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25. 십회향품(十廻向品) 58

Skunky 2021. 11. 25. 14:54

  (8) 相卽相入의 重重德(상즉상입의 중중덕)

    入普賢門의 三願 (입보현문의 삼원)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入普賢門하야 生菩薩行하야 以自在智로 於一念頃에

普入無量諸佛國土하야 一身이 容受無量佛刹하고 獲能嚴淨佛國土智하야 恒以智慧로

觀見無邊諸佛國土하야 永不發起二乘之心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方便行하야 入智慧境界하야 生如來家하야 住菩薩道하고

具足不可說不可說無量不思議殊勝心하야 行無量願호대 未曾休息하야 了知三世一切法界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就普賢淸淨法門하야 於一毛端量處에

悉包容盡虛空遍法界不可說不可說一切國土하야 皆使明見하고 如一毛端量處하야

遍法界虛空界一一毛端量處에도 悉亦如是하니라

 

[相卽相入. 卽= “속해있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손가락이 속해 있는 이치입니다.  

“色卽是空!” “색이 곧 공이다.” 그대로 ‘손에 손가락이 있는 것과 같다.’  

“손”하면 손가락이 자동으로 손에 포함되어 있고,

“손가락”하면 손에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이

“색= 사물” 하면 공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하면 사물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절로 그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컵이 이미 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사용하라. →  色卽是空입니다. 즉 우리 몸이란 ‘이미 죽어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알고 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사는 것이 덤이고, 보너스 입니다.

그런데 그것 하나 철저히 알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相卽” 10현문에서 諸法相卽自在門(제법상즉자재문) 모든 법은 서로서로 다 연결돼서 자유자재하다.

10신ㆍ10주ㆍ10행ㆍ10회향에서 보면 十身歷然而相作(10신역연이상작)하고 六位不亂而更收(육위불난이갱수)라고 청량스님은 표현했습니다. 

“10신”은 중생신ㆍ국토신ㆍ업보신ㆍ성문신ㆍ연각신ㆍ독각신ㆍ여래신ㆍ법신ㆍ허공신, 십신이 전부 하나로 우리 자신 속에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즉 업보다ㆍ중생이다ㆍ성문이다ㆍ연각이다ㆍ보살이다ㆍ부처라는 것이 내 한 몸속에 이미 갖춰져 있지만, 필요할 때는 분명하게 나눠져서 十身歷然而라. 서로서로 작용을 합니다.

중생노릇 할 때는 중생노릇하고, 동물노릇 할 때는 동물노릇하고, 멀쩡한 사람이 동물이 됐다가, 어떤 때는 점잖은 부처가 됐다가, 우리 일상생활 속의 하루 가운데 그러는 겁니다. 

六位不亂而更收라. 六位는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등각ㆍ묘각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어지럽지 아니하게 하나에 다 포함되는 그것이 “卽해 있다.”는 것입니다.

諸法相卽自在門이라. “서로가 卽해 있어서 자유자재하다.”

너무 고집스럽게 지위를 나누는 것은 맞지 않고, 또 그것을 싹 무시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겁니다. 한 살은 어디까지나 한 살이고, 두 살은 어디까지나 두 살이고, 청년은 어디까지나 청년이고, 장년은 장년이고, 노인은 노인이고, 그러면서 또 “사람” 속에 다 무르녹아 포함 돼버립니다.

부처가 나갈 인연이 되면 부처로 출현하고, 중생으로 출현할 데는 중생으로 출현하고, 아수라가 돼서 누구하고 꼭 싸워야 될 때는 아수라로 출현하는 겁니다. 우리 그렇게 간혹 아수라도 되고, 축생도 되고 그러다가 부처도 되기도 하고, 보살도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 사는 것입니다.

화엄경의 안목, 화엄경의 견해는 인생을 그렇게 보는 것으로 화엄경의 이치는 10현문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事事無碍라는 것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고, 화엄경의 안목으로써 보면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사사무애이고, 諸法相卽自在門도 사사무애를 표현하는 한 시각입니다.

