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 4권 2

Skunky 2025. 5. 8. 08:00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개운조사 능엄경 참조

수능엄경(首楞嚴經) 4 2

 

爾時,世尊告富樓那及諸會中漏盡無學諸阿羅漢:“如來今日普爲此會宣勝義中眞勝義性,令汝會中定性聲聞及諸一切未得二空迴向上乘阿羅漢等,皆獲一乘寂滅場地,眞阿練若正修行處。汝今諦聽,當爲汝說。”富樓那等欽佛法音默然承聽。

그 때에 세존께서 부루나(富樓那)와 법회 대중 가운데 번뇌를 다하고 배움을 초월한 누진(漏盡)의 무학(無學)의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래가 오늘 널리  회상의 대중을 위하여 수승한 이치의 승의제(勝義諦) 가운데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인 진승의성(眞勝義性, 진제 또는 승의제)을 밝혀서, 지금 너희들 법회 가운데 성문의 성품을 증득한 정성성문(定性聲聞, 성문으로 결정된 사람)과 이공(二空)을 얻지 못한 이들(초발심의 유학)과 보살의 상승(上乘)으로 회향한 아라한(대심나한) 등, 모두로 하여금 일승의 적멸한 도량인 일승적멸장지(一乘寂滅場地, 삼승의 으뜸)인 참으로 아란야(阿蘭若,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의 바른 수행의 방법을 얻게 할 것이니, 너희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부루나 존자 등은 존경을 다하여 말없이 부처님의 법음(法音)을 듣고자 하였다.

ㅡ이제(二諦), ①제법을 차별해서 안립한 세속제(世俗諦)와 ②진여를 안립한 승의제(勝義諦).

 

"승의제(勝義諦)에 대략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승의제(世閒勝義諦)로써, 5온ㆍ12처ㆍ18계 등을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도리승의제(道理勝義諦)로써, 고제 등의 4성제를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증득승의제(證得勝義諦)로써, 아공과 법공의 이공(二空)에서 나타난 진여를 말하는 것이며,
넷째는 승의승의제(勝義勝義諦)이니, 참다운 하나의 법계인 일진법계(一眞法界)를 말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승의(勝義)’라는 것은 최후의 것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으로, 가장 뛰어난 도(道), 근본지(根本智)가 행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며, 앞의 세 가지를 가려내기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며, 이 원성실성의 승의무자성은 일체법의 승의이고, 또한 곧 진여(眞如)라고 말하는 것이다. ㅡ성유식론(成唯識論) 제 9권 1

 
佛言:“富樓那!如汝所言,淸淨本然云何忽生山河大地?汝常不聞如來宣說性覺妙明、本覺明妙?”
富樓那言:“唯然,世尊!我常聞佛宣說斯義。”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루나(富樓那)여,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본연(本然) 그대로 청정하다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너는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성품의 깨달음인 성각(性覺)은 묘하고 밝은 묘명(妙明)이고,

본래의 깨달음인 본각(本覺)은 밝고 묘한 명묘(明妙)이다’라는 말을 들어오지 않았는가?”

부루나 존자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언제나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설하시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성각묘명(性覺妙明), 성각(性覺)은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으로 자성진각(自性眞覺)이라고도 하며, 
묘(妙)는 불변(不變)의 체(体)로써 적(寂)이라 하고 
명(明)은 수연(隨緣)의 용(用)으로 조(照)라 한다.

성각묘명(性覺妙明)과 본각명묘(本覺明妙)는 성각(性覺)은 한 마음의 근원에 있는 것으로 체(体)가 곧 용(用)이고, 용(用)이 곧 체(体)라는 것, 즉 성각(性覺)과 본각(本覺)은 여래장심의 체(体)를 말하는 것이고, 묘명(妙明)과 명묘(明妙)는 여래장심의 용(用)을 말하는 것이다. 
깨어있음이 상주불변(常住不変)하여 ‘성각(性覺)’이라 하고,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우주법계를 두루 비추므로 ‘묘명(妙明)’이라 하고,

우주법계를 밝히는 가운데 고요한 것이므로 ‘명묘(明妙)’라 하는 것이다.
곧 성품인 일체법(一切法)이 성각(性覺)인 것으로, '기신론'에 따르면 '한 마음의 진여인 생멸이 없는 성품이 곧 인연따라 생기는 덕(德)을 갖추어서 생멸과 화합할 수 있다'고 한 것이며, 

본각(本覺)이란, 본래 묘함을 잃지 않은 것을 말하며, '기신론'에 의하면, 아뢰야식 가운데 각의(覺義)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각의(覺義)란 마음의 본체인 심체(心體)가 생각(念)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을 벗어난 것은 허공계와 같아서 법계일상(法界一相)이다. 이는 곧 여래의 평등한 법신으로서 본각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각성(性覺性)은 묘하고 밝아서 능히 인연을 따르는 덕(德)을 갖추어 실체가 전부 생멸하는 가운데에 있는 것이나, 본각성(本覺性)은 밝고 묘해서 능히 변하지 않는 것을 갖추어 실체가 전부 한 마음의 본원에 있으므로 명묘(明妙)하다고 하는 것이니, 본래 가지고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말한다.

