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회향품(十廻向品) 20
7. 第六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제육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
[제6 隨順堅固一切善根 회향은 반야바라밀로 體를 삼음]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라 하는가? 경문에서 “불자야, 이렇게 회향할 때는 바로 부처를 隨順해서 머물고, 법을 수순해서 머물고, 지혜를 수순해서 머물고, 보리를 수순해서 머물게 된다”고 하였으니, 총체적으로는 檀波羅蜜을 행하는 것이 刹海에 두루 해서 法身과 智身을 무너뜨리지 않고, 通化를 성취하여 대자비를 키움으로써 부처의 소행과 같기 때문이다. 또 理로써 행을 따르고 행으로써 理를 따르며, 지혜로써 자비를 따르고 자비로써 지혜를 따라서 방편의 원력으로 智海를 야기시키며, 자비문을 성취해서 조화롭고 자재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수순견고일체선근 회향이 되는 것이다.]
(1) 菩薩의 衆生救濟(중생구제)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或爲帝王하야 臨御大國하면 威德廣被하야 名震天下일새
凡諸怨敵이 靡不歸順하며 發號施令에 悉依正法하며 執持一蓋하야 漙蔭萬方하며
周行率土에 所向無碍하며 以離垢繒으로 而繫其頂하며 於法自在하야 見者가 咸服하며
不刑不罰호대 感德從化하며 以四攝法으로 攝諸衆生하며 爲轉輪王하야 一切周給이니라
佛子야 불자들이여, 云何爲菩薩摩訶薩(운하위보살마하살)의,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고? 견고한 일체 선근에 수순하는 회향 이라 하는가?
佛子야 불자들이여, 此菩薩摩訶薩(차보살마하살)이, 이 보살마하살은
或爲帝王(혹위제왕)하야, 혹시 제왕이 되어 [帝 일금 제] 臨御大國(임어대국)하면, 대국을 다스리게 되면
威德(위덕)이 廣被(광피)하야, 위덕을 널리 베풀어서
名震天下(명진천하)일새, 명성이 천하를 진동시킬 것이기에
凡諸怨敵(범제원적)이, 무릇 모든 원수 도적이
靡不歸順(미불귀순)하며, 다 귀순하게 되고 [귀순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發號施令(발호시령)에, 호를 발하고 명령을 내릴 때는 悉依正法(실의정법)하며, 바른 법에 의지하며
執持一蓋(집지일개)하야, 한 일산= 큰 법을 펼쳐들어
漙蔭萬方(단음만방)하며, 만방을 그늘지우고, [漙 이슬 많을 단]
周行率土(주행솔토)에, 率土= 다스리는 땅(나라)을 두루 다님에
所向無碍(소향무애)하며, 어느 곳을 향하든 장애가 없으며
以離垢繒(이이구증)으로, 때를 여읜 비단띠를 而繫其頂(이계기정)하며, 이마에 두르고
於法(어법)에 自在(자재)하야, 법에 하재하니 見者(견자)가 咸服(함복)하며, 보는 이들이 다 복종하며
不刑不罰(불형불벌)호대, 형이나 벌을 가하지 않고
感德從化(감덕종화)하며, 덕에 감동하여 교화에 따르며
以四攝法(이사섭법)으로 攝諸衆生(섭제중생)하며, 4섭법으로 모든 중생을 보살피며 [사섭법= 보시ㆍ애어ㆍ이행ㆍ동사.]
爲轉輪王(위전륜왕)하야, 전륜왕이 되어 一切周給(일체주급)이니라. 모든 것을 두루 공급합니다.
(2) 菩薩의 自在(자재)한 功德(공덕)
菩薩摩訶薩이 安住如是自在功德에 有大眷屬하야 不可沮壞하며 離衆過失하야 見者無厭하며
福德莊嚴으로 相好圓滿하야 形體支分이 均調具足하며 獲那羅延堅固之身하며
大力成就하야 無能屈伏하며 得淸淨業하며 離諸業障하니라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安住如是自在功德(안주여시자재공덕)에, 이렇게 자재한 공덕에 안주하니
有大眷屬(유대권속)하야, 많은 권속들을 거느리어
不可沮壞(불가저괴)하며, 가로막거나 무너뜨릴 수 없고,
離衆過失(이중과실)하야, 모든 過失= 허물이 없으니 [여러 가지 허물을 떠나서]
見者無厭(견자무염)하며, 보는 이들이 싫어하지 않으며
福德莊嚴(복덕장엄)으로써 相好(상호)가 圓滿(원만)하야 복덕으로 장엄하고 상호가 원만하여
形體支分(형체지분)이 몸과 수족이 均調具足(균조구족)하며,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獲那羅延堅固之身(획나라연견고지신)하며, 나라연의 견고한 몸을 획득하여
[那羅延= 불법을 지키는 신. 천상에 있는 역사의 이름으로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1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제석천의 권속으로 집금강의 하나이며 밀적금강과 함께 이천역사(二天力士)라고 한다.]