相卽相入의 重重德이라. ‘서로 즉해있다. 축생도 내 한 몸에 즉해있고, 아수라도 내 한 몸에 즉해있고, 아귀도 내 한 몸에 즉해있고, 성문ㆍ연각ㆍ보살ㆍ여래, 심지어 허공ㆍ법신까지도 내 한 몸에 다 즉해있다.’ 10신이 내속에 다 있습니다.

화엄경은 중중ㆍ중중, 중중ㆍ중중. 중중, 그리고 무진ㆍ무진, 무진ㆍ무진. 끊임없이 무진합니다.

法門의 重疊(법문중첩)은 若雲起長空(여운기장공)이라. 법문이 중첩! 重重ㆍ重重, 예를 들어서 이 세간 품 같은 경우는

雲興二百問(운흥이백문)에  甁瀉二千答(병사이천답)이라. 구름이 일듯이 한꺼번에 쏟아 놓는 이백가지 질문을 다 외워서 낱낱이 답을 하는 것이 2000답입니다. 

若雲起長空이라. 마치 하늘에 구름이 무역 무역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 화엄경 법문이라는 표현이 정말 절묘합니다. 과연 청량스님입니다.]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入普賢門(입보현문)하야보현의 문에 들어가 生菩薩行하야보살행을 일으키고 

以自在智로자재한 지혜로 於一念頃(어일념경), 한 순간에 

普入無量諸佛國土(보입무량제불국토)하야, 무량한 불국토에 두루 들어가  

一身이 容受無量佛刹(용수무량불찰)하고, 한 몸에 무량한 부처님 세계를 수용하고   

[一多無碍이고 等虛室之千燈입니다

一身이 容受無量佛刹  내 한 사람이 여기 있는 100명을 다 수용해서 이해하고, 그리고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어 융화하면서 존재하는 것인데 아견ㆍ아애ㆍ아집 때문에 틈이 생겨서 그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바로 화엄경 운동입니다. 화엄경 속의 올바른 소견을 가졌을 때 이러한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能嚴淨佛國土智(획능엄정불국토지)하야, 불국토를 엄정히 하는 지혜를 얻어서 

恒以智慧(항이지혜)로항상 그 지혜로 觀見無邊諸佛國土(관견무변제불국토)하야, 가이없는 불국토를 관찰하여  

永不發起二乘之心(영불발기이승지심)하며, 영원히 이승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승, 성문ㆍ연각 소승들을 배척을 하면서 또 수용하고, 수용하면서 일견 배척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소승불교를 배척하면서 사실은 감싸서 회심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修普賢方便行(수보현방편행)하야보현의 방편행을 닦아서 

入智慧境界(입지혜경계)하야지혜의 경계에 들어가 生如來家(생여래가)하야여래의 집에 태어나서 

住菩薩道(주보살도)하고보살의 도에 머물러   

具足不可說不可說無量不思議殊勝心(구족불가설불가성무량불사의수승심)하야,

불가설 불가설의 무량하고 부사의한 수승심을 구족하고 

行無量願(행무량원)호대한량없는 서원을 未曾休息(미증휴식)하야쉬지않고 行= 행하여 

了知三世一切法界(요지삼세일체법계)하며, 삼세의 모든 법계를 분명히 알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成就普賢淸淨法門(성취보현청정법문)하야보현의 청정법문을 성취하여

於一毛端量處(일일모단량처)에한 털 끝 만한 곳에 

悉包容盡虛空遍法界不可說不可說一切國土(실포용진허공편법계불가설불가설일체국토)하야,

온 허공계, 법계의 불가설 불가설 일체 국토를 다 포용하여

[一微塵中含十方이고 10현문으로 하면 廣狹自在無碍門(광협자재무애문)이라. 좁고 넓은 것이 자유자재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하는데, 언젠가 그것을 망각하고 그렇게 못살아서 그렇지요.]

