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10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10
▷수도분(修道分)
雖見性眞 非修 莫證故 卽前了義 示修行門 文三
비록 성품의 참 모습인 견성(見性)을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닦지 않으면 증득(證得)할 수 없으므로,
앞의 요의(了義)에 이어서 수행(修行)의 문을 예시하는 것이다.
ㅡ요의(了義), 요(了)는 각자의 본심본本心)을 불법(佛法)으로 깨닫게 하는 것을 뜻한다.
▷수행의 기본
阿難及諸大衆聞佛示誨,疑惑銷除心悟實相,身意輕安得未曾有,重復悲淚頂禮佛足,
長跪合掌而白佛言:“無上大悲淸淨寶王善開我心,能以如是種種因緣方便提獎,引諸沈冥出於苦海。
아난 존자와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가르쳐 보여주심의 시회(示誨)를 듣고 의혹이 사라지고 마음의 실상(實相)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졌다.
이전에 듣지 못한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얻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합장고 끓어 앉아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위없이 대비(大悲)하신 청정한 보왕(寶王, 부처님)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하여주시는 한편, 어둠에 잠긴 이들을 인도하셔서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世尊!我今雖承如是法音,知如來藏妙覺明心 遍十方界,含育如來 十方國土,淸淨寶嚴妙覺王剎;
如來復責 多聞無功,不逮修習。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설법을 듣고 여래장의 묘하게 깨달은 밝은 마음인 묘각명심(妙覺明心)이 시방세계에 두루 원만하여, 여래께서 시방 국토의 청정한 보배로 장엄한 부처님의 세계인 보엄묘각왕찰(寶嚴妙覺王刹)을 다 품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어시기를,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으로는 수행의 공이 없으니, 실제로 닦아 익히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ㅡ앞을 인용하여 다음을 청하는 것이다.
'시방세계에 두루 원만'것은 화신국토(化身國土)이다. 초지보살은 동시에 백억 세계에 불신(佛身)을 나투어 중생을 인도하고
부처님은 동시에 무량세계에 불신을 나투어 중생을 인도한다.
인연 따라 부처님이 출세하셨다가 인연이 다하면 열반에 드시므로, 따라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부처, 보살, 연각, 성문, 중생 등이 함께 살므로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라 한다.
我今猶如旅泊之人,忽蒙天王賜以華屋,雖獲大宅 要因門入。
唯願如來不捨大悲,示我在會諸蒙暗者捐捨小乘,必獲如來無餘涅槃本發心路,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저택을 얻기는 하였으나, 문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오니, 원하건대 여래께서는 부디 대비(大悲)를 버리지 마시고, 이 법회에 있는 몽매(蒙昧)한 저희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래의 본발심(本發心)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ㅡ성품을 잃은 실성(失性)은 나그네 생활과 같고, 성품을 깨닫는 견성(見性)은 화려한 주택과 같다.
견성(見性)을 하였을지라도 닦지 않으면, 이는 마치 저택을 얻고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므로, 부처님께 본래 발심했던 길을 청하여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기를 희망한 것이다.
'무여열반(無餘涅槃)'이란 원만한 과(果)이고,
'본발심(本發心)한 길'이란 원만한 인(因)이다.
令有學者從何攝伏疇昔攀緣,得陁羅尼入佛知見。”作是語已,五體投地,在會一心佇佛慈旨。
그리고 배우는 단계의 유학자(有學者)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여야 지난 날 반연(攀緣)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서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법회의 대중과 함께 일심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기다렸다.
ㅡ'다라니(陀羅尼)'는 원만한 문이고, '불지견(佛知見)'은 원만한 지혜이다.
이미 자성을 깨닫고 다시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기를 구하는 것은 불과(佛果)를 증(證)하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목적이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開), 보여주고(示), 깨닫게 하고(悟), 들어오게(入)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爾時,世尊哀愍會中緣覺、聲聞,於菩提心未自在者,及爲當來佛滅度後末法衆生發菩薩心,開無上乘妙修行路,宣示阿難及諸大衆:“汝等決定發菩提心,於佛如來妙三摩提不生疲惓,應當先明發覺初心二決定義。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법회 가운데에 있는 연각과 성문들로서 보리심(菩提心)에 자재하지 못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또 앞으로 다가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말법(末法)의 중생들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아난존자와 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심을 일으켜서 여래의 묘한 삼마제(三摩提)에 고달프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초심(初心)에 두 가지의 결정된 이치인 인심(因心)과 덕(德)의 근본인, 이의결정(二義決定)을 밝혀야 하느니라.
ㅡ'묘한 삼마제(三摩提)'는 수능엄의 대총지문(大總持門)이고,
'이의결정(二義決定)'은 인심(因心)과 덕(德)의 근본이다.