大力成就(대력성취)하야, 큰 힘을 성취하니 無能屈伏(무능굴복)하며, 굴복시킬 자가 없으며,
得淸淨業(득청정업)하며, 청정한 업을 얻어서 離諸業障(이제업장)하니라. 모든 업장을 벗어버리니라.
(3) 具足修行布施(구족수행보시)
具足修行一切布施호대 或施飮食과 及諸上味하며 或施車乘하며 或施衣服하며 或施華鬘하며
雜香塗香과 牀座房舍와 及所住處와 上妙燈燭과 病緣湯藥과 寶器寶車와 調良象馬를 悉皆嚴飾하야 歡喜布施하며
或有來乞王所處座와 若蓋若傘과 幢旛寶物과 諸莊嚴具와 頂上寶冠과 髻中明珠와 乃至王位라도 皆無所悋하며
若見衆生이 在牢獄中에 捨諸財寶와 妻子眷屬하고 乃至以身으로 救彼令脫하며
若見獄囚가 將欲被戮에 卽捨其身하야 以代彼命하며 或見來乞連膚頂髮이라도 歡喜施與하야 亦無所悋하고
眼耳鼻舌과 及以牙齒와 頭頂手足과 血肉骨髓와 心腎肝肺와 大腸小腸과 厚皮薄皮와 手足諸指와 連肉爪甲을
以歡喜心으로 盡皆施與하며 或爲求請未曾有法하야 投身而下深大火坑하며
或爲護持如來正法하야 以身忍受一切苦毒하며 或爲求法호대 乃至一字라도 悉能遍捨四海之內一切所有하야
恒以正法으로 化導群生하야 令修善行하야 捨離諸惡하며 若見衆生이 損敗他形에 慈心救之하야 令捨罪業하며
若見如來가 成最正覺에 稱揚讚歎하야 普使聞知하며 或施於地하야 造立僧坊과 房舍殿當하야
以爲住處하고 及施僮僕하야 供承作役하며 或以自身으로 施來乞者하며
或施於佛호대 爲求法故로 歡喜踊躍하고 爲衆生故로 承事供養하며 或捨王位와 城邑聚落과 宮殿園林과
妻子眷屬하야 隨所乞求하야 悉滿其願하며 或捨一切資生之物하야 普說無遮大施之會하니라.
具足修行一切布施(구족수행일체보시)호대, 일체의 보시를 구족히 수행하는데,
或施飮食(혹시음식)과, 음식이나 及諸上味(급제상미)하며, 上味= 맛좋은 것들을 施= 보시하고,
或施 車乘(혹시거승)하며, 혹은 車乘= 탈 것을 보시하거나 或施衣服(혹시의복)하며, 의복을 보시하고,
或施 華鬘(화만)하며, 혹은 화만= 꽃, 꽃타래나 雜香塗香(잡향도향)과, 잡향과 바르는 향이나
牀座와 房舍(상좌방사)와, 牀座= 평상 또는 의자 집, 及所住處(급소주처)와, 머무는 처소나
上妙燈燭(상묘등촉)과, 몹씨 아름다운 등촉, 病緣湯藥(병연탕약)과, 병에 쓰는 탕약, [의ㆍ식ㆍ주, 탕약은 사사공양]
寶器寶車(보기보거)와, 보배 그릇, 보배 수레, 調良象馬(조량상마)를, 잘 길들인 코끼리나 말을
悉皆嚴飾(실개엄식)하야, 모두 엄정히 장식하여 歡喜布施(환희보시)하며 기쁘게 보시하며,
或有來乞王所處座(혹유래걸왕소처좌)와, 혹 누가 와서 왕의 앉는 옥좌나
若蓋若傘(약개약산)과, 일산.[蓋와 傘 비슷한 뜻입니다.] 幢旛寶物(당번보물)과, 당기. 깃발. 보물등,
諸莊嚴具(제장엄구)와. 여러 장엄구들이나 頂上寶冠(정상보관)과, 머리 위의 보배관,
髻中明珠(계중명주)와, 상투 속의 명주= 밝은 구슬이나 乃至王位(내지왕위)라도, 왕위까지도 來乞= 구걸하면
皆無所悋(개무소린)하며, 모두 아끼지 않으며, 若見衆生(약견중생)이, 혹은 중생이
在牢獄中(재뢰옥중)에, 옥에 같힌 것을 보면 捨諸財寶(사제재보)와, 모든 재보나
妻子眷屬(처자권속)하고, 처자 권속에서 乃至以身(내지이신)으로 몸까지도 버려
救彼令脫(구피령탈)하며, 그를 구해 옥에서 나오게 하며,
若見獄囚(약견옥수)가 옥에 같힌 죄수가 將欲被戮(장욕피육)에, 장차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면 [戮 죽일 륙]
卽捨其身(즉사기신)하야, 즉시 자기 몸을 버려 以代彼命(이대피명)하며, 그로써 죄수의 목숨에 대신하며,
或見來乞連膚頂髮(혹견래걸연부정발)이라도, 혹 누가 와서 連膚頂髮= 피부에 붙은 머리털을 구걸하더라도
歡喜施與(환희시여)하야, 기쁘게 보시하되 亦無所悋(역무소린)하고, 역시 아끼지 않으며,
眼耳鼻舌과 及以牙齒(급이아치)와, 눈, 귀, 코. 혀나 이빨, 頭頂手足(두정수족)과 머리, 수족이나
血肉骨髓(혈육골수)와 피. 살. 뼈. 골수나 心腎肝肺(심신간폐)와 심장, 신장. 간. 허파나
