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경(首楞嚴經)

수능엄경(首楞嚴經)2권 3

Skunky 2025. 4. 16. 08:00

本名;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또는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

당나라의 반자밀제(般刺密帝) 번역송나라 급남(及南) 편찬(編纂), 송나라 계환(戒環) 해석

수능엄경(首楞嚴經) 2 3

 

▷모든 물상에 임하여서 진성을 결택(決擇)하다

阿難言:“我雖識此見性無還,云何得知是我眞性?”

아난 존자가 말씀드렸다.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의 견성(見性)은 돌려보낼 곳이 없다는 것을 알지라도, 

어떻게 하여  견성(見性) 저의  성품인 진성(眞性)이라는 것을   있겠습니까?”

ㅡ비록 견정(見精)을 돌려보낼 곳이 없음을 알면서도 현재 사물과 섞여 있으므로 밝게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아난 존자는 아직 반연심(攀緣心)을 버리지 못한 상태로써, 비록 견성이 돌아갈 곳이 없음을 알지만, 외경과 분별할 수 없어서 어느 것이 망경(妄境)이고 어느 것이 진성(眞性)인가를 모르는 것이다. 


佛告阿難:“吾今問汝,今汝未得無漏淸淨,承佛神力,見於初禪得無障㝵;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너는 아직 번뇌가 없는 청정한 경지인 무루청정(無漏淸淨)을 얻지 못하였으나, 

나의 신통력인 신력(神力)으로 초선천(初禪天)을 걸림 없이 보았느니라.

ㅡ아난 존자는  아라한의 지위인 초과(初果)를 얻어서 견혹을 끊고 장애(障礙)에서 벗어났으나, 아직 무루청정(無漏淸靜)은 얻지 못하였다. 

 

而阿那律見閻浮提,如觀掌中菴摩羅菓;諸菩薩等見百千界;十方如來窮盡微塵淸淨國土無所不矚。衆生洞視不過分寸。

아나률(阿那律, 아니룻다, 십대제자이며 천안제일)은 염부제(閻浮提, 사바세계)를 손안의 암마라(菴摩羅, 망고) 열매처럼 볼 수 있으며, 보살들은  천의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시방의 여래는 미진(微塵)과 같이 많은 청정국토를 남김없이    있으나,

중생은 아무리 환하게 본다고 할지라도 분촌(分寸, 한 치, 우리가 사는 세계)에 지나지 않느니라.

아나률(阿那律, Aniruddha, 아니룻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의 한 사람이며, 부처님의 6촌 동생으로서 잠이 너무 많아서 부처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7일 동안 무리하게 자지 않아서 두 눈을 잃었으나 후에 수행하여 천안통(天眼通)을 이루어 천안제일이 되었다.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 성으로 돌아오시고, 난타(난다), 라훌(라후라)를 시작으로 석가족의 청년 5백 명이 출가하게 되었는데, 아나률은 형을 대신해서 출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층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이발사였던 우파리가 왕자인 아나률보다 먼저 출가했는데, "먼저 제자가 된 사람에게 예경해야 한다"는 부처님 교단의 의례에 따라 아나률 등 왕자들이 우파리에 예배하였고 석가모니 부처로부터 「잘해냈다. 석가족의 교만한 마음을 멸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아나률은 부처님의 입멸에 통곡하며 비탄하는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고, 아난 존자에게 지시해서 쿠시나가라의 맛라(Mahla)족에게 부처님의 장의 준비를 시켰다고도 설해진다.

 

*여기에서는 견정(見精)이 보는 한계를 반연(攀緣)하는 경계를 말하고 있다. 
초선천(初禪天), 색계의 탐욕을 벗어난 천계을 보는 것은 유학인(有學人)의 혜안(慧眼)이 볼 수 있고, 
염부제를 보는 것은 무학인(無學人, 벽지, )의 천안(天眼)을 닦아서 대천세게를 볼 수 있고, 
백천계(百千界)를 보는 것은 보살의 법안(法眼)의 견량(見量)이고, 
미진국(微塵國)을 보는 것은 여래의 불안(佛眼)의 견량(見量)이고,   
종이 한 장이 막힌 것도 볼 수 없는 분촌(分寸)만을 보는 것은 중생의 육안(肉眼)의 견량(見量)이다. 

