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회향품(十廻向品) 68
(7) 見佛知法願(견불지법원)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알고자 하는 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以此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以此善根으로 承事一切諸佛菩薩하야 皆令歡喜하며
願以此善根으로 速得趣入一切智性하며 願以此善根으로 遍一切處하야 修一切智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往覲一切諸佛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見諸佛하야 能作佛事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恒得見佛하야 不於佛事에 生怠慢心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見佛하고 心善淸淨하야 無有退轉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見佛하야 心善解了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見佛호대 不生執着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見佛하야 了達無碍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得見佛하야 成普賢行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見諸佛이 現在其前하야 無時暫捨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見諸佛하야 出生菩薩無量諸力하며
願以此善根으로 令一切衆生으로 常見諸佛하야 於一切法에 永不忘失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復以此善根으로, 다시 이 선근으로 如是廻向하나니, 이렇게 회향하는데,
所謂願以此善根(소위원이차선근)으로, 소위 '이 선근으로
承事一切諸佛菩薩(승사일체제불보살)하야, 일체의 모든 불보살을 承事= 받들어 섬기어
皆令歡喜(개령환희)하며, 모두를 기쁘게 하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速得趣入一切智性(속득취입일체지성)하며, 일체지의 성품에 속히 나아가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遍一切處(편일체처)하야, 두루 모든 곳에서
修一切智(수일체지)하며, 일체지를 닦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往覲一切諸佛(상득왕근일체제불)하며, 항상 일체제불을 찾아 뵙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見諸佛(상견제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能作佛事(능작불사)하며, 불사를 지을 수 있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恒得見佛(항득견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不於佛事(불어불사)에, 불사= 부처님 하시는 일에
生怠慢心(생태만심)하며, 태만한 마음을 내지 않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見佛(상득견불)하고, 항상 부처님을 뵙고 心善淸淨(심선청정)하야, 마음 기쁘고 청정하여
無有退轉(무유퇴전)하며, 퇴전치 않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見佛(상득견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心善解了(심선해료)하며, 마음으로 잘 이해하여 깨닫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見佛(상득견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不生執着(불생집착)하며, 집착하지 않기를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見佛(상득견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了達無碍(요달무애)하며, 걸림이 없음에 요달하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見佛(상득견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成普賢行(성보현행)하며, 보현행을 이루기 원하며,
[先明 始成正覺(선명시성정각)하고, 먼저는 시성정각= 깨달음의 이치를 밝히고,
後現 普賢行願(후현보현행원) 또는 菩薩行願. 뒤에는 보현행원을 드러내는 것이 화엄경의 대지입니다
通萬法明一心(통만법명일심)도 화엄경의 대지로 맞긴 하지만, 사실 정각의 안목과 보현행원 또는 보살행원을 드러내는 것이 좀 부족합니다.]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得諸佛(상득제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現在其前(현재기전) 無時暫捨(무시잠사)하며, 잠시도 그 앞을 떠나는 일이 없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見諸佛(상견제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出生菩薩無量諸力(출생보살무량제력)하며, 보살의 한량없는 힘을 출생하기 원하며,
願以此善根(원이차선근)으로, 이 선근으로 令一切衆生으로, 일체중생이
常見諸佛(상견제불)하야, 항상 부처님을 뵙고 於一切法에, 일체법을
永不(영불망실)이니라. 영원히 忘失= 잊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합니다.
[“법계”라는 말 속에 우리의 정신적인 것ㆍ물질적인 것ㆍ육체적인 것, 유정ㆍ무정, 작은 먼지에서부터 저 멀리 태양의 몇 만 배 되는 큰 별들과 그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법계 등 한량없는 선근의 회향으로 일체 중생이 부처를 보고 마음이 청정하게 되기를 원함을 밝힌 분]
(8) 知法界願(지법계원)법계를 알고자 하는 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又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如法界無起性廻向과 如法界根本性廻向과 如法界自體性廻向과 如法界無依性廻向과
如法界無忘失性廻向과 如法界空無性廻向과 如法界寂靜性廻向과
如法界無處所性廻向과 如法界無遷動性廻向과 如法界無差別性廻向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又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이 모든 선근으로 이렇게 회향하는데,
所謂如法界無起性廻向(소위여법계무기성회향)과, 소위 법계의 일어남이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고,
[법계는 무기성, 起滅이 없는 성품입니다. 물론 그 안에서 온갖 기멸이 다 있지만, 법계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왕복이 무제이나 동정은 일원'입니다. 한 근원 즉 법계의 근본자리에서 보면 무기성, 무기무멸입니다.
