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7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7
滅塵合覺故發眞如妙覺明性。而如來藏本妙元心,非心非空;非地非水非風非火;
번뇌를 멸하고 깨달음과 합한 까닭에, 진여(眞如)의 미묘한 깨달음의 밝은 묘각명성(妙覺明性)을 발하나니,
여래장의 본래 묘하고 마음의 본묘원심(本妙元心)은 마음도 아닌 비심(非心)이고,
허공도 아닌 비공(非空)이며, 땅도 아닌 비지(非地)이며, 물도 아닌 비수(非水)이며,
바람도 아닌 비풍(非風)이며 불도 아닌 비화(非火)이며,
ㅡ'비심(非心)에서 심(心)은 식대(識大)이며 오음(五陰)을 포섭하고, 비화(非火)'는 칠대(七大)를 말한다.
본묘심원(本妙元心)은 본체를 말하는 것으로,
본묘심원(本妙元心)은 근본으로 끝이 아니며, 원만한 것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며, 마음일 뿐 물질이 아닌, 참되고 맑교 묘한 본체(本體)이므로 일체법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非眼非耳鼻舌身意;非色非聲香味觸法;非眼識界如是乃至 非意識界;
눈(眼)도 아니고,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 ㆍ 뜻(意)도 아니며,
색(色)도 아니고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과 촉감(觸)과 법(法)도 아니고,
눈의 인식계(眼識界)도 아니고, 이렇게 뜻의 인식 경계인 의식계(意識界)도 아니며,
ㅡ육경(六境)과 육진(六塵)과 육근(六根)의, 십팔계(十八界)도 아니며,
非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非老非死,非老死盡;
또 밝음(明)도 아니고 무명(無明)도 아니고, 밝음과 무명이 없음이 다한 것도 아니며,
이와 같이 늙음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ㅡ벽지불(僻支佛)이 되는 법도 아니라는 뜻으로,
벽지불은 12인연법을 관찰하여서 무명을 없애는 것이므로, 12 인연법의 현상이 있는 것이며, 닦아서 끊는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을 거론한 것이다.
非苦非集非滅非道;非智非得;
또 고제(苦諦)도 아니고 집제(集諦)도 아니고, 멸제(滅諦)도 아니고 도제(道諦)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고 얻음(得)도 아니니라.
ㅡ사제(四諦)를 닦아서 과(果)를 증득하여야 할 대상을 삼는, 성문(聲聞)이 닦는 법도 아니라는 것이며,
非檀那、非尸羅、非毘梨耶、非羼提、非禪那、非鉢剌若、非波羅蜜多
(非缽剌若 非布施 非戒律 非忍辱 非精進 非禪定 非般若)
또 보시의 단나(檀那)도 아니고, 지계의 시라(尸羅)도 아니며, 인욕의 비리나(毗梨耶)도 아니고,
정진의 찬제(羼提)도 아니며, 선정의 선나(禪那)도 아니고, 지혜의 반나야(般剌若)도 아니며,
바라밀다(波羅蜜多)도 아니니라.
ㅡ육바라밀을 닦는 보살법(菩薩法)도 아니라는 것이며,
如是乃至非如來 非應供 非正編知 非大涅槃 非常非樂 非我非淨
이와 같이 여래도 아니고, 응공(應供)도 아니며, 정변지(正編知)도 아니고 대열반(大涅槃)도 아니며,
항상함의 상(常)도 아니고 즐거움의 낙(樂)도 아니며, 아(我)도 아니고 깨끗함의 정(淨)도 아니니라.
ㅡ부처가 닦는 법도 아니라는 것이며,
以是俱非世出世故。
이렇게 세간(世間)도 출세간(出世間)도 모두 아니니라.
ㅡ칠대(七大)에서부터 십팔계에 이르기 까지는 세간법(世間法)이고,
연각(벽지불)으로부터 대열반까지는 출세간법(出世間法)이다.
卽如來藏元明心妙,卽心卽空;卽地卽水卽風卽火;卽眼卽耳鼻舌身意;卽色卽聲香味觸法;
卽眼識界如是乃至卽意識界;
여래장의 원래 밝고 묘한 원명심묘(元明心妙)는 곧 마음이요, 공이며, 땅이고 물이며, 바람이고 불이며,
곧 눈이고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며, 색(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촉감(觸) 법(法)이며,
안식계(眼識界)이고 이와 같이 나아가 뜻으로 생각하는 의식계(意識界)이니라.