 

阿難!且吾與汝觀四天王所住宮殿,中閒遍覽水陸空行,雖有昏明種種形像,無非前塵分別留㝵,汝應於此分別自他。今吾將汝擇於見中,誰是我體?誰爲物象?

아난아,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四天王, 수미산의 제석천을 호위하는 동서남북의 4 호법신)이 머무는 궁전을 보고,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을 다니는 것들을 두루  보았을 때,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의 형상이 있었으나, 그러한 것들은 눈 앞의 대상으로서, 구분되고 걸리고 장애되는 것이 없었으니, 너는 거기에서 나(自)와 내가 아닌 타(他)를 분별해 보아라. 

나는 지금 너에게 보는 작용 가운데 무엇이 나(自)의 자체인, 아체(我體)이고,

무엇이 다른(他) 것 물상인지를 가려내리라.

 

사천왕(四天王)은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하며,

비파를 들고 있으며, 동쪽을 수호하는 동방지국천왕은 황금타(黃金埵)에 살며,   
검을 들고 있으며, 남쪽을 수호하는 남방증장천왕은 유리타(琉璃埵)에 살며, 
용과 영의주를 들고 있으며, 서쪽을 수호하는 서방광목천왕은 백은타(白銀埵)에 살며, 
왼손에는 우산 오른 손에는 보탑을 들고 있으며, 북쪽을 수호하는 북방다문천왕은 수정타(水晶埵)에 산다. 

 

▷즉물결택(卽物決擇)

阿難!極汝見源,從日月宮,是物非汝;至七金山周遍諦觀,雖種種光亦物非汝;

漸漸更觀雲騰、鳥飛、風動塵起、樹木山川、草芥人畜,咸物非汝。

아난아, 너의 보는 주인공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해 보아라! 일월궁(日月宮)까지도 이것은 물체(他, 물상)일  네(自)가 아니니라. 

또한 칠금산(七金山, 금산)에 이르기까지도 두루 살펴보아라. 비록 갖가지로 광채가 다를 뿐, 역시 물체(他, 물상)일  네(自)가 아니니라. 

다시 이렇게 점점 나아가, 뜬구름과 나는 새들과 부는 바람과 날리는 먼지와 숲과 나무와 산과 내와 풀과 지푸라기와 사람과 짐승들을 보아라. 모두  물체(他, 물상)일  네(自)가 아니니라.

일월궁의 아래에 지쌍산(持雙山), 지축산(持軸山), 담목산(擔木山), 선견산(善見山), 마이산(馬耳山), 상비산(象鼻山), 어취산(魚嘴山)의 7개의 산이 있는데, 모두 금으로 되었며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고, 그 사이에 향수해가 있다.

 

▷견성을 바로 보이시다.

阿難!是諸近遠諸有物性,雖復差殊,同汝見精淸淨所矚,則諸物類自有差別,見性無殊,此精妙明誠汝見性。

아난아,  멀고 가까운 모든 물체의 물성(物性)이 비록 여러가지로 다를지라도, 너의 보는 견정(見精)이 한결같이(同) 청정하게 보는 것이니라. 

여러 종류의 물체에 자연히 스스로의 차별이 있을지라도, 너의 보는 성품은 차별이 없으니,  보는 견정(見精) 묘한 밝음이 진실한 너의 보는 성품인 견성(見性)이니라.

진성(眞性)이 추하고 흐린 것을 보아도 섞이지 않는 것을 '정(精)'이라 하고, 일체의 다른 것들을 모두 거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묘(妙)'라 하며, 멀거나 가깝거나 한 가지로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현량(現量) 중의 견정(見精)을 밝힌 것으로, 보고 분별하는 것은 모두 망심(妄心)이고,

보고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 견정(見精)이다. 
원근의 크고 작은 물상은 다르지만, 견성은 차별이 없으며,
분별하는 것을 되돌아 보고 보이는 물상과 섞이지 않는 것이 견정이다. 
견성(見性)은 법계에 두루 주변(周徧)한 것으로, 거울이 항상 밝게 비추는 것에 비유된다.
 

▷보는 것은 물상이 아님을 밝힘 - 사약장(四若章)

①若見是物,則汝亦可見吾之見?

