聲인데 용을 먹고 용이 모이 주머니 속에 살아 있으면서 비고성이 있는 것이니, 또한 보시조(寶翅鳥) 한다. 緊那羅 疑神이니, 머리 위에 뿔이 있어서 사람이 보고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의심을 일으킨다. 마후라  胸腹行이니, 이는 모든 축생에서 용들과 같은 무리로서 古人이 대망신이라 말한 것이다. 人及非人 사람이 아닌 것으로 귀신의 종류이다. 제석 能主이다. 범천왕 初禪의 왕이니, 梵이란 것은 청정으로 욕계를 초월하는 것을 이름하여 淨王이라 한다. 이는 지위의 보살이 능히 類를 두루 함께 하면서 인도하여 보리의 복과 지혜를 배우고 닦게 하면서도 즐거움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법을 즐기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함을 밝힌 것이다. 또한 스스로 나중 () 가득 차지 않았음을 기뻐해서 반드시 부지런한 마음으로 법을 즐김을 밝힌 것이다.]

 

之所有者나,  지닌 것을 出過= 초과하지만  

而不捨離 樂法之心이라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일체 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 등의 삶을 훨씬 뛰어넘는 삶을 살지만, 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아니한다. 우리가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야차ㆍ용의 삶을 살 때가 수시로 있으면서 또한 불법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자세, 이것이 본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매이지 말아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13. 遠行地의 功果

    (1) 調柔果  調 고를 조, 뽑을 조, 柔 부드러울 유

佛子야 菩薩이 成就如是智慧하야 住遠行地에 以願力故로 得見多佛하나니 

所謂見多百佛하며 乃至見多百千億那由他佛하야 於彼佛所에 以廣大心과 增勝心으로 

供養恭敬하고 尊重讚歎하야 衣服飮食과 臥具醫藥과 一切資生을 悉以奉施하며

亦以供養一切衆僧하야 以此善根으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復於佛所에 恭敬聽法하고 聞已受持하야 獲如實三昧智慧光明하야 隨順修行하며

於諸佛所에 護持正法하야 常爲如來之所讚喜하며 一切二乘의 所有問難이 無能退屈하며

利益衆生에 法忍淸淨하야 如是經無量百千億那由他劫토록 所有善根이 轉更增勝하나니 

譬如眞金을 以衆妙寶로 間錯莊嚴하면 轉更增勝하고 倍益光明하야

餘莊嚴具의 所不能及인달하야 菩薩이 住此第七地所有善根도 亦復如是하야

以方便慧力으로 轉更明淨하야 非是二乘之所能及이니라

佛子야 譬如日光을 星月等光이 無能及者라 閻浮提地의 所有泥潦를 悉能乾竭인달하야

此遠行地菩薩도 亦復如是하야 一切二乘이 無有能及이라 悉能乾竭一切衆生의 諸惑泥潦니라

此菩薩이 十波羅蜜中에 方便波羅蜜이 遍多하니 餘非不修로대 但隨力隨分이니라

佛子야 是名略說菩薩摩訶薩의 第七遠行地니라

[調柔= 조금씩 조금씩, 차츰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조화로워 지는] 

 

佛子야 불자여 菩薩이 보살은 成就 如是智慧하야이러한 지혜를 성취하고 

住 遠行地에 원행지에 머물러  以願力故로원력으로 [원력을 활용해서]

得見 多佛하나니많은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데, 所謂 見 多百佛하며, 소위 많은 백 부처님에서  

乃至 見 多百千億那由他佛하야, 많은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을 뵙고

[우리의 안목과 지혜가 얼마나 확장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그와 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於彼佛所에그 부처님들 처소에 以廣大心과 광대한 마음과 增勝心으로 더욱 수승한 마음으로 增勝증승  

供養 恭敬하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尊重 讚歎해서, 존중하고 찬탄하며, 

衣服과 飮食과 의복과 음식과 臥具와 醫藥과 와구와 의약과  一切資生을 모든 일용품을 

悉以奉施하며다 바쳐 보시하고, 亦以供養 一切衆僧하야또한 모든 스님들께도 공양하여 

以此善根으로 이 선근으로 廻向 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復於佛所에 또 부처님들 처소에서 恭敬聽法하고, 공경히 법을 청해 듣고,