[청량스님은 廣大卽入於無間(광대즉입어무간)이요. 넓은 입장에의 그 넓은 것이 사이가 없는 작은 것의 안에도 들어간다. 그야말로 광대한 세계가 鄰虛塵(인허진) 안에 다 들어간다.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를 불교에서는 인허진이라해서 허공과 가장 가까운 먼지입니다. 인허진 다음에는 바로 허공입니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무슨 분자ㆍ원자ㆍ퀵스니 해서, 더욱 작은 물질로 쪼개소 연구해서 이름을 지어내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일찍이 인허진이라고 했습니다.

 塵毛包納而無外(진모포납이무외)라.  그 작은 먼지 인허진이 無外= 바깥이 없는 우주를 다 에워싼다.

이 은하계 억 만개를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범위를 설정하면, 그 설정한 만큼을 에워싸고 있는 바깥이 당연히 있는, 예를 들면 억 만개의 은하계를 내 주먹만 하게 설정했다고 하면, 그 주먹 밖의 공간을 불교에서 無外라 했습니다.

가장 큰 것을 바깥이 없다= 밖이 없다고 표현 했습니다. 툭 터지게 깨달은 사람의 표현과 세상 사람들의 그 머리, 망상으로 짜낸 표현과는 천양지차이지요. 그런 작은 먼지= 인허진이 無外= 바깥이 없는 정도로 넓고 큰 것까지도 다 에워싼다.’

그렇게 넓고 큰 것이 자유자재하다. 우리 존재는 본래 그렇게 살도록, 다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저 수용을 못해서 끊임없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자기 중심으로, 자기 이해만을 계산해서 주장하면 끝날 날이 없습니다.]

皆使明見(개사명견)하고밝게 보게 하고 如一毛端量處(여일모단랑처)하야한 털끝 만한 곳에서와 같이  

遍法界虛空界一一毛端의 量處(편법계허공계일일모단 양처)에도, 온 법계 허공계 낱낱의 털끝 만한 곳에서도

悉亦如是하니라다 그렇게 하니라. 

[어느 한 특정한 모단만 그렇게 하면 안 맞는 것으로, 모든 모단에 다, 변 법계허공계를 다 에워싸는 것이= 無外 바깥이 없는 정도로 큰 것을 다 에워쌀 수가 있다.]

 

  普賢方便의 三願(보현방편의 삼원)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就普賢深心方便하야 於一念心中에 現一衆生의 不可說不可說劫念心하고

如是乃至現一切衆生의 爾許劫念心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入普賢廻向行方便地하야 於一身中에 悉能包納盡法界不可說不可說身호대

而衆生界가 無所增減하고 如一身하야 乃至周遍法界一切身에도 悉亦如是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成就普賢大願方便하야 捨離一切想倒心倒見倒하고 普入一切諸佛境界하야

常見諸佛虛空界等淸淨法身이 相好莊嚴하고 神力自在하야 常以妙音으로 開示演說을

無碍無斷하야 令其聞者로 如說受持호대 於如來身엔 了無所得하니라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成就普賢深心方便(성취보현심심방편)하야, 보현의 깊은 마음의 방편을 성취하여

於一念心中에한 순간의 마음 가운데  

現一衆生의 不可說不可說劫念心하고, 한 중생의 불가설 불가설 겁 동안의 마음을 나타내고

如是乃至現一切衆生(여시내재현일체중생)의 나아가 일체중생에 이르기까지 

爾許劫念心(이허겁염심)하며, 그러한 겁 동안의 마음을 나타내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入普賢廻向行方便地(입보현회향행방편지)하야, 보현의 회향행의 방편지에 두루 들어가서,

於一身中에한 몸 속에 

悉能包納盡法界(실능포납진법계) 不可說不可說身호대, 온 법계의 불가설 불가설의 몸을 다 포용하여 들이되 

而衆生界가 중생계는 無所增減(무소증감)하고, 증감이 없으며,

如一身하야한 몸에서와 같이 

乃至周遍法界一切身(내지주변법계일체신)에도, 법계에 가득한 일체의 몸도 

悉亦如是하며, 다 그와 같이 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成就普賢大願方便(성취보현대원방편)하야보현의 대원방편을 성취하여  

