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설(十二緣起說) 1
12연기설(十二緣起說)은 12연기(十二緣起) · 12지연기(十二支緣起) · 12인연(十二因緣) · 십이유지(十二有支)라고도 하며, 십이지(十二支)는 ① 무명(無明), ② 행(行), ③ 식(識), ④ 명색(名色), ⑤ 육처(六處), ⑥ 촉(觸), ⑦ 수(受), ⑧ 애(愛), ⑨ 취(取), ⑩ 유(有), ⑪ 생(生), ⑫ 노사(老死)이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과 《연기경(緣起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연기법(緣起法)의 법(法)과 의(義), 즉 연기법 특히 유전연기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과 그 자세한 모습 또는 뜻[義, 差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경전들에 따르면, 연기법 특히 유전연기(流轉緣起)의 정의 즉 법(法)은 연(緣)과 기(起)를 뜻하는데, '
연(緣)'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는 것을 의미하고,
'기(起)'란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此起故彼起]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연(緣)'은 무명연행(無明緣行) · 행연식(行緣識) · 식연명색(識緣名色) ·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 6입연촉(六入緣觸) · 촉연수(觸緣受) · 수연애(受緣愛) · 애연취(愛緣取) · 취연유(取緣有) · 유연생(有緣生) ·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일련의 인과관계적 과정을 말하고,
'기(起)'는 이 과정을 통해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다시 이러한 뜻의 '연(緣)'과 '기(起)'를 총체적으로 간략히 말하면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 또는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 즉 5취온(五取蘊)이 형성[集]되는 것을 말한다. 5취온이 형성된다는 것은 생사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법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
"그 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들에게, 연기의 처음[緣起初]과 그 차별된 이치[差別義]를 말하겠다. 그대들은 반드시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여러 필추들은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디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은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연기의 처음이라고 하는가. 이는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해서 저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行)의 연(緣)이 되고, 행은 식(識)의 연이 되고, 식은 명색(名色)의 연이 되고, 명색은 6처(處)의 연이 되고, 6처는 촉(觸)의 연이 되고, 촉은 수(受)의 연이 되고, 수는 애(愛)의 연이 되고, 애는 취(取)의 연이 되고, 취는 유(有)의 연이 되고, 유는 생(生)의 연이 되고, 생(生)은 노사(老死)의 연이 되어서, 걱정ㆍ한탄ㆍ괴로움ㆍ근심ㆍ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온[純大苦蘊]이 집(集)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연기의 처음 이치[緣起初義]라고 한다."
연기법의 자세한 모습 또는 뜻[義, 差別]은 12연기의 12지 각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식연명색(識緣名色)과 명색연6입(名色緣六入)의 연기관계에서 한 요소[支]를 이루고 있는 명색(名色)에 대해 명(名)은 5온 가운데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의 4온을 말하고 색(色)은 색온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4대종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소조색을 말한다는 설명과,촉연수(觸緣受)와 수연애(受緣愛)의 연기관계에서 한 요소[支]를 이루고 있는 수(受)에 대해, 수(受)는 낙수 · 고수 · 불고불락수의 3수로 나뉜다는 설명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 원인의 뜻으로 쓴다.
연기(緣起)는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 등으로 번역되는데,
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관계(緣起關係), 즉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연기설이다.
