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원문과 해설

25. 십회향품(十廻向品) 51

Skunky 2021. 11. 19. 16:42

 

(6) 廻向利益(회향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修習如是諸善根時에 得智慧明하야 爲善知識之所攝受하며

如來慧日이 明照其心하야 永滅癡冥하며 勤修正法하야 入諸智業하며

善學智地하야 流布善根하야 充滿法界하며 以智廻向하야 盡諸菩薩善根源底하고

以智深入大方便海하야 成就無量廣大善根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修習如是諸善根時(수습여시제선근시)에, 이렇게 모든 선근을 수습할 때에 

得智慧明하야지혜광명을 얻어서 爲善知識之所攝受(위선지식지소섭수)하며선지식의 섭수를 받게 되고 

如來의 慧日(혜일)이, 여래의 지혜 태양으로 明照其心(명조기심)하야, 그 마음을 밝게 비추어

[여래의 지혜의 태양이 우리 마음을 환히 비추었을 때= 한 점의 실수도ㆍ오점도 없는 상태]

永滅癡冥(영멸치명)하며어리석음의 어두움을 길이 멸하고 

勤修正法(근수정법)하야정법을 힘써 닦아 入諸智業(입제지업)하며모든 지혜의 업에 들어가

善學智地(선학지지)하야, 지혜의 지위를 잘 배우고 流布善根(유포선근)하야, 선근을 유포시켜

充滿法界(충만법계)하며법계에 충만케 하며, 以智廻向하야지혜로 회향하기를 

盡諸菩薩善根源底(진제보살선근원저)하고, 보살 선근의 근원까지 다하고

以智深入大方便海(이지심입대방편해)하야, 지혜로 방편바다에 깊이 들어가 

成就無量廣大善根(성취무량광대선근)이니라. 무량하고 광대한 선근을 성취합니다.

 

  (7) 實際廻向(실제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此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不着世間하고 不取衆生하야 其心淸淨하야 無所依止하며 正念諸法하야 離分別見하며

不捨一切佛自在慧하야 不違三世一切諸佛正廻向門하며 隨順一切平等正法하며 不壞如來眞實之相하며

等觀三世하야 無衆生相하며 善順佛道하고 善說於法하야 深了其義하며 入最勝地하야 悟眞實法하며

智慧圓滿하야 信樂堅固하며 雖善修正業이나 而知業性空하야 了一切法이 皆如幻化하며

知一切法이 無有自性하며 觀一切義와 及種種行하야 隨世言說호대 而無所着하야 除滅一切執着因緣하며

知如實理하야 觀諸法性이 皆悉寂滅하야 了一切法이 同一實相하며 知諸法相이 不相違背하며 

與諸菩薩로 而共同止하야 修行其道하며 善攝衆生하야 入去來今一切菩薩廻向之門하며

於諸佛法에 心無驚怖하야 以無量心으로 令諸衆生으로 普得淸淨하며

於十方世界에 不起執取我我所心하야 於諸世間에 無所分別하며

於一切境界에 不生染着하야 勤修一切出世間法하며 

於諸世間에 無取無依하야 於深妙道에 正見牢固하며 離諸妄見하야 了眞實法이니라

 

佛子야 불자여,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以此善根으로 그 선근으로 如是廻向하나니이렇게 회향하는데,

所謂不着世間(소위불착세간)하고소위,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세상을 살고, 열심히 세상을 살되 집착하지 않는]

不取衆生(불취중생)하야중생을 취하지도 않으며,

[중생을 취하지 않으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으니까, 중생을 취하되 취하지 아니한 도리 그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말장난 같지만,中道적인 삶이고, 바로 이세간적인 삶, 제대로 離世間한 상태에서 入世間 세간에 들어가서 중생을 제도하면서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其心이 淸淨(기심 청정)하야 그 마음 청정하여 無所依止(무소의지)하며의지해 머뭄이 없으며, 