ㅡ원명심묘(元明心妙)라는 작용(作用)을 말하는 것이며,
원명심묘(元明心妙)는 원래가 그렇다는 것으로, 근본이 아니며, 밝은 것이라는 본체(本體)가 아니니, 이는 곧 여여(如如)하교 묘한 작용의 묘용(妙用)이므로 일체법(一切法)이며,
卽明無明,明無明盡,如是乃至卽老卽死,卽老死盡;卽苦卽集卽滅卽道;卽智卽得。
곧 밝음의 명(明)과 무명(無明)이며, 밝음(明)과 무명(無明)이 다한 것이며,
이와 같이 나아가 늙고 죽음이며, 곧 늙고 죽음이 다한 것이며,
곧 고제(苦諦)이고 집제(集諦)이며, 멸제(滅諦)이고 도제(道諦)이며, 그대로 지혜이고 지혜의 증득이니라.
卽檀那、卽尸羅、卽毘梨耶、卽羼提、卽禪那、卽鉢剌若
(卽布施 卽戒律 卽忍辱 卽精進 卽禪定 卽般若) 卽波羅蜜多;
곧 그대로 보시이고 지계이며, 그대로 인욕이고 정진이며, 그대로 선정이고 지혜이며, 그대로 바라밀다이니,
如是乃至卽怛闥阿竭、卽阿羅訶、三耶三菩 (卽如來 卽應供 卽正編知);
이와 같이 나아가 그대로 여래(如來)이며, 그대로 응공(應供) 정변지(正編知)이며,
卽大涅槃,卽常、卽樂、卽我、卽淨,
그대로 대열반이며, 그대로 항상함의 상(常)이고 즐거움의 낙(樂)이며, 아(我)이고 깨끗함의 정(淨)이며,
以是卽俱世出世故。卽如來藏妙明心元,離卽離非,是卽非卽,
如何世閒三有衆生及出世閒聲聞、緣覺,以所知心測度如來無上菩提,用世語言入佛知見?
이러한 모두가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여래장의 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원인 묘명심원(妙明心元)은,
그러한 즉(卽)을 여의고, 그러하지 않음의 비(非)도 여의며,
그러한 것이기도 한 시즉(是卽)이기도 하고, 그러한 것이 아니기도 한 비즉(非卽)이기도 하나니,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 삼계)중생과 출세간의 성문과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더없이 높은 무상보리(無上菩提)를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ㅡ즉(卽), 비(非), 시즉(是卽), 비즉(非卽)는 말
묘명심원(妙明心元)은 체(體)와 용(用)을 합하여 말한 것으로,
묘명심원(妙明心元)은 곧 묘하게 밝은 것이니, 곧 마음의 근원(元)으로 삼마지의 묘함을 함께 관하는 것이므로 '즉(卽), 비(非), 시즉(是卽), 비즉(非卽)'라고 한 것인데, 미묘하게 이 경지에 도달하면 본체와 작용이 전부 없어지고, 감정과 의식이 단절되어서 장심(藏心)의 묘한 성품이 화연하고 티가 없어지는 것이다.
譬如琴瑟箜篌琵琶雖有妙音,若無妙指終不能發,汝與衆生亦復如是,寶覺眞心各各圓滿,如我按指海印發光。汝蹔擧心塵勞先起,由不勤求無上覺道,愛念小乘得少爲足。”
비유하자면, 마치 거문고(琴)와 공후(箜篌)와 비파(琵琶)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만약 사람의 손가락이 없다면 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 같아서 깨달음의 참마음인 보각진심(寶覺眞心)은 저마다 원만하지만, 만약 내가 손가락을 잠깐 놀리기만 하여도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희들은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더없이 높은 깨달음의 무상각도(無上覺道)를 열심히 구하지 않고, 소승만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도 만족하는 때문이니라.”
ㅡ앞에서 여러 가지로 여래장(如來藏)을 밝힌 것이 곧 '부처님께서 손가락을 놀린' 것이며,
몸과 마음의 일체법이 대하는 곳마다 밝은 것이 곧 '해인이 빛을 발하는' 것이며,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어서 의심이 분분하는 것이 '번뇌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해인(海印)은 글자 그대로는 '바다의 도장'이라는 뜻으로, 해인(海印, sgara-mudr)은 비유이다.