어느 한 순간 또는 한 단변만 보면 틀림없이 起滅=기와 멸과, 生滅=생과 멸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더 깊이 보면 起滅ㆍ生滅이 없는 것이지요. 달이 찼다ㆍ기울었다 하지만, 그 달 그 자체는 차고 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구에 가려서 태양의 빛을 받을 때는 만월이 되고, 받지 못할 때는 그믐이 되는 것으로 달 그 자체는 변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如法界根本性廻向(여법계근본성회향)과, 법계의 근본 성품처럼 회향하며,
如法界自體性廻向(여법계자체성회향)과, 법계의 자체성품처럼 회향하며,
如法界無依性廻向(여법계무의성회향)과, 법계의 의지함이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며,
[법계 안에서는 의지함도 있고 의지함이 없기도 하지만, 법계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무의성입니다.]
如法界無忘失性廻向(여법계무망실성회향)과, 법계의 망실이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며,
[우리는 망실이 끊임 없이 경험하지만, 법계 그 자체는 망실이 없는 성품입니다]
如法界空無性廻向(여법계공무성회향)과, 법계의 공하여 성품이 없는 것처럼 회향하며,
如法界寂靜性廻向(여법계적정성회향)과, 법계의 적정한 성품처럼 회향하며,
[물론 그 안에서는 온갖 희로애락, 춘하추동과 같은 천변만화의 모습들이 있지만, 법계 그 자체는 적정성입니다.]
如法界無處所性廻向(여업계무처소성회향)과, 법계의 처소가 없는 성품처럼 회향하며,
[법계는 어느 처소라고 지적해서 말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법계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니까요.]
如法界無遷動性廻向(여법계무천동성회향)과, 법계의 변천하지 않는 성품처럼 회향하며,
如法界無差別性廻向(여법계무차별성회향)이니라. 법계의 차별없는 성품처럼 회향합니다.
[앞의 眞如相廻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법계와 같은 회향을 해야 된다.’는 표현입니다.]
[법계의 성품처럼 생기함도 없고 옮겨감도 없이 회향함을 밝힌 분]
(9) 一切衆生法師願(일체중생법사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以法施의 所有宣示와 所有開悟와 及因此起한 一切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成菩薩法師하야 常爲諸佛之所護念하며
願一切衆生이 作無上法師하야 方便安立一切衆生於一切智하며
願一切衆生이 作無屈法師하야 一切問難으로 莫能窮盡하며
願一切衆生이 作無碍法師하야 得一切法無碍光明하며
願一切衆生이 作智藏法師하야 能善巧說一切佛法하며
願一切衆生이 成諸如來自在法師하야 善能分別如來智慧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如眼法師하야 說如實法不由他敎하며
願一切衆生이 作憶持一切佛法法師하야 如理演說하야 不違句義하며
願一切衆生이 作修行無相道法師하야 以諸妙相으로 而自莊嚴하고 放無量光하야 善入諸法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大身法師하야 其身이 普遍一切國土하야 興大法雲하야 雨諸佛法하며
願一切衆生이 作護法藏法師하야 建無勝幢하야 護諸佛法하야 令正法海로 無所缺減하며
願一切衆生이 作一切法日法師하야 得佛辯才하야 巧說諸法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妙音方便法師하야 善說無邊法界之藏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到法彼岸法師하야 以智神通으로 開正法藏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安住正法法師하야 演說如來究竟智慧하며
願一切衆生이 作了達諸法法師하야 能說無量無盡功德하며
願一切衆生이 作不誑世間法師하야 能以方便으로 令入實際하며
願一切衆生이 作破諸魔衆法師하야 善能覺知一切魔業하며
願一切衆生이 作諸佛所攝受法師하야 離我我所攝受之心하며
願一切衆生이 作安隱一切世間法師하야 成就菩薩說法願力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復以法施(부이법시)의, 다시 법보시로
所有宣示와 所有開悟와 펼쳐 보이고 깨우쳐 주고 [所有宣示(소유선시)와 所有開悟(소유개오). 법을 갖다 주면, 법공양으로 사경 책을 한 권 갖다 줬다면 거기에 뭔가 가르쳐 보이는 것= 宣示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식과 경험과 지혜에 따라 이해하고 지혜의 눈이 열리는 것은 각자 몫이지만 그 속에서 宣示= 펼쳐 보이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깨닫는 것= 所有開悟가 있습니다. 이것이 법시의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의식에서 “염불을 했다.”면 그 염불해 보이는 것은 선시이고, 거기에서 그 나름대로 ‘감동을 받았다.’면 그 또한 그 나름대로의 개오입니다. ]
及因此起(급인차기)한 또 그것으로 일어난 一切善根으로, 일체의 선근으로 如是廻向하나니, 이렇게 회향하는데.