正念諸法(정념제법)하야모든 법을 바르게 생각하여 離分別見(이분별견)하며분별하는 견해를 여의며,

[正念= 사띠. 모든 법의 이치를 바르게 생각해서 분별의 견해를 떠나며, 分別見을 떠난다는 것은 제법을 정념하는 것으로 바르게 보면 그것이 ‘좋다ㆍ나쁘다. 갖고 싶다ㆍ버리고 싶다.’등의 분별의 견해를 떠나서 있는 대로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화가 났다면, ‘아! 네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구나.’하고, 남의 일처럼 보는 것으로, 그러면 그냥 사그라집니다. 그것도 보통 수행의 방법으로써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요. 중생이 굶고 있는데 언제 그것하고 있습니까? 쫓아가서 도와주고, 화낼 때 화 좀 내고, 같이 울고 웃고 하면서 좀 우물도 파주고, 학교도 지어주는 것으로, 교회가 다 떠내려 가버리고 성당이 다 떠내려 가버렸는데, 네 종교ㆍ내 종교 따지는 分別見을 떠나서 교회지어주고, 성당 지어주는 것 그것이 바쁜 일이지, 앉아서 분별만 하고 있으면 어쩌잔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자제공덕회를 찬탄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지만, 너무 감동스럽고, 생각하면 눈물짓게 하는 일들입니다.

냉랭하게 앉아서,숨이나 헤아리고 있고, 들어가는 숨ㆍ내쉬는 숨 관찰해서는 하 세월에 중생을 제도할 겁니까?] 

不捨一切佛自在慧(불사일체불자재혜)하야, 모든 부처님의 자재하신 지혜를 버리지 않고  

不違三世一切諸佛正廻向門(불위삼세일체제불정회향문)하며, 삼세 모든 부처님들의 바른 회향의 문에 어긋나지 않으며, 

隨順一切平等正法(수순일체평등정법)하며, 일체 평등의 정법에 수순하여

不壞如來眞實之相(불괴여래진실지상)하며, 여래의 진실한 상을 깨뜨리지 않으며,

等觀三世(등관삼세)하야 삼세를 평등히 관하여 無衆生相(무중생상)하며, 중생상이 없으며,

[과거ㆍ현재ㆍ미래 그 어디에도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부처라고 하는 것도 없습니다.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은 그저 관념일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언어의 유희일 뿐입니다. 

본래 붙일 꺼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사람이 자비의 마음으로써 관찰해보니까, 한 마디도 붙일 곳이 없는 이 이치를 분명히 알지만, 그 허물을 한껏 뒤집어쓰고라도 법을 만들고, 이치를 만들어서, 제도할 바 없는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8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게 된 사유이지만, 사실 그 이치는 한 마디도 설할 것이 없고, 한 글자도 붙일 자리가 없는 이치입니다.] 

善順佛道(선순불도)하고불도에 잘 수순하여 善說於法(선설어법)하야법을 잘 설하고 

深了其義(심료기의)하며그 이치에 깊이 요달하며, 入最勝地(심료기의)하야최승의 지위에 들어가   

悟眞實法(오진실법)하며진실한 법을 깨달으며智慧圓滿(지혜원만)하야지혜가 원만하고 

信樂이 堅固(신락 견고)하며신요=믿고 좋아함이 견고하며, 

[지혜가 있어야 믿음이 가고, 믿음이 견고할수록 지혜가 더욱 지혜가 원만해지는 겁니다.]

雖善修正業(수선수정업)이나, 비록 정업을 닦을지라도  而知業性空(이지업성공)하야, 업의 성품이 공한 줄 알고 

了一切法이 皆如幻化(개여환화)하며, 일체법이 허깨비 변화[幻化] 같은 줄을 알며,

[정업을 잘 닦으면서도 그 업의 성품은 공한 사실은 이세간품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權實雙行法(권실쌍행법) 權과 實= 방편과 진실을 쌍으로 행하는 이치입니다.

업의 성품이 공하다면 정업을 닦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세속적인 논리로는 너무 모순되는 이론이지만, 세속 논리로 모순되어야 진짜 불교가 나타납니다. 세속의 이론에 딱 맞게 하려면 불교를 표현 못합니다. 

세속적인 논리로서는 불교는 그야말로 희론이고 말장난 같지만, 세속논리로는 불법이 제대로 표현이 안 됩니다.  

정업을 잘 닦지만, 정업의 본래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알아서, 일체법이 다 환화와 같음을 알고,

    罪無自性從心起(죄무자성종심기) 心若滅是罪亦忘(심약멸시죄역망)

천수경도 죄라고 하는 것은 자성이 본래 없는, 알맹이 없이 전부 우리마음이 조작해내는 겁니다.] 

