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회향품(十廻向品) 18
(10) 利益(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時에 普入一切佛國土故로 一切佛刹이 皆悉淸淨하며
普至一切衆生界故로 一切菩薩이 皆悉淸淨하며 普願一切諸佛國土에 佛出興故로
一切法界一切佛土에 諸如來身이 超然出現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에, 이렇게 회향할 때
普入一切佛國土故(보입일체불국토고)로, 모든 불국토에 널리 들어가기 때문에
一切佛刹(일체불찰)이 皆悉淸淨(개실청정)하며, 모든 부처님 세계가 다 청정해지는 것이며,
[근본은 세계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안목에 있다고 봐야 됩니다.]
普至一切衆生界故(보지일체중생계고)로, 일체중생계에 널리 이르기 때문에
一切菩薩이 皆悉淸淨(개실청정)하며 모든 보살들이 다 청정해지는 것이며,
普願一切諸佛國土(보원일체제불국토)에 佛出興故(불출흥고)로, 모든 불국토에 부처님 출흥하시기를 발원하기 때문에
一切法界一切佛土에 모든 법계 모든 불토에 諸如來身(제여래신)이, 모든 여래의 몸이
超然出現(초연출현)이니라. 초연히 출현하시는 것입니다.
(11) 實際(실제)에 廻向(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無比廻向으로 趣薩婆若에 其心廣大가 猶如虛空하야 無有限量하야
入不思議하며 知一切業과 及以果報가 皆悉寂滅하야 心常平等하야 無有邊際일새 普能遍入一切法界하나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以如是, 이러한
等無比廻向(등무비회향)으로, 비길 데 없는 회향으로 趣薩婆若(취살바야)에, 일체지에 나아가기에
其心廣大(기심광대)가 猶如虛空(유여허공)하야, 마음이 광대하기가 허공처럼
無有限量(무유한량)하야, 한량이 없어서 入不思議(입부사의)하며, 부사의에 들어가며,
知一切業(지일체업)과 及以果報(급이과보)가, 모든 업과 과보가
皆悉寂滅(개실적멸)하야, 모두 적멸한 줄을 알아서
[현상은 전부 업과 업의 과보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본질, 성품, 진여자성의 자리에서 보면 그것이 모두 皆悉寂滅입니다. 차별된 현상을 쫓아가기로 하면, 끝이 없고 답이 없으니까, 우리 한마음 자리, 진여자성자리에 廻歸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心常平等(심상평등)하야 마음이 항상 평등하고 無有邊際(무유변제)일새. 끝이 없으니
普能遍入一切法界(보능편입일체법계)하나니라. 일체 법계에 두루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마음 자리, 참마음 자리에 廻歸하면 모든 것이 다 문제 해결입니다.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로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라 모든 현상은 본래부터 적멸한, 그것이 근본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 펼쳐지고 또 나눠지다 보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현상만 자꾸 쫓아가는 겁니다.
돌을 삽살개에게 던지면, 삽살개는 그것이 먹을 것인가 해서 돌을 쫓아가듯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려고 쫓아가는 겁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그와 같습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와 같이 현상을 쫓아가고, 大心凡夫, 화엄행자는 그 본질에 관심을 갖는 겁니다. 그 일어난 장소, 진여자성자리ㆍ불성자리에 마음을 돌리는 것이지요.
능엄경의 이치에 견주어 이야기하면 反聞聞自性(반문문자성) 듣는 것을 돌이켜서 듣는 그 자체를 듣는 것이지요.
듣는 말소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듣는가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부처님말씀을 듣든지, 자기 비난하는 소리를 듣든지, 음악, 차, 비행기 소리를 듣든지 간에 聞自性= 그 듣는 성품, 듣는 그 본질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알려 하고, 그것을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法과 性, 法은 현상이고 性은 본질이다. 현상=물결을 쫓아가기로 하면 끝이 없으니까, 물을 이해하려고 해야됩니다. 물을 이해해버리면 물결이야 아무 상관없습니다. 금을 이해해 버리면 금으로 무엇을 만들어도 그것은 그냥 현상일 뿐, 금이 중요한 것이지요. 현상은 늘 변화무상하기 마련입니다.]
