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11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11
▷겁탁(劫濁) - 색음(色陰)
阿難!汝見虛空遍十方界,空見不分;有空無體、有見無覺,相織妄成,是第一重名爲劫濁。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세계에 두루한 것을 볼 때,
허공과 보는 견(見)이 구분되지 않아서, 허공은 있고 실체(實體)는 없으며,
보는 견(見)은 있고 깨달음은 없는 것이 서로 짜여서 허망한 망(妄)을 이루나니,
이는 첫 번째 겹쳐 쌓임의 겁의 혼탁인 겁탁(劫濁)이니라.
ㅡ이것은 허공과 보는 견(見)이 섞여서 주체(能)과 대상(所)가 구분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허공은 본래 체(體)가 없는데, 사람이 한 번 봐서 푸르고 아득한 것을 허공이라 하고,
견(見)은 본래 앎이 없는데 허공이 눈에 들어오면 앎이 명료해진다.
이 견정은 무체(無體)이나, 봄으로서 체(體)가 있게 되고 허공으로 인하여 앎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허공을 보는 순간 면밀하게 한 무더기 혼탁한 물건을 조작하는 것이니, 이때 어느 작용이 먼저라 할 수 없는 것을 겁탁(劫濁)이라 한다.
'서로 짜여서 허망한 망(妄)을 이룬다'는 것은 색음(色陰)이 비어진 것임을 밝힌 것이고, 깨달음(覺)이 없는 보는 견(見)이 있으므로 그것이 화합해서 망령되게 막힘이 있는 색(色)이 되는 것을 말한다.
겁(劫)은 시분(時分)을 말하는 것으로, 색음(色陰)이 형성되자마자 수(受)ㆍ 상(想)ㆍ행(行)ㆍ식(識)이 함께 그 가운데에 있어서 맑고 고요한 깨달음을 흐리게 하므로 겁탁(劫濁)이라 한다.
▷견탁(見濁) - 수음(受陰)
汝身現摶四大爲體,見聞覺知擁令留㝵,水火風土旋令覺知,相織妄成,是第二重名爲見濁。
네 몸은 현재 사대(四大)가 뭉쳐서 몸(體)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막아서 장애가 되고,
물과 불과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하여서 서로 짜여 망령됨을 이루니, 이는 두 번째 겹쳐 쌓임의 견탁(見濁)이니라.
ㅡ'사대(四大)가 뭉쳐서 몸(體)이 되었다'는 것은 앞의 견상(堅相), 윤습(潤濕), 난촉(煖觸), 동요(動搖)하는 것이 맑고 원만한 깨닫는 마음과 화합해서 색신(色身)이 되었다는 것이며,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막아서 장애가 된다'는 것은 지각(知覺)이 없는 사대가 장애가 되는 것으로 육촉(六觸)에 대한 느낌이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고(苦) 락(樂) 사(捨)이다.
'서로 짜여서 허망한 망(妄)을 이룬다'는 것은 수음(受陰)을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경계를 받아들여서 깨달음의 성품을 혼란시키므로 견탁(見濁)이라 한다.
사람의 견문각지(見聞覺知)는 원래 정밀하고 밝은 것으로 아무런 걸림도 없으나, 4대가 화합하여 분단신(分段身)을 이루어 융통(融通)하지도 무애(无涯)하지도 못하며, 지수화풍은 원래 지각이 없는데, 능견(能見)에 의해 접수되어 경계를 이룬다.
이렇게 헛된 상을 짜서 진성(眞性)을 혼탁(混濁)하게 하는 것을 견탁(見濁)이라 한다.
몸은 사대(四大)가 모여서 바탕이 된, 사대소조색(四大所造色)인데, 모든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인 견문각지가 몸의 육근(六根)에 막혀서 장애가 되어 정확하게 인식을 못하게 한다. 원래 사대의 몸과 육근 자체는 각지(覺知)의 앎이 없는데, 사대의 성(性)이 잘 조직되어 각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니, 몸(육근)을 의지해서 보기 때문에 보는 것이 혼탁한 것이다.
▷번뇌탁(煩惱濁) - 상음(想陰)
又汝心中憶識誦習,性發知見容現六塵,離塵無相離覺無性,相織妄成,是第三重名煩惱濁。
또 너의 마음속에 기억(憶, 과거)하고 알(識, 현재)고 외우(誦, 미래)고 익히(習, 미래)고,
성품에 알고 보는 지견(知見)하는 주체를 발하고,
용모는 여섯 가지의 경계인 육진(六塵)을 나타내나니, 그 대상 물질을 여의면 모양이 없어지고,
깨달음의 각(覺)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져서, 서로 짜여서 망령됨을 이루는 망성(妄成)하나니,
이것은 세 번째 겹쳐 쌓임의 번뇌탁(煩惱濁)이니라.
ㅡ'기억하고 알고 외우고 익힌다'는 것은 마음 가운데 지난 일들을 기억해 알고 경론을 외우고 익히는 것 모두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며,
'성품에 지견(知見)하는 주체를 발하고, 용모는 육진(六塵)을 나타낸다'는 것은 마음으로 신 매실을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나오고,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은 주체가 되고, 형체는 심부름꾼이 되어서 생각이 일어나면 형체가 그것을 받아 들인다. 그 중에 또 6 가지 생각이 있으니, 안촉(眼觸)으로 생긴 생각에서부터 의촉(意觸)으로 생기는 생각에 이르기까지이다.