知一切法이 無有自性하며, 일체법이 자성이 없음을 알아서 

[일체법이 자성이 없으나 법은 법대로, 자성은 자성대로 서로 모순 된 것 같은 이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 한 마디 못하는 겁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모순을 뒤집어쓰게 되니까, 허물을 뒤집어쓰게 되니까 말을 못하는 것이지요.]

觀一切義(관일체의)와 모든 이치와 及種種行(급종종행)하야, 갖가지 행이  

隨世言說(수세언설)호대, 세상을 따라 하는 말이라 [세상언설을 따르되,]

而無所着(이무소착)하야집착할 것이 없다고 관찰하고  

除滅一切執着因緣(멸제일체집착인연)하며, 일체의 집착할 인연을 제거하며,

[세상의 언설을 따르긴 따르지만→ 우리는 말만 했다하면 말을 쫓아가고 말에 집착합니다.

세속의 언설을 따르긴 따르지만, 無所着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됩니다.]

知如實理(지여실리)하야여실한 이치를 알고

觀諸法性(관제법성)이제법의 자성이 皆悉寂滅(개실적멸)하야적멸함을 觀= 관하여 

了一切法이 同一實相(동일실상)하며, 일체법의 동일한 실상을 요지하고 

[일체법이 그대로 동일한 실상입니다.  일체법이 그대로 진리의 모습입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어서, 여기에 모순없이 이 이치가 내 마음 속에서 안착이 되려면 숱한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티벳 스님들이 계속 싸우듯이 손뼉을 쳤다가 막 그렇게 토론하는 것이 이런 것을 토론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토론문화가 거의 없잖아요. 말 두 마디만 건너면 그냥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 싸우려고 덤비니까 토론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티벳 스님들 보세요. 그렇게 발을 구르고, 손바닥을 치면서도 하루 종일 얼굴하나 안 붉히고 싸움 안하고, 각자가 알고 있는 이론을 충분히 서로 피력합니다.]

知諸法相(지제법상)이, 모든 법상이 不相違背(불상위배)하며, 서로 위배하지 않음을 知= 알며, 

與諸菩薩(여제보살)로, 모든 보살들과 而共同止하야더불어 함께 머물면서 

修行其道하며, 그 도를 수행하고 善攝衆生(선섭중생)하야중생을 잘 거두어 

[함께 더불어 같이 살되 그 도를 수행하며 좋은 사람과 살면그 사람 본받아서 그 행을 배우는 것이지요.] 

入去來今一切菩薩廻向之門(입거래금일체보살회향지문)하며, 삼세 일체보살의 회향문에 들어가며, 

於諸佛法(어제불법)에모든 불법에 心無驚怖(심무경포)하야놀라거나 두려움이 없어서

以無量心(이무량심)으로, 한량 없는 마음으로 令諸衆生(영제중생)으로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普得淸淨(보득청정)하며널리 청정함을 얻게 하며,[마음이 후련하게 깨끗이 정화되게 하며,]

於十方世界에 시방세계에

不起執取我(불기집취아)와 我所心(아소심)하야, '' '내것' 집착하고 취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우리는 전부 '나다나의 것이다.=我, 我所.’로 살아 갑니다]

於諸世間에모든 세간에 無所分別(무소분별)하며, 분별할 것이 없으며,

於一切境界(어일체경계)에 일체의 경계에 不生染着(불생염착)하야, 염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勤修一切出世間法(근수일체출세간법)하며, 일체의 출세간법을 힘써 닦으므로서  

於諸世間(어제세간)에 모든 세간에 無取無依(무취무의)하야, 취함도 의지함도 없으며,

於深妙道(어심묘도)에, 심묘한 도에 正見牢固(정견뇌고)하며바른 소견이 확고하고 [심묘한 도에 바른 견해가 굳으며]

離諸妄見(이제망견)하야모든 망견을 떠나 [“옳다ㆍ그르다.” 하는 것이 전부 妄見입니다. “옳다ㆍ그르다.” 내 마음에 들면 옳고,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른겁니다. 가만히 추적해 보면 자기 배짱과 자기 상식, 자기가 익혀온 것에 기준해서 옳다 그르다하는 것이지,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으며 무엇이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 있습니까? 