팔리어 | 산스크리트어 | 인본욕생경 | 수행본기경 | 증일아함경 | 중아함경 | 장아함경 | 잡아함경 | 연기경 |
avijjā | avidyā | 치(癡) | 무명(無明) | 무명(無明) | 치(癡) | 무명(無明) | 무명(無明) | |
saṅkhāra | saṃskāra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
viññāna | vijñāna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nāmarūpa | nāmarūpa | 명자(名字) | 명자(名字)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saḷāyatana | ṣaḍāyatana | 6입(六入) | 6입(六入) | 6처(六處) | 6입(六入) | 6입처(六入處) | 6처(六處) | |
phassa samphassa |
sparśa saṃsparśa |
갱(更) | 갱락(更樂) | 갱락(更樂) | 각(覺) | 촉(觸) | 촉(觸) | 촉(觸) |
vedanā | vedanā | 통(痛) | 통(痛) | 통(痛) | 통(痛) | 수(受) | 수(受) | 수(受) |
taṇhā | tṛṣṇā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upādāna | upādāna | 수(受) | 수(受) | 수(受) | 수(受) | 취(取) | 취(取) | 취(取) |
bhava | bhava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jāti | jāti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jarā-maraṇa | jarā-maraṇa | 노사(老死) | 사(死) | 사(死) | 사(死) | 노사(老死) | 노사(老死) |
십이연기는 전통적으로 삼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에 의하여 설명된다. 삼세양중의 인과로 십이연기를 해석하는 것은 불교 일반의 전통적인 통설로 되어 있으며,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 무명은 과거에 있어서의 무명 등의 번뇌이고, ② 행은 과거에 있어서의 선악업(善惡業)이며, ③ 식은 모태(母胎) 안에 최초로 발생하는 일찰나의 오온(五薀)이며, ④ 명색은 4주째의 태내(胎內) 모습이다. ⑤ 육처는 제5주의 태내에서 눈 등의 육근이 완성되는 상태이고, ⑥ 촉은 출태 뒤의 단순한 인식작용을 일으키는 상태이다.
⑦ 수는 5세부터 14세까지의 단순한 고락의 감수작용을 일으키는 상태이며, ⑧ 애는 재산이나 애욕에 탐착하는 14세 이후이다. ⑨ 취는 이 탐착이 증진되는 상태이고, ⑩ 유는 애욕과 취착의 선악업이 습관력이 되어 미래의 과를 일으키려는 상태이며, ⑪ 생은 미래의 과가 발생한 상태이며, ⑫ 노사는 미래에 수생한 뒤에 명색·육처·촉·수로 발생하는 상태이다.
대개 세계인생의 일반적인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제현상의 관계항목을 보여주는 12지(支 · 항목)의 연기로 설명된 철학적인 이론 또는 담론인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연기가 설명된 본래의 목적은 그러한 일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고뇌가 생기고 또 어떠한 인연조건(因緣條件)에 의해서 고뇌를 면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인생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 현실을 초극(超克)하는 방법과 길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이 십이연기를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연기(還滅緣起)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무명에서부터 노사로 나아가는 것을 유전의 연기로 보았고, 무명이 다함에 따라 노사가 없어지는 과정을 환멸연기라고 하였다. 곧, 반야(般若)의 힘으로 무명을 없애고 열반에로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환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전연기: 연기설이 문제로 하고 있는 현상은 선악업(善惡業)과 그 과보(果報)로서의 고락과 같은 종교적 · 윤리적인 가치관계의 현상이다. 그 경우 현상이 가치적으로 악화하는, 즉 고(苦)가 생기(生起)하는 연기관계를 유전연기(流轉緣起) 혹은 연기의 순관(緣起의 順觀) 혹은 순연기(順緣起)라고 한다.
연기의 순관은 구체적으로는 "무명(無名)에 연(緣)해서 행(行)이 있고 행에 연해서 식(識)이 있으며 식에 연해서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에 연해서 6입(六入)이 있으며 6입에 연해서 촉(觸)이 있으며 촉에 연해서 수(受)가 있고 수에 연해서 애(愛)가 있고 애에 연해서 취(取)가 있으며 취에 연해서 유(有)가 있고 유에 연해서 생(生)이 있으며 생에 연해서 노사(老死) ·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갖가지 고(苦)가 생긴다"라는 정형적(定型的)인 글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연기의 순관은 현실의 노사(老死) 등의 고(苦)에서 소급해서 고의 근본으로서의 무명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라고도 하는 견해가 있지만, 불교 경전에 설명된 정형적인 글로는 무명에서 고가 생겨나는 연기가 설명되어 있다.
환멸연기: 현상(現象)이 가치적으로 악화되는 과정인 순관에 대응해서 현상이 순화(純化)되고 정화(淨化)하는, 즉 고뇌의 유전(流轉)이 멸해지고 이상의 열반계(涅槃界)로 돌아가는 연기의 관계는 환멸연기(還滅緣起)라고 말해지며 또 이것을 연기의 역관(緣起의 逆觀) 혹은 역연기(逆緣起)라고 한다.
