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1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 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3권 1
▷육입(六入)에 나아가 여래장(如來藏)을 밝힘.
“復次,阿難!云何六入本如來藏妙眞如性?
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6입(入)이 본래 여래장의 묘한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 하는가?
ㅡ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흡수하여 받아 들이는 것이 입(入)이다.
▷안입(眼入)
阿難!(假令有人 不動目晴 瞪久發勞 則於虛空 別見狂華) 卽彼目精瞪發勞者,兼目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랫동안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피로하여지면 곧 허공에 광화가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이 보리(菩提)로써 똑바로 보다가 눈이 피로하여져서 생긴 상이니라.
ㅡ눈은 곧 부근(浮根)이다.
因于明暗二種妄塵,發見居中吸此塵像,名爲見性,此見離彼明暗二塵,畢竟無體。
밝음과 어두운 것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 경계(물질)로 인하여 보는 작용이 생기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이 경계의 진상(塵像, 색상)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견각성(見覺性)이라 하나니, 이 보는 주체(작용)은 밝음과 어두움의 두 대상 경계인 이진(二塵, 물질)를 여읜다면 필경에 본다는 실체가 없는 무체(無體)이니라.
ㅡ색(色)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기고 눈(眼)으로 인하여 대상 물질(塵)을 흡수하여 들이므로 안입(眼入)이 생기는 것이다.
색상(色像)은 외부로 들어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 물체들.
如是,阿難!當知是見非明暗來,非於根出眼生,不於空生出。何以故?若從明來,暗卽隨滅亡,應非不見暗。若從暗來,明卽隨滅亡,應無→不見明。若從根眼生,必無明暗。如是見精,本無自性 若於從空出。若於空出,前矚塵象歸當見根;又空自觀,何關汝入。
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보고 깨닫는 견각성(見覺性)은 밝음이나 어두움에서 온 것도 아니고, 눈(根)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밝음에서 온 것이라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사라져서 어둠을 볼 수 없어야 할 것이고,
만약 어두움에서 온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사라져서 밝음을 볼 수 없어야 할 것이며,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밝고 어두움이 없으면 이와 같이 보는 정기(精)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것이 있으면 자성(自性)을 이룰 것이니, 그렇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요, 또한 허공이 스스로를 볼 것이니, 너의 안입(眼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是故當知眼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눈의 보고 인식하는 안입(眼入)은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성이니라.
ㅡ여래장은 6근(六根)을 벗어나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근(根)은 능입(能入)이며, 진(塵)은 소입(所入)으로, 6근이 6진을 흡수하여 취할 수 있으므로 6근만을 6입(入)이라 한다.
안근(眼根)은 색을 분주히 흘러들이고, 이근(耳根)은 소리를 분주히 흘러 들이므로, 능입(能入)이라 하며,
범부는 3계의 6진(六塵)에 들어가고, 이승(二乘)은 진제(眞諦)에 들어가고, 보살은 속제(俗諦)에 들어가고, 부처는 중제(中諦)에 들어가므로, 모두 입(入)이라 하며, 모두가 일진법계(一眞法界)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6입이 본래 여래장의 묘진여성(妙眞如性)이라 한다.
'안입허망(眼入虛妄)'이란 인연의 가명(假名)으로, 인연이 화합하여서 허망한 존재가 생기지만, 와도 온 곳이 없으며,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나, 가도 간 곳이 없다.
인연은 바로 중(中)이며, 묘각명체(妙覺明體)요, 본여래장이다. 인연에 집착해서도 자연에 집착해서도 안되는 것이니, 만약 견성이 보이는 상(相)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집착한다면, 바로 인연에 떨어지고
만약 견성이 능히 보는 근(根)에서 생긴다고 집착하면 바로 자연에 떨어진다.
상분과 견분은 모두 자증분(自證分)이 변화한 것으로 합할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것이니, 합하지도 분리하지도 못하는 것이라면,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것이다.
▷이입(耳入)
阿難!譬如有人以兩手指急塞其耳,耳根勞故頭中作聲,兼耳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만약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급히 귀를 꽉 막고 오랫동안 있는다면, 귀의 감관인 이근(耳根)이 피로하여져서 머리 속에서 어떤 소리(헛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이 귀와 귀의 피로는 보리로써 피로하여서 일으키는 상이니라.
因于動靜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聲像),名聽聞(覺)性,此聞(聽)離彼動靜二塵,畢竟無體。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경계의 망진(妄塵)으로 인하여, 듣는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계의 성상(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듣고 깨닫는 청각성(聽覺性)이라 하며, 이 듣는 주체가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의 두 가지 대상 경계(망진)를 떠나면 필경에 듣는다는 그 실체가 없느니라.
ㅡ소리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기고, 귀로 인하여 대상 물질을 흡수하여 들이므로 이입(耳入)의 허망함이 있는 것이다.
동(動)과 정(靜)의 2진(二塵)은 모두 무명(無明) 업식(業識) 중에서 환출(幻出)된 것이다.