大腸小腸(대장소장)과 대장. 소장이나 厚皮薄皮(후피박피)와, 두꺼운 피부. 얇은 피부나
手足諸指(수족제지)와, 諸指=손가락, 발가락. 連肉爪甲(연육조갑)을, 살이 붙어있는 손톱과, 발톱까지도
以歡喜心으로, 기쁜 마음으로 盡皆施與(진개시여)하며, 모두 보시하며,
或爲求請未曾有法하야, 혹 미증유한 법을 청해 듣기 위해서라면 [未曾有法= 그 동안 듣지 못했던 법]
投身而下深大火坑(투신이하심대화갱)하며, 깊고 큰 불구덩이라도 몸을 던져 들어가고,
或爲護持如來正法(혹위호지여래정법)하야, 혹은 여래의 정법을 수호해 지니기 위해서라면
以身忍受一切苦毒(이신인수일체고독)하며, 몸으로 온갖 고초를 감내하여 받으며,
或爲求法(혹위구법)호대, 혹 법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乃至一字(내지일자)라도, 단 한 글자라도
悉能遍捨四海之內一切所有(실능편사사해지내일체소유)하야 사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어서
恒以正法(항이정법)으로, 늘 정법으로 化導群生(화도군생)하야, 중생들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令修善行(영수선행)하야, 선행을 닦아서 捨離諸惡(사리제악)하며, 모든 악을 버리게 하며,
若見衆生이 損敗他形(손패타형)에, 만약 중생들이 남의 몸을 해치는 것을 보면
慈心救之(자심구지)하야, 자애로운 마음으로 구원하여 令捨罪業(영사죄업)하며, 죄업을 버리게 하며,
[草繫比丘(초계비구)=풀에 얽매인 비구 이야기. 옛날 인도에서 여러 명의 비구들이 길을 가다가 도둑을 만나 옷을 빼앗기고, 벗긴 채 풀에 묶였다. 비구들은 풀이 끊어지면 풀이 상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대로 뜨거움과 배고품을 참고 있었다. 이때 사냥 나왔던 임금이 이것을 보고 풀어준 뒤 그 연유를 듣고는 비구들의 행동에 감동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는 것으로, 금계(禁戒)의 중요함을 비유한 것임]
若見如來가 成最正覺(성최정각)에, 만일 여래가 최상의 정각 이루시는 것을 보면
稱揚讚歎(칭양찬탄)하야 칭양찬탄하여 普使聞知(보사문지)하며, 널리 알리거나
[화엄경은 불멸후 600년경에 결집되면서 모든 깨달은 사람은 전부 여래, 부처다. 더 부연해서 일체 생명은 전부 여래다.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다. 물론 그 원조는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或施於地(혹시어지)하야, 혹은 땅을 보시하여 造立僧坊(조립승방)과, 승방이나 집, 전당을 지어서
以爲住處(이위주처)하고, 그로써 머무실 곳을 삼고, 及施僮僕(급시동복)하야, 동복= 시봉을 붙여
供承作役(공승작역)하며, 공양하며 모시는 作役= 일을 하게 하며,
或以自身으로 施來乞者(시래걸자)하며, 혹 자기의 몸을 구걸하는 이에게 주거나
或施於佛(혹시어불)호대, 부처님께 바치면서도 爲求法故(위구법고)로, 법을 구하기 위함이라서
歡喜踊躍(환희용약)하고, 뛸듯이 기뻐하며 爲衆生故(위중생고)로,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承事供養(승사공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或捨王位(혹사왕위)와, 혹 왕위나 城邑聚落(성읍취락)과, 성읍, 취락이나 宮殿(궁전)과 園林(원림)과 궁전, 정원 숲이나
妻子와 眷屬(처자권속)을, 처자 권속을 捨= 버려서라도 隨所乞求(수소걸구)하야, 구걸하는 것에 따라
悉滿其願(실만기원)하며, 그 소원을 만족시키며,
[기수급고독원 기원정사 이야기, 급고독장자가 죽림정사의 거래처에 갔더니, 이 사람은 평소에 그렇게 반겼는데, 뭘 한다고 바빠서 쳐다보지도 않고...