聞已受持하야들으면 받아 지녀서 獲 如實三昧智慧光明하야, 여실한 삼매와 지혜광명을 얻어 

隨順修行하며, 순서에 따라 수행하며,

於諸佛所에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護持正法하야정법을 수호하여 지님으로써 

常爲 如來之所讚喜하며늘 여래가 칭찬하며 기뻐하시게 하고, [항상 여래의 찬탄하고 기뻐하는 바가 되며,]

一切二乘의 어떠한 이승의 所有問難에 어려운 질문으로도 

無能退屈하며굴복시킬 수 없으며, 退屈퇴굴, 

利益衆生에중생을 이익케 하고 法忍淸淨하야법인을 청정히 하며  

[무엇을 법인(法忍)이라 하는가?

공경하고 공양하는 모든 중생과 화내고 괴롭히고 음욕스러운 사람들에 대하여 잘 참는 것을 생인(生忍)이라 하고,

공경 공양하는 법과 성내고 괴롭히고 음욕스러운 법을 잘 참는 것을 법인(法忍)이라 한다. 

또한 법인이란 안의 6정(情)에 집착하지 않고 밖의 6진(塵)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두 가지에 분별을 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안 모양이 바깥과 같고 바깥 모양이 안과 같아서 두 모습을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모습이기 때문이고 인연으로 화합하기 때문이며, 그 실체가 공하기 때문이다.

일체법의 모습이 항상 청정하기 때문이고, 여(如)ㆍ진제(眞際)ㆍ법성(法性)의 모습이기 때문이며,

둘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둘이 아니지만 또한 하나도 아니다. ​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관찰하여 마음으로 믿어 물러나지 않으면 이를 법인이라 한다. -대지도론 |작성자 마하보디]

如是經 無量百千億那由他劫토록, 이와 같이 무량 백천억 나유타의 겁이 지나도록 

所有善根이지닌 모든 선근을 轉更增勝하나니, 더욱 수승히 하나니, 更 다시 갱, 勝 이길 승, 견딜 승 

[이것은 우리 안목의 문제니까, 정신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강원에서 글공부를 하더라도 1년 ㆍ2년 가면 틀림없이 글을 보는 안목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것이 표시가 없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譬如眞金을, 비유하건데 마치 진금에다 以衆妙寶로미묘한 여러 보배로 

間錯 莊嚴하면사이사이에 장엄하면 轉更增勝한다더욱 수승해지고 

倍益光明하야, 광명이 배로 늘어나서 倍 곱 배, 益 더할 익, 

餘莊嚴具의 다른 장엄구가  所不能及인달하야. 미칠 수 없는 것처럼

[“나머지 莊嚴具가 능히 미치지 못할 바이다” 경문은 원행지가 많은 부처를 보게 되는 것과 공양하고 법을 듣는 것이 더욱 더 뛰어남을 밝힌 분이다] 

菩薩이 보살이 住此第七地 7지에 머물러 所有善根도 지닌 선근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以方便慧力으로 방편 지혜의 힘으로  轉更明淨하야, 더욱 맑고 청정해지니  

非是 二乘之所能及이니라. 이승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眞金을 단련해 더욱더 밝고 청정하게 한다는 비유는 6 이전에서는 다만 단련해 다스리고 갈 빛내서 더욱 더 밝고 청정케 함을 밝힌 것은 ()·정()·혜() 4념관과 12연관 등을 가하여 智地를 청정히 다스림으로써 地로 하여금 세간에 들어가 방편으로 갖가지 중생의 행을 나타내 모두가 능히 同事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온갖 묘한 보배로 間錯 莊嚴 청정하고 묘한 지혜로 갖가지 온갖 행을 장엄하고 갖가지 온갖 행으로 智地를 장엄해서 서로서로 顯發하여 더욱더 다시 밝고 청정케 함을 밝힌 것이다.