즉, 성각(性覺)은 진여(真如)의 체성(體性)이 타(他)에 의지함이 없이 스스로 깨어있는 것이고
본각(本覺)은 타인(他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래 깨어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佛言:“汝稱覺明,爲復性明稱名爲覺?爲覺不明稱爲明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깨달음과 밝음의 각명(覺明)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성명(性明)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 한 것인가?

깨달음이 밝지 못한 불명(不明, 무명)한 것을 일컬어 밝은 깨달음의 명각(明覺)이라고 하는가?

ㅡ부루나 존자가 성명(性明)을 깨달음이라 생각하고, 불명(不明)을 깨달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부루나 존자가 깨닫지 못함을 시험한 것이다.


富樓那言:“若此不明名爲覺者,則無無明。”

부루나 존자가 말씀드렸다.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불명(不明)을 깨달음이라 이름 한다면 밝힐 것도 없을 것입니다.”


佛言:“若無所明則無明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밝힐 것의 소명(所明)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의 명각(明覺)도 없으리라.  

ㅡ만약 밝힐 것이 없으면 밝혀야 할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

 

有所非覺無所非明無明 又非覺湛明性。

밝힐 것의 소명(所明)이 있다면 깨달음이 아닌 비각(非覺)이며,

밝힐 것의 소명(所明)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닌 무명(無明)이니,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고요하고 밝은 성품의 각담명성(覺湛明性)도 아닐 것이니라.

ㅡ깨달음은 능소(能所)을 초월한 것으로,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모든 상을 비추는 것이므로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니, 만약 결코 밝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 또한 각담명성(覺湛明性)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음과 밝지 못한 것 모두다 허망한 헤아림이라서, 본각(本覺)의 진실한 것이 아니다. 

 

▷삼세(三細)의 상(相) 

性覺必明,妄爲明覺;

성품의 깨달음인 성각(性覺)은 반드시 밝혀야 할 필명(必明)이라서 망령되게 밝혀야할 깨달음(覺)이 되었다고 하느니라. 

앞에서는 성각묘명(性覺妙明)이라 하셨고, 여기에서는 성각필명(性覺必明)이라 하였는데, 맑고 고요하게 비추는 것을 진실한 묘명(妙明)이라 하고, 억지로 깨달아 아는 것을 허망한 필명(必明)이라 한다. 

허망하게 명각(明覺)이 되었다고 한 것은 곧 업상(業相)이다.

'기신론'에서 "한 마음의 진여가 이미 인연을 따르는 덕(德)이 있어서 생멸과 합하여,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님을 가리켜 '아뢰야식'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 가운데 진여가 변하여 아뢰야식이 되었으나 그 아뢰야식의 체는 완전한 여래장의 성(性)으로서 물든 상이 없다가, 무명이 점점 발해서 아뢰야식 가운데 2 가지 이치가 있게 되었으니, 

하나는 각의(覺義)인 본각(本覺)이고, 다른 하나는 불각의(不覺義)이니 곧 여기에서 말하는 반드시 밝혀야할 필명(必明)이다.

불각의(不覺義)는 것은 진여의 법이 하나라는 것을 여실하게 알지 못한 까닭에 불각심(不覺心)이 생겨서 그 불각(不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이 동(動)하는 것을 업상(業相)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망식이 처음 생기는 것이다. 곧 여기에서 말하는 '망령되게 밝혀야할 깨달음(覺)'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필명(必明)이라 하였고, 앞에서는 불각(不覺)이라 하였으니, 불각은 곧 무명(無明)이다.

명(明)과 무명(無明)이 아주 다른 것인데, 어찌하여 서로 짝이 되어서 삼세(三細)의 인연이 생겨난다고 하는가?라고 하시자, 

대답하기를 성각(性覺)의 밝음은 본래 자연 그대로이므로 성품이 없는 것이라서 본래 묘명(妙明) 성품임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하여 반드시 밝히고자 하므로, 저 고요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불각심(不覺心)이 움직이게 된 이유이다. 그런 까닭에 불각(不覺)의 짝이 된것이다라고 하였다.