“이 사람아 뭘 한다고 그렇게 바쁜가? 내가 왔다고.”
“아 잠깐 기다리라.”고, 뭘 하느냐고 하니까
“여기에 큰손님이 오셨는데 그 분과, 그 분 제자들에게 공양 올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 내가 손수 이렇게 부엌에서 밥을 짓고, 음식을 장만한다.”고 그러니까,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고
“그래, 기다려 보면 안다.”고, 그 이튿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감동을 해서는
“나는 저기 쉬라바스티 부근에 사는데 부처님! 제발 거기에 오십시오.” 이렇게 해서 기원정사를 짓게 된 사연!
부처님의 인격을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或捨一切資生之物(혹사일체자생지물)하야, 혹은 모든 資生之物= 생활용품을 보시하여
普說無遮大施之會(보설무차대시지회)하니라. 무차대시회를 널리 마련하니라.
[무차대회(無遮大會)는 사찰에서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하여 공양하고 베풀고, 설법을 듣고 서로 질문하여 배우는 모임을 말한다.
모든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無遮) 공양과 보시를 하는 법회로써, 인도 아쇼카왕이 시작하여 5년에 1회씩 법회를 열었다고 해서 오년법회(五年法會)라고도 한다. 이 의식이 수륙재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수륙재는 일명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 하여, 아무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그 공덕이 미치게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 수륙재를 여는 신앙적인 의미도 유주(有住)·무주(無住)의 고혼(孤魂)에게 평등하게 공덕이 돌아갈 수 있게 한다고 인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륙재는 무차대회의 한 종류로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무차대회는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불법의 공덕이 두루 돌아가게 함은 물론, 물건도 골고루 나누어 주고 다 함께 즐기게 하는 법회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구체적인 신앙의례를 갖춘 것이 수륙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어떠한 법회양식으로 무차대회가 개최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때 불경을 강의하거나 불교의 이치에 대하여 각각 의견을 말하여 서로 배우는 절차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차대회가 940년(태조 23) 조정에서 신흥사(新興寺)에 공신당(功臣堂)을 신축할 때 공신들의 화상을 봉안하고 하루 동안 무차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또, 1216년(고종 3) 10월 미륵사(彌勒寺)의 공신당을 중수한 뒤 다시 무차대회를 성대하게 열었다. 신흥사와 미륵사에서의 무차대회는 그 뒤 그 규모는 달라졌으나 대체로 왕실이 주관하는 국가의 연중행사로 발전되어 갔다.
또, 광종이 때때로 귀법사(歸法寺)에서 크게 무차대회를 열어 잔치를 베풀고 물품을 나누어 주었던 것과, 1165년(의종 19) 1월 왕이 시주가 되어 궁중에서 무차대회를 열었던 것 등은 모두 불교의 보시정신(布施精神)에 입각한 것이다.
