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도솔천궁중게찬품(兜率天宮中偈讚品) 2
ㄴ. 色聲(색성)
色身非是佛이며 音聲亦復然이로대 亦不離色聲하고 見佛神通力이어늘
少智不能知 諸佛實境界하나니 久修淸淨業하야사 於此乃能了로다
色身非是佛(색신비시불)이며, 색신이 이 부처가 아니요
音聲亦復然(음성역부연이)이로대, 음성도 역시 그러하거니와
[이것은 금강경의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是人行邪道라. 이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지 여래를 볼 수 없다.
화엄경은 종합적인 불교이기 때문에 소승교ㆍ대승시교ㆍ대승종교ㆍ대승돈교ㆍ일승원교가 전부 포함 되어있습니다.
유마경이나 법화경은 소승교를 사정없이 배제하지만, 화엄경도 그런 경향이 가끔 있지만, 큰 흐름은 소승 교리를 다
안고 융화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10지 품에 가면 소승 교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亦不離色聲(역불리색성)하고, 그러나 색신과 음성을 떠나서는
見佛神通力(견불신통력)이어늘,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지 못하도다
[앞의 두 구절은 금강경의 이치이고, 뒤의 구절은 화엄경의 이치입니다. 색과 소리를 떠나지 않고 見佛神通力이다.
바로 나무로 깎은 불상에서도, 그림으로 그려놓은 부처님에서도 진짜부처를 본다는 것이 화엄경의 이치입니다.]
少智로 不能知(소지불능지) 지혜가 적은 이는
諸佛實境界(제불실경계)하나니, 부처님의 진실한 경계를 알 수 없고
[작은 지혜로는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경계를 알지 못하나니]
久修淸淨業(구수청정업)하야사, 오래토록 청정한 업을 닦아야만[久修淸淨業= 공부를 끊임없이 하는 것]
於此에 乃能了(어차내능료) 거기에 이를 수 있으리라
ㄷ. 去來
正覺無來處며 去亦無所從이로다 淸淨妙色身을 神力故顯現이로다
[去來(거래) 앞에서는 여래의 출신과 열반 등등을 이야기하였고, 여기는 正覺= 깨달음을 이야기합니다.]
正覺無來處(정각무래처)며, 정각= 부처님은 오신 곳도 없고
去亦無所從(거역무소종이)이로다. 어디로 가심도 없으시나
淸淨妙色身(청정묘색신)을 청정하고 오묘한 색신을
[淸淨妙色身= 正覺이고, 正覺이 곧 淸淨妙色身= 법신= 진리입니다.]
神力故顯現(신력고현현)이로다.신력으로 환희 보이시네
[神力故顯現= 깊이 사유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임으로 해서 그것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것.]
나. 用而常寂(용이상적)
無量世界中에 示現如來身하사 廣說微妙法하사대 其心無所着이로다
[用而常寂은 寂而常用과 반대로, 작용하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작용하는 입장은 차별의 입장이고, 常寂= 항상 고요한 것은 차별이 없는 입장.]
無量世界中(무량세계중)에 한량없는 세계 속에
示現如來身(시현여래신)하사, 여래의 몸 나타내 보이사 [如來身= 진리ㆍ원리, 우주의 존재원리. 이것을 굳이 말하자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데,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고정 되어있는 것이 아닌, 그대로 우주의 원리입니다. 무량세계에 우주의 원리 없는 데가 있습니까? 어디든, 구석구석에 다 있습니다.
如來身을 示現한다 → 寂而常用世界中에 示現如來身.]
廣說微妙法(광설미묘법)하사대, 미묘법 자세히 설하시되
其心無所着(기심무소착)이로다 마음에 집착이 없으시네 [작용하지만 집착하는 바가 없다.]