(12) 離妄心(이망심) 망심을 떠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不分別我와 及以我所하며 不分別佛과 及以佛法하며
不分別刹과 及以嚴淨하며 不分別衆生과 及以調伏하며 不分別業과 及業果報하며
不着於思와 及思所起하며 不壞因하고 不壞果하며 不取事하고 不取法하며
不謂生死有分別하고 不謂涅槃恒寂靜하며 不謂如來가 證佛境界하야 無有少法與法同止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에 이렇게 회향할 때
不分別我(불분별아)와 及以我所(급이아소)하며 '나'와 '내것'을 분별하지 않고
[전부 나와 나의 것. 나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것ㆍ내가 터득한 것ㆍ내가 성취한 것ㆍ내가 가진 것ㆍ내가 만든 것ㆍ내가 아는 것ㆍ내가 배운 것 등은 전부 我所=나의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지 아니하며,]
不分別佛(불분별불)과 及以佛法(급이불법)하며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분별하지 않고,
不分別刹(불분별찰)과 及以嚴淨(급이엄정)하며, 세계와 그 엄정함을 분별하지 않고,
不分別衆生(불분별중생)과 及以調伏(급이조복)하며, 중생과 그 조복함을 분별하지 않고,
不分別業(불분별업)과 及業果報(급업과보)하며, 업과 업의 과보를 분별하지 않고,
不着於思(불착어사)와 及思所起(급사소기)하며, 생각과 생각으로 일어난 것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不壞因(불괴인)하고 인을 깨뜨리지 않고 不壞果(불괴과)하며, 과도 깨뜨리지 않으며,
不取事(불취사)하고 事=일, 현상을 취하지 않고 不取法(불취법)하며, 법을 취하지도 않으며,
不謂生死有分別(불위생사유분별)하고, 생사가 분별이 있다 여기지도 않고
不謂涅槃恒寂靜(불위열반항적정)하며, 열반이 항상 적정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不謂如來가 證佛境界(증불경계)하야, 여래가 부처님 경계를 증득하였다 말하지 않나니,
無有少法與法同止(무유소법여법동지)니라. 조그만 법도 법과 함께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少法= 어떤 법도 법으로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아니 하나니라. 소법이 모두 망심에 해당되니까 함께 머물지 않는= 망심을 떠난 것이라 했습니다.]
(13) 衆生에게 廻向(중생회향) 중생에게 회향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以諸善根으로 普施衆生호대 決定成熟하고 平等敎化하야
無相無緣하며 無稱量無虛妄하야 遠離一切分別取着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如是廻向時에, 이렇게 회향할 때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을 普施衆生(보시중생)호대,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서
決定成熟(결정성숙)하고, 결정코 성숙시키고 平等敎化(평등교화)하야, 평등히 교화하며
無相無緣(무상무연)하며, 상도 인연도 없고
[相도 없고, 緣= 조건도 없으며, 우리는 보통 相없이 하기도 어렵지만, 緣없이 보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無稱量無虛妄(무칭량무허망)하야, 저울질하거나 허망함도 없이 [稱量= 헤아림도 없고 허망함도 없어서,]
遠離一切分別取着(원리일체분별취착)이니라. 일체의 분별과 취착에서 멀리 떠납니다.
(14) 廻向의 德
가. 無盡善根德(무진선근덕)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已에 得無盡善根하나니 所謂念三世一切諸佛故로 得無盡善根하며
念一切菩薩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淨諸佛刹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淨一切衆生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深入法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修無量心等虛空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深解一切佛境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於菩薩業에 勤修習故로 得無盡善根하며 了達三世故로 得無盡善根이니라
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은 如是廻向已(여시회향이)에 이렇게 회향하고서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하나니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는데,
所謂念三世一切諸佛故(소위념삼세일체제불고)로, 말하자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한 연고로
得無盡善根(득무진선근)하며, 무진선근을 얻고,
[다함이 없으려면 無相無緣 상이 없고, 조건이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통장에 쌓이게 되는 것이고, 相을 내거나 어떤 조건을 붙여서 보시를 하면 그 조건이 다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요.]