연기의 역관은 구체적으로는 "무명(無明)이 멸하기 때문에 행(行)이 멸한다. 행이 멸하기 때문에 식(識)이 멸한다. 식이 멸하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멸한다. 명색이 멸하기 때문에 6입(六入)이 멸한다. 6입이 멸하기 때문에 촉(觸)이 멸한다. 촉이 멸하기 때문에 수(受)가 멸한다. 수가 멸하기 때문에 애(愛)가 멸한다. 애가 멸하기 때문에 취(取)가 멸한다. 취가 멸하기 때문에 유(有)가 멸한다. 유가 멸하기 때문에 생(生)이 멸한다. 생이 멸하기 때문에 노사(老死) · 우비고수뇌(憂悲苦愁惱)의 갖가지 고(苦)가 멸한다"와 같이 설명된다.
유전연기의 내용
12연기설을 구성하는 열 두 항목 각각과 이들 간의 유전연기(연기의 순관: 고통과 번뇌가 계속되게 하는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래에서 각 지분에 대한 설명은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과 《연기경(緣起經)》에 나타난 고타마 붓다의 설명, 그리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등에 나타난 현대 학자들의 해석이다.
(1) 무명(無明) (Ignorance)은 무명연행(無明緣行)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무명연행은 연무명행(緣無明行)이라고도 한다. 무명연행 또는 연무명행은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미(迷)의 근본이 되는 무지(無知)로서, 사제(四諦)와 인연의 이치를 모르는 것을 말한다. 불교 근본사상으로서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통하지 않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 무명의 반대는 팔정도(八正道) 중의 정견(正見)이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아래의 목록에 나타난 것들을 통칭한다.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0 / 2145.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 업(業)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고 승가를 알지 못하며,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발생을 알지 못하며, 소멸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못나고 뛰어남과 더럽고 깨끗함과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불교에서 앎[知]이란 정지(正知) 즉 바른 앎을 말하는 것으로, 앎[知] 또는 정지는 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 정행(正行)과 동의어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불교의 진리 즉 4성제 · 12연기 등의 이치에 대한 이론적인 앎에 실천이 더해져서 획득하고 성취하게 된 실천적인 앎을 말한다.
무치(無痴,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癡]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諦)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知]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貪]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이 무치(無癡)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역으로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바른 행위 또는 바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정의하는 앎[知] 또는 정지(正知)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완화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론적인 앎이 실천적인 앎의 출발점 또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앎도 실천적인 앎[知] 또는 정지(正知)의 일부이다. 즉, 유루혜인 3혜 가운데 문혜와 사혜도, 비록 세간의 정견에 포함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견에 포함된다.
*과거[前際]를 알지 못하는 것[不知], *미래[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안[內]을 알지 못하는 것, *밖[外]을 알지 못하는 것, *안팎[內外]을 알지 못하는 것
*업(業)을 알지 못하는 것, *과보[報]를 알지 못하는 것, *업과 과보[業報, 업보]를 알지 못하는 것
*불보[佛]를 알지 못하는 것, *법보[法]를 알지 못하는 것, *승보[僧]를 알지 못하는 것
*고제[苦]를 알지 못하는 것, *집제[集]를 알지 못하는 것, *멸제[滅]를 알지 못하는 것, *도제[道]를 알지 못하는 것
*원인[因]을 알지 못하는 것, *원인이 일으키는 법(法) 즉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
*선(善)과 불선(不善)을 알지 못하는 것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
*열(劣: 저열한 것)과 승(勝: 뛰어난 것), 염오(染污)와 청정(清淨), 그리고 이들의 분별(分別: 식별하는 것)과 연기관계[緣起]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즉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皆悉不知]
*6촉입처(六觸入處) 즉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을 여실히 즉 실답게 관찰하고 알지 못하는 것[不如實覺知], 즉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의근의 6근을 진리[實]와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覺知]하지 못하는 것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것[不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知: 실천적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없이 동등함[無間等]' 즉 '완전한 계합'이 없는 것[無無間等],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것[癡闇],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것[大冥]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다음을 뜻한다.