이 무차대회의 또 다른 목적은 널리 민심을 수렴하는 데 있었다. 국왕 또는 국가가 시주가 되어 공신당에서 연중행사인 무차대회가 열렸음은 공신들의 명복을 비는 한편, 국민을 국가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널리 민심을 다스렸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도 국행(國行)으로 여는 수륙재는 중종 때까지 계속되나 무차대회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명종 때 회암사(檜巖寺)를 중수하고 보우(普雨)가 발원하고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시주하여 무차대회가 개최되었을 뿐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무차대회는 수륙재보다 재의(齋儀)의 규모를 더 크게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덕(佛德)을 고루고루 나누게 한다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지닐 때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공양(供養) 범어로 pujana, 공시(供施)· 공급(供給)· 공(供)이라고도 합니다. 공양이라는 말은 단순이 물건을 줌으로써 얻어지는 신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공양도 포함하며, 심분공양(心分供養)은 정신적인 공양을 말하는 것이며, 신분공양(身分供養)은 신체적인 공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양은 자양(資養)한다는 말입니다. 음식, 옷 따위를 준다는 것으로 예날부터 부처님께 향을 피워 올리고 차나 꽃을 받치는 것도 공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양주는 절에서 밥이나 죽 등을 짓는 소임을 맡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혹은 삼보(불, 법, 승)에 재물을 시주하는 사람, 시주하기를 권하는 사람, 그러한 공양을 받아내는 사람을 공양주라고도 합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은 신선한 것, 즉 첫 수확에서 얻어진 제일 처음의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받은 물건도 부처님께 올렸다가 먹는 것이 예의이며, 물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주기 때문에 부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스님들이 첫 새벽에 맑고 깨끗한 물을 길어 다가 부처님에 바치는 것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은 깨끗한 것이면 무엇이나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불공(佛供)이라고 한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몸으로 하는 예배 공경과 입으로 하는 찬탄과 뜻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공양, 이 세 가지를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하며, 음식, 의복, 탕약, 방사(房舍),등을 사사공양(四事供養)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법을 전하여 수호하는 법공양(法供養)을 공양 중에서 가장 수승하다고 하였다.
다음에 삼종공양(三種供養)이 있으니 이공양, 재공양(利供養, 財供養), 경공양, 법공양(敬供養, 法供養), 행공양, 관행공양(行供養, 觀行供養)이 그것이다. 이공양, 재공양(利供養, 財供養)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재물, 향화, 의복 등의 물자를 공양하는 일이다. 경공양, 법공양(敬供養, 法供養)은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 예배하며 가르치신 교법(敎法)에 따라 보리심(菩提心..인생의 근본을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나뿐만 아니라 남도 이익 되게 하는(自利利他行) 보살의 행을 닦는 공양이다. 행공양, 관행공양(行供養, 觀行供養)은 부처님의 교법을 잘 믿고 간직하여 수행하며 이 세상의 근본을 관조하여 행하는 공양이다. 공양을 올리는 것은 불, 법, 승 삼보를 존경하고 원을 세우며 우리의 어리석은 집착을 버리고자 하는 데에 커다란 이유가 있다. 특히, 부처님께 올리는 불공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삶의 바른 길을 열어 보이시고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데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불공하는 사람은 오직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양을 올릴 뿐이다. 복덕을 바라거나 어떤 보살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 공양은 적은 공양이 되고 만다. 그래서 공양은 고하는 바 없이, 공양한 생각 없이 항상 부족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최상의 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공함으로써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부처님의 한량 벗는 공덕 세계와 하나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복덕은 구하지 않아도 오는 것이다. 공양은 탐심을 버리고 마음을 닦아 복덕의 문을 여는 행위이다.]
(4) 平等(평등)한 布施(보시)
其中衆生의 種種福田이 或從遠來하고 或從近來하며 或賢或愚와 或好或醜와
若男若女와 人與非人의 心行이 不同하고 所求가 各異라도 等皆施與하야 悉令滿足이니라
其中衆生(기중중생)의 種種福田(종종복전)이, 그 안 중생들의 여러가지 복밭이
或從遠來(혹종원래)하고, 혹 멀리서 오거나 或從近來(혹종근래)하며, 혹 가까운 데서 왔거나
或賢或愚(혹현혹우)와, 혹은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或好或醜(혹호혹추)와, 혹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若男若女(약남약여)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人與非人(인여비인)의, 인간이거나 비인간이거나,
心行이 不同하고, 마음과 행동이 부동하고 所求가 各異(각이)라도, 구걸하는 것이 저마다 다른데도
等皆施與(등개시여)하야, 평등하게 다 베풀어 悉令滿足(실영만족)이니라. 모두 만족케 합니다.
[여기서는 물질을 주로 이야기를 많이 소개 하지만, 한 마디로 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