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십회향품(十廻向品) 3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제일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
(1) 廻向善根(회향선근)
佛子야 云何爲菩薩摩訶薩의 救護一切衆生호대 離衆生相廻向고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行檀波羅密하며 淨尸波羅密하며 修羼提波羅密하며 起精進波羅密하며
入禪波羅密하며 住般若波羅密하야 大慈大悲大喜大捨로 修如是等無量善根하나니
修善根時에 作是念言호대 願此善根으로 普能饒益一切衆生하야 皆使淸淨하야
至於究竟하야 永離地獄餓鬼畜生閻羅王等의 無量苦惱라하니라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열심히 돕고ㆍ제도하고ㆍ교화하고ㆍ성숙시키고ㆍ성취시키고ㆍ보호하지만, 중생의 상을 다 떠난 상태에서 해야 된다. 우리가 남을 위하는 일들이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많은데 자칫, 내가 배려하는 사람,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란 착각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것 조심해야 됩니다.]
[救護一切衆生(구호일체중생)호대 離衆生相廻向(이중생상회향)이 명목의 두 가지 뜻은
첫째 지위에 따라 수행하는 단계의 법을 밝힘은 10주 중 초발심住에서 보살이 반연하는 열가지 難得法, 이른바 處와 非處 등의 여래의 10 智力을 마음에서 발하여 부처님 집안에 태어나 참된 불자가 되는 것이며, 10행에서는 환희행을 행할 때 大施主가 되어서 모두 능히 은혜롭게 보시하면서도 인색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반연을 삼으며, 이 10회향에서는 첫 회향이 구호 일체중생하되 이중생상회향이란 6바라밀과 4무량심으로 반연을 삼는 것이다. 즉 10주와 10행에서 얻은 대지혜 법신의 집착 없는 청정행으로 광대한 願行을 일으켜 생사에 처해서 6바라밀로 행의 첫머리를 삼고, 자·비·희·사를 생사에 처해서 사물을 이롭게 하는 緣을 삼은 때문에 그 명칭이 됨을 밝힌 것이다. 즉 慈, 悲, 喜, 捨로써 구원과 보호를 삼고 6바라밀의 출세간법으로 중생상을 여읨을 삼는 것이니, 度의 행문이 출세간의 행이 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세운 단계가 10주의 초발심 지위에서 일시에 다 갖췄지만, 다만 문자로 쓰는 名言의 차례 때문에 단락의 나뉨이 생기는 것이지 이 법이 먼저와 나중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가령 10주위 중 선재동자가 법을 나타낸 중에서 海門國에서 대해를 관할 때 아수라 등 10왕의 공양 등을 갖추고 있음이 바로 이 회향의 뜻이다. 그러나 敎門의 단계적 승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행이 침체해서 나아가지 못함을 막는 것이다.
둘째 근본 지위의 명칭을 밝히면; 대지혜의 법신으로 여읨의 體를 삼고, 10바라밀과 4무량심으로 생사에 처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함을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그 명칭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면서도 중생상을 여읜 회향심이 된다. 즉 지혜의 體가 의지함이 없고 구원하고 보호하는 바가 머묾이 없고 중생이 相이 없어서 구원하면서도 작위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고 중생이 스스로 참되어서 생겨나고 사라짐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되는 것이다.]
佛子야 불자들이여, 云何爲菩薩摩訶薩(운하위보살마하살)의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救護一切衆生(구호일체중생)호대 離衆生相廻向(이중생상회향)고?
중생이란 상을 떠나서 일체중생을 구호하는 회향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이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떠난 회향의 열 가지 수행은;
六度四心입니다. 六度= 6바라밀. 四心= 四無量心= 慈ㆍ悲ㆍ喜ㆍ捨. 이것이 보살행의 기본입니다.
여섯 가지 바라밀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속에 어떤 선근도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 '보시', 아까는 廻向一法이 總攝諸行했는데, 지금은 布施一法이 總攝諸行이다.
四無量心의 大慈는 어머니의 큰 사랑. 大悲는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의 사랑.