[及因此起 이것으로 인해서= 법시를 인해서, 법은 펼쳐 보이는 것으로, 우리가 지금 책을 놓고 공부하는 것은 宣示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감동이 있는 것은 開悟이고 끊임없이 이것의 반복입니다.
감동으로 ‘내가 이렇게ㆍ이렇게 살아왔는데 오늘부터 바꾸어서 살아야겠다.’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所謂願一切衆生(소위원일체중생)이 소위 '일체중생이 成菩薩法師(성보살법사)하야 보살법사가 되어
常爲諸佛之所護念(상위제불지소호념)하며, 항상 부처님들의 호념을 입게 되기를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無上法師(작무상법사)하야, 가장 높은 법사가 되어
方便安立一切衆生於一切智(방편안립일체중생어일체지)하며,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일체지에 안립시키기 원하며,
[안립ㆍ안존ㆍ안좌. 전부 같은 뜻으로
안립이란‘안존한다. 그 가운데 딱 자리를 잡는다. 어떤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無屈法師(작무굴법사)하야 굴복시킬 수 없는 법사가 되어
一切問難(일체난문)에, 모든 어려운 질문도 莫能窮盡(막능궁진)하며 가로막을 수 없기 원하며,
[누가 어떤 경우로 인해서 묻더라도 지식이 부족해서 대답이나 설명이 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별별 질문 또는 힐난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법사가 되어어떤 질문에도 다 대답해 줄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無碍法師(작무애법사)하야, 걸림없는 법사가 되어
得一切法無碍光明(득일체법무애광명)하며, 일체법에 걸림없는 광명을 얻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智藏法師(작지장법사)하야, 지장= 지혜 창고의 법사가 되어
能善巧說一切佛法(능선교설일체불법)하며, 일체의 불법을 선교히 설할 수 있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成諸如來自在法師(성제여래자재법사)하야, 여래의 자재한 법사가 되어
善能分別如來智慧(선능분별여래지혜)하며, 여래의 지혜를 잘 분별할 수 있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如眼法師(작여안법사)하야, 여안= 눈과 같은 법사가 되어
[“눈이 보배”라는 如眼법사, 자기 눈으로 자기가 세상을 보는 것이지, 남의 눈 빌려서 보는 것 아니잖아요.]
說如實法(설여실법)호대, 여실한 법을 설하되 不由他敎(불유타교)하며, 다른 가르침에 연유하지 않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憶持一切佛法法師(작억지일체불법법사)하야, 일체 불법을 기억해 지니는 법사가 되어
如理演說(여리연설)하야, 이치대로 연설하여 不違句義(불위구의)하기를 원한다. 구절과 뜻에 어긋나지 않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修行無相道法師(작수행무상도법사)하야, 모양없는 도를 수행하는 법사가 되어
以諸妙相(이제묘상)으로, 미묘한 상으로 而自莊嚴하고, 스스로를 장엄하고
[無相이라야 妙相= 아름다운 相이 되는 것이지요.]