云何初心二義決定?阿難!第一義者,汝等若欲捐捨聲聞,修菩薩乘入佛知見,應當審觀因地發心與果地覺爲同?爲異?阿難!若於因地,以生滅心爲本修因,而求佛乘不生不滅,無有是處。
처음 발심한 때에 일으킨 두 가지 결정한 뜻의 이의결정(二義決定)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첫 번째의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수행자리에서 일으키는 마음인 인지발심(因地發心)이 과지(果地)의 깨달음(覺)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하나니,
아난아, 만약 수행자리인 인지(因地)에서 생멸심(生滅心)을 본래 수행할 원인인 본수인(本修因)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무생멸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ㅡ무생멸(무생無生滅)으로 여래장(如來藏)에 합하는 것은 같은 것이 되고,
생멸(生滅)하는 마음으로 항상 머무는 과업의 상주과(常住果)를 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상주과(常住果), 생멸과 변화없이 항상 머물러 있는 과지(果地)
이의결정(二義決定),
①인과(因果)는 동일하다. 인지(因地)와 과지(果地)는 동일하므로 허망한 생멸심을 버려야 한다. 불생멸(不生滅)을 구하려 한다면 불생멸의 마음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원인이 되는 것도 생멸이 없는 진심(眞心)을 가지고 수행을 시작하고, 결과가 되는 것도 변하지 않는 불성(佛性)을 구하려고 해야 한다. 따라서 진심을 모르고 망심으로 열반을 구할려고 하면 천년만년 공부해도 안 된다. 항상 변하는 망(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오탁(五濁)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②번뇌의 근본은 육근(六根) 때문이다. 불생멸(不生滅)을 구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업(業)인데, 업의 근본은 육근(六根)이며, 육근이 바로 번뇌의 매듭이므로 이것을 풀어야 한다.
수행할 때(도를 닦을 때)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초를 설명하신 부분이다.
첫째는 '원인이 결과와 똑같다' 는 것이다. 진심으로 닦으면 진도(眞道)를 얻고, 망심으로 닦으면 망도(妄道)를 얻는 즉, 도를 얻지 못한다.
둘째는 '번뇌의 근본이 육근이다' 육근 때문에 업을 짓고 생사윤회를 계속한다. 육근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육근 뿐만 아니라 주관과육근, 대상과 육진이 한꺼번에 없어져서 영지(靈地)로 돌아가야 한다.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 주신다.ㅡ향적법진
以是義故,汝當照明諸器世間,可作之法皆從變滅。
阿難!汝觀世間,可作之法誰爲不壞,然終不聞爛壞虛空。何以故?空非可作,由是始終無壞滅故。
이러한 이치가 있기 때문에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들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모두 변하여 사라지나느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작법(作法)들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허공이 무너졌다는 말은 끝내 듣지 못하였으니,
왜냐하면 허공은 만들 수 있는 작법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지지 않나니, 이것이 참다운 기반이니라.
ㅡ먼저 유위법(有爲法)은 환망(幻妄)이 아닌 것이 없음을 살펴서 자신의 몸이 곧 환망과 같이 허망한 근본이라는 것을 밝히도록 하신 것이다. 오직 맑고 원만하고 참된 실체이라야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참다운 기반이다.
*기세간(器世間), 중생들을 수용하는 세간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 대지의 세계.
則汝身中堅相爲地、潤濕爲水、煖觸爲火、動搖爲風,由此四纏分汝湛圓妙覺明心,
爲視、爲聽、爲覺、爲察,從始入終五疊渾濁。
너의 몸 속에 굳은 것의 견상(堅相)은 땅(地)이 되고, 젖은 성질의 윤습(潤濕)은 물(水)이 되며, 따뜻한 감촉의 난촉(煖觸)은 불(火)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동요(動搖)는 바람(風)이 되나니,
이 네 가지의 사대(四大)가 얽힘으로 말미암아 너의 말고 원만하고 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인 묘각명심(妙覺明心)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느끼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인 오첩혼탁(五疊渾濁)이 생기느니라.
ㅡ허망항 몸뚱이는 묘각명심(妙覺明心)으로부터 무명(無明)이 훈충(熏衝)하기 때문에 미(迷)해져서 허공의 어두운 상이 된다.
허공에 나타난 어두움 가운데에 그 어두움이 맺혀 색(色)이 되고, 그 색기 뒤섞여서 허망한 생각의 망상(妄想)이 되고, 그 망상의 상(相)이 몸뚱이가 된 것이니, 오음(五陰)의 이치가 이로 말미암아 생긴다.
오첩혼탁(五疊渾濁)은 오음의 5 가지 망상이 혼탁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 즉, 오탁(五濁)이 오음(五陰)인 것이다
'불(火), 바람(風)'은 색음(色陰)의 연(緣)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살피는 것'은 사음(四陰)의 연이며,
묘각명심(妙覺明心)은 곧 그 원인(原因)이다.
云何爲濁?阿難!譬如淸水,淸潔本然,卽彼塵土灰沙之倫,本質留㝵,二體法爾性不相循,有世間人取彼土塵投於淨水,土失留㝵水亡淸潔,容貌汨然名之爲濁,汝濁五重亦復如是。
어떠한 것을 혼탁(渾濁)이라 하는가?