念一切菩薩故(염일체보살고)로, 일체 보살을 생각한 때문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淨諸佛刹故(정제불찰고)로, 모든 부처님 세계를 청정히 한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淨一切衆生界故(정일체중생계고)로, 일체 중생계를 청정히 한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深入法界故(심입법계고)로, 법계에 깊이 들어간 때문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修無量心等虛空界故(수무량심등허공계고)로, 허공계와 같은 무량심을 닦은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深解一切佛境界故(심해일체불경계고)로, 모든 부처님 경계를 깊이 이해한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於菩薩業(어보살업)에 보살의 업을 勤修習故(근수습고)로, 힘써 닦아 익힌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了達三世故(요달삼세고)로, 삼세에 요달한 때문에 得無盡善根이니라. 무진선근을 얻는 것입니다.
나. 我法二空智慧德(아법이공지혜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一切善根으로 如是廻向時에 了一切衆生界가 無有衆生하며
解一切法이 無有壽命하며 知一切法이 無有作者하며 悟一切法이 無補特伽羅하며
了一切法이 無有忿諍하며 觀一切法이 皆從緣起하야 無有住處하며 知一切物이 皆無所依하며
了一切刹이 悉無所住하며 觀一切菩薩行이 亦無處所하며 見一切境界가 悉無所有니라
[我法二空智慧德(아법이공지혜덕) 아공 법공을 터득한 지혜의 덕. 我는 나 자신, 法은 나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
我空ㆍ法空ㆍ俱空을 말하는데, 아공ㆍ법공만 제대로 되면, 구공은 언급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俱空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大意를 破二執現三空(파이집현삼공)해서, 我執ㆍ法執= 나에 대한 집착과 현상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我空ㆍ法空ㆍ俱空까지 들어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以一切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 如是廻向時에,이렇게 회향할 때
了一切衆生界(료일체중생계)가 無有衆生(무유중생)하며, 일체의 중생계에 중생이 없는 줄을 알고
[중생이 있지 아니함을 요달하며=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空이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다.
三觀= 空觀ㆍ假觀ㆍ中道觀.
가관= 우리중생들이 현상을 보는 그것은 가짜요, 잘못 보는 것이요, 거짓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空觀= 중생이든 현상이든 모두 空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바로 부처, 부처인 중생이고 중생인 부처로 보는= 中道觀으로 三觀은 어디나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解一切法(해일체법)이 無有壽命(무유수명)하며, 일체법에 수명이 없음을 이해하며,
一切法(일체법)이 無有作者(무유작자)하며, 일체법이 짓는 자가 없고
[無有作者라 창조자가 있고 절대자가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인과에 대한 것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러면 하나님, 절대자가 할 일이 없어져 버립니다.
“네는 나쁜 짓해도 나만 믿으면 천당 간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착한 일만 하면 무조건 천당 간다.” 이렇게 돼버리면 인과 법칙으로,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인과를 크게 부각 시키지 않습니다.]
悟一切法(오일체법)이 無補特伽羅(무보특가라)하며, 일체법에 보특가라= 자아가 없음을 깨달으며,
[補特伽羅= 自我, 자아관념을. 자아라는 의식입니다. 즉 일체법이 無我라는 뜻입니다.]
了一切法이 無有忿諍(무유분쟁)하며, 일체법에 다툼이 없음을 알고
[일체법이 분쟁이 없음을 요달하며 → 시비ㆍ갈등이 없다. 원효스님의 화쟁 사상으로
그 화쟁은 화엄경 서두에 始成正覺하니, 비로소 정각을 이루니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됐고,
사람들은 여래의 지혜 덕상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더라고 하는 거기에 화쟁사상을 첨부한 겁니다.
왜냐?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 가진 지혜와 덕을 다 가지고 있으면 전부 부처님입니다.
자기도 부처님이지만 남도 역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아서, 서로가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는 입장이 된다면, 분쟁과 갈등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화쟁사상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섭렵하여 그 뜻을 깨우쳤다. 이러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원효는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한 가지 이치에 귀납하고 종합 · 정리하여 내적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불교 사상 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그의 조화적인 불교 사상을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고 한다. 원효의 저서인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은 이러한 화쟁 사상을 잘 보여주는 그의 핵심적인 저술이다.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에서 여러 다른 불교 교의를 10문(十門)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會通)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원효의 이와 같은 통불교적 귀일사상은 한국 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화쟁은 화와 쟁을 정(正)과 반(反)에 두고 그 사이에서 타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합(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오히려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보아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도 화로 동화시켜 나간다. 천차만별의 현상적인 쟁의 상태도 그 근원에서 보면 하나로 화하는 상태에 있을 뿐임을 체득한 원효는 이 원리에 따라 진망(眞妄)·염정(染淨)·이사(理事)·공유(空有)·미오(迷悟)·인과(因果) 등을 불이의 화쟁론으로 전개시킨 것이다.]