"무엇을 연기의 차별된 것이라고 하는가. 즉 무명은 행(行)의 연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무명인가. 무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즉 과거에도 앎[知]이 없고 미래에도 앎이 없고 과거와 미래에도 앎이 없으며, 안에도 앎이 없고 밖에도 앎이 없고 안과 밖에도 앎이 없으며, 업(業)에도 앎이 없고 이숙(異熟)에도 앎이 없고 업과 이숙에도 앎이 없으며, 부처에도 앎이 없고 법에도 앎이 없고 승가에도 앎이 없다.
그리고 고제(苦諦)에도 앎이 없고 집제(集諦)에도 앎이 없고 멸제(滅諦)에도 앎이 없고 도제(道諦)에도 앎이 없으며, 원인에도 앎이 없고 결과에도 앎이 없고 원인에서 생겨난 모든 법에도 앎이 없으며, 착한 일에도 앎이 없고 착하지 못한 일에도 앎이 없으며 죄가 있음에도 앎이 없고 죄가 없음에도 앎이 없다.
또한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에도 앎이 없고 반드시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에도 앎이 없으며, 열등한 것에도 앎이 없고 가장 미묘한 것에도 앎이 없으며, 나쁜 행동에도 앎이 없고 착한 행동에도 앎이 없고 나쁜 행동과 착한 행동에도 앎이 없으며, 인연이 생겨난 6촉처(觸處)에도 그대로 일관하여 앎이 없다.
이와 같이 그 곳곳마다 철저하게 앎도 없고 식견도 없고 확실히 진리를 아는 것[現觀]도 없어서, 어리석고 무지하고 우매한 것,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앞의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는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 반면, 《연기경》에서는 무지(無知) 즉 '앎이 없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거[前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無知], *미래[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밖[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業)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이숙(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과 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보[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법보[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고제[苦]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집제[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멸제[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因]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과[果]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이 일으켜 생겨나는 온갖 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선(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선(不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죄가 됨[有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죄가 되지 않음[無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應修習]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코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不應修習]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저열한 것[下劣]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뛰어난 것[上妙]에 대해 앎이 없는 것
*흑(黑) 즉 흑업(黑業: 나쁜 행동, 악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백(白) 즉 백업(白業: 착한 행동, 선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있어서 차이와 분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有異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연(緣), 이생(已生: 생겨나서 지금 존재하는 것) 혹은 6촉처(六觸處: 6입, 6처, 6근)에 대해 여실히 통달하는 앎이 없는 것[如實通達無知], 즉 연(緣), 이생(已生) 혹은 6촉처(六觸處)를 진리[實]에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通達]하지 못하는 것[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여실한 앎이 없는 것[如實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바른 견해가 없는 것[無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현관이 없는 것[無現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은 것[愚癡],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것[黑闇]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무명은 명(明), 즉 지혜가 없는 것으로, 연기의 도리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올바른 인생관 · 세계관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행(行); ((mental) formations)은 무명연행(無明緣行)과 행연식(行緣識)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무명연행은 연무명행(緣無明行)이라고도 하며 행연식은 연행식(緣行識)이라고도 한다. 무명연행 또는 연무명행은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이 있다는 뜻이고, 행연식 또는 연행식은 행(行)이 있으므로 식(識)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행(行)은 신행(身行) · 구행(口行) · 의행(意行)의 3행(三行)을 뜻한다.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身行]·입의 행[口行]·뜻의 행[意行]이니라."
3행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 산스크리트어: trīṇi karmāṇi)과 동의어이다.
무명연행(無明緣行) 또는 연무명행(緣無明行), 즉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3행(三行), 즉 그릇된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행(行)은 부파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에서 업(業) 또는 업력(業力)에 해당하고, 업 또는 업력이 저장되는 곳은 무표색과 의근이다.