捨離一切想倒心倒見倒(사리일체상도심도견도)하고, 일체의 상전도, 전도, 전도를 떠나 

普入一切諸佛境界(보입일체제불경계)하야, 일체제불의 경계에 두루 들어가서  

常見諸佛虛空界等淸淨法身(상견제불허공계등청정법신)이 허공계와 같은 부처님의 청정법신이 

相好莊嚴(상호장엄)하고, 상호 장엄하심을 常見= 항상 친견하며 

神力自在(신력자재)하야 신통력이 자재하시어 常以妙音(상이묘음)으로, 항상 묘음으로

開示演說(개시연설)을 無碍無斷(무애무단)하야 거침없고 그침없이 법을 열어 연설하여 

令其聞者(영기문자)로듣는 이로 하여금 如說受持(여서수지)호대말씀하신 대로 수지하게 하되 

於如來身엔 여래의 몸에는 了無所得(요무소득)하니라. 소득이 없음을 마쳐 아시니라.  

[여래의 신에는 마침내 얻은바가 없느니라.]

 

. 普賢地位의 二願(보현지위의 이원)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普賢行하야 住菩薩地하야 於一念中에 入一切世界하나니

所謂入仰世界와 覆世界와 不可說不可說十方網一切處廣大世界라

以因陀羅網分別方便으로 普分別一切法界하야 以種種世界로 入一世界하고

以不可說不可說無量世界로 入一世界하고 以一切法界所安立無量世界로 入一世界하고

以一切虛空界所安立無量世界로 入一世界호대 而亦不壞安立之相하야 悉令明見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修習普賢菩薩行願하야 得佛灌頂하고 於一念中에 入方便地하야

成滿安住衆行智寶하야 悉能了知一切諸想하나니

所謂衆生想과 法想과 刹想과 方想과 佛想과 世想과 業想과 行想과 界想과 解想과 根想과

時想과 持想과 煩惱想과 淸淨想과 成熟想과 見佛想과 轉法輪想과 聞法解了想과 調伏想과

無量想과 出離想과 種種地想과 無量地想과 菩薩了知想과 菩薩修習想과 菩薩三昧想과

菩薩三昧起想과 菩薩成想과 菩薩壞想과 菩薩歿想과 菩薩生想과 菩薩解脫想과

菩薩自在想과 菩薩住持想과 菩薩境界想과 劫成壞想과 明想과 闇想과 晝想과 夜想과

半月一月一時一歲變異想과 去想과 來想과 住想과 坐想과 睡想과 覺想이라 如是等想을 於一念中에

悉能了知하야 而離一切想하야 無所分別하며 斷一切障하야 無所執着하고 一切佛智가 充滿其心하며

一切佛法으로 長其善根하며 與諸如來로 等同一身하며 一切諸佛之所攝取로 離垢淸淨하며

一切佛法을 皆隨修學하야 到於彼岸하니라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修普賢行(수보현행)하야보현의 행을 닦고 住菩薩地(주보살지)하야보살의 지위에 머물러 

於一念中에한 순간에 入一切世界하나니일체 세계에 들어가나니, 

所謂仰世界(소위입앙세계)와소위 위로 보는 세계, [하늘로 우러러 보고 있는 세계]

覆世界(복세계), 아래로 보는 세계와 [벌집 같이 엎어져 나무에 달려있는 것] 

不可說不可說 十方網一切處廣大世界(시방망일체처광대세계)라.