大喜는 중생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大捨가 조금 애매해서 설명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것이 평정심. 편안함을 주는 것.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상태가 “버릴 捨”입니다. 捨는 평정심, 평온함, 편안함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첫 회향 법문을 성취하는 데는 다섯 가지 緣을 구조하는데, 첫째 법신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스스로 요달해 아는 해타의 연을 갖추는 것이며, 둘째 대지혜 해탈의 연을 얻는 것이며, 셋째 대원력으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연을 갖추는 것이며, 넷째 10바라밀이 구족한 뛰어난 행의 연이며, 다섯째 慈·悲·喜·捨로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연이니, 이 다섯 가지 법을 갖춰야 비로소 능히 이 첫 회향을 성취하는 것이다.]
佛子야 此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行檀波羅密(행단바라밀)하며, 단바라밀= 보시 바라밀을 행하고,
淨尸波羅密(정시바라밀)하며, 시바라밀= 시라 바라밀= 지계 바라밀을 청정히 하며,
[단바라밀을 행하고 계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가'= 능히 악법을 버리기에 계의 體가 스스로 청정한 것이다.]
修羼提波羅密(수찬제바라밀)하며, 찬제바라밀= 인욕 바라밀을 닦고
[어떻게 인바라밀을 닦는가'= 施戒(보시의 계율)가 이미 이루어져서 반드시 忍의 힘을 닦아야 하는데, 보시의 體는 능히 버리는 계의 體와 더불어 청정한 因이 되지만, 인의 체는 모름지기 가행해서 닦으니 忍은 남이 능욕하는 것을 막는 것이지 자기가 스스로 버림을 말미암지 않으므로 반드시 가행해서 인을 배우는 것이다.]
起精進波羅密(기정진바라밀)하며,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며,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키는가'= 인의 體가 스스로 그 분노와 원한을 쉬는 것이지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기꺼이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름지기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일으키는 것이 이 지위의 정진의 뜻이다.]
入禪波羅密(입선바라밀)하며, 선정바라밀에 들어가고
[어떻게 정진바라밀을 일으켜 선바라밀에 들어가는가'= 정진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행을 부지런히 하는데, 흐트러진 행동으로 상응함이 많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바라밀에 들어가는 것이다.]
住般若波羅密(주반야바라밀)하야, 반야바라밀에 머물러서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머무는가'= 禪이 능히 청정한 슬기를 발생하는 것이다.]
大慈ㆍ大悲ㆍ大喜ㆍ大捨(대자대비대희대사)로 큰 자비희사로
[무엇이 大慈와 大悲와 大喜와 大捨인가'= 6바라밀이 출세간의 마음이 많기 때문에 자·비·희·사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법으로써 모든 행을 균형과 조화가 있도록 加持한 것이다. 이상 6度와 4무량심을 균등하게 함으로써 지혜와 자비가 처소를 얻어 이 첫 회향 법문을 이룬 것이다.]
修如是等無量善根(수여시등무량선근)하나니, 한량없는 선근을 닦는데
修善根時(수선근시)에, 선근을 닦을 때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생각하기를,
願此善根(원차선근)으로, 이 선근= 六度四心(육도사심)이
[六度四心; 六度= 6바라밀. 四心= 四無量心= 慈ㆍ悲ㆍ喜ㆍ捨.]
普能饒益一切衆生(보능요익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어서
皆使淸淨(개사청정)하야, 모두를 청정히 하여 至於究竟(지어구경)하야, 구경에 이르게 해서
永離(영리), 영원히 地獄餓鬼畜生閻羅王等(지옥아귀축생염라왕등)의 無量苦惱(무량고뇌)라하니라.
지옥, 아귀, 축생, 염라왕 등의 한량없는 고뇌를 離= 여의게 하리라.' 합니다.
[지옥과 같은 삶, 아귀와 같은 삶, 축생과 같은 삶, 염라왕과 같은 삶 등의 한량없는 고뇌를 영원히 떠나게 하나니라.
결국은 중생을 離苦得樂하게 하는 도구로써, 六度四心= 6바라밀과 四無量心으로써 한다. 따지고 보면 불교수행은 이와 같이 간단명료합니다. 그리고 더 간단하게 하려면 그저 주려고 하고는 회향이고 또 보시입니다.]
[이 회향의 법문은 10신·10주·10행에서부터 모두 갖춰져 있건마는 이 本位에 이르러야 비로소 齊等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解行門으로 한다면 차이가 있지만 만약 理智門으로 한다면 모두가 먼저와 나중, 처음과 끝이 없는 법이다.]
(2) 利樂救護(이락구호) 이롭고 즐거움으로써 구호한다.