得失是非(득실시비) ‘나에게 이익 된다. 내가 얻었다.’ ‘나에게 좋다. 그 반대의 경우다.’ 그것이 전부 망견이고, 사실 따지고 보면 夢幻空華(몽환공화)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그것이 전부 夢幻空華인데 거기에 그만 속아서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겁니다. 그런 이치를 알고 한 경계를 뛰어넘고 살펴보면 너무 어이없는 일이지요.] 

了眞實法(요진실법)이니라. 진실한 법에 요달합니다. 

 

   (8) 眞如의 周遍함에 譬喩함(진여의 주변함에 비유)

譬如眞如가 遍一切處하야 無有邊際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遍一切處하야 無有邊際하며

譬如眞如가 眞實爲性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眞實爲性하며

譬如眞如가 恒守本性하야 無有改變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守其本性하야 始終不改하며

譬如眞如가 以一切法의 無性爲性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無性爲性하며

譬如眞如가 無相爲相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一切法이 無相爲相하며

譬如眞如가 若有得者면 終無退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若有得者면 於諸佛法에 永不退轉하며

譬如眞如가 一切諸佛之所行處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如來의 所行之處며

譬如眞如가 離境界相으로 而爲境界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離境界相으로 而爲三世一切諸佛의 圓滿境界며

譬如眞如가 能有安立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悉能安立一切衆生하며

譬如眞如가 性常隨順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盡未來劫토록 隨順不斷하니라

 

譬如眞如(비여진여)가 遍一切處(편일체처)하야, 비유컨대 진여(진여불성)  일체처에 두루하여

[진여가 일체 처에 두루 한다. 나에게 인지되어 지는 것은 전부 거기까지 이미 진여불성이 펼쳐져, 두루 해있지만 나에게 인지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無有邊際(무유변제)인달하야끝이 없듯이, 善根廻向(선근회향)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遍一切處(편일체처)하야 일체처에 두루하여 無有邊際(무유변제)하며끝이 없으며,

 

譬如眞如가 眞實爲性(진실위성)인달하야, 비유컨대 진여가 진실함으로 성품을 삼았듯이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了一切法이 眞實爲性하며 일체법이 진실함으로 성품을 삼았음을 분명히 알며,

 

譬如眞如가 恒守本性(항수본성)하야비유컨대 진여가 항상 본성을 지켜

無有改變(무유개변)인달하야, 변하지 않듯이 [물을 본다고 이 진여불성이 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을 봐도 진여불성은 本性이 無有改變입니다. 불도보고ㆍ물도 보고, 나쁜 사람도 보고ㆍ착한 사람도보고, 이 우주에는 꽉 차있는 정반대의 현상을 낱낱이 다 분별하면서도 내 진여불성은 改變 바꿔지거나 변하거나 본 것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여기는 선근을 이야기하려고진여가 가지고 있는 깊고 오묘한 이치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恒守本性(항수본성)하야 始終不改(시종불개)하며 그 본성을 지켜 시종일관 바뀌지 않으며,

[진여의 실성으로써 성품을 삼듯이 선근회향도 一切法의 진실로써 성을 삼는다.]

 

譬如眞如가 以一切法의 無性爲性(무성위성)인달하야, 비유컨대 진여가 일체법의 성품없음으로 성품을 삼듯

[무아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無性爲性이라는 도리, 無我爲我를 모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無我로써 를 삼는 겁니다. 無性으로써 성품을 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無我인데 어찌 가 되느냐?”고 하는데, 無我니까 진짜 좋은 지, 有我인 이면 그 는 한계가 있어서 제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아로써 아를 삼으니까 이 가 엄청나게 확대되는 겁니다.]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了一切法이 無性爲性함을 알며, 일체법이 성품없음으로 성품을 삼았음을 분명히 알며,

 

譬如眞如가 無相爲相(무상위상)인달하야, 비유컨대 진여가 상없음으로 상을 삼듯이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了一切法이 無相爲相하며, 일체법이 상없음으로 상을 삼았음을 분명히 알며,

[선행을 하면 분명히 한 것이 있지만 분석해보면 아무 것도 없는 무상입니다. 그런데 무상이면서 또 상(보시하고 선한 일을 한 상)이 있습니다사실 그 상하나 가지고 기분좋아하는 겁니다그런데 그 좋아하는 실체를 분석해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없으면서도 또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겁니다환희심나는 것이지요.]