觀一切法(관일체법)이 皆從緣起(개종연기)하야 無有住處(무유주처)하며,
일체법이 모두 인연에서 일어나고 머무는 곳이 없음을 관하며,
[일체법이 다 연기, 연을 쫓아서 일어난다= 無有住處= 고정된 장소가 없음을 觀한다.
일체현상은 일체법성이 아니라 一切法이라 했습니다. 즉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일체현상입니다.
性은 금이고 물입니다. 법은 금으로 만든 相= 모습, 물결입니다.
법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바에 따라 인연으로 일어나는, 고정된 주체가 없는 無有住處 임을 관찰한다.
그러니까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복을 받고, 악을 많이 지은 사람은 거기에 당연한 과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고, 내버려둬도 언젠가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이나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知一切物(요일체물)이 皆無所依(개무소의)하며, 모든 사물이 의지할 데 없음을 알고
了一切刹(요일체찰)이 悉無所住(실무소주)하며, 모든 세계가 머물지 않는 줄을 알며
觀一切菩薩行(관일체보살행)이 亦無處所(역무처소)하며, 모든 보살행도 역시 처소가 없음을 관찰하고
見一切境界(견일체경계)가 悉無所有(실무소유)니라. 일체의 경계가 다 있지 않음을 봅니다.
다. 境界淸淨德(경계청정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眼終不見不淨佛刹하며 亦復不見異相衆生하며
無有少法이 爲智所入하고 亦無少智가 而入於法하며 解如來身이 非如虛空이니
一切功德과 無量妙法의 所圓滿故며 於一切處에 令諸衆生으로 積集善根하야 悉充足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如是廻向時에 이렇게 회향할 때
眼終不見不淨佛刹(안종불견부정불찰)하며 눈으로 부정한 부처님 세계를 끝내 보지 않고 [전부 金剛所成입니다.]
亦復不見異相衆生(역부불견이상중생)하며, 다른 모양의 중생도 보지 않으며
無有少法(무유소법)이 爲智所入(위지소입)하고, 적은 법도 지혜로 들어갈 것이 없고
亦無少智(역무소지)가, 적은 지혜도 而入於法(이입어법)하며, 법에 들어갈 것이 없으며,
解如來身(해여래신)이 非如虛空(비여허공)이니, 여래의 몸이 허공 같은 것이 아님을 아나니
一切功德(일체공덕)과 無量妙法(무량묘법)의 일체의 공덕과 무량한 묘법이
所圓滿故(소원만고)며, 원만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몸은 허공과 다른데 여래의 몸은 허공과 같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如來는 一切功德과 無量妙法이 그 안에 가득한 사실을 안다.
그래서 富有萬德(부유만덕)이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래의 몸= 진여자성은 부유하기로 하면 만행만덕이 우리들 참마음 속, 진여자성 속에 본래 갖춰져 있습니다. 六度萬行을 본래 갖추고 있고,
布施ㆍ愛語ㆍ利行ㆍ同事. 四攝法(사섭법)을 우리 마음 속에 본래 갖추고 있고
慈悲喜捨, 四無量心을 다 갖추고 있는데 개발하지 아니해서 잠재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본래의 萬行萬德을 다 갖춘= 無量妙法이 다 원만하다.