菩薩摩訶薩이 種善根時에 以己善根으로 如是廻向호대 我當爲一切衆生作舍니 令免一切諸苦事故며
爲一切衆生作護니 悉令解脫諸煩惱故며 爲一切衆生作歸니 皆令得離諸怖畏故며
爲一切衆生作趣니 令得至於一切智故며 爲一切衆生作安이니 令得究竟安隱處故며
爲一切衆生作明이니 令得智光滅癡暗故며 爲一切衆生作炬니 破彼一切無明暗故며
爲一切衆生作燈이니 令住究竟淸淨處故며 爲一切衆生作導師니 引其令入眞實法故며
爲一切衆生作大導師니 與其無碍大智慧故라하나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야 平等饒益一切衆生하야 究竟皆令得一切智니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보살마하살이 種善根時(종선근시)에, 선근을 심을 때
以己善根(이기선근)으로, 자기의 선근을 如是廻向(여시회향)호대, 이와 같이 회향하기를,
我當爲一切衆生作舍(아당위일체중생작사)니, '나는 마땅히 일체중생의 집[舍]이 되어
令免一切諸苦事故(영면일체제고사고)며, 모든 괴로움을 면하게 하는 것이며
爲一切衆生作護(위일체중생작호)니, 일체중생의 수호자[護]가 되어
悉令解脫諸煩惱故(실령해탈제번뇌고)며, 모든 번뇌에서 해탈케 하는 것이며,
爲一切衆生作歸(위일체중생작귀)니, 일체중생의 귀의처[歸]가 되어
皆令得離諸怖畏故(개령득리제포외고)며,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爲一切衆生作趣(위일체중생작취)니, 일체중생의 나아갈 곳[趣]이 되어 [일체중생이 귀의하게 한다]
令得至於一切智故(영득지어일체지고)며, 일체지에 이르게 하며,
爲一切衆生作安(위일체중생작안)이니, 일체중생의 안락함= 편안함[安]이 되어
令得究竟安隱處故(영득구경안은처고)며, 안은한 곳에 구경하게 하며
[究竟= 사물을 철저하게 끝까지 추구한다는 뜻으로 사리의 마지막 경계, 마침내. 필경. 궁구함. 샅샅이 연구함의 뜻]
爲一切衆生作明(위일체중생작명)이니, 일체중생의 광명[明]이 되어 [作明 = 밝음이 되리니,]
令得智光滅癡暗故(영득지광멸치암고)며, 지혜의 광명으로 치암= 어리석음의 어둠을 멸하게 하며,
[우리가 사람의 몸을 받아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이 사실이 그야말로 雨寶益生滿虛空, 다이아몬드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다행함이고 무량대복인데, 각자 그릇의 크기에 따라 그 복을 누리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지혜의 빛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세상에 비유하면 밝음과 같다. 길이 밝으니까 운전도 잘하고 걷기도 잘하고, 넘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인생도 지혜의 밝음이 있는 사람은 즐겁고 현명하게 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爲一切衆生作炬(위일체중생작거)니, 일체중생의 횃불[炬]이 되어
破彼一切無明暗故(파피일체무명암고)며, 모든 무명의 어두움을 깨뜨리게 하고
爲一切衆生作燈(위일체중생작등)이니, 일체중생의 등불[燈]이 되어
令住究竟淸淨處故(영주구경청정처고)며, 구경에 청정한 곳에서 머물게 하며,
爲一切衆生作導師(위일체중생작도사)니, 일체중생의 인도자[導師]가 되어
引其令入眞實法故(인기영입진실법고)며, 그들을 진실한 법에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우리는 화엄경으로 안내자를 삼아야 됩니다. 절대 사람을 염두에 떠올리면 안 됩니다.]
爲一切衆生作大導師(위일체중생작대도사)니, 일체중생의 큰 인도자[大導師]가 되어
[부처님= 三界의 大導師. ‘부처님을 대신하는 것은 부처님이 남기신 이 경전입니다.’]
與其無碍大智慧故(여기무애대지혜고)라하나니, 그들에게 막힘없는 큰 지혜를 與= 주리라.' 하나니
佛子야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 如是廻向(여시회향)하야, 이와 같이 회향하여
平等饒益一切衆生(평등요익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평등히 이롭게 하고
究竟皆令得一切智(구경개령득일체지)니라. 구경에는 모두가 일체지를 얻을 수 있게 합니다.