 

譬如眞如가 若有得者(약유득자)면, 비유컨대 진여가 若= 만약 有得者얻은 것이 있다면 

終無退轉(종무퇴전)이라결코 퇴전치 않듯이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若有得者면, (만약에 선근회향에 대해서 뭔가) 얻은 것이 있다면 

於諸佛法에모든 불법에서 永不退轉하며영원히 퇴전치 않으며[얻은 것이 없는 것 가운데 있는 것이 진여이고, 또 선근ㆍ선행도 마찬가지로 얻은 것이 없는 것 가운데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선행을 하면 기분 좋아요.] 

 

譬如眞如가 一切諸佛之所行處(일체제불지소행처)인달하야, 비유컨대 진여가 일체제불의 행하신 곳이듯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如來의 所行之處며,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여래의 행하신 곳이며,

[일체불법이 행할 바의 소행처가 되듯이, 진여 떠나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 억 만 광년 말하면 이미 우리진여자성은 수 억 만 광년에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기한 물건입니다.

진여는 0.8초도 안 걸리는데 태양빛은 8분 걸려야 지구에 온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譬如眞如가 離境界相(이경계상)으로비유컨대 진여가 경계를 여읜 상으로

而爲境界(이위경계)인달하야경계를 삼았듯이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離境界相으로경계를 여읜 상으로 而爲三世一切諸佛의 圓滿境界며, 삼세제불의 원만한 경계를 삼으며,

[진여라는 것은 경계를 떠났습니다. 경계가 있으면 제한이 있어서 원만하지 못합니다. 

수 억 만 광년에 0.1초도 안 걸리고 왔다 갔다 하겠습니까?

선행 잘하면, 삼세의 일체 모든 부처님하고 원만한 관계가 됩니다. 선행을 하면 바로 부처님 복장 안에 사는 겁니다.]

 

譬如眞如가 能有安立(능유안립)인달하야 비유컨대 진여가 어느 누구든 안립시킬 수 있듯이 [모든 존재를 이렇게 존재하게 하 것이 안립입니다모든 존재를 이렇게 있게 하는 것이 진여의 능력이고 진여불성의 능력입니다.]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이

悉能安立一切衆生(실능안립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안립시킬 수 있으며,

[진여가 능히 안립함이 있듯이, 모든 일체중생이 이렇게 있도록 하는 겁니다.

봄이 와서 새싹이 자라고, 꽃이 만발하는 거이 전부 자연의 선행 덕택임을 잘 감지하는 것도 선행입니다.]

 

譬如眞如가 性常隨順(성상수순)인달하야비유컨대 진여가 자성이 항상 수순하듯이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선근회향도 그와 같아서 

盡未來劫토록미래겁이 다하도록  隨順不斷하니라끊임없이 수순하니라.

[성품이 항상 수순하다. 진여는 뭐든지 다 따릅니다. 무슨 금은칠보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똥오줌도 다 따릅니다.

진여가 따라가지 않는 데는 없습니다. 불도 따르고 물도 따르고, 산도 따르고 바다도 진여가 따르지 아니하는 곳이 없습니다. 작게는 한없이ㆍ한없이 작게 따라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진여불성이고, 크게는 수 억 만 광년 저 멀리까지 순식간에 수순하는 것이 또한 진여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전부 우리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그냥 하고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남의 집 살림살이나, 부처님의 살림살이가 아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살림살이입니다.]

[진여에 대한 너무 좋은 설명이지만 善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지진여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여불성의 이름은 경전 따라또 선사들 따라 표현이 다 다릅니다  진여자성, 한 물건, 마음, 무영수, 목우자, 원각경에는 원각, 일심 등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스님은 당신 생일 때마다 늘 도반들 불러서 식사 한 끼 하는 도반이 있는가하면, 또 한 도반은 절대  공양같이 안하고 당신 생일을 불공올리고 나서 노인잔치를 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당신의 생일불공은 부처님께 ‘감사합니다.’하는 선행이고, 2000명에게 노인잔치를 베푸는 것은 회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