만약 보는 주체가 곧 물(物)이라면, 너 또하 내가 보는 주체를 볼 수 있어야 하리라.

ㅡ물상이라면 당연히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앞에서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다'라고 한 것을 이어서 거듭 밝히는 것이다.

 

②若同見者名爲見吾;吾不見時,何不見吾不見之處?

만약 함께 보는 동견(同見)을 나의 보는 작용(見)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보지 못하는 불견(不見)일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는 것인가?

ㅡ'함께 본다는 동견(同見)'은 물상에 의한 자취이고, '보지 못한다'는 것은 물상에서 벗어난 실체(體)이다. 만약 나와 네가 같이 한 물상을 보는, 이것을 나의 보는 주체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다만 자취일 뿐이니, 마땅히 내가 물상을 벗어나서 보지 못할 때에는 그 실체가 어디에 있는가? 이미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응당 이것은 물상이 아닌 것이다.


③若見不見,自然非彼不見之相;

만약 보지 못하는 견불(見不)을 본다고 한다면, 자연 저것은 보지 못할 불견(不見)의 상(相)이 아닌 것이니라.

ㅡ비록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능히 본다고 한다면, 마침내 '자연히 보지 못할 상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대개 볼 수 없는 상을 보는 것으로 미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보지 않는 곳을 아난이 본다면 그것은 보이는 물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견성은 보이는 물상이 아니다.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과 같이, 아난의 견성을 부처님이 볼 수 없고, 부처님의 견성을 아난이 볼 수 없다. 그 자리는 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도 아난도 물상은 볼 수 있지만, 물상을 보는 주체인 견성은 보지 못한다. 견성은 마음이지 물상이 아니다. 물상은 서로가 볼 수 있으나 견성 그 자체는 볼 수 있는 물상이 아니므로 서로가 보지 못하는,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인 것이다.ㅡ향적법진 

 

④若不見吾不見之地,自然非物,云何非汝?

만약 내가 보지 못하 것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상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네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ㅡ보는 것이 이미 물상이 아니므로 이는 곧 진실한 너의 성품이라는 것이다.

ㅡ만약 네가 나의 보지 않는 자리를 못 본다면, 이 보는 견성은 자연히 보여지는 물체가 아닌 것이니, 어찌 너 자신이 아니겠느냐?ㅡ한울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네가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연히 물상이 아닌데, 

그렇다면 그것이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견성은 물상이 아니다. 견성이 너의 마음이다.ㅡ향적법진   

 

사약장(四若章)으로, 만약의 약(若)이라는 글자가 네 번 나오면서, 견성(見性)이 물상(物象)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견성(見性)은 물체를 보지만 견성(見性)은 보지 못한다. 물체는 상도 있고 있는 곳도 있지만, 견성(見性)은 상도 처소도 없어서 견성(見性)을 못 보는 것이다. 
체성(體性)은 존재의 참모습으로서, 유정(有情)의 체성은 견(見)이고, 무정(無情)의 체성은 물상(物象)이다. 

네가 지금 물상을 볼 때, 네가 이미 물상을 보고 있고, 물상도 또한 너를 본다면, 둘의 체성이 분란하고 혼잡하게 된다. 체성이 분란하고 혼잡하면 견성과 물상이 뒤섞여서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물상이 혼잡하면 유정물과 무정물을 구분할 수 없고, 또 사람이 혼잡하면 너의 견과 나의 견을 분간할 수가 없다. ㅡ향적법진   

 

又則汝今見物之時,汝旣見物物亦見汝,體性紛雜,則汝與我幷諸世閒不成安立。

또한 네가 이제 물상을 볼 때에 네가 이미 물상을 보았으면, 물상 또한 너를 보아야 할 것이리라. 

그러면 보는 자체(體)와 성품(性), 즉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이 어지럽게 뒤섞여서, 너와 나와 모든 세상은 제자리의 질서의 안립(安立)을 이루어서 성립하지 못할 것이니라.

ㅡ보는 주체가 물질이 아님을 밝힌 것으로, 만약 보는 주체가 곧 물질이라면, 물질이 응당 볼 수 있어서 정(情)이 있는 것과 정이 없는 것과의 실체(體)와 성품(性)이 뒤섞여서 분별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는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모든 세간의 제세간(諸世閒)은 중생과 기계(器界)를 말하는 것으로, 정이 있는 것과 정이 없는 것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다.