[一切智=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평등한 면도 꿰뚫어 알고, 차별한 면도 꿰뚫어 아는 지혜, 감나무는 감나무대로 이해하고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이해해서 나는 감나무인데, 네는 왜 밤나무냐고 시비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상반되는 관계를 다 꿰뚫어 아는 그것이 一切智입니다.]
(3) 受苦惱救護(수고뇌구호) 고뇌를 받음으로써 구호한다.
가. 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非親友에 守護廻向호대 與其親友로 等無差別이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入一切法平等性故로 不於衆生에 而起一念非親友想하며
設有衆生이 於菩薩所에 起怨害心이라도 菩薩이 亦以慈眼視之하야 終無恚怒하고
普爲衆生하야 作善知識하야 演說正法하야 令其修習하나니라
[受苦惱救護 중생들을 대신해서 고뇌를 받는 내용으로 첫째는 법이고 그 다음엔 비유, 대해비유, 태양비유가 있습니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於非親友(어비친우)에, 친구 아닌 이들을 守護廻向(수호회향)호대, 수호하고 회향하기를
與其親友(여기친우)로 等無差別(등무차별)이니, 그의 친구와 다름없이 평등하게 차별없이 하나니,
[친구, 친한 사람, 일가친척, 형제자매, 부모처자들을 수호하고, 보살피고, 베푸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합니다. 동물들도 너무나 잘합니다. 새만 봐도 잘합니다. 멀리 날아 가서 자기 죽음을 무릅쓰고 먹이를 구해서 자기는 안 먹고, 자기 새끼한테 와서 먹여주고는 또 날아가서, 먹이를 입에 물었는데 얼마나 넘기고 싶겠습니까? 넘기고 싶은 것을 참고 와서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것은 일체 동물도 다합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야기할 것이 못됩니다. 동물이 오히려 더 잘합니다.
그러나 친우가 아닌 사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피붙이처럼 보살피는 것은 참 어려운 주문입니다.]
何以故(하이고)오? 무슨 까닭인가 하면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보살마하살은
入一切法平等性故(일체법평등성고)로, 일체법의 평등한 성품에 들어갔기 때문에
不於衆生(불어중생)에, 중생들에게
而起一念非親友想(이기일념비친우상)하며, 한 순간도 친구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않고
設有衆生(설유중생)이, 설사 어떤 중생이 於菩薩所(어보살소)에, 보살의 처소에
起怨害心(기원해심)이라도, 원한으로 해치려 하더라도
菩薩이 亦以慈眼視之(역이자안시지)하야, 보살은 자애의 눈으로 보아
終無恚怒(종무에노)하고, 결코 분노하지 않고
普爲衆生(보위중생)하야, 널리 중생을 위해 作善知識(작선지식)하야, 선지식이 되어
演說正法(연설정법)하야, 정법을 연설하고 [선지식이 되어서 바른 법을 일러줘야 됩니다.
“석가세존의 깨달은 바가 뭐냐?”고 했을 때, 모든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연기의 이치, 인과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잡한 것 설명할 것 없이, 그것 하나만이라도 철저히 믿고 일러주면, 훌륭한 법사입니다.]
令其修習(영기수습)하나니라. 그들을 닦아 익히게 하나니라.
나. 大海喩(대해유) 큰 바다의 비유.
譬如大海를 一切衆毒이 不能變壞인달하야 菩薩도 亦爾하야 一切愚蒙이 無有智慧하야 不知恩德하며
瞋狼頑毒하야 驕慢自大하며 其心盲瞽하야 不識善法하는 如是等類의 諸惡衆生이 種種逼惱라도 無能動亂이니라
譬如大海(비여대해)를, 비유컨대 큰 바다는 一切衆毒(일체중독)이 어떠한 독이라도
不能變壞(불능변괴)인달하야, 변하게 할 수 없듯이 菩薩도 亦爾(역이)하야, 보살도 그러하여
一切愚蒙(일체우몽)이, 모든 어리석고 無有智慧(무유지혜)하야, 지혜도 없으며
不知恩德(부지은덕)하며, 은덕도 모르고 瞋狼頑毒(진랑완독)하야, 성내고 사납고 [이리처럼 아주 완악한 독을 품으며]
驕慢自大(교만자대)하며, 교만하여 잘난 척하며 [하늘을 떠받칠 정도로 교만이 탱천해서 스스로 높다고 하는]
其心盲瞽(기심맹고)하야, 그 마음이 어두워서 [그 마음은 타고난 봉사와 같아서]
不識善法(불식선법)하는, 선법을 알지 못하는 如是等類(여시등류)의, 이러한 諸惡衆生(제악중생)이, 몹쓸 중생들이
種種逼惱(종종핍뇌)라도, 여러가지로 괴롭히더라도 無能動亂(무능동란)이니라. 흔들리게 할 수 없으며
[아무리 핍박한다 하더라도 요지부동이다.]