放無量光하야,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善入諸法하며, 모든 법에 잘 들어가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大身法師(작대신법사)하야, 큰 몸의 법사가 되어 [영향력 있는 법사]
其身이 普遍一切國土(보변일체국토)하야, 그 몸이 두루 일체 국토에
興大法雲(흥대법운)하야, 큰 법구름을 일으켜 雨諸佛法(우제불법)하며, 불법을 비내리기 원하며,
[요즘 방송이라는 매체ㆍ인터넷이라고 하는 매체ㆍ유튜브라고 하는 매체ㆍ까페ㆍ홈 페이지 등등을 활용하면 전 세계에서 다 보고 다 들을 수 있는 大身法師가 가능합니다.]
[대구 영천 만불사, 스님은 전단지를 크게 찍어서 일간지에 끼워서 수 만장을 배포합니다.
그 경비가 얼마들며 그런다고 몇 명이나 더 옵니까 하고 제가 물었더니 “한 서 너씩 더 오지” 그러더라고요.
“나는 불교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고 사람이 오고 안 오고는 인연에 맡긴다.” 그런 마음이 중요한 겁니다.]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護法藏法師(호법장법사)하야, 법장을 수호하는 護法藏 법사가 되어
建無勝幢(건무승당)하야, 이길 자 없는 기치[幢]를 세우고 護諸佛法(호제불법)하야, 불법을 수호하여
令正法海(영정법해)로, 정법의 바다에 無所缺減(무소결감)하며, 흠결(부족함)이 없기 원하며,
[불법을 이길 사람이 누가 있으며 불법을 이길 이론이 뭐가 있습니까? 護法藏= 법의 창고를 보호하는 법사가 되어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름이 귀에 한 번 스쳐가도록 해줘야 되는 것이 불자 된 도리이고 불자의 기본입니다.]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一切法日法師(작일체법일법사)하야, 일체법의 태양인 법사가 되어
得佛辯才(득불변재)하야, 부처님의 변재를 얻고 巧說諸法(교설제법)하며, 법을 선교= 능숙하게 설하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妙音方便法師(작묘음방편법사)하야, 묘음방편의 법사가 되어
善說無邊法界之藏(선설무변법게지장)하며, 가이없는 법계의 보고를 잘 설할 수 있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到法彼岸法師(작도법피안법사)하야, 법의 피안에 이르는 법사가 되어
以智神通(이지신통)으로, 지혜와 신통으로. 開正法藏(개정법장)하며, 정법의 보고를 열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安住正法法師(작안주정법법사)하야, 정법에 안주한 법사가 되어
演說如來究竟智慧(연설여래구경지혜)하며, 여래의 구경지혜를 연설하기 원하며, [여래ㆍ불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좋은 내용들이 아무리 많아도 본인이 감동이 없으면 남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나질 않지요.]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了達諸法法師(작요달제법법사)하야, 모든 법에 요달한 법사가 되어
能說無量無盡功德(능설무량무진공덕)하며, 무량무진한 공덕을 설할 수 있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不誑世間法師(작불광세간법사)하야, 세간을 속이지 않는 법사가 되어
能以方便으로, 방편으로 令入實際하며, 실제에 들어갈 수 있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破諸魔衆法師(작파제마중법사)하야, 마군을 격파하는 법사가 되어
善能覺知一切魔業(선능각지일체마업)하며, 모든 마군의 업을 잘 깨달아 알수 있기 원하며,
[이세간 품에 보살은 열 가지 마의 업(魔業)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망실하고 모든 선근을 닦음이 마의 업이다.'
선근 그 자체, 물론 훌륭하고 좋지만 화엄경의 차원에서는 보리심이 개제되어야 됩니다. 요즘 불자들 전 세계적으로 봉사활동 많이 하는데 불교가, 불교의 가르침이 빠져버린다면 그것은 마의 업이라 했습니다.
맹자도 “徒善而不而善(도선이불이선)이다. 한갓 착하기만 한 것은 선이 아니다.” 고 했습니다.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란 보시한 것보다 대가를 더 바라는 경우입니다. 꼭 상대를 헤쳐야 나쁜 마음이 아니라 대가를 지나치게 바라면 나쁜 마음입니다.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어떤 사람들은 계율을 아주 청정하게 잘 지키는데 못 지키는 사람보고는 아주 비난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계를 안 지키고 저렇게 화 를안 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저는 늘 했었는데, 그것도 마의 업이라 했습니다.