해(海)’는 마음을 뜻하고, ‘인(印)’은 도장 찍는다는 것으로, 불가에서는 “인(印)친다”고 말하는데,
큰 바다에 고요하고 물이 맑아지면,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해면에 비추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곧 고요한 바다(마음)에 삼라만상이 비친다는 말이다. 즉, 진리의 바다에 망상(妄想)이 다하고, 마음이 맑아지면, 만상(萬象)이 함께 나타난다는 뜻이다.
▷부루나 존자의 의문(疑問)
富樓那言':“我與如來寶覺圓明,眞妙淨心無二圓滿,而我昔遭無始妄想久在輪迴,今得聖乘猶未究竟。
世尊!諸妄一切圓滅獨妙眞常,敢問如來一切衆生何因有妄,自蔽妙明受此淪溺?”
부루나 존자가 말씀드렸다.
“저와 여래는 보배로운 깨달음의 보각(寶覺)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묘하고 청정한 진묘정심(眞妙淨心)이 둘이 아닌,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무시의 과거로부터 망상을 내어서 오랫동안 생사에서 윤회하였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인 성승(聖乘, 아라한과 阿羅漢果)를 이루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구경의 경지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망령됨이 다하시어서 홀로 묘하고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여쭙겠습니다.
일체중생은 어떠한 원인으로 망령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묘한 밝음의 묘명(妙明)을 덮어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ㅡ각각원만(各各원圓滿)하다는 말을 되짚어서 질문한 것이다.
묘(妙)란 공(空)과 유변(有邊)의 양쪽을 비추는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으로, 묘유(妙有)이고 즉법(卽法)이고,
정(淨)은 공(空)과 유변(有邊)의 양쪽을 가리우는 공여래장(空如來藏)으로, 진공(眞空)이고 비법(非法)
공불공여래장(空不空如來藏)은 공(空)과 불공(不空), 시(是)와 비시(非是)을 회통하고, 긍정이면서 부정이 동시이며,
우리의 마음인 여래장은, 공적(空寂)이면서 영지(靈知)이고, 진공(眞空)이면서 묘유(妙有)이고,
쌍차(雙遮)이면서 쌍조(雙照)인 것이다.
佛告富樓那:“汝雖除疑,餘惑未盡。吾以世閒現前諸事今復問汝。汝豈不聞,室羅城中演若達多,忽於晨朝以鏡照面,愛鏡中頭眉目可見,嗔責己頭不見面目,以爲魑魅無狀狂走。於意云何,此人何因無故狂走?”
富樓那言:“是人心狂,更無他故。”
부처님께서 부루나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의심을 없앴다고 하나 아직 남은 의혹을 다 없애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간에서 현재 눈 앞에 나타나 있는 모든 일들을 들어서 네게 다시 묻겠으니, 너는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는가!
실라벌성(室羅筏城)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어느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서 눈섭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에서 얼굴과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서 까닭없이 미쳐 날뛰었다고 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사람이 무엇 때문에 까닭 없이 미쳐서 날뛰었다고 생각하는가?”
ㅡ연야달다(演若達多)는 미친 사람이고,
'자기 머리에서 얼굴과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서 까닭없이 미쳐 날뛰는' 것은 그림자를 고집하는 것으로, 본래 진실한 것을 잊어버리고 망령되게 유전(流轉)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물질에 집착하여 묘함을 잃어버린 것으로, 여래께서 망령된 원인이 없음을 밝히신 것이다.
곧 밝음이 없어서 깨닫지 못하는 마음을 비유하신 것이다.
연야달다는 아주 미남인데, 아침마다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스스로도 자기 얼굴이 잘 생겼다고 만족 하였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잘 생긴 얼굴이 보이는데, 거울을 치우니까 잘 생긴 눈 코 입 등이 보이질 않아서, 왜 잘 생긴 얼굴이 보이질 않는가?하고 착각하다가 미쳐서 잘 생긴 얼굴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진짜라고 착각해서 미친 것이다. 우리 중생들도 연야달다와 같이 미친 것과 같은 것이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