[用而常寂= 앞의 두 구절은 작용이고, 廣說微妙法은 차별 있는 것 其心無所着은 적멸한 자리. 차별 없는 참사람자리]
다. 無碍自在(무애자재)
智慧無邊際하사 了達一切法하고 普入於法界하사 示現自在力이로다
衆生及諸法에 了達皆無碍하고 普現衆色像하사 遍於一切刹이로다
智慧無邊際(지혜무변제)하사, 지혜가 邊際= 끝이 없으시니
了達一切法(요달일체법)하고, 일체법에 요달하시고
普入於法界(보입어법계)하사, 법계에 두루 들어가시어
示現自在力(시현자재력)이로다. 자재한 힘을 보이시네
[자재한 힘을 나타내는 가운데 이 한마음의 작용이 있어서 묘하지요.
또 한마음 작용이 거기에 이리저리 설치지 아니하면 아무 영험이 없습니다. 이치는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에 한마음의 작용이 있어야 그것이 전부 생명을 발휘하고 살아나는, 그것이 自在力입니다.]
衆生及諸法(중생급제법)에, 중생과 모든 법에
了達皆無碍(요달개무애)하고, 막힘없이 요달하시고
普現衆色像(보현중색상)하사, 널리 여러 모습 나타내시어
遍於一切刹(변어일체찰)이로다. 온 세계에 두루하시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대로가 전부 衆色像이지요. 여러 가지 색상을 널리 나타내서 一切刹에 두루 했더라.
모든 세계에 그냥 두루 했어요. 텅 빈 저 하늘은 하늘대로 가득하고, 산은 산대로ㆍ물은 물대로 어디든지, 동서남북 사유상하가 다 그런 겁니다.]
(2) 勸修行(권수행) 수행하기를 권하다
欲求一切智하야 速成無上覺인댄 應以淨妙心으로 修習菩提行이어다
若有見如來의 如是威神力인댄 當於最勝尊에 供養勿生疑어다
欲求一切智(욕구일체지)하야 일체지혜를 구하여
速成無上覺(속성무상각)인댄, 무상각을 속히 이루려면
應以淨妙心(응이정묘심)으로, 마땅히 청정미묘한 마음으로
修習菩提行(수습보리행)이어다. 보리행을 닦아 익힐지어다. [菩提行= 지혜와 자비의 행= 부처님의 마음.]
若有見如來(약유견여래)의 만약 어느 누가 여래의
如是威神力(여시위신력)인댄, 이같은 위신력을 보려거든
當於最勝尊(당어최승존)에, 마땅히 최승존(最勝尊)께
供養勿生疑(공양물생의)어다. 공양하며 의심을 내지 말지어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最勝尊께 공양하는 겁니다. 공부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법공양 올리는 겁니다. 내 자신에게 법공양을 잔뜩 올려 놓으면 저절로 누구에게 깨우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열심히 깨우쳐줘야 되는 것이고요.
화엄경의 부처님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니까 공양을 들고 있어도 어디 갖다드릴 곳이 없어요. 천지만물 산천초목이 전부 법신여래이기 때문에 어디에다 갖다 놓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수승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기 자신에게 일단 공양 올리는 것이 제일 바르게 공양 올리는 이치입니다.]
2. 南方의 堅固幢菩薩(견고당보살)
(1) 讚佛勝德(찬불승덕) 부처님의 수승한 덕을 찬탄하다.
爾時에 堅固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如來勝無比하사 甚深不可說이시니 出過言語道하사 淸淨如虛空이로다
汝觀人師子의 自在神通力하라 已離於分別하사대 而令分別見이로다
導師爲開演 甚深微妙法이실새 以是因緣故로 現此無比身이로다
爾時(이시)에, 그 때에 堅固幢菩薩이 承佛神力(승불신력)하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普觀十方(보관시방)하고, 시방세계를 널리 관찰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如來勝無比(여래승무비)하사, 여래의 수승하심은 비할 데 없이
甚深不可說(심심불가설)이시니, 깊고 깊어서 말로 할 수 없으니
出過言語道(출과언어도)하사, 언어의 길을 뛰어 넘어
淸淨如虛空(청정여허공)이로다. 청정키가 허공 같네.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한두 권이면 거의 다 끝납니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여래가 아니고, 화엄경에서는 언제나 법신불! 이 우주의 진리! 모든 곳에 다 스며있는 그 진리!