불가설 불가설의 시방으로 얽혀있는 일체처의 광대한 세계에 入= 들어가는 것이며,

以因陀羅網分別方便(이인다라망분별방편)으로, '인다라망'의 분별방편으로  

普分別一切法界(보분별일체세계)하야일체 법계를 널리 분별하여 

以種種世界(이종종세계)로써 여러가지 세계로 入一世界하고한 세계에 들어가고, 

以不可說不可說 無量世界로써 불가설 불가설의 무량한 세계로 入一世界하고한 세계에 들어가며, 

以一切法界所安立無量世界로써 일체 법계에 안립된 무량한 세계로 入一世界하고한 세계에 들어가며, 

以一切虛空界 所安立無量世界로써 일체 허공계에 안립된 무량한 세계로  

入一世界호대한 세계에 들어가되 

而亦不壞安立之相(이역불괴안립지상)하야, 안립된 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悉令明見(실령명견)하며모두 분명히 보게 하며,

以無着無縛解脫心으로, 집착없고 속박없는 해탈심으로 

修習普賢菩薩行願하야보현보살의 행원을 닦아 익혀서 得佛灌頂(득불관정)하고부처님의 관정을 얻고, 

於一念中에한 순간에 入方便地하야방편지에 들어가 

成滿安住衆行智寶(성만안주중행지보)하야, 여러 행에 안주하는 지혜보배를 성취하여

悉能了知一切諸想(실능요지일체제상)하나니, 일체의 모든 생각을 다 요지할 수 있으니

所謂衆生想과중생의 생각과, 法想과법 생각 刹想(찰상)과 세계에 대한 생각

方想과, 방향에 대한 생각 佛想과 불상 世想과 세상 業想과 업상 行想과 행상 界想과 계상 解想과 해상

根想과 근상 時想과 시상 持想과 지상 煩惱想과 번뇌상 淸淨想과 청정상 成熟想과 성숙상

見佛想과부처님을 친견 하는 생각, 轉法輪想과 전법륜상 聞法解了想과 문법해료상 調伏想과 조복상

無量想과 무량상 出離想과 출리상 種種地想과 종종지상 無量地想과 무량지상 菩薩了知想과 보살요지상

菩薩修習想과 보살수습상 菩薩三昧想과 보살삼매상 菩薩三昧起想과 보살삼매기상菩薩成想과 보살성상 

菩薩壞想과 보살괴상  菩薩歿想(보살몰상)살이 돌아가시는 생각

菩薩生想과돌아가셔서 태어나는 생각, 菩薩의 解脫想과 보살의 해탈상

菩薩의 自在想과 보살의 자재상  菩薩住持想과 보살주지상 菩薩境界想과 보살경계상

劫成壞(겁성괴상)想과겁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생각 明想과 명상闇想과 암상 晝想과 주상 夜想과 야상

半月想 반월상 一月想 일월상 一時想일시상 一歲變異하는 想과 일세변이하는 상

去想과 거상 來想과 내상 住想과 주상 坐想과 좌상 睡想과 수상 覺想이라. 각상이라 

如是等想(여시등상)을 이러한 생각들을 於一念中에한 순간에 悉能了知(실능요지)하야모두 알 수 있어서 

而離一切想(이이일체상)하야, 일체 생각을 여의어 無所分別(무소분별)하며분별하는 일이 없고, 

[어떤 상도 상은 망상이니까 일체 망상을 다 떠나서 분별하는 바가 없으며,]

斷一切障(단일체장)하야일체의 장애를 끊어서 無所執着(무소집착)하고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一切佛智가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充滿其心(충만기심)하며, 그 마음에 충만하고, 

一切佛法으로 일체의 불법으로 長其善根(장기선근)하며그 선근이 증장하여 [그 선근을 키워서,]

與諸如來(여제여래)로여래들과 더불어 等同一身하며, 동등하게 한 몸이 되며,

一切諸佛之所攝取(일체제불지소섭취)로, 일체제불이 섭취하시니 

離垢淸淨(이구청정)하며때를 벗어 청정하며, 

一切佛法을 일체의 불법을 皆隨修學(개수수학)하야다 따라 배워서 

到於彼岸(도어피안)하니라피안에 이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