[*바다는 작게는 작은 일렁임에서 큰 파도까지 표면은 거의 항상 출렁인다. 그런데 그 출렁임이 어느 깊이까지는 영향을 주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있다.
이것을 마음의 비유로 인용하면, 출렁이는 의식과 고요한 심층 무의식이 있다고 할수 있다.
출렁이는 의식은 심층 무의식의 일면이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無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출렁거림을 보면서 깊은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의식의 표층과 고요한 심층의 영역은 단절된 곳이 아니라는 개념으로 마음을 열어두면, 그것이 수행이 된다. - 신명
*바다는 아무리 독한 독도 바다를 變壞시키지 못하는, 바다의 물은 변하게 하지 못하고 독도 바다에 들어가면 전부 바닷물로 변해버립니다. 중국의 황하에서 내려온 그 많은 황토물이 전부 맑은 물로 변해버립니다.
*여덟 가지 공덕의 바다.(중아함경_035. 아수라경(阿修羅經)
첫째, 바다는 갑자기 깊어지지 아니하니, 수행함이 오래되어야 그 심연에 도달할 수 있으며,
둘째, 바다가 육지로 넘치지 아니하니, 목숨을 버릴지라도 약속한 계율과 배움을 넘어서서는 안되며,
셋째, 불숙사시(不宿死屍)라. 바다는 죽은 시체와 공주하지 아니하나니, 시체나 죽은 것들은 모두 해안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악법과 부정한 일들은 마침내는 머무를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넷째, 세간에 수많은 강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흐르다가 큰 바다에 이르면 그 이름을 버리듯이, 수행승가는 세간의 명리와 차별을 모두 버린다.
다섯째, 강물이 흘러 들어와도 비가 내려도 바다는 크게 증감이 없으니, 많은 수행자들이 열반에 들더라도 열반의 세계는 넘침이 없다.
여섯째, 바다는 단지 짠맛 하나일 뿐이니, 수행승가에는 해탈의 맛 외에는 다른 맛이 있을 수 없다.
일곱째,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배들이 있듯이, 사념처, 칠각지, 팔정도 등 마음을 보배로 장식하고 싶은 자 누구에게나 선물한다.
여덟째 몸이 큰 생류들의 주처이니, 수행승가는 대중생 즉 마음을 크게 깨우친 이들의 주처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제(무비스님)가 해인사에서 지월스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학인들 선방의 유나스님으로 오래계셨어요.
그 스님은 경을 보는 스님도 아닌데, 어떻게 도량을 거닐다가 그 스님을 만나면 평소에 보아서 고치고 싶었던 것들을 그 만난 학인에게 계속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학인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얼마나 간절하게 이야기하는지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스님이 6ㆍ25직후에 강원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아무 잘 못도 없이 경찰에게 걸렸어요.
그 때는 도민증인데, 스님이 그런 것도 제대로 안 갖추고 다니니까, 무지몽매한 순경들이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얼마나 구타를 했는지 하루 종일 얻어맞은 겁니다. 그 때는 6ㆍ25직후니까 ‘빨갱이가 혹시 승복을 입고 절에 숨어들지 않았나?’그런 의혹이 참 많았을 때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구타를 해도,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니까 나중엔 놔 줬어요.
절에 두 세 시에 올라온 겁니다. “스님 왜 이제야 왔습니까?” 하니까 상좌들에게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늦게 왔노라고, 그리고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정진하는데,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은 그 몸을 가지고 반듯하게 앉아서 대중들과 똑 같이 정진을 했다는 겁니다. 낮에도 그렇게 정진하고 밤에도 정진하고,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조는 사이에 끙끙 앓거든요. 상좌들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보니까 온 몸에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어서 거의 송장이 다 되다시피 그런 상태가 되었는데도, 빳빳하게 앉아서 정진시간을 다 채운 스님입니다.
별명이 자비보살입니다. 그리고 제일 감동스럽게 들은 축원이 그 스님 축원입니다. 그렇게 듣기 좋아서, 그 스님축원 들으러 절에 가서 예불하곤 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스님이었습니다. 가리킬 指ㆍ달 月. 지월스님.]