'대상 물질을 여의면 모양이 없어지고, 깨달음의 각(覺)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진다'는 것은 만약 앞에 나타나는 경계와 느끼고 깨닫는 성품을 여의고 그 생각의 실체를 추구해 보면 불꽃과 같이 공허한 것으로 자성이 없을을 말하며,
'서로 짜여서 망령됨을 이룬다'는 것은 상음(想陰)을 나타내는 것으로,
성품이 안으로 갈라져서 육지근(六知根)이 생기고, 모양이 밖에서 갈라져서 육진경(六塵境)이 나타난다. 그 근경(根境)이 번거롭게 얽혀서 밝은 성품을 괴롭게 하므로 번뇌탁(煩惱濁)이라 한다.
사람의 의식이 기억하고 외워 익힘이 3계경계(三界境界)와 반연한다. 이때 의식성(意識性)은 근(根)에서 발(發)하고
의식상(意識相)은 경계에서 생긴다. 근(根)을 떠나서는 의식성이 없고, 경계를 떠나서는 의식상이 없다.
근진식(根塵識)의 세 가지가 한 곳을 혼작(混作)하여 탐진치 등을 일으켜서 진성(眞性)을 흐림이 번뇌탁(煩惱濁)이다.
▷중생탁(衆生濁) - 행음(行陰)
又汝朝夕生滅不停,知見每欲留於世閒,業運每常遷於國土,相織妄成,是第四重名衆生濁。
또 네가 아침저녁으로 생하고 멸함이 멈추지 않아서, 지견(知見)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운행하는 힘은 항상 국토에 옮겨가서 서로 짜여서 망령됨을 이루나니,
이것을 네 번째 겹쳐 쌓임의 중생탁(衆生濁)이라 한다.
ㅡ'아침저녁으로 생하고 멸함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행음(行陰)이 변천하여 흐르면서 조작하는 상을 밝힌 것이고,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항상 국토에 옮겨간다'는 것은 행음이 조작심에 의해서 과보를 초월하는 것이다.
행음도 6가지 작용이 있으니 안촉(眼觸)에서부터 의촉(意觸)에 이르기 까지이며,
'서로 짜여서 망령됨을 이룬다'는 것은 행음(行陰)을 나타낸 것이며,
'지견(知見)은 항상 세간에 머물고자 한다'는 것은 삼계를 그리워하고 애착하는 것이고,
'업장을 지어 운행하는 힘은 항상 옮겨간다'는, 취향을 따라 몸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모든 연(緣)이 화합되었으므로 중생이라 하며, 육행(六行)과 모든 심소법(心所法) 등이 화합하여 진성을 어지럽히므로 중생탁(衆生濁)이라 한다.
업의 움직임은 중생의 동분생기(同分生基)이다. 중생 모두는 업의 흐름이 전위(轉位)된 것으로 끊임없이 생사를 거듭한다.
지견(知見)은 세속에 머물려고 하나, 업력을 따라 움직이므로 주체성이 없어서 상주하지 못하고, 움직이려 하나, 주인이 머물면 가지 못한다. 이렇게 가고 머무는 것이 한 곳을 혼성(混成)하여서 진성(眞性)을 혼탁(混濁)하게 하는 것을 중생탁(衆生濁)이라 한다.
▷명탁(命濁) ㅡ 식음(識陰)
汝等見聞元無異性,衆塵隔越無狀異生,性中相知、用中相背,同異失准,相織妄成,是第五重名爲命濁。
너희들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의 경계인 중진(衆塵, 육진六塵)이 가로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느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느끼고, 작용 가운데 서로 등져서,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은 것이 서로 짜여서 허망을 이루었으니,
이것을 다섯 번째 겹쳐 쌓임의 명탁(命濁)이라 하느니라.
ㅡ'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른 성품이 아니다'란,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식성(識性)이 두 가지 체가 아니라는 것이며,
'중진(衆塵, 육진六塵)이 가로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긴다'는 육진으로 인하여 6 가지 작용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며,
'성품 가운데 서로 느끼고, 작용 가운데 서로 등진다'는 오직 하나의 의식(意識)이 오근(五根)으로 연하는 것이나 6 가지의 작용이 각각 같지 않으므로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었다'고 한 것이며,
'서로 짜여서 허망을 이룬다"는 식음(識陰)을 나타낸 것이며,
명탁이란 일생의 명근(命根)이 식(識)에 의해 머물러서 진성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근은 원래 하나의 정묘하고 맑은 체(體)인데 견문각지의 얽힘에 의해서 여섯으로 나뉜다.
같은 일가를 이루고 있으니 다르다고 할 수 없고, 성(性) 중에서는 서로 알고, 각각의 문(門)이 같지 않으므로 쓰임 중에는 서로 등진다. 같고 다름을 정할 수 없어서 그 기준을 잃는다. 한 번 같고 한 번 다름이 촘촘히 짜여 나뉠 수 없고 자재하지 못해서 진성(眞性)을 혼탁시키니, 이를 명탁(命濁)이라 한다.
색음을 먼저 밝힌 것은 날마다 작용하는 가운데, 견문각지(見聞覺知)로 인하여 각심(覺心)이 나누어져서 6 가지 작용을 이루어서 본진(本眞)을 상실하는 것이다. 만약 색음이 없으면 어찌 견문각지하겠는가? 그러므로 구사론(俱舍論)에서
"오음(五陰)의 차례는 색음(色陰)은 그릇과 같고, 수음(受陰)은 음식과 같으며, 상음(想陰)은 양념과 같고, 행음(行陰)은 요리사와 같으며, 식음(識陰)은 먹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불각심(不覺心)이 동하는 것이 식(識)의 시초가 되는 것으로, 망령된 경계가 나타나서 공(空)과 색(色)이 비로소 나누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