*삼세(三細), ①진여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 현상을 내게 되는 첫 걸음으로서 주관과 객관이 나뉘기 전의 상태인 무명업상(無明業相),

②무명업상이 주관과 객관으로 나뉠 때의 그 주관인 능견상(能見相),

③능견상인 주관의 앞에 나타나는 객관적인 대상의 경계상(境界相).

 

覺非所明,因明立所。所旣妄立,生汝妄能;無同異中熾然成異,

깨달음의 각(覺)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할 대상(所)이 이루어졌으니, 이 밝혀야 할 대상(所)이 허망하게 세워지면, 너의 망령된 능력의 망능(妄能)이 생겨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에서 불꽃과 같이 치성하게 다름을 이루느니라.

ㅡ앞의 각명(覺明)이 진여(眞如)를 움직이니 이것이 업상(業相)이고, 밖의 대상 경계를 향하여 변해서 보는 것이 되었으니 이는 곧 전상(轉相)이다. 이것은 명(明)은 곧 전상(轉相)이고, 소(所)는 곧 현상(現相)인데, 전상이 비록 능견(能見)이지만, 아직 하나에서 나뉘어지지 않아서 소(所)를 대하지 않았을 때에는 능(能)이라 할 수 없다가 소(所)인 대상 경계가 나타나면 이에 능(能)이라는 이름이 성립된다. 

그래서 '너의 망령된 능력(妄能)이 생기게 한다'고 한 것이지만, 소(所)가 성립되므로 인하여 능체(能體)가 비로소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은 삼세(三細)의 상相)을 밝힌 것으로, 건남(乾男)과 곤녀(坤女)가 비로소 서로 만난 것이다. 

 

▷육추(六麁) 

異彼所異因異立同,同異發明,因此復立無同無異。如是擾亂相待生勞,勞久發塵自相渾濁,

저 달라지는 것을 다르다 하여서, 그 다른 것을 인해서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同)과 다름(異)을 드러내어 밝혀서, 이로 인해서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塵)가 발생하여 자연이 스스로  혼탁하게 되느니라.

ㅡ앞의 삼세(三細)를 따라 육추(六麁) 중의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을 일으킨 것으로,  

성각(性覺)은 본래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지만 필명(必明)을 인한 까닭에 능소(能所)의 경계가 망령되게 나타나고, 그 나타나는 경계에서 애(愛) 증(憎) 만(慢) 치(癡)가 일어나서 생각마다 끊어지지 않는 것이 번뇌의 진노(塵勞)를 발해서 혼탁하게 된 것인데, 구생(俱生, 선천적 번뇌)과 분별(分別, 후천적 번뇌)의 두 가지 법집이 이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육추(六麁) ① 주관적인 작용인 능견상이 객관적 대상인 경계상을 반연하여서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판단하여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지상(智相).

②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지면서 즐거워하고 걱정이 그치지 않는 상속상(相續相)

③앞의 즐거워하고 걱정하는 감정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객관적이라고 믿고 대상에 집착하는 집취상(執取相)

④대상의 선악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집착하여서 번뇌는 내는 계명자상(計名字相)

⑤이름에 집착하면 반드시 행위가 따르는 것인데, 그 집착하는 생각으로 짓는 언어와 동작의 기업상(起業相)

⑥언어와 동작으로 지은 업인(業因)에 속박되어서 받게 되는 고과(苦果)의 업계고상(業繫苦相)

 

由是引起塵勞煩惱。

이로 말미암아 진로(塵勞)와 번뇌(煩惱)가 일어나느니라라.

ㅡ육추 중의 집취상과 계명자상으로, 구생(俱生, 선천적 번뇌)과 분별(分別, 후천적 번뇌)의 두 가지의 아집이다.

능소(能所)로 인하여 망령되어서 묘명(妙明)을 흐리게 하여서 묘담(妙湛)을 흐리게 하여서 번뇌의 진(塵)이 되고, 움직여서 노(勞)가 되며, 걱정과 근심에 찌들려서 번(煩)이 되고, 혼미하고 혼란하여서 뇌(惱)가 된다.

 

起爲世界 靜成虛空,虛空爲同,世界爲異,彼無同異眞有爲法。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면 허공이 되는데, 허공은 같은 것(同)이 되고, 세계는 다른 것(異)이 된다.

며, 그 같음(同)과 다름(異)이 없는 것이 참된 진유위법(眞有爲法)이니라.

ㅡ허망한 망각(妄覺)이 동(動)하면 피로하고 어지러워져서 번뇌(塵)가 일어나기 때문에 세계가 되고,

망각이 잠복해 있으면 어둡고 아득해지기 때문에 고요하면 허공이 되는 것이니,

법계가 하나같이 공한 것을 동(同)이라 하고, 정기(精器)가 만 가지로 다른 것을 이(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