그것을 법신불이라고 하기 때문에 出過言語道= 말로서는 설명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汝觀人師子(여관인사자)의 그대들은 인사자의
自在神通力(자재신통력)하라. 자재하신 신통력을 보라.
已離於分別(이리어분별)하사대, 이미 분별을 여의셨으되
而令分別見(이령분별견)이로다. 분별하여 보게 하시네.
[본래 법신불자체는 분별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분별로 해서 볼 수 있는데 까지 보고, 알 수 있는데 까지 알고, 설명할 수 있는데 까지 설명하는 겁니다. 산천초목이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다. 라고 하든지, 차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그대로 여래의 설법소리라고 하든지, 그렇게라도 설명하는 그것이 令分別見= 분별해서 보게 한다.]
導師爲開演(도사위개연) 도사께서 펼치시려는
甚深微妙法(심심미묘법)이실새. 깊고도 미묘한 법을 [도사께서 甚深한 微妙法을 開演= 열어서 연설하실세]
以是因緣故(이시인연고)로, 이러한 인연으로
現此無比身(현차무비신)이로다. 비할 데 없는 몸을 나타내시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사람 뿐만 아니고, 모든 존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하나까지도 다
無比이고, 거기에 우주원리가 스며있습니다. 미세먼지 하나 속에도 다 우주의 원리가 스며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이고, 그러면 無比尊= 비교할 바 없는 어른이지요.]
(2) 佛德深玄(불덕심현) 부처님의 덕이 深玄하다. [심현深玄 (깊은 심, 검을 현): 깊고 오묘한]
가. 依支(의지)를 勸(권)함
此是大智慧라 諸佛所行處시니 若欲了知者인댄 常應親近佛이어다
此是大智慧(차시대지혜)라. 이것이 바로 큰 지혜요
諸佛所行處(제불소행처)시니, 모든 부처님의 행하시는 곳이니
若欲了知者(약욕료지자)인댄, 만약 알고자 한다면
常應親近佛(상응친근불)이어다. 마땅히 항상 부처님을 친근할지어다.
[放下着(방하착). 모든 것을 내려놔 버리는 것이 부처님을 친근 하는 도리이고 가까이 하는 소식입니다.
부처를 우리가 잠깐이라도 만나려면 내 머리 속ㆍ내 마음 속ㆍ내 가슴 속에 아무 것도 없어야 됩니다.
다 내려놔야 됩니다. 放下着해 버려야 됩니다.
放下着하면, 거기에 신령스럽게 살아있는 空寂靈知(공적영지) 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죽은 물건이 아닙니다. 죽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신령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착~ 있는데, 좀 있으면 이것이 발동을 해서 꼼지락거리다가 나중에는 막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겁니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슥~ 일어나서 벌써 딴 짓을 합니다.
그 신령스러운 앎이라고 하는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활발발하게 살아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가만히 앉혀놓지를 못합니다. 應無所住(응무소주)=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다못해 1분ㆍ2분ㆍ3분ㆍ4분이라도 텅 빈 자리ㆍ방하착한 자리.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자리. 망상 없는 자리. 그 자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으면서 계속 먼지가 끼고, 그 먼지가 막 작동을 하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통칭 망상이라고 하는데요.
그 망상도 교리적으로 아주 여러 가지 망상이 있는데요. 아무튼 그런 망상이 끼어서 작용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서 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두 들고 앉아있는가 싶으면, 어느새 뭔가 생각이ㅠ일어나서 그 생각 쫓아가서 좌선하다가 괜히 싱긋이 웃는 겁니다.
그 사람은 달콤한 망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새 그렇게 흘러갔는지 자기도 모르게 떠밀려 다니니까 방하착이 좋은
겁니다. 放下着. 계속 내려 놓고 또 내려 놓는 것이 常應親近佛하는 소식입니다.]