다. 日輪喩(일륜유)
譬如日天子가 出現世間에 不以生盲不見故로 隱而不現하며 又復不以乾闥婆城과 阿修羅手와
閻浮提樹와 崇巖邃谷과 塵霧煙雲인 如是等物之所覆障故로 隱而不現하며
亦復不以時節變改故로 隱而不現인달하야
譬如日天子(비여일천자)가, 달리 비유하건대 [日天子衆= 태양] 出現世間(출현세간)에, 해가 세간에 떠서
不以生盲不見故(불이생맹불견고)로, 맹인이 보지 못한다 하여 [生盲=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
隱而不現(은이불현)하며, 숨어버리지 않고,
又復不以乾闥婆城(우부불이건달바성)과, 또 건달바 성이나 阿修羅手(아수라수)와 아수라의 손,
閻浮提樹(염부제수)와 염부제의 나무나 崇巖邃谷(숭암수곡)과, 높은 바위와 깊은 골짜기,
塵霧煙雲(진무연운)인, 티끌, 안개, 연기, 구름,
如是等物之所覆障故(여시등물지소부장고)로, 이러한 것들이 가린다 해서
隱而不現하며 숨어버리지 않고 [숨어 나타나지 아니하며]
亦復不以時節變改故(역부불이시절변개고)로, 또한 시절이 변했다해서 隱而不現인달하야. 숨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밤이 되어서 안 나타난다고 해서 태양이 없는 것도 아니듯이, 태양은 태양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라. 合(합) 비유와 법을 합하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有大福德하며 其心深廣하며 正念觀察하며 無有退屈하며
爲欲究竟功德智慧하며 於上勝法에 心生志欲하며 法光普照하야 見一切義하며 於諸法門에 智慧自在하며
常爲利益一切衆生하야 而修善法하며 曾不誤起捨衆生心하며
不以衆生이 其性弊惡하야 邪見瞋濁하야 難可調伏으로 便卽棄捨하야 不修廻向하고
但以菩薩大願甲冑로 而自莊嚴하야 救護衆生하야 恒無退轉하며
不以衆生이 不知報恩으로 退菩薩行하야 捨菩提道하며 不以凡愚가 共同一處로 捨離一切如實善根하며
不以衆生이 數起過惡하야 難可忍受로 而於彼所에 生疲厭心하나니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러하여
有大福德(유대복덕)하며, 큰 복덕을 지녔으니 其心이 深廣(기심심광)하며, 그 마음이 넓고 깊으며,
正念觀察(정념관찰)하며, 정념으로 관찰하기를 無有退屈(무유퇴굴)하며, 굽히지 않고,
爲欲究竟功德智慧(위욕구경공덕지혜)하며, 공덕과 지혜에 구경= 완성하고자
於上勝法(어상승법)에, 상승법= 훌륭한 법에 心生志欲(심생지욕)하며, 뜻을 세우고 [마음에 하고자 하는 뜻을 내며,]
法光普照(법광보조)하야, 법의 광명을 두루 비춰서 見一切義(견일체의)하며, 모든 이치= 뜻을 보며
於諸法門(어제법문)에, 모든 법문에 智慧가 自在(지혜자재)하며, 지혜가 자재하니
常爲利益一切衆生(상위이익일체중생)하야, 항상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해
而修善法(이수선법)하며, 선법을 닦으면서
曾不誤起捨衆生心(증불오기사중생심)하며,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잘못 일으킨 적이 없으며,
不以衆生(불이중생)이 중생들이란 其性弊惡(기성폐악)하야, 그 성품들이 추악하여
邪見瞋濁(사견진탁)하야, 삿된 견해로 성내고 더러우니 難可調伏(난가조복)으로, 조복하기 어렵다 하여
便卽棄捨(변즉기사)하야, 쉽사리 포기하고 버려서
不修廻向(불수회향)하고, 회향을 안한다거나 하지 않고, [회향을 닦지 않거나 하지 아니하고,]
[중생이 아무리 나빠도 그 사람 때문에 회향을 버리는 일은 없다. 중생이 나쁘다고 해서 그를 버리지 않는다.]