동정이진(動靜二塵)은 이근(耳根)에서 나오고, 이근(耳根)이 이 두 망진(妄塵)을 받아들이는 것을 청각성(聽覺性)이라 한다. 그러나 동(動)과 정(靜)의 2진(二塵)은 모두 생멸법(生滅法)으로, 잠시 있다가 순식간에 없어져서 터럭만큼의 실체(實體)도 없는 무생(無生)이다. 어떻게 무생(無生)의 허망(虛妄)한 법을 청각성(聽覺性)이라 하겠는가?
阿難! 當知 是聽覺性 非動靜來 非於 非於耳生 非於空出. 何以故?若從靜(動)來,動卽隨滅(亡),應非聞動(應不聽動)。若從動來,靜卽隨滅(亡),應無覺靜。若從根(耳)生,必無動靜。如是聞體(聽靜),本無自性。若於(從)空出,有聞(聽)成性卽非虛空;又空自聞(聽),何關汝入。是故當知耳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듣고 깨닫는 청각성(聽覺性)은 움직임이나, 고요함의 동정(動靜)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耳)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온 것이라면, 고요하여지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당연히 고요함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고요함에서 온 것이라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당연히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해야 할 것이고,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와 같이 듣는 정기의 청정(聽靜)이 본래 자성(自性)이 없어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듣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그렇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요, 또한 허공이 스스로 듣는 것이니, 너의 이입(耳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듣고서 인식하는 이입(耳入)은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
ㅡ듣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룬다는 것은, 듣는 것이 있으면 자성이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문성(聞性)은 비록 동정(動靜)은 아니지만, 동정(動靜)을 떠나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관음(觀音)의 입리일문(入理一門)에서 초입(超入)하면, 동정 2진은 일어나지 않으며, 들어가는 이근(耳根) 역시 적연(寂然)하여 머무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인연이 일어나는 것은 허망법(虛妄法)이며, 자연이 생김은 허망체(虛妄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연과 자연 모두가 가명(假名)으로 실법(實法)이 아니고, 진문성(眞聞性)은 허공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인 것이니, 그래서 인연도 아니요 자연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비입(鼻入)
阿難!譬如 (假令)有人急畜(搐)其鼻 畜(搐)久成勞,則於鼻中 聞(嗅)有冷觸,因觸分別通塞虛實,如是乃至諸香臭氣,兼鼻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급하게 숨을 들이켜서, 그렇게 들이쉬기를 오랫도록 함으로 인하여 피로하여지면, 코 속에서 차가운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의 통색(通塞)과 허하고 실함의 허실(虛實)한 것을 분별한다면,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 냄새까지도 맡는 것이니, 그 코와 피로는 다 같은 보리(菩提)이니 똑바로 보다가 눈이 피로하여져서 생긴 현상인 것이니라.
因于通塞 二種妄塵,發聞(嗅)居中吸此塵象(香像),名嗅聞(覺)性,此聞(嗅)離彼通塞二塵,畢竟無體。
통함과 막힘의 통(通)과 색(塞)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 물질인 망진(妄塵)으로 인하여 냄새 맡는 것이 생겨서 그 가운데에서 이 향상(香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냄새를 맡아 깨닫는 후각성(嗅覺性)이라 하나니, 그 냄새를 맡는 주체가 트임의 통(通)과 막힘의 색(塞)의 2 가지 대상 물질을 여의면, 필경에 냄새라는 그 실체가 없어질 것이니라.
ㅡ냄새(香)로 인하여 냄새를 맡는 것이 생겨나고, 코로 인하여 대상 물질(塵像)을 흡수하여 들이므로 비입(鼻入)의 허망함이 생기는 것이다.
통색(通塞)의 두 가지 망진(妄塵)이 코끝에 닿으면, 코끝이 망진(妄塵)을 받아들이는 것을 후문성(齅聞性)이라 하며, 통색(通塞)은 모두 실성(實性)이 없다.
냄새 맡는 중에 있다는 것은 모두 허망한 인연으로 생긴 것으로 실은 무생(無生)인 것이니, 어떻게 통색(通塞)의 허망법(虛妄法)을 후문성(齅聞性)이라 할 수 있겠는가?
阿難! 當知 是聞(是嗅覺性) 非通塞來,非於根(鼻)出,不於空生(非於空出)。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 냄새 맡아 깨닫는 후각성(嗅覺性)은 통함(通)과 막힘(塞)에서 오지도 않고,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何以故?若從通來,塞自隨滅(亡),應不嗅塞 云何知塞 (若從塞來 通自隨亡) 如因塞有(應不嗅通) ,通則無聞,若從根生(鼻生) 必無通塞 如是聞體(嗅精) 云何發明香臭等觸?若從根生,必無通塞。如是聞體,本無自性。若從空出,是聞自當迴嗅汝鼻,空自有聞,(有嗅成性 卽非虛空又空自嗅) 何關汝入。是故當知鼻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왜냐하면, 만약 통한 데서 온 것이라면 막히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당연히 막힘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만약 막힘에서 온 것이라면, 통하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당연히 통함을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통함과 막힘이 없으면 이와 같은 맡는 정기의 후정(嗅精)이 본래 자성이 없어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맨새를 맡는 것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그렇다면 곧 허공이 아닐 것이요, 또한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을 것이니, 그것이 너의 비입(鼻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맡아서 인식하는 비입(鼻入)은 허망한 것으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진여성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