 

▷결답(結答)

阿難!若汝見時是汝非我,見性周遍非汝而誰?云何自疑汝之眞性,性汝不眞取我求實。”

아난아, 만약 네가 물상을 볼 때, 그 보는 것이 바로 네 자신일 뿐, 내가 아니거늘,

보는 성품의 견성(見性)이 두루 원만한 자체가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는가?

어찌하여 너의 진실한 성품의 진성(眞性)이 너의 참된 성품으로서 진실하지 않다고 의심하여서, 나를 상대로 진실을 찾으려는 것인가?”

 

▷명견진체(明見眞體)는 무량한 것이다.
阿難白佛言:“世尊!若此見性必我非餘,我與如來觀四天王勝藏寶殿居日月宮,此見周圓遍娑婆國;退歸精舍只見伽藍,淸心戶堂但瞻簷廡。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저의 보는 성품인 견성(見性)이 틀림없이  자신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면, 

이전에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승장보전(勝藏寶殿)과 일월궁(日月宮, 일궁과 월궁)을 볼 때에는, 그 보는 성품인 견성(見性)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세계(一界일계)에 두루 퍼졌다가, 

정사(精舍)로 돌아왔을 때에는 단지 가람(伽藍)만 보였을 뿐이며, 

마음을 닦는 청심호당(淸心戶堂)에 있을 때에는 처마 끝과 행랑만 보였습니다.

*승장보전(勝藏寶殿), 사천왕궁은 진보(珍寶)를 저장하는 곳으로, 부처님께서 사천왕이 부처님께 전법륜하여 주시기를 청하였을 때, 아난 존자가 부처님을 따라 가서 사천왕궁을 보았다.

*일천 세계= 1소천세계, 1천 소천세계= 1중천세계, 1천 중천세계= 1 대천세계. 
1대천세계가 1불국토 또는 사바세계이며, 한 세계마다 한 사천왕천이 있다. 
여기에서 먼저 사천왕천을 함께 본 후, 사바국에 두루 임하였다고 한 것으로, 여기에서의 사바국은 대천세계가 아닌 한 세계를 뜻한다.

*청심호당(淸心戶堂), 스님들이 도(道)를 닦는 곳.

 

世尊!此見如是,其體本來周遍一界,今在室中唯滿一室,爲復此見縮大爲小?

爲當牆宇夾令斷絕?我今不知斯義所在,願垂弘慈爲我敷演。”

세존이시여,  보는 성품은 이와 같이  자체가 본래 일계(一界,  세계)에 두루 원만하다가,

지금 이 방안에서는 오직 이 방에만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까?

 보는 성품이  것을 작게 축소하여서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담장이나 지붕에 끼이거나 막혀서 단절 되거나 끊어진 것입니까?

저는 지금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부디 광대한 자비를 내리시어 설하여주옵소서.”

 

여래께서 견성이 주변(周徧)한 것을 들어서 진성(眞性)이 원만함을 밝히셨다. 
이에 아난존자는 견성이 이미 물체와 뒤섞이지 않는 불변의 체(體)이거늘, 어찌하여 한 나라에 있으면 한 나라만 보고, 한 집에 있으면 한 집만 보고, 방 안에 있으면 방만 보게 이유를 모르는 까닭에, 

어떻게 견성은 물체의 크고 작음에 따라 방원(方圓)이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이는 물체는 대소와 방원이 있으나, 견성(見性)은 대소방원(大小方圓)이 없음을 모르는 까닭에 의심하는 것이다. 
정명(精明)한 견성(見性)은 물체가 오면 모양이 드러나고 물체가 가면 사라진다. 
물체를 따라 상(相)이 드러나나, 물체와 뒤섞이지 않는, 불변(不變)의 이체(理體)이며, 묘명정견(妙明精見)인 것이다. 
이는 상분(相分)도 견분(見分)도 아니며,
반연(攀緣)된 월영(月影)을 마음이라고 집착하는 것이니,

제2월인 견정(見精)도 모르면서 어찌 식정원명(識精元明)한 진체(眞體)를 알겠는가? 
그래서 다시 큰 자비를 내려서 묘리(妙理)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ㅡ한울림