*'나쁜 지혜 있는 이를 싫어함이 마의 업이다.' 소견이 나쁘다고, 그 생각이 나쁘다고 그 사람을 싫어하면 그것도 보살의 마음이 아닌 마의 업이라 했습니다.
*'깊고 깊은 법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내어,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에게도 법을 말하지 않는 것' 그것도 마의 업입니다.
' 만약 재물과 이익으로 공경하고 공양 받으면, 비록 법의 그릇이 아니라하더라도 억지로 법을 말할 것 같으면 그 사람도 마의 업이다. 이익되고 잘해주고 도움이 된다고 해서 법의 그릇도 아닌데, 억지로 법을 소개해줄 것 같으면 그것도 마의 업이라 했습니다.
*'바라밀법을 즐겨듣지 아니할 것 같으면, 또 설사 설한 것을 듣는다하더라도 수행하지 아니하고, 비록 또 수행한다하더라도 마음에 게으름을 내거나 또 게으름을 내는 까닭에 뜻이 협렬= 하열해서 가장 높은 깨달음의 법을 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것도 마의 업이다.
*'선지식을 멀리하고 악지식을 가까이하여, 二乘을 좋아하여 태어나기를 즐기지 않고, 열반을 숭상하여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함이 마의 업이니라.
화엄경은 보살불교기 때문에 受生(수생) 태어나서 얼른 중생들을 도와야지요. 대승불교ㆍ선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열반 했을 때 “속환사바 하라.”고 하는 안목입니다. 그 다음에
*'보살들이 사는 곳에 와서 성내는 마음을 내어 나쁜 눈으로 흘겨보고, 허물을 찾아내어 잘못을 말하며,
그들에게 재물로 공양함을 못하게 함이 마의 업이다. 또
*'바른 법을 멀리해 정법을 비방해서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법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는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자기 말이 옳고 다른 말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마의 업입니다. 등이 이세간 품에 해당되는 마의 업입니다.]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諸佛所攝受法師(작제불소섭수법사)하야, 부처님이 섭수하시는 법사가 되어
[모든 부처님이 攝受해주는 법사가= 부처님이 인정해주고, 잘 감싸주는 법사]
離我我所攝受之心(이아아소섭수지심)하며, '나'와 '내것'에 대한 섭수하는 마음을 여의기 원하며,
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作安隱一切世間法師(작안은일체세간법사)하야, 일체 세간을 안은케 하는 법사가 되어
成就菩薩說法願力(성취보살설법원력)이니라. 보살의 설법원력을 성취하기 원하나이다.' 합니다.
[금강경의 應無所主 而生其心, 6조 스님이 깨달았다고 해서 전통불교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입니다.
어떤 스님이 그것을 설명하기를, 應= 응대한다. 만난다. 누가 부르면 “응답한다.”할 때의 應이잖아요.
전통적인 해석으로 ‘응당ㆍ반드시’란 의미가 물론 있지만,
“무엇을 응하느냐?”“無所主를 응한다.”
‘無所主를 응해서’ 而生其心, 其心=그 마음 “머물지 않는 마음을 낸다.”
‘무소주를 상대한다.’ ‘무소주를 만난다. 무소주에 대응한다.’ 무소주가 뭡니까? 일체 것이 무소주이고, 어느 것도 머물러 있는 것 없이 다 흘러가고 변해가는 往復이 無際, ‘끊임없이 변해가고ㆍ흘러가는 것을 우리는 상대하고 있다.’
사람도, 춘하추동 계절도, 그 사람의 마음도, 그 사람과의 감정도 무소주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소주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아 근사한 해석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을 낸다.” → ‘무소주하는 마음을 낸다.’ 내 마음도 무소주, 머무는 바가 없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듣고는 ‘야~ 근사하고 상당히 일리 있는 해석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살이 위와 같은 법시의 회향한 선근으로 또한 일체 중생이 부처의 法師位에 들어가게 되길 원함을 밝힌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