나. 修行의 利益(수행이익)
意業常淸淨하야 供養諸如來호대 終無疲厭心이면 能入於佛道로다
具無盡功德하야 堅住菩提心하면 以是疑網除하야 觀佛無厭足이로다
通達一切法하면 是乃眞佛子니 此人能了知 諸佛自在力이로다
意業常淸淨(의업상청정)하야, 의업을 항상 청정히 하고 [常淸淨=放下着해서 다 내려놓아 텅 빈 마음자리]
供養諸如來(공양제여래)호대, 모든 여래 공양하기를
終無疲厭心(종무피염심)이면, 피곤해 하거나 싫증내는 마음이 없이 끝까지 즐겨하면
能入於佛道(능입어불도)로다. 능히 불도에 들어가리라.
具無盡功德(구무진공덕)하야, 다함없는 공덕을 갖추고
堅住菩提心(견주보리심)하면, 보리심에 굳게 머물러서
以是로 疑網除(이시의망제)하야, 이로써 의혹의 그물을 없애고
觀佛無厭足(관불무염족)이로다. 부처님 즐거이 뵐지어다. 부처님을 보는데 싫증이 없더라.
[이것으로써 疑網이 제해지면 觀佛無厭足이로다. 이것이 無位眞人. 차별없는 참사람이지요.
봄날에 문을 확 열어서 햇살이 들어오면 꽉 차있는 먼지가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우리 의식의 세계도ㆍ의식의 공간도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은데, 웬 망상이 그렇게 많은지! 그것이 그만치 공부가 돼서 거친 망상은 가라앉았다는 뜻입니다. 거친 망상이 가라 앉았으니까 그 미세망상이 떠오르는 겁니다. 햇빛 들어오면 큰 먼지뿐만 아니라, 작은 먼지까지도 다 보게 되듯이, 망상을 의식하는 것은 어느 정도 공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通達一切法(통달일체법)하면, 일체법에 통달하면 [一切法= 교법 또는 화엄경으로 봐도 좋습니다.]
是乃眞佛子(시내진불자)니, 이것이 참 불자이니 [일체 법을 통달하면 진짜 부처라는 말입니다.]
此人能了知(차인능료지) 이 사람은 능히
諸佛自在力(제불자재력)이로다. 모든 부처님의 자재력을 분명히 알리라.
[일체 법을 통달할 수 있는 것은 화엄경뿐입니다. 다른 경전들은 치우치고, 일부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은 종합적인 경전, 모든 수다라의 총명입니다. 화엄경 80권을 공부하면, 그 속에 모든 교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다. 進修(진수)를 勸(권)함
廣大智所說에 欲爲諸法本이니 應起勝希望하야 志求無上覺이어다
若有尊敬佛하야 念報於佛恩이면 彼人終不離 一切諸佛住로다
何有智慧人이 於佛得見聞하고 不修淸淨願하야 履佛所行道리오
廣大智所說(광대지소설)에, 설하신 광대한 지혜
欲爲諸法本(욕위제법본)이니, 욕망이 모든 법의 근본이니,
應起勝希望(응기승희망)하야, 마땅히 큰 희망을 갖고
志求無上覺(지구무상각)이어다. 무상각= 가장 높은 깨달음을 구할지어다.
[화엄경에는 욕망이란 말을 거침없이 씁니다. 큰 욕망ㆍ작은 욕망, 중생욕망ㆍ보살욕망ㆍ부처욕망...
흔히 이 세상에서 제일 욕심 많은 사람이 부처님이다. 온 세계 중생을 다 제도하려고 했으니까 세상에 그런 욕심쟁이가 어디 있습니까? 원력이다, 욕심이다. 그것 분별하지 마세요. 화엄경에서 그것 분별하지 않습니다.