뜻은 地가 보광명지로써 만행을 장엄하고 세간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으로써 智用의 자재로움을 일으켜서 지혜를 드러내 다시 밝힘을 밝힌 것이다. 지혜가 만행을 對하지 않는데도 행하는 것은 지혜에 大用이 없는 것이니, 3승이 이에 해당되며, 만행이 지혜를 얻지 않는데도 행하는 것은 한계와 장애가 있는 것이니, 바로 人天과 외도의 선행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문장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佛子야 불자여 譬如 日光을, 비유하자면 햇빛은 星月等光이 달이나 별 따위의 빛으로는 

無能及者라. 미칠 수 없는 것이라 閻浮提地 염부제 땅의 

所有泥潦, 진창을 悉能 乾竭인달하야다 말려버리듯이, 

閻浮提염부제,  泥 진흙 니, 潦 큰비 료, 적실 료, 乾 마를 건, 竭 다할 갈, 

此遠行地菩薩도이 원행지의 보살도 亦復如是하야, 그와 같아서 

一切二乘이 일체의 이승들이 無有能及이라미칠 수 없는지라

悉能 乾竭一切衆生의 諸惑泥潦니라. 일체중생의 미혹의 진창을 다 말려버립니다.

[“일체 중생의 모든 미혹의 진흙탕”까지 경문은 3승이 미치지 못할 바를 밝힌 분이다.]

 

此菩薩이이 보살은 十波羅蜜中에 십바라밀 가운데

十波羅蜜中에 방편바라밀에 遍多라치중하며, 

餘非不修로대, 다른 바라밀을 닦지 않는 것이 아니라 

但隨力隨分이니라단지 능력과 분수에 따르는 것일 뿐이니

佛子야 불자여, 是名略說 菩薩摩訶薩의 이것을 간략히 말해 보살마하살의 

第七遠行地니라. 7 원행지라 합니다.

[“제7 원행지”까지 경문은 地에서 닦는 行門을 밝힌 분이다.]

 

(2) 攝報果 따르는 과보

菩薩이 住此地에 多作自在天王하야 善爲衆生하야 說證智法하야 令其證入하며

布施愛語利行同事하나니 如是一切諸所作業이 皆不離念佛하며

乃至不離念具足一切種과 一切智智니라 復作是念호대 我當於一切衆生中에 爲首며

爲勝이며 乃至爲一切智智依止者라하나니 此菩薩이 若發勤精進하면 於一念頃에

得百千億那由他三昧하며 乃至示現百千億那由他菩薩로 以爲眷屬이니라

 

菩薩이 보살은 住此地에이 원행지위에 머물러 多作 自在天王하야대개는 자재천왕이 되어 

善爲衆生하야중생들에게 說 證智法하야지혜 증득법= 證智法을 잘 설하여 

令其證入하며그들을 증득해 들어가게 하며, 布施 愛語 보시와 애어로

利行 同事하나니 유익한 행을 함께 행하는데, [4 섭법]

如是 一切諸所作業이이러한 모든 작업들이 皆不離 念佛하며, 부처님에 대한 생각을 떠나지 않고  

乃至 나아가 不離 念具足一切種과 一切智智니라 일체종지와 일체지지를 구족하려는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復作是念호대 또 생각하기를  我當 於一切衆生中에 '나는 마땅히 일체중생 가운데  

爲首며우두머리가 되고, 爲勝이며더 낫게 되고, [수승함이 되며,]

乃至나아가 爲一切智智 依止者라하나니 체지지에 의지하는 자가 되리라.' [그러한 과보를 얻는다는 뜻] 

此菩薩이, 이 보살이 若發 勤精進하면만약 힘써 정근한다면 若약 勤精進근정진

於一念頃에, 한 순간에 得 百千億那由他三昧하며, 백천억 나유타의 삼매를 얻고, 

乃至 나아가 示現 百千億那由他菩薩로 백천억 나유타 보살들을 나투어 

以爲眷屬이니라. 권속으로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