아난아, 비유하자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淸潔)함이 본래 그러한 것이고, 저 진흙과 뿌연 모래 따위는 본 바탕이 막히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원래가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서로 따르지 않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 진흙과 뿌연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막히는 성질을 잃고, 물은 청결을 잃어버려서, 그 형태가 뒤섞여서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너의 혼탁의 다섯 겹쳐 쌓인, 오첩혼탁(五疊渾濁)도 그러한 것이니라.
ㅡ'맑은 물은 청결(淸潔)함이 본래 그러한 것'이란, 묘각명심(妙覺明心)을,
'진흙과 뿌연 모래 따위'는 지수화풍의 사대(四大)의 상(相)을,
'사람들이 그 진흙과 뿌연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는 것'은 처음에 혼미하여 깨닫지 못하는 식(識)이 미련하게 어두운 공색이 되어서, 이것이 맺혀서 사대가 되어 묘각명심을 희리게 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묘각명심이 사대에 섞여서 허망한 몸뚱이의 견고한 상을 이르무로 끝없는 깨달음이 겨우 보고 듣는 것에 구한 되는 것이니, 이것은 물이 맑음을 잃은 것이고, 사대와 어울려서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은 흙이 엉킴을 잃은 것이다.
사대와 오근(五根)과 오진(五塵)을 색음(色陰)이라 하며,
'그 성질이 서로 따르지 않은 것'이란, 참되고 거짓되고 물들고 깨끗함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혼탁(渾濁)의 이치에 대해서;
오음(五陰)이 곧 오탁(五濁)이다. 여기에서의 오탁은 법화경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것으로, 법화경에서는 과(果)에 의거한 것이고, 여기에서는 원인(因)에 의거한 것이다.
원인이란 묘각명심에 갑자기 허망한 의혹이 일어나서 흐리게 하여 혼탁함을 이루는 것이니, 그 차례가 다섯이 있다.
생기문(生起門)은 미세함에서부터 차츰 거칠어 지는 것으로 일체의 제법이 오직 마음이 변화된 것이므로 생(生)은 식(識)으로 인하여 있다고 한 것이다.
불각상(不覺相)은 최초의 한 점 무명이 반야와 화합해서 훈습되고 물들어져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업상(業相)은 불각에 의하여 동작하고 생멸하는 것이며,
전상(轉相)은 망령된 움직임에 의하여 보는 것이 생기는 것이며,
현상(現相)이란, 망령되게 보는 것에 의하여 경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생각이 반야를 가리우기 때문에 식음(識陰)이라 하고,
반야를 교란 시키므로 명탁(命濁)이라 하고, 명탁(命濁)은 식음(識陰)이다.
경계에 의하여 각심이 사랑과 미움과 교만과 어리석음이 일어나서 깊이 집착하는 것이 법집(法執)이 일시에 생겨나는 구생(俱生)이며, 그것을 지상(智相)이라 하고,
망령된 지혜에 의지하여 고락을 느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안과 밖으로 호응하여 끊어 지지않는 법집의 분별이 상속상(相續相)이며,
그 가운데 제 7식에 깊이 숨어 있었던 망상이 반야를 덮어 가리우므로 행음(行陰) 또는 분별사(分別社) 또는 상량(商量) 또는 의본(依本)이라 하며, 상속상에 의하여 순역(順逆)의 경계를 받아 들여서 고락에 집착을 일으키는 아집(我執)이 구생하는 것이 집취상(集取相)이고,
망상에 집착하여 명자(名字)를 판벼해서 친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집의 분별로써 명자상(名字相)이며,
이 가운데 제6식의 망상이 반야를 덮어 가리므로 상음(想陰)이라 하고 반야를 교란시키는 것을 번뇌탁(煩惱濁)이라 한다.
명자에 의해서 친함에는 은혜롭고 이롭게 하며, 소원함에는 능멸하고 손상시켜서 여러 가지의 업을 지는 것이 조업상(造業相)이다.
이러한 가운데 오식(五識)의 망상이 반야를 덮어 가리우므로 수음(受陰)이라 하고, 반야를 교란 시키므로 견탁(見濁)이라 하고, 망령된 업에 의하여 사생(四生)과 육도(六道)에서 과보를 따라 몸을 바꾸어 윤회아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 업계고락상(業係苦樂相)이다.
부모와 자기의 세 의식의 굳은 망상이 반야를 덮어 가리운 것을 색음(色陰)이라 하고 반야를 교란시키므로 겁탁(劫濁)이라 한다.
오탁(五濁)이 오음(五陰)이니, 색음(色陰)과 겁탁(劫濁)은 제3식(第三識),
수음(受陰)과 견탁(見濁)은 제5식(第五識),
상음(想陰)과 번뇌탁(煩惱濁)은 제6식(第六識)
행음(行陰)과 중생탁(衆生濁)은 제7식(第七識),
식음(識陰)과 명탁(命濁)은 제8식(第八識)이다.
거친 것부터 닦아서 끊고, 미세한 것을 닦아서 끊어야 하는 것으로, 일체의 업장은 오직 몸을 얽매고 있는 것이므로 색(色)을 좇아서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