"業感緣起(업감연기): 세계에 있어서 일체의 만상은 다 우리들의 업에 의하여 생긴다는 도리. 이는 불교의 원시적 실천상의 근본 교리로 대개 소승에서 주장하는 『구사론(俱舍論)』ㆍ『바사론(婆沙論)』 등에서 말한 것.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중생과 세계는 중생들 제각기의 업력에 의하여 생겨지는 것이라 하므로, 마음의 자유ㆍ부자유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음. 우리들은 각기 뜻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동작과 말로 발표하여 업력이 되고 업력에 의하여 잠재세력도 되는 것이니, 이들의 세력은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결과를 불러온다고 함. 그리하여 인생이나 세계가 모두 이 업이 결과라 함. 인생과 세계가 천차만별임에 따라 업도 차별이 없지 않음. 여기에 미(迷)의 세계와 오(悟)의 세계가 있음. 업감연기는 흔히 미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임. 중생에게는 6취의 차별이 있어, 다 각각 주체인 중생과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국토가 있는데, 사람으로 말하면 몸과 세계임. 그런데 중생의 몸인 정보(正報)는 부모가 종극(終極)의 원인이 아니고 전세에서 자기가 뿌린 업력(業力)의 종자에 의하여 지금 이 과보를 받은 것임. 그 순서는 사유(死有)ㆍ중유(中有)ㆍ생유(生有)ㆍ본유(本有)의 차례로서 끝없는 옛적부터 번뇌로 업을 짓고, 업에 의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며 그치지 못하는 것임.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전세의 업에 의하여 좌우될 뿐 아니라, 국토도 물질의 원소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하여 세계를 이룩하는 것도 업력에 의한 것이라 함."
행(行)은 대승불교의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에서 아뢰야식에 보관된 종자, 그 중에서도 특히 업종자에 해당한다."賴耶緣起(뢰야연기): 법상종(法相宗)에서 우주의 삼라만상은 아뢰야식으로 연기(緣起)한다는 학설. 아뢰야식에는 모든 법을 내는 종자가 있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있는 본유종자(本有種子)와 현행하는 모든 법이 후천적으로 새로이 훈부(熏付)한 신훈종자(新熏種子)가 있다. 이 두 가지 종자가 화합하여 차츰차츰 온갖 차별의 현상을 일으킨다. 이 연기론은 개인적이며 상대적인 유심론(唯心論)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으로 상속하여, 그 각자의 아뢰야식으로부터 모든 중생은 제각기 자기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하고, 각자의 우주가 교섭함을 말할 적에는 공변(共變)ㆍ불공변(不共變)의 학설을 말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같은 것은 각자의 공통한 변현이고, 각자의 심식(心識)ㆍ승의근(勝義根) 등은 각자의 독특한 변현이라 한다. 여기에는 공중(共中)의 공(共)ㆍ공중의 불공(不共)ㆍ불공중의 공ㆍ불공중의 불공이 구별이 있다. 이상은 미계(迷界)의 생기(生起)를 말한 것이다. 오계(悟界)의 생기에 대해서는 유루(有漏)의 제8식 가운데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無漏)의 종자를 간직하였고, 이 무루의 종자는 중생이 모든 불ㆍ보살의 교법을 듣는 힘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하고 발전하여 마침내 무루의 증과를 얻는다고 함. ⇒유식소변(唯識所變)ㆍ유심연기(唯心緣起)"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행(行)은 신행(身行) · 어행(語行) · 의행(意行)의 3행(三行)을 뜻한다.
"그리고 무엇이 행(行)인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신체에 관한 행[身行]과 말에 관한 행[語行]과 마음의 작용에 관한 행[意行]을 말한다. 이것을 행이라고 한다."
3행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 산스크리트어: trīṇi karmāṇi)과 동의어이다.
무명연행(無明緣行) 또는 연무명행(緣無明行), 즉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3행(三行), 즉 그릇된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행(行)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뜻한다. 또는, 다른 학자에 따르면, 행(行)은 조건지워진 상태 또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특히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을 의미한다. [David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또한 현대의 승려 비쿠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 행은 능동적인 측면에서 의지적인 행위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은 의지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형성되고 또 현재의 의지적인 행위는 미래의 의지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인과 연이 되기 때문이다.
"Saṅkhāra is derived from the prefix saṃ (=con), "together," and the verb karoti, "to make." The noun straddles both sides of the active-passive divide. Thus saṅkhāras are both things which put together, construct and compound other things, and the things that are put together, constructed, and compou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