歸依法離欲尊(귀의법이욕존) 부처님의 법문은 한마디로 “욕심 떠나는 가르침이다.”그것은 차원 낮은 불교입니다. 화엄경에서도 간혹 그것을 분별하기도 하지만 거침없이 欲자를 써서 欲爲諸法本, 욕= 욕망이 모든 법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若有尊敬佛(약유존경불)하야,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을 존경하고
念報於佛恩(염보어불은)이면, 부처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한다면
彼人終不離(피인종불리), 그 사람은 끝까지, 그 사람은 마침내
一切諸佛住(일체제불주)로다. 부처님 머무신 데서 떠나지 않으리라.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지요?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냐?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자하거든 부처님이 앉은 자리에서 떠나지 말라. 放下着(방하착) 놓아버려라.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면 바로 그 자리가 차별 없는 참사람이 자리이고, 참마음이 자리이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진짜 부처님법신
비로자나불이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부처님과 같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최상승 부처님을 만나는 내용이고, 조금 차원을 낮추면 非佛之行이면 不行하고, 부처의 행이 아니면 행하
지 아니하고, 非佛之言이면 不言하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수행자로서 말과 행동이 수행자답게ㆍ부처님제자답게 사는 그것이 一切諸佛이 머무는 곳이라는 것은 차원이 좀 낮아서 화엄경과는 거리가 좀 멉니다. 화엄경의 부처님을 만나는 자리는 앞에서 설명한대로 턱 놓아버려요.
놓지 않아도 항상 참마음의 작용이고 망상을 해도 참마음의 작용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면, 부처님 계신 곳이 오리무중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방하착해서 참마음자리에서 만나면,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何有智慧人(하유지혜인)이 어찌 지혜로운 이라면
於佛得見聞(어불득견문)하고 부처님을 만나 듣고서도
不修淸淨願(불수청정원)하야 청정한 서원을 닦으며
履佛所行道(이불소행도)리오. 부처님 행하신 길을 밟지 不= 않을 수 있으리오.
[청정한 원을 닦아서 부처님이 행하신 바 길을 밟아가지 아니 하리요?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부처님에게서 見聞을 얻습니다. 당연히 화엄경을 공부를 해서 청정한 원을 닦아 부처님이 행한 바 길을 가야지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라면 此限에 不在(차한부재)= 이 한계 속에 있지 않아요. 그것은 置之度外(치지도외)= 밖에다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화엄경을 공부해야 됩니다.
何有智慧人이 於佛得見聞하고, 부처님= 화엄경에서 見聞을 얻고, 청정한 원을 닦아서 부처님이 행한바 도를 밟아가지 아니 하겠는가?]
3. 西方의 勇猛幢菩薩(용맹당보살)
(1) 見佛(견불)
爾時에 勇猛幢菩薩이 承佛神力하사 普觀十方하고 而說頌言하사대
譬如明淨眼이 因日覩衆色인달하야 淨心亦復然하야 佛力見如來로다
如以精進力으로 能盡海源底인달하야 智力亦如是하야 得見無量佛이로다
[勇猛幢보살= 대자비로 忍이 됨을 잡으니, 이것이 용맹의 뜻]
爾時(이시)에 勇猛幢菩薩이 承佛神力(승불신력)하사 普觀十方(보관시방)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譬如明淨眼(비여명정안)이, 비유컨데 맑고 깨끗한 눈이
因日覩衆色(인일도중색)인달하야, 태양으로 인해 사물을 보듯이
淨心亦復然(정심역부연)하야, 청정한 마음도 그러하여
佛力으로 見如來(불력견여래)로다. 부처의 힘으로 여래를 보는 것이로다.
[淨眼이 淨心= 방하착을 해서 일체망상을 다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법신 비로자나불을 만나는 것이지요. 깨끗한 눈을 가진 것이나 깨끗한 마음이나, 마음에 티가 없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놨을 때 그 자리가 바로 법신여래를 만나는 자리, 空寂靈知(공적영지)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물이나, 어떤 일에 끄달리기 시작하면 空寂靈知가 안 되는 겁니다.]
如以精進力(여이정진력)으로, 마치 정진하는 힘으로
能盡海源底(능진해원저)인달하야, 바다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듯이
智力亦如是(지력역여시)하야, 지혜의 힘도 그러하여
得見無量佛(득견무량불)이로다.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리라.
[지혜의 힘이 출중한 사람은 한량없는 부처님을 다 만난다. 법당에 있는 부처님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계속 부대끼면서, 지지고 볶고, 부딪치면서 살아 가는 그 사람에게서 부처님을 본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