여래출현 품에서 부처님 당신은 피나는 6년 고행을 해서 터득한 여래의 지혜와 덕상인데, 가만히 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다 고스란히 가지고 있더라. 奇哉奇哉라= 신기하고 신기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 있어서 최고의 큰 사건이다. 왜냐? 모든 중생들을 전부 부처로 승격시켰으니까요. 한 사람의 깨달음을 말미암아서 모두를 부처로 승격시켜 놨기 때문에 그보다 큰 사건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남김없이 표현한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대의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於一切處(어일체처)에, 일체처에 令諸衆生(영제중생)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積集(적집)善根하야, 선근을 쌓아 모아서 悉充足故(실충족고)니라. 다 충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라. 福智無盡德(복지무진덕) 복과 지혜가 다함이 없는 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念念中에 得不可說不可說十力地하야 具足一切福德하며
成就淸淨善根하야 爲一切衆生福田하나니
此菩薩摩訶薩이 成就如意摩尼功德藏하야 隨有所須하야 一切樂具를 悉皆得故며
隨所遊方하야 悉能嚴淨一切國土하고 隨所行處하야 令不可說不可說衆生으로 皆悉淸淨하야
攝取福德하야 修治諸行故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於念念中(어념념중)에 매 순간마다
得不可說不可說十力地하야, 불가설 불가설인 십력의 지위를 얻어
具足一切福德(구족일체복덕)하며, 일체의 복덕을 구족하고
成就淸淨善根(성취청정선근)하야, 청정선근을 성취함으로써
爲一切衆生福田(위일체중생복전)하나니, 일체중생의 복전이 되나니,
[우리 모두가 일체복덕, 청정선근, 十力, 육바라밀, 사섭법, 사무량심 다 갖추고 있어서 人是福田=사람이 복전입니다.]
此菩薩摩訶薩이 이 보살마하살이
成就如意摩尼功德藏(성취여의마니공덕장)하야, 뜻대로 되는 마니공덕장을 성취하여
隨有所須(수유소수)하야, 필요한 대로 [隨求하는 바가 있음을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一切樂具(일체락구)를 모든 즐기는 것들을 悉皆得故(개실득고)며, 다 얻기 때문이며,
隨所遊方(수소유방)하야, 다니는 곳마다 悉能嚴淨一切國土(실능엄정일체국토)하고, 모든 국토를 엄정히 하고
隨所行處(수소행처)하야, 행할 바를 따라서, 令不可說不可說衆生으로, 불가설 불가성의 중생들을
皆悉淸淨(개실청정)하야, 다 청정케 하고 攝取福德(섭취복덕)하야 복덕을 섭취케 함으로써
修治諸行故(수치제행고)니라. 모든 행을 잘 닦아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마. 福智超勝德(복지초승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修一切菩薩行하야 福德殊勝하고 色相無比하며
威力光明이 超諸世間하야 魔及魔民이 莫能瞻對하며 善根具足하고 大願成就하며
其心彌廣하야 等一切智하야 於一念中에 悉能周遍無量佛刹하며
智力無量하야 了達一切諸佛境界하며 於一切佛에 得深信解하야 住無邊智하며
菩提心力이 廣大如法界하고 究竟如虛空이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五無盡功德藏廻向이니라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如是廻向時에 이렇게 회향할 때에
修一切菩薩行(수일체보살행)하야 일체의 보살행을 닦아서 福德殊勝(복덕수승)하고 복덕은 수승하고
色相이 無比(무비)하며, 색상은 비할 데 없게 되며 [모습이 보기 좋으며]
威力光明(위력광명)이 超諸世間(초제세간)하야, 위력의 광명이 온 세간을 초월하니
魔及魔民(마급마민)이 마군과 마군의 수하들이 莫能瞻對(막능첨대)하며, 감히 마주할 수 없고
善根이 具足(구족)하고 大願이 成就(성취)하며 선근을 구족하고 대원을 성취하니
其心彌廣(기심미광)하야, 마음이 더욱 넓어져서 等一切智(등일체지)하야, 일체지혜와 같아지며,
於一念中(어일념중)에, 한 순간에 悉能周遍(실능주변)無量佛刹하며,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에 두루할 수 있고
智力無量(지력무량)하야, 지혜의 힘이 한량없으니
了達一切諸佛境界(요달일체제불경계)하며, 일체제불의 경계에 요달하고
於一切佛에 부처님들에 대한 得深信解(득심신해)하야, 깊은 신해를 얻어서
住無邊智(주무변지)하며, 끝없는 지혜에 머물며 菩提心力(보리심력)이, 보리심의 힘이
廣大如法界(광대여법계)하고, 법계만큼 광대하고 究竟(구경)에 如虛空(여허공)이니, 허공처럼 구경하게 되나니
佛子야 불자들이여, 是名, 이것이 菩薩摩訶薩의 보살마하살의
第五無盡功德藏廻向이니라. 제 5 다함이 없는 공덕 창고 회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