但以菩薩大願甲冑(단이보살대원갑주)로, 단지 보살대원의 갑옷으로 而自莊嚴(이자장엄)하야, 스스로를 장엄하여
救護衆生(구호중생)하야, 중생을 구호하며, 恒無退轉(항무퇴전)하며, 항상 물러섬이 없이
不以衆生이 不知報恩(부지보은)으로, 중생이 은혜 갚을 줄 모른다 하여
退菩薩行(퇴보살행)하야, 보살행에서 물러서거나 捨菩提道(사보리도)하며, 보리도을 버리지 않고,
不以凡愚(불이범우)가, 우매한 이들과 共同一處(공동일처)로, 함께 있다하여
捨離一切如實善根(사리일체여실선근)하며, 일체의 여실한 선근을 버리지 않으며,
[處染常淨(처염상정)하는 것이고, 같이 살되 和光同塵(화광동진) 和而不同(화이부동) 내면까지 다 함께 하지는 않는다.]
不以衆生이 중생이 數起過惡(삭기과악)하야, 자주 과오를 범하니
難可忍受(난가인수)로, 참기 힘들다 하여 而於彼所(이어피소)에, 그들이 있는 곳을, 그 곳을
生疲厭心(생피염심)하나니. 싫어하거나 하지 않나니
마. 譬喩(비유)로重明(중명)함 비유로써 거듭 밝히다.
何以故오 譬如日天子가 不但爲一事故로 出現世間인달하야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不但爲一衆生故로 修諸善根하야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普爲救護一切衆生故로 而修善根하야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如是不但爲淨一佛刹故며 不但爲信一佛故며 不但爲見一佛故며
不但爲了一法故로 起大智願하야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爲普淨一切佛刹故며 普信一切諸佛故며 普承事供養一切諸佛故며
普解一切佛法故로 發起大願하야 修諸善根하야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何以故오? 왜냐하면, 譬如日天子(비여일천자)가, 비유컨데 日天子= 해가
不但爲一事故(부단위일사고)로, 다만 한 가지 일만을 위해
出現世間(출현세간)인달하야, 세간에 뜨는 것이 아니듯이 [태양이 뜨면 온 지구상에 있는 만물이 혜택을 받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느 것 하나 태양의 은혜를 입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菩薩摩訶薩도 보살도 亦復如是하야, 역시 그와 같이 不但爲一衆生故(부단위일중생고)로 다만 한 중생만을 위해
修諸善根(수제선근)하야, 선근을 닦고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회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아니라
普爲救護一切衆生故(보위구호일체중생고)로, 널리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而修善根(이수선근)하야, 선근을 닦아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회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보시의 정점은 無上正覺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 주어서 배를 채워주면 일단 작은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보다 큰 도움을 생각해야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복을 지었는가 하면,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법보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법보시 복을 지어서 해인사ㆍ통도사ㆍ불국사 등 모든 훌륭한 사찰들이 전부 부처님 앞으로 등기 되어 있습니다. 우리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법에 대한 존중심과 가치관이 확실하게 서 있어야 됩니다.]
如是, 그와 같이 不但爲淨一佛刹故(부단위정일불찰고)며, 한 부처님 세계만을 청정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不但爲信一佛故(부단위신일불고)며, 한 부처님만을 믿기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왜 공부하고, 수행하는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딱 두 마디로 上求菩堤 下化衆生입니다. 우리의 인격을 향상시키고, 나아가서 그 인격을 통해서 사회를 맑고 아름답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대만의 성엄스님은 법문하실 때, 꼭 그 두 마디를 좌우에다 걸어놓고 합니다.
한 쪽에는 裁成人格(재성인격) 자기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그리고
淨佛國土(정불국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 이 세상을 아름답고 향기롭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 법회를 하노라고 써 붙여놓고 합니다.]
不但爲見一佛故며, 한 부처님만을 만나기 위해서도 아니며
不但爲了一法故(부단위료일법고)로, 한 법만 알기 위해서 起大智願(기대지원)하야, 큰 지혜의 원을 세우고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不= 아니라
爲普淨一切佛刹故(위보정일체불찰고)며, 널리 일체의 부처님 세계를 청정히 하고
普信一切諸佛故(보신일체제불고)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믿으며
普承事供養一切諸佛故(보승사공양일체제불고)며,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승사공양하고
普解一切佛法故로 發起大願(기대지원)하야 일체의 불법을 두루 알기 위해 대원을 세우고
修諸善根(수제선근)하야, 온갖 선근을 닦아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궁극에 가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불자가 하는 모든 보시행의 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